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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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 입문 전까지
2. 정계 입문 후
2.3. 4선
2.4. 5선
2.4.1.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2.7.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1. 정치 입문 전까지[편집]


1958년 2월 10일,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당시는 여주군)에서 태어났다. 개군국민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고, 이후 용문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하였으나, 개군국민학교에 재학 중이던 1969년 교육제도가 바뀌어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 1년 전부터 서울에 거주해야 하게 되었다. 이에 정병국은 서울로 이사 가기를 원하였으나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정병국의 강한 의지를 꺾지 못하였고 마지막 날에 간신히 서류처리를 완료하였다. 국회방송의 300인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에 아버지가 부르실 때 크게 혼 나겠구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아버지가 서울 유학을 허락해주셨다면서 그 때가 기억난다고 했다.

1978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직후부터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의 수배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피해 포항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중 1979년 10.26 사건를 접하고, 곧바로 상경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전국 총학생회 부활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는데, 그의 의지대로 총학생회는 부활하고 있었지만, 1980년 5·17 군사정변 직후 신군부에 검거되었다. 신군부에서는 군 입대 또는 투옥 중에 선택할 것을 강요했고, 정병국은 해병대 입대를 선택, 헌병으로 사병복무를 하였다. 해병대 병 기수는 416기[1]. 아들도 해병대로 보냈다.#

전역 후 복학하여 1984년에 성균관대를 졸업,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수배를 받으면서도 '세인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서울 지역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인쇄물을 공급하였고, 군사 정권과 투쟁하는 학생들을 꾸준히 지원하였다.

1987년 6월 23일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검거되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6·29 선언이 일어났고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실제 모진 고문을 받다가 6월 후반에 갑자기 풀어주었다고.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2] 소속 변호사들이 변론을 자청하며 도움을 받은 바 있다.


2. 정계 입문 후[편집]



2.1. 상도동계 입문[편집]


민추협과의 인연을 계기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를 도우며 정계에 입문하였다.[3] 이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통일민주당 총재비서관을,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민주자유당 대표비서관을 역임한다. 김영삼 정권 때는 청와대 제2부속실장[4]을 역임하였는데, 그의 나이는 당시 36세로, 당시 임명된 비서관 중 가장 젊은 나이었다. 다만, 62년 생인 김영춘이 94년에 정무비서관이 되며 그 기록을 경신했다.

청와대 제2부속실 근무 당시 미국 국무부의 공식 초청으로 IVP(International Vistitors Programme)에 참가했다. 이 행사는 김영삼, 김대중, 김근태, 이부영 등 당대의 네임드 정치인들도 여럿 참가한 것으로, 여러 나라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초청된다.


2.2. 초선~3선, 문화체육관광부장관[편집]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양평군-가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새천년민주당 김길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후 남경필, 원희룡 등과 소장파의 대표격으로 활동하여 남원정 트리오로 이름붙여졌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친이계 정치인이 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초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치러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부진한 결과를 얻자 사무총장직을 사임하였다. 2010년 제18대 국회 후반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1년 1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재임 중 2018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프랑스와의 협상을 통해 국보급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를 환수하였으며, 한류의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재외 한국문화원을 24개까지 신설하며 K-POP, 드라마 등 한류 확장을 꾀했다.


2.3. 4선[편집]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여주군-양평군-가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경기도 면적의 1/4이 넘는 지역구를 관리하면서도 수도권 후보자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선 후 2013년 새누리당 지역공약실천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역대정부 최초로 대통령의 공약에 대한 실천 로드맵을 구성하였다.

또한 여야 의원 56명이 가입된 국회 최대의 의원단체인 인성교육실천포럼의 상임대표를 역임하며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법제화한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했다. 이어 국회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관련예산의 증액을 주도했으며,[5] 병영 독서운동의 확장을 위해 격오지 독서카페 나눔 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한국식 공공외교 확장에 앞장섰으며, 국회의원축구연맹 회장으로 한일 국회의원 축구대회를 개최하며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포석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자신의 지역구 내에 소재한 교통 오지인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를 위해 여객 취급을 하지 않던 중앙선 석불역의 영업 재개를 밀어붙였고, 결국 2013년부터 작은 역사를 짓고 영업을 재개하게 되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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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에 참석한 정병국 의원


2.4. 5선[편집]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여주시-양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63.51%의 득표율을 기록, 20대 총선 수도권 최다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6년 8월에 예정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했다.

