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활동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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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사파 운동권
2. 정계 입문 이전
3. 19~20대 국회 초반
5. 바른정당 합류 이후
6. 바른미래당 출범 이후
7.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시절 (21대 국회)
7.3. 비상대책위원회 수립 논란 및 국민의힘/제3차 전당대회 국면
7.4. 전당대회 이후


1. 주사파 운동권[편집]


1986년 서울대학교입학하였고,[1] 전두환 집권기에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NL 계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범민련의 학생조직인 범청학련 결성을 주동한 혐의와 이적표현물 소지 및 탐독을 한 혐의로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살았다. 하태경 스스로는 이게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나 아무래도 80년대 말기 운동권은 민주화 운동 이후 세대기도 하며, 하태경의 국가보안법 위반은 사실상 주사파 활동으로 볼 수밖에 없어서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출소 후에는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가 대중적 통일운동을 위해 새로 만든 단체인 <통일맞이>를 출범시키자, 이 곳에서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통일맞이가 범민련 틀을 벗어나는 데 대해 범민련내 운동권은 문 목사를 강력히 비난했고, 이 때문에 문 목사가 급사하자 하태경은 전향을 하게 된다. # [2]

이렇게 본인 스스로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에 우호적이었으나,[3] 전향하여 북한 인권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박형준.


2. 정계 입문 이전[편집]


학위를 받은 후 SK그룹 경영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과거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과정에서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모습과 고문을 받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것이 떠올라, 연구원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탈북자와 북한주민 인권운동에 나서게 된다.

NL핵심서 전향한 운동권 출신 탈북자 만난 후 ‘북한 고발자’로

대북 민간 방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국 정부와 의회에 호소하여 자금 60만 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2005년 12월 8일에 열린북한방송을 개국하고 러시아미국의 단파송신소를 임차해 방송을 시작했다. 열린북한방송을 운영하며 북한의 주민들에게 외부의 소식을 전하고 북한 내부에 민주화의 씨앗을 싹틔우는 역할을 해 왔으며, 2011년에는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제적 활동에도 앞장서 2011년 9월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를 위한 국제연대'(약칭 ICNK)를 결성했다.

이 시절 아무리 늦게 잡아도 2007년즈음부터는 뉴라이트에 입문한 것으로 보여진다. 열린북한방송 대표란 직함으로 <<뉴라이트 지식인>> 관련 명단에 여러번 등장한다. # #

3. 19~20대 국회 초반[편집]


2011년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다음해 치뤄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시 해운대구·기장군 을에서 당선하여 국회에 입성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구가 개편되면서 해운대구 갑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4]

새누리당 북한인권및탈북자납북자위원회장을 지냈다. 제19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원, 국토교통위원회원,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원,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원을 역임했다. 제20대 국회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하태경은 2014년 9월 29일 오전 새누리당 초선·재선 국회의원 모임인 ‘아침소리’ 정례회의에서 “세월호가족대책위는 연락 기능과 같은 최소한의 직책만 남기고 해산할 것을 촉구한다”며 “대책위는 해산 결정하고 여야 합의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나 유족을 위해서나 더 나은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

NL계열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투옥되어 군대에 가지 않았다. 지금은 대북 강경파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북한 인권 문제를 두고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활동했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에서는 이 노래를 북한에서 부르면 처벌받는다고 종북 논란을 일축했다. 게다가 국가보훈처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유언비어를 유포한다고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회의원 중에서 대북 강경파를 대표할 정도로 특징이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탄핵에 앞장서면서는 박근혜가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자 박근혜도 종북이라고 주장한 이력이 있다. 대북 문제에 관해서는 당내에서 가장 강경한 보수 경향이라고 스스로 밝혔고 자기보다 보수적인 의원은 김진태[5] 뿐이라고 인정했다. 하태경의 특징 중 하나는 예전과는 정치사상 방향이 완전히 바뀐[6] 흔치는 않은 국회의원이라는 것이다.[7]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민주화운동"#라는 말인데, 북한인권법 # 화요집회에 자주 나간다

임수경 전 의원은 하태경을 두고 '변절자'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아 정계에서 쫓겨난 전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8]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당시 다른 몇몇 여당 국회의원과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려 했다가 제지당하고서 트위터에 비판하는 태도로 쓴 글#을 올려 많이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2016년 6월 16일 썰전 방영분에서 전원책유시민롯데그룹은 어느 나라 기업인지를 두고 한 논쟁을 대상으로 해, 한국기업 성격이 강하다는 유시민의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 하여 화제가 됐다.

