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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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송진우 선배님 같은 분들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야구로 최고가 된 사람들에겐 적이 많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선배님 같은 분들은 철저하게 야구를 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야구 선수다. 야구 잘 하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 참고 자제하며 대기록을 세운 선배님이다. 난 정말 송진우 선배를 존경한다.
前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 현역 시절 등번호는 21번.[8]
2011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팀을 나와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해설위원으로서 받는 평가는 김상훈, 양준혁 등을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해설위원이라는 것이 중론.
2. 선수 경력[편집]
송진우(야구선수)/선수 경력 문서로.
3. 지도자 경력[편집]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근데 선수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은 적 없던 이승엽과 처음으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9] 앞으로 코치로 활동하게 될 그를 기대해보자.
2010년 연수 코치를 마친 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조성민과 같이 잠실구장을 방문하였다.
코치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2010년 12월 7일부로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2군에 있다가 1군으로 복귀한 김혁민이 인터뷰를 하면서 2군 송진우 코치를 말하였는데, 2군 선수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목표를 쓰게 하면서 후배(제자?)들의 마인드를 다잡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혁민은 실수로 목표를 쓴 종이를 숙소에 두고 왔는데 그 날 2시간 동안 러닝만 했다고 한다. 2군에서 올라온 김혁민이 바로 자리를 잡은 걸 보면 호랑이 코치로 2군에서 후배들을 잘 양성한 듯.[10]
김혁민에 이어서 신주영을 2군에서 올려보냈는데 이쪽도 준수한 불펜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수순으로 보이며 하나 둘 투수들을 자리잡게 만들었다.
3.1. 2012 시즌[편집]
2012년 7월 6일, 한화 이글스의 1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1군 투수코치였던 정민철은 송진우가 담당했던 육성군(2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즉, 두사람의 역할 교체.
그 다음날인 7월 7일, 8연패로 허덕이던 한화 이글스의 연패를 끊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선발이 잘 뛰어도 불펜과 마무리가 말아먹어 패배를 기록하던 것을 하나하나가 신의 한수 같은 교체 타이밍으로 박찬호의 승리와 바티스타의 세이브를 동시에 챙겨주었다.
3.2. 2013 시즌[편집]
그러나 2013년 현재 팀의 선발 로테이션과 불펜진이 아예 붕괴되고 혹사가 지속되자, 송진우의 대한 평가는 매우 안 좋다.[11] 한용덕 코치의 빈 자리와 함께 이대진 코치가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 도움을 거의 못받는 부분이 큰 것으로 보인다.
결국 7월 18일 자로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를 대신해 정민철 2군 투수코치가 1군에 올라왔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도 서로 보직을 맞바꾸게 되었다.
3.3. 2014 시즌[편집]
올해에도 그다지 좋은 평가는 많이 받지 못했다. 그리고 10월 27일 한화는 송진우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 레전드는 그렇게 씁쓸하게 팀을 떠나는 줄 알았다.
3.4. 2018 시즌[편집]
경기 전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젊은 선수나 고참 선수나 꼭 한 두 명씩 식판을 들고 내 앞에 앉는다. 이미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2017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한용덕 코치가 한화 감독으로 선임되어 장종훈 수석 타격코치, 강인권 배터리코치, 전형도 주루코치와 같이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이로서 송진우는 4년 만에 현장 복귀 겸 고향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등번호를 그의 영구결번인 21번으로 결정하면서 9년 만에 21번을 단다.
그동안 구제불능 취급을 받아온 송은범, 안영명을 승리조로 만들고 제구 난조와 부적응을 겪던 샘슨과 휠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어 야구계에서 '한화 투수진의 화타'라고 불리고 있다. 특히 구대성-류현진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글스 투수들의 필살기로 자리잡은 써클 체인지업을 전수하고, 투수들의 정신 자세 관리에서도 호평을 받는 중.
제이슨 휠러는 송진우에게 직접 체인지업을 전수받으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봤었으나... 이닝 소화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관련기사 제로맨 서균 역시 체인지업을 배웠는데 자신의 그립이 아닌 사이드암 계열 투수용 그립을 따로 알려주었다고 한다.
