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계 칠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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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Germanochilenos
독일어: Deutsch-Chilenen

1. 개요
2. 이민사
3. 유명한 독일계 칠레인



1. 개요[편집]


독일계 칠레인들은 칠레에 거주하는 독일 출신 후손들을 의미한다.


2. 이민사[편집]


오늘날 칠레에 해당하는 지역에 도착한 최초의 독일인으로는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과 합류한 독일인 군인 겸 모험가 바르톨로메 플로레스를 들 수 있다. 바르톨로메 플로레스는 페드로 데 발디비아의 원정대와 합류하여 칠레 북부 일대의 원주민들을 정복하는 사업에 참여하였고 그 대가로 현지 추장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메스티소 자녀를 남겼다.

독일인들이 칠레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시점은 칠레 독립 이후이다. 칠레가 스페인 식민지였던 당시 식민종주국이었던 스페인나폴레옹 전쟁 전후로 유럽 내 이류 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목격한 크리오요들은 큰 충격을 받고, 종주국 스페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칠레 독립의 배경이 이러했기에 칠레 독립 이후 칠레 사회의 지도층 사이에서는 칠레의 사회 문화 내에서 스페인 문화를 모든 악폐의 근원 정도로 취급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다.[1] 칠레 사회의 지도층들은 프랑스와 영국, 독일 문화를 모방하는데 열중하였으며, 특히 보불전쟁 이후 새로 강대국으로 거듭난 프로이센의 군사 제도와 교육 시스템에 주목하였다.[2] 같은 맥락에서 칠레에서는 영국인 사업가들을 유치하고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의 이민을 적극 장려하였으며, 독일인 퇴역 장교들이나 교육인들을 초빙하여 칠레군을 개혁하고 칠레의 교육 시스템을 정비한다. 이 과정에서 칠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독일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1846년부터 1914년 사이에 약 3만 명의 독일어 사용자 인구가 칠레에 도착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바이에른, 바덴, 라인란트 출신이었고, 체코인들이 이주해온 경우도 있었다. 상당수의 체코인들은 독일어에 유창하였고, 이런 체코인 상류층들은 이민간 지역에서 체코인 고유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대신에 독일인 디아스포라 사회에 그대로 융화되는 경우도 적지는 않았다.[3]

칠레로 이민 온 독일계 인구 대다수는 가톨릭 신도였으나 1848년 혁명이 실패한 후 소수의 루터교도들이 프로이센의 루터교 정책에 반발하여 미국이나 영국, 호주 외에도 칠레로도 이민을 갔다.

현재 독일계 혈통을 가진 칠레인은 약 100만 명으로 주장되며, 칠레 내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2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칠레 중부와 남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3. 유명한 독일계 칠레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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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레는 같은 맥락에서 칠레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에서도 유럽 스페인의 스페인어와 구분되는 칠레 고유의 스페인어의 특이점을 강조하는 편이다.[2] 보불전쟁 당시 프랑스 병사 상당수는 문맹이었던 반면, 프로이센군 가운데에서 문맹은 극소수였다. 이는 보불전쟁 당시 프랑스군과 프로이센군 병사 개개인의 질적 차이로 연결되었고 파라과이와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신생국 각국은 프로이센에서 빠른 속도로 문맹을 퇴치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킨 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3]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르비우에도 상당수의 체코인 관료들이 정착하였는데, 이들 체코인들은 이민 간 사회 내에서 공직 생활에서 독일어만 사용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반 슬라브 차별 정책에 영향을 받아 상당수가 세대가 지나며 완전히 오스트리아화-독일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