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마누라

덤프버전 :


조폭 마누라 시리즈
조폭 마누라 (2001)
조폭 마누라 2 (2003)
조폭 마누라 3 (2006)


조폭 마누라 (2001)
My Wife is a Gangster


파일:조폭 마누라 포스터.jpg

장르
코미디, 액션}}}
감독
조진규}}}
각본
강효진, 김문성}}}
제작
서세원, 이순열}}}
주연
촬영
양희만}}}
음악
장대성, 이상용, 이종조}}}
제작사
현진씨네마}}}
배급사
개봉일
2001년 9월 27일}}}
상영 시간
105분}}}
서울 관객 수
1,419,972명}}}
상영 등급

1. 개요
2. 줄거리
3. 관객 수 부풀리기 논란
3.1. 흥행한 것은 맞다
4. 후속작
5.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영화로 2001년 9월 27일에 개봉했다. 후속작으로 2003년 <조폭 마누라 2>와 2006년 <조폭 마누라 3>가 있다. 감독은 조진규이며 제작은 서세원 프로덕션 & 현진 시네마, 주연은 신은경이며 명계남, 이응경, 박상면, 안재모, 김인권, 장세진 등이 출연했고 당시 무명이었던 연정훈단역으로 출연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최민수도 특별 출연했다.


2. 줄거리[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자임에도 가위 하나로 조폭 부두목까지 오른 고아 출신 주인공 차은진(신은경 분)은 생이별한 언니 차유진(이응경 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언니는 위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이었고, 생의 마지막 소원으로 동생이 가정을 이루고 화목하게 사는 것을 꿈꾼다. 언니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급하게 가정을 이뤄야 하게 된 차은진은 웃지 못할 몇 번의 맞선 후 빠다(안재모 분), 빤스(김인권 분), 마징가(심원철 분)의 도움으로 한 어리숙한 동사무소 직원 강수일(박상면 분)을 속여 결혼하게 된다. 영화는 이로 인한 강수일의 고생과 차은진의 조직이 백상어(장세진 분)의 공격을 받는 과정 중 일어나는 소동을 다뤘다.

빠다(안재모)는 포장마차 앞에서 동네 깡패의 칼에 찔려 죽고, 임신한 차은진은 홀로 백상어 파를 치다가 중과부적 상황에 임신한 배를 맞아 유산한다.[1] 그러자 강수일은 백상어가 있는 유흥주점에 나타나 불을 질러 백상어 일당을 태워죽이고,[2] 은진이 조직에 복귀하면서 끝난다.


3. 관객 수 부풀리기 논란[편집]


일단은 전국 관객 525만 명을 기록했다고 배급사가 주장하고 있다. 이 기록은 2016년 11월 기준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78위의 매우 높은 기록이긴 하지만, 신뢰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당시는 박스 오피스 기록이 전산화 되기 이전인 탓에 배급사 집계 기록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영화들은 흥행 성적을 뻥튀기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는데, 배급사 쪽에서 현재 100만 명이 영화를 봤다고 허풍을 떨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재밌나보네?' 라고 생각해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갔던 당시의 실상 때문이다. 당시에는 스마트폰, SNS도 없었고,[3] 인터넷도 이제 막 대중화되었을때라서 댓글 문화도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거품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뻥튀기도 나름대로 암묵의 룰이 있긴 했다.

가장 중요한 심증은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이 서세원이었다는 것이다. 서세원은 당시 영화계의 비주류였던데다 훗날의 행적으로 미뤄 짐작할 때, 당시 고의적으로 정도를 넘어 흥행 기록을 뻥튀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서세원은 몇년 뒤 송사에 시달리는 와중에 다른 공동 제작자에게 대금 6억 원을 미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제작비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을 이 영화가 정말로 500만 흥행작이라면 6억원의 대금은 그야말로 껌값. 따라서 조폭 마누라의 흥행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었다는 훌륭한 방증이 된다.

3.1. 흥행한 것은 맞다[편집]


배급사가 흥행 성적을 부풀렸다고 의심되는 것과 별개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여서, 개봉 당시에도 주요 언론들조차 대체 조폭 마누라가 왜 흥행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기사를 냈긴 했지만 영화 상영 당시에는 이 영화를 보러가기 생각 외로 힘들었을 정도로 매진 사례를 이뤘다. 이 영화가 이렇게 흥행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시기를 잘 탔다는 점이 있다. 이 영화 개봉된 2001년도는 조폭 영화의 전성기였고, 그 흐름 속에서 이 영화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다. 저질 개그, 허접한 액션 등, 이 문서에서 지적한 여러 단점들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 큰 단점이 아니었는데, 이 당시에 이런 영화가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시기의 '신라의 달밤',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등의 히트작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저급한 개그가 나왔고, 조폭 영화는 아니지만 '주유소 습격사건' 또한 욕설과 폭력이 오가는 개그라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후대 사람들과 평론가들이 뭐라고 비판하든,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유행이었다.

