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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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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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0



MBC 청룡 / LG 트윈스 등번호 36번
이선희
(1982~1987)

이용철
(1988~1992)


김경하
(1993~1996.6.2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김정수
(1987~1992)

이용철
(1993~1994)


김영진
(1995~1997)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1번}}}
김경문
(1994~1996)

이용철
(1998~1999)


이순철
(2000)




파일:KBSN 스포츠 이용철 전)해설위원.jpg

KBS N SPORTS 해설위원 시절
이용철
李龍澈 | Lee Yong-Cheol

출생
1964년 3월 8일 (60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배문중학교 (졸업)
경기상업고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학사)
호서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야구학 / 석사)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8년 1차 지명 (MBC)
소속팀
MBC 청룡-LG 트윈스 (1988~1992)
삼성 라이온즈 (1993~1994)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1998~1999)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 (1994~1997)
경력
KBO 규칙위원 (2006~2007)
KBO 상벌위원 (2012)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사무총장 (2013~2019)
해설위원
KBS 야구 해설위원 (2001~2018)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01~2019)

1. 개요
2. 경력
2.1. 선수/코치 경력
2.2. 연도별 성적
2.3. 해설가
2.3.1. 해설 스타일
2.3.2. 흑역사
2.5. 어록
2.5.1. 2014년
2.5.2. 2015년
2.5.3. 2018년
2.5.4. 2019년
2.5.5. 2020년 이후
3. 사건/사고
3.1. 성매매 무고
3.2. 한국은퇴선수협회 후원금 부정사용 논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오늘 경기는 이미 4-1, 5-1되는 상황에서 끝났어요."[1]

KBO 리그의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전 KBS N 스포츠해설자. 선수 시절 소속팀은 MBC 청룡/LG 트윈스 - 삼성 라이온즈. KBS 기존 간판 해설이었던 하일성의 공백 기간에 새로이 간판 해설로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20년에 가까운 해설 경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표해설자 이미지를 가져가려 했으나 성매매 의혹이 제기되며 해설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후 성매매 의혹이 무혐의로 끝났지만 한 번 망가진 이미지 탓에 현재까지 방송복귀를 못하고 있다.


2. 경력[편집]



2.1. 선수/코치 경력[편집]


현역 시절에는 사이드암 투수로 1988년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차 지명을 받아 MBC 청룡에 입단하였다.[2]입단 첫 해 7승 11패, 평균자책점 2.74로 KBO 신인상을 수상하였다.[3][4] 통산 성적이 20승 28패. 당시 일반적이었던 투승타타의 관점에서 벗어나면 평균자책점 전체 5위로 꽤 훌륭한 성적인 것은 맞다. WAR도 2.75를 기록했으니 10승만 못 했을 뿐이지 충분히 신인왕 자격이 있는 기록이다. 만약 7승 11패 2.74가 아니라 11승 7패 2.74였으면, 논란의 여지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1994년 은퇴 직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스카우트 생활을 하다가 1998년부터는 투수코치로 2년간 있었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KBS와 2019년까지 KBS N 스포츠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LG 시절인 1990년 8월 17일, 빙그레와의 원정 경기에서 청룡 시절부터 계속되었던 대전 구장 연패 기록을 끊는 공로를 세운 바 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특정 구장 연패기록은 MBC/LG가 1989년에서 1990년에 걸쳐서 기록한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기록한 19연패인데,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연패 끊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 전 8월 7일 해태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도 1회에 아웃카운트 1개도 잡지 못한 김기범을 구원하여 9이닝 1실점으로 사실상 완투승이나 다름없는 투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며 중요한 순간의 팀의 난세영웅으로 활약했었다. 그해 팀 창단 첫 우승을 경험했으니, 이용철에게는 뜻깊은 해였다. 사실 레전드급 선수들도 의외로 못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게 우승인데, 신인시절 이후 주로 1군내 2진선수에 불과했었던 이용철은 신인왕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해봤으니 꽤 운이 좋은 편.


