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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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멀티 엔터테이너.
2000년대 초 가요계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 광고에서 대한민국에 장나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을 넘어 중화권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솔로 아이돌 가수이며, 현재는 배우로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001년 데뷔 이후 엄청난 기록을 남긴 멀티 엔터테이너이다. 2001년 데뷔 후 가요대상과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휩쓸었으며, 다음 해인 2002년에는 지상파 드라마 주연을 맡아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지상파 가요대상을 2회 수상했으며, 예능 MC로 활약하며 연예대상에서도 상을 휩쓸고 광고계에서도 가장 높은 모델료로 활약하는 등 신드롬급의 인기를 구가했다. 2002년을 월드컵과 장나라의 해로 부를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2. 특징[편집]
2.1. 외모[편집]
2023년 기준 만 43세, 세는 나이로 43세이며, 동안하면 떠오르는 연예인으로 2011년 kbs2에서 방영된 드라마 '동안미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되었으며 한동안 동안미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2004년 MBC '사랑을 할거야' 드라마 촬영 당시 사진 데뷔 7000일 당시 사진. 7000일은 데뷔 19년차다.
30년 동안 늙지 않는 장나라
슈가맨 2 출연 당시(37세)에는 박나래가 장나라에게 언니라고 하자 객석에서든 MC들이든 "뭐? 누가 누구 보고 언니라고?" 라며 술렁대거나[11] 20대 방청객이 인터뷰 당시 장나라에게 별 생각 없이 '언니' 라고 했다가 "아.. 언니 맞나..?" 라며 당황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심지어 러블리즈 케이(1995년생), 유지애(1993년생)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띠동갑 차이 나는 동생들이 맞나 싶을 만큼의 위화감 제로의 동안력을 뿜어내고 있다.[12] 유지애와 케이도 상당한 동안인데 그 동안마저 따라 잡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고백부부에선 설정상 38세에서 20세로 되돌아가는 시대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30대 후반으로는 안 보여서 오히려 주름을 넣고 노메이크업으로 나이 들어보이게 보정을 했다고 한다.[14] 또한 2018 SBS 연기대상에서 수목극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던 도중 (2분 24초부터) "제가 인제 서른아홉이 됐는데…"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놀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제목에 “투표 백날 해봐라! 나라 안바뀐다!”라는 제목에 글 내용이 장나라의 여러 나이대의 사진을 올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낚시글도 있다. #
2.2. 취향[편집]
만화 매니아라고 한다. 지인에 의해 알려진 건 아니고 본인이 만화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해왔다. 그래서 2003년 첫 단독 콘서트에서 카드캡터 사쿠라, 세일러 문, 은하철도 999 등 여러 만화 주제가를 불렀으며[15] 콘서트에 좋아하는 순정 만화가들을 초청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팬들에게도 만화책을 자주 선물받았다. #
일간스포츠에서 <장나라의 만화소녀 삼매경> 이라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었다. 스포츠 신문의 만화 면에 실렸던 만화 소개글이었다.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고 매주 만화 몇 가지를 소개하는 정도였지만, 편집자가 주제만 정해주고 작품은 장나라가 직접 골라서 글을 썼다고 한다. 2004년 3월 8일까지 30회가 연재되고 종료됐다. 지금도 일간스포츠의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
1대 100 498회에서 2인 팀으로 출연한 절친 이수영, 박경림이 장나라를 보고 웬만한 만화는 다 본 만화광이라고 인정했다. 이날 6단계에서 아기공룡 둘리와 관련된 문제가 나왔을 때[16] 전화 찬스로 도움을 주었다.
고백부부의 제작발표회에서 원작 웹툰을 봤냐는 질문에 새로 시작하는 웹툰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챙겨본다고 말했다. 원작 웹툰에 대해서는 소재 자체는 재밌는데 좀 야하다고 했다. # 자신이 좋아하는 하일권 작가의 작품을 보려다가 메인 제일 위에 떠 있길래 보게 됐다고. #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구매한 만화책 사진을 올리거나 추천하는 만화를 올리기도 한다.
