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세력권의 땅이었다가 신라에 병합되었고 사서나 창녕 척경비 등에서 비자화군(比自火郡), 비자벌(比子伐), 비자본(比自㶱) 또는 비사벌(比斯伐)이라고 칭해졌다. 신라 때인 555년(진흥왕 16) 하주(下州)라 불렀다. 757년(경덕왕 16) 화왕군(火旺郡)으로 개칭하였다. 당시 창녕은 양산시에 치소가 있는 양주 소속이었다.
1914년영산군의 대부분 지역이 창녕군과 합병되었다. 1931년 남곡면을 남지면으로 개칭하였다. 1955년에 창락면을 창녕면에 병합하였다. 1960년 창녕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63년 남지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1년 남지읍에 고곡출장소를 설치하였는데, 1998년 행정조직 개편으로 고곡출장소가 폐지되었다.
낙동강이 군 서쪽과 남쪽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크게 남지-영산으로 이어지는 남부 평야지역과 창녕읍을 중심으로 한 북부 구릉지역으로 지형이 구분된다. 산세가 험하지는 않지만 군 전체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인 우포늪이 있다.
영산면을 기준으로 북쪽의 창녕읍을 중심으로 한 창녕 북부는 대구광역시 생활권이지만 이남의 남지읍/영산면을 중심으로한 창녕 남부는 창원시 생활권이다. 남부권의 주민이 대구에 갈 일은 창원에 마땅한 시설이 없을 때 한정이며, 마찬가지로 북부권의 주민이 창원에 갈 일은 주로 도 행정업무관련의 일 뿐이다.
군청소재지인 창녕읍은 군의 북부인 고암면, 성산면,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 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군내의 또다른 읍내인 남지읍, 영산면과 부곡온천지구의 부곡면은 창녕읍을 생활권으로 크게 두지 않는다. 따라서 군내에서 창녕읍이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군들에 비해서 제한적이다. 그나마도 십이리로 대표되는 대합면, 성산면은 대구테크노폴리스 개발 이후 현풍, 대구로 생활권이 종속되는 추세다. 그래서 외지에서 출생지가 어디냐고 듣게 되었을 때 창녕군 부근의 지역이면 바로 읍면 단위로, 다른 지방이면 창녕 xx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1914년까지는 창녕과 영산이 각각 독립된 군으로 따로 존재했고, 현재도 마을이 완전히 몰락한 건 아니기에 영산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인구 유출 및 노령화의 심각성이 창녕군에서도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유는 역시 10대와 20대의 유출이 크다, 과거의 경우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창녕에서 입, 졸업한 후 취업이나 창업을 창녕군내에서 하는 청년들도 많았으나 이후엔 인프라가 좋은 가까운 대구나 창원, 부산에 있는 학교와 회사로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
창녕군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창녕군 내 취업 혜택 등을 고려하고 있으나 여전히 인구 유출이 심각하며 이 현상이 해결될지는 미지수 .
부곡하와이를 끼고 있는 부곡온천과 우포늪, 화왕산이 유명한데, 화왕산은 억새로 유명하지만 흑역사급 사건인 화왕산 억새 태우기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부곡하와이는 지금의 대형 워터파크에 비하면 유명세가 많이 죽었지만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수영장 시설의 본좌급으로 취급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캐리비안 베이와 비슷한 네임밸류. 그러나 경영난으로 2017년 5월 28일에 폐업해버렸다.[19]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창녕을 대표하는 곳 중 한 곳이다. 어느 정도냐면 창녕에 살던 사람 말고는 심지어 경남 사람조차 창녕이라고 하면 이름도 제대로 못 알아 들을 정도인데 부곡하와이라고 하면 '아 그게 창녕에 있구나'하는 반응은 보인다.
우포늪이 더 유명할 수는 있지만 여기는 지역 관광지 스케일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습지의 자랑!'이라는 느낌이라 그런지 창녕을 대표한다는 인식이 잘 안든다(...). 오히려 따오기가 더 창녕을 대표하는 느낌이다. 마치 우유니 사막이 사진작가라면 꼭 가보고 싶은, 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임이 틀림없지만, 막상 사람들에게 그게 어디 있냐고 물어봤을 때 '볼리비아'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과 같다.