해설자 전향 이후 처음 인터뷰를 한 한화 선수에게서 "그때 제게 왜 그러셨어요. 매번 저를 볼 때마다 '에휴 답이 없다. 답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에 많이 좌절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코칭 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13]
시즌 종료 후,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다.
4. 해설자 경력[편집]
팀을 떠난 이후, 조성환과 함께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친정팀 경기를 해설하면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4.1. 2015년[편집]
목소리 톤부터가 가래 끓는 소리가 나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데다
그 예로 2015년 4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 간의 경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공격은 못해도 수비를 잘하면 승리는 못해도 우승은 한다.[14]
[15]
이 외에도 수많은 어록(?)이 있다.맞으면 홈런이고 치면 아웃이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 이 때문에 한화 이글스 팬들마저 송진우가 해설하면 음소거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해설로 데뷔한 정민철과는 180도 다른 행보. 이종범, 조성환 등 2015년 10구단 체제에 급히 합류한 해설위원들이 진통을 겪었지만 송진우는 그 중에서도 평가가 독보적으로 나빴다.
이 날 경기 이후 KBS N SPORTS 게시판에는 "이 분은 대체 뭘 하고 싶으신 건가요?", "해설위원이 아니라 (한화)응원단장 같네요.", "이 분이 나오면 전 그냥 중계방송 안 볼랍니다.", "내가 다른 사람 욕하려고 회원가입하긴 처음입니다.",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말 끊어먹지를 않나 자기 말만 늘어놓지를 않나, 왜 앉아있는 거죠?", "사장님 그냥 이 분 짜르시라니까요?" 등 악평이 끊이지 않는다.
2015년 8월 13일 삼성 vs 기아 경기에서 1루에서 주루 플레이를 준비 중이었던 나바로가 최형우의 타구에 직격당했는데도 "기아에게 행운이 따라주었습니다." "맞으면 안되죠, 피해야 됩니다." 등 이해할 수 없이 이기적인 해설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래의 항목에 나와 있는 사건마저 터뜨려 버렸다.
더 큰 문제는 KBS N이 해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성환, 안치용보다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예 송진우를 단독으로 해설시키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이 사람 덕분에 하일성이 재평가받을 정도로 최악의 해설임을 KBS N은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23일 삼성 vs KT 전에서 타일러 클로이드를 클리대로 호칭해서 삼성 팬들의 공분을 샀다. 류중일 감독의 항목 중 관중일 발언 논란을 보면 알겠지만 사적인 자리와 공적인 자리는 구분을 해야 하는게 맞는데 그것을 망각했다는 처사이다.
4.2. 2016년[편집]
LG 투수들이 신중하게 가는건지, 어렵게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 지금 정말 어렵게 가네요.
ㅡ 2016년 4월 LG 경기 중계중.
모른다 해놓고 2초만에 결론 냈다ㅋㅋㅋ
2016년 4월 17일 한화 vs LG 전에서는 선수 시절 데뷔부터 은퇴할 때까지 뛰었던 팀이라지만 도가 넘은 한화 편파해설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부엔 한화가 공격을 하든 LG가 공격을 하든 상관없이 한화 이야기만 했다. LG가 6: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한화가 3점차로 따라붙을 때에 나온 말로, "저도 승부산가봐요. 6:0이 될 때까지는 사실 중계하면서 흥미가 없었는데 이런 승부처가 되니까 저도 기분이 좋은데요?"라는, 야구선수, 그것도 KBO에서 손꼽히는 레전드 투수 출신의 야구 해설자가 자신이 현재 중계 중인 경기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화를 우리 구단이라고 언급하는 등, 해설자로서의 기본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4월 24일, 두산 vs 한화 전에서도 명불허전의 편파해설을 보여줬다.[16] 정근우가 호수비를 하자마자 굉장히 큰 목소리로
김광현이 승리투수가 된 날 인터뷰로 김광현한테 호되게 까였다(...). "저를 안 좋게 보는것 같아요"부터 시작해서 "저 힘 많이 뺐거든요?" 등 거의 5분을 송진우에게 극딜을 가하는 김광현의 인터뷰가 재미를 주었다. 송진우는 경기 끝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5월 26일 LG vs 롯데의 경기 중계 중, 오지환이 대타로 나와 2루타를 기록하자, 생뚱맞게 오지환 선수같은 엉덩이가 탐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6월 22일에는 "김기태 감독이 FA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명언이 나왔다. 명색이 선수 출신 야구 해설자에다가 1년차도 아니면서 어느 팀이 FA를 했는 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18]
7월10일 LG와 롯데 전에서 자신의 팀이 우승했을 때 상대 팀 선수였던 해설자[19] 앞에서 대놓고 체력을 다 소모하고 올라와서 우리가 우승했다라고 발언했다.