김용태, 주호영 의원과 함께 비박계 주자로 나섰다가 7월 29일자로 김용태 의원과 단일화를 합의하여 비박계 후보는 정병국과 주호영 2명이 되었다. 8월 5일에는 주호영 의원과 단일화에 합의하여 사퇴하였고, 비박계 단일 후보로 주호영 의원이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주호영 의원도 이정현 의원에게 큰 표차로 패배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한 새누리당 비박계 중진 의원들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결국 비박계를 포함한 새누리당 의원 35명은 탈당을 결정했고, 정병국은 바른정당(당시 가칭 개혁보수신당)의 창당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발기인 대회를 거쳐 창당준비위원장으로 공식 추대되었고 창당과 함께 초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2017년 1월 11일, 친이계 정당인 늘푸른한국당에 축하 인사 차 찾아와서, 이재오, 정운찬, 최병국에게 반갑게 인사한 다음, 이재오와의 인연을 언급하며 축사를 낭독했다.

3월 10일 박근혜 前 대통령이 파면된 가운데 분당-창당-탄핵까지 자기 소임을 다했다며 바른정당 당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그 후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표권한대행을 겸하게 되었다.[7]

2018년 2월에는 바른정당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의결하였는데, 잔류해 바른미래당 출범에 합류하는 쪽을 선택했다. 바른미래당 창당대회에서 인삿말까지 했을 정도로 당내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남원정의 일원이었던 남경필은 통합에 반발하여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면서, 남원정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남경필이 복당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바른미래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8], 본인은 바른미래당의 최다선 의원이라는 점으로 인해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

2018년 7월 11일, 주승용과 함께 하반기 국회부의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바른정당 출신들은 경선으로 결정하면 국민의당 출신 당원세가 강하므로 통합의 정신을 들며 바른미래당 최다선인 정병국의 추대를 원했지만, 결국 원래대로 경선을 치러 주승용이 부의장으로 결정되었다.

언론에서는 그가 자유한국당에 복당한다는 설을 보도했는데, 정작 정병국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개혁 없이는 묻지마 반문연대는 절대 할 수도 없고 복당할 리도 없으며, 유승민 전 대표도 절대 복당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를 반박하는 인터뷰를 했다. #[9]

같은 당에서 4차산업혁명특별위원장을 맡던 이혜훈 의원이 정보위원장이 됨에 따라, 정병국 의원이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장에 내정되었다. 실제로 정병국 의원은 블록체인암호화폐 공개 법안 발의에 노력을 기울였고, 당 운영에 블록체인 도입을 시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여, 국회 내 '블록체인 전도사'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

2020년 1월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당연히 그 후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였다. 이후 보수정당 통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래통합당에 합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청년 정치세력'과의 통합을 도맡았는데, 문젠 그렇게 미래통합당에 들어온 사람 중 하나가 브랜드뉴파티(창당준비위원회)의 조성은이다.[10] 보수정당에 트로이의 목마를 입당시킨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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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준, 천하람, 정병국, 김재섭 그리고 조성은


2.4.1.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편집]


2020년 3월 9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 지도부는 수원시 무 지역구 공천을 권유했지만 거절하고 불출마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공관위에서 최홍 후보가 공천 취소된 강남구 을에 공천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본인도 고려했으나 이미 불출마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그 자리는 박진 전 의원이 공천되었다. 그래서 김재섭, 김용태 같은 청년정치학교 출신 정치인들과 지상욱, 오신환, 진수희, 김웅, 김은혜, 천하람, 김현아[11]를 지원하기로 했다. 오세훈, 장기표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홍준표의 복당과 관련해서는 반대한다고 밝혔고, 홍준표, 김태호, 윤상현, 권성동의 복당 문제는 국민이 선택한 선거의 결과인 103석을 유지하면서 혁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홍준표의 복당과 관련된 정병국 의원의 인터뷰

마지막 회기 연설을 하며 국회에서 여당은 여당의 역할을 하고, 야당은 야당의 역할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 정병국 의원의 마지막 국회연설

