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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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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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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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1
2012
2013
2014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2008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2009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2 KBO 리그 다승왕

파일:일구상 로고.jpg 2012 일구상 최고 투수상


장원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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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55번
이대환
(2004~2005)

장원삼
(2006~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13번}}}
팀 창단

장원삼
(2008~2009)


조재호
(201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3번
김동현
(2008~2009)

장원삼
(2010~2018)


맥과이어
(2019~2019.8.7.)
LG 트윈스 등번호 30번
김영준
(2018)

장원삼
(2019)


이상영
(2020~202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9번
홍성민
(2018~2019)

장원삼
(2020)


이호연
(2021)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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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강야구_장원삼.jpg

장원삼
張洹三 | Jang Won-Sam

출생
1983년 6월 9일 (40세)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사파초 - 창원신월중 - 용마고 - 경성대[1]
신체
181cm, 90kg, B형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2차 11라운드 (전체 89번, 현대)[2]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6~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2008~2009)
삼성 라이온즈 (2010~2018)
LG 트윈스 (2019)
롯데 자이언츠 (2020)

병역
예술체육요원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가족
아내
MBTI
ESFP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3. 피칭 스타일
4. 여담
4.1. 별명
4.2. 어린이날
4.3. 삼적화
4.4. 파도파도 미담만 나오는 장원삼
4.5. 그 외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마산상고[3] 3학년 때 현대 유니콘스의 2차 1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경성대학교 체육학과(2002학번)에 진학했다.[4]

고교 시절에는 깡마른 체격에 구위도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대학 입학 후 체격이 커지며 기량도 성장했다. 경성대학교 야구부 시절 통산 32승 4패 평균자책점 0.34에 2004년 세계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캐나다전 승리 투수, 이듬해 2005년엔 추계리그 우수 투수상과 대학리그 투수 MVP를 땄다. 동기생 우완투수 김기표와 함께 당시 좌원삼-우기표로 불릴 만 했다.

프로 데뷔 후에도 대학 시절의 위용을 보이며, 입단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하면서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내었고, 현대 유니콘스에서 히어로즈 시절까지 팀을 지탱하였다.[5] 삼성 라이온즈 이적 후엔 왕조 시절의 선발 한축을 책임지는 주축 선발투수이자 정민태에 버금가는 빅게임 피처로 활약했다.[6] 기록상으론 현대, 히어로즈 시절보다 떨어졌지만, 든든하게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커리어의 황금기를 보냈다.[7]

다소 이르다고 할 수 있는 2015년을 기점으로 노쇠화가 시작되었고 2019시즌 LG 트윈스로 이적했다가 2020시즌 롯데 자이언츠로 다시 이적하여 한 시즌을 보낸 뒤 재계약이 불발되며 은퇴하였다.[8]


2. 선수 경력[편집]



기복이 있었지만, 리그 상위권의 활약을 보인 적이 있고, 결과적으로도 왕조 선발의 한 축이라는 후광과 함께 리그의 스타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커리어를 남겼다. 현대 유니콘스의 말년과 히어로즈의 초년을 지탱하며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삼성 라이온즈의 왕조 시절을 함께하며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는 등 양팀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

3. 피칭 스타일[편집]


투구 방식이 톰 글래빈과 유사하다.[9]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



현대에서 뛰었던 2006년
하락세의 시작점이었던 2015년[10]
포심, 투심,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서클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지지만 사실상 포심과 슬라이더의 2피치 경향을 보인다. 뛰어난 완급 조절과 제구로 타자와 승부한다. 경기 운영이나 이닝 소화력도 좋다.

평균적인 구속과 다소 떨어지는 구위를 뛰어난 제구로 보완하는 전형적인 좌완 피네스 피처이다. 하락세 이전까지 속구 최고 구속은 147km/h에 평균 구속은 140km/h, 포스트시즌같은 중요한 경기에선 142~3km/h로, 좌완치고 느린 편은 아니지만 빠른 편도 아닌 딱 평균 수준의 구속이다. 이러한 구속을 커버하는 것은 구위도 변화구도 아닌 제구.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코너웍을 기반으로 슬라이더를 섞어 삼진을 많이 뽑아내는 뜬공 투수인데, 구위가 좋은 편이 아니다보니 피홈런이 많다. 대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웬만한 파이어볼러 이상으로 삼진을 양산해내는 능력이 있다. 통산 K/9도 6.41로 꽤 높은 편이다.