6월 28일 원내 대표 회의에서 국회의원 서영교· 김수민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새누리당 내에서도 친인척 비서 채용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돌발 제안하였다. 우리당도 예외일 수 없다, 자체조사해야 한다는 주장했고, 그 결과 새누리당 내에서도 친인척 비서관 채용과 관련한 자진 신고와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편집]


촛불 집회의 배후는 북한이라는 풍설의 근거로 나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기사 사진을 놓고서는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조작임을 밝혀냈으며, 그 배후에 일베저장소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이러한 주작 때문에 사람들이 진짜 종북을 가려내지 못하게 된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기사.

새누리당 국회의원인데도 국정조사나 대정부 질문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강하게 추궁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다. 황교안과 국회에서 설전을 벌인 것은 유명하다.

2016년 12월 22일 국회의원 안민석과 함께 썰전에 출연해 펼친, 청문회 후일담에서 자신이 왜 운동권 학생이었는데도 새누리당으로 가게 됐는지 설명했는데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고 난 후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에는 민주화가 정착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민주화 이후의 가치인 복지, 평등, 인권[9]에 관심하기 시작해 프레임이 잘 맞을 듯한 새누리당으로 가게 됐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보니 여긴 아직 독재물이 덜 빠졌다고(...)...[10]

썰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친박 중심의 패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새누리당은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2월 27일 신당 개척 선언문을 페이스북에 기재하고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 작업에 참여했으며 결국 바른정당으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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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하면서 남긴 깨알 같은 오타 환골탈태

여담으로,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위의 프로필 사진도 같은 사진에 바탕색이 빨간색에서 하늘색으로 색깔이 바뀌었다.


5. 바른정당 합류 이후[편집]


바른정당으로 합류한 이후도 장제원과 더불어 박근혜친박을 저격하는 편. 다만, 장제원이 아들 장용준(NO:EL)으로 인하여 정치 경력에 크게 타격받으면서 사실상 단독 탱커를 맡는 상황이다. 어쨌건 이러한 활동으로 박사모친박 극우 단체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는 모양새다.

2017년 1월 5일, 변호사 서석구가 저 가짜 뉴스를 근거로 촛불 시위를 종북주의자와 결부하게 하려는 색깔론을 주장하자 "가짜뉴스에 속아 넘어간 것이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2월 이후로는 대통령 권한 대행 황교안을 대상으로 해 "대통령 놀음을 중단하라!"라고 계속 비판했다.

2월 24일, 탄기국(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에서 하태경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재산 가압류 신청(...)까지 했다.

3월 12일, 박근혜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라고 헌법재판소 판결에 불복하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을 놓고 "당신은 참 나쁜 전 대통령이다. 끝까지 대한민국을 두동강 내고 있다."며 독설을 날렸다. 이는 이전에 박근혜가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에게 한 말과 유사한 것이다.

범 유승민 캠프에 속해 있다.

4월 10일 주갤문재인 아들 취업 특혜 논란을 저격하는 글을 썼으나, 고용노동부에서 내용상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이 건에 대해 하태경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태경이 고용노동부에 직접 문의한 결과 내용상 달려진것이 없다고 한 것은 민주당 측의 거짓말이라고 한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저런 입장을 내보낸 적이 없으며 이에 대하여 하태경 측에서는 허위사실유포로 고발을 한다고 한다. 하태경 페이스북 링크 1, 링크 2.

19대 대선 기간 중 문재인의 아들 문준용의 취업의혹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였고, # 자신의 의원직을 건다고 할 만큼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공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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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까지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다짐하고 선거 당일 트위터 문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후에도 "문준용 의혹과 계속 싸우겠다"고 # 전투의지를 다지는 등 문준용 취업 의혹을 밝히는 것에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와 체중을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월 10일 부산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내빈으로 참석하였다가 내빈 소개 문제로 물의를 빚었다.

