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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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서울권 기반 재수학원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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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정경진 회장 시대
2.2. 하늘교육 인수
3. 대성학원과의 관계
4. 종로교재 및 모의고사
6. 전국 종로학원
6.1. 강북종로학원(신촌관)
6.1.1. 위치
6.1.2. 시설
6.1.3. 학원 생활
6.1.4. 주변 상권
6.2. 강남종로학원(대치관)
6.2.1. 시설
6.3. 강남종로학원(교대관)
6.3.1. 시설
6.4. 강북종로학원(성북관)
6.5. 목동종로학원
6.6. 송파종로학원
6.7. 일산종로학원
6.8. 평촌종로학원
6.9. 대전종로학원
6.10. 구(舊) 중림동 본원
6.10.1. 시설
6.10.2. 주변상권
6.11. 없어진 학원
7. 식사
8. 종로학원 원가(歌)
9. 기타


1. 개요[편집]


종로학원 홈페이지

종로학원은 대학 입시 학원이다. 본격적인 민간 학원의 효시로 불리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입시학원이다. 2014년에 교육 전문 업체인 하늘교육에 인수됐다.

각 지점별로 재수종합반, 재학생반, 단과반, 독학재수반 등을 운영중이며, 종로학평에서는 교재출판사업과 모의고사 시행을 주관하고 있다.


2. 역사[편집]



2.1. 정경진 회장 시대[편집]


1965년 4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에서 설립되었다.[1] 설립자 정경진은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경기고에서 교사를 하다가 1950년대~1960년대 초반 양대 대입 단과학원이었던 EMI학원과 제일학원에서 명성을 날리던 수학 스타 강사였다.

초기에는 당시 종로 학원가의 타 유명 입시학원과 마찬가지로 단과 중심의 학원으로 출발했으나, 1968년에 최상위권 재수생을 타겟으로 한 재수종합반 중심으로 학원을 재편했다. 때문에 당대 스타 강사들보다는 쇼맨쉽은 없어도 명문고에서 실력과 평판이 뛰어난 교사들을 영입했다. 이러한 전략은 대성학원도 비슷하게 따라했다. 이 선택은 절묘했는데, 1969년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었고, 이어 고교 입시도 폐지되었고, 또한 1970년 이후 야간자율학습이 사실상 강제화되면서 재학생 학원들이 타격을 받은 반면, 재수생종합반 중심의 학원이 흥하기 시작했는데, 그 선두주자가 종로학원이었다.

종로학원의 초창기 강사 중에는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도 있었다.(당시 신문 광고[2]) 수학의 정석은 홍성대가 종로학원에 재직 중이던 1966년 처음 출간되었다. 해당 광고에 나와 있듯이 초기에는 단과, 재수종합반, 재학생종합반, 그리고 중학생종합반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수한 강사진을 바탕으로 상위권 재수생들이 몰리면서 명문 재수학원으로 급성장했다. 종로학원 이전의 국내 최고의 재수학원으로 양영학원이 있었는데, 1970년대 초반에 대성학원과 함께 양영학원을 완전히 추월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는 대성학원에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한 적은 정원에도 불구, 서울대 합격자 수에서 대성학원과 격차를 벌이며 최고의 재수학원으로 입지를 다졌다. 1970년대에는 종로학원과 대성학원, 정일학원이 3대 재수학원을 형성했다고 한다.

1979년 수도권인구재배치 기본 계획에 따라 재수학원을 4대문 밖으로 이전하라는 정부의 방침이 내려졌고 이에 4대문 바로 바깥의 중림동으로 이전했다. 이때 정부에 의해 정원이 2100명으로 할당, 제한되었고 이 정원은 1998년 강남 분원 설치 때까지 유지되었다.

1980년 7.15 교육개혁 조치로 인해 모든 재학생의 과외 및 학원 교육이 금지되었으나, 종로학원은 살아남았다. 재수학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들이 다니는 학원이었기 때문이다.

종로학원의 최전성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3][4] 특히 1989년에는 학력고사 전체수석, 서울대 자연계 수석, 고대, 가톨릭의대, 포항공대 수석 등 9개 대학 수석을 석권하기도 했다.[5][6] 1990년에는 종로학원생 2100명 중에서 1000명 이상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1990년대 전반기에는 종로학원 정원 2100명 가운데 거의 매년 거의 1000명이 서울대에, 그리고 연대에 500여명, 고대에 400여명, 그리고 나머지 100여명 정도가 기타학교에 합격했다.

본고사 마지막해인 1996년에도 1187명을 서울대에 합격[7]시키는 등 절정의 위세를 과시했으나,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1994년에 수능이 도입되고 이어 1996년을 끝으로 본고사가 폐지된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당시 새로 도입된 수능은 해방 이후 대학별고사(예비고사 도입 후에는 구별을 위해 본고사로도 일컬음), 예비고사, 학력고사 등으로 이어오던 대입 시험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경향의 시험이었기에 당시 일선 학교 교사나 학원 강사들도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겪었다. 당시 종로학원 강사들은 서울대 출신의 강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다른 학원들과는 달리 고용이 안정되어 있었고, 강사들의 연령대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이들 강사진은 본고사 시절 절정의 위력을 과시했지만, 새로운 유형의 대입 시험인 수능에 대한 적응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8] 당시 학원계에서는 수능이 도입되면서 이에 적응한 소수의 강사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대체로 젊은 층의 강사진으로 교체되던 시절이었다. 또 전기 후기 2번 밖에 지원할 수 없었던 입시제도가 특차, 가군 ~ 라군 등으로 분화되면서 최대 5개 대학까지 지원이 가능하게 되면서 재수생수가 줄어든 것도 한 몫했다.

게다가 학원 설립자인 정경진 원장이 해외 원정 도박 및 탈세 혐의로 연이어 구설수에 오른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80년대 ~ 90년대초 종로학원이 잘나갈 때 정경진 원장은 '종로대학'을 자칭했으며, 정신교육도 마다하지 않았고 심지어 직접 체벌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5년 해외 원정 도박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경진 원장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었으며, 1997년에는 탈세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다만 97년 입시학원 탈세 수사 때는 종로학원 뿐만 아니라 당시 이름을 대면 알만한 입시학원 대다수가 걸렸기 때문에, 해외 원정 도박의 임팩트가 더 컸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로 정경진 원장이 직접 나서는 일이 부쩍 줄어들게 되었다.

한편 96년부터 본고사가 폐지되고 수능과 내신의 중요성이 커지자, 내신이 좋지 않은 외고생들이 대거 학교를 자퇴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때 강남대성학원이 자퇴한 외고생들을 위한 커리큘럼을 만들어 이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급성장하게 된다. 반면 종로학원은 정경진 원장이 수사를 받고 있기도 하여 정부의 눈치를 보며 외고 자퇴생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90년대 후반 종로학원은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아울러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재수생 반만 있었지만, 재수생들의 수업이 끝난 후 저녁 시간에 비는 몇몇 강의실을 활용하여 1995년 처음으로 재학생 반을 개설했다. 또 대성학원이 여러 분원을 설치했지만, 종로학원은 본원만을 고집하면서, 대성학원이 양으로 밀어붙이고 질적으로 떨어진다고 은근히 디스하기도 했는데, 90년대 후반부터 강남 대성이 잘 나가기 시작하자, 1998년 처음으로 강남 분원을 설치했다.[9] 그래도 대성학원처럼 전국 각지에 분원을 설치하지는 않고 강북, 강남 2개 본원 체제를 유지했다. 당시 대성학원이 노량진과 강남이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고 강사진도 완전히 달랐지만 종로학원은 원칙적으로 모든 강사가 강북, 강남 수업을 번갈아 들어갔다.

