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본기/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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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2. 롯데 자이언츠 시절
2.1. 2012년
2.2. 2013년
2.3. 2014년
2.4. 2015~2016년 (경찰 야구단 복무)
2.5. 2017년
2.5.1. 포스트 시즌
3. kt wiz 시절
3.1. 2021년
3.2. 2022년
3.2.1. FA
3.3. 2023년


1. 아마추어 시절[편집]


파일:동아대 신본기.jpg


2.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파일:신본기/롯데.jpg



2.1. 2012년[편집]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4순위) 지명으로 받아 계약금 1억 2,000만 원에 입단하였다. 입단 당시 "어려서부터 부산을 떠나 본 적이 없고, 야구를 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실제로 지명을 받게 되어 엄청 기뻤다"며 "지명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저 기뻤고 롯데 팬이신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신입답게 초기에 타격은 별로였지만, 정신 나간 정도의 수준 높은 수비로 롯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등장할 때마다 기대 이상의 수비로 본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한국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조성환은 슬슬 백업 출장이 더 많아져야 하는 나이이고, 문규현의 경우, 당시 김일경에게 태클을 맞고 부상을 당한 상태였고, 그나마 멀쩡한 황재균은 화약고 수준이 되어버리는 등[1] 초반에 내야에 악재가 나오는 상황에서 수비적으로 믿을만한 백업 내야수라는 점에서 팀과 본인 모두에게 힘이 되어 입지를 다졌다.

가끔씩 뜬금포로 얻어내는 볼넷도 임팩트가 컸다. 4월 19일에는 만루 상황에서 제구가 안 되고 있는 선발 박종훈에게 밀어내기 볼넷은 얻어내었고, 4월 24일에는 무려 오승환을 상대로 치열한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내었다. 이 볼넷은 장작을 쌓으며 진땀을 빼고 있던 오승환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었고, 결국 6실점(4실점+2점 분식회계)까지 하게 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6월 10일에는 3회말 공격 선두타자로서 무려 윤석민에게 볼넷을 얻어내었고, 이 볼넷을 시작으로 롯데는 5득점 빅이닝을 만들어내어 경기에서 승리했다.

볼넷과는 별개로 타율은 바닥을 기었다. 1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선구안에 비해서 엄청나게 저조한 타율을 기록했다. 내야의 이승화. 타격력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을 간파당하고나서는 가운데로 공을 던져줘도 못 치는 정말 최악의 공격력을 선보였다.

신인 대수비 자원 치고는 꽤 괜찮은 시즌을 보내나 싶더니, 결국 6월 13일, 사고를 친다. 이성열이 친 타구를 유격수 위치에서 잡아야 하는데, 이 뜬공을 좌익수 이승화에게 양보하는 이해할 수 없는 수비를 선보였고, 결국 이 타구는 애매하게 좌익수와 유격수 사이에 떨어져 경기를 사실상 끝내버리는 싹쓸이 단타가 되어버렸다. 천재 수비수 이승화에게도 커버 불가능한 무리한 플레이었으며, 결국 팀은 패배하고 이성열은 타점만 쌓는 등 사실상 본헤드 플레이에 가까웠다. 최훈 카툰에서도 신나게 까였다. 이 날 경기 후 페이스북에 일침을 놓는 팬들을 친구 해제했는데, 경기를 신나게 말아먹고도 페이스북 관리는 열심히 한다고 까였다.

결국 여러가지 이유로 2군으로 내려갔는데, 1할 초반을 치던 1군에서와는 다르게 2군에서는 3할 5푼을 치는 등 공수 양면으로 펄펄 날아다녔다.

이후 1군으로 다시 콜업되었으나 6월 2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수비 중 어깨가 탈골되어 어깨 뒤 근육이 파열되었고, 안타깝게 시즌 아웃되었다.


