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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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뉴라이트(New Right)는 대한민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기존의 올드라이트(Old Right)와 대비되는 신우파를 이르는 말. 영어의 신(new)+우익(right)의 합성어이다.
2. 설명[편집]
뉴라이트는 네오라이트와 뜻은 같으며 보통 한국인들은 뉴라이트 하면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생각하지만 뉴라이트는 원래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이룬 신보수주의에 근거한 사상이며 각국에 퍼져 있다. # 최초로 이 용어를 쓴 사람은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재직하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뉴라이트의 전신은 아이러니하게도 본래 과격한 학생운동을 했던 운동권을 주축으로, 과거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즉, 대다수가 과격 NL이자 실제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거나 몰래 방북했던) 주사파들이다.[1]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함에 따라 이론적 구심점을 잃게 되고 운동권들의 전향 선언이 잇따랐으며 90년대 후반부터는 1996년 연세대 사태와 1997년 프락치 오인 살해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주사파의 세가 대학가에서 완전히 꺾였다.
그래서 이들이 운동권의 해산과 함께 정치권으로 진출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운동권 일부와 이들은 주류 정치권에 편입시키길 거부했다.[2] 이때문에 이들이 이념을 전향하여 뉴라이트를 탄생시켰다.[3] 그래서 뉴라이트 인사 중에는 과거 운동권 출신의 주사파였던 이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 운동권 내부에서부터 해 왔으며 과거 공산권 운동가들의 전략이었던 벼랑 끝 전술과 당내 계파 싸움 이전투구를 일으켜 내부 분열과 지도부 장악을 노리는 극악한 패거리 정치질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이들의 방식이 매우 극단적인 이유는 자신들이 전향자라는 과거를 가진 불리한 입지에 놓여있기 때문으로 보인다.[4] 즉 인정 투쟁이라는 것. 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세를 키웠는데 이는 기존의 86 세력 중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이 이들 외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보니
좌파 성향 사이트는 당연하고 신흥 우파 성향이 많은 야갤에서도 이들을 위장보수라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결국 2021년 기준으로는 이 뉴라이트 꼴통들 때문에 정치, 사회 갤러리는 사실상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이라고는 1도 없는 극우 유튜버들 떡밥이나 갖고 노는 하꼬방으로 전락하고 나머지 그나마 정치에 더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갤러들은 부동산 갤러리나 자동차 갤러리 등으로 흩어진다.
뉴라이트 이전에도 이재오, 이명박, 이우재 등 과거 민주화 운동가들이[5] 특히 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 보수 진영으로 전향하는 사례가 꽤 있었지만, 뉴라이트가 이들과 다른 점은 그래도 보수정당 개혁해보자고 중도~중도우파 정도로 전향한 이들과 달리 뉴라이트 세력은 이념이나 사상부터가 보수를 넘어 극우화되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극우'가 된 현실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성향이 어느 정도 갈리는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지만[6] 동시에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정말 한국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국에 자학적인 역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심하면 한국은 그냥 인종 계열부터가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 볼 생각도 없다는 점에서 정치 발언이라고 해주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뉴라이트계의 대표격인 이영훈도 2019년 저서 반일종족주의에서 한국에서 특정 시기 사기 범죄 비율이 높다[7] 고, 한국인은 거짓말 잘하는 민족이라고 싸잡아 일반화시켜 비하한 바 있다. 그래서 위안부나 강제 징용도 거짓일 확률이 높다는 논리까지 전개되면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다.[8] 특히 조선을 구제불능의 국가처럼 정의하여 일제의 지배가 없었다면 근대로 발전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는 정도로 폄하하고 있다.[9] 이에 대해 그래도 이영훈은 제국주의 비판론자에 가깝다고 이 책은 다른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과 함께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기에 이영훈 본인만의 주장이라 보긴 어렵고, 이영훈 평소의 행적이나 발언을 보았을 때 문제되는 발언은 타 집필가들의 의견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있으나, 애초에 이 역시 추론적 주장에 불과하고 그 책의 대표 저자가 이영훈인 이상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 떠나 이영훈 자체가 이승만학당 교장으로 후술되어있듯 모순된 주장을 많이 한다. 게다가 이영훈은 본인 전문분야도 아닌 세종대왕을 뜬금없이 건드려서[10] 일뽕 좀비들이 해당 서적을 쿠란이나 마오쩌둥 어록 대하듯 신성시하며 야갤 같은 대형 갤러리에서 이영훈 책으로 역사 배운 자신들의 좁디좁은 식견을 늘어놓는데, 같은 국까 성향이라도 야민정음이라는 대형 밈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한글만큼은 일종의 성역으로 간주하는 야갤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일뽕들의 깽판 때문에 이영훈을 아주 싫어한다.
3. 역사와 조직[편집]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내세우자"라는 주장과 일제강점기에 대해 우호적인 주장을 하는 인물 중 상당수가 뉴라이트 소속이기 때문에 이들을 수구 꼴통=조상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신이라고 까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은 이들 중 상당수가 본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다.
진보 언론인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경향신문에서도 뉴라이트의 뿌리를 주사파에서 근원을 찾는다. #,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 386 출신으로 극좌에서 전향한 세력이 뉴라이트 활동의 주축으로 우파 세력에서도 뉴라이트는 전향한 주사파 386세력이 주축이기 때문에 우파 진영에서도 공격을 받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올드라이트)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다.
뉴라이트의 대표 이론가인 안병직[11] 은 경남 함안 출신의 경제학자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 교수이며, 과거 식민지반봉건사회론으로 진보학계를 대변하다 '중진자본주의론'과 '캐치업 이론'으로 이동하면서 우파 사상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2005년 일본에서 귀국한 뒤 '뉴라이트재단을' 창립해 좌파 진영과 사상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김문수·이재오·박형준·차명진·임해규 전 의원 등 한나라당 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사상적 스승’으로 평가되는데, 이들은 안 교수를 한나라당으로 모시기 위해 공을 들였고, 그는 2007년말 보수정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13대 이사장직에 취임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산업화 단계에 이어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화가 그것이다.”고 했으며, 안 이사장의 캐치업 이론은 MB노믹스가 강조하는 세계화의 이론적 토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지지하며 "상호주의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안병직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 2008.04.25.
2006년 뉴라이트전국연합 정책실장 등 '전향 386' 인사 8명은 기자회견을 에서 "일심회 간첩단 사건은 북한과 연계된 주사파 운동세력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건재함을 보여 준 것" 이라고 밝혔다. 주사파 운동권으로 활동하다 전향한 386이라고 밝힌 이들은 성명을 통해 "과거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대한민국의 전복을 추구했었기에 오늘날 국가가 직면한 위기와 이념적 혼돈에 책임을 느낀다" 고 자성했다.
초기에 뉴라이트를 표방했던 건 신지호 의원[12] 을 주축으로 하고 안병직 교수[13] 를 수장으로 하는 뉴라이트 재단이다.