바른정당 후보 경선에 출마해, 국방과 노동 부문만 넘겨주면 더불어민주당과 연정도 가능이라는 발언을 했다. 근데 야3당이 반드시 낙마시킬 거라고 하는 후보자가 딱 송영무 국방부 장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종북몰이에 관해서 새누리당 시절의 스탠스와는 정반대로 비판하고 있는 입장. 지금까지의 보수가 안보팔이 보수라 비판하거나 홍준표의 주사파 발언을 두고 홍준표야말로 주사(酒邪)파라고 비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본인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진짜배기 종북 세력인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고 그에 따라 NL 주사파세력이 궤멸에 가까울 만큼 위축되었기 때문에 종북몰이의 정당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11] 자유한국당을 종북몰이를 하는 '가짜보수' 극우정당으로 규정하고 "종북 극좌 정당인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듯, 종북몰이 극우 정당인 한국당도 이제 해산할 때"#라고 자유한국당 해체론까지 주장하였다.[12]

2017년 6월 26일 바른정당 당대표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혜훈 후보에게 밀려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2017년 7월 6일 바른정당이 내년 지방선거 필승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새로운 보수의 비전을 정립하기 위하여, '바른비전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하태경 최고위원이 바른비전위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바른정당의 3갈래 계파(자강파, 보수연대파, 중도연대파) 중 중도연대파 성향으로 거론되는 의원이다.

2017년 9월 4일, 정기국회 때 김장겸 MBC 사장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이유로 국회보이콧을 강행한 자유한국당을 향해 '안보 정당이 뭐 하냐, 당신들 보수정당 두 번 죽이는 행위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17년 9월 20일 중도연대파를 모집하여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 바른정당 정운천 의원과 하태경 의원을 중심으로 국민의당과 함께 국민통합포럼을 출범시켰다. 강길부, 김세연, 이학재, 박인숙, 오신환, 홍철호 의원을 포함하여 중도연대파들의 입지를 본격적으로 다지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2017년 11월 13일 바른정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으나 유승민 의원에게 밀려 최고위원이 되었다.

우리은행이 자신들이 주최한 초등학생 대상 통일 관련 미술대회에서 입상한 그림을 달력에 실었는데, 자유한국당은 이 그림에 인공기가 그려져 있으며 인공기가 더 윗쪽에 있다고[13] 우리은행과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까지 엮어서 비난 시위를 하였다. 이에 대해 하태경 의원은 자유한국당을 종북피해망상증이라며 비판했다.[14]

2018년 1월 18일 문재인 정부가 가상화폐 작전세력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며 근거를 공개했다. # 국가가 국가 정책 발표 내용이 미리 알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상식인데 미리 누출되었다는 것이 작전세력이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40분 동안의 작전시간 부터 엠바고 해제까지 시세차익이 발생했는데, 이를 저가에 매수하고 국민들은 고점에 물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부의 엠바고 작전으로 국민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개미들의 등골을 빼먹었기 때문에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가상화폐 시장이 워낙 역동적인지라 40분 가지고 작전 운운하는 게 부당하다는 반론도 나왔다. 물론 진짜 작전세력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고 정부의 행정미숙을 지적하는 레토릭이겠지만 비유가 과도했다는 평도 있다.


6. 바른미래당 출범 이후[편집]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에 관련해서 노조의 잘못도 크다고 비판했다. '한국GM 노조는 지금 머리띠 동여매고 주먹 휘두를 때가 아니다. 무릎 꿇고 국민 앞에 반성해야 될 때다. 어제 GM노조가 노숙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군산지부 공관에서 밤샘투쟁하겠다는 것. 총파업 운운하고 있다' 라고 발언하였다. #

문준용심재철 자유한국당 국회 부의장과 정준길 변호사,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을 향해 80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 이에 하태경 의원은 "문씨 채용비리 문제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서 저를 허위사실로 고소했다가 이미 무혐의로 끝난 사안"이라며 "졌으면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페어플레이인데 이번엔 아들이 직접 나와서 또 고소를 한다"고 반박했다. # 다만, 이전의 고소 건은 형사소송인 반면 최근의 손해배상 건은 민사소송이라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2018년 7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주최한 2018년 혜화역 시위에 동조하며 시위대 요구를 들어주는 등, 친페미니즘 활동을 했다. 이후 욕을 엄청나게 먹자 지지를 철회했다.

