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케

덤프버전 : r

Iquique
이키케
파일:Escudo_de_Iquique.svg
문양
국가
칠레

타라파카주
Región de Tarapacá
면적
2,242.1km²
인구
191,468명
(2017년 기준)
시간대
UTC -4
서머타임: UTC -3
고도
1m


Iquique.







파일:iquique_416357104_1000.jpg
파일:Vista_de_Iquique,_Chile,_2016-02-11,_DD_20.jpg

1. 목차
2. 역사
3. 행정
4. 경제
5. 인구 통계
6. 기후
7. 교통
8. 스포츠




1. 목차[편집]


이키케는 칠레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이키케 현과 타라파카 현의 현도이다. 아타카마 사막의 일부인 팜파 델 타마루갈의 서쪽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191,468명이다. 그레이터이키케의 주요 코뮌이기도 하다. 도시는 19세기 아타카마 사막의 염석 채굴의 전성기에 발전했다. 한때 인구가 많았던 페루의 도시였지만 태평양 전쟁(1879년 ~ 1883년)에서 칠레에게 정복당했다. 오늘날 칠레의 유일한 자유 항구 중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칠레의 남쪽 끝에 있는 푼타아레나스이다.


2. 역사[편집]


도시는 16세기에 세워졌지만, 기원전 7000년경에 창고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했다는 증거가 있다. 식민지 시대 동안 이키케는 당시 남아메리카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페루 부왕령의 일부였고, 19세기 말까지 페루 영토의 일부였다. 이키케의 초기 개발은 광물자원, 특히 아타카마 사막(당시 페루 영토)에 질산나트륨이 많이 매장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835년 7월, 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이키케를 "물과 땔감과 같은 생활 필수품이 매우 부족한 마을"이라고 묘사했다. 이 필수품들은 상당한 거리에서 들여와야 했다. 다윈은 또한 소금 페트리 공장을 방문했다.

도시는 1868년 아리카 지진, 1877년 이키케 지진, 2005년 타라파카 지진 등 여러 지진으로 황폐화되었다. 2014년 이키 지진은 2014년 4월 1일에 일어난 지진이다.

볼리비아칠레 사이의 영토 분쟁은 1879년 태평양 전쟁을 촉발시켰다. 이키케 전투는 1879년 5월 21일 이키케 항에서 벌어진 전투로, 현재는 해군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전쟁의 결과는 칠레에게 페루 영토의 이 부분을 주었다.

몇 년 동안 칠레의 다른 지역에서 노르테 그란데라고 불리는 이 지역으로 상당한 이민이 있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칠레의 소금 페트레(주로 유럽 국가들에 대한)의 추가 수출은 도시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고, 외국인들을 끌어들이고 빠르게 주택 사업을 확장했다.

1907년 12월 칠레군이 산타 마리아 데 이키케 학살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었다. 로베르토 실바 레나르는 산타 마리아 학교 안에 모인 수천 명의 소금 광부들과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 조건과 임금에 항의하기 위해 시내로 행진했다. 대략 500명에서 2,000명 사이의 사람들이 죽었다. 포크 그룹인 퀼라파윤은 1970년 이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음반을 녹음했다. 2007년 12월에는 학살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2월 14일부터 21일까지의 주간을 정점으로 일련의 문화 및 의식 활동이 계획되었다.

1996년 러시아가 발사한 화성 96호는 지구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고, 몇 시간 뒤 대기권에 재진입했다. 2대의 RTG는 총 200g의 플루토늄을 싣고 있었으며 재진입 시에도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현재 칠레 이키케에서 동쪽으로 32km 떨어진 북동-남서쪽으로 320km(199mi) 길이와 80km(50mi) 폭의 타원형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칠레의 영토가 되기 전, 이키케는 페루의 위대한 영웅들, 알폰소 우가르테(1876년 시장으로 선출됨), 라몬 자발라, 기예르모 빌링허스트(1914년 전복된 후 이키케로 와서 칠레의 통치하에 있던)의 고향이었다.라몬 카스티야는 산로렌소 데 타라파카에서 태어나 타라파카 주 티빌리체 사막에서 사망했으며, 1825년 타라파카 주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이키케에서 살았다.


3. 행정[편집]


이키케는 칠레의 3급 행정 구역으로, 4년마다 직접 선출되는 알칼데가 이끄는 지방 자치체가 관할한다. 2012-2016 알칼데는 호르헤 소리아이다.

칠레의 선거구 내에서 이키케는 타라파카 주 전체를 포함하는 제2선거구의 일부로서 마르타 이사시(Ind.)와 우고 구티에레스(PC)가 하원의원에 선출된다. 제1선거구(아리카, 파리나코타 주, 타라파카 주)의 일부로서 호세 미겔 인술자(PS, 2018-2026)와 호세 두라나(UDI, 2018-2026)가 상원을 대표한다.


4. 경제[편집]


이키케에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면세 상업 항구 센터 중 하나인 Zona Franca of Iquique(이키케의 자유 구역)가 있다. 약 2.4 평방 킬로미터의 창고, 은행 지점, 식당이 있다.

주로 케브라다 블랑카, 세로 콜로라도, 도냐 이네스 데 콜라와시에 있는 구리 광산도 이키케의 중요한 산업이다.


5. 인구 통계[편집]


200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키케 코뮌의 면적은 2,835.3km2, 인구는 216,419명(남자 108,897명, 여자 107,522명)이다. 이 중 21만4586명(99.2%), 1833명(0.9%)이 도시에 거주했다. 넓이는 2262.4km2이고, 인구는 2007년 기준으로 166,204명이다. 인구는 1992년과 2002년 사이에 42.7% (64,742명) 증가했다. 타라파카 주 전체 인구의 56%가 거주한다. 2008년 기준으로 인구는 226,204명이다.

민족 집단 거주자의 상당한 비율이 있다. 가장 많은 공동체는 크로아티아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중국인, 아랍인, 페루인, 볼리비아인, 영국인, 프랑스인이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영국 광산 회사에 고용된 약 1,000명의 동인도(인도파키스탄 출신) 칠레 소금 석유 광산 노동자들이 이키케에 나타났고, 오늘날 그들의 후손들이 지역 인구에 섞였다. 최근, 북미호주 이민자들의 물결이 은퇴하고 도시의 해변 기후를 즐기기 위해 왔다. 이민자는 현재 전체 인구의 9.2%에 해당한다.


6. 기후[편집]


이키케는 이례적으로 온화하고 따뜻한 사막 기후(쾨펜: BWh)를 가지고 있으며, 연중 낮은 기온과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풍부한 구름과 해안 위치 때문에 기후는 보통 BWh 또는 BWk와 달리 BWn으로 약칭된다. 이곳은 강수일도 없이 완전히 건조한 해가 흔해 아리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도시 중 하나다.


7. 교통[편집]


이키케는 디에고 아라세나 국제공항(IATA: IQQ, ICAO: SCDA)이 운영되고 있다. 공항은 도시에서 남쪽으로 48킬로미터(30마일) 떨어진 태평양 연안에 있다.


8. 스포츠[편집]


이키케는 축구팀 데포르테스 이키케의 홈구장이다. 2016년 FIRS 여자 롤러스하키 월드컵을 개최하였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12-18 17:38:48에 나무위키 이키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