그러나 그 직후 김진홍[14] 목사를 중심으로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생겨나 한동안 뉴라이트 재단과 마찰을 겪다가 09년 6월 16일 모든 걸 포기한 뉴라이트 재단이 단체 이름을 시대정신으로 교체하였다. 최근에는 지지 세력을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근혜 전 대표로 갈아타는 듯하지만 아직 확실한 변화는 없다.[15] 2002년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생겨난 바른사회시민회의도 뉴라이트 계열이다.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
운동권답게 본인들끼리 계파갈등을 하기도 했다.#
3.1. 초기 역사[편집]
뉴라이트의 기반은 1998년 김영환, 홍진표, 한기홍[16] 등 NL출신 전향파를 주축으로 한 <시대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김영환 등 초기 전향파들은 극좌나 극우도 아닌 '새로운 운동 모색'이란 차원에서 정당화했고[17] , 이들은 박정희식 '국가주의 보수' 대신 기업과 시장의 자율을 믿는 '서구식 자유주의'를 내세웠다. 더 나아가 북한 체제도 사회주의랑 거리가 먼 봉건체제로 규정하며 기존 국가주의 보수들이 '북한=섬멸대상'으로 본 거랑 달리, 이들은 북한 정권과 민중을 분리해 북한 주민들을 돕자는 '북한민주화운동'을 제창했다.[18] 처음에는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해 진보 진영의 참여를 예상했으나,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충돌되어 점차 성향이 우경화되기 시작했고, 2002년 16대 대선으로 노무현이 당선된 이후부터 대다수 전향파들은 확실히 보수로 자리를 잡았다.
NL전향파들이 처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4년 11월 23일,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은 보수 인사들의 주목을 받으며 "수구좌파와 수구우파가 주도하는 정치는 끝을 고해야 한다"고 하여 좌-우파 모두에 대해 전면적으로 투쟁을 선언하며 새 전기를 맞이했다.[19] 이 시점에서 '새로운 사회운동 모색'이란 초심은 사라지고 보수화만 남았다. 2005~2006년 들어 '뉴라이트' 이름을 내건 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정치에 투신했고, 2007년 17대 대선을 즈음해 이명박 후보 지지로 자리잡았다.
3.1.1. 주체사상과의 연관성[편집]
결론부터 말하면 종북주의자 시절의 전체주의적 사상을 간직한 채 친일반민족행위 옹호와 극단적인 반북으로 방향만 돌아선 사람들이 바로 뉴라이트다. 겉으로 보이는 성향만 다를 뿐 근본적인 형태는 똑같기 때문에 문제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만 갈아끼웠을 뿐, 하드웨어는 그대로인 사람들이다.
뉴라이트의 사상적 뿌리인 안병직은 원래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연구자였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마지막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였다는 김수행 전 교수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안병직이었는데, 그런 후에 안병직 본인은 뉴라이트가 되었다. 그 안병직의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80년대에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정착되고, 낙성대연구소의 이영훈 등으로 이어진다. 90년대 초부터 개신교 우파나 전경련, 조선일보 류근일 등과 손잡고 보수 운동이 될 때 전향한 NL들도 합류한다. 다시 말해 뉴라이트의 이념적 뿌리는 명확히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뉴라이트는 대부분 80년대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김일성을 찬양하고 주체사상 체제로의 통일을 추구하다가, 90년대 들어와 소련과 동구권 붕괴를 지켜보고 북한 체제의 실상을 알게 되고 나서 정반대 방향으로 전향한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다.[20] 그런데 이들이 겉으로는 전향을 했다고는 하지만 주체사상적인 사고회로 자체는 전혀 벗어난 것이 없어서 다음과 같은 뉴라이트만의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단순히 극과 극이 통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사학에 근거를 둔 듯한 발언을 자주 하는데다 실제로 뉴라이트 인사들 중에도 경제사학 전공자가 많아 황당한 주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낚이고는 한다. 당장에 국정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서도 뉴라이트 측의 저자들을 보면 대부분 경제학자 내지 경제사 전공자들이었다. 그리고 방법론적 관점에서는 과학적 방법론이나 실증주의를 강조하며 '기존 좌파들'[21] 의 주장은 이념적이며 종교적일 뿐인 유사과학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22] 사실 이런 식으로 마르크스경제학이나 나아가서 인문학 전반을 까는 것은 흔한 레퍼토리이긴 한데 이들이 대중에 "사회과학 중에서 가장 실증적인 편"이라고 알려져있는 경제학을 좋아하는 것과 통한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엄연히 경제학, 그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상 연구자였지 전문적인 역사 연구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만들었던 국정 교과서가 온갖 오류와 모순 투성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아울러 2019년 현재에도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사들이 세계사에 관한 심각한 오류(제국주의 역사상 식민지배 국가에 대한 피해 소송이나 보상이 제기된 바도 없고 이루어진 바도 없다는 등)가 섞인 발언들을 마구 하는 것도 이들이 세계사에 대해 상당히 무지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마르크스주의 색채가 강하게 남았는데, 마르크스주의에서 근대 자본주의 다음 단계를 사회주의나 미래 공산주의라고 주장한 점, 공산주의 국가들이 기존의 역사와 단절을 선언하는 점[23] 을 감안하면, 냉전이 소련의 패배로 끝나자 뉴라이트 계열에서 공산주의가 실패했으니 근대 자본주의를 인류 문명의 최종단계로 규정하며 확실한지 논란의 여지가 크지만 근대 자본주의를 한반도에 들여온 것처럼 보이는 일제강점기를 숭상하거나, 대한민국 이전의 역사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3.2. 조직[편집]
4. 특징[편집]
뉴라이트는 2005년도를 기점으로 동아일보의 기획기사를 통해서 탄생한 대중주의적 보수운동이다. 핵심적인 특징은 뉴라이트가 공격했던 올드라이트는 반공주의를 유일한 이념으로 삼는다면 뉴라이트는 그런 규정과 다르다는 것이다.
뉴라이트 내부에도 온갖 스펙트럼이 결집되어 있기에 획일적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올드라이트와 구분되는 점이 있다. 올드라이트의 경우에는 이념적으로 엄밀성이 떨어지며 빨갱이, 종북 등의 표현을 애용하면서 색깔론이 가미된 냉전적인 반공주의를 추구한다. 올드라이트 내부에는 한국민주당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했던 극우 반공주의적 계파와 박정희 이래로 권위주의적 군부를 선호하는 극우 반공주의적 계파가 존재했다. 다만 이들은 뉴라이트 운동 이후 사실상 하나로 통합되었다.
허나 뉴라이트는 소위 뉴라이트 사관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수정주의적 사관을 제시했는데, 식민지근대화론, 1948 건국론, 이승만-박정희로 연결되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면서 숭배한 것에서 과거의 이념적 특성의 잔재를 못 버렸다고 평가받는다.
좌우를 떠나서 올드라이트가 반공보수라면 뉴라이트는 시장보수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자유지상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하며, 친대기업적 관치경제, 그러니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긴 개입하는데 그 목적이 '빈곤과 실업 같은 자본주의의 폐단을 어느 정도 완화해 민중의 불만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을 예방'하고 '경제의 형평성을 강화'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정부가 '대기업을 살리고 이들의 기득권을 굳혀 주기 위하여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경제'만 옹호하는 왜곡된 경제적 자유주의라 규정함이 적절하다.