별개로 짱구는 못말려 3기 4화 2파트(일본 방영일자 불명) '복권을 샀어요'에서 '장나리' 누나로 로컬화되어 짱구 상상 속에서 등장했다. 한국 방영시기는 2003년도로 장나라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로, 당시 장나라의 영향력, 인기를 알 수 있는 부분. 이후 2009년 9기 15화 1파트로 다시 방영되었다. 또한 네모바지 스폰지밥 시즌 1기 15회 1파트 '꿈나라 여행'에서 징징이 꿈에 들어간 스폰지밥이 황제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황제가 '그래서 탤런트 장나라가 누구랑 사귄다고?'라고 물어본다.[17]
3. 활동 내역[편집]
3.1. 데뷔 후 2004년까지[편집]
- 드라마 - 타이틀롤로 시청률 40% 돌파, 최고 출연료
- 음반 - 2002년 양대 지상파인 KBS, MBC의 가요대상 대상 수상
- 영화 - 당시 여배우 최고 개런티 기록 경신
2001년 5월 2일 1집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데뷔했다. 이후에 밝은 컨셉으로 음반과 드라마를 성공시킨 것과 달리 섹시 + 보이시한 컨셉이라 방송에서 데뷔곡 이야기만 하면 본인이 매우 쑥스러워한다. 하지만 소속사의 홍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던 찰나, MBC 음악캠프 순위소개 VJ를 하던 모습을 뉴 논스톱의 김민식 PD가 보고 전격적으로 시트콤의 주연으로 캐스팅하게 된다. 스탭들을 다 모아놓고 대본을 읽어보라고 시켰더니 자연스럽게 잘해서 바로 투입된다. 장나라 본인 말로는 데뷔 앨범이 반응이 없어 거의 접을 시점에 캐스팅되었다고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CF를 쓸어담는 수준이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장나라의 광고를 종합한 '장나라의 하루'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냥 이 시기의 광고모델이 장나라 1명인 수준이었다. 소주도 장나라, 자동차도 장나라, 화장품도 장나라, 통신사도 장나라, 치킨도 장나라, 햄버거도 장나라, 우유도 장나라, 음료수도 장나라, 교복도 장나라, 과자도 장나라, 라면도 장나라, 카레도 장나라, 아이스크림도 장나라, 샴푸도 장나라, 의류도 장나라, 심지어 대선광고에 KBS 로고송까지 그냥 한국 자체가 장나라 판이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열리던 시기에 ''월드컵도 이긴 장나라의 인기"'라는 기사까지 나왔다. "안정환 오빠 한 골만~" 하고 입술을 들이대는 이동 통신사 광고는 배경도 없이 장나라의 얼굴 클로즈업으로만 분량을 채웠지만 엄청난 히트를 쳤다. 장나라가 광고에서 언급한 선수들이 골을 넣는다는 (말도 안 되는) 장나라 징크스가 언론의 한쪽을 차지할 정도였다.[21]
이 시기쯤 대한민국 남성의 절반이 장나라를 좋아한다는 설문조사까지 등장했는데,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이 시기 드라마계에서 최고 출연료 대우를 받았었다.톱 탤런트 출연료 치솟는다..장나라.송승헌 등 1회에 1천만원까지
3.2. 띄엄띄엄 한국 활동[편집]
2004년 말부터 2011년까지는 중국에서의 전례없는 성공으로 중국 활동 공백기에 띄엄띄엄 한국 활동했었다.
2007년에는 가수로 복귀해 싱글 '안 행복해' 선공개로 음원차트에 진입하는 파괴력을 보였다. 정규 5집은 타이틀곡 '사랑 부르기'로 활동했다.
그리고 2008년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에 정규 6집 Dream of Asia를 발매했는데, 이게 현재로서는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되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오케스트라와 같이 음악 작업을 하면서 많은 노력이 들어갔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2009년 마음이의 오달균 감독이 연출한 독립영화 '하늘과 바다'에 출연했다. 티라나국제영화제 수상작. 하지만 이른바 '퐁당퐁당'이라 불리는, 대기업 위주의 교차상영에 대한 항의로 제작사가 개봉한 지 2주가 되기 전 영화를 내리는 결정을 했고, 영화 외적으로 부침이 있었다. 개봉 이후 영화를 둘러싼 당시의 논란들은, 영화계 내외적으로 여러 시사점을 던지는 것들이지만, 언론들이 자극적인 단어들로 헤드라인을 장식해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논란의 꼬리표만 더욱 커진 면이 있다.