8월 4일 역시나 한화 vs KIA의 광주 3연전 중 마지막에 배치가 되어[20] KIA 선수들 칭찬은 일시적이지만 한화 편파중계는 영원하다라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하였다. 이용철과 함께 배치가 되어 이용철과 같이 해설을 했는데, 오죽했으면 8회 이후론[21] 그냥 이용철하고 캐스터만 중계하는 듯한 기분. 그리고 9회초 2아웃 김태균의 헛스윙 삼진이 나왔을 때, 김태균이 파울이라고 주장하자 "잠깐. 지금은 파울인 것 같으니 좀 상황을 파악하라"고 말했다. 합의판정 결과는 헛스윙 삼진
얼마나 심했는지 네이버에서 송진우가 해설한 경기 기사가 나오면 "송진우 해설 듣기 싫다"는 말만 적어도 베댓을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외로 친정 팀 한화의 패배 토템을 맡고 있다. 그가 해설을 맡은 경기의 한화의 통산 성적은 1승 15패(...).[22]
그리고 2017년 1월 11일, KBS N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하면서 해설을 그만두었다!
5. 논란[편집]
5.1. 부정투구 고백 논란[편집]
2015년 4월 9일, 삼성과 롯데 경기 중계중에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해당영상
(6회초 볼넷으로 출루한 손아섭이 배트 손잡이 부분에 테이핑을 한 것을 보고 송진우가 이것이 일종이 루틴이냐고 묻자 조성환이 타구의 비거리를 좀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에 했다고 답변한 이후)
송진우 : 뭐 저 같은 경우는 시합 들어가기 전에 항상 글러브를 거 바셀린으로다가 닦곤 했어요. 어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계속 했었고. 바셀린으로 닦다 보니까 포수한테 공이 날아올 때 공이 좀 끈적끈적해서 손에 그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죠. 너무 좋았어요.
조성환 : 부정... 부정 투구 아닙니까?
송진우 : 어, 일단 한번도 안걸렸고. 그 정도 갖고는 부정투구라는 생각은 사실 안 해봤어요.
자기 자신은 적발되지 않았기에 부정투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항상[23] 이나 달라붙는 느낌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공에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기 위해 바셀린을 발랐다고 보여지며, 이는 빼도박도 못할 부정투구이다.
첨언하자면 원래 글러브는 글러브 전용 오일[25] 등으로 닦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이다.
물론 송진우가 선수생활을 할 시절에는 흔히 구할 수 있는 바셀린으로 글러브 관리를 할 수도 있다. 현재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도
5.1.1. 본인의 해명[편집]
2015년 8월 21일 네이버 스포츠의 <라디오볼>에서 전화상으로 바셀린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당방송, 해명기사
이하는 송진우의 해명.
이 자리에서 이런(해명할) 기회가 있어서 좋다.
나는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 당시 바셀린은 글러브를 청소하는 도구였으며, 어떤 선수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글러브를 닦는 소재가 없었다. 바셀린, 구두약(무광)으로 닦기도 했다.