, 술정리 3층석탑, 하씨초가, 석빙고, 송현리, 교동 고분군 같은 역사유적이 많고 근교에 우포늪, 화왕산 등의 자연유산도 많아 문화답사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제2의 경주'라고 불릴 정도...라는데 실제로 경주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좀 든다. 교동 고분군 등 가야시대의 왕릉, 귀족급 무덤들도 백제, 신라, 대가야 같은 큰 나라 수도도 아니었던 곳이 봉분 크기가 상당해서 창녕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온 사람들은 살짝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 관리상태가 열악해서 이런 점이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일제가 가야시대 고분군 사이로 도로를 놓아버린 상황을 해방 이후에도 도로를 들어내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으며, 국보 제34호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과 보물 제1739호 영산석빙고 같은 곳은 창녕읍과 영산면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면 알겠지만 꼬마들이 기어오르는 놀이터나 마찬가지로 방치[22]
영산석빙고는 비료포대만 있으면 가히 사시사철 탈 수 있는 자연 썰매장급이었고, 게다가 춥거나 더우면 석빙고에 들어가서 휴식...
되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나 체계적인 문화재 관리에 들어간 모양이지만 화왕산 참사가 일어나는 바람에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다. 부곡을 제외하고는 관광 부진에 시달리고 있어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지만 관리가 소홀했고 관광 자원으로의 연계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충청남도공주와 비슷한 면이 있다. 2017년 현재는 다른 군소재지 관광지들에 비하면 그럭저럭 깔끔하게 정비가 됐거나 하는 중이다.
영산쇠머리대기
영산면 일대에서 매년 3.1마다 1961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민속행사가 있다. 영남권 최초로 영산면 일대에서 3.1만세 운동이 있었던 것을 기리는 위령제와 함께 영산면 일대의 정원대보름 민속행사인 무형문화재 제25호 영산쇠머리대기[23]
목우전(木牛戰)으로도 불린다.
와 진잡이놀이, 무형문화재 제2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에 등재된 영산줄다리기 재현행사가 벌어진다. 그 외에도 노래자랑, 초청가구공연, 각종 민속행사, 풍물놀이 등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시골축제 스타일이다.
낙동강을 끼고 있으며 합천창녕보, 창녕함안보 2개의 보가 있다. 창녕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시계방향으로 경계를 따라 전부 낙동강인데 차를 타고가면서 보면 풍경이 꽤 좋다.[24]
대체로 외진 곳에 있는 주제에 너무 광활해서 함부로 버스나 택시를 탔다가는 제때 못돌아갈 수도 있어서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차가 없다면 남지읍으로 가면 낙동강을 볼 수 있다. 특히 남지유채축제를 강변에서 열기 때문에 이때 가면 낙동강과 수많은 꽃을 볼 수 있다. 또한 낙동강변을 따라 국토종주를 하면 지나게되는 자전거도로가 있다. 전반적으로 되게 힘든 코스이며 이렇다할 거점은 남지읍 밖에 안지나가므로 만약 그 전에[25]
대신 상류에서 내려갈 때 만이다. 하류에서 올라간다면 선택지가 임해진 근처나 길곡면 밖에 없는데 여긴 수구레국밥만큼 유명하지 않다.
일반적인 관광객은 이수근처럼 창녕읍에서 먹으면 되지만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면 창녕읍을 근처도 안 지나간다. 그러므로 이방에서 먹으면 된다. 물론 장터식당이 아닌 건물식당조차 4,9일 5일장만 장사를 하니 아무 날이나 가면 2개의 선의의 경쟁중인 중화요리만 먹게 될 것이다. 애초에 창녕수구레국밥은 이방수구레국밥을 외지인이 알기쉽도록 더 큰 단위로 부르는 것이다.
을 먹고 근처 마트에 들르면 된다. 굳이 가볍게 자전거를 타고싶다면 남지읍이나 창녕함안보 기준으로 하류 쪽에서 타면 된다.