팀 동료인 윤성환과 제구형 투수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다소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매우 다른 유형의 투수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장원삼은 구위와 구속은 그저 그렇지만,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코너웍을 구사하면서 슬라이더를 섞어 타자를 현혹시키는 전형적인 로케이션형 좌완이다. 그러나 윤성환은 느리지만 의외로 포심의 구위가 좋고 빠른 공과 구속이 상당히 차이나는 변화구인 커브를 이용하여, 로케이션에 신경 쓰기 보다는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는 타입이다. 간단히 말해 구속은 다소 쳐지지만 우완 정통파인 셈.

그런데 이 서로 다른 타입의 두 투수가 통산 성적에서 유사한 부분이 몇몇 존재한다. 장원삼/윤성환 순서로 통산 ERA 4.28/4.23, K/9 6.41/6.38, FIP 4.43/4.38, HR/9 1.06/1.00 등. 차이점이라면 BB/9가 2.88-2.26으로 차이가 조금 있는 편이다.[11]

특이하게 좌투수임에도 투구 플레이트를 3루쪽으로 밟는다. 대개 좌투수들은 1루쪽을 밟는 데다 특히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투수들은 슬라이더 각을 더 크게 보이도록 더욱 그렇게 하는데, 장원삼은 슬라이더가 주무기이면서도 3루쪽을 밟는 것을 보면 정말 특이한 경우. 장원삼 본인도 1루쪽을 밟으며 던지려고 했지만 본인에게 안 맞아 결국 포기하고 3루쪽을 밟고 던진다. 2014 시즌에 1루쪽을 밟겠다고 선언하고 한화 전에 출장해 1루를 밟고 던졌다 대판 깨지고 나선 다시 3루를 밟았다. 대신 3루를 밟는 것이 우타자와의 몸쪽 승부에선 유리하다고 한다.#

류현진김광현, 봉중근에 비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상대적으로 밀려 당대 좌완 넘버 4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은 이들 못지 않은 우수한 투수로 특히 이닝 소화력이 우수하다. 뛰어나지만 아주 튀지는 않는 적당한 구위에 최고는 아니지만 좋은 제구력에 좋은 커맨드를 겸비해 S급, A+급은 아니어도 A급 소리 듣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선수. 현대 시절엔 계투의 방화, 히어로즈 시절엔 팀이 난장판이었던 것 때문에 승운이 없어 불운한 투수란 소리를 들었지만[12] 삼성 이적 후 승운이 오히려 따르기 시작하며 이미지가 급변한 묘한 케이스이기도 하다.

데뷔 시절부터 언급된 상체 위주의 피칭이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는 현대 시절 김시진 투수 코치에게 조련 받은 폼이다. 실제로 그의 투구폼을 보면 공이 떠나는 순간 상체의 회전력으로만 공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구위에서 약점을 보인다. 제구력으로 구위를 메꾸지만 제구란 게 매번 잘될 수는 없기 때문에 안 풀리는 날에는 더럽게 안 풀린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2013년부터 안 그래도 좋지 않던 구위가 2016년에는 공의 구속까지 138km로 떨어지고 제구력까지 떨어지면서 통타를 당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노쇠화가 찾아오면서 상체 위주의 피칭에 한계가 찾아온 듯 하다.

수첩을 들고 다니며 직접 상대 팀 타자들의 특징 및 장단점을 기록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전력분석팀의 조언을 구하지 않거나 스스로 상대 팀에 대한 분석도 하지 않고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도 많다.