두 번째로,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서 가족 드라마를 섞은 파격성이 있다. 다른 조폭 영화들도 차별화를 위해 불교도 섞고, 가족 영화도 섞고,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포스터부터 가위를 든 여주인공을 앞세운 이 영화가 제일 눈에 띄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또 신은경이 전라로 문신한 뒤태를 노출하는, 그 시절 여배우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장면도 개봉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스토리는 진부하고 부실하다고 평가받을 지언정, 적어도 소재와 발상 만큼은 비슷한 시기의 영화들과 차별화가 되었다.

세 번째로 멀티플렉스의 태동기에 개봉했다는 점이다. 1999년, 쉬리 개봉으로 한국영화가 가지개를 펴기 시작하기 이전에는 한국 영화는 유치하고 특수효과나 화면도 구리다는 이유로 미국 헐리우드 영화만 본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고, 영화관에서도 미국영화를 틀어놓는것을 선호했던지라 한국 영화 종사자들은 스크린 쿼터제[4]를 필수적인 제도로 보았다. 사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어서게 된 것도 2001년 부터이고, 조폭마누라 개봉 3년 전인 1998년까지는 점유율이 20%대에 머물렀기 때문에 당연히 유지하자는 주장이 대세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이타닉쉬리의 연이은 흥행으로 CJ그룹에서는 북미쪽에 유행하던 cineplex라는 개념의 영화관을 도입하기로 한다.

사실 한 영화관에서 10여 개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 한 게 1990년대 후반 부터고, 그 전만 하더라도 영화관 하나에 스크린은 많아야 2~3개고 영화 1~2개 걸어 놓고 몇 개월 동안 장사하는 영화관들도 많았다. 여튼 CJ에서 1998년 4월 CGV를 만들며 멀티플렉스의 시동을 걸고 이것이 먹히기 시작하자 롯데오리온 등이 대기업의 자본을 앞세워서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을 만들며 숟가락을 얹었었다. 문제는 수요는 많아졌는데 공급이 달린다는 점으로 극장에 걸만한 한국 영화 자체가 굉장히 부족했는데 스크린 하나당 스크린 쿼터제가 적용된 탓에 영화관 주들은 눈물을 머금고 완성도가 나쁜 한국 영화라도 걸 수 밖에 없었다. <조폭마누라>는 이렇게 스크린 수는 막 늘어나는데 한국 영화 자체는 그렇게 많이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에 태어나는 엄청난 축복을 경험했다.

네 번째로 일단 개봉일정과 대진운이 상당히 좋았다. 추석 5일 전에 개봉했는데 같은 시기 경쟁작이 러시 아워 2봄날은 간다, 그리고 기대작으로 손 꼽히던 대작 무사 뿐이었는데, 세 작품 모두 뒤늦게 개봉한 조폭 마누라 앞에서 맥을 못추고 극장가에서 밀려나 버렸다. 이 행운은 10월까지도 이어져 10월에 개봉했던 킬러들의 수다가 흥행에 대박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중박스코어로 머물게 만들었다.

추석마다 찾아오던 성룡 형님은 그 당시 기준으로는 연휴 내내 집에서 TV로도 실컷 볼 수 있었던데다가, 사실 성룡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는 다 비슷했기에 기대감도 낮았다. 실제 <러시 아워 2>는 <러시 아워 1(1998)>에 비해서 현격하게 재미가 없었다.

<봄날은 간다> 역시 그랬다. 지금도 라면 먹고 갈래?라는 대사와 동명의 주제곡으로 유명하고 당시에도 작품성은 높게 평가 받았지만 민족 최대의 축제인 추석에 가족 단위로 허진호의 감성터지면서 다소 우울하면서도 잔잔한 멜로 영화를 볼 가족, 연인, 친구 단위 관객이 얼마나 있겠는가?[5]

조폭마누라 최대의 경쟁작으로 꼽혔고, 개봉 전에는 역사적인 대작으로 기록될 것으로 생각했던 <무사>는, 실제로는 의미없이 피만 튀기는 액션씬에 얼척없는 전개 및 정우성의 연기력 부족까지 겹쳐 폭망했다. 최근에 재평가 받고 있기는 하지만, 추석 시즌의 분위기, 거기에 또 같은 시기 발생한 9.11 테러로 관객들도 러닝타임도 길고 심각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사극을 보는 것보단 그저 웃고 즐기며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를 선택했다는 걸 감안하면 개봉 시기를 잘 못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관객들이 제목만 들어도 코믹한 느낌이 가득해보이는 영화인 조폭 마누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조폭마누라가 아주 얼척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조폭 소재의 영화가 붐을 타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여자 조폭 그것도 결혼과 얽힌 에피소드로 풀어낸다는 발상이 참신했기 때문. 조폭마누라의 흥행으로 이후 몇년간 추석 시즌을 노리고 저질 조폭 코미디물이 돌아오는 전형적인 한탕식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다.[6]