2.2. 2013년[편집]


5월 초에 팀의 암적 존재로 엄청나게 욕을 먹던 문규현이 2군으로 내려가자 드디어 콜업되었다. 시즌 1군경기 첫 타석에서 2루타를 쳐내며 드디어 타격도 좀 되는건가 싶더니, 이후 귀신같이 1할대 타율로 돌아왔다. 타석에서의 모습은 식물 그 자체. 때문에 신승화, 내승화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거기에다 번트나 작전수행 능력도 별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보완이 시급해 보였다.[2] 뿐만 아니라 다수의 팬들은 문규현을 보다가 신본기를 보며 "눈이 정화되는 수비다"라고 평했지만 사실 신본기도 2013 시즌에는 인상적인 수비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다시 타격이 그나마 더 나은 문규현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논쟁은 문규현이 은퇴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5월 초 콜업 이하 무려 7푼이라는 심각한 타율 덕분에 칠푼이이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이 와중에 몇몇 롯데 팬들은 "문규현이라는 암적인 존재를 치워줘서 고맙고, 박기혁의 부상 공백을 메워줘서 고맙다"라며 신본기를 옹호하고, 정훈과 함께 차기 키스톤 콤비로 밀어주었으나, 실상은 이와 달랐다. 신본기의 타격은 비교대상인 문규현에게 실례가 될 정도로 훨씬 나빴고, 수비도 유의미하게 뛰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문규현의 이미지로 인한 간접상향을 받았을 뿐.

팬들의 맹목적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간간히 안타를 쳤고, 5월 1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4:5로 뒤진 6회초 무사 2루에서 좌중간 단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이어진 1사 만루에서 강민호의 짧은 외야 플라이에 전력질주로 홈인하여 호감 포인트를 적립하였다. 그리고 타율은 어느새 0.162으로, 드디어 1할대로 진입했다.

6월 2일 경기에서는 2회초 1사 3루 첫 타석에서 무려 장원삼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타율도 야금야금 올라 2할대에 진입했고, 홈런 전후를 기점으로 잘맞은 양질의 타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타격에서의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6월 5일6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연이틀 멀티히트를 기록하여 시즌 타율을 어느새 0.243까지 올렸다.

6월 20일 기준 0.260의 타율을 기록하며 시즌 초반의 극악의 타격부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전반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꼴갤 신본기를 포항에 보내기 위해 끊임없이 달린 롯데 팬들에 의해 KBO 올스타전 동군 유격수 부문에 뽑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본인도 어이 없었는지(...) 올스타 선정 소감이 매우 개념찼다: "많이 보고, 배우고, 느끼고 오겠습니다."

7월 10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1타점 역전 2루타를 때려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2할 4푼대를 유지하고 있는 중. 그러나 그 다음주에 펼쳐진 NC 다이노스와의 3연전에서 타석에서 죽을 쑤며 2할 2푼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롯데 팬들은 우리 팜 선수이고, 풀타임 첫 해이고, 발암물질보다는 괜찮다며 오냐오냐 해주는 분위기이다.

7월에 체력 안배 차원에서 문규현이 신본기 대신 출장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대호 모드[3]가 발동되어 갑자기 또 벤치멤버가 되었다.

8월이 되자 또 갑자기 문대호가 원래 문규현으로 회귀한 덕에 다시 주전출장을 하기 시작했으나, 희한하게 실책을 계속 하면서 까였다. 이게 치명적인 이유는, 신본기는 수비 하나로 먹고 살고 있었기 때문. 급기야 818 대첩에서는 한 경기 3실책으로 경기의 대첩화에 일조하고, 3실책 중 2실책이 실점과 직결되어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팀이 기적적으로 패배는 면해서 콩가루가 되도록 까이지는 않았으나, 신본기에 대한 팬들의 냉정한 평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실책을 종종 생산해내긴 했지만 클러치 에러도 아니고 승부와는 별 상관 없는 실책들이어서 팬들은 그냥 넘어갔다.


2.3. 2014년[편집]


문규현이 웬일로 초반부터 문대호 모드가 되어 자리가 없을 뿐더러 압도적으로 롯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오승택[4]의 갑툭튀로 인해 주전이고 뭐고 백업조차 자리가 사라졌다. 이후 오승택이 부상을 당하며 1군에 콜업되었고 충실하게 백업 역할을 수행 중이다.

