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r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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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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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사상구)
제18대
장제원

제19대
문재인


제20-21대
장제원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文在寅 | Moon Jae-in


파일:President-Moon.jpg

출생
1953년 1월 24일 (71세)
경상남도 거제군 동부면 명진리
(現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명진1길 27)
사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2길 30[1]
재임기간
제19대 대통령
2017년 5월 10일 ~ 2022년 5월 9일
서명
파일:문재인 대통령 서명.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2] | 파일:트위터 아이콘.svg[3]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4]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5]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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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남평 문씨[1]
등록기준지
경상남도 부산시 영선동4가 110
(現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4가 110)[2]
부모
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3][4]
형제자매
누나 문재월
남동생 문재익
여동생 문재성, 문재실
배우자
김정숙
자녀
아들 문준용, 딸 문다혜
학력
남항국민학교 (졸업)
경남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법률학 / 학사)
병역
파일:대한민국 육군기.svg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5]
종교
천주교 (세례명: 티모테오)[6][7]
신체
172cm[8], 66kg, B형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9]
약칭




1. 개요
2. 약력
3.1.1. 임기 마지막 날 관련 문제
8. 가족 관계
9. 선거 이력
10. 소속 정당
11. 어록
11.1. 제19대 대통령 취임사
11.2. 제19대 대통령 퇴임사
12. 각종 타이틀
13. 저술 활동
13.1. 저서
13.2. 공저
14. 참여 음반
15. 둘러보기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취임 선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2. 약력[편집]


  • 1965.2. 남항국민학교 졸업[7]
  • 1968.2. 경남중학교 졸업
  • 1971.2. 경남고등학교 졸업[8]
  • 1972.3.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법률학과 수석 입학[9]
  • 1975.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
  • 1975.9. 육군 제39보병사단 신병교육대 기초군사훈련 수료
  • 1978.5.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 병장 만기 전역[10]
  • 1980.2. 경희대학교 법률학과 졸업
  • 1980.10.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 1982.8. 제12기 사법연수원 수료 및 법무부장관상 수상
  • 1982.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 변호사
  • 198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특별강사
  • 1985. 부산 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 1987. 부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 198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회원
  • 1988.5.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및 부산지사장
  • 1988.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
  • 1989.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 1990. 부산세관의 고문세관원 재정신청사건 공소유지 담당변호사
  • 199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경남지부 대표
  • 1994. 노동자를 위한 연대 노동사무소장
  • 1995. 부산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1995.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 1996. 민주 사회를 위한 부산ㆍ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 1996. 부산 YMCA 이사
  • 1997. 부산민주공원 설계 현상공모 제2차 심사위원장
  • 2001.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 2001. 부산광역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
  • 2002.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
  • 2002.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이사장
  • 2002.11. 제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부산선거대책본부장
  • 2003.2. ~ 2004.2.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참여정부)
  • 2004.3.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피청구인 대리인단 간사
  • 2004.5. ~ 2005.1. 초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참여정부)
  • 2005.1. ~ 2006.5. 제3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참여정부)
  • 2006.1.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
  • 2007.1.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 취임식 경축특사
  • 2007.3. ~ 2008.2. 제29대 대통령비서실장[11] (참여정부 / 장관급)
  • 2007.8.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
  • 2008.3.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 2009.5.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장
  • 2009.9. 아름다운 봉하 감사[12]
  • 2009.9.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겸 운영위원장
  • 2009.10. 하반기 재보궐선거 송인배 국회의원 후보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 2010.5.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김정길 부산광역시장 후보 명예 선거대책위원장
  • 2010.8. 제2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 2011.4. 상반기 재보궐선거 이봉수 국회의원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13]
  • 2011.10. 하반기 재보궐선거 이해성 부산동구청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후원회장
  • 2011.10. 하반기 재보궐선거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후보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 2011.11. 혁신과통합 상임대표
  • 2011.11. 시민통합당 지도위원
  • 2011.12.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2.3.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통합당 특별 중앙선거대책위원장
  • 2012.5.30. ~ 2016.5.29.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사상구 / 민주통합당)[14]
  • 2012.9.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 2012.11.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대행[15]
  • 2013.5. 민주당 상임고문
  • 2014.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중앙선거대책위원장
  • 2014.7. 새정치민주연합 원전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4.9.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
  • 2015.2. 제2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2015.12. 새정치민주연합 인재영입위원장
  • 2015.12. 초대 더불어민주당 대표[16]
  • 2015.12.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 2016.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2017.3.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 2017.5.10. ~ 2022.5.9.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3.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53년 경상남도 거제군에서 출생해 경남고등학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부산의 4대 재야 인권변호사[17]로 활약하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동업한 친구 노무현과의 인연으로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후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봉하마을을 근거지로 정치와 거리를 두며 생활하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2대 이사장으로 활동하였고, 2011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치의 길에 뛰어들게 된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부산광역시 사상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안철수와 함께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야권 양대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후 경선과 단일화 과정을 거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했으나 최종 48.02%를 득표해 3.53%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다. 이후 의원직을 유지하며 평당원으로 잠행을 이어오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2대 당대표로 선출, 제20대 총선을 이끄는가 했으나 연이은 재보궐선거 패배와 극심한 당내 계파갈등으로 인한 대대적인 야권 분열이 이어지면서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개정한 뒤 김종인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당대표직에서 사퇴한다.