5. 사상[편집]
뉴라이트는 고유의 뉴라이트 사관과 뉴라이트 경제관으로 특징되어지는데 경제적 자유주의와 핀트가 어긋난 뉴라이트 경제관으로 인해서 시장보수로 불린다. 대부분은 뉴라이트 사관에 기초해서 비판한다.
5.1. 뉴라이트 사관[편집]
5.1.1. 조선에 대한 폄하와 권위주의 독재에 대한 이중적인 찬양[편집]
원래 70, 80년대 유신정권, 5공 시기에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같은 독재자임에도 이승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놓고 깠다. 이승만을 만악의 근원으로 상정하여 자신들의 독재를 정당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이승만의 독재와 자유당의 부패로 나라가 혼란스러웠는데 이를 무능한 야당이나 데모꾼들에게 맡길 수는 없으므로 근대적으로 조직되고 교육받은 집단인 군부가 나라를 이끌어야 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80년대까지 이승만은 좌우 대다수에게 욕을 먹는 처지였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여기서 자신들의 전향하기 전 김일성의 자리에 이승만을 앉혀서, 이승만을 국부, 건국의 아버지 등으로 평가할 뿐 아니라 이승만에 대한 비판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장까지 제기하게 된다. 근데 정작 건국절 논란에선, 1919년 건국을 주장한 이승만의 주장과 달리 1948년 건국을 고수한다.(...) 일부 세력은 박정희식 국가주의를 찬양하기도 하지만, 뉴라이트는 일단 기본적으론 군부독재보단 민간 독재자라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승만을 더 찬양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06년 11월에 4.19를 학생운동, 5.16을 군사혁명으로 표현한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시안'이 공개되자 파문이 일었고, 동월 30일 서울대 교과서포럼 심포지엄에서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시민사회와 민주화 토대로 해석하는 식으로 발언하자[24] , 4.19 관련 단체 회원 50여 명이 해당 발언에 항의하며 단상을 점거해 회의가 중단되었다.
아울러 뉴라이트 관련자들은 인권을 말하면서 조선을 폄하하고, 정작 그러면서 인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일본 제국을 옹호하고 이승만과 박정희는 또 열렬하게 찬양하는데 이 또한 모순이다. 한 예로 뉴라이트의 거두인 이영훈이 세종대왕을 가리켜 노비종모법으로 노비를 양산하는 등[25] 노비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느니 기생, 공녀를 만들고 수령고소금지법으로 백성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느니 하던데, 그런 식이면 왜 뉴라이트들은 이승만을 찬양하는가? 이승만 정부 시절 보도연맹 학살 사건[26] 이나 4.3 사건 진압을 명분으로 한 민간인 학살로 인해 수십만 명의 무고한 국민들이 대량학살을 당한 일이야말로 잔인무도한 인권 침해가 아닌가? 심지어 보도연맹을 만든 사상 검사인 오제도조차 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정부가 피해자들한테 사과해야 하는 일이라고 밝혔을 만큼 잔인했는데 말이다.
뉴라이트들이 정말로 인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신분제가 당연하던 550년 전의 전근대 시기 세종을 들추지 말고[27] 이미 현대 사회가 되었던 70년 전의 이승만 정부[28] 시절 발생한 보도연맹 학살사건 같은 국가 폭력부터 신랄하게 비판했어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들은 세종대왕은 욕하면서 이승만은 열렬히 찬양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이승만 정부 시절 벌인 보도연맹 학살은 외면하거나 국가 체제 수호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정당화한다. 인권의 개념이 없던 전근대 왕조의 인권침해는 근대적 인권관념으로 비난하면서 인권의 개념과 중요성이 커지던 현대 시대 정권의 인권침해는 이중잣대를 들이대가며 전근대적인 성역화와 숭배심리로 옹호한다.[29] 이들은 이승만, 박정희를 국가의 아버지처럼 여기고 숭상하며 그당시 문화에 영향을 받은 기득권층의 권위주의를 중시하는데 이런 사상이야말로 그들 주장대로라면 조선시대식 삐뚤어진 유교사상의 잔재일 뿐이다.[30]
차라리 노비는 80세 이상이 되면 자동으로 해방되거나, 재산을 모아 나라에 바치면 노비 신분을 벗을 기회라도 있었으며, 공녀나 기생들 중에는 중인 취급을 받거나 명나라 황제의 눈에 들어 금의환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과 군사정부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냥 보도연맹에 가입한 경력[31] 만으로 빨갱이가 되어 군인과 경찰과 반공단체들이 쏘아대는 총탄에 무참히 죽어가야 했고, 삼청교육대나 선감학원,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인원들은 조선시대 노비들 이상의 강제노동과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다. 게다가 이들 정권 하에서는 일본군 부역자들에 위해 한국군 위안부가 운용되어 과거 일부 삼패 기생 혹은 공녀가 그랬던 것처럼 성노리개 역할을 강요받았다. 이토록 끔찍한 만행을 벌인 이승만과 군사독재를 찬양하는 뉴라이트들이 세종대왕을 가리켜 노비나 공녀,기생들 인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하는 건 그 자체가 황당무계한 모순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들이 조선을 비판하는 것은 정말 인권을 소중히 여겨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 한국인의 민족성을 폄하하고 이승만과 군사독재를 띄어주기 위한 비판일 뿐이다. 게다가, 인권을 정말로 중요시 여기는 자들이라면, 일본 제국의 만행들부터 비판해야 옳다.[32]
또한 뉴라이트 관련자들은 민족주의는 매우 혐오하는데, 이것도 모순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토록 민족주의를 혐오하면서도, 정작 일본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의 민족주의에 호응하고 인권을 탄압했던 친일파는 옹호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는 혐오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승만은 독립운동가 출신이었으며, 이들 중에서도 특히 지독한 혐일에 "한국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명백히 우수하다"는 민족주의 발언을 남겼던, 한마디로 뉴라이트가 가장 혐오할 만한 사상의 소유자였다. 그런데도 뉴라이트들은 진정한 독립운동은 이승만의 외교 독립운동 하나밖에 없다는 듯 주장하며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죄다 폄하하니 가관이 따로 없다.[33]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란 말이 있어보이는지 신자유주의를 떠들지만, 정작 박정희나 전두환은 국가자본주의로 신자유주의와는 방향성 자체가 달랐다. 이승만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인 농지개혁법은 오히려 소작농 등의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었다. 박정희 역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등[34]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 정책을 지향했으며 현실적으론 김대중 정부 들어서야 완성되지만 의료보험 등의 복지 정책도 관심이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는 아무리 대기업 회장이라도 정부에서 까라면 까야 했으며 말 안듣고 반항할시 온갖 압박과 규제가 들어오는 냉혹한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비판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인 측면만 따지면,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절의 정책이 훨씬 맞는 부분이 많았다.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선 찬양하지 않는 게 아이러니하다.