10월 23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특례를 받은 모 선수가 봉사활동 일지를 조작했음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해당 선수는 2017년 12월 18일 모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날은 폭설이 내려 운동장이 하얗게 덮인 상황이었음에도 멀쩡한 잔디 위에서 봉사활동을 한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 선수는 "보고서를 정상적으로 제출했다"고 둘러댔다가 하태경에 의해 실명이 밝혀졌는데, 다름 아닌 장현수였다. 그간 그가 대표팀에서 보여준 납득할 수 없는 실수와 엮이는 등 공격이 거세지자 결국 26일에야 "실적을 부풀린 게 사실"이라고 입장을 번복했지만, 오지환 사건 등으로 스포츠 병역특례에 대해 민심이 돌아서 있는 상태에서 나온 최악의 헛발질이 되면서 11월 1일 무기한 대표팀 자격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하태경 본인은 이 사안을 처음 터뜨린 이후 "솜방망이 처벌은 안 된다"며 지속적인 압박으로 대한축구협회의 중징계를 이끌어냈다.

2018년 11월, 윤창호가 음주운전 뺑소니 차량에 치어 큰 부상을 입자, 윤창호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음주운전 적발 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법안인데, 이 법안은 자신이 소속된 바른미래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민중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단 반대표 1명도 없이[15] 전원 찬성하였다.

2018년 11월부터 페미니즘에 우호적이던 이전 행보와 다르게, 워마드여성가족부 등 페미니즘과 연관된 병폐를 지적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유튜브)

홍익표 바른미래당 비하 사건의 당사자가 되면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정준영 성관계 영상 불법 촬영 및 유포 사건 관련해 2019년 3월 13일, “여가부가 해야 할 일인데 하지 않아서 제가 대신 한다”며 2차 가해를 중지해달라[16]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과거 정준영의 '황금폰' 관련 제보를 한 포렌식 업체를 경찰이 불법적으로[17] 압수수색하는 것을 제지하였다. #[18]

2019년 4월, 김홍일 의원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조문하였고, "민주화운동이 색깔론으로 번지는 게 매우 안타깝다."라고 말을 남겼다.

일본 화이트리스트 논란 도중에 일본의 불화수소와 관련해서 제3국을 통한 북한으로의 밀수출이 드러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적대국들인 이란, 중국 등에도 불법수출했다는 자료를 찾는 등 많은 호평을 받아내고 있다.

2019년 7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의 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조사 결과 제작진들이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고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2019년 8월 31일에는 당당위와의 공조로 “그 성별로 태어나서”라는 이름의 젠더이슈 국회간담회를 개최한다. # 하태경을 필두로 바른미래당이 원내 당들 중 유일하게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당임을 고려하면, 3월에 있었던 '워마드의 언어폭력, 그 잔인함을 고발한다'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원내 당들의 무분별한 페미니즘 지지를 견제하고, 또 페미니즘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사연을 이번 간담회를 통해 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토론 참가자로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인 오세라비 작가, 젠더 이슈 전문 유튜버인 리나의 일상, 오명근 성범죄 전문 변호사, 시민단체 성갈등 해결연구소[19]의 전영 대표가, 사회자로는 당당위의 대표 문성호가 내정되어 있다.[20]

그리핀 사건의 주요 사건 중 하나인 부당한 임대에 대한 사건을 다뤘다. 어떤 네티즌이 하태경한테 직통으로 관련 얘기를 전달하였고, 하태경이 이에 응해주었다. # 라이엇 코리아의 중간 발표를 반박하는 게시문을 개인 페이스북에 기재하고, 디시인사이드 리그 오브 레전드 갤러리에 직접 인증글을 남겨 허술한 수사 내용과 정확한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12월 13일에 민변을 북변이라고 해서 민변 측이 명예훼손죄라고 제기한 고소고발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으로 기각되었다고 한다.

2020년 1월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1월 5일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가, 보수통합으로 미래통합당 소속이 되었다.