90년대까지 종로학원은 특유의 엘리트주의로 유명했는데, 정경진 원장 등 학원 수뇌부는 학생들을 종로대학생이라고 불렀고[10], 강사는 원칙적으로 서울대 출신만 뽑았다. 결정적으로 월례고사나 수업 교재의 난이도가 지랄맞게 어려웠다. 이게 본고사와 불수능 시절에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면서 매년 1000명씩 서울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본고사가 폐지되고 2000년 이후 만점자가 양산될 정도로 수능이 쉬워지자 어렵게만 가르치던 종로학원 교육 방식이 학원의 몰락을 더욱 재촉하게 된다. 이 시절 대성학원은 쉬워진 수능에 포커스를 맞추어 교재와 수업 난이도를 대폭 낮추었으나 종로학원은 여전히 어렵게만 가르치자 수험생들 사이에 대성학원이 수능 트렌드에 맞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 결국 이 때 즈음부터 강남대성학원이 종로학원을 확실히 앞서기 시작했다.[11]

비록 쇠망했다고는 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대성학원과 함께 양대 재수명문 학원의 지위는 유지했다. 본고사 폐지 이후 첫 입시인 1997년 입시에서 500여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였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반토막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수 명문의 자존심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매년 대략 500여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했는데, 사실 1998년 강남 종로학원을 새로 개원[12]하면서 정원을 두배로 증가시킨 효과도 있었다. 그래도 대성학원보다는 여전히 적은 정원이긴 했다.

별도로 각 지자체별로 관내 고등학생의 서울권 대학 보내기 특강 및 특별반을 운영할 때 종로학원에서 강사들을 과목 불문하고 많이 파견보냈다. 이따금씩 강사들이 지방에 파견수업 다녀온 썰을 풀기도 한다.

2005년 설립자 정경진이 보유 지분을 모두 장남인 정태영에게 증여하면서 정태영이 종로학원의 대표가 되었다. 정태영은 현대차 그룹의 사위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종로학원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편입됐다. 정태영은 현대카드 경영에 바빴으므로, 종로학원 운영은 거의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13] 이후 종로학원은 성장 둔화 내지는 하락세가 더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 현대카드 관련 프로모션을 하기도 하고 학원비를 현대카드로 무이자할부로 제공해주기도 했다. 시설투자 또한 풍족하게 이루어졌다. '대성학원은 화장실도 줄서서 가야 한다'며 시설면에서 디스할 정도로 강남 강북 본원 모두 시설면에서 뛰어났다.

그러나 정태영은 2010년에는 종로학원 대표직마저 사임했고, 이무렵 온라인으로의 전환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무엇보다, 2000년대 말부터 강사들이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강남대성학원이나 메가스터디학원으로 많이 떠나게 된 것이 큰 타격이 되었다. 그래도 2011년까지는 재수 명문의 자존심을 유지했는데, 수능 필수 과목이 대폭 줄어들면서 반대 급부로 수학, 영어 등의 난이도가 올라가자 수학 명강사들이 포진해 있었던 종로학원이 강남 이과생들을 중심으로 그래도 좋은 평판을 유지했던 것. 그러나 2012년부터 수능이 대폭 쉬워지면서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2.2. 하늘교육 인수[편집]


2014년 11월 하늘교육이 종로학원을 인수했다. 하늘교육의 임성호 대표는 경희대를 졸업한 후 한 재수학원의 강사를 하다가 학원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교육은 종로학원을 인수하기 얼마 전 중앙학원을 인수한 바 있는데, 종로학원을 인수하면서 중앙학원 계열 학원들도 모두 종로학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로학원은 원래 강북 본원과 강남 본원 2개 학원만 있었지만 2015년 신학기부터 노량진, 강남, 강북, 송파 등 여러 분원을 가지게 되었다.

2016년 전국에 독학재수학원 분원을 여럿 개원했다. 때문에 재종반을 축소하고 독학재수학원 체인으로 변모하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2017년에는 부천, 일산 등에 재종학원 분원이 신설되는 등 재수학원도 계속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11월, 유서깊은 중림동 본원(강북 본원)이 신촌으로 이전했다. 중림동보다 접근성과 환경이 좋은 신촌으로도 이전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에 앞서 건물주였던 정태영이 건물을 매각하기로 한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하늘교육은 정태영으로부터 종로학원을 인수할 때 건물은 인수하지 않고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재벌의 임대업 규제를 강화했고, 정태영은 건물을 매각하게 된 것. 정태영으로부터 종로학원 본원 건물을 매입한 건설사는 건물을 헐고 주상복합 및 호텔을 새로 신축하기로 했다. 이에 종로학원 본원의 이전이 결정되었다.

2019년, 강남 종로학원은 대형재수학원 최초로 반당 20명대 정원을 선언하였다. 현재 강남 종로학원 재수정규반은 문과 7개반(J01~J07), 이과 11개반(J31~J41)으로 구성되는데, 이 18개 반이 모두 20명대로 운영된다.

임성호 대표는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를 하면서 입시전문가 역할까지 하고 있는데, 과거 종로학원 김용근 평가실장, 대성학원 김영덕 평가실장, 중앙교육진흥연구소 김영일 평가실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수능이 끝나면 국어 강사 출신 유웨이 이만기 평가연구소장와 더불어 가장 많이 언론에 나오고 있는 입시전문가다.


3. 대성학원과의 관계[편집]


과거 대성학원과의 라이벌 구도에서 상당히 엘리트주의를 취했다.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20여년 동안은 명백하게 종로학원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학원이었고[14], 대성학원은 종로학원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이들이 2지망으로 갔던 학원이었다. 물론 대성학원도 1990년에 서울대에 700명이나 합격시켰기에 무시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당시 대성학원의 정원은 종로학원보다 두배 이상 많은 4000여명이었다. 즉 종로학원에서 상위 50% 안에 들면 서울대에 갈 수 있었던 반면, 대성학원에서는 상위 10%대 안에 들어야 서울대에 갈 수 있었던 것.

종로학원의 쇠퇴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7년도 수강생 모집 때도 대성학원의 재수생 무시험 전형(학원에 입학시험이 있다) 커트라인이 수능 6%일때 종로학원은 4%가 커트라인이었다. 무시험 전형도 그해 강남 본원을 새로 오픈하며 정원이 두배로 늘어났기 때문에 생긴 것이며 그때까지는 무시험 전형도 없었고 4% 정도의 실력이라면 종로학원에 들어올 수 없었다.

애초에 종로학원 강사들은 대성학원 존재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무관심했으나, 강남대성이 치고 올라오면서 종로학원의 아성을 위협하자 강사들도 점차 대성학원을 의식하면서 "노량진 분위기"를 까며 불건전한 동네에 있다고 흉을 보기도 했다. 이것도 적어도 97년에는 이미 시작되었다.[15][16] 시설과 환경적인 측면에서 중림동 종로학원이 노량진 대성학원보다 공부하기에 나은 건 사실이었다. 주변 환경을 빼고 학원 건물 자체만 따져보다라도 종로학원이 더 쾌적했다. 건설된지 4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게다가 노량진 대성학원은 종로학원보다 정원이 두 배나 많은 4000여명이 한 건물을 쓰기 때문에 식당 등 각종 편의 시설을 이용하는데도 불편함과 혼잡도가 컸다. 중림동 종로학원 건물은 노량진 대성학원보다 4년 늦게 지어진 신축 건물이었고 전반적인 시설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어진지 20년도 안된 1998년에 건물을 부수고 2년에 걸쳐 다시 신축했다. 2018년에 종로학원 강북 본원은 다시 신촌에 신축건물로 이전했다.[17] 그런데 노량진 대성학원은 1975년에 종로에서 이전해오면서 지은 건물을 2019년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했다지만.