2020년 6월 23일 국민의힘에서 초선 국회의원들 간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국민의힘 당사에 걸려 있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의 사진을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억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서 김대중, 노무현 사진 걸었다고 따라 걸은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4.19 혁명을 탄압하고 깎아내리는 등으로 부정평가를 했던 접점이 있지만, 김영삼은 김대중과 함께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자, 라이벌이였음에도 같이 내걸은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박정희 대통령이 탄생한 것도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했다가 4.19가 나 장면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거기에서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서 된 건데"라고 혀를 차기까지 했을 정도.[12] 당연히 친박에서는 이를 비난한다. 상도동계 막내, 남원정을 위시한 소장파, 친이, 친유 출신인 정병국과 친박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반론하자면 국민의힘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민주자유당3당 합당으로 산업화 세력(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민주화 세력(통일민주당)이 연합해 탄생한 정당으로,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자당을 장악한 김영삼에 의해 민정계, 공화계 세력은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을 지지한 일명 민주계[13]를 제외하면 밀려나 따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고, 이후 민자당은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칭하고 15대 총선에서 신인 정치인들[14]을 대거 공천해 중도보수 정당이 되었다. 이렇게 공천한 신인 정치인들이 중진으로 성장해 한나라당은 10년 간 야당이던 시절에도 정국을 주도해 나갔고 끝내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국민의힘이 있는 것에 김영삼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국민의힘이 김영삼을 기리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홍준표도 김영삼이 영입한 정치인이고 청년의꿈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YS라 밝힌 바 있다.


2.5. 2021년 재보궐선거[편집]


2020년 8월부터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에서 서울특별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투입되었다.##[15] 여기서 정병국 외에도 이학재 인천시당위원장 등 경기지역의 중진들도 같이 투입된다. 이렇게 되면 유승민청년정치학교 졸업식 이후 다시 만나게 된다.####

일각에서는 정병국이 당내 온건파에 속하는 데다 친이, 친유 출신 정치인 치고는 안철수친안 출신 정치인들과 가깝다는 점[16]을 이용해 서울특별시장 선거 단일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정병국 본인도 본선 이전에 안철수 서울특별시장 후보의 결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야권단일화를 주장하기도 했고, 최종 후보로 선정된 오세훈 후보와도 매우 가까운 관계, 고도의 정치력을 갖춘 인물이라 적임자로 고려됐다.##


2.6. 2021년 재보궐선거 이후[편집]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본인과 가까운 오세훈 후보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었고, 박형준 후보도 부산광역시장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정병국과 가까운 이준석, 하태경20대, 30대 지지율을 상승하는 방법과 당내 중도화가 이번 선거 승리의 공신으로 거론되고 있고, 본인이 영입한 김재섭 또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는 청년정치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일단 바른정당 시절부터 계속 청년정치를 위해 노력했고, 청년층 지지를 위해 노력한 것도 있고, 청년당원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데 큰 힘을 보탠 인물도 정병국이다. 즉 숨은 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결실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현 국민의힘의 청년당원을 만들어내는 기반 역시 정병국, 이준석, 하태경 등의 지분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5월 14일, 정병국 의원은 남원정 핵심 멤버인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같이 허은아 의원이 주최하는 '명불허전 보수다' 포럼에 참석해서 정권창출에 관한 구상과 대권과 정권 확보를 위한 정책 구상에 대해 초선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강의할 예정이다. 참고로 정병국과 같이 정치적 행보를 걸어온 유승민2021년 5월 4일에 이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2.7.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편집]




정병국은 청년정치학교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소장파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원희룡 지사와의 합동 강연에서도 남원정 시절을 언급하면서 지금이 개혁의 적기라고 언급하고 있고, 소장파들이 더 세게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21년 5월 22일, HOW's에서 개최된 김웅, 김은혜, 이준석의 토론에서 사회자로써의 역할을 담당했다. 사회자로써 진행한 후 김웅, 김은혜, 이준석과 같은 후보들이 전당대회에 참여해서 기쁘다고 했고, 김웅, 김은혜, 이준석 중 한 명이 당선되면 중진 정치인인만큼 지도부에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예비 경선에서 김웅, 김은혜, 이준석김웅, 김은혜가 컷오프되고, 이준석이 본 경선에 진출하자 이준석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2.8.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이후[편집]


정병국이준석, 김용태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유승민과 더불어 이준석의 또 다른 정치적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정병국이준석의 지도부 인선에 조언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준석 지도부 체제에서 정병국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정병국바른정당 시절부터 당 내 청년조직 및 당원교육기관인 청년정치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하였다는 점, 미래통합당 창당 시절 김재섭, 천하람 영입에 성공한 점과 청년 정치인 영입에 관해서는 정병국이 일가견이 있다는 점이 정병국을 임명한 주요 이유였다. 전임인 권영세윤석열, 유승민, 원희룡, 하태경과 가까운 관계로 빅텐트를 위한 대외협력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 사퇴 이후에는 정병국이 선거관리위원장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정병국유승민, 원희룡과 가깝다는 점,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이라는 점으로 인해 정홍원국무총리가 대신 위촉되었다.