7.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시절 (21대 국회)[편집]


친박에선 유승민 그 이상의 더러운 배신자, 여권에선 미래통합당으로 기어들어간 그놈이 그놈, 새보수당 지지자들 일부에게도 당을 팔아넘긴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으며, 일부에서는 "반페미코인에 탑승했지만 정작 20대 남자들은 결집력이 약해 떨어질 것이다" 라고 하는 등 여기저기 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선을 통해 지켜낸 자기 지역구에서 유영민 전 장관을 여론조사 때부터 여유 있게 앞서나가더니[21][22] 21대 총선에서는 말 그대로 22.1% 차이의 압살을 해버리면서 여유있게 3선 고지에 올랐다. 부산 시내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덤.[23] 부산광역시의 다른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후보들이 사실상 초선인 민주당 후보들에게 진땀승을 거둔 반면에 조경태와 함께 단 둘뿐인 부산 압승을 이뤄낸건 덤. 반페미 - 청년층의 막강한 인기도,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을 거치면서 두 차례의 최고위원[24]/새보수당에서의 책임당대표를 지내며 수직상승한 체급, 21대 총선에서 친박 돌격대장급 거물들이 줄줄이 쓸려나간 미래통합당 상황이 맞물려, 소장파 중심의 개편에 있어 나름 핵심적인 역할(원내내표 등 당권)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오거돈의 성추문으로 인한 사퇴로 인하여 부산광역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선택지까지 손에 들어옴에 따라 21대 국회에서 정치적 성장을 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김종인 비대위의 기존 대권 후보들에 대한 견제에 힘을 실으면서 오랜 기간 보조를 맞춰왔던 유승민과 정치적으로 결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승민 본인은 김종인의 개혁 대상인 반면에 유승민계 의원들은 바른정당 시절을 거쳐오면서 청년층이 많이 쌓인데다 경제통들이 많다 보니 유승민계 자체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유승민이 지금 한 발 물러나는 대신에 당을 휘어잡을 수도 있으므로 아직은 김종인 비대위에 찬성한다고 결별을 말하기엔 이른 편이다.

5월 14일, 부산진구 갑서병수 당선인이 주선한 미래통합당 부산 국회의원 당선자 모임에서 차기 부산시당 위원장에 내정되었다. #

한편, 정의기역연대의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에 대해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윤미향 당선인은 국민을 바보 취급 하고 있다고 하면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인, 그리고 이들의 편을 들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기타 시민 단체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 또한, 이 사태를 친일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한 김두관 의원에 대해서 "NGO의 부당한 행위를 비판했다고 친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맞받아쳤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혁신도시 공공기관의 지방대 쿼터를 기존 30%에서 50%까지 확대할 구상을 밝힌 데 대해 "공정은 아예 쓰레기통에 내버렸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는 지역구인 부산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주장했던 내용인데 시당위원장인 하태경이 이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한 것이라서 지역 정가에서는 구설이 있었다. # 본인의 주 지지층인 20대가 공정성을 중시하는 점을 고려하여 한 발언으로 추측된다.

이명박·박근혜의 재판이 끝나면 사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알페스 공론화 사건에 대해서 공론화에 힘을썻다. 자세한 내용은 알페스 공론화 사건 참고.

2020 도쿄 올림픽이 취소되는 것과 관련해 e스포츠 중심 비대면 올림픽으로 전환하자고 SNS를 통해 1월 24일 주장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평화/친선/도약의 올림픽 정신을 잇기 위해 모두가 함께했으니, 이 위기도 극복할 수가 있다"고 전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 사례들을 제보받고 있으며,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메이플스토리 확률조작 사건에 대해 시민과 인터뷰까지 했으며, 이를 넥슨의 일방적인 사기범죄라고 칭하면서 넥슨을 질타했고, 이에 관련해서 국회차원에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을 통해 리니지 시리즈, 마비노기, 던파, 메이플, 모마를 5대 악겜으로 규정하고, 공정위 조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5대 악겜에 들어간 게임들 모두 확률형 아이템으로 말이 한번 이상 나온 게임들이다.