또한 종로학원이 중림동 본원만을 유지했던데 반해 대성학원이 1990년대 이후 전국 각지에 프랜차이즈 분원을 설립하자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대성학원들은 수준도 들쭉날쭉했고 허름한 건물이나 심지어 동네 보습학원 정도로 영세한 경우도 있어서 한때 대성학원의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기도 했었다. 다만 강남대성에 자극 받아 종로학원도 98년에 강남 종로학원을 신설하기도 했다.[18] 그러나 이후 강북, 강남 이외에 추가 분원을 설치하지 않으며 대성학원과는 계속 차별화를 두었다. 다만 현재는 이런 이야기가 통용되지 않는데, 종로학원이 하늘교육에 인수되면서 2015년부터 중앙학원 체인들이 전부 종로학원으로 바뀌게 되어 현재는 종로학원도 대성, 청솔, 메가스터디 못지 않게 많은 분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대성학원도 수많은 프랜차이즈 분원을 차츰 정리하여 과거의 싸구려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다.

이 경쟁 관계는 최근까지도 참 어처구니 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월례고사"다. 양 학원은 모의고사 외에도 재원생을 대상으로 매달 고난도의 "월례고사"를 치렀는데, 서로가 서로의 월례고사를 풀고 채점하여 어느 쪽이 더 점수가 높고 낮은지, 또 어느 쪽의 월례고사 문제가 더 어려운지 (우리가 더 어려운걸 가르치니까 더 똑똑한 애들 데리고 있음! 우월함! - 거의 초딩싸움) 경합했다. 웃긴 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과는 전혀 상관없을 정도로 문제가 더럽고 극악무도했는데, 의외로 문제의 완성도 자체는 높았다. 문제에 오류가 있을 경우 서로 심하게 까기 때문에.

그러나 현재는 이런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아닌데. 푸는데. 심지어 등수도 벽에 붙이는데.) 적어도 종로학원 측에서는 학생들에게 월례고사 문제지를 풀게 하는 것은 금기시된 일. 한 언어영역 강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풀 문제지가 없으니 문제를 내놓으라고 발악해서 대성학원 월례고사 문제지를 뿌리기 무섭게 부원장실로 끌려가 타박을 받았다고 한다. 내용인 즉슨 우리 종로학원이 2류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짓 하지 말자고. 다만 이과프리미엄쪽은 젊은 선생님들의 비율이 높은지라 대성뿐 아니라 메가, 중앙 등 온갖 월례고사 문제지를 다 구해주는 경우도 꽤 있는 편이다.

최근에는 메가스터디가 온라인 강의를 통한 강세를 이어나가고 있으면서 대성과 종로의 강사들을 스카웃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건물도 없는 학원" 이라며 연합해서 까던 시기가 있었다. (메가스터디의 이과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초메가스터디는 종로나 대성처럼 학원 소유의 건물이 아니라 세 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메가스터디 역시 자기 학원이 있어서 요즘은 그런 문제로 까지는 않는다.


4. 종로교재 및 모의고사[편집]


모의고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종로모의고사는 모의고사 중에서는 그래도 좋은 문제들이 제법 있었으며 해설이 풍부하다. 그에 기반해서 만드는 핵심체크도 어렵고 의외로 질이 좋다. 제작자에게 단가를 높게 쳐준다고 한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평이 좀 낮다. 검수 시스템 때문에 답 체크가 잘못된 것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로 모의고사 및 교재가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던 것도 한몫했다. 사설 모의고사답게 월례고사는 오류가 있는 문제도 있었기도 했고. 전국모의고사에서도 답이 잘못 표기된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종로모의고사 정도면 사설 모의고사 치고는 좋은 축에 속하기도...

종로교재는 개념설명, 기출문제, 과거 종로모의고사, 월례고사에서 발췌해온 문제로 이루어진다. 원래는 학원 내에서만 봤고 비싸기도 했다. 의외로 경쟁사와 달리 주교재를 충실히 쓰는 강사들의 비율이 높다. 요즘에는 인터넷 강의도 많이 발달해서 좋은 컨텐츠를 많이 보고온 재원생들은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 대비로 좋으므로 학원을 다니게 된다면 열심히 풀자.

과거 월례고사에서 이 분들이 많은 시절 강사들이 검수할 때 젊은 강사가 이의제기하면 짬으로 밀어버려서 이상한 문제도 나오기도 했다.[19] [20] 물론 2010년도 초반이랑 하늘교육에 인수된 후 지금은 옛 이야기다.


5. 강사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종로학원/강사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전국 종로학원[편집]



6.1. 강북종로학원(신촌관)[편집]



6.1.1. 위치[편집]


전신이 강북종로학원인 곳. 주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촌로 118이다.

2018년 11월 중림동에서 신촌으로 이전하였다. 중림동 본원에 비해 규모가 많이 작아진 듯하다. 그래도 종로학원 중 연혁 측면에서 원조이며, 여전히 종로와 가장 가까운 종로학원이다.

종로학원 바로 앞에 신촌거리가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다. 한국경제신문 본사와 브라운스톤 외에는 주변에 낡아빠진 건물이 있던 중림동 시절보다 주변환경과 교통접근성이 좋아졌다.


6.1.2. 시설[편집]


일일외출증, 일일조퇴증, 정기조퇴증.


6.1.3. 학원 생활[편집]


강북종로학원(신촌) 유튜브 채널

학원의 한 해 일정은 선행반으로 시작한다. 수능은 망하고, 수시는 다 떨어지고, 정시에서 답이 보이지 않는 불우한 고3을 대상으로 선행반을 모집하여 1월초부터 2월초까지 선행반을 운영한다. 선행반에 오는 학생들은 크게 두가지 유형이다. 정말 마음먹고 제대로 재수해보자는 생각으로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학생과, 재수는 하고싶은데 집에서 놀고먹자니 부모님 눈치가 보여 선행반으로 반강제로 끌려오는 학생. 선행반은 정규반만큼의 인원도 아니고 커리큘럼도 널널하게 운영되어 재수 특유의 긴장감은 덜한 편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선행반을 들은학생과 안들은 학생의 성적차이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으나, 학원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정규반 설명회가 열려 학원에 예비재수생들이 찾아오기도 하며 입학상담을 받는 학생들도 많이 찾아온다.

2월 중순 정시 합격자가 모두 발표되고 추가합격자가 발표될 즈음에 정규반 1학기가 개강한다. 수능이 끝나고 약 3개월간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던 수험생들이 몰려와 좁은 강의실에 처음보는 50명이 앉아 있는 이상한 광경을 맞이한다. 대개 개강일은 예비소집일 같아서 학원생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여 오전이면 끝난다. 이후 자습할 학생들은 자습을 할 수 있게 강의실을 안내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귀가한다.

1학기 개강을 하면 대체로 기출문제를 기반한 대학수학능력시험 개념강의를 진행한다. 대체로 고3 때 공부를 했던 수험생들은 이 시기가 지루할 수도 있으나, 사실 수능의 핵심을 알려주는 만큼 가장 중요한 시기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처음 보는 사람들인 데다가 재수가 주는 특유의 비장함, 학기초 강사와 생활지도 아저씨들의 겁주기로 인하여 숨조차 쉴 수 없는 긴장감이 강의실을 감싸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수업 분위기는 좋으나 놀다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인지라 집중도는 그리 높지 않으며 자습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학생들이 꽤 나타난다. 급식으로 나오는 '돼지갈비찜'이라는 요리가 맛있다. 그리고 급식 메뉴들 중 '우삼겹숙주볶음'은 정말 맛없는 고기 메뉴고, '돈사태단호박찜'이라는 음식은 굉장히 매우니 주의해야 한다. 독학재수반 학생들에게만 개방됐던 와이파이가 2022년 4월 18일 월요일에 재수종합반 학생들에게도 개방됐다. 2023년 6월 21일 수요일에 재수정규반 2학기와 반수반이 시작됐다. 학생증 재발급 비용은 6000원이다.