당시 제작자인 서세원의 방송계 인맥을 이용한 뻥튀기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계의 냉담한 반응과 달리 TV 쪽에서는 연예가 중계, 섹션TV 연예통신, 한밤의 TV연예, 출발! 비디오여행, 접속! 무비월드 등에서 제법 이 영화를 다루어주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즉 다소 거품이 끼어있었다고 해도 상당한 흥행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2000년대 초반 저질 조폭 코미디들이 범람한 데는 두사부일체와 이 작품의 흥행이 결정적이었다. 단순 언플만으로 흥행 요인에 대한 분석 기사가 나오진 않으며 어느 정도 흥행하지 않고서야 후속작이 잡히진 않는다. 거품이 어느 정도 끼어있는지는 불확실해도,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란 건 확실하다. 실제로 영화의 내용 자체는 잊혀졌더라도 "조폭 마누라"란 이름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대표적인 조폭 코미디로 남아있다.

4. 후속작[편집]


2003년 <조폭 마누라 2>, 2006년 <조폭 마누라 3>이 나왔으나 두 작품 모두 제작진의 분열로 흥행에 실패함으로써 프랜차이즈의 막을 내렸다.

185만 명이 봤다고 전해진다. 사실 줄거리 자체는 1탄과 관련성이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기록은 둘째치고 1탄의 공동 제작자였던 서세원 프로덕션과 현진시네마에 갈등이 발생하면서 프렌차이즈 자체가 허공에 붕 떠버렸다는 것. 당시 기사 참고로 신은경은 이 영화 촬영 중에 한쪽 눈에 부상을 입어 이후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연예계 뉴스에서도 크게 다뤘던 내용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수준이 낮았던 탓에..

제작자들의 분란 탓인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버렸다. 주연까지 신은경 대신 홍콩 배우인 서기로 바뀌었다. 서기의 흑역사 그러거나 말거나 폭망했다. 사실 3탄의 경우 코미디 영화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액션영화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존재한다. 특히 사람이 사망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는 괴작이다. 물론 진짜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전개가 하도 어이없고 뜬금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수준. 흥행은 169만 수준. 같은 배급사에서 배급한 미녀는 괴로워에게 연말 흥행을 빼앗겼다.


5. 기타[편집]


  • 헤이헤이헤이 시즌 2 조폭 며느리(2007. 07. 12) 16:34초에, TV로 조폭마누라의 한 장면을 재생한다. 차은진(신은경)이 나체로 서있다가 남편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신동엽의 대사는 "아 그리고 맨날 보는 조폭 마누라 지겹기도 않어? 맨날 보는 거 보니까 이렇게 조는 거 아냐. 빨리 들어가서 자."

  • 2001년 이 영화와 친구를 배급했던 코리아 픽처스는 2001년 영화배급사 관객수 1위를 차지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영화 청연이 망하면서 같이 망하고 문닫고 사라졌다.

  •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한 사람인 서세원은 이후 긴급조치 19호라는 괴작도 제작하는데, 그 영화 포스터가 조폭 마누라 영화 포스터를 그대로 차용한 수준으로 똑같다.

  • 이 영화의 영향으로 2000년대 초등학생들은 한 성깔하거나 남자아이들과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세를 지닌 사고뭉치 여자아이들을 조폭 마누라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04:55:50에 나무위키 조폭 마누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백상어의 부하한테 임신했으니 배는 때리지 마라고 하지만 당연히 들어줄 리가 없고, 오히려 너 때문에 고자됐다며 배를 세게 걷어차인다.[2] 정확히는 휘발유를 뿌린 후 라이터로 불을 지르려다가 뒤에서 기습을 당해 쓰러졌고, 뒤이어 백상어가 담배를 물자 부하가 불을 붙여주려고 라이터를 켰는데, 순간 라이터 불에 손을 데여서 라이터를 놓치는 바람에...[3] 물론 이 당시에도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는것 자체는 가능했지만, 요금이 비싸기 그지 없었고, 터치폰도 아닌데다가 PC 그대로의 웹사이트 접속은 불가능했었다. [4] 자국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스크린 하나당 의무적으로 며칠간은 자국 영화를 틀어야 한다는 제도. 헐리우드 영화의 침공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5] 4년 후 영화 외출에서도 이런 이유로 흥행에서 고배를 마셨다.[6] 대표적으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있다. 1편의 경우 김정은이 '나 항상 그대를'을 불렀고, 2편 이후로는 재탕 삼탕에 더더욱 망가지는 스토리로 나쁜 선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