2.2. 연도별 성적[편집]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8
MBC
29
144⅓
7
11
0
0.389
2.74
(5위)
138
5
62
46
63
44
1.34
1989
29
120⅔
7
7
0
0.500
5.44
151
12
50
35
82
(공동 3위)
73
(공동 3위)
1.5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0
LG
10
32⅔
3
1
0
0.750
2.48
25
1
19
8
13
9
1.29
1991
23
81⅔
2
7
0
0.222
6.39
99
11
43
28
66
58
1.62
1992
9
17
0
2
0
0.000
6.35
21
1
20
7
17
12
2.0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3
삼성
5
14⅔
1
0
0
1.000
3.07
14
2
8
7
5
5
1.30
1994
4
3⅓
0
0
0
-
10.80
7
0
2
2
4
4
2.40
KBO 통산
(7시즌)
109
414⅓
20
28
0
0.417
4.45
455
32
204
143
250
205
1.50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8년
6완투
0완봉
1989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7완투
0완봉


2.3. 해설가[편집]



2.3.1. 해설 스타일[편집]



편파 해설 #1. 2014년 10월 8일 경기로 네이버 전체영상에서는 54분 9~15초쯤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 영상

편파 해설 #2(자동재생 주의) 2014년 KS 5차전에서 삼성과 넥센의 각각의 호수비에 대한 반응을 보면, 삼성의 호수비에는 온갖 감탄사와 탄성을 터뜨리면서 넥센의 호수비에는 시종일관 침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 평가한 게 입이 쩍쩍 벌어지네요. 정도.

해설 경력이 오래되었음에도 발전없는 해설 및 편파 해설로 골수 야구팬들에게는 대단히 이미지가 좋지 않다.

편파 해설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삼성 라이온즈를 대단히 추켜세운다는 점. 선수 시절에 주로 몸담은 팀은 LG 트윈스지만, 은퇴전에 잠시 삼성 선수를 했고 이후 삼성의 코치를 하다가 그만두고 해설가가 되었기에, 삼성을 편애하는게 골수 팬덤에서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삼성 경기를 중계할때는 과장해서 한일전 중계모드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온다. 이게 단순히 마음이 기운다 정도의 수준이 아닌 거의 일방적인 찬양모드일 때가 잦아서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선 삼용철이라고 매일 까인다.[5]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로는 한화를 까는 경향을 보인다. 막상 삼성팬들도 몇 경기 나오지도 않은 이용철에게 선수로서 어떠한 감정도 없으니 황당할 뿐이다. 스카우트와 코치로 삼성에서 일한 것이 영향을 준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고, 확실한 정황증거라고 할 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에게는 안티 노릇을 했다.[6] 툭하면 롯데 자이언츠에는 선수가 없다고 말한다던지 해서[7] 롯데 팬들이 많이 싫어하는 해설자 중 한 명이다. 2013년 6월 27일 사직 경기에서는 평일날 12,000명의 관중이 왔는데도[8] "어제의 1/10도 안 온 거 같네요." 드립을 해서 롯데 팬들에게 까였다. 그런데 2014년부터는 롯데 자이언츠에도 우호적으로 해설한다.

2000년대까지는 특별히 티가 나지 않아서 별 말 없이 지내왔으나 그 이후 시청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쌓여서 평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편파해설 문제를 제외하고 평가하자면 언변 측면에서는 그나마 매끄러운 해설을 해 인정을 받지만, 해설의 전문성 측면에선 매니아층의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은 해설자이다. 선수 출신다운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경우도 거의 없고[9], 그렇다고 아주 노력하는 해설자도 아니기 때문. 허구연, 하일성 같은 베테랑 해설자들처럼 안티를 끌어모으지는 않지만 자신이 야구를 좀 본다고 느끼기 시작한 매니아 팬들에게는 좋은 까임거리를 제공한다. 다만 10구단 체제 이후 해설자가 부족해지고 급히 투입된 선수 출신 초보 해설자들이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어 말 잘하고 경기 분위기 제대로 띄우는 해설이 평타는 친다는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