사실 뉴라이트는 미국식 세계화(신자유주의, 탈민족주의)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집단에 불과하며, 한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다.[35] 그 증거로 뉴라이트는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를 혐오하면서 정작 그 반일 민족주의에 입각한 정책(평화선)을 펼쳤던 강경한 반일 민족주의자인 이승만을 찬양한다. 또한 뉴라이트는 자유무역을 찬양하면서 정작 집권 내내 외제품을 금지하고 국산품 애용 등 보호무역 정책을 펼친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한다. 그래서 뉴라이트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뉴라이트들이야말로 한국사를 멋대로 왜곡한 엉터리 동인지를 쓴다고 조롱하기도 한다. 이는 뉴라이트가 미국식 세계화는 절대선이라고 믿고, 그 미국식 세계화를 이승만과 박정희가 실시했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 아래 잘못된 잣대로 한국 현대사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6.25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역할부터 미국과의 외교관계까지 미국의 영향력과 우호를 배제할 수 없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한국을 계륵처럼 바라보는 미국 정치계의 시선도 제법 있다. 실제로도 미국이 동아시아 정세에서 자신의 최우선 파트너는 일본이기 때문이다.(물론 일본도 결국 미국의 필요에 따라 활용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한국 현대사를 살펴보면 미국이 항상 한국을 우호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본 것도 아니며 여차하면 무책임하다싶을 정도로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고 갖은 애를 쓴 적도 있다.[36] 미국은 한국의 혈맹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고립주의를 원하는 세력은 한국을 미국에 기생하는 나라로 근거없는 비하를 일삼기도 한다. 결국 미국과의 관계도 감정과 명분을 아주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냉정한 현실 인식과 한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해야하는 외교인 것이다. 뉴라이트는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를 그토록 비토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미국에 대해 조선 시대 유학자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맹목적인 추종과 사대를 일삼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일제와 이승만,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은 그저 반공을 내세운 독재자를 숭배하고 그 이전의 한국인들을 폄하함으로써 과거 공산주의, 주체사상에 빠졌던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열등감의 방어기제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5.1.2. 식민지 근대화론[편집]
식민지 근대화론자이자 뉴라이트 사관으로 유명한 이영훈 교수의 글은 다음과 같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가 조선을 지배한 목적에서부터 기존의 수탈론과 이해를 달리합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기본 목적은 이른바 ‘영구병합’이었습니다. 일제가 남긴 통치사료를 보면 ‘영구병합’이란 말이 지겨울 정도로 자주 나옵니다. 영구히 일본의 영토로 삼겠다는 것이지요. 일본사람들은 여기에 20~30년간 살다가 돌아가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영구히 살려고 왔습니다. 이 점을 똑바로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구병합’이란 거창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조선의 사회와 경제를 일본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야지요. 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그대로 두어서도 안 되지요. 그럴 목적에서 일제는 그들의 법과 제도와 문화를 조선에 이식하였습니다. 한갓 수탈이나 자행하여 민심을 잃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이러한 프로젝트에 매달렸던 것이 일제의 조선 지배 35년간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1912년에 공포된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이란 법을 들 수 있습니다. 그때 시행된 일본의 민법은 지금 대한민국의 민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법을 대조하면 조항의 내용과 순서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근대 민법의 핵심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에 대해 법학자들은 ‘사적 자유의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국가나 다른 사람에게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다는 뜻이지요. 그렇다고 일제가 조선에다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원리를 도입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본 자신이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이전의 단계였지요. 그들이 만든 근대국가는 가족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정치원리에 기초한 천황제 국가였습니다. 일본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원리를 실천하는 것은 미국에 의해 천황제 국가가 해체된 1945년 이후부터이지요. 그렇지만, 일제는 천황제라는 정치체제하에서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의 원리로서 근대적인 민법을 서유럽에서 도입하여 자기류로 정착시켰습니다. 그 서유럽 기원의 민법이 1912년 조선민사령을 통해 조선에 이식된 것입니다.
(중략)
흔히 사람들은 일제가 토지와 식량을 수탈했다는 교과서의 서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그렇다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자는 말이냐”라고 불쾌해합니다. 저는 제국주의 비판의 논리가 그렇게 단순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는 수탈 여부로 비판할 것이 아니지요. 수탈 여부와 무관하게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름 아니라 인간 본성에 반하는 체제가 제국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다른 누구보다 명확히 한 사람이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분이신 한용운 선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인 검찰의 심문에 대응하여 한용운 선생이 작성한 ‘조선독립의 글’이란 문장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자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변하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요. 자유가 없는 사람은 시체와 다를 바 없지요. 인간생명의 본질은 자유입니다. 한용운 선생이 일제의 조선 지배를 비판하고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한 것은 바로 이자유의 논리에서였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한용운 선생의 글을 읽고 일본인 검찰은 마음으로 승복하고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입니다. 그에 비출 때 일제의 조선 지배체제는 모순에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각종 세금은 거두어 가면서 정치적 권리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 일제의 지배체제였습니다. 그런 모순은 어차피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모순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책은 조선인을 모조리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는 것입니다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제2장에서 썼습니다만, 차별을 받는 가운데 조선인들은 그들이 하나의 운명공동체인 민족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민족의식은 역설적으로 일제의 동화교육을 많이 받은 지식인일수록 더욱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동화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의 방책은 조선인이게도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제는 1942년 조선의 청년들을 일본군대로 동원할 계획에서 1946년부터 조선인의 참정권을 인정할 방침을 세웁니다. 일제가 일찍 패망하는 통에 이 방침은 공수표가 되었습니다만, 실제 실현되었더라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지는 짐작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제의 조선 지배체제는 조만간 해체될 수밖에 없는 모순에 가득 찬 것이었다고 보지요.
그런데 일본인 검찰을 감복시킨 한용운 선생의 자유정신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저는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다”는 선생의 외침에서 문득 미국 독립혁명의 사상가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연설을 떠올렸습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바다를 건너 온 정신이었습니다. 전통 성리학의 정신세계에서 그런 인간 자유론이 생겨날 여지는 별로 크지 않습니다. 이 점에 특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용운이란 당대의 지식인은 더 이상 전통 성리학의 세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의 정신세계는 인류 보편의 자유 가치를 찾아 동서양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의 제국주의 비판이 일본인 검찰에게 경의로 받아들여진 것도 그가 이미 세계인이었기 때문이지요. 그 한용운 선생의 정신세계에서 저는 제가 앞서 이야기한 ‘문명사의 대전환’의 가장 훌륭한 예를 발견합니다. 중화제국이라는 문명권의 일부로 위치했던 조선 문명이 자유를 인간의 본성으로 알고 개인을 궁극의 실체로 인정하는 서유럽 문명권으로 포섭되어 가는 그 대전환 말입니다. 제가 식민지기를 이해하고 또 일제의 지배체제를 비판하는 시각은 바로 그러한 ‘문명사의 대전환’입니다. 그러한 시각을 가리켜 세간에서는 흔히들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그 진의가 올바로 이해되지 않은 가운데 편견에 가득 찬 비판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에 대해 해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이야기」 中
이 글에서 이영훈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허나 이 부분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매우 약하게 주장하고, 1번과 2번 주장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게 뉴라이트의 현실이다.2. 조선 수탈론은 과장되었다.
3. 그러나 수탈 여부를 떠나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며 식민지 체제도 모순으로 가득찬 불합리한 존재였다.