던전앤파이터 직원 권한 남용 논란이 터진후 넥슨을 소환해 강하게 질타했으며 넥슨측의 경찰 수사가 진행중이란 답을 듣고 철저한 조사및 재발 방지를 주문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주로 박형준 후보를 지원했다.[25] 투표 종료 후 출구조사에서 박형준이 앞서자마자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인터뷰가 SBS 생방송에서 통으로 짤렸다(...)[26] 그 대신, 끊임없이 노력해 온 20대 청년층이 결국에는 완전히 결집하면서 하태경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보답을 받았다.[27]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새롭게 결집한 2030 청년층을 끌어안기 위해 하태경 모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부산지역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대승을 거둔데다 당 내 정책 방향에서도 커다란 발언권을 가져갈 수 있게 됐으니 재보궐선거에서 두 당선자 다음으로 커다란 수혜를 입으면서 정치적 체급을 또 다시 불렸다. 지지층 일부에서는 이 참에 주호영 원내대표의 후임 원내대표로 선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선거 이후에는 남초 진영에서 계속해서 주장해오던 성범죄 무고 방지 법안, 일명 '송경진법[28]'을 발의하며 더 적극적으로 청년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2021년 6월 14일, 요즘것들연구소의 알페스 수사 의뢰 결과로 경찰에서 7명을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피의자는 모두 여성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하 의원은 "일각에서는 이대남(20대 남성)이 젠더 갈등을 부추기려고 알페스 논란을 억지로 만들어 낸 이른바 백래시라고 공격했다"며 "그러나 수사 결과가 입증하듯 알페스는 순수한 팬픽 문화가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라는 게 확인됐으므로 더는 알페스 가해자들을 젠더 갈등의 희생양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

6월 14일 JTBC 썰전 라이브에 출연했다.이번주 이내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말했고 6월 15일 유튜브 채널에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영상도 올렸다.

2021년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병사 핸드폰 사용을 비난했다가 이후 사과한 것을 두고 "'두 번째 전향'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친북'하다 '반북'으로 돌아선 게 내 첫 번째 전향이라면,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다 2030 쪽을 향하게 된 게 두 번째 전향"이라고 했다. 군대 부실급식 사건에 대해서는 "급식비를 올린다고 바로 식사 질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지금 군에 필요한 건 급식 증량이 아니라 메뉴 다양화일 수 있다"며 부대 식당 운영을 민간에 위탁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사병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 현재 사회문제로 부상한 젠더갈등을 완화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며 "군인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합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징병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모병제가 시행될 수도 있다"며 "여성도 사병이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커질 게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

소장파 답게 여당과도 협력하는 연구단체가 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고, 이동주 의원이 책임의원을 맡고 있는 소상공인정책포럼엄태영 의원과 함께 구성인원으로 있다. 유의동 의원과 함께 국회인권포럼의 공동대표[29], 한중차세대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22년 12월, 한국전력공사에서 군복무 경력을 승진 시험에서 인정하지 않겠고 한 것에 대해 "청년들이 뭐하러 나라에 충성하냐"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대책 없이 추진된 '남성 역차별 정책'은 사회적 비용만 늘렸다"면서 "제대군인법을 다시 발의하겠다"고 약속했다. #

한편, 같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이선옥 작가의 도서 <왜 이대남은 동네북이 되었나>를 선물했다. 책에 대해 "'이대남'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을 달았지만, 청년 남성의 이야기만 다루는 책은 아니다"라면서 "2030 공정세대가 어덯게 태어났는지, 무엇에 분노하고 격하게 반응했는지 사안별로 친절하게 설명한 세대연구서"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게임, 여가부, 할당제, 무고죄 등 의정활동 과정에서 궁금증 해소에 유용한 답안지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


7.1. 제20대 대선 출마[편집]


2021년 6월 15일, 국민의힘 현역 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 의원은 검찰총장 국민 직선제를 도입하고 법무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

7월 6일, 여성가족부를 젠더갈등을 조장하는 부서로 지목하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유승민 의원 역시 같은 공약을 내세웠고, 이준석 대표 역시 이에 찬성했다. #

8월 27일, 국방부가 집단면역 형성에 따른 마스크 착용 해제 실험을 추진한다는 보도에 대해 "병사들을 함부로 실험대상으로 삼지 마라"라고 비판했다. # 그리고 다음날에는 "병사 노마스크 실험 지시자는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며, "누군가의 귀한 자식인 병사의 건강과 안전 사항은 결코 정책 실험의 시범·연구 사례로 삼을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

9월 7일, 의정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4명을 공동 후원회장으로 영입했다. '윤창호법' 도입에 나섰던 김민진 씨, 북한군에 피살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 씨, 마린온 헬기 사고 순직장병의 외조부 김호웅 씨, 프로게이머 카나비로 활동하는 서진혁 씨 등 4명을 공동 후원회장으로 영입했다. #

9월 16일, 국민의힘 후보들의 첫 TV토론에서 "조국 수사가 과했다"는 발언을 했던 홍준표 후보를 향해 맹공을 펼쳤다. #

그러나 10월 8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2차 컷오프 예비경선에서 안상수, 최재형, 황교안 후보와 함께 컷오프 되며 대선 주자에서 사실상 탈락했다.