야구장에는 심판, 기록원, 전력분석원, 카메라를 비롯하여 눈이 한 두개가 아니다.
21년동안 야구를 했는데 (부정투구를 했다면) 심판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번도 바셀린을 투구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으며,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 역시 일종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데 바셀린을 손끝에 바르고 공을 잡으면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 절대로 공을 던질 수가 없다.
나는 마운드에서 타자와 열심히 싸웠을 뿐 다른 편법으로 타자와 승부를 한 적이 없다.
다만 방송에서 방송 초보인 지라 전달 과정에서 미스(실수)가 있었다.
이하는 송진우의 해명에 대한 안치용의 첨언.
내야수의 경우 글러브에 로진백을 터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글러브에 왁스가 묻어 미끄러워 공이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로진백으로 없애고자하는 것이다.
바셀린을 발랐다고 더 잘 던지고 공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구에 안 좋을수도 있다. 유리한 것은 없다.
바셀린은 청소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스핏볼의 요약을 보자.
요약 : 야구의 반칙투구 중 하나.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손가락에 침 또는 바셀린처럼 미끌거리는 점액질을 발라서 공을 꽉 움켜쥔 후, 던지는 투구 또는 이때 던지는 공을 가리킨다.
바셀린이 끈적끈적할 정도로 발리면, 스핏볼 효과로 인해 무브먼트가 변한다, 또한 던질 때에는 패스트볼처럼 던지지만, 회전이 더 잘 걸려서 브레이킹볼(변화구)을 던지기 더 쉬워진다. 공에 걸리는 회전이 홈플레이트에서 아래로 뚝 떨어진다. 그러니 타자 입장에서는 죽을 맛. 그리고 로진 이외의 것을 바르는 건 엄연한 부정투구이며, 침만 뱉어도 부정투구다. 바셀린은 조금만 발라도 기름기가 며칠 동안 유지된다. 이런 글러브에다 손가락만 살짝 스쳐도 기름기는 그대로 전달이 되며, 스핏볼이 완성된다. 참고로, 스핏볼은 부정투구다. 미국에선 스핏볼의 최고봉이 바셀린일 정도. 뉴욕 양키스의 마이클 피네다는 스핏볼을 걸리고도 계속 던졌다가 10경기 출장 정지를 먹었다.
또한, 안치용의
6. 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편집]
2012년 7월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에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 아직도 제구가 되는 130km/h이 넘는 공을 뿌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당시 나이가 48세인 것과 은퇴한 상태인 것을 생각하면 몸관리를 꾸준히 한 것을 알 수 있다.
7. 기록[편집]
7.1. 연도별 성적[편집]
7.2. 그가 쌓은 금자탑[편집]
- 210승(1위) - 통산 2위는 정민철의 161승
- 3,003이닝(1위) - 2위는 정민철의 2,394⅔이닝
- 2,048 탈삼진(1위) - 2위는 이강철의 1,749탈삼진
- 11시즌 두자릿수 승수(1위) - 2위는 정민철과 이강철의 10시즌
-
153패(1위) - 2위는 김원형의 144패[26][27] -
272피홈런(1위) 2718피안타(1위) 1341실점(1위) 1155볼넷(1위)[28]
송진우의 통산 기록들은 진짜 깨지기 힘든 대기록들이다. 200승도 힘든데, 200승 100세이브를 한데다가 3,000이닝은 불멸의 기록이 될 듯하다. 피칭 스타일을 바꿔가면서 이렇게 롱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피네스(제구력 중심)피처라고 해서 롱런하는 것도 아니다. 손민한이 부상으로 신음한 것이나 배영수가 구위를 잃고 나서 어중간한 피칭스타일 때문에 몇 년간 고생하는 걸 보면 더더욱. 통산 다승 2위인 정민철 역시 구위를 잃고 나서 고생하다가, 피칭 스타일을 바꿔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롱런에 실패했다.[29][30][31]
한국프로야구에서 활동했던 좌완투수 중에서는 송진우가 100승을 처음으로 돌파했고, 그 다음으로 100승을 넘긴 선수는 장원삼이다.