한창 학원 생활에 적응하여 공부에 열을 올릴 시점에 첫 월례고사를 본다. 첫 월례고사인 만큼 긴장도 되고 빌보드로 등수를 게시하기 때문에 학생들간에 묘한 경쟁심도 발생한다. 하지만 결국 외고와 자사고 학생들이 재수 역시 성공할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대부분의 학생이 좌절한다. 1학기는 사실상 6월 모의평가를 향해 공부한다는 느낌이 강해 6월 모의평가를 기준으로 1학기를 마감하는 학생들도 있으나 실제 1학기는 6월 모의평가 후인 6월 21일에서 6월 30일 사이까지다.


6.1.4. 주변 상권[편집]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인 신촌거리에 위치한다. 신촌거리 문서에도 보듯, 쇼핑, 음주, 식사 등을 위한 온갖 장소가 모여있다.


6.2. 강남종로학원(대치관)[편집]


전신은 원래의 강남종로학원.

휘문고등학교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고, 이과를 밀어주는 휘문고 분위기랑 맞아떨어져 휘문고 4학년관이라는 별명이 있다. 정작 휘문고생들은 강남대성에 많이 들어가는게 함정 원래는 대치동에 문과 프리미엄관이 따로 있었지만, 휘문고 앞 본원으로 다시 통합하였다.

여담으로 2019년 기준 강북 본원보다 입학 컷이 높다.


6.2.1. 시설[편집]


지상 6층, 지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2층에 매점, 대회의실과 구내식당이 위치해 있다. 3층에는 교무실, 종로학력평가연구소가 있으며, 강의실은 2층과 4~6층이다. 그리고 1층에는 휴식을 할 수 있는 라운지가 있고 쉬는 시간에는 옥상이 개방된다.


6.3. 강남종로학원(교대관)[편집]


전신은 서초종로학원이었던 곳이다.

2호선, 3호선 교대역 1번 출구에 위치한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서초대로 56길 27.


6.3.1. 시설[편집]


지상 7층에 옥상 1층, 지하는 2층으로 이루어져있다. 지하 2층은 창고 및 비품실 느낌인데 갈 일이 딱히 없고 지하 1층에는 식당 과 새로 들어온 자판기! 온갖 과자와 음료수등 간식거리들을 판매하며 카드밖에 사용 불가.. 이 있다.1층 로비에서 상담 및 접수가 이루어지고 2층에는 교무실이 있다. 3~5층에는 종합반 교실들이 있으며 6층과 7층은 각각 남녀 독학 재수반 교실이 있다. 옥상에서 둘러보는 경치가 예쁘다.


6.4. 강북종로학원(성북관)[편집]


전신은 원래 성북종로학원이었던 곳이다.

이전하기 전의 위치는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와 가까운 참살이길(고려대학교 상권) 인근이었다.

2019년 3월 11일경 현대백화점 미아점 옆으로 이전하여 4호선 길음역 9번 출구에 위치한다.


6.5. 목동종로학원[편집]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408-116번지에 위치해 있다. 법인명은 '목동입시연구사'. 목동 소재 재수학원 중 시대인재, 강남하이퍼와 함께 진짜 목동에 위치하여 있다.

1층은 로비와 독서실, 5층은 교무실이 있고 교무실을 경계로하여 2~4층과 6~8층을 한학기당 문이과가 돌아가면서 쓴다. 수업이 끝난이후 자습은 1,3,7층은 여자, 1,4,8층은 남자가 사용한다. 독서실은 1,4,8층에 있는데 1층은 남녀공용, 4층과 8층은 남학생 전용 자습실로 사용된다.


6.6. 송파종로학원[편집]




6.7. 일산종로학원[편집]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백마학원가의 끝자락 즈음에 위치해 있다. 2015년 개원하였다.[21] 홈페이지

해당 건물의 2층과 3층을 쓰고 있는데, 2층에는 독재 또는 주말자습을 위한 오픈독서실[22]과 인강실이 있으며, 대부분의 정규반과 급식은 3층에서 이루어진다.

2020년 10월에, 오후 10시에 울리는 종료 BGM이 바뀌었는데, 아래에서 들어보면 알겠지만 영 좋지 않다.(...)


직영점 같은 방식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방식이라고 한다.

6.8. 평촌종로학원[편집]


경기도 안양시 평촌 학원가 호계동 위치. 평촌 소방소 옆,

1층은 로비 6, 7층을 강의실로 사용한다. 6층은 교무실, 대강당, 식당, 강의실이고 7층은 독서실과 강의실이 있다.

반 구성은 (2019년 기준) 문과 5반 이과 5반이 있고 S반(최상위), 특별반, 준특반, 일반반으로 나뉜다. 일반반이 계열별 두반씩 있다.

등원시간은 7시 40분까지이다. 지각하면 8시까지 6층에 서있어야 한다. 7시 50분~8시에 단어시험을 보며, 8,000단어 단어장이 있는데 한번에 80개씩 본다. 그리고 주당 2회 국어 어휘테스트를 진행하고 영어듣기 방송을 주 3회를 진행한다. 또한, 토요일은 핵심체크SDLP 국어,영어,수학 각 20분씩 60분동안 주간테스트를 진행한다. 종로 SDLP는?. 국어, 수학, 영어가 있다. 국어, 영어는 12문제, 수학은 8문제씩인데 각 과목 20분씩 보게 되어있다. 수능형 미니 모의고사로서 학습 상황을 세밀하게 체크해볼수있다.

8시 40분부터 수업 50분, 쉬는시간 10분으로 12시 30분까지 4교시를 진행한다. 점심시간은 13시 20분까지고 5교시가 2시 20분까지 진행된다. 2시 40분부터는 독서실이나 지정된 자습실로 이동해서 자습을 진행한다. 사탐/과탐 선택수업은 이 시간 이후로 진행된다. 그리고 2019년부터 국어, 수학 코칭수업이란걸 진행한다. 코칭수업은 테마수업으로 심화/기본 수업으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한다. 코칭수업은 자습시간을 원하는 애들은 수업을 안듣는게 가능하다. 단, 담임선생님이나 수업 담당 선생님과 상의를 해봐야 할 수 도 있다.

대형 재수학원으로는 최초로 35명 내외 반 구성을 진행하며 2019년 평촌에 온지 10주년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평촌에 있는 다른 재수학원과 다르게 평촌종로학원은 무한질의응답시스템(1:1)이란게 있다. 일반 재수학원은 대부분 선착순으로 질문을 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평촌종로학원은 질의응답 신청서가 있어서 애들이 원하는 만큼 선생님들께 질의응답을 할 수 있다.[23]
점심때 각자 선생님들이 질의응답 시간표를 작성해서 게시판에 공지해주면 자습하다가 시간맞춰 질의응답을 가면된다.[24]

평촌종로학원은 원래부터 정규강의실과 자습하는 공간이 별도로 구성되어있는 재수학원이다. 칸막이가 있는 자습실은 남/여를 분리하여 자습을 진행하는데 각각 100석정도씩 있으며 강의실에는 20명 시험대형으로 자습을 진행한다. 독서실 희망인원이 많으면 추첨을 통해 우선순위를 정한다.

급식은 한 끼에 5,200원이다. 직접 음식을 하는 식당이라 학교급식 같은 느낌이지만 맛은 훨씬 더 맛있다. 또한 매점이 존재하며, 매점 최고 인기메뉴는 단연 쫄병스낵이다. 천원의 가격으로 최대의 효용을 낼 수 있다.

평촌종로학원은 학생과 사감샘들이 따로 계신다. 각 층별로 쉬는시간 및 자습시간을 관리감독하신다. 공부하는 분위기는 시작할때부터 끝날때까지 일정수준 이상을 항상 유지한다. 쉬는시간 옆에 있는 친구랑 말을 할 수 없다. 공부하는 애들을 방해한다고 대화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6층 7층 남녀 각각 한개씩이다. 평촌 다른 재수학원들은 층별로 여학생용 남학생용으로 분리해서 사용하지만 종로는 넓은 화장실로 각 층별로 한개씩이다.