2003년부터 2011년 동안미녀 출연 전까지 중국활동에 집중 했는데, 지금 같으면 '국위선양했다, 자랑스럽다'라는 식의 반응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비아냥이 많았고 대중도, 언론도, 관계자도 해외 활동(특히 중국)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해외에서는 환호하고 국내에서는 장나라를 위축시켰다. 일례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도 감사패 한 장 주면서 장나라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외교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등 갖가지 국가 행사에 불려다니기만 하면서 소모적으로 이용만 될 뿐이었다. 언론과 국가에게 장나라는 돈 안 받는 대외적 선전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3.3. 이후 한국에서의 연기 위주 활동[편집]
이런 상황에서 어느 장르보다 국내 팬들에게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TV 드라마로 2011년에 무려 6년 만에 컴백. 최다니엘과 출연한 KBS 월화극 '동안미녀'에서, 장나라는 34살이라는 나이와 이름을 속이고 디자이너로 취직한 노처녀 캐릭터를 맡았다. 장나라의 얼굴이 정말로 최강동안인지라 캐릭터에 잘 어울렸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빡셌던 경쟁작들을 제치고 수도권 시청률 18%를 넘기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연장 방영까지 돌입. 사실 그간 공백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는데 좋은 성적을 내면서 원톱으로서 괴력을 보여주며 스타성을 재입증했다.
2012년 1년 만에 복귀한 드라마는 학교 2013으로, 주인공인 기간제 교사 정인재 역으로 출연했다. 대다수의 학생 출연자들이 당시만 해도 거의 신인인지라, 장나라가 실질적으로 수많은 홍보와 시청률 부담을 떠안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장나라가 배우로서 그동안의 로코 속 신데렐라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야기 할 거리가 많은 드라마에 기꺼이 주연으로 출연한 선택에 칭찬이 많았고, 비평가들로부터 연기적으로 호평을 얻었다. 여담이지만 실제 학교에서는 한동안 학생 曰 "선생님이 장나라였으면 좋겠어요." 교사 曰 "니들이 이종석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이 교실에서 공공연히 쓰였다.
이어서 한 시즌 만에 MBC의 수목극 '미스터 백'의 여주인공 은하수 역으로 출연하며 LTE급으로 복귀하여 화제를 모았다.[29] 상대역으로 신하균이 출연했으며, 첫 방 시청률은 무려 14.3%로 2014년에 방송된 드라마의 최고 첫 방 시청률이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사고가 일어나는 등 여러 영향으로 시청률이 점점 하락해 평균 시청률은 10%대로 종영했다.
장나라 개인으로서는 2014년 한해 동안 두 작품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미스터 백에서의 호연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30] 을 수상했다. 거기다 출연하는 드라마들이 최소 중박에서 최고 대박까지 기록하며 나름대로 좋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는 평을 얻었다.
2015년에는 KBS 월화극 '너를 기억해'에서 특수범죄수사팀 소속 경찰인 '차지안' 역을 맡았다. 초반 어려운 스토리로 시청자를 잡지 못해 시청률은 낮았지만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덕분에 드덕들이 굉장히 많아서, 드갤도 굉장히 활성화됐던 작품이다. 덕분에 팬들끼리 팬아트와 리뷰도 쏟아져 종영후 블루레이 제작과 팬들은 리뷰북을 선물하는 등 종영 후까지 여운이 오래남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2016년에는 1월부터 방송된 MBC 수목 미니시리즈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 주인공 '한미모'로 출연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갈수록 개연성 떨어지는 스토리와 상대작[31] 의 초히트로 시청률이 점점 떨어져 장나라 작품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작품이다.
2020년 tvN '오 마이 베이비'에 출연했다. 11시라는 극악한 시간대에 수목 각각 엄청난 경쟁작들과 붙으며 분전했다.
2021년에는 고백부부 이후 4년 만에 KBS로 복귀해서 드라마 대박부동산에 출연해 극 중 대박부동산의 사장이자 퇴마사인 '홍지아' 역으로 카리스마 담긴 연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3.4. 중국 활동[편집]
최고의 여성 연예인에게 붙는 "천후"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그냥 레전드라고 보면 된다.
드라마 찍으면 대체로 1위, 앨범 내면 엄청 팔린다. 여러 차례의 자선 기부 등으로 중국에서의 이미지도 좋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한 언론에서 실시한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 10인' 중 1위에 선정되는 일도 있었다. CF 역시 엄청나게 찍고 있으며, 콘서트도 자주 한다.
코믹풍 사극인 '띠아오만 공주(刁蛮公主)'[34] 에 주연으로 출연. 당나라를 배경으로 멸망한 수나라의 마지막 공주가 좌충우돌하는 코믹극으로, 중국 중경에서 첫 방영했는데 당시 기록한 8.5% 시청률은 중국 전체에서 1위[35] (2위 시청률이 4%였다고 하니 압도적인 시청률이다.). 이후 각 도시에서 순차방영 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400여 방송국에서 2년에 걸쳐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사기꾼 기질의 남장미녀라는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사랑받는 소재의 드라마 중에서도 이만큼 히트한 작품이 드물 정도. 장나라 특유의 귀여움이 매우 잘 어필된 작품으로 이후 중국에서는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빅스타로 대접받고 있다. 2007년 트렌디드라마 '순백지련'도 시청률 1위를 기록 후 고공행진했다.
