카페 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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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연방 공화국 제18대 대통령
주앙 페르난지스 캄푸스 카페 필류
João Fernandes Campos Café Filho
[1]


출생
1899년 2월 3일
브라질 합중 공화국 히우그란지두노르치주 나타우
사망
1970년 2월 20일 (향년 71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 과나바라
재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18대 대통령
1954년 9월 3일 ~ 1955년 11월 22일
경력
히우그란지두노르치주 연방 하원의원
,(1935~1937, 1946~1951),
브라질 제15대 부통령 ,(1951-1954),
브라질 제18대 대통령 ,(1954~1955),

1. 개요
2. 생애
2.1. 대통령직 승계
2.2. 퇴임 후
3. 여담




1. 개요[편집]


브라질의 제18대 대통령.

2. 생애[편집]


1918~1919년 축구팀인 알레크링 FC[2]에서 골키퍼로 선수생활을 했다. 성인팀 소속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한 유일한 브라질 대통령이다.[3]

1921년부터는 브라질 북동부와 당시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기자로 일했다.

1930년 제툴리우 바르가스를 지지하는 자유동맹에 참여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34년 히우그란지두노르치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지만 국가보안법과 1937년 친위 쿠데타에 반대했다가 아르헨티나로 1년간 망명을 가기도 했다.

1945년 바르가스가 퇴진하기 직전 공화진보당에 합류했다. 공화진보당은 타 정당들을 흡수하고 사회진보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1950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상파울루의 주지사이자 사회진보당 대표였던 아지마르 지 바후스는 제툴리우 바르가스를 지지하는 조건으로 카페 필류를 러닝메이트로 세울 것을 요구했다. 바르가스는 과거 자신에 반대했던 카페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당선을 위해서는 사회진보당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부통령 선거를 따로 치렀는데, 2위 후보를 20만여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또한 연방 상원의장도 맡았는데, 당시 선거법상 겸임이 가능했다.[4]

1954년 바르가스의 측근이 반정부 정치인인 카를루스 라세르다에 대한 암살 시도를 벌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바르가스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었으나 바르가스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카페 필류는 사임할 것을 제안했고, 바르가스도 측근들과 상의했지만 당시 법무장관이던 탄크레두 네베스가 사임을 반대하자 바르가스도 사임을 거부했다.


2.1. 대통령직 승계[편집]


하지만 바르가스는 결국 1954년 8월 24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에 카페 필류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카페 필류는 1955년 건강문제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카를루스 루스가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그때 치러진 1955년 대선에서 주셀리누 쿠비체크가 당선되었지만 과반 득표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복 사태가 발생했다. 루스 대통령도 이에 동참했고 취임식을 막기 위한 쿠데타의 기미가 보였다. 그러자 군부는 루스를 취임한지 3일만에 쫓아내 네레우 하무스 연방 상원부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이후 건강이 호전되자 의회에 직무 복귀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하무스가 쿠비체크의 취임 때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한편 카페는 주아리스 타보라를 지지했는데 쿠비체크에게 밀려 패배했다.

2.2. 퇴임 후[편집]


퇴임한 후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부동산 회사에서 일했다. 이후 1961년 리우데자네이루 주 과나바라의 감사원 장관으로 1969년까지 재직했다.

1970년에 사망했고 상 주앙 바티스타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3. 여담[편집]


룰라 다 시우바와 더불어 브라질 대통령 중 유이하게 대학 학위가 없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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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류는 영어의 주니어에 해당하는 단어이다.[2] 히우그란지두노르치주 리그인 캄페오나투 포치구아르(Campeonato Potiguar) 2부 소속이다.[3] 성인팀 소속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한 대통령은 필류 말고 두 명이 더 있는데, 하나는 튀르키예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고, 다른 하나는 라이베리아조지 웨아이다. 물론 에르도안이 축구선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지만, 이 둘의 인지도가 필류에 비해 압도적이다.[4] 브라질은 미국과 달리 부통령이 상원의장직을 겸하지 않는다.[5] 룰라는 대학 입학을 하지 못했고 카페 필류는 졸업을 하지 못했다. 다만 룰라는 2011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