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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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 사이에 있는 위치한 남한강 최대의 댐이다.충주다목적댐은 한반도 중심부를 관통하는 한강의 본류에 건설된 국내 최대의 콘크리트 중력식댐으로 한강유역이 보유하고 있는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여 하류지역에 각종용수를 공급하고 수력에너지를 생산하며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경감시킬 목적으로 건설된 댐이다. 충북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에 걸쳐 설치된 충주다목적댐은 높이 97.5m, 길이 447m, 저수용량 27억5천만톤의 댐으로서 유역면적이 6,648km²에 이르는 거대한 댐으로 하류에 높이 21m, 길이 480.7m 규모의 조정지댐을 갖추고 있다. 충주댐은 1978년 공사를 착수한 이래 8년 6개월만인 1986년 10월에 완공되었는데, 이 댐이 완공됨으로써 한강 인도교의 홍수위 1m 이상 저하 경감시키고 연간 33억 8천만톤의 각종 용수를 공급해 충북지역과 수도권지역의 용수난을 해결하는 한편, 연간 8억4천4백만KWh의 전력을 생산하여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충주~제천~단양에 이르는 65Km의 국내 최대 인공호수를 기반으로 다양한 관광지가 개발됨에 따라 많은 방문객이 충주댐과 충주호를 방문하고 있어 관광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공식 소개문
2. 원리와 형태[편집]
댐의 높이는 97.5m, 제방길이는 464m, 총 가용저수량은 27억 5천만 톤이다. 33억 8000만 톤의 각종 용수를 수도권에 공급하고 연간 8억 4400만 kWh의 전력을 생산·공급한다. 또한 홍수조절 역할도 한다.
이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된 지역에 충주호가 생겼으며, 본댐 하류 약 19km 지점에 건설된 충주조정지댐은 첨두 발전으로 발생되는 방류량 변화를 24시간 계속 균일하게 류하시킴으로서 하류지역의 용수공급을 원활하게 하며, 6,000kW의 수차발전기 2대로 연간 7,950만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3. 충주호 명칭 논란[편집]
충주호의 이름을 두고 충주시와 제천시 사이에 분쟁이 있다. 충주시는 기존에 사용하던 댐 이름과 맞춘 충주호를, 제천시는 청풍호를 주장하고 있다.
충주호라는 이름이 공식 명칭이고, 더 유명하다 보니 아무래도 태클을 거는 쪽은 충주시가 아닌 제천시다. 충주시는 충주댐 완공 당시 인공호의 이름을 댐의 이름을 따라 충주호로 명명했고, 댐과 인공호의 이름을 같이 하는 건 관례이므로 충주호의 이름은 당연하다는 쪽이고, 제천시의 입장은 충주호는 충주, 제천, 단양 세 지역에 걸쳐 있는 대형호수이며 특히 제천시에 속하는 면적이 가장 넓다, 즉 수몰지역의 대부분이 제천시[2] 라는 이유[3] 로 제천시가 지은 이름이 타당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뭔가 계기가 하나 생기면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중이다. 이제는 같은 지역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부르는 지역 자체의 별칭[4] 정도로 보아야 할 듯하다. 외지인으로서는 같은 호수를 두고 동네마다 다르게 부르니 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실제 제천시내 도로표지판에는 떡하니 청풍호라고 기재하고 있다.
그런데 지도나 위성 사진으로 보면 제천시와의 경계 지역인 동량면 명오리, 사기리 일대의 호수 폭이 좁기 때문에, 크게 보면 충주 쪽과 제천 쪽의 두 호수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몰 지역 중 하나인 단양군도 제천시에 감명을 받은건지 여기에 합세하여 단양호라는 이름을 독자적으로 밀고 있다. 2017년에 단양 수중보가 완공되면서, 보 상류 쪽은 충주댐과 다른 시설물로 조성된 호수라고 보겠다는 것이다. 단양군은 '댐 건설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설 명칭이 고시된 사항은 지명위원회 심의 절차 없이 국가기본도 등재를 신청할 수 있음에 주목해 단양수중보 상류의 '단양호' 지정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부결되더라도 제천시에서 청풍호를 쓰는 것처럼 단양호를 단양의 애칭으로 삼아 활성화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다지 인지도는 없는데 심지어 단양 장회나루에 있는 유람선에서도 충주댐과 수몰지역을 설명할 때 그냥 남한강이라 부른다고 할 정도.
4. 연혁[편집]
5. 교통[편집]
댐 위에 공도교가 있는데, 도보로만 이용가능하며 시간제한이 있다.
버스는 301번이 들어가는데, 자주 오는 편은 아니라서 가급적이면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자.
6. 관광[편집]
남한강자전거길 충주댐 인증센터가 있으며, 인공호수인 충주호는 소양강댐이나 남강댐의 인공호수처럼 관광지로 쓰이고 있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 참조.