이후 20대 총선 국면에서 물밑에서 여러 지원을 하며 총력을 기울였고, 야권의 일방적인 참패가 예상되었던 해당 선거에서 대반전으로 새누리당이 패배하는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옴으로서 정치생명 최대의 위기를 극복한다.[18] 그 영향으로 지지를 회복하여 2016년 하반기부터 야권의 압도적인 대세 대권주자로 인식되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 조기 대선으로 치러진[19] 제19대 대통령 선거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41.08%의 득표율[20]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음 날인 5월 10일 대통령직에 곧바로 취임한 뒤 2022년 5월 9일까지 국정을 수행하였다.


3.1. 문재인 정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 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1. 임기 마지막 날 관련 문제[편집]


궐위로 인한 선거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가 취임일 0시에 시작되지 않아서 발생한 해프닝이다.

민법 제157조 (기간의 기산점) 기간을 일, 주, 월 또는 연으로 정한 때에는 기간의 초일은 산입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 기간이 오전 영시로부터 시작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원칙적으로 기간계산법이 따로 규정되지 않은 법령상의 모든 기간 계산은 위의 민법 157조를 적용받는데, 이 규정을 준용한다면 2017년 5월 10일 8시 9분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계산에는 초일(첫날)인 2017년 5월 10일이 산입되지 않으므로, 2017년 5월 11일부터 5년을 셈하게 되어 2022년 5월 9일 24시(10일 0시)가 아니라 2022년 5월 10일 24시(11일 0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만료시점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2018년 초에 문재인 전 대통령 스스로 제안한 개헌안에는 본인의 임기를 2022년 5월 9일까지로 정해 놓았던 사실이 있다(부칙 제3조). 개헌안 자체는 좌초됐으나 이는 청와대 스스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가 5월 9일까지라고 봤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상술한 임기 마지막 날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확실히 못 박아둔 것일 수도 있고, 아예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개헌안이었을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게 된다면 추후 이 마지막 하루에 대한 법적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2021년에 다시 이 문제가 언론을 통해 불거졌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 해당 기사에서 인터뷰한 법조인들은 대부분 이미 취임 당일부터 권한 행사가 시작되었으므로, 초일 불산입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5월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검토 끝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만료일을 2022년 5월 9일 24시로 확정지었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0일부터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후 2022년 5월 9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상적으로 퇴임했고 5월 10일 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를 시작했다.


4.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 정부/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비판과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비판과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여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가족 관계[편집]


가계에 대한 대통령의 회고를 담은 기사.

  • 아버지: 문용형 (1920~1978)
  • 어머니: 강한옥 (1928~2019)
    • 누나: 문재월 (1949~) - 주부.
    • 여동생: 문재성 (1955~) - 주부.
    • 여동생: 문재실 (1957~) - 부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았다고 한다.
    • 남동생: 문재익 (1958~)
상선사관.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34기 해사수송과학부 졸업 후 항해사 일을 시작, STX팬오션에서 선장으로 근무 중 사고가 생긴 뒤 SK로 이직하게 된다. 2020년 현재도 상선 선장을 하고 있으나, 2018년에 SK에서 정년퇴임한 후 SM그룹 계열로 옮겼다. 현재 벌크선을 운항하고 있다고 한다.
건국대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과를 나와서 게임 회사에 재직했으나 2018년 퇴직했다. 이전엔 공공 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에 있었는데. 한때 문준용의 공공기관 취업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이후 노동부 감사 결과 문준용의 고용정보원 채용에 특혜나 불법 행위가 없었음이 밝혀졌다. 자세한 것은 문준용 취업특혜 논란 참조.
2010년 3월 결혼. 주부. 원래 직업은 요가 강사.[21]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 때 자기 아들과 함께 등장했다.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 이후 정의당에 입당하였다. # 2018년에 재산을 정리하고 남편인 서창호 씨, 자식과 함께 태국으로 이주를 했는데, 임기 도중에 대통령의 가족이 해외로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지라 야당에서는 그 이유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22]기사, 기사2

자식 교육에 있어서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아들에게는 다소 엄하고 딸에게 약했다고 한다. 김정숙 여사가 “딸에게 뭐든지 다 괜찮다고 하니까 속이 터진다”라고 말할 정도. 반면 아들인 문준용은 어렸을 때는 콩을 안 먹고 편식한다는 이유로 아버지한테 한 대 맞았다고 한다. 동시에 당시 일반적인 아버지상과 달리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진로 결정은 전적으로 자식의 결정에 맡기며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말 대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문준용이 어린 시절 좋아하던 비디오 게임도 같이하고, 초등학교 2~3학년 때 즐겼던 젤다의 전설 가이드북과 영상이 모두 영어로 돼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영문으로 적힌 수십 페이지의 게임 설명 밑에 한 줄 한 줄 한글로 번역을 해주었다고 한다. #

문민정부 이래로 역대 대통령들의 형제/자매, 자식들이 좋던 나쁘던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경우가 많은데, 문재인 대통령의 친인척은 자녀들을 제외하고는 대중에 알려진 인물이 많지 않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서 정·재계 유력 인사를 한 명도 찾기 힘들 정도로 친가나 외가 할 것 없이 가계가 평범하다.