중국에서 가수로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쳐서 2003년 올해의 한국 가수상, 2005년 대륙 최고 인기 가수상, 아시아 최고 여자가수상을 받았다. 대륙 최고 인기 가수상은 현지가수와 모두 경쟁해서 받은 최고 인기가수상이다.
한국에서 2001년 이후 드라마 연속 대박을 터뜨리면서 최고 여배우가 되었고 가수로서도 2002년에 지상파 올해의 가수상을 휩쓸었던 것을 중국에서도 재현해낸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그리고 그 주제가 '베이징환잉닌'에 중화권 최고 스타들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단 한 명의 외국인이 바로 장나라였다.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가 단 한 명의 외국인을 초대한 것은 일대 사건이다.
2010년에는 드라마 '철면가녀'에서 순진한 시골처녀에서 미혼모가 되어 남자에게 버림받으며 망가지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줄거리는 한두 줄로 요약하기 힘든 스토리로 막장 비극에 가깝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장나라의 연기가 매우 좋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0년 말 '황가교의(皇家娇医)'라는(부제로 '띠아오만 어의(刁蛮俏御医)'가 붙어있다), 남장여자가 어의가 되는 사극에 출연했다. 전작인 띠아오만 공주(刁蛮公主)와 너무 비슷하다는 반응은 있었으나 2011년 첫 방송을 시작한 산둥성과 광둥성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해서, 중국 전역에 위성방송으로 편성됐다. 이 드라마는 실질적으로 장나라 측에서 직접 제작해 배급하는 드라마라서 수입이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황가교의(皇家娇医) 속편으로 띠아오만 공주(刁蛮公主) 결말에서 이어지는 시즌 2에 해당하는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가 예정되어 있었다. 장나라, 출연 中드라마 3편 발표에 따르면 한류스타 장나라가 2010년 6월 9일 중국 상하이 드라마 페스티벌에 참석해 중화권과 한국, 일본 언론을 상대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는데 이날 제작 발표회에선 장나라가 현재 출연 예정이거나 이미 촬영을 끝낸 3편의 작품이 소개됐다. 장나라가 출연하는 작품은 ‘철면가녀(鐵面歌女)’, ‘황가교의(皇家嬌醫)’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 등 3편으로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는 2012년 한중교류 2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장나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띠아오만 공주’의 후속작 격으로 쌍둥이 아들을 낳은 띠아오만 공주의 마지막 회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며 30부작 사극이라고 장나라가 참석한 제작발표회에서 소개되었다. 정재연, "'띠아오만 어의'를 끝내고 '띠아오만 황후'까지 찍는다" 기사에 따르면 장나라의 사촌언니 정재연씨의 인터뷰가 있는데, 중국은 드라마를 몰아서 찍는 시스템이라 띠아오만 어의를 찍고나서 띠아오만 황후까지 찍는다고 인터뷰를 했다. 정재연씨가 장나라의 사촌언니고 측근인만큼 당시에는 신빈성이 있다고 보았으나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1년 현재까지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는 중화권에서 제작되지 않아 많은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안겨주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2008년에 있었던 중국 방송사들의 저작권 분쟁 때문이다. 장나라 ‘띠아오만 공주2’ 저작권 분쟁 소지, 제작발표회 돌연 취소 장나라는 당초 2008년 12월16일 중국 베이징에서 '띠아오만 공주 2(띠아오만 어의)' 제작발표회를 열 계획이었다. 장나라는 2005년 이 드라마의 첫번째 시리즈인 '띠아오만 공주'에 출연, 중국 전역에서 방송되면서 중국내 한류스타로 부상했고 현재 2편 제작이 추진 중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저작권과 판권 관련 문제가 불거졌다. 장나라의 아버지 주호성은 홈페이지를 통해 "아직 제작도 안 된 '띠아오만 공주2'의 중국 전역 방영권이 고가에 안후이 위성방송과 호북위성방송에 판매된 사실이 밝혀졌다"며 "판매사는 '띠아오만 공주1'의 3개 제작사 중 한 곳인 광동거성미디어그룹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띠아오만 공주2' 제작사는 1편 제작사와 회사가 달라 저작권과 제작에 관한 인수인계 절차가 필요했는데 '방영권 선판매'로 제작사와 방송사 간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로인해 장나라는 드라마 제작과 관련된 여러 복잡한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띠아오만 공주2'의 제작사 의견을 받아들여 기자회견을 취소하게 됐다. 주호성은 "'띠아오만 공주1' 방영 후 2편 제작에 대한 제의가 계속됐지만 동일한 성격의 2탄 드라마는 싫다고 거절해 왔다. 좀 더 성숙한 성격과 줄거리로 2편을 만드는데 합의하고 내년 봄 촬영하려 했는데 어이없는 일이 발생됐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고 한다.