그러나 이건 2015년 초까지 이야기고 2016년이 되면서는 다른 채널 간판 해설자들에 비하면 평가가 최악. 심지어 동 소속사의 조성환, 장성호, 안치용만 해도 각각 조금씩 호불호는 갈리지만 이용철에 비하면 상위호환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는 추세다. 셋 다 선수 출신 해설자치고 다른 채널 해설자들에 비하면 전문성이 약간 덜한 라이트한 해설인데, 대신 다들 말재주는 뛰어난 편. 게다가 경력이 쌓일수록 이용철 해설의 실력이 늘기는커녕 주관적이고 막나가는 해설이 심해지면서 더더욱 커뮤니티에서는 악평이 쌓이고 있다. 편파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해설 수준의 상향평준화와 함께 점점 편파해설 제외하고 봐도 자격미달이라는 쪽으로 여론이 옮겨가고 있다.

사실 이용철 해설에 대한 평가가 점점 떨어지는 이유는 매니아층에서 보기엔 정말로 노력을 안 하는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이는 비선수 출신 해설 중 본좌로 꼽히는 축구의 한준희와 MLB의 송재우, 그리고 아주 짧은 선수경력에도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는 이효봉이 노력을 통해 비선출의 한계를 극복한 것과 대조된다.[10] 그리고 해설 경력이 짧은 선수 출신 해설자들의 경우 그래도 긴장과 겸손이라는 것이 있어서 데이터를 찾아보거나 감으로 해설을 하더라도 자신이 확신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조를 좀 조절한다.[11] 반면 이용철 해설은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기본적인 데이터에 배치되는 해설을 마구 내뱉는데,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데이터에 대한 지식이 있는 야구팬이라면 이용철 해설에 대한 평가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다.

편파해설 문제도 야구 지식적인 부분과는 떼어서 생각할 수 있지만 해설 퀄리티에는 당연히 포함되는 것으로, KBS 후배 해설위원들도 이용철과 2인해설을 하면서 더더욱 편파해설에 거리낌이 없어진다는 의견도 있어서 더더욱 KBS가 걸릴 때마다 절규하는 팀 팬들에게는 KBS 스포츠 내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특히 편파를 위해 맥락을 무시한 발언을 해서 중계의 질 자체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예를 들어 중요한 순간 타자와 투수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 타이밍에 뜬금없이 다른 선수의 부상이나 활약상 등, 현재 상황과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다던가.

2008년 한국시리즈 때에는 SK의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한 이야기가, "올 시즌은 이렇게 끝났네요..." 이게 다다. 이 발언을 놓고 골수 팬덤에선 우승의 순간까지도 편파 해설을 하고 있다며 덩달아 까이고 있다.

중계 파트너로는 주로 권성욱, 이기호가 배정되는 편이며, 권성욱 캐스터와 중계 조합을 했을 경우에는 경기마다 임팩트 있는 중계 조합으로 평가되고 있다. 권성욱이 대구 출신, 본인이 삼성에서 몸담았고 삼성 해설 위주라 그런지 눈에 띈다. 이기호 캐스터와 중계 조합을 했을 경우 서로 하이톤 성향이라서 그런 듯하다. 지상파에서는 김현태 아나운서와 중계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해설도 중계 조합을 담당했다. 과거 하일성 해설위원이 KBO 사무총장직을 맡았을 때는 표영준 아나운서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삼성팬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그 외 팀들에게 있어서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2.3.2. 흑역사[편집]


