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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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 朝鮮
단군조선 | 檀君朝鮮
Tangun Josŏn (Dangun Joseon)


파일:고조선 지도.png
고조선의 문화권[1]
기원전 2333년(?)[2][* 해당 시기의 관련 문화로 여겨지는 청동기 문화인 하가점 하층 문화(기원전 22세기경부터 발달)와의 연관성은 현재 연구중이며, 아직까지는 고고학적으로 유의미한 성과가 부족하다. 실증적으로는 기원전 9세기경의 십이대영자 문화를 고조선의 연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시기를 국가의 초기 형태를 다지기 시작한 연대로 보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유물은 2016년 11월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장신구 유물이며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13세기 유물로 판명되었다.]~기원전 194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청동기 시대
비파형 동검 문화

위만조선
위치
요서? → 요동일대한반도 북부
수도
아사달장당경[3]왕검성[4]
정치 체제
제정일치
국가 원수
단군?[5] (기원전 ? ~ 기원전 323?)
[6] (기원전 ? ~ 기원전 323?)
(기원전 323? ~ 기원전 194)
주요 군주
단군?[7], 조선왕 1세, 준왕
국성
불명[8]
문자
불명
언어
불명
화폐
명도전?[9]
종교
한반도 토착 종교
종족
예맥, 화하족[10]

1. 개요
2. 상세
3. 기록
4. 역대 군주
5. 여담



1. 개요[편집]


단군조선(檀君朝鮮)은 고조선의 첫 번째 세습 왕조를 지칭하는 일종의 시대 구분 명칭이다.

기원전 194년 위만의 찬탈로 인해 왕조의 마지막 왕인 준왕마한으로 도피하면서 몰락하게 되었다.


2. 상세[편집]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다.[11] 조선시대동국통감》의 기록을 따른다면 기원전 2333년이 건국년이지만 이는 신화적 표현에 가깝고, 현대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실제 건국년을 두고 여러 설이 오간다.[12] 단군조선이 건국된 해를 기준으로 잡아 단군기원을 사용한 적도 있었다.

단군 신화의 모태가 되는 국가이기도 하나, 근현대 들어 실증주의가 도입된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 '단군조선'에 대한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신화 속의 단군을 역사상의 실제 인물로 인정하고 그 후손들에게 이어진 왕조를 뜻하는 전통적인 사관에서의 단군조선과는 다르게, 위만조선 이전의 토착계 고조선 왕조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다.[13] 이는 단군신화가 부분적으로 청동기시대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여 형성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대 역사학 도입 이전부터 단군조선은 한국의 독자성을[14] 상징하는 왕조로 받아들여진 이유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편의적인 설명이고, 보통은 학술적으론 그냥 고조선이라고 칭하고 현행 역사 교과서에도 고조선을 '토착 고조선 - 위만조선'의 틀 안에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당대의 문헌자료와 고고학적인 발굴자료가 어긋나는데다가[15] 고조선 당대의 사료 가운데 중국사서에 적힌 자료는 한정적이고 토착자료는 신빙성이 불분명한 자료가 대부분이라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같은 왕조의 실존이나 부재 및 의미를 완벽히 밝혀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그렇다.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위만조선 이전 토착 고조선의 명칭을 그냥 고조선이라 부르기로 타협하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3. 기록[편집]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에 따르면 건국조는 단군왕검으로[16], 환인의 아들 환웅웅녀와 관계하여 태어났다고 하며, 이후 단군왕검은 1,000여년 동안 재위하다가 신이 되어서 올라갔다고 한다.

고려시대제왕운기》 같은 고문헌에 따르면 단군조선이 멸망한 이후, 기자조선이 들어섰다고 하지만, 현대 남북 사학계에선 기자 자서여가 조선에 봉해졌다는 설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므로 다음 시대를 위만조선으로 본다.


4. 역대 군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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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초대 단군
계보 미상
제?대 조선후

조선후 ?세
계보 미상
초대 왕
제2대 왕
제3대 왕
조선왕 1세
조선왕 2세
조선왕 3세
계보 미상
제?대 왕
말대 왕
부왕
준왕
위만조선
초대
제2대
제3대
멸망
위만왕
□왕
우거왕

'기자'의 재위 및 '기자조선'의 존재는 학계에서 인정되지 아니함.
'한후'는 고조선 군주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음.







5. 여담[편집]


  • 한씨, 기씨, 선우씨 등의 가문들은 오늘날에도 자신들을 고조선의 후예라고 자처하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자신을 기자조선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기자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준왕의 후계가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데, 현대 역사학계에선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준왕은 한국 역사학의 시각에서 보면 단군조선 또는 토착 고조선 왕계의 마지막 왕이 된다. 다만, 이들 가문에서는 여전히 학계의 관점과는 다르게 기자조선을 긍정하기 때문에 그러한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는 모양. 물론 애초에 조선후기 기록인 이들 족보의 신빙성 자체가 떨어지기에, 이들 가문의 기자조선 후예설을 인정하는 학자도 없긴 하다.

  •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사서로는《규원사화》가 있는데 고고학적 조사결과와 맞는게 하나도 없을 뿐더러 서지적으로 검토했을 때 워낙 문제가 많아 학계에서는 사실상 위서로 취급한다. 때문에 문헌자료로서의 가치는 0에 수렴하는 후대의 창작물이라고 보는게 합당하다.