6.9. 대전종로학원[편집]


대전 서구 탄방동에 위치한다.


6.10. 구(舊) 중림동 본원[편집]


1979년부터 2018년까지 종로학원의 본원이었던 건물. 주소는 서울시 중구 청파로 456. 현재 강북종로 신촌관의 전신이기도 하다.

종로학원은 1965년 종로구 인사동에 설립되었으나, 1979년 정부가 도심 과밀화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재수학원을 4대문 밖으로 이전토록 하여, 서울역과 서대문 사이에 있는 중림동으로 이전했다. 그야말로 4대문 바로 바깥에 지어졌다. 1998년 강남 본원이 생기기 전까지는 중림동 본원이 유일한 종로학원 캠퍼스였다.

기존 중림동 본원 건물도 시설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1996년 기존 본원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재건축을 했다. 본원을 재건축하던 약 2년간은 충정로 건너편의 현(現) KAC 한국예술원 건물을 본원으로 사용했다. 이 시절 한정으로 '충정로 본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이때 강남 본원이 새로 생기면서 '강북 본원'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그냥 종로학원이었을 뿐이었다. 충정로 본원 시절에는 식당이 가건물을 지어 사용했기 때문에 다소 열악했고, 인근 경기대학교 식당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점차 많은 학생들이 경기대에서 저녁을 해결하게 되었다. 당시 경기대 식당 밥값은 1000원으로 같은 서대문구에 있던 연세대학교에 비해 반값에 불과했지만 경기대 학생들이 밥값 인하를 요구하며 불매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종로학원 학생들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식당 앞에서 연좌농성하고 있는 경기대 학생회 학생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 대거 식당을 이용하는 바람에 불매 운동이 실패하고 말았다고. 이후 경기대 학생들과 종로대학(?) 학생들 사이에 상당히 불편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2000년에 중림동 본원이 완공되었다. 철거 전 건물도 시설이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건물 구조상 창문이 별로 없었다는 단점이 해소되었고 강의실 넓이가 넓어져 책상 간격을 더 넓게 하여 교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 편의시설도 좋아졌다. 중림동 학원 바로 앞에 한국경제신문사가 있다. 또한 학원 바로 뒤에는 작지만 서소문공원이 있으나 2016년부터 공사중이다. 학원생 수는 문과가 700명, 이과가 600명가량 등원했다.

주변에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이 가장 가깝다. 충정로역 주변에서 도시락가방 들고 초췌한 얼굴로 걸어다니는 사람이 보인다면 99% 재수생. 목동, 강서구 학생들도 많이 보이며 때문에 명덕외고를 졸업하고 오는 학생도 많다.

서울역에서도 많이 오는데, 공항철도, 수도권 전철 경의선, 수도권 전철 1호선, 수도권 전철 4호선을 비롯해서 경부선, 장항선 등이 연결되기 때문에 이곳을 통해서도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이 등하교를 한다.

특히 경의선을 타고 일산에서 오는 학생들이 많다. 김포외고 고양외고의 경우 특반, 준특반 한반에 10명씩 있을 정도. 심지어 천안, 아산에서도 KTX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도 있었다. 학원 바로 앞에 한국경제신문사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서울 버스 7011, 서울 버스 7013, 서울 버스 7017, 서울 버스 603 등의 버스가 다닌다. 모 국어강사는 아예 대전에서 매일 KTX로 출근했다고.

중림동 본원 건물 및 강남종로학원 건물은 종로학원이 하늘교육에 인수된 후에도 정태영 남매가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 건물들을 매각하기로 하여 이강학원이 임대해 쓰고 있던 강남종로학원(舊 문과 프리미엄) 건물이 2018년 7월 전주 이씨 종친회에 167억원에 매각되었고, 이어 중림동 본원도 2018년 10월 30일 미래토건에 540억원에 매각되었다. 이에 중림동 본원 건물을 사용하던 강북종로학원은 2018년 11월 완공된 신촌 신축 건물로 이전하였고, 하늘교육 본사는 강남종로학원(舊 이과 프리미엄) 건물로 이전하였다. 매각된 중림동 본원 건물은 헐린 후 주상복합 및 호텔이 지어질 예정이다. 2019년 하반기 현재 완전히 철거되었다.


6.10.1. 시설[편집]


학원은 층수가 5층에 옥상이 6층이며 지하는 3층까지 있다. 2층, 4층, 5층이 학생들이 있는 강의실이고 3층에는 교무실과 생활지도실, 매점 등이 있다. 한층에 강의실이 10개이며 강의실 1개에 학생 최대 60명까지 들어가지만 대부분 40명까지 들어간다.

3층을 제외한 각 층 양쪽에 남자, 여자 화장실 하나씩 존재하지만 남자화장실의 경우 변기칸이 4개뿐이다... 그래서 쉬는시간이든 아니든 항상 꽉차 있기때문에 기다릴때가 더 많다.

식당은 지하 2층에 있으며, 2016년부터 직영으로 바뀌었고, 이후 선생과 학생의 반발이 막대하다. 가격은 4500원으로 올리고 맛은 토나와서... 하지만 2017년 현재 급식이 굉장히 맛있어졌다.

매점이 있긴 하지만 굉장히 작다. 쉬는시간에 초코우유 하나 사먹을라치면 거의 쉬는 시간 내내 줄 서서 사먹어야 한다. 매점도 작년 직영으로 바뀌었지만 밖에서 사먹을때 일부 비싼 상품들을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하는 편이다.


6.10.2. 주변상권[편집]


종로학원 바로 맞은편에 한국경제 언론사 빌딩이 위치하여 있고 주변에도 여러가지 기업 빌딩들이 많아 음식점은 상당히 다채로운 편. 싼 2500원짜리 김밥부터 11000원 하는 일식으로도 저녁식사를 할 수 도 있다. 편의점도 가까운 곳에 2개 존재하고 문구점도 근처에 존재하니 불편한 점은 거의 없다.


6.11. 없어진 학원[편집]


  • 노량진 종로학원 : 원래 노량진 중앙학원[25]이었던 곳이나 하늘교육에서 종로학원을 인수한 후 노량진 종로학원이 되었다. 중앙학원 시절부터 좀 인풋과 아웃풋이 좋지 않았고 종로학원으로도 바뀐 이후로도 생각보다 아웃풋이 안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해당건물에 해커스 공무원 학원이 입주해 있다.

  • 청평종로학원 : 가평군 상면 덕현리 585-5 일원과 청평면 상천리 296-7에 운영되었다. 전자의 시설은 이름은 '청평'임에도 상면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에서 2005년 겨울학기부터 재수생과 중학생 및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숙학원이 운영되었다.[26] 숙식 등 생활은 585-5 번지 일대에 위치한 건물에서 이루어졌으며, 강의는 579-2 번지 일대의 가건물에서 운영되었다. 해당 가건물은 2005년 말 개원 당시에 막 완공되었다. 후자의 시설에서는 2006년 여름방학 시기에 기숙학원이 잠시 운영되었다. 2022년 현재 전자의 시설에는 한샘여학생기숙학원이, 후자의 시설에는 '국가공무원학원 청평관'이라는 공무원시험 기숙학원이 위치해있으며, 병의원 등의 시설도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전자(덕현리)의 경우 조종천 바로 앞의 계곡에 위치하여 공기는 좋지만 여름에는 손바닥만한 나방이 나오는 등 벌레가 많이 나왔으며, 집중호우가 왔을 때는 계곡의 건너편에서 학원으로 진입하는 유일한 다리가 침수되어 강사들이 출근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계곡 건너편의 도로와 캠핑장 일대도 침수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으나, 기숙학원 일대는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아 무사하였다.