남동생 문재익(文在益)[23] 씨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책 ‘문재인 스토리’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 문재익이 일하고 있었던 선사에서 배려해서 문재익을 해상직에서 육상직의 고위직으로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문재익 선장에게 연락해서 "선사에서 그런다고 그 선사에 도움을 주는 일 따윈 없을 테니, 다시 선장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라고 딱 잘라 말했고, 결국 문재익은 선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문재익 본인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문재익 선장이 만취한 상태에서 형 이야기를 하며 그날의 서운함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서야 자기가 모시던 선장이 문재인의 동생이었단 사실도 알았다고 한다. #


9.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상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65,336 (55.04%)
당선 (1위)
초선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14,692,632 (48.02%)
낙선 (2위)
[24]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13,423,800 (41.08%)
당선 (1위)
[25][26]

역대 선거 벽보


10.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2 - 2003
16대 대선 노무현 후보
부산 선대위원장

[[무소속|
무소속
]]

2003 - 2006
청와대 정무직 임명으로
인한 탈당[27]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6 - 2007
입당[28]

[[무소속|
무소속
]]

2007 - 2011
청와대 정무직 임명으로
인한 탈당[29][30]

[[시민통합당|
파일:시민통합당 로고타입.svg
]]

2011
정계 입문
창당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3
합당[31]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5
합당[32]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5 - 현재
당명 변경
정계 은퇴


11. 어록[편집]


사람이 먼저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의 캐치프레이즈[33]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中[34]


저를 키운 건 8할이 가난입니다. 가난과 싸우며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웠습니다. 가난이 고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난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시련을 시련으로 남겨놓지 마십시오. 시련에서 시작해보십시오.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옵니다. 우리가 권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공권력이나 국가 권력이라는 말을 쓰는데,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와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나머지는 다 권한에 대한 겁니다. 대통령의 권한, 정부의 권한, 국회의 권한. 국민의 권력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 되는 거죠.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174쪽 中


가짜 보수 정치세력. 이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 버립시다. 여러분.

박근혜 퇴진 결의 대회 2016. 11. 28. 연설 중 中


새누리당이 국민의 심판을 모면하고 다시 집권하려면 반드시 저를 밟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역할, 끝까지 충실하게 해낼 것입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6. 12. 02. 출연 인터뷰 중 中


정치는 타협이다. 우리 인생사가 타협이다. 어떻게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만 살 수 있나.

그러나 원칙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시사인 인터뷰, 2016. 12. 27.


세상이 바뀌길 원하는 사람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친노, 친문이다. 이제 새 시대의 첫차는 저의 몫으로, 저의 꿈으로 남았다. 그것이 그 분이 남긴 숙제다.

시사인 인터뷰, 2016. 12. 27.


그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가장 최선의 복수다.

<시사인 인터뷰>, 2016. 12. 27.


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저서 운명


오늘부로 종북의 의미를 새로 규정한다. 군대 피하는 사람들이 종북이다. 방산비리 사범들이 종북이다. 국민을 편갈라서 분열시키는 가짜 보수 세력이 종북이다. 특전사 출신인 저보고 종북이라는 사람들이 진짜 종북이다. #

2016년 12월 26일 국회도서관에서


제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민으로나 당원으로서 언제든지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할수 있습니다. SNS 공간상으로 할수도 있고 또는 문자를 보낼수도 있고.. 그런 일들을 마치 무슨 빠 하면서 폄하 하는것을 보고 저는 늘 미안했습니다. 저는 그러려니합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비판하는 글들은 열심히 보게 되지만 욕부터 앞서나와 있으면 그냥 넘겨 버리거든요. 그래서 자기글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도 정정당당한 비판을 하자,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독려하며 발언한 내용 中


착함을 평생 동안 하나의 원칙처럼 유지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단히 강한 것이다.

대선주자 국민면접, 2017. 02. 12.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중략)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7차 포럼, 2017. 02. 16.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며,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다.

인터뷰, 2017. 02. 20.


젊은 남녀들 간에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들이고 예전에 난민 문제나 소수자 문제(가 있었던 것 처럼), 늘 갈등이 있기에 마련이죠.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 때문에 지지도가 격차 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신년 기자회견 中 20대 남녀간 지지도 격차가 난다는 질문에 답변, 2019. 1. 10.


'대인춘풍 지기추상’, 자신에겐 엄격하면서 부하들에게선 늘 ‘순진 형님’으로 불린 부하 사랑 모습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이 바라는 참군인의 표상이었습니다. (중략) 조국은 ‘작은 거인’ 이순진 대장이 걸어온 42년 애국의 길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순진 전 합동참모의장 전역시 축사 中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당신이 했던 그 말,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사 中


중국이 법과 덕을 앞세우고 널리 포용하는 것은 중국을 대국답게 하는 기초입니다.