일단 식민지 근대화론 연구에 일본 토요타재단의 지원이 있어서 태생적 논란이 존재한다.# 다만 토요타재단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아름다운재단 및 희망제작소도 후원을 했던 적이 있어 토요타 재단의 지원만 가지고 일본제국주의 옹호를 하는 건지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내용적으로 보면, 기존 학계의 일본의 식민지 수탈 연구가 과장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37] 지적을 하는 영역을 넘어 아예 일제가 수탈이 아니라 한반도에 혜택을 베푼 것이고 현대 한국의 경제성장에도 기여했다고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경제사학계에서는 일제강점기 수탈 관련 연구가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한 일부 학자들도 그럼에도 그것은 조선 인민들에겐 고통이었고,[38] 일제 당시 세운 기반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온전히 이어지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게 주된 입장이었다.[39] 그러나 뉴라이트의 경우는 일제의 수탈이 과장되어 있음을 주장하다 못 해 아예 일뽕으로 수렴해버렸다. 실제로 뉴라이트 극우들은 일본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도 좌파의 반일선동이라고 우긴다.
이는 주류 학계에서 보기에는 기존에 일제강점기에 관련한 어떤 주장을 하던 학자가 보든 간에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인데, 일단 뉴라이트 측의 주장 중에 "2차 세계대전 때의 한반도가 집중적인 수탈의 대상이 되었음은 사실이 아니며,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당시의 총력전에 동원되는 수준은 차이가 없었다"는 주장만 해도 그렇다. 이것이 설령 사실이라 해도 이는 당시의 일제가 스스로의 영토 전역을 쥐어짜지 않고서는 전쟁을 수행할 국력이 없었다는 의미로, 오히려 일뽕에 반하는 근거일 뿐이다. 또한 해외의 사례만 들어봐도 뉴라이트의 입장은 굉장히 기이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가령 오스트리아만 해도 40년대 초반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를 "국가합병이었다"라고 가르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독일에 합병된 것을 히틀러에게 감사하자는 오스트리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고종과 이씨 왕족들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들의 식근론을 반영하면 조선은 자체적으로 근대화할 수 없는 파탄국가이며 일본에 식민통치를 받아야만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으므로 고종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 또한 비판할 만한 상황이 아닐 것이다.
이들이 보여 주는 이중적인 면모 중 대표적인 건 일뽕스러운 면모와 소위 "건국의 아버지" 운운하는 이승만 찬양, 이 두 가지 모습이 존재하는 것... 이승만은 본인이 친일파들을[40] 기용하는 등의 큰 과오가 있으나, 이는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이 현실적 위협인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택한 고육지책에 가깝다. 이승만 본인 성향은 반일 그것도 극반일이었고, 때문에 독도 점유 역시 이승만 때 일어났고, 일본과 수교가 이루어진 것도 이승만이 하야하고 나서 5년 뒤의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노발대발하며 일본의 의도가 뭐든간에 일본군이 한반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북한이 아닌 일본에게 총구를 겨누겠다고까지 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한국이 북한과 전쟁 중인 틈을타 일본은 독도를 무단으로 점령할려고 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비열한 수작은 독도수비대에 의해 꺾였다.
또한 반공 우익이라는 타이틀에 모순되게,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기 위해[41] 북한의 50-70년대의 발전에 대해 과하게 집착한다. 결국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경제는 망하고 세계 최빈국으로 몰락했음에도 말이다. 사실 이들은 처음 정치활동을 할 때 북한의 정치에 먼저 심취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5.1.3. 반민족주의?[편집]
뉴라이트 관련자들의 공통적인 성향이 더 있는데, 일종의 반민족주의 성향이다.[42] 이는 다인종/다민족이 섞여사는 미국 특성상 강한 민족주의 자체를 좋게 보진 않는 미국식 세계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뉴라이트를 찬양하는 한국인들이 민족주의를 혐오하는데, 아이러니한건 한국에서 반일 민족주의가 가장 강하게 나타났고, 교과서에 일본이 가장 악랄하게 나왔던 시절이 이승만 정부와 군사독재 정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뉴라이트 관련자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찬양하는데, 이는 그들의 민족주의 혐오와 모순되는 일이다. 따라서 그들이 정말로 민족주의를 혐오한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누구보다 더 앞장서서 맹렬하게 비판해야 한다. 즉, 스스로 모순된 논리에 빠진 것도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는 셈. 여기에 하나 더하자면, 뉴라이트 자체가 이미 2010년대를 지나며 세력이 약화되어 단체적으로는 무의미해진 측면이 있으나, 2020년대 들어 뉴라이트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네티즌들 중에선 다수가 반일 민족주의에 대해선 비판하면서 정작 중국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는 더 조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이 독재 등 제도적으로 비판받을 점은 분명 있으나, 제도를 떠나 중국인들에 대한 비속어도 남발하는거 보면 과연 이들이 진짜 반민족주의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느냐부터가 의문. 게다가 자기들 맘에 안들면 죄다 친중 드립을 치면서 정작 노태우, 박근혜처럼 친중 정책을 취한 보수 정치인들에 대해선 전혀 지적하지 않는 인지부조화도 보이고 있다. 어버이연합이 오성홍기에 절하던 시절은 다 까먹은 모양.
한 예로 이승만은 반일 민족주의에 입각한 정책인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해군을 동원해 독도 영해를 넘어온 일본인 어부들 4천 명을 강제로 체포해 잡아가두고 그 과정에서 40명의 일본인 어부들이 사망했다. 뉴라이트가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를 정말로 반대한다면, 먼저 이승만의 독도 평화선 선포와 그 과정에서 어부들의 강제 감금, 미국이 직접 요구한 일본과의 외교 관계 수립 거부[43] 등을 혹독하고도 가열차게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뉴라이트는 이슈화를 거부하며 굳게 침묵하고 있다. 심지어 뉴라이트를 추종하는 한국의 일부 넷우익들은 이 이승만 라인의 선포와 그에 따른 일본인 어부들의 사망에 대해서 이승만 본인이 아니라 엉뚱하게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에 책임을 돌리는데,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이승만 본인이 한국 정부의 대표고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그가 해군에 절대로 일본인 어부들을 체포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면 저런 일이 벌어졌을일이 없다.
뉴라이트가 멋대로 망상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승만 본인은 철저한 반일 민족주의자였고 그런 신념을 집권 이후에 전혀 꺾지 않았다. 만약 이승만 본인이 살아서 뉴라이트의 탈민족주의 담론을 듣는다면, 크게 화를 내며 반발을 할 것이다. 이승만 본인은 하나의 나라에 하나의 민족만 있어야 한다는 일국일민주의를 부르짖었고 실제로 그 때문에 혼혈아들을 모두 해외로 강제 입양을 보냈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이 부분에 대해 얼마나 심도있게 비판을 하던가? 민족주의가 나쁘고 그래서 탈민족주의를 외친다는 뉴라이트는 왜 이승만의 민족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가? 비유를 하자면, "나치즘은 나쁘지만 히틀러는 위대한 영웅이다."라는 주장처럼, 민족주의는 나쁘다면서 정작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던 이승만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찬양하는 뉴라이트의 태도는 터무니없는 모순일 뿐이다.