아는 사람은 아는 짝수 년도 징크스가 있다. 홀수 년도에는 죽을 쑤고 1년을 푹 쉰 장원삼은 짝수 년도에 폭풍같이 스탯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데, 2012년에는 한 술 더 떠서 다승왕과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13년에는 비록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높았지만 데뷔 첫 홀수 년도에 두자리수 승리를 거두어 비교적 좋은 성적을 찍었는데, 드디어 징크스를 벗어났다는 평에서부터 FA로이드라는 평까지 분분하다. 그리고 15년에는 또다시 귀신같이 부진하면서 2군도 다녀왔고 간신히 10승을 채웠다.

KBO 리그에서 손꼽히는 빅 게임 플레이어 중 하나이다. 삼성 이적 직후 시즌인 2010년 단 한 해만 부진했을 뿐, 한국시리즈에서는 그야말로 언터쳐블이라 불릴 만한 투구 내용을 보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2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거기에 국제전에서도 출중한 활약을 펼쳤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약체 팀 전문으로 등판했다고는 하나 2경기 13이닝을 모두 무실점으로 막았으며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선 예선에선 부진했으나 정작 결승전이 되자 소뱅 상대로 호투를 선보이며 대회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 WBC에선 비록 1이닝이긴 해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경기를 매조지었다. 유일하게 부진했던 국제전은 2009년 WBC지만 위에서 언급되었듯 태업 의혹이 있으니 이는 논외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 같은 빅게임 플레이어 본능의 가장 무서운 점은 홀수 징크스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15 KS에서 부진하긴 했지만, 이는 도박 의혹 사건으로 전반적으로 다운된 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히어로즈 암흑기의 소년가장이자 삼성 왕조의 한 축을 담당한 한 시대를 풍미한 좌완투수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4. 여담[편집]



4.1. 별명[편집]


  • 별명은 이름의 '삼'자가 석 삼(三)자인 것에서 착안해 3과 관련된 별명이 많다. 장one3, 원쓰리[13] 등등. 또한 三星 소속이기도 해서 '삼원삼', '장원삼성'이라는 별명도 있다. 2012년에는 17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고 MVP 후보에까지 올랐으며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다승 외의 지표가 다승왕이나 MVP 후보이자 골든 글러브 수상자에 걸맞지 않아 까이는 별명으로 장운삼으로 불렸다.[14][15] 코야마 진 트레이너의 오타에서 비롯된 징원심이라는 별명도 있다. 주로 엽기적인 사진을 두고 징원심이라 부르며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장원삼과 징원심은 별개의 인격으로 취급하는 중.[16] 야민정음으론 튽B.[17], 그리고는 삼적화의 원본으로 멕시코식 이름을 따서 원삼 가르시아이라고 한다.


  •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별명은 장원삼이 술을 좋아한다는 데서 착안한 접두어 술- 이 들어간 별명. 못하면 술리대나 술션 등으로 불리고 잘하면 술리프 장이라든가, 후술할 한국시리즈에서의 맹활약 등으로 인한 술가너 등의 별명이 있다. 어쨌든 술 자로 시작하는 별명은 대부분 장원삼의 별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증언에 따르면 매일 다른 후배와 포장마차에서 대작을 하며 매일 같이 술을 그렇게 마셨다고. 그러나 결혼 후에는 술대신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 루머로 인해 장레몬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 2016년 최근에는 60억 장짬뽕으로 불리우고 있다(...).[18][19] 공교롭게 2020시즌 장원삼이 송승준이 있는 롯데로 이적해 잠시 팀동료가 되었고 둘 다 은퇴 후 최강야구에 출연해 다시 동료가 되었다.