2019년 새로 오픈한 댐 정상부근의 충주댐 물문화관은 1층과 2층이 연결된 복층구조로, 충주와 충주의 물을 노래한 동요, 동시 감상과 함께 충주, 제천, 단양의 관광명소를 설명한다. 또한 깨끗하고 건강한 물을 관리해주는 K-water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물문화관 옆에는 분수대, 잔디마당, 숲놀이터가 있어 최근 충주시민들과 충북도민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산180-11 일대에는 충주댐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어 봄에 벚꽃이 만개할 때는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벚꽃구경으로 하러 온다.
7. 인근 묘역[편집]
예전에는 유람선을 타면 안내인이 꼭 짚어주는 묘지가 하나 있었다. 연안 이씨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원군과 함께 온 '두사충'이라는 풍수지리에 밝은 도사가 있었는데, 조선을 둘러보던 중 의흥 현감이 자신을 정성껏 대접하자 이에 대한 보답으로 묫자리를 봐주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는 그 자리가 호숫가가 아니라 산중턱이었는데, 그 자리를 정해주면서 '400년 뒤에는 상전벽해가 일어나고, 후손들은 도선참배[5] 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약 400년이 지난 후 정말 이곳에 충주댐이 들어서면서 나라에서는 묘지도 수몰 예정지이므로 이장할 것을 권고했지만, 종친회에서는 예언을 따라 이장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만약 수몰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까지 썼다. 이후 신기하게도 현재와 같이 수몰되지 않은 상태로 찰랑거리는 물이 묘지 바로 앞까지 와 있으며, 후손들은 육로가 없어 실제로 배를 타고 와서 참배한다. 링크
2020년대에는 이 곳을 설명하지 않으며 대신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같이 지냈던 기생인 두향의 묘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이 쪽도 수면 바로 위에 있으며 매년 제사도 지내준다. 단양시에서도 이를 밀어주는지 장회나루 쪽에 동상과 설명문이 적힌 비석을 따로 마련해놓았다.
8. 수몰지[편집]
이 충주댐의 건설로 충주시[6] , 제천시[7] , 단양군 일대가 수몰되었는데, 특히, 제천시 청풍면[8] 과 단양군 단양읍[9] 의 경우에는 소재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이 수몰되어 이전을 해야 했다. 임하룡이 실향민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중앙선도 이설되었는데, 구단양에 이 중앙선 철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관련 게시물 제천시 청풍면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는 이렇게 수몰된 청풍면 지역의 주요 문화재와 마을의 건물 등을 옮겨 놓은 것이다.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마을은 가끔 기록적인 가뭄이 오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2015년에 1994년 이후 최악의 가뭄이 찾아오면서 충주호의 수몰 마을이 드러났는데, 실향민들이 이 때 마을을 찾아가기도 했다. 관련 기사
9. 내수면 국가어항 유치[편집]
10. 여담[편집]
데프콘에서 중국의 ICBM이 박히는 곳이 충주호다(...). 한국의 특수부대가 기지를 점령해서 핵탄두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호수에 박았다는 듯.
2006년에는 호우가 매우 크게 와서 충주댐이 만수위인 145m까지 약 50cm를 남겨두어서 댐이 넘칠 뻔한 상황이 있었다. 이 당시에 초당 9,000톤을 방류했었다고. 충주댐의 최대 방류량은 수문 6개를 활짝 열면 초당 16,200톤인데, 현재는 아열대로 변하는 한국의 기후 상황 때문에, 방류량 증대 및 치수 사업을 위해서 기존 수문 6개의 본댐 외에 오른쪽에 터널형인 보조여수로를 추가로 만들고 있다.