그리고, 송진우의 기록들이 깨지기 힘든 또다른 이유는 이 기록을 위협할 만한 A급 이상의 투수가 나오면 KBO를 떠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최소 1년이라도 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공백이 생겨서 송진우의 기록을 넘기 어려워진다.
7.2.1. 최고령 기록[편집]
무려 21시즌, 만 43세가 될때까지 현역 생활을 했기에 다수의 최고령 투수 기록을 보유중이다. 참고로 송진우는 호적상으로는 1966년 2월 16일 생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965년생이다.[32] 사실 송진우는 양준혁(대학졸업 + 방위복무 테크트리로 25살에 데뷔)과 더불어 한국야구 레전드 중 데뷔가 많이 늦어진 걸로 기록손해를 많이 본 선수에 속한다. 1988올림픽 출전 때문에 대학 졸업후에도 1년이나 프로데뷔를 늦추도록 강요받았으니...
이 기록들은 당연히 주민등록상 출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록에 근접한 선수로는 2013년 기준 최향남과 류택현선수 밖에 없다. 둘다 1971년생. 실제로 최향남은 2012년에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하였고, 2013년에 최고령 승리투수 2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2015년 기준으로 최향남은 다이빙 덕스[33] 를 거쳐 현재는 문경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 감독이 되었고, 류택현은 은퇴를 한 상황이라서 기록 갱신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최영필이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42살의 나이로 2점대 후반을 찍으면서 기록을 갈아치울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최영필은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현역을 이어가면서, 정말 일부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17년 6월 9일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 후보는 임창용으로 넘어갔다. 임창용은 2018년 시즌까지 뛰었으나 시즌 종료후 방출되며, 사실상 은퇴하게 되었다.
2017 시즌 종료 후, 같은 팀의 투수 박정진이 FA 계약으로 2년 더 현역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8년은 사실상 거의 쉬며 출전하지 못했다. 만약 2019년에 복귀해서 7-8월 정도에 박정진이 등판한다면 일부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
7.2.2. 송진우가 한국 최초로 달성한 기록들[편집]
8. 기타[편집]
- 별명은 송골매, 송회장님(초대 선수협 회장을 역임), 송덕스(송진우 + 메이저 리그 노장 투수 그레그 매덕스의 합성). 부정투구 고백 사건 이후 송셀린.
- 아들이 두명 있는데 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 선수로 활동 중이다. 둘다 좌완투수. 유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번은 아들을 보러갔을 때 아들이 야구부에서 포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도루저지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좌투에게는 포수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들이 포수를 보고 있어서 감독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홈에서 2루까지 송구가 가능한 사람이 아들밖에 없어서 시켰다고 하는 이야기. 역시 피는 못속이나보다. 장남 송우석은 2012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나 지명받지 못하였으며, 이후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 차남 송우현은 2015년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에 넥센 히어로즈에 지명되었다.
- 비단 이런 성적으로뿐만 아니라, 선수권익보호를 위한 선수협 창설의 주역 중 한명으로 참여하여 현재의 선수협을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긴급 구조 SOS의 PD는 송진우 코치가 선수로서 은퇴하기 전에 예전 선수협과 관련된 만남에 대한 글을 올리며 경의를 표했다. 회장님의 짜증
협상 테이블에서 입 다물고 앉아 있기만 해도 고액의 연봉이 보장될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나서게 되었을까. 저는 뭔가 엄숙한 발언 내지는 숨겨진 속사정을 기대하면서 선수협 회장님 송진우 선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송진우 회장님은 갑자기 짜증을 버럭 냈습니다.
"고액 연봉자들이 왜 이러느냐구요? 그 질문 백번도 더 듣겠네. 아니 당연히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이해 안돼요? 연봉 천만원 받고도 감사합니다 하는 애들이 이런 거 할 수 있겠어요? 우리한테도 지금 이렇게 대하는데 걔들이 나서 봐요. 어떻게 되나."