  • 안성종로기숙학원 : 2023년 안성 메가스터디 기숙학원으로 바뀌었다.

  • 용인종로기숙학원 : 2023년 역사적사명 기숙학원으로 바뀌었다.


7. 식사[편집]


90년대에는 직영으로 식당을 운영했고,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니 2015년까지는 신세계푸드에서 운영하다가 2016년부터 직영으로 회귀했다. 직영으로 바뀌면서 식권 가격은 40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는데 맛은 없어지는 극적인 연출을 보였다. 강사들 사이에서 서러워서 학원 때려친다는 말이 나올정도니...

식사는 형편 없어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학원 인근 종로김밥, 한솥도시락, 동굴집 국밥, 장원식당, 명동칼국수, 의정부 부대찌개 등을 애용한다.(강남종로학원 기준)


8. 종로학원 원가(歌)[편집]


매년 수강생이 교체되는 학원에서 어떻게 원가가 유지될 수 있는지 모르지만, 비공식적으로 전해지는 원가가 있었다.[27] 찬송가 마귀들과 싸울지라 등의 곡으로 알려진, 남북전쟁기의 군가 《공화국 전투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하지만 현재는 원가가 없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신기해한다. 그런데 2014년 후반기에 그것이 전승됨이 확인되었다! 수학과 모 선생이 수업 중 짬시간에 학생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다.

단, 아래 버전의 가사는 97~8년도 채록 버전이며, 이후 변경된 가사가 있을 시 본문을 지우지는 말고 별도로 표기하여 첨부해주기 바란다.

관악산에 자리잡은 서울대학은
총장이 어용이라 교수도 어용[28]
교수가 어용이라 학생도 어용
모두가 어용이래(또는 "모두가 어용 어용학교다!")
신촌에 자리잡은 연세대학은
총장이 제비라서 교수도 제비[29]
교수가 제비라서 학생도 제비
모두가 제비래
안암동에 자리잡은 고려대학은
총장이 머슴[30]이라 교수도 머슴
교수가 머슴이라 학생도 머슴
모두가 머슴이래
신촌에 자리잡은 이화여대는
총장이 기생[31]이라 교수도 기생
교수가 기생이라 학생도 기생
모두가 기생이래
용인에 자리잡은 경찰대학은[32]
총장이 짭새라서 교수도 짭새
교수가 짭새라서 학생도 짭새
모두가 짭새래[33]
신촌에 자리잡은 서강대학은
총장이 고자라서 교수도 고자
교수가 고자라서 학생도 고자
모두가 고자래[34]
혜화동에 자리잡은 성균관대는
총장이 선비라서 교수도 선비
교수가 선비라서 학생도 선비
모두가 선비래[35]
용산에 자리잡은 숙명여대는
총장이 식모라서 교수도 식모
교수가 식모라서 학생도 식모
모두가 식모 식모학교다[36]
서초동에 자리잡은 서울교대는
총장이 훈장이라 교수도 훈장
교수가 훈장이라 학생도 훈장
모두가 훈장 훈장학교다[37]
왕십리에 자리잡은 한양대학은
총장이 공돌이라 교수도 공돌
교수가 공돌이라 학생도 공돌
모두가 공돌 공돌이학교다[38]
흑석동에 자리잡은 중앙대학은
총장이 딴따라라 교수도 딴따라
교수가 딴따라라 학생도 딴따라
모두가 딴따라 딴따라학교다[39]
이문동에 자리잡은 한국외대는
총장이 양키[40]라서 교수도 양키
교수가 양키라서 학생도 양키
모두가 양키 양키학교다
회기동에 자리잡은 경희대학은
총장이 군바리라 교수도 군바리[41]
교수가 군바리라 학생도 군바리
모두가 군바리 군바리학교다
충무로[42]에 자리잡은 동국대학은
총장이 땡중이라 교수도 땡중[43]
교수가 땡중이라 학생도 땡중
모두가 땡중 땡중학교다
한남동에 자리잡은 단국대학은[44]
총장이 졸부라서 교수도 졸부
교수가 졸부라서 학생도 졸부
모두가 졸부 졸부학교다[45]
신촌에 자리잡은 홍익대학은
총장이 환쟁이라 교수도 환쟁이
교수가 환쟁이라 학생도 환쟁이
모두가 환쟁이 환쟁이학교다[46]
화양동에 자리잡은 건국대학은
총장이 짱깨라서 교수도 짱깨
교수가 짱깨라서 학생도 짱깨
모두가 짱깨 짱깨학교다[47]
동숭동에 자리잡은 방통대학은[48]
총장이 디제이(DJ)라 교수도 DJ[49]
교수가 DJ이라 학생도 DJ
모두가 DJ DJ학교다
오륜동에 자리잡은 한국체대는
총장이 약쟁이라 교수도 약쟁이[50]
교수가 약쟁이라 학생도 약쟁이
모두가 약쟁이 약쟁이학교다

저 외에도 몇몇 학교가 더 있다.[51]

노량진에 자리잡은 대성학원은
원장이 빠가라서 선생도 빠가
선생이 빠가라서 학생도 빠가
모두가 빠가래
충정로에 자리잡은 종로학원도[52]
원장이 빠가라서 선생도 빠가
선생도 빠가지만 학생은 천재
학생만 천재래

사실 재수 중의 술자리(...)에서는 서울대, 연대, 고대, 이대 빼고 다른 학교 버전의 가사는 거의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수능 3% 선에 드는 재수생들[53]이 다른 학교에 대한 노래를 할 리가. 단 어떤 경우에도 대성학원은 빼놓지 않았다는데, 나름의 경쟁의식이었을 듯.
참고로 94년도 가사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종로학원 순이었고, 서울대학교 입시원서 접수장에 단체로 모여서 팔을 휘드르며 부른다고 하였으나 확인이 필요하다.

대학교에 따라서는 재학생들 술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 경우 학원 찬양인 맨 마지막 두 절은 대개 제거되며, 대신 자기 학교에 대한 칭송의 절이 추가된다.

XX에 자리잡은 XX대학은 (여기에 자기의 대학을 집어넣는다. 곡조도 위 비하내용보다 더 느리게 한다.)
학생이 천재라서 교수도 천재 (학생부터 총장으로 순서를 바꾼다.)
교수가 천재라서 총장도 천재
모두가 천재 천재학교다

영광 영광 XX대학
영광 영광 XX대학
영광 영광 XX대학
모두가 영광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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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후렴의 예시)

어떤 종로학원 출신 재수생이 대학에 들어간 후 신입생 환영회에서 이 노래를 학원 버전으로 불렀는데, 첫눈에 반해 마음에 두고 있던 앞자리의 예쁜 여학생이 하필 대성학원 출신 재수생이었던 탓에 작업 시작도 못 해보고 찍혀서 차였다고 한다.

사실 이 노래가 종로학원의 오리지날 원가로 전해 내려오는건 아니다(...). SKY 항목에도 소개되어 있듯 90년대 초반 노가바[54]의 일환으로 대학교와 20대 초반 젊은이들 및 일부 운동권 고등학생들[55]을 중심으로 많이 퍼져있던 노래다. 다른 노가바 노래들이 독재정권을 까는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면, 이는 자신의 모교에 대한 학교부심으로 개조되곤 했다. 훌리건천국은 옛날부터 있던 것인가


9. 기타[편집]


  • 학원 유니폼을 입은 경비같은 사람들이 학생들을 관리하고 감시하고 있는데 학원내에선 그들을 scv라 부른다. 혹자는 초록마이, 초록이, 시금치라고 부르기도. 키작은 보스수위(a.k.a 전두환)이라고도 하지만 요즘은 그린 자켓이 보편적이다. 두발상태(염색이라든가) 검사는 기본이고 여름기간이 아니면 반바지도 못 입게 하는 등 안 그래도 서러운 엔수생들을 더 서럽게 해준다. 심지어 쓸 데 없는 도발도 하기까지 한다.