일부 뉴라이트 관련 잡지들은 이승만이 무슨 탈민족주의자였던 것처럼 선전을 하지만, 이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평화선을 선포하고 해군을 동원해 4천 명의 일본인 어부들을 체포하고 그 와중에 44명의 일본인 어부들을 죽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는 일본에 대한 테러를 계획할 만큼 강경한 반일 민족주의자였던 이승만을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짓이자 이승만이 강경 반일민족주의자라는 사실은 뉴라이트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이다.
과거에 이승만이 친일파라는 오명을 살 때는 이승만이 친일이라는건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며 이승만의 자필까지 들먹이며 이승만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는데 그야말로 뉴라이트의 적은 뉴라이트가 따로 없다. 이는 그들이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아전인수격으로 하려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도 박정희 본인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제국에 부역하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경제적으로 일본이 유리하게 정책을 펴기도 했으나 표면적으로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일본 문화를 배척하였으며[44] , 한글 전용 정책을 펴고 독립운동과 이순신 장군 등을 찬양하는 보훈 활동을 하고, 미국 및 서구권과의 외교관계가 틀어졌을 때는 병인양요, 신미양요#에서의 조선군들을 기리는 등 자신의 독재를 보전하기 위해 뉴라이트 기준대로라면 반일, 반미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반면에 뉴라이트가 그렇게 싫어하는 김대중은 오히려 제1공화국에서부터 문민정부까지 이어져온 일본문화 수입금지 및 왜색 규제를 철폐하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웃긴 점은, 일본의 민족주의는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뉴라이트의 거두인 이영훈은 본인의 저서인 반일 종족주의에서 "서유럽에서 생겨난 민족은 왕과 귀족의 횡포에 저항하는 자유시민의 공동체였습니다", "그와 달리 한국의 민족은 일반 민서(民庶, 민중)와 분리된, 그 위에 군림하는 독재주의나 전체주의입니다"[45] 라고 주장하면서 서양의 민족주의는 우월하고 한국의 민족주의는 나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무산자나 여성은 부유한 백인 남성보다 투표권을 훨씬 늦은 시점인 1900년대 초반이나 중엽에서야 얻는 식으로 차별을 당했으며, 무엇보다 서양의 민족주의가 인종차별과 제국주의와 나치즘으로 이어지면서 두 번에 걸쳐 수천 만 명의 사람들을 죽게 한 세계대전을 일으킨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라이트의 한국 민족주의 비판은 제대로 된 탈민족주의 성향이 아니라, 차라리 막연한 혐한 정서에 더 가깝다. 애당초 민족주의를 반대한다면 서양과 동양의 민족주의를 둘 다 비판해야한다. 그런데 민족주의의 우열성을 가리고 있으니 모순되었다. 사실 이건 단순한 실수인 것보다는 이제는 본인들도 논리적 정밀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막연한 혐한과 국까로만 승부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46]
5.2. 뉴라이트 경제관[편집]
5.2.1. 관치경제적인 경제적 자유주의[편집]
뉴라이트는 오스트리아 학파를 지지하며 이들은 국가가 시장의 경제활동을 정치논리나 공기관하에 예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위의 조선 폄하와 어울려 조선은 상업을 천시했으니 좌파국가였다는 억지를 쓰기도 한다. 동시에 경쟁을 상당히 예찬하고 강조한다. 물론 경쟁 자체는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지만 이들은 한국 사회를 과열 경쟁까지 몰고 가려고 해서 문제가 된다. 근데 이 요소는 결국 소위 "건국 아버지," "정통성" 운운하며 정부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는 것과 모순이 생긴다. 게다가 자유주의적인 정책과 거리가 한참 먼 박정희, 전두환 등의
사실 일부 뉴라이트 인사들의 경우 과열 경쟁이 결과적으로는 실보다 득이 많기 때문에 이를 지지하는 것보단 "한국인 따위는 평생 경쟁하면서 팍팍하게 살아야 된다"는 황당한 사디즘으로 보일 때가 많다. 단순히 탈민족주의나 자국 비판을 넘어서 자국민을 폄하하는 뉴라이트 특유의 황당한 사고방식이 제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 성향이다.
이외에도 조선의 사농공상 제도를 많이 비판하면서 현재의 경제에 대한 가치관에 조선과 유교를 들이대며 비난하기도 한다.[48] 그와 동시에 조선처럼 망하지 않으려면 현대의 상인인 기업인들에게 이권을 줘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많이 하는데 이 또한 조선과 한국의 시대적 상황이나 여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주장하는 말이다.[49]
6. 조중동의 전폭적이었던 지지[편집]
2008년 뉴라이트의 "자칭"[50] 대안교과서가 출판되었을 때 뉴라이트를 옹호, 미화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시대착오 좌파 역사교육 바로잡을 '대안교과서' 역사인식의 지평 넓힐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
2010년대에도 조중동에서 뉴라이트를 주장, 옹호하는 사설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이런 식으로. ## #
7. 근황[편집]
7.1. 2013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와 그 후[편집]
2012년에 뉴라이트 계열 조직들이 다수 활동 정지 상태가 되거나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버리는 등 와해되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보수 진영과 동화하는 모습도 보여 준다.
2012년 6월 13일 정형근 뉴라이트전국연합 의장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08년 1월 유동천 제일저축은행장에게 돈이 든 쇼핑백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검찰이 돈다발을 들고 나오는 정 의장의 모습이 찍힌 CCTV를 증거로 제시한 이후에 더 이상 부정해도 소용없음을 알고 인정한 것이다. 뒤이어 6월 21일에는 뉴라이트 단체 대표인 김범수가 미소금융 자금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차례로 뉴라이트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드러났고 겨우 몇 해 전만 해도 뉴라이트 소속이라는 걸 자랑하던 이들이 의원 공천에서도 탈락하면서 이젠 스스로를 뉴라이트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렇게 부르는 것을 화내면서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시대정신으로 이름을 바꾸고 뉴라이트는 실패했다며 부정하게 됐다.
그래서 2013년 이명박 정부가 막을 내리면서 뉴라이트의 정치/사회적 존재감이 소멸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득세하기 시작하였고, 뒤이어 중고교생 근현대사 교과서에 뉴라이트 사관을 지지하는 한국현대사학회에서 집필한 교과서를 등장시켜 다시금 논쟁의 한가운데에 등장했다. 교학사에서 출판한 해당 교과서는 9월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까지 최종 통과했고 이로써 뉴라이트에서 만든 교과서가 중고교에서 쓰이는 것이 현실화되었다.
기사.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교과서들이 계엄군이 시민을 폭행하는 사진이나 숨진 아빠의 영정사진을 안은 아이 사진 등을 실은 것과는 달리 이 교과서에는 관련 사진이 등장하지 않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내란죄 등으로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은 사실도 이 교과서에서는 누락되는 등 역시나 우려하던 일이 예상대로 발생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일제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식의 내용이 나오고 거기에다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게 참여정부 때(정확하게는 2007년)가 아닌 이명박 정부에 이루어지고 거기에다가 감사원으로부터 총체적인 부실로 평가된 한식 세계화를 성공적인 세계화의 대표적인 예로 서술되는 등 현대사 관련에서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안한 부분도 드러났다. 놀라운 건 이것도 원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대안 교과서보다 많이 순화된 편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검정 기준에는 맞췄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걸 역으로 얘기한다면 원래 대안교과서가 그만큼 막장이란 얘기다.