  • 2019년 LG 트윈스로 이적하면서 등번호 30번을 부여받아 3의 이미지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4.2. 어린이날[편집]


파일:장13 어린이날.png

어린이날 경기에 굉장히 강하다. 통산 5경기 5승 무패 5QS 1QS+ 31⅔이닝 8실점 20K ERA 2.27로 엄청난 수준. 특히 2018년 한화전은 초반 상승세의 기점이 되었다.[20]


4.3. 삼적화[편집]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jangwonsam1.jpg
어머나 세상에...
삼적화. 역변해버린 모습.
파일:external/image.sportsseoul.com/2015102701001510900105011.jpg
과거엔 미남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삼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경산 베이스볼 파크 밥이 맛있어서 많이 먹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장원삼은 예전부터 술을 엄청 좋아했다. 경산 밥 때문이라기보다는 술 때문에 생긴 삼적화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면도만 깔끔하게 하면 현대 시절 만큼은 아니어도 좀 낫다.

본인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연예인도 아니고 외모에 크게 신경 쓸 나이도 지났기 때문에 별 신경 안 쓴다고 한다.


4.4. 파도파도 미담만 나오는 장원삼[편집]


투수 장원삼은 욕먹는 경우가 있어도 인간 장원삼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2013년 FA 이후 자신의 모교를 돌며 1억 7천만원을 쾌척하여 세간을 놀라게 했다. 기사에 의하면 그 전부터 자발적으로 출신학교에 기부를 해 왔다고 한다. 모교의 야구부가 해체되지 않고 유지돼 온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병원 도우미, 재능기부 등 다양한 선행을 펼쳤다.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논란 이후 이러한 사실이 부각되면서 연루된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과 비교해 장원삼을 칭송하는 삼성팬들이 늘어났다. 특히나 잘하면 마르고 닳도록 빨아주고 못하면 죽어라 까는 경향이 짙은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초반에 죽어라 깐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21]과 앞서 말했던 원정 도박 논란 투수들에 대한 실망이 겹치면서 거의 삼갤의 아이돌이 되었다.

결국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김성근에 대한 글마다 달리는 파도파도 괴담만 나오는 분이라는 댓글을 변형시켜 장원삼의 선행이 드러날 때마다 "파도파도 미담만 나오는 분"(일명 파도미)[22]라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몇몇 네티즌들은 야구계의 유재석이라는 찬사를 보낼 정도. 같은 팀이었던 차우찬 역시 원래부터 선한 성품과 기부로 유명해서 두 투수를 같이 묶어서 칭찬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이재국 기자의 페이스북 글이 재발굴되기도 하는 등 점점 좋은 쪽으로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었다.

국민일보 기사에서 공식적으로 파도미가 언급되었다.

5월 23일에 선수단 전원은 물론 직원들도 마실 수 있게 아이스커피를 70잔이나 사왔다!

2020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와중에도 코로나19의 피해지역인 대구에 파견된 의료진들을 위해 도시락을 후원해주거나 김해에 있는 자기 소유 건물의 임대료를 인하하는 등 선행을 이어나갔다.


4.5. 그 외[편집]


  • 굉장히 소탈하고 욕심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 심지어 2009년 전까지는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그래서 야구장에 갈 때 택시를 타고 가거나 동료 차를 같이 타고 다녔다. 한 번은 방송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는데 이젠 자가용 안 모냐고 물으니까, '이젠 모범택시만 타고 다닌다'고 답한 적도 있다. 2013년 FA 대박 이후에도 집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바로 뒤라서 차를 사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하고 난 후 차를 샀다.[23]

  • 고액 연봉자인데다 나이도 제법 차서 따로 집을 구할 법도 하지만 2012년까지 경산 볼파크에서 숙소생활을 했다. 누가 계속 숙소생활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공짜로 밥 주고 재워 주고 심심하면 떠들 상대도 있는데 왜 나가냐고 역으로 되물었다고. 히어로즈에 있던 시절에는 팀에서 숙소를 나가라고 하면 그 앞에 텐트라도 치겠다고 했다.[24] 삼성 라이온즈에 와서도 기숙사 생활을 했던 건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25] 2013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근처에 아파트를 구하면서 독립했다.

2014년 12월 7일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원동 풀만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면서 차도 한 대 샀다고 한다.


  • 창원시 출신이라는 이유로 창원을 연고지로 하는 NC 다이노스 팬들이 창원삼 드립을 치며 자팀으로 오길 기원하곤 했다.