좀 뜬금없지만 김정일, 김정남과 관련이 있는 석리 '창녕 석리 성씨고가'도 있다. 석리는 창녕 성씨의 집성촌으로 1850년대에 성규호라는 사람이 이주해 와서 일가를 이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번성해 한때 일대의 논과 밭이 성씨 집안의 것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대지주 집안이었다. 이 집안은 양파를 국내에 처음 재배에 성공해 보급했다고 하며 그래서 양파 시배지가 집 앞에 있기도 하다. 성규호의 손자 중 '성유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좌익 성향의 그 시대 인텔리로서 남로당원이었다고 한다. 성유경은 6.25 전쟁 중 두 딸을 포함해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월북했는데 그 두 딸이 바로 성혜랑과 성혜림이다. 성씨 고가 및 성씨 집안은 성유경의 월북 이후 큰 고초를 겪어 한때 폐허가 됐으나 2000년대에 성규호의 종손인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이 대대적으로 보수해 현재 소유하고 있다.[28]
성기학 회장의 아버지 성재경이 성유경의 사촌이기 때문에 성기학 회장에게 성유경은 5촌 당숙, 성혜림은 6촌 재종형제가 된다.
1. 풋고추(고추):양파와 마늘에 이어서 창녕의 세번째 특산물로 불린다, 낙동강 인근의 물 빠짐이 좋은 사질양토와 비옥한 토질을 배경으로 남지읍 지역에서 1954년부터 시설재배를 하여 국내 시설재배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 현재 남지 유채꽃밭 부지가 원래 광할한 고추농지였으나 이후 제방 보수공사 및 강변 공원화로 인해 많이 줄어들었다 70년대~90년대까지 창녕읍 오리정 구 공설운동장 일대에 대규모 고추거래시장이 주기적으로 열렸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 그 규모가 상당히 줄었으며 현재는 지역 특산물 살리기 활동으로 간간히 소규모로 예전 공설 운동장 자리에서 고추장터가 열린다
2. 마늘: 전국 1위의 마늘재배지이며 생으로 먹는 마늘인 대서마늘의 주산지이다. 깐마늘은 대량 소비처인 음식점에서 주로 소비된다. 최근 맥도날드점포에 창녕 갈릭 버거로 납품하면서 수요가 증가했다.
3. 농사꾼양심쌀: 청정우포늪의 창녕에서 생산된 고품질 쌀을 롯데마트 등 인터넷 판매로 밥맛이 좋은 품종을 재배하여 연간 18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4. 단감: 천혜의 국내최대 자연습지가 잘 보존된 우포늪 주변에서 생산된 친환경 단감이다. 전국 단감품질평가에서 우수상했다고.
5. 오이: 창녕오이는 아삭아삭하고 수분이 많아 품질이 우수하며, 칼슘과 비타민C가 풍부하여 여성들의 피부미용, 숙취제거, 이뇨작용에 효과가 크다.
6. 양파: 창녕양파는 구가 크고 육질이 단단하여 저장성이 높다. 비타민과 무기염류를 함유하여 감기, 불면증, 고혈압 예방 및 치료에 좋다.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에 시배지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맨 처음 기른 곳이 창녕이다. 생으로 먹어도 안매울 정도로 물이 많고 달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각각 창녕 양파, 창녕 마늘로 등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화왕산 미나리' 또한 유명세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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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4월 기준 행정안전부주민등록인구현황.[2] 2024년 4월 기준.[3] 창녕군 가선거구 (창녕읍, 유어면, 지면): 하종혜, 신은숙, 홍성두. 창녕군 나선거구 (고암면, 성산면, 대합면, 이방면): 김재한, 노영도. 창녕군 다선거구 (남지읍, 길곡면, 부곡면): 이동훈, 김종호. 창녕군 라선거구 (계성면, 영산면, 장마면, 도천면): 이승렬, 박상재. 비례대표: 이가은.[4] 비례대표: 김정선.