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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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왕자
온녕군 | 溫寧君


파일:온녕군묘.jpg

온녕군묘 전경
출생
1407년(태종 7년)
조선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망
1454년(단종 2년) 6월 16일(음력 5월 12일)
(향년 47세)
묘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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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정(䄇)[1]
부왕
태종
생모
신빈 신씨
형제자매
12남 17녀 중 7남
배우자
익산군부인 순천 박씨
(益山郡夫人 順天 朴氏)
자녀
슬하 1남
양자 - 우산군 이종(牛山君 李踵)
작호
온녕군(溫寧君)
시호
양혜(良惠)

1. 개요
2. 생애
3. 사망과 이후
4. 여담
5. 가족관계
6. 매체에서



1. 개요[편집]


조선 전기의 왕족. 태종 이방원의 7남이자 서3남으로, 생모는 신빈 신씨이다. 친남매로는 형 함녕군과 누이 정신옹주, 정정옹주, 숙정옹주, 숙녕옹주, 소신옹주, 소숙옹주, 숙경옹주가 있다. 전주이씨 온녕군파의 파시조이다.

2. 생애[편집]


성품이 호방했으며 무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19세[1]의 나이에 날아가는 을 쏘아 맞춰 세종에게 안구마를 하사받기도 했다.#
온녕군은 어릴 때 지혜와 총기를 겸비하여 남보다 뛰어나 종실에서 영특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지혜가 있고 현명하여 매사를 알아서 예의와 절도에 맞게 행하였다고 한다.


3. 사망과 이후[편집]


1454년(단종 2년) 6월 16일에[2] 세상을 떠났다.# 향년 47세.[3]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다.
묘소는 원래 서울시 성북구 미아동 3거리 서쪽 언덕에 있었으나, 도시 확장 관계로 1962년 경기도 고양시로 이장했다.


4. 여담[편집]


  • 종학[4] 수업에 결석한 날이 많아 관노비를 몰수당한 적이 있었다.#

  • 1430년(세종 12년) 새해 첫날에 열린 조회에서, 온녕군과 혜령군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로 신의군[5]의 양관[6]을 때렸다. 그러자 화가 난 신의군이 온녕군의 양관을 걷어차 버렸다.(...) 그런데 종부시[7]에서는 도리어 신의군을 탄핵했다. 아무리 온녕군과 혜령군이 잘못했다해도 당조카가 어떻게 당숙의 관을 걷어찰 수 있냐는 것이었다. 결국 신의군은 한성부 밖으로 쫓겨났고 관노비, 하인들을 몰수당했다.#


5. 가족관계[편집]


익산군부인 순천 박씨와 혼인했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어 이복동생 근녕군의 2남 우산군 이종(牛山君 李踵)을 양자로 들였다. 우산군은 6남 2녀를 두었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온녕군파를 이루고 있다.


  • 부인 : 익산군부인 순천 박씨(益山郡夫人 順天 朴氏) - 부정 증찬성 박안명(副正 贈贊成 朴安命)의 딸.
    • 양자 : 우산군 이종(牛山君 李踵) - 이복동생 근녕군의 차남
    • 며느리 : 문성군부인 문화 류씨(文城郡夫人 文化柳氏)
      • 손자 : 용성군 원(龍城君 援)
      • 손자 : 무풍군 총(茂豊君 捴)
      • 손자 : 한산군 정(韓山君 挺)
      • 손자 : 화원군 간(花原君 揀)
      • 손자 : 금천군 변(錦川君 抃)
      • 손자 : 청양군 건(靑陽君 揵)
      • 손녀 : 사직 류탄(司直 柳坦)에게 출가
      • 손녀 : 도사 이수려(都事 李壽旅)에게 출가


6. 매체에서[편집]


파일:공남 온녕군.png
공주의 남자》의 온녕군
종친의 어른으로 수양대군(김영철 분)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실제 역사 속의 양녕대군 포지션. 양녕대군은 여기서는 등장하지 않고 온녕군이 그 역할을 대신 한다. 다만, 대군이 아니라 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리 힘이 막강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1454년에 사망했는데 1455년 세조 즉위를 앞둔 시점까지 살아있다.(...) 16화에서, 복수귀로 변한 김종서(이순재 분)의 아들 김승유(박시후 분)의 첫 습격 상대로 지목당해 사망했다. 김승유는 온녕군의 시신에다 ‘대호(大虎)’, 즉 김종서의 별명을 온녕군의 피로 써놓아 이후의 복수를 예고했다.여담으로 배역을 맡은 배우 윤승원은 조카 수양대군 역을 맡은 배우 김영철보다 6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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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는나이 20세.[2] 음력 5월 12일.[3] 세는나이 48세.[4] 宗學. 조선시대 왕족 자제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운 특수 교육기관.[5] 태조 이성계의 3남 익안대군의 손자. 온녕군과 혜령군의 5촌 당조카이다.[6] 조복을 입을 때 쓰는 금관.[7] 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의 편찬과 종친들의 잘못을 규탄하는 일을 맡던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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