  • 윤희상 급소 부상 사고에 관한 류현진의 코멘트에 의하면 급소 보호대를 착용하고 등판한다. 하지만 본인이 밝히기로는 데뷔 후 5년 동안 아무 일이 없었기 때문에 2012년부터는 그냥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 황재균[26], 이택근 등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히어로즈 출신들은 타 팀에 이적하더라도 친정팀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해서 그것을 넌지시 어필했다가 쌍욕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장원삼은 특이하게도 현대/히어로즈 출신인데다가 김시진에게 직접 조련까지 받았는데도 별다른 애정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삼성에 대하여 강한 애착과 충성심(...)을 보이고 있어서 넥센 팬들을 꽤 허탈하게 하였다. 이장석 대표도 장원삼의 이적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제는 삼성에서 뛴 기간이 다른 팀에서 뛴 기간보다 거의 두 배는 더 길기 때문에 이적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될 일도 없다.


  • 2010년부터 짝수해 어린이날마다 등판해 모두 승리했다. 5전 5승. 2018시즌에도 선발로 나와 7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여 또 승리했다.

  • 2018년 2월 1일 조모상을 당하였다. #

  • 2009년 7월 27일, 스포츠조선에서 이대호를 대상으로 하는 10대 1 인터뷰 기사에서 그 이대호에게 맞을 각오를 하고 물어보는데 왜 살 안 빼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 안지만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논란의 영향으로 집에 칩거하던 시절 안지만을 도와준 지인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당시 장원삼이 현금 100만원과 소주 10병(!!!), 안주를 사들고 안지만의 집을 찾아가 안지만을 위로했다고 안지만이 아프리카TV 방송에서 술회했다.[27]

  • 프로 생활 내내 '제트'사의 글러브를 사용했다. 은퇴 후 출연한 야구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도 제트에서 제작한 자신의 시그니처 글러브를 착용하고 나왔다.[28]

  • 현역 시절 야구계에서 알아주는 애주가로 유명했지만 유독 술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잦은 KBO 리그에서 음주 관련 사건사고가 전혀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09년까지는 운전면허가 없어서 운전할 일이 없었고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없었기에 주취 폭행 등의 일은 더더욱 없었다.