  • 강남종로학원의 경우 휘문고등학교의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는데[56], 재수생 비율이 여타 학교보다 높은 휘문고생들은 이를 "휘문 4학년 건물"이라 부른다.

  • 사실 종로학원은 종로에 없다. 과거엔 중림동에 있다가 이제는 신촌로에 있다. 처음 개원한 곳은 서울 종로였으나 1970년대 말 정부가 강북 밀집 해소책으로 입시학원들을 사대문 밖으로 강제 이전하면서 중림동으로 이전하였다.[57]

  • 배우 송중기가 2004년도에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했다. 당시 N14반. 그리고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에 05학번으로 입학했다.

  •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71년에 종로학원 입학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하여 등록금을 면제받고 재수를 하여 경희대학교에 진학하였다. # 이후 종로학원 측에서 입시 설명회를 할 때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여 화제가 되었다. 다만 종로학원 입학은 예비고사/학력고사 성적이 일정 점수 이상이면 무시험 합격이었다. 하지만 당일 컨디션 난조 등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험을 폭망한 학생 등을 위해 입시 성적과 무관하게 치를 수 있는 유시험 전형이 따로 있었다. 기본적으로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할 성적이 되지 못하는 학생이 유시험 전형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입학후 무시험/유시험 합격생 간에 차별 풍조가 있었다.


  • 2011년부터는 서초역 1번출구 바로 옆에 서초종로학원 재수종합반 수시프리미엄관을 신설하였으나 2013년까지만 장사하고 문을 닫았다.[58] 여담으로 바로 뒤에 있는 서초종로학원은 중,고등부이다.[59]

  • 2013년도까지는 강남종로 문과프리미엄이 현재의 이과프리미엄 건물에, 이과 프리미엄이 문과프리미엄 건물에 있었다. 소문으로는 실적에 밀린 문과프리미엄이 건물을 뺏긴 것이라고. 2018년부터는 강남 양대 본원이 통합되어 옛날 이야기이다.

  • 다른 학원들에 비하여 수강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인데 후문에 따르면 수강료를 높이면 교육청에서 도장을 안 찍어준다 카더라. 그러나 2019년 현재 강남본원 기준으로 1달 수강료가 기본 135만원+모의고사비 12만원정도라서 다른 학원에 비해 비싼 편이 되었다.

