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트 2세(이메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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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차 이메레티 왕국 26대 군주.
2. 생애[편집]
2차 이메레티 왕국 22대 군주 기오르기 9세와 므제카툰의 장남이다. 누이로 에렐네, 므제카툰, 다레얀이 있었다. 1784년 4월 솔로몬 1세가 사망했다. 솔로몬 1세는 사망하기 1년 전에 카르틀리-카헤티 연합 왕국의 군주 헤라클리오스 2세의 손자이자 자신의 조카인 다비트 아르칠로비치를 후계자로 삼았다. 솔로몬 1세가 사망한 후 그가 섭정을 맡았으나, 1784년 5월 4일 밍그렐리아 공작 카지아 2세 다디아니 등 일부 귀족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메레티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즉위 후 러시아 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대귀족의 특권을 제한하려 했다. 이에 많은 이메레티 귀족들이 반감을 품었다. 1789년, 헤라클리오스 2세는 손자 다비트를 왕좌에 앉히기 위해 이메레티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1789년 6월 10일 맛호지 전투에서 이메레티 귀족들의 배신으로 패배한 그는 왕위를 잃고 아할치헤로 도피했다. 다비트 아르칠로비치는 왕국의 수도 쿠타이시에 입성한 뒤 솔로몬 2세로서 즉위했다.
1790년, 그는 솔로몬 2세를 무찌르기 위해 투르크군과 함께 이메리티로 진군했다. 한때 수도 쿠타이시를 장악하고 이메레티 왕위에 복귀했으나, 1791년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은 솔로몬 2세에게 패배하고 오스만 제국에 망명했다. 이후 헤라클리오스 2세의 중재를 통해 솔로몬 2세와 화해하고 이메레티로 귀환하여 많은 영지를 받았다. 하지만 왕위에 복귀할 야심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1792년 다케스탄에서 용병을 고용해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또다시 패배하고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다. 1795년 아할치헤에서 천연두로 사망했다.
그는 이메레티 대귀족 마무카 오르벨리아니의 딸 안나 오르벨리아니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았다. 아들 콘스탄틴은 러시아 제국 육군 소장을 역임했으며, 장녀 타마르는 구리아 공작 시몬 에리스타비와 결혼했다. 차녀 므제카툰은 조지아 귀족 시몬 체레텔리와 결혼했다. 한편 사생아로 바크탕과 아나스타샤를 두었다. 바크탕은 1820년 러시아의 조지아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했고, 아나스타샤는 다비트 아지아슈빌리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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