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인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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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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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위원회(北朝鮮人民委員會)는 소련군정이 끝나자,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로동당에 의해 건설된 중앙정권기관이다.
사실상 정부로서 운영되었으며 현재 북한 정부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공식 건국일은 1946년이 아닌 1948년으로 인정되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남북 분단의 근본적인 원인을 북측이 제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2. 상세[편집]
2.1. 역사[편집]
1946년 2월 8일, 조선로동당이 개최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에 의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수립이 결정되었다. 다음날인 2월 9일 소련의 통제 하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2월 15일에는 소련의 군정#군정청이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그러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설립 의도는 소련이 북한에 사회주의 위성국을 세우려는 의도였고 김일성은 소련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1947년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개칭되었다. 1946년 3월 8일부터 지주의 토지를 몰수, 분배하였고, 주요 산업들을 국유화시켜 사회주의 정책을 폈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가혹하게 진행되어 유산가와 지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정의 지원아래 김일성의 지시로 강압적으로 시행되었다. 많은 수의 지주가 학살되거나 오지로 추방되었고 살아남은 수는 남한으로 월남하였다. 그 이후부터 남북간 접촉이 두절되었고, 남북분단이 점점 현실화되어갔다.
또 미국-소련간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동년 11월 3일, 인민위원회 선거를 했다. 1948년 2월 8일에는 사실상 북한의 군대인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8년 7월에는 태극기와 올드 랭 사인 애국가를 폐지하고 독자적인 국기와 국가를 가지게 된다.
1948년 8월 15일에는 남한의 미군정이 끝나면서 소련군이 철수했다.[6] 1948년 8월 25일에는 최고회의 선거를 하였으며, 그해 9월 9일, 김일성을 수상으로한 북한이 수립되면서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계승된다.
2.2. 구성[편집]
상위에 북조선인민회의가 있었다. 북조선인민회의가 입법부였고, 북조선인민위원회가 행정부였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외에도 각 자치단체별로 (도·시·군·구) 지역인민위원회가 있었다.
이는 현 북한에도 이어져, 도청·시청을 도인민위원회·시인민위원회라 하며, 도지사와 시장을 도인민위원장과 시인민위원장이라 한다. 하지만 사실 북한에선 행정부보다 입법부가 우선이고, 입법부에서도 당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도·시인민위원회보다 도당위원회, 시당위원회가 더욱 힘을 발휘한다.
3. 여담[편집]
- 향린교회 전(前) 담임목사 홍근수 목사의 형 홍동근 목사는 월남 전 1946년 11월 3일 인민위원회 선거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4. 관련 인물[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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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도 처음엔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했으나 1948년 7월 10일 이후에는 인공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 태극기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2] 당시 소련 국기도 준 국기 수준으로 쓰였다.
[3] 1948년 7월부터 쓰였고, 그 이전에는 위의 국장이었다.[4] 북한도 처음엔 올드 랭 사인의 애국가를 사용했다. 그러나 1948년 7월 이후 자신들만의 국가를 제정한다.[5] '영도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현재의 북한 표준어 표기 방식과는 다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한과 북한의 언어 표기 방식은 공히 조선어학회가 정한 조선말 표준어 모음에 기반했기에 거의 같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직후 조선어 신철자법을 발표하면서 두음법칙을 폐지했기 때문에 현재 북한에서는 '령도자'라고 한다. 사진은 1948년 2월 8일 평양역 앞 광장에서의 조선인민군 창설식 모습으로, 잘 보면 김일성 사진 양옆에 태극기가 있는데, 사실 이는 8.15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북한도 태극기를 썼기 때문이다.[6] 다만 철군과정에서 장비들은 모조리 조선인민군에게 넘겨주었고 남침 준비를 위한 군사고문단은 철수하지 않고 남았다,
[3] 1948년 7월부터 쓰였고, 그 이전에는 위의 국장이었다.[4] 북한도 처음엔 올드 랭 사인의 애국가를 사용했다. 그러나 1948년 7월 이후 자신들만의 국가를 제정한다.[5] '영도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현재의 북한 표준어 표기 방식과는 다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한과 북한의 언어 표기 방식은 공히 조선어학회가 정한 조선말 표준어 모음에 기반했기에 거의 같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직후 조선어 신철자법을 발표하면서 두음법칙을 폐지했기 때문에 현재 북한에서는 '령도자'라고 한다. 사진은 1948년 2월 8일 평양역 앞 광장에서의 조선인민군 창설식 모습으로, 잘 보면 김일성 사진 양옆에 태극기가 있는데, 사실 이는 8.15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북한도 태극기를 썼기 때문이다.[6] 다만 철군과정에서 장비들은 모조리 조선인민군에게 넘겨주었고 남침 준비를 위한 군사고문단은 철수하지 않고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