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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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직
金亨稷 | Kim Hyung Jik

파일:225px-金亨稷_1.jpg}}}
김형직을 미형으로 묘사한 북한의 프로파간다 초상화.
출생
1894년 7월 10일
평안도 평양부 (現 평양시)[1]
사망
1926년 6월 5일 (향년 32세)
중화민국 지린성 (現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본관
전주 김씨
학력
숭실학교[2] 중퇴
직업
무면허 의사, 독립운동가, 사회활동가
가족
아버지 김보현(1871 ~ 1955)
어머니 이보익(1876 ~ 1959)
경력
전 순화학교, 명신학교 교원
조선국민회원
순천의원 운영
백산무사단 단원
광제의원, 무림의원 운영
형제자매
남동생 김형록
남동생 김형권(1905 ~ 1936)
아내
강반석(1892 ~ 1932, 1911년 결혼)
자녀
장남 김일성(개명 전 김성주, 1912 ~ 1994)
차남 김철주(1916 ~ 1935)
삼남 김영주(1920 ~ 2021)
후손
손자 김정일(1941 ~ 2011), 김만일(1944 ~ 1947), 김평일(1954년생), 김영일(1955 ~ 2000?), 김현(1971년생), 손녀 김경희(1946년생), 김경진(1952년생), 김백연(1987년생)
증손자 김정남(1971 ~ 2017), 김정철(1981년생), 김정은(1984년생), 증손녀 김설송(1974년생), 김춘송(1977년생), 김여정(1988년생)
현손김한솔(1994년생), 현손김주애(2013년생)
종교
개신교 (장로회)
정치적 이념
반공주의[3]

1. 개요
2. 사상
3. 북한의 우상화와 반공주의 내력 은폐
4. 남북통일 후의 재평가?
5. 여담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로, 김일성의 아버지이다.

집안은 할아버지 김응우 이래로 지주 이평택(李平澤) 집안의 묘지기였으며, 조만식숭실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숭실학교를 중퇴하고 이런저런 교사일을 전전하다가 1917년 조선국민회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2월 평안남도 일본제국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형사소추를 받다가 그 해 출옥했다. 이후 1919년 5월에 만주로 건너갔다. 이후 그는 무면허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4] 아편을 취급하여 큰 돈을 벌었고 남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 산하단체인 백산무사단의 회원으로 있었다. 관련 기사. 1925년에는 지린성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2. 사상[편집]


김일성의 부친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는 반공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였다. 그가 만주에 있을 무렵 남만주에 공산주의 운동이 있었는데, 당시 일어난 적색테러들 때문에 김형직은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들을 상당히 미워하였다.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약도 팔지 않고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을 정도라 한다.# 이런 반공 성향으로 인해 공산당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결국 1926년 6월 5일 향년 31세로 공산주의 단체에게 피살당했다.

그의 아내 강반석 역시도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바 있다. 여성들에게 독립운동을 하자고 가르친 것도 모자라 힘든 가정에서도 열심히 남편을 도왔다. 북한 당국이 후대에 조작하고 윤색하여 어디까지 진실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선국민회에 참가하고, 김형직이 공산주의자들한테 암살당한 이후, 강반석이 조선 내로 들어와 신간회에 민족주의자 측으로 참가한 것이 확인된다고 한다.


3. 북한의 우상화와 반공주의 내력 은폐[편집]


한반도 북부에 공산국가를 건설하고, 주체사상을 만들어 죽어서도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 된 김일성의 부친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혈통인 김일성의 친아버지라는 이유로 북한 정권에 의해 대대적으로 우상화되었다.

당연히 북한 주민들은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며,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한 사실 또한 철저히 은폐되었다. 북한에서는 그가 일본 경찰을 피해다니다 동사했다고 묘사한다. 오로지 그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사실만을 조명하여, 그를 민족의 우상으로 만들었다. 이 점은 김일성의 할아버지인 김보현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대한제국 시대에 관료로 근무하며 사회주의와 먼 삶을 살았지만 우상화를 위해 묘사와 일대기가 조작되었다.

평안북도 후창군은 후에 그의 이름을 따 김형직군으로 개칭되었으며,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의 며느리이자 손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옛 함경남도 삼수군 신파면 일대)과 그의 동생인 김형권의 이름을 딴 김형권군(옛 함경남도 풍산군)도 이와 마찬가지 케이스다.


4. 남북통일 후의 재평가?[편집]


남북통일 이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흔적을 모두 없앨 때 김형직도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이 있지만, 애초에 김형직은 북한 정권 수립 이전에 사망해서 후손들의 악행과 일절 연관이 없다. 그의 잘못이 있다면 자식을 잘못 두었다는 점이지만 역사 속에 호부견자가 한두명도 아니고, 대한민국은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으므로 반공주의자였던 김형직을 단지 가족이 잘못했다는 점만으로 격하시킬 수는 없다.

다만,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생전에 한 업적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건국훈장을 줄 가능성 역시 낮다.[5]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야 경애하는 대원수님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백두혈통의 선조로서 추앙하지만 남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김일성의 아버지라는 것외엔 알려진 것이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남북통일 이후에 북한 주민들은 환영할지 모르겠지만,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을 대한민국(남한) 국민들이 쉽사리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6][7] 반대로 그의 민족주의적, 반공주의적인 측면을 부각한다고 해도 아들인 김일성이 벌인 가 너무나 크다. 그리고 반공주의를 부각하면 역으로 북한 주민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이것은 북한과 남한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하에서 통일을 시킨다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북한에서도 이건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거짓말이 너무 많다. 당장 북한에서 은폐되는 김정남 암살, 김일성 가계도만 보아도 충성파의 세뇌가 흔들릴 정도다. 개성공단 사장의 사례처럼 일부 남한 주민이 역사적 진실을 알려주려는 시도도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김일성은 히틀러 같은 인물로 인식되어 다시는 그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최악의 독재자로 기억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북한은 개방을 하지 않는 것도 있다.


5. 여담[편집]


아내인 강반석미국 선교사 넬슨 벨의 중매로 만났다. 참고로 두 사람을 맺어준 넬슨 벨은 세계적인 복음 설교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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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군면 통폐합 이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대동군 지역이다.[2] 지금의 숭실중고등학교.[3] 아들공산주의 국가를 건국한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4] 가짜 세브란스의과대학 졸업장을 걸어놓고 활동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한의사들의 의사면허를 박탈하고 의생 제도로 개편한 것을 고려하면 설령 진짜로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했다고 할지라도 합법적인 운영은 아니다.(…) 다만 한의학이 의학은 아니고, 한의학의 특성상 현대 의학 기준으로 보면 빼도박도못할 돌팔이인 유의(스스로 의술을 공부한 양반)도 정식 의사로 인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애초에 면허가 필요했을지도 의문.[5] 차라리 그나마 현실적으로는 처인 강반석의 행적이 더 가능성이 높다.[6] 당장 건국훈장을 서훈받은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친가가 아닌 외가였는데도 논란이 상당했는데, 하물며 김일성의 친아버지를 기리다니...[7] 설령 준다 할지라도 그 후손이 서훈받은 훈장의 현물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다름아닌 김정은일 지도 모른다. 다만 장남 직계고 반북한정권 성향인 김한솔이 받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