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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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문화
4. 모라비아인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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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인체코의 주요민족이다. 총 인구는 천만여 명에서 천이백만여 명에 달하며[1] 이 중 920만여 명 정도가 체코에 거주한다. 체코어를 사용하며 체코어가 모국어이다. 체코인들은 슬라브족중 폴란드인, 슬로바키아인, 소르브인과 함께 서슬라브족에 속한다. 미국에는 체코계 미국인 146만여 명이 거주하며 캐나다에도 30만여 명 정도의 체코인 이민자 후손들이 거주한다.


2. 역사[편집]


기원은 서기 5세기 ~ 6세기에 슬라브족들이 이동할때 분리된 것이 시초이다. 슬로베니아인과 마찬가지로 아바르 칸국의 지배를 받던 슬라브족들이 사모 왕의 지휘 하에 봉기하여 독립하였고, 이후 9세기 대 모라비아 왕국이 세워진 것이 그 시초이다. 슬라브족의 이동 과정에서 이 지역의 원주민이었던 켈트계 로마인 및 일부 게르만족 역시 서슬라브족에 동화되었다. 이후, 체코 지역의 슬라브족들은 프랑크 왕국과 바이에른 공국, 마자르족의 침입으로 모라비아 왕국이 무너지자, 혼란기를 거쳐 보헤미아 왕국의 신민이 되었다. 초창기 체코인들은 동로마 제국과 접촉하여 정교회를 받아들이고 글라골 문자를 사용하였으나, 이후 독일인과의 지속적인 교류로 천주교로 개종하고 로마자를 받아들였다.[2]

중세시대에는 독일인들이 주축을 이룬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으로, 보헤미아 왕은 황제 선거권도 가질 만큼 제국 내에서 강력한 제후였고, 인구 부족과 동방식민운동의 영향으로 독일인들을 보헤미아 외곽에 이주시켰다. 그에 따라 보헤미아에서 독일인들은 많은 인구를 차지했다.

보헤미아 지역은 전통적으로 산업이 발달하고 부유한 지역이었으나 30년 전쟁 와중에 인구가 격감하고 전쟁 후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많은 체코인들이 독일인과 통혼하였고, 문화적으로 독일-오스트리아와 흡사해졌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기 체코인들은 제국 내에서 독일계 다음으로 부유한 민족이었지만 정치적 발언권이 적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적극적인 민족주의 부흥 운동을 펼치며 고유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2차 대전 이후 소련군이 체코에 진주하면서 체코 내 독일인 인구는 추방당하고 대신 공산 정권이 들어섰다. 다만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북한이나 캄보디아처럼 막장 문화 탄압국은 아니었고 이 시기에도 체코 문학[3]체코 영화를 비롯한 문화는 계속 발전을 이루었다.[4]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에는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요민족을 이루었고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어진 뒤에도 계속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체코인들은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과 나치 독일의 강제 합병, 공산 정권 시절 프라하의 봄소련군이 진압한 것에 대한 기억 등으로 현재도 다른 유럽 국가보다 반독 감정과 반러 감정이 강한 편이다.

3. 문화[편집]


문화적으로는 천주교를 신봉하는 경우가 많지만, 얀 후스, 후스 전쟁 문서에서 보듯 종교개혁의 영향이 강했던 지역이었다. 이 때문인지 가톨릭=폴란드 민족주의 공식을 가진 폴란드인들과 달리 체코인들은 세속화되면서 무종교 비중이 높아졌다.

체코 내 체코인들은 체코어를 사용하지만, 주변국과 역사적인 영향으로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 등 여러 언어를 할 줄 아는 체코인들이 많다. 러시아어의 경우, 반러 감정 때문에 요즘은 일부러 배우는 경우가 많이는 없지만, 러시아가 강대국이기 때문에 간단한 회화 수준은 배우는 편이다. 체코는 전통적으로 유럽 내에서도 학문이 발달한 선진 지역이었다. 체코계 미국인들은 이민자 2세대 이후로는 체코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편이다.

체코인들은 슬로바키아인들과 문화, 혈통에서 매우 가까워서 체코어 화자와 슬로바키아어 화자와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한다. 모라비아 방언을 사용하는 이른바 모라비아인들도 체코 동부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4. 모라비아인[편집]


체코 동부 모라비아 지방에는 체코어 방언에 해당하는 모라비아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수십만여 명 존재한다. 모라비아라는 어원은 중세 초 대 모라비아 왕국에서 기원하는데, 모라비아 왕국은 멸망 이후 서부는 보헤미아 공국으로 동부는 헝가리 대공국으로 분리되었다. 슬로바키아인은 헝가리 왕국 내 모라비아 왕국 출신 서슬라브족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체코 서부는 보헤미아 왕국, 동부는 모라비아 변경백국에 속해 있었다.

벨벳 혁명 직후 1991년 인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1,363,000여 명의 체코인이 자신을 모라비아인이라고 응답했지만, 2001년 인구 조사에서는 자신을 모라비아인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380,474명으로 대폭 감소하였다. 다시 2011년 통계에서는 630,897명으로 나왔다. 오늘날 모라비아인 민족 문화의 중심지는 한 때 대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체코의 브르노 시라고 한다. 물론 분리독립 같은 것은 아니고 모라비아인 정체성 등을 보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상술한 모라비아인 인구 통계 자료가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라비아인이라는 정체성은 모라비아 방언을 사용하는 혹은 체코 동부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지, 체코인과 독립된 다른 형태의 민족 정체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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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코계 실레시아인과 모라비아인 포함[2] 이후 체코는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에 천주교를 전파하였다.[3] 밀란 쿤데라, 보후밀 흐라발 등 작가들이 공산정권 치하에서도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4] 당시 체코는 알렉산데르 둡체크 하에 꽤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초현실주의 같은 문화도 정착한 상황이었다. 프라하의 봄 직후 둡체크가 축출당하고 소련 탄압이 이어지면서 빙하기가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