2020년 8월 3일 12시부터 폭우로 인해 수문 6개를 모두 개방해 방류를 시작했다. 충주댐 6개 수문 개방은 2018년 9월에 이어 2년 만에 이뤄졌다. #
충주댐 건설로 인한 보상 및 정수구입비와 관련해서 충주시 의회와 한국수자원공사가 크게 대립하고 있다. 충주시 의회측은 2018년 12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정수구입비를 미납했고 2021년 예산 역시 전액 삭감하며 댐 건설로 인한 제대로 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수자원공사 측은 이를 일축하고 있어 갈등이 심한 상태. 정수구입비 연체료만 104억이나 되며 2021년 3월엔 수자원공사 측에서 연체된 정수구입비에 대한 채권소멸시효를 우려해 충주시에 소송을 제기했다. 충주시는 기존대로 요금을 징수하고 있는데도 시의회에서 세출예산을 계속 승인하지 않아 지불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서로 대치하고 있던 사이에도 물밑에서 지속적으로 협의를 이어갔고, 마침내 2021년 6월 14일에 충주시의회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상생협약을 맺으며 서로간의 갈등은 "일단은" 봉합됐다. 충주시의회는 물값과 연체료 137억원을 지급하기로 했고 수자원공사는 위에서 언급된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다만, 일단은 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이 협약이 제대로 이행 가능하냔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상이변에 따른 기록적 강우에 대비하고 치수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충주댐 치수능력 증대사업은 대림산업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하고 2016년 착공에 들어가 총 2336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충주댐 왼쪽 부분에 수로터널(지름 15.8m, 길이 473m) 3개와 수문(폭 9.5m, 높이 20.1m) 6개 등을 설치한다. 공사가 완료되면 충주댐 최대 방류량은 기존 초당 2만6천680㎥에서 3만3천700㎥로 7천20㎥가량 늘어나고 댐 안정성 확보와 댐 주변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충북북부 지역 및 경기남부일원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하여 상수도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이 지역의 물공급을 원활히 하고자 충주댐광역상수도 확충 공사 사업 또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2022년 8월 8일 18시부터 폭우로 인해 2년만에 수문을 개방해 방류를 시작했다. #1 #2 그리고 2023년에도 9개월여 만에 수문을 열어 방류를 시작했는데, 초당 유입량이 12,000톤을 훌쩍 넘어버려 방류량인 초당 1500여 톤보다 8배 넘게 많은 상황. 이로 인해 저수율이 60%를 넘기고, 제한수위인 138m를 4m 남겨 둔 134m에 도달했는지라 수문을 더 위로 올려 방류량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10] 그리고 7월 15일 12시경 제한수위인 138m에 도달했고, 수위가 140m까지 급상승했기 때문에 현재는 수문을 위로 더 열어서 6,000톤 정도를 방류하고 있고 폭우 예보에 대비해 수문을 내리지 않고 있다.
그 덕에 현재는 137m로 홍수기 제한수위 밑으로 수위가 내려갔고, 유입량보다는 방류량이 많은 상황이라 댐 수위와 저수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중이며 말 그대로 물을 토해내고 있다.
10.1. 탄허 스님의 예언[편집]
탄허 스님(1913년 2월 20일 ~ 1983년 6월 5일)은 월악산 근처의 덕주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다. 당시에는 월악산에는 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에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으나 예언 8년 뒤인 1983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월악산의 달빛이 물에 비치기 시작했다. 정확히 30년 뒤인 2013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실제로 이 말도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마지막 문장인 통일 예언은 실현되지 않고 남아있다. 실제로 탄허는 자신이 체득한 주역 원리를 바탕으로 세상을 풀어내고는 하였는데, 한국전쟁을 예측함은 물론 5.16 군사정변, 월남전에 효고현 남부 지진, 박근혜 대통령 당선까지 예언했다. 자신 또한 임종 10시간 전에 죽음을 예언하고 숨을 거두는 등 예언으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기에 3-4년에 대한 해석도 분분한 현실이다. 확실한 점은 아직까지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만일 34년을 3~4년이라고 잘못 쓴 것이라면 2056년, 三四年을 삼국유사 등에도 쓰던 방식인 3×4로 본다면 12년에 통일된다는 예언이다. 아니면 여자 임금이 "나온다"를 진짜 건물에서 나오는 걸로 해석해서, 박근혜가 감옥갔다가 나온 2021년 연말을 기준으로 3~4년이라 해서 2025년 전후로 통일된다는 말도 있다."월악산 영봉(靈峰) 위로 달이 뜨고, 이 달빛이 물에 비치고 나면 30년쯤 후에 여자 임금이 나타난다. 여자 임금이 나오고 3-4년 있다가 통일이 된다."
탄허 스님(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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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뉴스 제1563호[2] 정확히는 부군면 통폐합 이전의 청풍군 영역.[3] 충주호 전체 면적 중 제천시에 속하는 부분은 60%가 넘는다. 충주와 단양 쪽을 모두 합쳐도 제천 영역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4] 실제로 근현대 시대에 들어와서야 하천의 이름이 유역을 따라 분석되어 하나로 맞춰졌고, 전근대에는 같은 하천도 지역별로 명칭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다. 가령 한강도 상류에서는 골지천, 서강 등으로 다르게 불리듯, 지금도 큰 하천은 지역별로 별칭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5] 배를 타고 와서 참배함을 뜻한다.[6] 당시에는 충주시와 중원군으로 분리되어 있었다.[7] 당시에는 도농통합 이전이었기 때문에 제원군이었다.[8] 김육과 명성왕후로 유명한 청풍 김씨의 본관이다. 지금은 제천의 일반 면이지만,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도호부까지 오르던 큰 고을이었다.[9] 구(舊)단양이라 불리면서, 현재의 단성면과 적성면 일대. 원래는 이 곳이 단양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단성역은 현 단양역에게 이름을 뺏겼고 지역 역시 현 단양읍(구 매포읍 및 대강면 일부)에게 이름을 뺏겼다.[10] 한강홍수통제소에 최대 9000톤의 방류 승인을 받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