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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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종의 왕자
의평군 | 義平君


파일:의평군이원생묘.jpg

의평군묘 전경
출생
1391년
사망
1461년 9월 16일 (향년 71세)
묘소
의평군 이원생 묘[1]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막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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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원생(元生)
부왕
정종
생모
숙의 지씨
형제자매
15남 8녀 중 장남
배우자
군부인 동주 최씨(郡夫人 東州 崔氏)
자녀
5남 3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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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 우산부정 이효손(于山副正 李孝孫)
차남 - 재전부정 이효온(梓田副正 李孝溫)
3남 - 아인부정 이효영(阿仁副正 李孝榮)
4남 - 도개부정 이효장(道開副正 李孝長)
5남 - 이성부정 이효공(泥城副正 李孝恭)
장녀 - 박준산(朴峻山)의 처
차녀 - 안우신(安友臣)의 처
3녀 - 조말견(趙末堅)의 처


회원(晦源) 또는 서하재(棲霞齋)
군호
의평군(義平君)
시호
민간(敏簡)

1. 개요
2. 생애
3. 사망
4. 여담
5. 가족관계
5.1. 후손



1. 개요[편집]


조선 초기의 왕족. 정종의 장남으로 정확히는 서장자이다. 장남답게 이름에 으뜸 원(元)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어머니는 숙의 지씨이다. 친형제로는 남동생 선성군임성군, 그리고 여동생 함양옹주가 있다. 고려 말 무장이었던 지윤의 외손자이다.

이모 성빈 지씨 역시 정종후궁이었다. 그래서 성빈 지씨의 아들인 덕천군도평군은, 의평군의 이복동생이자 이종사촌 동생이다.

자신의 자리를 야심가 숙부에게 빼앗겼다는 점에서 단종의 프리퀄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단종이 죽지 않고 오래 살았다면 의평군과 비슷하게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2. 생애[편집]


의평군 이원생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종의 장남이라는 것으로 보아 최소 숙부 정안대군의 장남 양녕대군보다는 나이가 많을 것으로 보이므로 조선 건국 이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아버지 이방과는 태조의 적차자라서 정통성이 가장 높았고 만일 태조가 순리대로 이방과를 세자로 정했다면 이원생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숙부 정안군이 일으킨 무인정사로 아버지 영안군이 왕이 되었고 정종의 원자 책봉 시도까지 있었으나 이미 모든 권력은 숙부가 차지하고 있어 부왕은 힘이 없었고 그렇게 이원생은 적자가 아닌 서자라는 이유로 세자가 되지 못하고 세자 자리를 숙부에게 빼앗긴다.

1412년(태종 12년)에 부정윤(副正尹)이 되었고 1417년(태종 17년)에는 원윤(元尹)을 거쳐 의평군에 봉해졌다.# 1419년(세종 즉위년) 아버지 정종이 죽자 상주 대리가 되어 정종에게 소렴전을 올렸다.# 1422년(세종 4년)에는 태종의 상 중에 말을 타고 백관 앞을 지났다하여 사헌부에서 탄핵당했다.# 1425년(세종 7년)에는 태조 이성계도장을 베껴서 사패를 위조할 때 공모했다는 죄로 직첩을 몰수당한 뒤 유배되었다.# 1427년(세종 9년) 자유의 몸이 되었고 1454년(단종 2년)에 다시 의평군에 봉작되었다. 즉 군호를 되찾은 게 거의 30년만이라는 거다.(...) 태종 계열의 임금들이 서장자였지만 어쨌든 정종의 장자였던 그를 경계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사망[편집]


1461년(세조 6년) 9월 16일[2]에 사망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에 있다. 비슷한 처지의 단종의 비극적인 삶과 비교하면 굉장히 곱게 살다가 천수를 누렸다.


4. 여담[편집]


  • 자손들에게 명성과 이득을 구하지 말고, 시골 농촌에 물러나서, 공손하고 겸손하게 분수를 지키라는 교훈을 내렸다고 한다.

  • 사촌동생 효령대군이 90살 넘게 살은 장수의 아이콘이라 효령대군에게 가려진 감이 있으나 의평군도 만만치 않다. 의평군은 최소 고려 말에 태어나서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시대를 모두 겪은 상당히 장수한 사람이다. 재밌는 것은 의평군은 하자가 없음에도 부왕이 힘이 없었고 서자라는 이유 때문에 숙부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겼는데 의평군 생전에 계유정난이 일어나면서 자기 자리를 빼앗은 숙부의 자손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까지 봤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 자기 자리를 빼앗고 잘 나가던 숙부와 그 후손들이 다시 서로 골육상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의평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꼴을 당한 단종을 보고 동병상련을 느꼈을지도.


5. 가족관계[편집]


  • 부 : 조선 제 2대 왕 정종(定宗)
  • 모 : 숙의 지씨[3](淑儀 池氏) - 찬성사 지윤(贊成事 池奫)의 딸
    • 남동생 : 선성군 이무생(宣城君 李茂生, 1392 ~ 1460)
    • 남동생 : 임성군 이호생(任城君 李好生)
    • 여동생 : 함양옹주(咸陽翁主)

  • 부인 : 군부인 동주 최씨(郡夫人 東州 崔氏) - 금천감무 최치숭(金川監務 崔致崇)의 딸
    • 장남 : 우산부정 이효손(于山副正 李孝孫)
    • 며느리 : 경주 이씨(慶州 李氏) - 전리판사 이혁손(典理判事 李赫孫)의 딸
      • 손자 : 정곡수 이성(正谷守 李晟)
      • 손자 : 문성수 이신(文城守 李晨)
      • 손자 : 장계수 이섬(長溪守 李暹)
    • 차남 : 재전부정 이효온(梓田副正 李孝溫)
    • 며느리 : 광산 김씨(光山 金氏) - 김철산[4](金鐡山)의 딸
      • 손자 : 연강수 이의손(連江守 李義孫)
      • 손자 : 진성수 이의정(珍城守 李義丁)
      • 손녀 : 남환(南煥)의 처
    • 3남 : 아인부정 이효영(阿仁副正 李孝榮)
    • 며느리 : 동래 정씨(東萊 鄭氏) - 부호군 정수경(副護軍 鄭守敬)의 딸
      • 손자 : 정송수 이석손(貞松守 李錫孫)
    • 4남 : 도개부정 이효장(道開副正 李孝長)
    • 며느리 : 한양 조씨(漢陽 趙氏) - 참판 조종생(參判 趙終生)의 딸
      • 손자 : 영정수 이복중(永正守 李福重)
      • 손녀 : 윤운손(尹雲孫)의 처
    • 5남 : 이성부정 이효공(泥城副正 李孝恭)
    • 며느리 : 성씨(成氏) - 성구연(成九淵)의 딸
    • 장녀 : 박준산(朴峻山)에게 출가
    • 차녀 : 안우신(安友臣)에게 출가
    • 3녀 : 조말견(趙末堅)에게 출가

5.1. 후손[편집]


후손으로는 전 해군 군인 출신의 정치가, 기업가인 이맹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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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인 최씨와 합장되어있으며, 원래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조성되었었으나 군용지로 수용되자 1974년 7월 현재의 장소로 이장하였다.[2] 음력 8월 4일[3] 언니 진안대군의 부인, 성빈 지씨가 있다[4] 김문(金問)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