  • 최강야구 창단멤버이기도 하지만 나이에 따른 노쇠화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된 활약은 부족하였으며 특히 2023시즌에는 2022시즌에 들어와서 2023에 제대로도 활약을 펼치는 이대은, 트라이아웃으로 들어온 신재영같은 젊은 전 프로 투수들에 밀려 덕아웃을 지키고 있어서 일부 팬들에게 아쉬움을 사고 있고, 격한 팬들은 이기는 야구를 하려고 장원삼, 송승준, 유희관 같은 노쇠한 선수를 안쓰는 김성근 감독을 비하하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김성근 감독을 욕할 수는 없는게 최강야구는 7할 승률 미달성시 발생하는 패널티[29]가 매우 큰 프로이며 특히 2023 시즌은 2022시즌에 비해 팀들의 난이도가 더욱 높아진 탓에[30] 장원삼 같은 선수가 괜히 나갔다가 패배할 경우에는 심할경우 프로그램 유지까지 위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원삼 본인은 몸을 유지하는것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서 동국대 1차전 패전처리를 하러 올라왔을때 실점없이 경기를 마무리 해냈으며[32] 중앙대 2차전에서 두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하였으며 경상도 특유의 찰진 입담에서 나오는 덕아웃 및 라커룸 토크를 통해 안그래도 2023시즌 들어서 부족해지는 예능적인 요소를 유지시켜주고, 정현수같이 아마추어 출신 투수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줘서 기량을 올릴 수 있게 만드는 만큼 프로그램 전체 비중에서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1] 체육학과(02학번)[2] 경성대 진학으로 실제 입단은 2006년.[3] 김주열 열사의 모교로 유명한 그 마산상고가 맞다. 2001년에 실업계 반을 전부 타 고교로 이관 후 인문계로 전환.[4] 당시에는 지명받은 후 대학을 가도 지명권이 남아 있었다. 2004년부터 폐지.[5] 특히 짝수년에 ERA 5위를 2차례 기록하였고, 짝수해 징크스는 삼성 시절까지 이어진다.[6] 대한민국 선수 중 유일하게 아시아 시리즈 MVP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7] 다만 2013년 시즌 이후 FA로 60억이라는 거액을 받았으나 이후 WAR 1당 28억이라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먹튀의 오명을 썼다. 이로인해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투수 먹튀로도 거론되며, 이는 2017년부터 삼성으로 FA 이적한 우규민도 장원삼한테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인데, 트레이드로 온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네 시즌 동안 51승 29패에 ERA 3.87, sWAR 11.91을 기록했던 왕조시절의 든든한 선발 투수에서 FA 계약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간 125경기에 등판해 30승 27패 8홀드 ERA 5.47, sWAR은 2.12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특히 2015년을 기점으론 WAR이 0 내외를 왔다갔다하였고, 2016~17년에는 2년 동안 겨우 145⅔이닝에 9승 13패 8홀드에 그쳤다. 내구성도 급격히 약화되어 FA 계약 후 4년 동안 한 번도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이는 2018년을 앞두고 연봉이 7억 5천에서 5억 5천이나 삭감된 2억원에 재계약을 하게되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 2018년에도 부활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다만 그럼에도 삼성에서 좋은 시절을 함께 보냈기에 삼성팬들에게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워낙 이미지가 좋은 선수이기에 팀을 떠난 후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8] 2020년 말 웨이버 공시된 후 여전히 현역 연장을 희망했으나 나이도 그렇고 현격한 구위 저하의 모습을 보였기에 재취업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였고 결국 2021시즌 KBO 리그 내 어떤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았고, 2021년 12월 19일 자로 팬들과 은퇴식을 가지면서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었다.[9] 빠르지 않은 구속, 좋은 제구력에 보더라인 피칭을 즐기며 각각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라는 점이 다르지만 확실한 결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평가한 듯. 투구폼도 살짝 비슷한 면이 있다.[10] 하락세임에도 불구하고 포수 미트에 정확하게 꽂을 정도로 제구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사실 은퇴 직전까지도 제구력이 나빴던 적은 없다. 평균적인 구속, 평균보다 살짝 이하의 구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노쇠화로 인해 구속은 평균 이하, 구위는 처참한 수준이 되니 살아남기 힘들어진 것.[11] 이는 둘의 스타일 차이에서 기인하는 차이이다. 