본인에게 흑역사가 있다면 2006년 5월 13일 두산-SK전에서 중계 중 손가락 욕을 날렸다가 하마터면 KBS 해설가 자리에서 짤릴 뻔한 적이 있다. 클리닝 타임 때 이기호 캐스터와 선수 관련 정보에 대해 글로 쓰며 얘기하다가 담당PD가 그 장면을 보내면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이용철에게 "(화면) 잡는다"고 얘기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해설자와 캐스터의 모습을 방송하는 장면은 상당히 드물었던지라, 이용철은 이를 농담으로 생각하고 장난기가 발동해 PD만 보라고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폈다. 그리고 절묘하게 그 타이밍에 화면이 바뀌어 그 모습이 0.5초동안 고스란히 방송되었다. 사태를 파악한 순간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이기호 캐스터와 이용철은 방송이 끝날 때도 사죄드린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지만, 방송 홈페이지는 이용철 비난으로 도배되었다. 이용철 스스로도 자신이 해설위원하면서 최악의 실수로 꼽은 사건이었다. 그 후 그는 KBS N Sports에서 한달 정도 해설을 하지 못했으며, KBS 지상파 중계에서는 잠시 대타로 유승안이 나섰고[12] 케이블에서는 이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병훈이 고정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중계 도중 올림픽 쿠바전 이야기를 하면서도 민감한 발언을 하였다. 요는 당시 쿠바의 전지훈련장이 한국이었는데 이 훈련장의 관리인이 일반인이 아닌 KBO 관계자였다는 것. 문제는 이를 비판하는 발언도 아니고 이를 '숨은 공'으로 미화하려는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보문산 호루라기를 미화하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4. 프로야구 제10구단 관련 논란[편집]


"결과적으로 1%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99%가 뭘 원하는지 생각하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 결코 프로야구의 파행을 원치 않는다. 선수들도 원치 않을 것이다. 이런 파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해주기를 바란다."

2012년 6월 20일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하여 KBO 이사회의 10구단 창단 무산을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특히 대기업들이 투자도 안 하면서 프로야구를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인식하면서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 10구단 창단이 승인되고 연고지로 수원시전라북도가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수원시를 강하게 지지했다. 이유는 그가 수원 시민이고, 또 거기에 해설가 활동 이외에도 수원시에서 야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어 수원시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타 방송사이지만 엠스플에서 진행했던 한국프로야구 10구단 토론회에 수원 측을 대표해서 출연했다. 그리고 결국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wiz가 창단됐다. 사실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인구와 인구밀집도 도시의 경제력, 모기업의 차이 등으로 kt가 될 거라는 건 대부분 예상했다. ...


2.5. 어록[편집]



2.5.1. 2014년[편집]


2014년 7월 31일 삼성 라이온즈LG 트윈스와의 경기 중계 도중 5회말 이승엽 타석 때 "이승엽 선수가 과연 올해 30개의 홈런, 100타점, 3할 쓰리썸이 될 수 있을지.."라는 멘트를 한 바 있다.2:15:50

2014년 10월 8일 삼성 라이온즈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 중계 도중 3회초 2사 상황에서 김상수가 친 공을 이택근이 잡지 못하자 "좋아!" 라고 외쳐 경기를 중립적으로 중계해야할 해설자로서의 자세를 망각한 멘트를 한 바 있다.네이버 영상. 2분 9초부터


2.5.2. 2015년[편집]


2015년 5월 17일 삼성 라이온즈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중계 도중 1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이승엽이 3루수쪽 땅볼을 치고 3루수가 5-4-3 병살을 연결시키던 도중 정근우의 송구에러로 인한 삼성 라이온즈의 득점 상황에서 "저는 좀 이해가 안되는데요. 왜 3루수 주현상 선수가 5-4-3을 선택했을까. 지금 만루상황이었잖아요. 지금 홈으로 던졌으면 홈으로도 충분한 선택이었는데요. 일단 실점을 막는 게 더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라는 멘트로 한화 이글스 팬들을 혼란에 빠뜨린 바 있다.네이버 영상 하지만, 5-2-3 병살을 노릴 수도 있고, 만일 1루에서 아웃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점을 막을 수 있는 점 또한 고려해 볼 필요는 있다.

2015년 5월 19일 SK 와이번스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중계 도중 3회말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의 인프라에 대해 다루던 도중 모 맥주클럽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우리가 저기서 중계를 한번 하면 어떨까 싶어요. 담당PD께서 좀 결정을 내려주시면 기꺼이 제가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할 수 있겠는데. 맥주 한잔 정도는 뭐." 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57분 50초 이쯤이면 까일 일은 없을텐데 며칠 뒤 크게 한건 터지고 만다.