대수비로 주로 출장하고 있고, 클러치 에러나 타석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이 없어 문서가 업데이트 되지 않고 있다.

6월 2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문규현의 부상으로 오랜만에 주전으로 출장했고, 5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7월 13일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9회초 2아웃에서 우월 1점 홈런을 쳐서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였다.

전반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벌써 홈런 4개를 쳐내며 장타력 성장을 기대케 했다. 숫자만 보면 크게 인상적이지 않지만 백업으로 출전하다가 전반기 막판에 문규현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뛴 경기가 몇 없음을 감안하면 꽤나 고무적인 수치다.

이후 오승택, 박기혁의 복귀와 박준서의 활약,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지션 경쟁자인 문규현의 복귀로 인상적인 활약 없이 시즌을 마무리했다.


2.4. 2015~2016년 (경찰 야구단 복무)[편집]


2014 시즌 후 팀 동료인 전준우, 김사훈과 함께 경찰 야구단에 합격하여 입대했다. 팬들은 군에서 경험치를 잘 쌓아서 공수주 모두 갖춘 그를 기대하고 있고, 팀에서도 군필인 정훈과 신본기를 차세대 키스톤 콤비로 보고 있는 만큼, 군대에서 절치부심하여 착실히 준비하는 게 신본기의 커리어를 위해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2015 시즌, 92 경기에 출장해 0.348의 타율과 0.902의 OPS, 70 안타, 36타점, 53득점을 기록하였고, 투수로 등판까지 했다.[5] 원래 2군 폭격을 하던 선수라 단순 수치로 보았을 때 1군에서 즉시 전력으로서의 활약은 예측하기 어려우나, 고무적인 것은 사실이다.

2016년에도 95경기에 출장하여 0.353의 타율, 0.935의 OPS, 116안타, 51타점, 95득점을 기록하여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기대를 모았다. 경찰 야구단유승안 감독이 "신본기가 아니라 신무기가 될 것이며, 1군에서 허경민 정도의 성적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다"고 평가하며 롯데 팬들의 기대를 사고 있다.

9월 3일 전준우, 김사훈과 함께 제대하였고, 조원우 감독은 9월 4일부터 즉시 세 명을 합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전역 이후에는 더욱 발전한 수비와 2할대 중후반의 조금 발전한 타격 실력으로, 복귀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린 후 깊은 부진에 빠진 전준우보다 타율이 높다.

9월 21일 현재 .280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기대했던 전준우가 폭풍삼진을 당하며 2할 2푼대를 기록하고 있고, 본인의 타격성적이 2할도 넘기기 힘들었다는 걸 감안하면 군대를 다녀와서 확실히 타격 포텐이 터진 느낌이다. 다만 타격이 올라오니까 수비가 조금씩 불안해지며 "수비와 공격력을 등가교환 한 것 아니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OPS가 0.942로 롯데 선수들 중에서 가장 높은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는 표본이 적어서 그런 것이고, 실제로 보면 손아섭,강민호, 황재균 트리오가 가장 높다고 봐야 한다.

총평하자면, 많은 선수들에게 그렇듯[6] 신본기의 경찰 야구단 입대는 대수비 신본기로 입대해서 야구선수 신본기로 제대하는 등, 야구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2.5. 2017년[편집]


작년에 비록 표본은 적지만 3할을 쳤던 점을 감안해 문규현을 3루수로 밀어내고 선발 유격수로 자주 출장했으나, 20경기를 넘기는 시점까지 타율이 1할5푼을 넘지 못하는 심각한 수준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KBReport 기준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은 -0.43으로, 현재 리그에서 가장 WAR이 낮은 선수 중 하나이다. 그러나 롯데에서 유격수를 맡을 수 있는 선수가 문규현, 김대륙, 김민수 정도라 4월까지는 어쩔 수 없이 선발 유격수로 출장하는 경우가 잦았다.