[5] 창녕군 제1선거구 (창녕읍, 고암면, 성산면,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6] 창녕군 제2선거구 (남지읍, 계성면, 영산면, 장마면, 도천면, 길곡면, 부곡면).[7] 위의 창녕군 전체 인구와 달리 통계청 총조사에 주로 기반하여 총합과 다른 년도가 있을 수 있음.[8]사진 출처[9]사진 출처[10] 정확히는 화왕산성이다.[11]사진 출처[12]사진 출처[13] 2019년도에 조례를 고쳐서 재지정하였다.[14]장녀, 차녀와 마찬가지로 창녀와 단어 배열이 매우 비슷한데 문제는 창녀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다. 앞에 경상남도를 붙이거나 뒤에 군을 붙이는 게 좋다. 실제로 브베에게 패드립을 날릴 목적으로 창녕 단어를 쓰는 경우가 있었다.[15]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군청길 1 (교리)에 위치. 경상남도청과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16]관련 법령. 실질적으로는 합천군 중·북부(합천군 남부는 진주시 생활권이다.), 거창군 등까지도 대구 광역 생활권에 들어간다.[17]유가읍 본말리 마을과 이어져 있다. 비슷한 예로 대합면 목단리도 구지면 목단리와 마을이 이어져 있다.[18] 위의 창녕군 전체 인구와 달리 통계청 총조사에 주로 기반하여 총합과 다른 년도가 있을 수 있음.[괄호] AB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9]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창녕을 대표하는 곳 중 한 곳이다. 어느 정도냐면 창녕에 살던 사람 말고는 심지어 경남 사람조차 창녕이라고 하면 이름도 제대로 못 알아 들을 정도인데 부곡하와이라고 하면 '아 그게 창녕에 있구나'하는 반응은 보인다.[20]우포늪이 더 유명할 수는 있지만 여기는 지역 관광지 스케일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습지의 자랑!'이라는 느낌이라 그런지 창녕을 대표한다는 인식이 잘 안든다(...). 오히려 따오기가 더 창녕을 대표하는 느낌이다. 마치 우유니 사막이 사진작가라면 꼭 가보고 싶은, 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임이 틀림없지만, 막상 사람들에게 그게 어디 있냐고 물어봤을 때 '볼리비아'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과 같다.[21]진흥왕 순수비 중 하나.[22] 영산석빙고는 비료포대만 있으면 가히 사시사철 탈 수 있는 자연 썰매장급이었고, 게다가 춥거나 더우면 석빙고에 들어가서 휴식...[23] 목우전(木牛戰)으로도 불린다.[24] 대체로 외진 곳에 있는 주제에 너무 광활해서 함부로 버스나 택시를 탔다가는 제때 못돌아갈 수도 있어서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25] 대신 상류에서 내려갈 때 만이다. 하류에서 올라간다면 선택지가 임해진 근처나 길곡면 밖에 없는데 여긴 수구레국밥만큼 유명하지 않다.[26] 이방장은 4,9일에 서는 5일장이며, 무심사에서는 걸어서도 몇 분 안 걸린다.[27] 일반적인 관광객은 이수근처럼 창녕읍에서 먹으면 되지만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면 창녕읍을 근처도 안 지나간다. 그러므로 이방에서 먹으면 된다. 물론 장터식당이 아닌 건물식당조차 4,9일 5일장만 장사를 하니 아무 날이나 가면 2개의 선의의 경쟁중인 중화요리만 먹게 될 것이다. 애초에 창녕수구레국밥은 이방수구레국밥을 외지인이 알기쉽도록 더 큰 단위로 부르는 것이다.[28] 성기학 회장의 아버지 성재경이 성유경의 사촌이기 때문에 성기학 회장에게 성유경은 5촌 당숙, 성혜림은 6촌 재종형제가 된다.[29] 창녕군 홍보단이 창녕 갈릭 버거를 주제로 창녕군 공식 블로그에 포스팅 하려는데, 버거를 먹으러 창원 내서까지 갔다고 한다.[30] 임기 중 사망.[31] 당시 지역구는 서울특별시구로구 을이었다.[32] 임기 중 사망.[33] 아버지는 창녕군 축구협회장을 역임하고 있다.[34] 지역구: 부산광역시사하구 갑.[35] 과거에 서울특별시동대문구 을 지역구였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광역시수성구 을에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