2015년 5월 23일 한화 이글스kt wiz와의 경기 중계 도중 9회말 2사 상황에서 윤규진 투수 교체를 두고 납득이 안간다는 등의 중립을 지켜야 하는 해설자로서 옳지 못한 발언을 하여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9회 1사에 박정진에서 김민우로, 2사에 김민우에서 윤규진으로 한 선수당 한 명씩 투수를 올린 운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인데,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야구팬들의 중론이기에 오히려 이용철에게 비난이 향한 것. 윤규진이 부상으로 오랜 기간 2군에 있다가 당일 1군으로 콜업되었고, 경기감각을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도 한몫했다.[13]

결정적으로 그 후 " 오늘 경기는 이미 4-1에서 5-1로 되는 상황에서 끝났어요."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3:39:28초부터 2014년 역대급 타고투저 후 2015년에도 전반적으로 높은 타선의 화력을 유지하고 있는 KBO 리그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이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또한 5-1이 된 시점이 경기 종반도 아닌 6회초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kt 위즈의 실력을 무시하는 발언이기도 하다.[14]
파일:znLrgpc.png

아이러니하게도 저런 실언을 한 바로 다음날인 5월 24일 kt wiz는 한 이닝에 7점을 내며 역전에 성공해 13:4로 승리를 거두었고, 이용철도 야구팬들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빅이닝이 나오고 5점 이상의 점수차가 뒤집히곤 하는 날에는 그의 이름이 종종 오르내리며 까이곤 한다.

5월 23일 경기에서 간접적인 자신의 야구교실 광고, 병원 광고를 했다는 팬들의 항의메일로 인해 방송법 제 100조 1항에 따라 방통위로부터 권고 조치를 받았다.

7월 26일 KIA 타이거즈의 투수 박정수를 칭찬하는 캐스터를 무안하게 만드는 해설을 했는데 박정수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이 같은 사이드 투수 이재학을 연상시킨다며 칭찬하자 "체인지업은 좋은 구종이 아니다." 그럼 투심을 장착하는 게 어떻냐는 질문에 "투심은 운에 의존하는 구종"이라는 개소리를 해대서 큰 웃음을 선사했다.[15] 본인이 투수 출신이긴 하지만 그 시절에 거의 던지지 않았던 구질에 대해서는 무지함을 드러낸 것.[16]


2.5.3. 2018년[편집]


5월 23일 두산과 한화의 대전 경기에서 두산의 투수 이영하가 한화 타자 최재훈에게 헤드샷을 맞춰 최재훈이 쓰러졌는데, 상황 발생 후 첫 멘트두산의 불펜 상황을 걱정하는 가히 망언 수준의 발언을 해 야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네이버 링크 다음 링크 경기가 끝난 직후 바로 기사가 떴을 정도.

헤드샷 당시 발언을 보면

머리에요. 이거, 패스트볼이에요. 어 이렇게 되면, 헤드샷(퇴장)이에요. 이게 또, 또 변수인데요. 왜냐면 지금, 두산의 불펜이 조금 여유롭지가 않아요. 그래서 오늘 홍상삼과 변진수가 등록이 됐거든요. 아, 최재훈 선수가, 네. 조금. 심하지 않아야 하는데.


여기서 최재훈 언급은 최재훈이 빈볼을 맞은 지 무려 30초 만에 이루어졌다. 그것도 캐스터가 중간에 말을 끊고 최재훈 선수 상태가 걱정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언급했다. 캐스터는 최재훈 언급이 나오자 최재훈 걱정만 내내 늘어놓았을 정도...

그사이 포털사이트에는 실시간으로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느냐.. 사과하든 하차하라"라고 뜰 정도.. 실제 2004년 ~ 2006년 인스트럭터를 맡아 애제자로 23일 경기후 한 언론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해를 풀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팬들의 지적에 인정했다고..