친이계 중진답게, 2022년 1월 24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전직 국회의원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

2019년 현재는 청년정치학교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4년 22대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 청년 정치인들을 모집하고 교육하는데 힘을 쓰고 있다. 정병국은 국민의힘 토론 대회와 같이 청년 정치인을 모집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특사 단장으로 9월 13일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된다. 같은 친이계 출신으로 전직 4선 국회의원인 김재경이 동행하며, 대통령실에서는 윤석열의 대선 공약인 부산엑스포 유치를 전담하는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 장성민이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본 특사는 부산엑스포 유치전의 일환으로, 정병국 본인 또한 "케냐는 과거 이명박 정부 문체부 장관 시절 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사업을 벌였고,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사로도 갔었다"며 "국익 외교 차원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김선교 의원 본인은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보좌관의 벌금형 선고 확정에 따라 의원직 상실이 확정되면서 정병국 전 의원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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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병대 416기 단체의 말에 의하면 1980년 11월 19일에 입대했다고 한다.[2] 1984년 당시 야권의 재야정치인들이 조직한 정치단체로, 김대중김영삼을 중심으로 결집한 단체다.[3] 이 때문에 상도동계 막내뻘 정치인으로 보기도 한다.[4] 제1부속실은 대통령을 담당하고, 제2부속실은 영부인을 담당한다. 단, 대통령 배우자가 없던 박근혜정부 시절 제2부속실은 비선실세최순실을 담당했다. 지금은 정상적으로 김정숙 여사(영부인)를 담당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부활론이 나오고 있다.[5] 정병국은 해병대 출신이기도 하다.[6] 정차하는 열차는 상행은 1626(제천 발 청량리/오전), 1606(안동 발 청량리/저녁), 하행은 1631(청량리발 강릉/오전), 1609(안동 발 청량리/저녁) 총 2왕복이다.[7] 이후 6월 26일 이혜훈이 새 대표로 선출되었으나 수천만원 금품수수 의혹으로 낙마하고 다시 주호영 원내대표가 겸하다가 11월에 유승민 의원이 3대 대표에 취임했다.[8] 만일 이게 실제로 이루어졌으면 남원정의 멤버 중 2명이 경쟁하게 되는 결과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른미래당 후보로는 김영환 전 장관이 출마했다. 이외에도 이언주, 유의동 의원도 거론된 바 있다.[9] 심지어 정병국 본인에 따르면, 유승민이학재가 자유한국당 복당을 고민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답이 아니다."라고 말렸다고 한다. 물론 유승민이 현 바른미래당 지도부에 대해 개혁보수를 외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자유한국당행은 할 생각이 없다는 뜻. 정황상 바른미래당 내에서 보다 개혁보수 노선을 적극 외치는 쪽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10] #관련 기사[11] 특히 김은혜(성남시 분당구 갑)와 김현아(고양시 정) 지원 당시 유승민과 같이 참석하여 지원했다.[12] 비슷한 사례로는 홍준표자유한국당 당사에 박정희김영삼 사진을 같이 걸어놓은 것에 대해서 "김영삼이 잡으려고 했던 호랑이는 박정희였다. 당신이 YS에 대해서 알긴 아느냐"며 비판한 바 있다.[13] 김중위, 강재섭, 김용태, 이상득, 금진호(이쪽은 무려 노태우의 동서다.), 박희태 등이 있다. 이들은 노태우의 동서인 금진호를 빼면 15대 총선에서도 대부분 공천받았다.[14] 이재오, 홍준표, 김무성, 황우여, 안상수, 심재철, 김영선 등이 있다.[15] 오세훈과 정병국 모두 당 내 소장파, 친이 핵심 인사에 해당되고, 정병국이 21대 총선 당시 오세훈을 지원한 적 있다. 오세훈도 정병국을 '병국이형'이라고 부른다.[16] 바른미래당 분당 당시 친유친안 간 갈등을 중재한 인물이 정병국이었다. 정병국이 친유 내 핵심인사는 맞으나 친안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17] 다만 정병국 전 의원은 비윤계인 만큼 22대 총선에서도 컷오프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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