심지어 교과서 내에 들어간 자료사진 상당수가 디씨인사이드를 포함한 인터넷에서 긁어온, 그것도 출처마저 불확실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기사. 또한 40년 전에 폐기된 학설을 기재하고 부여가 한반도에 있었으며 안시성주를 양만춘이라고 명시하는 등 고대사 부분도 오류투성이인 것으로 밝혀졌다.[51] 기사. 그 덕분인지 교과서 채택률이 1%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9월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0월에는 국사편찬위원회장등 역사연구에 관련된 기관에 뉴라이트계 학자가 임명되었다. 참고로 이명박 말기이던 2012년 9월에는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직에 이미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임명된 데 이어, 2014년 2월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를 천명했던 박상증 목사[52] 가 임명되기도 했다. 6월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에는 위에서 언급된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임명되고 2014년 8월에는 KBS 이사장에 이인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내정되는 등 박근혜정부에서 많은 요직에 뉴라이트 계열학자가 포진되어 논란이 일었다. 2015년 9월에는 문제의 조우석을 KBS 이사로, 고대영 KBS비즈니스 사장을 본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전국에서 단독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부산 부성고등학교의 이사인 박근령은 일본 포털사이트 니코니코와의 특별대담에서 "일본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던가, "사과를 요구하고 비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것은 패륜이다",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타박하는 뉴스만 나가서 죄송하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 때 다 끝난 이야기다", "한국에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같은 발언과 천황폐하라고 극존칭을 쓰는 발언을 하였다.
2015년, 박근혜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도 깊은 관여를 하였다. 집필진을 보면 알겠지만 뉴라이트 출신 역사학자들이 많이 참여를 하였고 서술에 뉴라이트학계의 입김이 많이 작용을 하였다. 자세한 것은 박근혜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참고. 반면 전향파 1세대 한기홍은 박찬수 저서 <NL 현대사>에서 "북한 주도 현대사에는 반대하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다. 뉴라이트에도 스펙트럼이 다양했다."라고 말하며 최근 수년간 <시대정신>에까지 뉴라이트색을 빼려고 노력했다고도 덧붙였다.
2014년만 해도 위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노조들은 저항할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특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박상증 목사 선임을 반대한 신형식 기획조정실장 등 부서장급 6명을 좌천시키기도 했다.
7.2. 일부 우파진영과의 유착[편집]
17대 대선때 뉴라이트 시민단체들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전면에 나섰으며, 이후 광우병 사태 등으로 정권이 코너에 몰리자 ‘이명박 지키기’에 나섰다.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과 광우병 등을 보도했던 방송사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도 직접 경고에 나섰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성명을 통해 MBC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했으며 MBC의 편파 방송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과 함께 KBS에 대한 국민 감사 청구를 내고 연일 성명을 내면서 “KBS는 사욕에 촛불을 이용 말라”, “KBS는 겸허한 자세로 감사를 받아라”고 주장하는 등 외곽조직으로 활동했다. 뉴라이트 ‘이명박 구하기’ 나섰다. 2008.06.19.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처럼 '뉴라이트'란 용어 자체를 공개적으로 내걸고 활동하는 이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재연하는 교과서 논쟁…진보·보수 격돌예고>
재연하는 교과서 논쟁…진보·보수 격돌예고
새누리당은 2013년 뉴라이트 교과서가 검정통과되어 논란이 되자 "역사교과서 대한민국에 자학적" 이라며 뉴라이트 교과서를 옹호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
2008년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를 비롯하여 뉴라이트 성향의 책들을 다수 출판한 기파랑 출판사의 대표 안병훈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 중 한 사람이며 #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뉴라이트 전국연합과 한나라당의 길은 다르지 않다" 라고 발언했던 전례가 있다.
#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모임인 교과서포럼(공동대표 박효종, 이영훈, 차상철)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뉴라이트 교과서를 극찬하며 뉴라이트의 교과서 포럼 등의 교과서 수정 움직임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참석하여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며 "이것을 바로잡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이 책의 출판은 중요한 의미가 있고 후일 그 자체로 역사에로 기록될 것" 등의 말을 하였다. #
교학사 뉴라이트 교과서로 논란이 있고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 내의 근현대사역사연구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에는 4선 의원들을 포함해 국회의원 가입자 수가 100명을 기록했다. 새누리당 의원의 3분의 2 가량이 김 의원 모임에 가담한 것이다. #, #, #
이날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역사교실에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잘 모색해서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겠다" 고 발언했다. # 교학사 고교 한국사 저자인 이명희는 11일에 그 역사연구 모임에서 "좌파가 학계와 교육·언론·예술·출판계, 최근 연예계에까지 많이 들어가 반수 이상을 점하고 있다" 면서 "현 국면이 유지되면 10년 내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전복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
국사편찬위원인 허동현 경희대 한국현대사연구원장은 25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주도 국회의원모임 초청강연에서 "피만 빨린 게 아니라 영생을 얻었으며 드라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제라는 드라큘라에게 물려서다" 라고 발언하였다. 또한 허 원장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분개하는 것은 전체주의" 라면서 "비교사적 관점에서 공과 과를 분명히 밝히고 잘못된 것은 분명히 짚어야 하지만 자긍심을 가질 부분은 하이라이트를 줘야 한다" 고 덧붙였다. # 정정보도문이 있다.#
2012년 18대 대선을 즈음해 최홍재, 허현준 등 일부 뉴라이트 인사들이 '국가주의 보수'를 대변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고, 이듬해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최홍재와 허현준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유영익 전 연세대 교수를 각각 내정했다. # 그는 이승만 재평가의 선봉에 서서 그를 찬양하는 저서만 여러 권 낸 적이 있으며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을 선두에서 했으며 뉴라이트 포럼 상임고문으로 논란을 일으킨 대안교과서를 감수했으며 '민주주의' 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 로 바꾸라고 압력을 행사해 역사학계의 반발을 불러온 적이 있는 인물로 뉴라이트의 정신적 지주 내지는 대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 #, #, # #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일본우호적 발언, 분단상황과 일제수탈을 미화한 발언등으로 논란이 된 문창극을 총리 후보로 내세웠으나 낙마하였다.# 심지어 '뉴라이트' 운동가 출신 박효종을 방통심의위원장 임명을 강행하였다.# 그는 2005년부터 뉴라이트 계열 운동단체인 교과서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다.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한 바 있다. 2014년 초에 최홍재가 청와대 선임행정관직에서 물러나고 3급으로 승진한 허현준이 단독으로 직무를 맡아 '화이트리스트'를 직접 수행했다.