이후 24일 경기 해설전 오프닝에 제자이기도 했던 최재훈 포수였기에 다시 한 번 사과를 하였다.

지상파 담당이기에 더더욱 팬들의 시선은 차가울 다름..

보통 이용철이 소개될 때는 1988년 신인왕이 꼭 들어가는데 LG(과거 MBC청룡)와는 인연도 거의 사라진 상태라 LG 팬들에게도 선수시절은 많이 잊혀져 있다. 그리고 LG팬덤에서는 LG에 부정적인데다가 편파해설이나 하는 이 인물에 대한 호감이 전혀 없다.

두산과 SK의 한국시리즈 경기 내내 두산 편파적인 해설을 해 많은 야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SK가 결정적인 홈런을 칠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두산 투수의 아쉬움을 설파할 뿐, SK에 대한 칭찬은 듣기 어려웠다. 마지막 6차전에서는 두산의 부진이 계속되자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1위팀이 너무 오래 기다려서 경기 감각이 떨어지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많다"[17] 는 식의 발언을 해, 제도 탓까지 하며 두산 편을 드는 모습도 보였다. 두산도 이미 2001년과 2015년에 한국시리즈 직행팀을 상대로 뒤집기 우승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엉터리 발언.[18]


2.5.4. 2019년[편집]


3월 23일 지상파에서 중계되는 개막전의 중계 해설위원에서 빠졌다. 즉 KBS의 지상파 중계진 개편이다. 빠진 자리에는 2019년부터 KBS N SPORTS의 새로운 해설위원이 된 봉중근 해설위원이 들어갔다. 2019년부터는 KBS의 해설을 하지 않고 케이블채널 KBS N SPORTS에서만 해설을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후배들에게 밀렸는지 잘 들어오지 않고 있다. 2020년부터 KBS N SPORTS에서 재계약을 포기해 해설진에서 물러났다. 그의 후임은 키움 히어로즈 前 감독 장정석이다.


2.5.5. 2020년 이후[편집]


현재 호서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야구학과 교수재직 중이다.

3. 사건/사고[편집]



3.1. 성매매 무고[편집]


2019년 8월 26일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용철을 해설로 기용했던 KBS가 이 소식을 최초로 보도했다. 기사에도 나오듯이 서울강남경찰서는 2017년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술집에서 수 차례 성매매를 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에 나섰다.

고발인 측은 "이용철 위원이 단골 룸 술집에 데려가 술값과 성매매 비용을 내게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용철 위원은 "술집에는 갔지만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고발인 측이 흠집내기 위해 저지른 행동일 뿐, 자신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해명 연락이 와도 떳떳하기 때문에 대응하고 있으며 자료와 증거, 녹취, 증인이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무혐의 판결이 나와도 방송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설령 무혐의라고 해도 한번 언론에 보도된 이상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부정적 인식이 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19] 안 그래도 해설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았던 이용철 위원로서는 편파해설보다 훨씬 큰 논란이 생긴 터라 KBS N SPORTS로서는 고민이 될 듯하다. 거기다가 후술할 한은회 사무총장 시절 발생한 후원금 부정사용 논란으로 해설위원 복귀는 물론 스포츠월드에 일주일마다 한번씩 연재하고 있던 칼럼인 위클리 리포트를 연재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또한 매년 고정으로 출연하던 알럽베의 경우 2019년 기준 오효주, 조은지 아나운서와 2인 해설 체제로 이어갔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고 원래 출연이 예정되어 있던 방송분들은 장성호 해설위원만 출연하는 것으로 결정됐다.[20] 이어서 다음날 또한 2019년 8월 28일 김도환(KBS) 기자가 출연하였다. 당분간 1인 해설위원과 기자들이 매일 출연한다. 아무튼 사건이 터지고 2019년 8월 28일부터 포스트시즌까지로 봤을 때 출연하기 힘들 걸로 보인다. 복귀할 때까지 당분간은 장성호, 안치용, 봉중근 해설위원 세 명이 로테이션으로 현장과 알럽베에서 출연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 컴투스 프로야구 시리즈 해설에서도 하차했다. 대신 해설 역할을 맡게 될 다음 주자는 장성호.