요약하면 띠아오만 공주(刁蛮公主)의 제작사는 총 세 곳이었는데, 그 중 한곳인 광동거성미디어그룹(广东巨星影业公司)이 띠아오만 공주 2가 제작도 되지않았고 제작사도 전작과 달라 광동거성미디어그룹(广东巨星影业公司)은 띠아오만 공주에 대한 저작권이 없어 띠아오만 공주 2를 제작할 권한이 없는데도 마치 한국 배우 채림을 캐스팅하여 제작을 할 것처럼 굴어 무단으로 '방영권 선판매'를 하여 방영권을 산 방송사 측이 광동거성미디어그룹(广东巨星影业公司)을 고소한다고 하였고 그 여파가 띠이오만 공주 2를 제작할 권한이 있는 공식 제작사에게도 여파가 미쳐 2008년 제작발표회를 중단하게 된 것이다. 즉, 광동거성미디어그룹(广东巨星影业公司)의 사기극에 장나라 및 띠아오만 공주 2 제작사가 피해를 입은 것인데 저 사기그룹의 대표는 등건국(邓建国)이다.
그런데 2년이 지나 2010년 6월 9일 중국 상하이 드라마 페스티벌에 참석해 중화권과 한국, 일본 언론을 상대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는데 이날 제작 발표회에서 등건국(邓建国), 장나라(张娜拉), 고희희(高希希), 양미미(杨媚媚), 양원근(杨远近) 다섯명이 참석하여 장나라가 출연하는 드라마 세편을 소개하게 된 것이 ‘철면가녀(鐵面歌女)’, ‘황가교의(皇家嬌醫)’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 등 3편이었다. 띠아오만 황후 세부적인 정보(제작사,제작자,각본,감독,캐스팅미정) 위 링크를 보면 다섯 명이 서있는데 맨 좌측의 인물이 과거 띠아오만 공주 2 제작관련으로 문제를 일으킨 등건국이며 우측에서 두번째 여성이 띠아오만 공주 2 제작을 담당하게 된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의 대표이사 양미미(杨媚媚)이다. 광동거성미디어그룹(广东巨星影业公司)은 과거 물의를 일으켜 소송을 당하고 거액의 배상을 물어주면서 회사가 기울어졌고 이후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에 흡수합병 되었다고 한다. 등건국이 당시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것은 과거 띠아오만 공주(刁蛮公主)를 제작한 노하우를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렇게되면서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는 문제없이 제작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제작이 무산되고 장나라는 2003년 제작된 중국드라마 '빨간가마'에 출연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를 제작한다고 발표를 해놓고 제작을 하지않은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의견이 띠아오만 공주(刁蛮公主)를 제작한 제작사 중 하나가 광동거성미디어그룹(广东巨星影业公司)이었는데,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에 흡수합병돠면서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의 제작팀이 된 것으로 알려졌고 띠아오만 공주(刁蛮公主)를 제작한 노하우를 인정받아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 제작을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에서 맡기려하자 장나라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다는 의견이 있다. 등건국이 장나라 측에 끼친 피해는 꽤 깊었기 때문이다. 장나라 황당, '누드신때문에 출연거부? 또 돈?" 기사에 따르면 2005년 당시 장나라가 중국의 모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누드신이 있어 장나라가 출연거부를 했는데 이미 받은 출연료를 돌려주지 않는다고 이 제작사가 장나라와 장나라의 소속사인 광동거성미디어그룹(广东巨星影业公司)을 고발한다는 내용과 장나라의 아버지 주호성은 제작사의 주장을 부인하며, 마이데일리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출연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거성과 소속사도 아니고 장나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거성이란 회사가 어떻게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고, 물론 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거성 측이 띠아오만 공주 2를 제작한다며 사기극을 거하게 벌였기때문에 누드신이 포함된 영화에 출연한다며 출연료 받고 먹튀한다고 제작사가 고발한다고 한 것도 거성 측의 사기극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연히 장나라 측에서는 등건국이 몰락하여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의 직원이 되었다한들 그와 그의 제작팀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가 담당하는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 출연을 거부하고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기를 요청하여 