(중략)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입니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랍니다.

인류에게는 여전히 풀지 못한 두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항구적 평화이고 둘째는 인류 전체의 공영입니다. 저는 중국이 더 많이 다양성을 포용하고 개방과 관용의 중국 정신을 펼쳐갈 때 실현 가능한 꿈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입니다.

2017.12.05. 방중 도중 열린 베이징대 연설 中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입니다.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습니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입니다.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99주년 3·1절 기념사 中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국가 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70주기 제주 4.3 사건 추념사 中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함께 선언하였습니다. 긴 세월 동안 분단의 아픔과 서러움 속에서도 끝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결코 뒤돌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남북의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북 모두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우리의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판문점 선언 기자회견 中.


노벨상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

이희호 여사의 축전[35]

을 받고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천 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그림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갑시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능라도 경기장,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 中


우리 모두 군인이거나 군인이었거나 군인의 가족입니다.

건군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에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역량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우리는 역경을 오히려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낼 것입니다.

2019년 8월 2일,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열린 제31차 임시 국무회의에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우리 정부는 성장률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기간에 부동산 가격을 잡아 왔고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의 전월세는 과거에는 정말 ‘미친 전월세’라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정부하에서 전월세 가격은 안정돼 있지 않느냐.

2019년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택 공급의 확대도 차질 없이 병행하여 신혼부부와 1인 가구 등 서민 주거의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2020년 1월 7일 신년사


조국 전 장관의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고초, 그것만으로도 저는 아주 크게 마음에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 (#동아, #한겨레, #YTN)


한국이 ‘코로나’에 아직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하여 일상과 방역이 공존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산발적인 집단 감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외에서 계속되고 있는 세계적인 대유행이 여전히 위협적입니다. 치료제와 백신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새로운 대유행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협력하는 힘은 바이러스가 갖지 못한 인류만의 힘입니다. 코로나는 인류 공동의 가치인 ‘자유의 정신’까지 위협하지만, '자유의 정신’에 기반한 ‘연대와 협력’이야말로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2020년 5월 18일, 세계보건총회 초청 연설 중.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합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뜻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략) 특히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美 하원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담은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시민운동은 시민의식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년 6월 8일, 수석 보좌관 회의 모두발언 중.


국민 여러분,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정비되어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을 뽑고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많은 곳에서 행사하지만,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위해 존재하고, 언제나 주권자의 명령에 부응해야 합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들이 늘 가슴에 새겨야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소수여도 존중받아야 하고, 소외된 곳을 끊임없이 돌아볼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2020년 6월 10일, 6·10 민주 항쟁 기념식에서


“지금 최고의 민생 과제는 부동산 대책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동자금은 사상 최대로 풍부하고 금리는 사상 최저로 낮은 상황에서 정부는 최선을 다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며, 서민들과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2020년 7월 6일 수석보좌관회의


위기 극복을 넘어, 위기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정부의 남은 과제입니다.

2021년 5월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


정부는 유한하지만, 역사는 유구합니다.

2022년 1월 3일, 2022년 신년사에서


마지막 답변입니다.

저를 사랑한다는 따듯한 응원을 보내주신 청원도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원인의 말씀처럼 오늘의 대한민국은 지난 70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로서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문화, 보건의료, 외교와 국제협력까지 다방면에서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강국이 됐습니다. 이와같은 놀라운 국가적 성취는 모두 국민들께서 이룬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히려 국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5년동안 언제나 과분한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셨고 위기와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정부를 믿고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퇴임 이후에도 국민의 성권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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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9일, 마지막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


11.1. 제19대 대통령 취임사[편집]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취임사

국민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라입니다. 또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함께 선거를 치른 후보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구속 앞에서도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우리국민들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른 지지로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 권력행사를 하지 못하게 견제장치를 만들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안보 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국방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 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낱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 대통령선거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졌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습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7년 5월 10일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해 주십시오. 저의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11.2. 제19대 대통령 퇴임사[편집]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퇴임사

국민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며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응원하겠습니다.