2019년 12월 4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성매매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이용철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무혐의가 밝혀진 다음날 한은회 시상식에 참석해 공로패를 받았다.

2022년 3월 25일 법원에서는 이용철 위원 측이 정모씨에 대해 접수한 재정신청[21]을 심의, 통과시켰다. 기소명령이 내려진 것. 당초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한 검찰의 판단을 뒤집었다. 향후 끝까지 지켜봐야되긴 하겠지만 사실상 무고죄가 받아들여진 것이나 다름없어지면서 추후 해설위원으로 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다만 공금 유용건까지 있어 구설수가 많은데다가 후배 해설위원 자원이 많아서 어렵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2022년 4월 21일 그간의 세부사정과 심정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용철 위원이 알고 지내던 지인의 권유로 주식투자를 진행했다가 손해를 입었고, 그 결과 법정소송까지 가게 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자신을 고발했다는 것이었고, 이 내용이 무책임한 기자와 언론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

3.2. 한국은퇴선수협회 후원금 부정사용 논란[편집]


2020년 전임 한국은퇴선수협회 감사를 통해서 사무총장 시절 후원금 2억여원을 부정사용한 의혹으로 은퇴선수협회에서 제명되었다.# 다만, 경찰 고발은 하지 않고, 부정금액을 다시 환수받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고 한다.


4. 관련 문서[편집]