제작사인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에서 '빨간가마'를 추천하여 이 드라마에 출연을 한 것이라는 네티즌의 의견이 있었는데 이 의견은 설득력이 있고 띠아오만 시리즈를 둘러싼 다툼이 소개되어 있어 많은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위 링크를 올린 네티즌이 장나라 블로그 및 소속사 츠에 문의를 하였더니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 출연은 빨간가마에 출연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즉, 중국 쪽에서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를 제작 기획을 하여 장나라 측에게 캐스팅을 제의하거나 장나라 측에서 팬 서비스 차원에서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를 제작 기획을 하지 않는한 장나라가 출연하는 띠아오만 황후(刁蛮皇后)는 볼 가능성이 전무하다. 단, 작품의 저작권은 항주거성미디어그룹(杭州巨星影业公司)에 있으므로 이곳에서 다른 한국 여배우를 섭외하거나 다른 중화권 배우를 섭외하여 제작해도 되겠지만 중화권 내에서도 장나라가 아니면 작품을 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므로 이쪽도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장나라는 이후 2012년에 방영한 드라마 '경마장'에서는 주호성 씨와 부녀지간으로 출연했다. 중국독립투사와 비극적인 열애를 하는 역할이다. 한편, 2012년 8월 21일에 매니저를 맡고 있던 김효식 씨가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장나라는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애도했다. # 2012년 8월 27일에 장례가 치러졌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장나라가 한국활동에 집중하고(주로 배우활동) 한한령의 영향 때문인지 중국 활동은 상당히 뜸해졌다. 그래도 인지도만 따지면 여전히 한국 연예인들 중에서는 탑이다.
4. 디스코그래피[편집]
4.1. 정규 앨범[편집]
4.2. 싱글, 참여곡[편집]
5. 출연 작품[편집]
5.1. 영화[편집]
5.2. 드라마/시트콤[편집]
- 그 외 어린 시절 연극 등에 다수 출연.
6. 그 외 활동[편집]
6.1. 방송[편집]
6.2. 라디오[편집]
6.3. 뮤직비디오[편집]
6.4. 광고[편집]
6.5. 비디오[편집]
- 장나라의 팡팡 동요나라(2002)
- 장나라의 팡팡 ABC나라(2002)
7. 수상 경력[편집]
8. 여담[편집]
- 대학생 역할을 맡았던 뉴논스톱 과 고백부부 의 학번은 99학번으로 같으나 2001년과 2017년의 16년차이가 나지만 외모의 변화는 크게 느껴지지 않음
- 방송에서 과거 활동했던 노래를 하지 않다가 슈가맨에 출연했고 이후 집사부일체 우정여행 특집에서 한 번 더 Sweet Dream을 불렀다! 네이버TV
- 200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했었다. 그 때 이종범이 공을 쳤는데, 잘못하면 그 공에 맞을 뻔했던 아찔한 상황(자세한 내용은 이 문서 참고)이 벌어졌다. 이종범은 사과는커녕 차갑게 돌아섰고 비난이 폭주했다.
- 대만에서 대한민국 가수 중 최고 음반판매 기록을 세웠고, 드라마들도 히트했다. "내사랑 팥쥐"의 경우 대만의 최고 인기 드라마 시리즈인 '꽃보다 남자 3'을 누르고 최고 시청률 기록했다.
- 2011년 1월 3일에 중국 윈난성 망시(芒市)란 도시의 명예 시민으로 위촉받았는데, 이미 2009년 1월에도 산둥성 지난(濟南)의 명예 시민이 된 적이 있었다. 망시는 소수민족의 비중이 많은 도시다.기사
- 피에스타의 차오루는 장나라와 중국에서 같은 기획사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나라에게 중앙대학교를 소개받아 2006년에 대한민국으로 건너와서 한국어 4급 자격을 취득한 후, 연영과 2008학번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차오루는 장나라의 팬인지라 장나라의 콘서트를 보러 대한민국에 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 SBS<힐링캠프>에 출연, 한류스타가 되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인생경험을 이야기 했고 공황장애 경험담이 많은 기사화가 되었다. 중국에 진출할때 24살로 당시 모든 비용을 스스로 지출하며 활동을 해야했고 불안증이 더해지며 공황장애, 폭식증, 고소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빚도 생겨났고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위궤양이 되면서 건강도 악화되며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건강도 회복되었다. 장나라 힐링캠프 영상
- 어릴 때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다고 한다. 시트콤 뉴논스톱의 출연자들이 다시 모인 방송에서 밝히길, 뉴논스톱 출연 당시에도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바람을 주변에 말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좌절 중.