지난 5년은 국민과 함께 격동하는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연속되는 국가적 위기를 헤쳐온 시기였습니다. 힘들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위기 앞에 하나가 되어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은 위기 속에서 더욱 강해졌고, 더 큰 도약을 이뤘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격도 높아졌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며, 선도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저는 위대한 국민과 함께한 것이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저의 퇴임사는 위대한 국민께 바치는 헌사입니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헌정질서가 무너졌을 때 우리 국민은 가장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그리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탄핵이라는 적법절차에 따라, 정부를 교체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전 세계가 한국 국민들의 성숙함에 찬탄을 보냈습니다. 우리 국민은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 민주주의에 희망이 되었습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요구한 촛불광장의 열망에 우리 정부가 얼마나 부응했는지 숙연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다 이루지 못했더라도,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촛불의 염원은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자 동력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성공시켜 냈습니다. 세계가 또다시 대한민국에 열광했습니다. 임기 초부터 고조되던 한반도의 전쟁위기 상황을 대화와 외교의 국면으로 전환시키며,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 시대에 대한 희망을 키웠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 만은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의 의지만으로 넘기 힘든 장벽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벽입니다. 평화는 우리에게 생존의 조건이고, 번영의 조건입니다. 남북 간에 대화 재개와 함께 비핵화와 평화의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로 인한 위기를 온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극복해 낸 것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소·부·장 자립의 기회로 삼았고,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기의 침체 속에서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제조업이 가진 세계적인 경쟁력 덕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문제해결의 성공방식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정부 부처를 뛰어넘는 협업체계, 대·중소 기업과 연구자들의 협력, 정부의 적극적인 R&D투자와 규제를 허문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온 국민의 격려와 성원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 성공의 방식은 뒷날코로나 진단키트를 개발할 때도, 마스크 생산을 빠르게 늘릴 때도, 백신 접종용 특수 주사기의 효율을 높일 때도, 요소수 부족사태를 해결할 때도 똑같이 작동하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마지막으로 받은 코로나19 대처상황보고서는 969보였습니다. 국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판명된 2020년 1월 20일부터, 휴일이나 해외 순방 중에도 빠지지 않고 매일 눈뜨면서 처음 읽었고, 상황이 엄중할 때는 하루에 몇 개씩 올라왔던 보고서가 969보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속에는 정부와 방역진, 의료진의 노고와 헌신이 담겨있습니다. 오랜 기간 계속된 국민의 고통과 고단한 삶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국민도, 정부도, 대통령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기 때 더욱 강해지는 우리 국민의 높은 역량에 끊임없이 감동받았습니다. 우리 정부 동안 있었던 많은 자랑스러운 일들이 대부분 코로나 위기 상황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의 저력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함께 코로나 위기를 겪고 보니, 대한민국은 뜻밖에 세계에서 앞서가는 방역 모범국가였습니다. 선진국의 방역과 의료 수준을 부러워했었는데, 막상 위기를 겪어보니 우리가 제일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약하고 뒤떨어졌다고 생각해온 많은 국민들이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며 자존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한국은 가장 빠르게 경제를 회복했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5천 달러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한류 문화는 전 세계가 코로나로 고통받을 때 더욱 돋보였고, 세계인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우리 정부 코로나 위기 속에서 선언한 한국판 뉴딜은 한국을 디지털과 혁신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강국으로 각인시켰고, 그린 뉴딜과 탄소중립 선언은 기후위기 대응과 국제협력에서 한국을 선도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은 어느덧 민주주의, 경제, 수출, 디지털, 혁신, 방역, 보건의료, 문화, 군사력, 방산, 기후위기 대응, 외교와 국제협력 등 많은 분야에서 선도국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낮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위기가 닥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어떤 위기라도 이겨낼 것이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성공의 역사는 온갖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것이기에 더욱 값집니다.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후 지난 70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2차 세계대전 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부정 못 할 빛나는 대한민국의 업적이며 자부심입니다. 우리 정부도 국민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선도국가로 도약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격과 자부심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게 되어 매우 감사한 마음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위기에 강한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도약했습니다.

그 주역은 단연 우리 국민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로부터 인정받고, 부러움을 받는, 그야말로 ‘위대한 국민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국민으로서 높아진 우리의 국격에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저는 위대한 국민과 함께 성공하는 대한민국 역사에 동행하게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위대한 국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정부에서도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길 기대합니다. 이전 정부들의 축적된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더 국력이 커지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선거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며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갈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성공의 길로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5월 9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12. 각종 타이틀[편집]