7.2. 윤석열국민캠프 합류[편집]



2021년 10월 27일 윤석열국민캠프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하였다. #

2021년 12월 11일, "n번방 방지법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전 검열을 강제화했다. 긴급 토론회를 개최해 관련 제도를 보완하는 입법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살리는 선대위 게임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인수위 직이나 당직을 맡지는 않았고, 의정활동에 전념했다.


7.3. 비상대책위원회 수립 논란 및 국민의힘/제3차 전당대회 국면[편집]


대체로 친윤계와 거리를 두면서도 이준석과 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

이후 2023년에는 천하람이 당 대표가 된다면 총선 압승이 가능하다며 간접적으로 천하람을 지지했다. #


7.4. 전당대회 이후[편집]


22대 총선에서는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면서, 자신의 지역구인 해운대 갑을 떠나 서울 지역에서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11월 27일 차기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였다. 하태경, '정치1번지' 종로 출마 선언…"수도권 승리 견인" 현재 같은 당 최재형이 현역 의원으로 있는 지역구이므로 경선이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한동훈 장관 역시 종로 출마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어, 만약 한동훈까지 종로 출마 의사를 밝힐 경우 종로는 본선 이전부터 이미 뜻밖의 흥행을 맞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빠른 생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86학번인데, 사실 이때 당시에는 이런 케이스가 흔하긴 했다. 본인 인터뷰를 보면 명확히 해명하진 않았지만, 본래 빠른 생일이 맞는데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그냥 7살에 학교에 들어간 걸로 보인다.[2] 이런 이유에서인지 하태경은 지금은 정반대편에 서있지만 한때 스승으로 모셨던 문익환 목사는 비난하지 않고 문 목사의 죽음은 종북세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3] 유시민은 썰전에서 하태경에게 본인의 영향을 받았으면 보수 정치인이 되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보수 정치인이 되었는지 물은 바 있다. 이에 대해 하태경은 북한 인권에 대한 정책을 하던 게 보수당이라서 그쪽으로 간 것이라 밝혔다.[4] 해운대구·기장군 갑/을은 을구에서 기장군을 별개의 선거구로 분리시켰으며, 남은 을구의 지역과 본래 갑구였던 일부 지역을 묶어서 해운대구 갑으로, 그리고 본래 갑구였던 지역의 대부분은 해운대구 을로 새로 편성되었다.[5] 자기 입으로 새누리당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라고 공언하고 다닌 바 있다.[6] 좌파 → 우파.[7] 이는 그가 물리학과 출신으로 현실보다는 유토피아같은 이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와 종교인처럼 티끌 없는 순수, 순결, 도덕성을 추구하는 절대주의 경향에서 나온 듯하다. 하태경이 80년대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정치와 사회에 실망해 학생운동과 주사파에 끌리게 된 것도 그렇고 북한의 실상에도 실망해 그 반동으로 중용을 잃고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북한을 반대하는 경향을 품게 된 것도 이런 중간이 없고 타협에 서툴러서 현실의 정치에는 부적합한 물리학도가 현실에서 이뤄지는 정치에 참여한 부작용이라고 보인다.[8] 사실 이건 하태경을 디스해서라기보다는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모욕한 것이 더 컸다. 탈북자들의 '변절' 대상은 당연하겠지만 북한이다. 임수경의 망언은 빼도 박도 못할 북한 옹호 발언이었다.[9] 인권에 관련해서는 특히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북한 인권에서 당시 야당에서는 적극성을 띤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할 폭이 넓지 않았음을 시사하기도 했다.[10] 조금 더 실제적이고 세부사항까지 포함해 이야기했는데, 유승민원내대표였던 시절에는 당 분위기가 조금 자유로웠지만, 친박이 주도권을 잡고 난 뒤로는 권위주의 분위기로 다시 변해 버렸다고 한다.[11] 원래 자신이 몸담았던 새누리당이 이름만 바꾼.