신본기가 대략 270타석을 소화한 2013년의 BABIP과 비교했을 때 4월 기준으로 신본기의 BABIP은 0.200 이하로 정말로 운이 안 따라준 면도 있으나, 이를 감안해도 타석에서의 K/BB 비율 자체가 엉망이라 더 나아질 여지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이제는 MLBNPB등의 야구 선진리그에서도 투수 BABIP가 투구폼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데, 그보다 훨씬 타자의 타격폼과 타구질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자의 BABIP은 사실 말할 것도 없다. BABIP이 낮으니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기에는 너무 나머지 지표들이 많이 무너져 있어 타격폼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많이 실리고 있다. 수비력도 동반 하락하고 있어 팬들의 걱정섞인 질책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가, 문규현의 부상으로 다시 콜업되었다. 본인 나름의 전환점이 필요했는지 등번호도 기존 56번에서 7번으로 바꿨다.

등번호를 바꾼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5월 25일 홈런과 단타를 때려내며 멀티히트 경기를 했고,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멀티히트를 때려내며 바닥을 기어다니던 타율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에도 컨택은 냉정하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전반기 출루율을 3할6푼대로 마무리 하며 유격수 치고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자연스럽게 타율도 조금씩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다. 수비 또한 다시 수준급으로, 문규현의 부상복귀 이후에서 2루수로 출전할 정도로 다시 발전된 상황이다.

7월에는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준수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초반에 워낙 부진하여 시즌 타율은 2할 초중반에 머물러 있지만 이대로만 꾸준히 해준다면 워낙 좋은 수비력 덕분에 주전 붙박이는 기본일 듯 하다.

8월 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싹쓸이 역전 3타점 적시 2루타를 치고,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4타점 1득점을 기록해 수훈선수가 되었다.

8월 9일 kt wiz와의 경기에서는 모교인 감천초 후배들을 초청하여 내야 수비를 지도하는 등의 재능기부를 실천하였고, 경기에서도 3타수 3안타 1득점을 기록하며 후배들에게 끄럽지 않은 활약을 하였다.#

8월 11일, 드디어 시즌 타율이 정확히 .250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8월 막바지에 막바지에 조원우 감독이 직접 지도를 하며 다시 살아나는 듯했으나 타선에서 꾸준히 침묵했고, 문규현의 건재, 그리고 내야 유틸리티 백업 요원들인 김동한황진수의 등장으로 끝내 백업으로 다시 밀려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번 시즌에 대해서 총평하자면 여러가지 이유로 부진하면서 본인에게 찾아온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고, 롯데 자이언츠의 프런트가 희대의 명언인 "너도 프랜차이즈다"라는 말을 남기며 문규현에게 2+1년 10억이라는 내용의 FA 계약을 안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7]


2.5.1. 포스트 시즌[편집]


10월 8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벤치를 지키다가 8회말, 문규현의 대타로 나온 박헌도가 솔로홈런을 때리고 난 뒤, 대수비로 교체 출장하였다.

10월 9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선발 3루수로 출전했고, 2번째 타석에서 잘 맞은 타구가 있었으나, 대단한 수비범위를 자랑하는 중견수 김성욱에게 잡히는 바람에 적시타를 기록하지 못하였다.

10월 11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호수비도 하고 안타도 때려내었지만, 다른 몇개의 잘 맞은 타구들이 야수 정면을 향해 멀티히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10월 13일,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깊숙한 내야 안타를 때려내었고, 이는 결승타가 되었다.

10월 15일,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선발 3루수로 출전했으나 한 타석만에 대타 이우민으로 교체되었다. 대타 이우민은 선수생활 마지막 안타를 이 타석에서 때려내었고, 대수비로 교체출장한 김동한도 안타를 쳐냈다.


2.6. 2018년[편집]



파일:신본기/2018.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본기/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토록 그가 터지길 바랬던 롯데팬들의 기대를 보답하듯이 롯데 유격수 대부분의 타격 지표[8][9]를 갱신하면서 롯데의 새로운 유격수로 떠오르게 되었지만...



2.7. 2019년[편집]



파일:신본기마무리수비.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본기/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전부터 양상문 감독이 유격수로 고정할 것임을 밝혔고, 체력 부담을 덜고 상위타순과 연결을 할 수 있는 9번으로 타순이 변경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년이 후루꾸였음을 증명하고 처참하게 망했다.