[1] 경기종료하면서 한 말인데 5-1이 된건 6회초이다. 어떤 분이 들으면 코웃음 칠듯 물론 경기가 끝난 이후라서 편하게 할 수 있었던 멘트이긴 하지만 6회에 4점차가 된 상황을 끝났다라고 표현한 것은 지나쳤다는 의견이 많다.[2] 단국대 입학에 스토리가 있다. 원래는 체육특기자로 영남대 입학이 내정되어 있었는데 경기상고 측에서 서류를 준비하지 못 하면서 입학이 좌절되었다. 그러자 이용철은 학력고사를 응시해 단국대에 지원, 합격하면서 단국대에 입학해 야구부에 합류한다. 즉, 이용철은 단국대를 일반 학생으로 들어간 셈.[3] 1988 시즌에는 같은 해 9월에 열린 서울올림픽 때문에 대어급 신인들의 프로 입단이 늦춰졌고(당시에는 올림픽 출전이 철저히 아마추어에만 국한되었다), 그 결과 이용철처럼 시즌 10승에도 미달하는 성적으로 신인왕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프로 입단이 늦어진 대형 선수들(예: 송진우, 강기웅, 이강철, 조계현, 노찬엽 등)은 이듬해인 1989년에 프로 데뷔를 했다. 하지만 1989년 신인왕은 1년 앞서 고졸로 입단해 시즌 19승을 올리며 맹활약한 박정현에게 돌아갔다.[4] 같은 해에는 훗날 OB에서 최초의 잠실구장 연고 홈런왕이 된 김상호도 청룡 소속으로 데뷔했는데, 안타 100개와 홈런 10개에 미달해 신인왕을 놓쳤다.[5] 이상하게 KBS에서 삼성 경기를 중계하면 본인이 자원하는 건지 이용철이 대단히 높은 확률로 배정된다. 3연전 내내 하거나, 최소한 한 경기는 꼭 이용철이 들어간다. 게다가 삼성 관련 야구 다큐에는 꼭 얼굴을 내미는데, 그럴 때마다 특유의 표정과 목소리로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삼성을 과할 정도로 추켜세운다.[6] 물론 허구연만큼은 아니다. 허구연만큼의 인지도는 없는 사람이 특정 팀의 안티짓을 허구연만큼 했으면 항의에 시달리다가 진작에 관두거나 짤렸을 듯.[7] 롯데의 2군인 상동구장은 다른 팜만큼은 아니래도 갑툭튀하는 선수들이 많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8] 사실 경기가 있었던 3구장 가운데 제일 많이 왔다.[9] 말재주로 많이 까이는 양준혁, 마해영 같은 해설자들도 전문성 자체는 있고, 만담식 개드립에 치중하던 이병훈 같은 경우도 게임을 보는 눈은 은근히 나쁘지 않다. 반면 이용철 위원은 이들에 비해 선수 출신 치고는 야구를 보는 식견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10] 물론 이효봉도 엄밀히 따지면 선출이긴 하지만 은퇴 후 기자 생활을 거쳐 해설 업무에 입문했고, 중간에 현장으로 돌아간 것도 코치진이 아닌 스카우트 쪽으로 들어갔던 거라 흔히 말하는 선출 해설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커리어이다.[11] 사실 팬들 사이에서 기술적 전문성이 높은 해설로 평가받는 이순철, 박재홍, 정민철 등의 해설위원들도 데이터를 다루는 태도가 올드스쿨적인 측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숫자 보는 눈은 있기 때문에 클래식 스탯에도 반하는, 다수 팬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 발언들은 잘 하지 않는다.[12] 다만 경기운영위원(경기감독관)이 시즌 중에 부업을 했기 때문에 구설수에 올라 얼마 가지는 못 했다.[13] 단, 그 이전 강경학의 도루는 불필요한 도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었고, 이를 인지한 한화 벤치에서는 대주자로 허도환을 내보내어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팬들 사이에서 불문율에 대한 의견이 갈린 것도 사실은 이 부분.[14] 헌데 아이러니한 건 위의 제 10구단 창단 관련 논란때 kt 위즈의 창단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는 점.[15]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현존 최고 투수인 류현진의 주무기가 서클 체인지업이며, 그밖에도 페드로 마르티네즈, 트레버 호프먼 같은 기라성 같은 투수들이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사용했다. 투심은 말하면 입아플 정도로 ELO레이팅 5위 안에 들어가는 그렉 매덕스의 주무기이며, 마리아노 리베라도 커터에 가려져서 그렇지 커리어 말년은 포심, 투심, 커터의 직구 삼신기로 게임을 운영했다.[16] 사실 그냥 공부가 부족한 것이다. 해설위원을 한 것이 2001년부터인데 이 시절에는 이미 체인지업, 투심은 메이저리그에서 대표구종으로 각광받던 시기로 생긴 지도 오래된 구종이었다. 한국야구에만 매몰되어 큰 물을 공부하지 못했으니 구종 평가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구종 자체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그걸 쓰는 사람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저런 식으로 단정지어 평가하는 것도 올바른 해설의 자세가 아니다.[17] 포스트시즌이 현행과 같은 방식으로 치뤄진 1989년 이후 양대리그로 진행되었던 두 시즌을 제외하고 2018년 현재까지 총 28번의 한국시리즈 중 단 5번을 제외한 23번을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1위팀이 우승을 지켜냈고, 또한 두산의 경우 1차전은 경기감각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핑계가 통할수는 있지만 4년연속으로 한국시리즈를 경험하고 있는 팀이 6차전을 치르는 동안 떨어진 경기감각이 올라오지 않았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므로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이다.[18] 그러나 2001년 당시 두산은 3~6차전을 홈인 잠실에서 치르면서 기세를 탔는데, 이후 2013년의 사례를 생각하면 삼성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분명히 있다. 2015년 역시 삼성이 스스로 무너진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온전히 미라클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는 주장도 많다.[19] 방송계에서는 특히 성범죄에 연루되면 재판에서 무혐의나 무죄 가능성이 있다해도 출연'자제' 권고를 내린다. 김흥국이 대표적. 반면 정준영, 박유천, 최종훈 등의 사례처럼 죄질이 영 좋지 않은 경우 방송사는 곧바로 출연'정지' 처분을 내린다.[20] 2019년 8월 27일 출연되어 있었고 하지만 긴급히 1인 해설 체제로 바뀌었다.[21] 재정신청은 고소·고발인이 수사기관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하는 제도다. 통과하면 검사는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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