  • 한 정부에서 3번이나 수석비서관에 임명된 유일한 수석비서관.[36]
  • 유일한 대통령비서실장 출신 대통령.
  • 3당 합당 이후 최초로 부산광역시에서 낙선 없이 당선된 민주당계 정당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37]
  • 최초의 사상구 민주당계 정당 출신 국회의원.
  • 궐위로 인한 선거로 선출된 첫 대통령.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6공 대통령 중 노태우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으며[38], 현행법상의 이유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대신 출범시켰다.[39]
  •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40]
  • 민주당계 정당 대선 후보 중 최초로 울산광역시에서 1위를 기록한 대통령.[41]
  • 임기 중 2회 이상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유일한 대통령.[42]
  • 최초의 병장 전역 및 특전사 출신 대통령.[43]
  • 재임 중 최초로 GP에 방문한 대통령. 관련 비디오[44]
  • 대한민국 대통령 신분으로 백두산에 오른 첫 번째 대통령.
  • 바티칸에서 연설을 한 첫 번째 대통령.
  • 북한에서 대중에게 연설한 최초의 대통령
  • 일반인 애청자들과 같은 방법으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첫 대통령.[45]
  • 최초의 캠퍼스 커플 영부인을 둔 대통령.[46]
  • 재임 중 부모상을 당한 첫 번째 대통령.[47]
  • 최초의 문씨 대통령.[48]
  • 대한민국에서 올림픽 - 패럴림픽 개회 선언을 한 두 번째 대통령.[49]
  • 국가대표 원정 경기를 최초로 직관한 대통령.[50]
  • 각종 선거에서 최초로 사전투표를 통해 투표권을 행사한 대통령.[51]
  • 건군 이래 최초로 사관학교설치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군사학교 임관식에 임석상관으로 참석한 대통령.[52]이자 건군이래 대한민국에 세워진 5개 사관학교의 졸업 및 임관식에 최초로 전부 참석한 대통령
  • 미국 역사상 최초로 명예훈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연설한 외국 정상[53]
  • 국군의 날 행사를 단 한번이라도 계룡대에서 치른 적이 없는 첫 대통령.[54]
  • 건군이래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전투기 비행탑승으로 행사에 입장한 대통령[55]
  • 역대 대통령 중 유이하게 대중매체에서 등장한 적이 없는 대통령.[56][57]
  • 이명박과 더불어 임기 중 두 명[58]의 전직 대통령의 장례를 지켜본 대통령[59]
  •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정권교체에 성공했으나 정권연장에 실패한 최초의 대통령.[60]
  • 따로 초상화 제작 의뢰를 하지 않은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61]
  • 리얼미터 조사 기준 1987년 직선제 이후 처음으로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보다 국정 평가 전체 긍정률이 높고, 마지막 임기 연차에도 40%대를 기록하였으며, 소속 정당 지지율보다 업무수행 긍정 평가가 높은 첫 대통령.
  • 청와대에서 국정을 수행한 마지막 대통령.[62][63]
  • 한국갤럽 조사 기준 취임[64]과 퇴임 지지율[65], 그리고 재임 당시 평균 지지율[66]이 가장 높은 대통령.
  • 한국갤럽 조사 기준 유일하게 퇴임 당시 차기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더 높은 대통령.[67]
  • 6공 출범 이후 임기 도중 5년을 모두 같은 당명으로 활동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68]
  • 임기 도중 탈당하지 않고 끝까지 당적을 유지한 최초의 민주당계 정당 출신 대통령.[69]
  •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전직 대통령들 중 본인과 직계가족•친인척 모두가 법정구속되거나 기소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70][71]


13. 저술 활동[편집]



13.1. 저서[편집]


  • 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2011년 6월 15일 #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13일 #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
  •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17일 #
  •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김영사, 2022년 3월 28일 #


13.2. 공저[편집]


  • 공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
  • 공저,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
  • 공저, 《운명에서 희망으로: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하다》, 다산북스, 2017년 3월 23일 #


14. 참여 음반[편집]


새시대 통일의 노래 - One Dream One Korea
2015.9.21.

파일:external/image.melon.co.kr/2641170_org.jpg

트랙
곡명
작사
작곡
편곡
01
One Dream One Korea (Original Ver.)
김이나
김형석
김형석, Zigzagnote

15. 둘러보기[편집]