2.8. 2020년[편집]



파일:200825신본기KCH26503.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본기/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kt wiz 시절[편집]



파일:2021 KS 신본기.jpg


202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홈런을 친 후.


3.1. 2021년[편집]


2020년 12월 4일, 트레이드로 박시영과 함께 kt wiz로 이적하였다. 반대급부는 최건[10]2022년 2차 3라운드 신인 지명권. 몇몇 롯데 팬들은 3라운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내야 유틸리티 자원이자 롯데 프랜차이즈 선수이던 신본기를 보냈냐며 반응이 상당히 좋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는 신본기가 탱탱볼 시즌이던 2018시즌이 끝나고 2019시즌부터 보여준 타격과 수비 수준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기존의 폐기 자원을 처분하고 투수 유망주와 야수팜 좋은 시즌의 지명권을 얻었음을 생각하면 좋은 트레이드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11] 다만 팀 내 남은 백업 유격수가 1군 경험이 거의 없으며 성장이 더딘 배성근과 군 문제가 남은 신용수 뿐이기 때문에[12] 허문회 감독의 쓸놈쓸에 따른 마차도의 혹사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다.롯데 팬들에게 보내는 작별인사(영상) 롯데 자이언츠 구단 유튜브를 통해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남겼는데 그를 보내는 팬들의 절절한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좋았던 시절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야구선수 신본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을지 언정, 인간 신본기를 싫어하는 팬은 없었기 때문.

kt wiz 입장에서 보면 주전 유격수 심우준이 도쿄 올림픽을 못 가게 된다면 군 입대를 시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신본기의 트레이드 영입은 제법 괜찮은 영입이라고 할 수 있다. 천성호, 강민국 등의 백업 자원이 있지만, 올해 천성호가 66경기 2할 3리, 강민국이 81경기 2할 2푼 4리를 기록한 것을 보아 심우준이 군 입대를 했을 경우 신본기가 어느 정도 2018시즌에 필적할 성적을 보여주면 주전 유격수 자리를 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월 24일에 황재균이 코뼈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고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그의 공백을 채워야 하는 신본기의 어깨가 더욱 더 무거워졌다.

이후 위에서 말한 대로 황재균이 이탈하면서 신본기에게 사실상 주전 보장권이 생겼다. 3루와 가끔씩 박경수를 대신하여 2루를 보면서 수비면에서는 kt의 그 어떤 백업보다 안정적이나 타격면에서는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5월 12일 삼성전 이후 25타수에서 단 1안타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빈타에 허덕였고 결국 황재균의 복귀에 맞추어 2군으로 강등되었다.

6월 18일 기준 2군에서조차 성적이 18타수 1안타 9삼진 타율 0.056 OPS 0.161에 지나지 않는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어 팬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대로 라면 1군 콜업은커녕 방출을 걱정해야 할 정도.

8월 12일 키움전에 선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부상당한 심우준을 대신해 선발 출장한 9월 14일 두산전에서는 멀티히트에 3타점을 쓸어담으며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10월 1일 친정 롯데와의 DH 2차전에서는 병살타 2개를 날리며 친정팀의 첫 3연전 스윕과 팀의 스윕패에 기여했다.

10월 5일 NC전에서 이재학을 상대로 초구를 받아쳐서 홈런을 쳤다.

처참한 공격력으로 2군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2루,3루,유격수까지 뛸 수 있는 범용성과 무난한 수비력으로 내야백업 1순위로 뛰었다. 들어가는 포지션마다 큰 무리 없이 적어도 수비에 있어선 주전선수들을 잘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어 11월 15일에 열린 2차전 8회말 2아웃 상황에서 박경수의 대타로 투입됐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커리어 첫 한국시리즈 타석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3차전에서 박경수가 수비 중에 종아리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다시 대수비로 투입되었으며, 박경수의 컨디션에 따라 4차전에 선발 2루수로 이름을 올릴 수도 있기 때문에 신본기의 책임 또한 매우 막중해졌다.