  • 고조선이 중국 요임금 무렵에 있었다는 내용이 중국 쪽에서 언급된 적도 있긴 한데[17], 1698년 청나라에 가톨릭 포교를 위해서 왔던 프랑스 예수회 소속 신부인 쟝 밥티스트 레지(1663~1738년)가 남긴 기록인 《한국의 역사에 대한 요약》(Histoire abregee de la coree)에 관련 내용이 언급된다. 《레지 사료: Regis’s historical records on Old Joseon, RHROJ》에 의하면, 고조선은 기원전 2357년 치세를 시작한 요임금 때부터 기원전 2188년 치세를 시작한 하나라의 3대 왕인 태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속민이었다가, 태강(太康)이 압정을 일삼자 저항했고, 그 외에 기원전 1818년 치세를 시작한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걸왕때 반란을 일으켜 때로는 중국 영토에 침입했으며, 기원전 1324년 상나라의 군주 무정 때 상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중국 강남과 산동 지방의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고학적 근거와 물증이 현재로선 전무하고, 상고시대부터 레지 사료가 쓰여진 기간의 간격이 너무 멀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선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당장 고려시대에 쓰여진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연대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보다 수백년 뒤인 청나라 시기 기록은 더 신뢰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으며, 교차검증이 되었다며 들고 온 자료가 무려 1904년 쓰여진 《신단민사》니 더 그렇다.

[1] 고조선의 동북쪽에 있던 부여(포자연 문화)의 전신인 서단산 문화는 요령식 비파형 동검 문화권 안에서 속했는데, 이들은 요동 지역의 미송리형 토기와 유사한 서단산형 토기를 사용했다. 서단산 문화는 지역적인 특색을 띠며 성장했는데, 이후 접변하고 있었던 초원계 문화가 혼입되어 이질적으로 변모했다. 참고로 해당 지도는 전성기인 기원전 5~4세기경의 강역을 나타낸 것으로 당대 국가치고는 꽤 큰 영역을 확보했지만 연맹왕국 특성상 상당수의 영역은 간접통치하는 형태였을 것이다. 청천강 남쪽의 경우, 고조선-연 전쟁 이전에는 고조선의 영역이 아니었다. 지도에는 평양 남부의 진번국 지역까지 고조선의 영역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진번이 고조선의 영토가 된 것은 위만조선대의 일이다.[2] 건국년도는 불명이며, 대략적인 추정도 견해가 갈린다.《동국통감》의 서술을 역법으로 환산하여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해당 서술은 정통성을 강조하는 목적의 신화적 묘사에 가깝다. 《동국통감》부터가 기원후 1430년대에 발간되어 교차검증은 아예 불가능하고, 단군조선 시대의 다른 기록이 없다. 기원전 2000년대 부근으로 잡는 움직임은 이미 고려시대때에도 있었으나 이에 대해 문헌학적인 논란이 적지 않다. 단군기원 참조. 무엇보다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중국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가 상나라인데 이 나라는 기원전 17세기에 건국되었고, 실존 여부가 불명확한 하나라를 포함해도 기원전 21세기 건국으로 추정되는데 문명 발상지 변방 지역이었던 단군조선이 이들보다 더 이전에 건국되었을 리가 없다.[3] 기존 <단군 신화>에서는 이를 두고 아사달과 장당경을 평양, 오녀산성, 구월산 등으로 비정되곤 했지만 현재 고고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고조선은 요서에서 출발하여 요하, 평양 순으로 중심지를 옮겼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르면 아사달은 차오양, 장당경은 선양에 위치한 것으로 비정된다.[4] 위만조선이 왕검성을 수도로 삼기 이전에 이미 요하에서 왕검성으로 중심지를 이동했다는 학설이 많다.[5] 단군이 고조선 군주의 명칭일 것이라는 학설이 다수설이나 어디까지나 추정이고, 실제로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6] 중국측에서 일방적으로 부른 것인지 고조선에서 스스로 자칭했는지는 알 수 없다.[7] 단군을 왕조의 상징적인 존재로 본다.[8] 한씨, 기씨, 선우씨 등이 후예로 거론되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기자조선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다. 애당초 저 때는 한반도에 성씨 문화가 존재했을 확률도 지극히 낮은 시대이기 때문에 정말 후손이 맞다고 하더라도 고조선 멸망 후 득성했다고 보는게 맞다.[9] 중원과 교역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10] 중원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피난민이 유입되었다.[11] 정확하게는 단군조선이 아니라 '왕검조선'으로 기록하긴 했으나 둘의 차이는 없다.[12] 정확하게 말하면 언제 건국했는지 모른다가 정답일 것이다. 애초에 자료가 부족한 고대사란 것이 그렇기도 하고. 때문에 개천절 같은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허구에 가깝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아무리 늦어도 기원전 4세기에 요동을 중심으로 고조선이 존재했다는 것은 인정받고 있다.[13] 고구려 안시성주의 실제 이름은 오늘날 알 수 없지만 대중적으로는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통용되듯, 실증적 실체는 없지만 대중적으로는 토착계 고조선 단군이란 상징적 표현으로 쓰는 식이다.[14]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단군은 창업 혹은 개국을 상징했고, 기자는 문명의 교화를 상징했다. 물론 기자의 경우 지금까지 그렇다는건 아니고 기자조선이 인정되던 전근대의 역사관에서 그랬다는 것이다.[15] 대표적으로 기자조선.[16] 보통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사람 이름이 아닌 직책 이름으로 보며, 뜻은 제정일치로 해석하는 편이다.[17] 물론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고조선은 단군조선이라고 확정할 수 없는 토착계 고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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