- 깨끗하고 점잖은 이미지의 소유자이지만 2006년 한화 vs 현대 전에서 안영명이 빈볼성 투구로 김동수 선수에게 싸대기를 맞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불같이 뛰쳐 나와 이단 옆차기를 작렬해 벌금 100만원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원래 난투극이 벌어져도 신발에 박힌 스파이크 때문에 선수가 다칠 확률이 높아져서 발차기는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44][45][46] 덕분에 송진우는 이때 사건 딱 하나로 역대 프로야구 난투극 Best 장면 때마다 항상 등장 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이단옆차기를 맞은 것은 김동수도 아니고 벤치 클리어링 말리러 나간 송지만(...). 게다가 송지만은 한화에 있다 현대로 트레이드되어 송회장과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였기 때문에 조금 억울했다고 한다.
고의로 그런 건 아닌데당시 송진우의 인터뷰는 이랬다.
"다른데였으면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먹이 얼굴로 갔다. 어떤 언론에서는 나보고 품위 없다고 하던데, 후배가 얼굴에 주먹으로 맞고 있는데 가만 있는 것이 선배로서의 품위인지는 잘 모르겠다."
- 2005년 8월에 '개마고원'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했던 적이 있었다.[49] 그러나 2016년 현재 다른 음식점으로 바뀌었다.[50] 대전광역시의 손 꼽히는 부촌인 유성구 도룡동에 위치해 있었다.[51]
- 위에서도 나왔지만 의외로 스타리그를 자주 즐겨보는 스덕이라고 한다. 2009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아발론 MSL 우승자인 김윤환에게 축하한다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즐겨본다고 한다.[52] 스타 실력도 꽤 되는지 한화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스타크래프트 잘하는 사람으로 언급한 적도 있을 정도. 사실은 차남 송우현과 친해지기 위해 배웠다고 한다.[53]
- 스타리그를 즐겨봤던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게임을 즐기는 편인데, 90년대 중후반~2000년까지 대전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54] 을 가끔식 방문하여 패키지 게임을 구입하는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다. 둔산동 게임프라자 매장의 사장에게 선물로 사인볼을 두개 줬다고 한다.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뇌경색으로 투병 중인 KIA 타이거즈의 김동재 코치의 쾌유를 위한 일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의 자선 경기가 열렸는데, 일구회의 선수로 참가했다. 포지션은 당연히 투수였으며, 마지막 이닝인 7회초 7:7 동점 무사 3루의 위기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였다. 천무단은 은퇴한지 1년 밖에 안된 현역이나 다를 바 없는 송진우 코치를 투입하는 것은 반칙이나 다름없다고
씨알도 안먹힐항의를 하였지만, 항의는 기각되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3타자를 땅볼, 삼진, 삼진으로 간단히 막으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경기는 7회말 무사 만루 찬스에서 한대화 감독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8:7 로 일구회 올스타가 승리하였다.
- 조인성이 김C의 트위터를 통해 송진우 마킹 유니폼을 입고 골수 한화빠 인증을 했다.
멘탈甲 인증그리고 2014년엔 같은 이름을 가진 안경 쓴 포수도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 다이나믹 듀오의 '너나 잘하세요'라는 노래에서 가사로 언급된 적이 있다. 개코가 쓴 가사인데 '까불지 마라 야구라고 치면 나는 노장투수 송진우' 라는 부분이 나온다.
개코 한화빠 인증?
-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방송 예고대로 02 송진우(가명:박흥진)의 엘리트 카드가 업데이트되었다.[55]
- 컴퓨터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추가됐는데 연도는19승에 17세이브를 거두면서 다승, 구원왕을 동시석권한 92년도로 추가됐다.
-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대전 으능정이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
- 같은 KBS N SPORTS 해설위원 장성호와 투타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영상을 보고 확인하자.
- 현역시절 아이싱을 받지 않았던 선수였다.
- 용병들이 보는 송진우의 첫 모습은 매우 유쾌한 코치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송진우의 기록을 알려주면 놀라면서 반응이 바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