- 2019년 8월 5일 새벽 디스패치가 터뜨릴 기사라며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서 김남길과의 결혼설 관련 짤이 돌았다. 디스패치 메인페이지에 올라온 기사를 캡처한 듯한 짤로 인해 이 내용은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급속히 확산했고 결국 여러 매체들에 의해 기사화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커뮤니티 상의 악플러가 조작한 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기사 그리고 양측은 결혼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으며, 악의적인 조작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고 최초유포자 및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해 법적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기사 김남길: 친분도 없는 사이…
- 방송에서 전성기 때 수입을 밝힌 적이 있다. 무려 하루 4~5억이었다고 한다.#
- 긴 연기 경력에 비해, 중국에서 활동할 때를 제외하면 사극/시대극 출연은 사실상 없다. 현대극에서 개그씬이나, 상상씬 정도로 아주 잠깐씩 나온 게 전부.
- 2022년 6월 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6살 연하의 영상 관련 종사자와 6월 말에 결혼한다고 밝혔다. 2년여간 교제했으며 상견례는 작년인 2021년에 했다고 한다. #1 #2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드라마 VIP에서 만난 촬영감독이라고 한다. 청첩장이 나왔는데 상대가 일반인인 만큼 청첩장 내용을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 했으나 YTN이 이를 공개유포 했다..
기레기때문에 네티즌들의 댓글들을 보면 YTN 비난 여론들이 한가득 달려 있다.
8.1. 선행[편집]
장나라는 한국과 중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받기에만 그치지 않은 개념 스타이다. 장나라는 데뷔 이후 한국과 중국, 북한 등 여러 나라에서 기부와 봉사활동을 통해, 이미 2009년 약 130억 원의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데뷔 하자마자 많은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동했던 장나라씨는 데뷔와 함께 본격적인 기부도 시작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이렇게 시작된 기부는 멈출 줄 몰랐고, 스스로도 “기부에 중독됐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나눔을 펼쳤답니다.
나라 안팎에서 나눔을 이어가는 그녀는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엔터테이너로서 좀 더 행복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스타이기에 그 사랑을 어려운 누군가에게 다시 보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겠죠.
배우 장나라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9년에 130억이 넘는 금액을 기부했다. 대부분의 광고 수익을 기부하는 그는 '사람들에게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는 가족 생활 신조로 선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한 액수를 기부했으나 방송가에는 잘 알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유는 자기 돈이 아니라 팬들의 돈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장나라는 유기견보호소나 저소득층 나눔의집에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는 등 꾸준히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8.2. SM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편집]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보아가 "장나라 언니, 플라이 투 더 스카이와 연습생 생활을 같이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수만 평전을 보면 SM에서는 원래 장나라를 걸그룹으로 데뷔시키려 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SM의 자금부족으로 인해 프로듀싱을 다른 SM유관회사서 하되 음반을 SM에서 내고, 유통도 SM에서 하고 홍보와 굿즈 판매, 캐릭터, 퍼블리싱도 SM에서 가지는, 매니지먼트만 다른 회사에 넘기고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나누는 대신 실패 부담을 덜고 성공하면 음반 수익을 온전히 SM에 가져오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47]
장나라가 데뷔한 원업은 SM이 지분을 가진, 상법상 자회사라고 부를 수 있는 투자한 회사이다. SM기획에서 기획한 전속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는 나간게 맞지만 수익배분의 측면에서는 아니라 볼 수도 있다. 그 증거가 2001년 SM잡지에 SMTOWN 신인가수 - 장나라 1집 커버사진과 함께 떡하니 책자가 나왔었고, CD일련번호도 SMDSCD나 SMWMCD가 아닌 SMPDCD였다. 이 경우 가수는 SM인데 프로듀서는 SM 기획에서 안 한다는 뜻이다. 이수만이 2002년 5월경에 한 인터뷰에서도 장나라는 우리 쪽 사람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SM이 장나라에게 해 준 것은 하나도 없다. 해피투게더에서 당시 같은 소속사 연예인이었던 박명수가 증언했듯이 원업의 소녀가장 노릇을 하며 혼자 발로 뛰어서 성과를 일구어냈다.9분 28초~9분 59초
이후 퓨어엔터테인먼트로 명칭이 바뀌며 김현정 등을 영입하기도 했지만 태생이 장나라 하나로 승부보는 기획사였고 그렇기 때문에 장나라의 중국 활동이 지속되자 문을 닫게 되었다. SM의 홍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본인의 노력으로 뉴 논스톱에 캐스팅되어 그 이후부터 빛을 본 것이다.