[12] 사실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당시에도 이재용을 청문하면서 새누리당을 해체하겠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13] 묘사를 하면 통일나무가 태극기와 인공기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웃고 있으며 인공기가 조금 더 위에 있는 그림이다.[14] 참고로 원래 이전 대회부터 쭈욱 인공기 그림자체는 실려 있었고 그 중 수상작도 있다.[15] 다만 기권한 2명의 의원들은 제외.[16] 공교롭게도 위에서 보듯이 같은 13일에 진선미 장관은 2차 가해를 중지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참고로 시간은 하태경이 오전 9시로 더 빠르다.[17] 영상에 나와있듯 이례적으로 수색을 1박 2일 동안이나 진행하였고, 사건과 관련없는 일반인 자료까지 복사하고 있었다.[18] 제보도, 증거 수집 과정도 독수독과이론 사유가 되지만 예외를 인정해 특별히 수사허락이 된 사건인 만큼 증거 수집이 훨씬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예외라는 이름 하에 위법을 더 저질렀다간 한도 끝도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2차 가해까지 발생해 버린다면 수사기관이야말로 버닝썬 일당과 다를게 없어지기 때문.[19] 약칭 성해연. 대표가 동일인물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미니스트의 폭력을 기록하는 사람들(약칭 페폭사)이 명칭을 바꾼 것. 전영 대표의 언급에 따르면 시민단체로 정식 등록까지 완료됐다고 한다. #[20] 이들 중 오명근 변호사와 리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3월에 있었던 토론회에도 참여했던 바가 있다.[21] 여론조사 중에는 미래통합당 후보면서도 18~29세 지지율에서 민주당 후보인 유영민 장관보다 5~10% 앞섰는데 20대 국회동안 청년층을 위해서 노력해온 것이 어느 정도는 결과로 보답받은 셈이다.[22] 워마드 폐쇄법(하태경 최고위원(대표발의자)과 오신환 원내대표·유의동·지상욱·정운천·이혜훈),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 그리핀 사건 등등 게임, 방송에 일어난 사건에 개입하여 20대들의 호감을 샀다. 이후에, 민주당의 삽질로 20대 지지도가 계속해서 깎여나가고 통합당이 중도적 행보로 비호감 이미지를 일부 덜어내자 20대 청년들이 통합당측 지지로 상당 부분 옮겨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23] 득표율 2위는 같은 당 수석최고위원인 조경태 의원이다. 조경태가 지역 내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가진 인물이란 것을 고려하면 하태경의 득표율은 상당히 고무적이다.[24] 두번 다 당대표 다음가는 수석최고위원이었다.[25] 당연히 같은 당의 후보인데다 하태경 본인도 부산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것도 있다.[26] 짤린 인터뷰 내용은 당시 오른소리(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내 보궐선거 생방송 영상의 54분 20초쯤에 있다.[27] 렉카질만 하고 정작 해당 내용에 대해 발의한 법안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지만, 국회의원은 법안 발의 외에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건 해결을 할 수 있다. 하태경은 일단 한번 물은 이슈에 대해서는 국회 토론회 개최, 여론에서 사건의 심각성 언급, 그리고 국회의원의 힘을 활용한 조사 및 보도 자료 제출 등을 통해 해당 당사자들에게만 국한되어있던 사건들을 모조리 양지로 끌어올렸는데 이를 통해서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고, 나아가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한 첫 발판으로 만들었다. 즉, 본인이 스피커가 되어서 청년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이것도 정치인의 업무 중 하나다. 오히려, 청년층의 여러 사건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얇고 넓게 퍼져서 공론화를 하는 역할을 하태경이 맡고 해당 분야 사건에 대해서 전문성을 갖추고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는 의원들이 법안을 담당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도 하다. 게다가, 하태경은 본업이자 전문 분야인 북한 인권 관련 부문에 대해서는 법안 발의 실적이 부족한 의원도 아니다.[28] 여고생들의 허위 미투로 자살한 교사의 이름을 딴 법안이다.[29] 여담으로 서영교 의원도 여기 포럼 구성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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