[1] 문재인/자택 참조.[2]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는 쓰지 않고 있다. 대통령 취임사까지만 올라온 상태.[3] 문재인의 이야기를 올리는 소셜 미디어.[4]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해시태그가 많이 붙어 있기도 했으나 당선된 이후에는 해시태그 없이 그냥 사진과 글만 올라오다가 임기가 지나면서 익숙해졌는지 해시태그가 늘고 있다. 하지만 임기 말에는 그냥 대통령의 글을 올리는 소셜미디어의 역할을 하였다. 퇴임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양산 생활을 업로드하는 창구로 쓰이고 있다.[5] 2017년 6월 7일 이후로 영상이 안 올라오고 있다.[6] 대통령 취임식 하루 뒤인 2017년 5월 11일부터 포스트 업데이트가 중단되었다.[7] 현 남항초등학교.[8] 김영삼이 그의 선배이다. 따라서 경남고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두명이나 배출해낸 유일한 일반계 고등학교가 되었다.[9] 종로학원에서 1년 재수해서 1972년에 입학했다.[10] 이 당시 여단장이 전두환 준장이었다.[11] 2007.3.12. ~ 2008.2.24.[12] 봉하마을을 관리하는 재단으로, 봉하재단이라고 불린다.[13] 야4당 공동 선대위였다.[14]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정치 신인 손수조를 꺾고 당선된다. 그의 정치적 지위 등을 고려했을때 싱거운 당선이었다.[15] 당시 이해찬 전 대표가 지도부 총사퇴로 물러나자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대표직을 대행하였다.[16] 새정치민주연합손혜원 전 홍보위원장 주도하에 당명을 절차에 따라 바꾼 것이기에 자동으로 첫 대표가 되었다.[17] 문재인, 노무현, 김정길, 이흥록.[18] 다만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정작 문재인 본인은 호남 표심을 위해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에서 은퇴 하겠다는 승부수를 두었음에도 호남에서 완패를 당한 상태였다. 때문에 이에 대한 출구전략을 고심 하기도 했었다.[19] 대한민국 헌법 71조 대통령이 사고나 궐위가 되었을 경우 60일 이내에 대통령 후임자가 선출되어야 한다에 의거.[20] 득표수 1,342만 3,800표.[21]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7월 인도에 국빈 방문 당시 밝힌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그 전 달인 6월에 해외 이주를 한 상태이기에 더 이상 강사가 아니었다.[22] 문다혜 부부의 아들인 서모 군의 ‘학적변동 관련 서류’에는 2018년 7월 10일 서울 구기동 빌라를 매각한 후 같은 달 11일 서 군의 초등학교에 학적 변동 관련 서류를 낸 것으로 되어 있다. [23]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파일:문재인 일가 족보.png[24] 역대 대선 낙선자 중 최고 득표율.
역대 대선 낙선자 중 득표수 2위. (1위는 20대 대선이재명)
[25]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
역대 대선 당선자 중 2위와 최다 표차 당선. (557만 951표)
[26]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이명박에 이어 임기내내 당적을 유지한 두번째 대통령.[27] 청와대 비서관은 당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임명 이후 탈당했다.[28] 2007년 기준 당적 보유 기사 민정수석 퇴임 이후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탈당 이후에도 당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보좌관(특보)은 청와대 정무직이 아니기 때문에 당적 보유가 가능하다.[29] 대통령 비서실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임명되면서 다시 탈당했다.[30] 다만 대통령 비서실장 임기를 마친 후에도 당적을 가지는 일은 없었는데 이건 당시 민주당 계열이 18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으로 합당하면서 반노세력이 새 주류가 되었기 때문.[31] 민주당과 신설 합당.[3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3]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선거 구호를 넘어 정치인 문재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되었다. 오죽하면 어린 아이들이 "사람이 먼저다 해주세요."라고 할까.[34] "사람이 먼저다."와 함께 정치인 문재인의 가장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 거의 쓰이지 않는 "사람이 먼저다."와 달리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35] "노벨상 타시라."[36] 민정수석 2회, 시민사회수석.[37] 4년 후 20대 총선연제구김해영이 문재인의 뒤를 이어 부산에서 n수 없이 바로 당선된 국회의원이 되었다. 다음 총선에서는 재선에 실패하고 낙선했다.[38] 첫 출범은 노태우 - 김영삼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39]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일반 선거로 당선된 당선인만이 출범할 수 있으므로, 궐위로 인한 선거로 취임한 문재인은 출범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40] 557만 표차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2위는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약 531만 표 차로 눌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민주화 이후뿐 아니라 정부 수립 이후 최다의 표차다. 제4대 대통령 선거는 2위가 없는 단독후보였던 데다 부정선거로 무효처리되기까지 했으므로 애초에 논외. 반대로 후임 대통령인 윤석열은 역대 최소 표차(2위 이재명24만 7,077표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직선제 이전까지 포함하면 두번째로 적은 표차.[41] 부산의 경우 87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통일민주당 후보로 1위를 차지한 이후 약 30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1위를 차지하였다. 참고로 문재인은 동남 지역으로 합산해도 87년 이후 30년 만에 승리했다. 울산(당시 광역시가 아닌 경상남도 소속)의 경우 87년에도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게 승리하여 민주당계 정당에게는 불모지였으나, 19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손을 들어주었다.[42]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1회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적은 있으나, 임기 막바지에 이벤트성으로 열린 회담이라 지속적인 남북대화로 가지는 못했다.[43] 최초의 현역병사 출신은 그의 친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첫번째 주인공이다. 다만 노무현은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파병 나간 일반병들이 분대장인 병장을 달고 전역한 데다가 그 당시에는 아직 부대에 병장 숫자에 대한 제한이 있어서 상병으로 만기전역했기 때문에 병장 출신 대통령은 문재인이 최초이다.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도 특전사에서 여단장을 지내는 등 특전사에서 근무했지만, 그 둘은 장성까지 지낸 직업군인이며(대장을 달려면 특전사 복무 경력이 필요하다) 오랜 군인 시절 동안 거쳐왔던 많은 부대들 중 하나가 특전사였던 거였지 딱 특전사 출신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특전사에서만 근무했던 특전사 출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니까 특전동지회에 가입할 수 있는 대통령은 문재인이 최초인 것이다.[44] 현역 복무 당시 근무 투입으로 GP에 간 것까지 포함하면 친구인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이다.[45] 2019년 9월 11일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통해 택배 기사들을 상대로 추석 인사를 전했으며, 진짜 문 전 대통령이 맞냐며 청취자들의 인증 요청이 들어오자 전화 연결을 하였다.