SM의 특이 케이스였는데 추측컨대 노예계약의 원조로서 SM의 조건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음반판매 한 장당 50원만 장나라 몫이라는 썰까지 있었다. 어찌 보면 노예계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의 음반 유통 수익 분배 구조를 살펴보면 유통사업자나 플랫폼 사업자가 대부분을 가져간다. 정작 제작사는 얼마 가져가지 못한다.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같은 실정이다. 즉 SM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기획사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SM만 노예계약이라고 하지말고 다른 기획사 모두 노예계약이라고 해야 맞다. SM 혼자 다른 회사를 무시하고 더 많이 줄리는 없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 연예계의 비극이다. 물론 일본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음반이 망해서 재고를 떠안게 된다면 바로 부도날 수 밖에 없다. 실제 SM에서 SM 음반을 유통했던 서라벌레코드가 부도나는 바람에 회사가 그냥 망할 뻔했다. 현진영이 아니었으면 이수만은 그대로 알거지가 되었던 셈이다.[48] 즉 가수가 음반을 계약할 때 안팔려서 재고가 생기더라도 가수에게는 피해가 덜 가는 대신 음반제작사나 기획사가 그 피해를 떠안도록 계약을 하는 것이다. 물론 서태지처럼 본인이 회사를 차려서 스스로 음반유통하는 방법이 있다. 재고가 생기면 그대로 떠안아서 파산해도 자신이 책임을 지니까 모든 수익을 가수 본인에게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가수라도 처음에는 이런 모험을 하기 힘든 법이다.
그런데 장나라가 생각 이상으로 초대박, 그것도 1집부터 혼자서 비슷한 시기의 S.E.S. <꿈을 모아서> 음반판매량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내는 바람에 100프로 SM에 묶어 놓지 못함은 아쉬웠겠지만 SM으로서는 장나라의 단물을 다 빨아먹었다. H.O.T. 해체 후에서 동방신기 데뷔 전까지 SM에 보아와 장나라가 없었다면 장난 아니고 SM은 망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심각하게 그 시대 SM 기수들이 다 실패했다.
여담으로 당시 보아와 정말 친했다. SM 연습생 때 친분을 쌓으면서 보아 1,2집과 장나라 1,2집 땡스투에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각각 언급했으며, 장나라가 MC를 보던 음악캠프에서 보아가 넘버원으로 첫 1위를 했을 때 보아가 장나라에게 안기고 장나라도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엔딩멘션 끝내고 앵콜무대 시작할 때도 서로 얼싸안았다. 다만 2002년에 둘 모두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보아는 일본 활동, 장나라는 멀티테이너 활동에 몰두하느라 서로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전혀 없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고 소원해진 것으로 보인다.[49][50]
흔히 두 가수를 라이벌 구도로 보는 이들도 많은데, 내세웠던 장르도 다르고(장나라는 팝발라드, 보아는 댄스), 활동 방향도 꽤 달랐다.
8.3.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2 출연[편집]
2018년 5월 20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2에 희열팀 슈가맨으로 출연했다.[51] 슈가송은 <Sweet Dream>.
17년이 지나도 여전히 똑같은 방부제 미모의 끝판왕을 제대로 보였다. 해당 슈가송을 배출한 2002년 KBS와 MBC에서의 두 차례에 걸친 대상 수상 기록을 보유한 역대 최고의 커리어를 지닌 슈가맨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시즌1 당시부터 섭외를 시도했다고 제작진들이 밝혔다. 그간 연기 활동에만 전념한 나머지 노래를 부르기가 어색해서 고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장나라의 히트곡들이 많은데 슈가송을 포함해서 총 4곡 밖에 부르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이 있다. 그 중에 '고백'과 '아마도 사랑이겠죠'를 듣고 싶었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사실 슈가맨에서 4곡 부르는 거 자체가 상당히 많이 부른 편에 속한다.[52] 거기다가 장나라가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장나라 입장에선 대단한 도전이었다.[53]
대신 해당 회차의 재석팀 슈가맨으로 뉴 논스톱에서 커플로 나왔던 양동근이 출연해 약 16년만에 방송에서 재회하는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다. 뉴논스톱을 잊지 못하는 많은 대중들은 방송 후 잠을 못자겠다며 구리버리 커플에 무한 설렘을 만끽했으며 이후 시즌 3 13화에서 절친인 이수영을 재석팀 슈가맨으로 제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