박경수가 종아리 파열로 이탈했기 때문에 4차전에 선발로 나섰고, 5회 김명신을 상대로 5대1에서 6대1로 달아나는 솔로 홈런을 치면서,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13] 수비에서도 박경수에 버금가는 호수비를 보여주면서 2루를 충분히 지켜내었다.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kt 위즈가 스윕승을 거두며 신본기 역시 커리어 첫 우승반지를 끼게 되었다.


3.2. 2022년[편집]


등번호를 롯데 시절 사용하던 7번으로 교체하였다.

5월 15일 키움전 4회 무사만루의 기회속에 제구가 흔들리는 투수의 초구를 받아쳐 병살타를 만들었다. 수비는 이름처럼 기본기는 하고 있지만 1할을 벗어나지 못하는 타율과 불안한 작전 수행 능력으로 공격적인 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최악의 삽질로 혈압을 높이자 5월 24일 자로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도 0.268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1군에서 신본기의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2군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내야수 양승혁, 1군 주전 2루수인 오윤석, 1군에서 내야백업을 하고 있는 장준원 등 신본기 보다 젊은 선수들이 1군에 많이 포진되어있다. 다만 심우준의 입대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1군에 등록되었다. 전반기 말 심우준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장준원의 백업으로 쓸 예정이었던 듯 하나, 장준원 또한 첫 경기부터 부상을 입고 말소되어 당분간 유격수 자리를 맡게 되었다.

7월 22일 한화전에선 부상당한 장준원의 대타로 투입되어 희생번트 하나를 성공시켰으나, 나머지 타석에선 무안타로 물러났다. 이 날도 수비 면에선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장준원이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고, 심우준마저도 현재 부상으로 빠져있는 상황이라 신본기에게는 반등이 필요한 상황.

7월 23일 한화전에선 9번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고 안타는 없었지만 볼넷 3개를 기록했다.

7월 26일 1회초 입스가 왔나 의심될 정도의 한심한 송구로 병살을 놓쳐 2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타격면에서도 6회 초구 번트 아웃에 이어 9회말 역전 찬스에서 어처구니없는 초구 체크스윙 땅볼 아웃으로 물러났다. 경기를 보는 중계진도 어이가 없었는 지 권혁 해설은 체크스윙이 되자마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성적은 4타수 1안타 1사구.

7월 27일 키움 11차전, 2루수 대수비로 나왔으며 안타를 한번더 솎아낸다. 3경기 연속안타. 의외의 타격감을 뽐내는중.

7월 28일 키움 12차전, 2루수 선발출전. 4경기연속안타를 쳤고 2루장타 포함 3안타를 휘몰아쳐 오윤석 뒤를 이을 주전 2루수 기회를 다시 엿보고있다. 이날 하위타선 대부분이 안우진의 직구를 노려 안타를 만든 반면, 신본기는 변화구를 노려 연속 안타를 만들어냈다. 무슨 원기옥 모으듯 조용했다 터트리는

7월 30일 LG 11차전 대타로써 2타석 기회를 얻었고 안타를 터트려 타점을 기록함으로써 이강철 감독의 대타 작전을 성공시켰다. 5경기 연속안타를 성공시키며 2할타율도 복구했다.


8월 12일 SSG 12차전에서 8번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3안타 3타점에 시즌 마수걸이 쐐기 홈런을 때려내며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KT위즈 유튜브 채널에서 신본기의 선수넘버인 7번을 엮어 007 제임스 본기라는 작명을 하기도.

8월 13일 삼성 11차전서 직전경기의 감을 잊지 않은 듯, 선발 2루수로 출전하여 적시타를 기록했다.

이 후에도 1군에서 간간히 나와 기회를 잡아가고 있다.

9월 6일 한화 13차전 대타 및 대수비로 나와 수비 수퍼플레이를 선사했다.(8회초)귀신본기

본인의 FA 시즌인데 커리어로우를 갱신하고 말았다. 내년엔 심우준이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신본기의 비중이 높아질텐데 반드시 반등이 필요하다.

팀이 4위로 가을야구에 합류하면서 백업 유격수로 엔트리에 합류했다.

10월 17일 심우준이 담 증세로 인해 결장하면서 준PO 2차전에 9번 유격수로 출장해 1안타를 기록했다.