[46] 대선에서 맞붙었던 후보들 중에서 CC는 안철수가 유일하다. 유승민은 아내 오선혜와 과거부터 알던 소꿉친구였고 대학도 달랐으며, 홍준표는 자신이 재학하던 고려대학교국민은행 안암동지점의 고졸 행원 이순삼을 고객과 행원으로 처음 만났는데, 그 지점에서 일하는 고대 선배에게 부탁하여 지인 찬스로 데이트를 하고 깊어진 사이였다. 심상정은 노동운동 중에 남편 이승배를 만났다.[47] 2019년 10월 29일에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모친상을 당했다. 부친은 이미 작고.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메리놀병원은 부산가톨릭의료원 예하 병원으로, 계열 병원으로는 부산성모병원이 있다. 과거 성분도병원도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일 때 부산성모병원과 관련이 있었으나 부산성모병원으로 통합. 독실한 천주교 신자들인 문재인 일가에서 천주교 방식으로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병자성사와 관련이 깊다) + 부산 영도에서 가장 가까운 천주교 병원이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모친의 시신은 임종 이후 천주교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성당으로 옮겨졌다. 인근에 장례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또 다른 주교좌인 중앙성당이 있음에도 남천성당을 선택한 이유는 딸인 문다혜의 결혼식(혼인성사)을 이곳에서 한데다 대통령 집무를 위한 공간이 필요해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신선성당에는 장례시설이 없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 취임 전에 부모상을 당했다. 다만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 각각 모친상과 부친상을 당했다.[48] 문재인 이전까지 문씨 대선 후보는 17대 대선문국현 후보가 유일하다.[49] 첫번째는 서울올림픽 개회선언을 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50] 러시아 국빈방문 중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 VS 멕시코 경기를 직관한 후 선수들을 격려했다. 홈팀 직관은 여러 번 있었다.[51] 본인 집권 중에 치뤄진 모든 선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다른 대통령들은 본선거일에 투표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에 사전투표가 도입된 것은 2013년으로 본투표일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사전투표에라도 참여하여 한 표를 행사하라는 메시지이다.[52] 2021년에 국군간호사관학교설치법에 따라 설치된 국군간호사관학교 61기 임관식에 임석상관으로 참석하였다. 코로나-19 창궐 후 중요해진 간호장교의 역할을 반영한 듯 하다.[53] 2021년 한미정상회담 진행 과정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최초로 진행한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연설도 했다.[54] 전쟁기념관에서 콘서트 식으로 개최한 행사를 제외하면 각 군에서 상징성이 있는 곳에 방문하여 행사를 열었기 때문이다 (해군 2함대, 공군 11비, 육군 특전사, 해병 1사단). 게다가 이곳에서 보이는 시범들 또한 행사를 가장한 군사훈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55] 서울ADEX 2021 FX-50 후방석 탑승.[56]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인시대공화국 시리즈에 종종 출현한 적이 있고 윤보선 전 대통령, 최규하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도 공화국 시리즈에 출현한 적이 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화 변호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영웅시대에 각각 등장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드라마나 영화같은 대중매체에서 연기를 맡은 배우가 없다. 다만 제7공화국이 출범되고 공화국 시리즈가 제6공화국을 주제로 다시 만들어진다면 등장할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현 상황으로 봤을 때에는 현직 대통령으로 지내는 기간 중 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57] 20대 대통령인 윤석열 역시 아직 대중매체에서 등장한 적이 없다.[58] 전두환노태우. 모두 2021년 사망.[59] 전노의 사망 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김대중노무현이 서거하여 유일하게 이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박정희 재임 시절 이승만, 노태우 재임 시절 윤보선, 노무현 재임 시절 최규하, 박근혜 재임 시절 김영삼이 각각 서거하였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재임 중 사망했기 때문에 장례가 진행될 당시에는 대통령직이 공석이었다. 공교롭게도 전직 대통령 2명이 서거한 해가 모두 소띠 해이며(2009년 기축년, 2021년 신축년), 뒤에 사망한 대통령이 먼저 사망한 대통령의 전임이었다.[60] 다만 정권연장에 실패한 것과 별개로 지지율은 말년까지도 40% 대를 맴돌며 레임덕 없이 마이티 덕으로 끝낸 특이한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20대 대선의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이 친문 표를 전부 받지 못한 점도 크다.[61] 대통령 초상화는 유명 작가를 섭외하여 그리는 것이 관례이다.[62]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경무대로 불렸다.[63] 윤석열 취임 당일 시민들에게 완전개방 되었기 때문에 차후 다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다시 청와대에서 국정을 수행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64] 84%[65] 45%[66] 52%[67] 2022년 5월 1주차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긍정평가는 4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긍정평가는 41%를 기록했다.[68] 노태우: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 김영삼: 민주자유당>신한국당,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노무현: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이명박: 한나라당>새누리당, 박근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다만 노무현은 여당을 옮긴 것이고, 박근혜는 당명 변경 당시 직무정지 상태였고 이후 탄핵되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69] 보수주의 정당까지 범위를 넓힐 경우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소속 정당을 탈당하지 않은 대통령은 이명박이 최초다.[70]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박근혜는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했으며, 본인이 법정 구속된 경우만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4명이고 직계가족이 구속된 경우는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이며 친인척이 구속된 경우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이다. 후임자 윤석열의 경우도 인척이 구속되었기에 해당 사항에 포함된다.[71] 문재인의 경우 특히 직계가족과 친인척들이 상선사관, 게임 제작자 등 정•재계에 기웃거리기 어려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중에서도 남동생인 문재익은 모종의 사유로 선사에서 육상으로 올려줬음에도 불구하고 형의 설득으로 인해 다시 배를 타게 되었으며, SM그룹으로 옮긴 뒤 계속해서 배를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