  • 2010년대 초반까지는 강대만 밀어주는 오르비에서 콩라인으로 인정받는 학원이였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시선이 그다지 곱지 못했다. 그런데 2020년 수능 등급컷을 근접하게 맞추었다. 특히 수리영역 등급컷은 딱 맞았다. 사실 등급컷이 왜 이렇게 높냐면서 욕도 들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짬[60] 때문인지 타 학원보다 제법 근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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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성학원도 같은 해 5월 종로구 도렴동에서 설립되었다.[2] 수학 강사 명단에 홍성대와 정경진이 있다.[3] 이건 그 시절(1988~1993)의 입시제도 때문이다. 수시 정시 복수지원 이런것 없고 단 한번의 대학지원 기회에 1개 대학만을 지원하는데 지금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 보고 대학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의고사 등으로 자신의 실력을 대충 알고서 대학 지원 먼저 하고 입학시험을 보는 것. 모의고사 전국 1등의 실력자라도 시험 당일 컨디션이 나쁘면 바로 대입실패.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수능 0.1% 수준의 극상위권 수험생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극상위권 수험생의 대거 재수생화를 가져왔다. 이 재수생들을 종로학원에서 싹쓸이했다.[4] 물론 후기대학이라는 기회가 있긴 했으나 인서울 상위~중하위 모두 전기대학이며 중상위권 이하에서만 극소수의 후기모집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떨어진 수험생이 후기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소수인원 분할모집 합격도 보장하지 못할 정도. 물론 붙어도 재수했겠지만 [5] 초기 학력고사는 문제가 정형화된 까닭에 재수생이 전국 수석을 한 경우는 없었다. 선시험-후지원 하(1982~1987)에서는 극최상위권 학생이 떨어질 일이 거의 없고, 재수해서 획기적으로 성적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1988년에 처음으로 선지원-후시험제가 도입되면서 새 제도에 적응 못한 최상위권(이전 제도인 87년의 경우 서울대 평균 경쟁율을 1.5:1 정도. 즉 100명이 합격하고 50명이 떨어지는거다. 제도가 바뀐 88년도 서울대 경쟁율은 3:1 정도. 100명이 합격하면 200명이 떨어지는거다.)이 대거 탈락, 이들이 종로학원에서 절치부심하여 이듬해(89) 많은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했고 전국수석까지 배출했다. 특히 1989~1991학년도의 3년간은 수학의 괴랄한 난이도 때문에 정형화된 초기 학력고사 수준으로 공부하던 대부분의 평준화된 고등학교 학생들은 최상위권만 모아놓은 종로학원, 대성학원 재수생들을 이길 수 없었다. 물론 이 때(1989) 탈락한 고3들이 종로,대성에 들어가서 1990학년도에 똑 같은 재수생강세 패턴을 재현했다. 종로학원, 대성학원 리즈시절이 될 수밖에.[6] 저 시절에는 종로학원, 대성학원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고3때 자기 학원 모의고사 1~2% 이내에 들었던 성적표가 있던가, 아니면 학원 입학시험을 봐서 합격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문과기준 외대영문, 한양법대, 중대신방 등의 컷이었다. 중간에 그만 두는 원생들이 극소수라서 반수생이 중간에 들어가기라도 원하면, 격월 말에 편입시험을 봐서 합격해야만 편입이 되었다.[7] 아마도 1995년 처음 개강한 재학생반 인원을 포함시킨 수치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학생반 규모는 크지 않았고 학생 수준도 상위권이라고는 하지만 재수생반에는 미치지 못했다.[8] 특히 국어에 해당했던 언어 영역이 제일 괴리가 심했다. 학력고사 시절에는 내신식 암기 시험이였지만 수능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9] 강남 종로학원은 1995년 설립되었으나 처음에는 재학생 학원으로만 운영되다가 1998년부터 재수생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10] 하지만 일부 강사들은 너희는 학생도 아니고 고졸 실업자라고 깠다. 물론 정신을 다잡으라는 의미로 그런 거지만...[11] 다른 영역은 그래도 종로가 뒤쳐질게 없었는데 문제는 언어영역에 있었다.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 성격 자체가 학력고사 시절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종로학원이 상대적으로 고전한 언어영역에서 대성학원 강사들이 빠르게 트렌드를 잡아 적응하거나 수능을 잘 아는 신규 강사들을 데려와 언어영역은 대성학원이 적응을 잘 했다고 볼 수 있다. 종로학원/강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특유의 언어과 문화까지 더해져 언어영역에서 약점을 많이 보였다.[12] 재학생반은 1995년에 개원했고 재수생반은 1998년부터 모집했다.[13] 정태영 대표가 취임하기 전 이루넷 대표이자 차남인 정해승에게 물려줄거라는 시각도 있었다. 같은 학원업을 했고 종로학원의 도움없이 맨손으로 이루넷을 창업해 성공시켰으니. 그러나 장남이 아니어서 밀려났는데 만일 차남에게 물려줬더라면 성장 둔화 내지 하락세를 막았을거라는 의견도 있다. 어쨌거나 직접 신경썼을테니..[14] 당시에 서울대보다 종로학원 입시가 더 어렵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었다.[15] 그렇다고 종로학원이 그렇게 공부 환경이 좋으냐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막상 학원생들은 종로학원에서는 술마셔서 망하고 대성학원에서는 당구쳐서 망한다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애초에 공부 분위기 좋은 재수학원은 산속 기숙학원 뿐이다. 그런데 산속 기숙학원에서도 연애 스캔들이 많이 일어난다.[16] 2015년부터는 노량진에도 종로학원이 생겼다. 단, 새로 개원한 것은 아니고 기존에 있었던 중앙학원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17] 신축건물에 임대로 이전.[18] 강남 종로학원은 1995년 처음 설립되었는데 처음에는 고등학교 재학생반만 운영하다가 98년부터 재수생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19] 1990년대 후반에는 술먹고 만든 문제도 있었다고. 사실 모의고사 단가가 타 학원보다 높기는 했으나 강사들 입장에서는 그것도 짜다고 했다는데... 박영훈 강사가 종로 모의고사 출제 의뢰를 받을 때 단가가 높아서 깜짝 놀랐는데 그럼에도 답이 잘못 표기된게 많아 왜 대우는 잘 해주는데 문제는 이럴까 하고 의문을 가졌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20] 그래서인지 월례고사나 핵심체크에서 의심이 가는 문제를 물어보면 그 문제는 안 봐도 된다고 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21] 독재관 기준이다. 정규반은 2017년 개강.[22] 입시설명회나 특강 등으로 정규반 교실들을 못 쓰게 될 경우 대피소로 쓰인다.[23] 오전 조회시간에 종이로 나눠준다.[24] 정해진 시간을 깜박하면 못 할 수 있다.[25] 유웨이 중앙 소속 유웨이에듀와는 별개의 학원이고 오히려 김영일 컨설팅으로 알려진 학원으로 하늘교육에서 인수한 학원이다.[26] 중·고등학생 대상으로는 방학 시기에만 운영되었다.[27] 해마다 n수 생들이 몇 명씩은 있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종로나 대성 정도의 네임드 학원을 다니는 n수생들은 자기가 다녔던 학원을 계속 다니는 경향이 있다.[28] 국립대학임을 풍자. 실제로 긴급조치 시절 학생시위에 관대했던 한심석 총장은 바로 정권에 의해 짤리고 어용의심을 받는 다른 총장이 선임되었다.[29] 홍대거리앞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이여서 서부지역 유일한 대학가는 신촌이였는데 신촌의 화려한 대학문화를 풍자.[30] 바리에이션으로 술꾼, 촌놈이 있다(...) [31] 지금보다 양성평등에 무지했던 시절이라 이런 가사가 있을 수 있었다. 지금 같으면 난리날 것.[32] 경찰대학은 1990년대 후반 이후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 위기 이전에는 경찰대의 인기가 지금 수준은 아니였으며 무엇보다 이 노래도 대학수준과는 무관하게 인서울 대학교만을 대상으로 한다. 카이스트포항공과대학교가 없는 이유 포공은 어차피 수시 100%로 학생을 뽑아서 포공 들어가려고 재수학원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건 함정[33] 알다시피 짭새는 경찰을 낮춰 이르는 말 중 하나이다.[34] 천주교 계열 학교기 때문. 실제로 총장도 손병두 총장 이전에는 모두 가톨릭 사제 출신이었다.[35] 조선 성균관 시절 입학생이 대부분 선비였기 때문.[36] 이화여대와 대비시키며 비하하는 의미.[37] 훈장은 교사를 낮잡아 이르는 말 중 하나이다.[38] 원래 한양대는 공대가 강한 학교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기, 후기대 입학이 나뉘어 있을때 서울대 공대에 떨어진 학생들이 한양대 공대에 가는일이 많았다. 비슷한 예로 서울대 인문대나 법대에 떨어진 학생들이 성균관대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양교는 1980년대부터 전기대로 전환했으나 간간히 극소수 인원을 후기 분할모집 했다.[39] 알다시피 중앙대는 서라벌예술대학을 70년대에 인수해서 예술대학이 상당히 강한 학교다.[40] 튀기(혼혈)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여러 외국어를 다룬다는 풍자. 여담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역대 총장은 모두 내국인이었다.[41] 구 신흥무관학교로써, 초기에 군인을 많이 배출해낸 것을 풍자했다.[42] 원래 중구 필동이지만 주로 충무로로 부른다.[43] 불교 대학임을 풍자했다. 총장도 스님.[44] 캠퍼스를 용인으로 이전하기 전에 추가된 듯 하다.[45] 한남동엔 의외로 졸부 가문 비중이 높다.[46] 홍익대는 알다시피 미대가 굉장히 강한 학교이다.[47] 주변에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것을 풍자했다.[48]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지금은 방송대라고 부르나 그시절에는 '방통대'로 통칭.[49] 방송으로 강의를 하는 것을 풍자. 절대 모 정치인의 이니셜이 아니다.[50] 도핑에 관련해서 약쟁이라고 풍자했다.[51] 그런데 위 예시를 보면 알겠지만 비하의 내용이긴 해도 최소한 어느 정도 서열 있는 대학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언급되지 않은 대학은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학교의 특색도 없다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대학 재학생들은 여대빼고 그리 기분나빠하지 않았다고 한다.[52] 이 시기 서울역에 있던 본 건물을 새로 짓느라고 충정로에 잠시 이전해 있었다. 해당 건물은 2012년 현재는 세무사시험 학원으로 사용되고 있다.[53] 채록 시점인 90년대 말 기준임. 위에서 말한 리즈시절(90년대 초)에는 1.5% 밖은 종로학원을 오기가 어려웠다. 물론 여기서의 1.5%는 고3때 친 종로학원 모의고사중 가장 잘본것 기준.[54]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80년대 후반 학번부터 풍자와 재미를 목적으로 술자리에서 부르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수 없고..."로 바꿔 부른다거나, "이기자 대한건아"라는 노래의 "우리들은 대한건아 씩씩하고 용감하다"를 "좌파학생가"(...)로 바꿔 부른 일화가 있다. 가사는 "우리들은 좌익학생 장면 먹고 전거 타고 남가동 북가석버스 타고가요 길을 갈땐 왼쪽으로 화장실도 왼손으로 이기 이기 이겨야 한다 이겨서 보답하리 김진 만만세"(...) [55] 놀라운 일이지만 고등학교 운동권도 존재했다! 4.19 혁명이 고등학생의 주도 하에 일어난 것을 상기해보면 놀라운것이 아니다. 그러나 70년대에 학교 평준화가 시작되고(사실 6.3 항쟁, 3선개헌 반대투쟁, 유신 반대운동 당시 명문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도 적지 않은 시위가 있었는데, 이는 학교부심이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데모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던 학생들) 80년대의 공포정치, 87년 민주화 이후 느슨한 사회분위기를 타고 고등학교 운동권은 80년대 말을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진다.[56] 학교 정문에서 바로 보이고, 짧은 횡단보도만 건너면 종로학원 입장.[57] 종로학원이 중림동(서울역 뒤)로, 대일학원이 서울역 앞으로 이사갔지만, 다른 대부분의 학원들은 지가가 싼 노량진역 인근에 자리잡았다. 이 때부터 노량진 학원가가 시작되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대학가기가 어려웠고 상대적으로 대학생의 취업이 쉬었던 시절에는 노량진역의 수많은 학원들(대성학원, 정진학원, 한샘학원, 중앙학원 등)이 거의 대부분 대학입시학원이였으나 외환위기 이후 취업이 힘들어지고 반대로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로 재수생 비중이 적어지자 노량진의 학원들은 하나둘 대입학원에서 취업(공시 등)학원으로 바뀌었다.[58] 지금의 서초종로학원과는 다르며, 해당 학원은 본래 중앙학원이라는 별개의 학원이었다.[59] 원래는 서초종로엠이었으나 2011년부터 종로엠브랜드를 사용하지 않는다.[60] 배치표만 해도 대성학원보다 우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