3.2.1. FA[편집]


시즌 후 FA를 신청했고, 팀이 김상수이상호를 영입하면서 팀 내 입지가 좁아짐에 따라 kt를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손을 내밀 팀이 있을 지는 미지수. 다만 하주석대형 사고를 치면서 유격수 자리가 졸지에 없어진 한화 이글스가 몰망에 두고 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긴 했는데 한화가 오선진을 친정복귀 시키면서 kt 잔류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KT측에서는 1+1년 계약을 제시했으나, 오히려 연봉이 낮아져 고민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FA시즌에 커리어로우를 기록한 만큼 신청 자체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는데, 미계약도 다행히 벗어나고 대폭삭감은 피한 모양.

하지만 여전히 계약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어 사실상 KT와 결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많아지고 있으나 곧 다시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며 재계약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른 미계약 FA 선수들에 비하면 근시일 내에 계약 기사가 뜰 것으로 보였고, 결국 2023년 1월 10일, KT 위즈와 1+1년 3억에 FA 계약을 체결하였다.#


3.3. 2023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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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NTR [14]
등번호 7번은 김상수가 쓰게 되면서 롯데 시절 초창기에 달았던 56번으로 바꾸었다.

FA계약이 늦어서인지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들지 못하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으나 4월15일 황재균의 부상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215의 타율로 4월이 끝났고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

8월 26일 오랜만에 1군에 올라왔고 대타로 출장해 직선타-안타를 기록했다.

8월 27일 7번 유격수로 나와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포함되며 kt에서 2번째 가을야구를 경험하게 됐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19:23:15에 나무위키 신본기/선수 경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게다가 당시 군미필이라 언젠가는 군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특례로 해결했다.게다가 화약고 수준에서 탈출도 했다.[2] 신본기는 의외로 동아대학교 시절 3번타자로 주로 출장하였고 4년 내내 3할 이상의 고타율을 유지했다. 3할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감독은 거의 없으니 아마도 번트를 댈 기회가 적지 않았나 싶다. 유격수로 계속 출장하고 하위타선에 꾸준히 배치되는 이상 꼭 보완이 필요한 문제이다.[3] 문규현이 1년에 한 번 정도 몇주간 이대호처럼 엄청난 타격능력이 생기는 기간이 있는데, 이때의 문규현을 팬들은 문대호라고 부른다.[4] 現 오태곤[5] 2015년 5월 27일 SK 2군과의 경기에서 투수로 등판해 0.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아시아 윈터리그에 KBO 리그 대표로 출전해서도 구원 등판했다.[6] 허경민, 민병헌, 김재환, 최주환 등 군 제대 이후 기량이 만개한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대표적인 예다.[7] 문규현을 프랜차이즈라고 부르고 정작 더 중요한 프랜차이즈 스타인 강민호를 잡지 못한 것은 덤이다.[8] 타율, 장타율, OPS, 안타, 2루타, 타점 1위. 정구선에 이어 홈런 2위. 오승택(現 오태곤)에 이어 득점 2위. 주로 7~8번으로 출장했는데, 9번 타자 나종덕을 생각하면 2위도 정말 대단한 기록... 흔히 알려진 2001년 김민재의 3할 타율은 규정타석 미만이다.[9] 이후 타율과 타점을 제외한 다른 기록은 2년 뒤 딕슨 마차도가 갱신한다.[10] 최이준으로 개명.[11] 신본기가 딕슨 마차도의 1+1년 재계약(사실상 2년)으로 완전히 자리를 뺏겼고, 그나마 남아있던 자리도 한동희, 김민수 등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 주전이 요원한 상태에서 길을 터주기 위해 트레이드 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12] 신용수 역시 외야수로 옮겨서 사실상 유격수 백업은 배성근이다.[13] 정규시즌 내내 홈런이 단 하나뿐이었던지라 두산의 충격은 배가 되었다.[14] 계약을 늦게 해서 그 사이에 김상수가 7번을 가져갔거나 양보해준 듯 하다. 김상수의 언급에 따르면 신본기가 양보를 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