제구력을 기반으로 존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하는 투수들은 제구력이 비교적 떨어져도 자신의 구위를 믿고 자신있게 존에 집어넣는 투수들에 비해 볼넷 허용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 때문에 비교대상으로 상술된 톰 글래빈도 제구력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투수이지만 통산 BB/9은 낮지 않은 편.[12] 2009년 히어로즈의 타선은 리그에서 상위권의 파워, 그리고 상위권의 스피드를 보여준 힘이 넘치는 타선이었지만, 정작 그때는 자기가 죽쒔다.[13] 애초에 등번호부터가 13번이다. 단, 현대 시절에는 등번호가 55번이었다.[14] 운 좋게 우승 팀에 소속되어 다른 팀에 있으면 못 받을 상을 받고 수상 후보가 되었기 때문에.[15] 사실 운 나쁘게 류현진과 같은 2006년에 데뷔하는 바람에 다른 해였으면 신인왕급이었을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도 신인왕은커녕 관심조차 미미했던 것을 생각하면, 마냥 운빨로 흥한 선수라고 까이기는 좀 억울한 면도 있다. 신인왕은 평생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16] 여기서 나온 것이 은퇴드립. 우리가 아는 장원삼은 2014년에 은퇴했고 지금은 징원심이 뛰고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예시로 첼시의 에덴 아자르는 실종되었고 지금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선수는 이든 해저드라는 드립이 있다.[17] 튽은 長(장), B는 1과 3을 합친 모양을 본뜬 것.[18] 롯데 자이언츠에 40억 송짬뽕이 있다면 삼성엔 장짬뽕이... 둘이 수염기르는 것도 똑같다.[19] 둘 다 거액의 FA계약을 맺어 놓고는 못해서 저런 별명이 붙은 모양인데 송짬뽕이 어떻게 붙은 별명인지 구글에 검색해보면 장원삼한테 모욕을 넘어 고소를 당해도 할 말 없다.[20] 2018 시즌은 장원삼이 삼성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이며, 8경기에 나와 방어율 6.16을 올려 시즌 초반에만 반짝하고 후반부터는 아예 잊혀진 시즌이다. 그런데도 어린이날 선발로 나와 7이닝 3실점이라는 역투를 선보인 것.[21] 참고로 시즌 후반기까지 삼갤에서는 장원삼이 또 속냐?를 외치는 자짤을 사용했다.[22] 참고로 김성근과 장원삼에 대한 드립 모두 원조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파도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실드성 발언을 한데서 유래된 드립이다.[23] 최강야구에 합류하면서 대구에서 수도권 구장을 오가며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한 번 집을 나오면 5~6일을 밖에서 지내기 때문에 차가 지저분해졌다고...[24] 일본프로야구의 기인으로 유명했던 이가와 케이도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25] 사실 인터뷰에서 '에이, 심심하게 어떻게 술을 혼자 마셔요'라고 공식적으로 부정했지만 그러면 숙소에서 애들 모아서 마시는 거냐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26] 넥센은 가족 , 롯데는 직장 이라는 글을 sns에다가 쓴 적이 있다.[27] 이 때 안지만을 도운 다른 지인은 같은 사건에 연루됐던 팀 선배 오승환인데 미국에 있던 시절 지인을 통해 현금 1000만원을 줬다고 한다.[28]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는 노란색, 삼성 시절에는 파란색, LG와 롯데 시절에는 검은색으로 만든 시그니처 글러브를 주로 착용했는데 최강야구에서는 컬러가 파란색이어서 인지 삼성 시절에 가장 많이 착용하던 파란색 글러브를 착용하고 출연했다.[29] 10경기마다 7할 미달성시 선수방출, 한 시즌 전체 승률 7할 미달성시 프로그램 폐지가 걸려있다.[30] 당장 2022시즌에는 독립구단을 3개나 연이어 하였는데 A급인재는 이미 드래프트로 다 빠진 독립구단인 만큼 고교나 대학에 비해 더 쉽게 경기가 가능하다 실제로 2022시즌에도 쉽게 승리를 거뒀으며, 2023시즌에는 이들중 베스트만을 뽑아 올스타로 팀을 구성해서 경기했음에도 불구하고 11대 7로 승리하였으며 7점 역시 육성선수인 선성권이 올라와서 긴장감에 사사구로 만루까지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발생한 점수인만큼 사실상 2023시즌 최강야구 팀 전력으로 독립구단은 보너스 게임에 불과할 정도라 일부러 제외할 정도다.[31] 어느정도로 심했냐면 김민주가 두번째 등판할때가 한일장신대 2차전인데 이때 밝혀진 기록으로는 0.1이닝 방어율 81[32] 이점도 간과할 수 없는게 당시 동국대 1차전은 8회 강우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었으나, 최강야구는 강우 콜드룰은 없으며 무조건 서스펜디드 게임인데 동국대는 연전이라 다음날에 이어서 해야했다. 장원삼은 서스펜디드 이전에 올라와서 다음날 이어진 게임까지 마무리를 해준건데 그 덕에 나머지 투수진이 체력을 유지할수 있어 나머지 투수들이 2차전 준비할때 문제가 없게 만들어주었다. 실제 2차전때 알바로 올라온 김민주가 불질을 해댄걸 제외하면[31] 나머지 투수들은 제몫을 하였다. 특히 동국대 2차전은 20경기째이고 패배시에는 7할 미달성시 방출자가 나올정도로 위태한 상황이었기 때문이 이날 장원삼의 공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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