2016년 11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뉴라이트는 파멸로 접어들었고, 특히 허현준 선임행정관이 국정농단 수사결과 2014년 세월호 집회반대 극우단체 관제시위에 연루된 게 알려지면서 더 타격을 받았다. 당연히 그냥 죽기싫은 그들은 계속해서 친박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결국 이듬해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서 아주 박살나는 분위기이나, 비박 뉴라이트들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실장은 저서 <NL 현대사>에서 뉴라이트의 몰락을 "보수정권 10년간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고 주장했고, 대다수 뉴라이트들이 국가주의 보수와 차별성을 주장하고 북한이 건재하는 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예측이 맞아들었는 지 2020년 대에 들어 20대~30대 초반 남성들이 보수화되었고, 반공주의 및 대안우파가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다. 2022년 대선 출구조사를 참조하면 실제로 2022년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진보 정권에서 보수 정권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20~30대 진보 진영 후보자의 득표율이 원래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40~50대의 진보 진영 득표율이 훨씬 낮았다. 결국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 다시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7.3. 존 마크 램지어 위안부 논문 게재 논란[편집]
그렇게 종종 망언을 내뱉는 수준에서 사라져가던 이들이 다시금 수면에 떠오른 것은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논문 게재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래퍼런스가 결국 램지어의 논문에 인용되었고#, 이들 스스로는 학문적으로 이미 논쟁이 끝난 위안부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을 하잔 주장을 하면서 램지어를 지지하는 성명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글로벌 학계에서도 병먹금 취급을 받아서인지 2020년대 들어선 별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7.4.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편집]
이후 윤석열 정부 인사에 뉴라이트 계열 인물들이 다시 포함되며 역사관련 논란이 발생하는 중, 다시 뉴라이트 역사관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란이 터지게 되었다.
8. 비판[편집]
2009년 7월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자체적으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까는 카툰을 만들어서 논란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무한도전의 자막이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것에 선동되면 안 된다는 내용인데 오히려 역풍이 불어 뉴라이트 사이트는 마비되고 디시인사이드 무도갤은 들끓었다.
뉴라이트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대화가 되는 보수" 로 유명했던 김일영 교수는 뉴라이트의 정치화를 경계하면서 자신이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뉴라이트는 보수를 자칭하면서 하술할 것과 같은 종일(從日) 행각을 저지르기에 반대파들이 보수 인사들에게 친일 프레임을 쉽게 씌울 수 있는 빌미만 제공한 꼴이 되었다.[53] 다음은 뉴라이트의 각종 망언 모음들이다.
제국주의 역사상 식민피해 배상은 제기돼본 적도 없고, 실제 지급된 바도 없다
이영훈 #: 그러나 1959년 일본은 남베트남과의 전쟁 보상 협상 과정에서 “전쟁 중 많은 물자를 징발하는 바람에 베트남인 30만명이 아사했음은 인정한다. ”는 내용의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협상 결과 1960년 일본은 남베트남에 3,900만 달러의 전쟁보상금을 지불했다. 이런 식으로 1955~1977년까지 일본은 전쟁보상금(준배상금 포함)으로 미얀마 등 11개국에 총 15억 달러를 지불했다. # 아울러 2013년 영국 정부는 1950년대 케냐에 대한 식민통치 가혹 행위에 대한 공개 사과와 배상을 발표했고, 케냐인 피해자 5,200여명에게 2,150만 달러를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피해자 개인에게 약 4,000달러를 받게 되는 금액이다. 영국 정부는 케냐변호사협회에도 925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 또한 2008년 이탈리아 정부도 30년간 식민 통치에 대한 배상으로 리비아에 50억 달러를 보상하기로 했다. 그리고 2011년 네덜란드 법원은 식민지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가 생존자 1명과 유가족 8명에게 총 20만 유로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2011년의 판결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네덜란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며, 민간인 학살과 같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국제법의 원칙을 적용한 판례가 되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항소하지 않고 배상금을 지급했으며, 2013년 9월에는 64년 만에 공식 사죄를 했다. # 구글 검색 1분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이영훈이 정말로 몰라서 그런 말을 했는지[54] , 아니면 알면서도 사실을 숨기려 일부러 거짓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기초적인 사실 왜곡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2008년 국회의원 정두언 #[63]
이명희 한국현대사학회 회장
유영익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67]
조전혁 명지대학교 교수##[69]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KBS 이사장): 이 발언부터 왜곡인데 일단 4.3 사건은 민간인 대량 희생을 인정한 것이지 빨치산 세력을 재평가 한 적은 없다. 기본 사실부터 왜곡됐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KBS 이사장)#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KBS 이사장)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KBS 이사장) #
이영훈 서울대 교수##
이영훈 서울대 전 교수가 2019년 12월 일본 극우 잡지인 보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발언.출처[72]
여기에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의 이미지로 부각시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논란을 일으켰다. 끝장토론. 대한민국의 국격을 위해 건국대통령의 예우를 해줘야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문화대혁명으로 많은 중국을 피폐로 몰아넣고 수백만 이상의 중국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마오쩌둥에 대해 등소평은 '과도 있지만 공이 더 많은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면서 초상화 교체를 거부했다."며 문제를 희석시키고 있다.
이런 재평가 움직임에 따른 대표적인 사업으로 이승만 기념관과 동상의 설립을 추진 중인데 4.19 혁명 중 군중에 의해 철거된 이승만 동상을 현재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있는 광화문에 세우겠다고 하고 있다.
참고. 역사학자 신용하 교수는 '뉴라이트는 일본 신식민주의 사관을 보유한 집단'이라고 대차게 까기도 했다.
#, #현대사 연구자 서중석 교수는 이들 뉴라이트 출신 세력들의 활동에 대해 '민주화운동 폄훼해서 현대사 연구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다시 수구냉전 시절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이번 사설도 뉴라이트 교과서의 국사편찬위 심사에 맞춰 그걸 통과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쓴 혐의가 짙다. 지성과 양식, 양심 모두 내동댕이쳤다. 참담한 일이다'라고 우려했다. #
뉴스 동영상 보기.
뉴라이트 계열 단체 중 하나의 대표가 저소득층 지원 사업인 미소금융의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 12월 20일, 서울중앙지검은 23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73] 로 뉴라이트 계열인 M단체 대표 김모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14억 6,000만 원 상당의 주택을 구입하는데도 이 횡령한 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표는 2009년 12월부터 공금을 횡령했으며 총 65차례에 걸처서 범행을 저질렀다. 김모씨가 대표로 활동하는 단체는 뉴라이트 계열로 별다른 경험 없이 2009년 미소금융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주변에서는 금융업에 경험이 없는 단체가 미소금융 사업에 선정되자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였다. 뉴라이트 단체 대표, 20억대 횡령으로 구속기소.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대체로 한총련으로 대표되는 NLPDR 계열 출신이 많다보니 말은 뉴라이트라느니 신자유주의라느니 하면서 거창하게 이야기하는데 정작 조직이 돌아는 꼴은 그야말로 한총련 시즌2 수준이다. 특히 북한인권운동의 학생 조직 쪽에서 이런 문제가 꽤 심각했다. 뉴라이트 학생운동의 본산인 전북대의 경우는 신입생을 합숙시키면서 세뇌 수준에 가까운 북한인권 동영상 자료 시청이라든가, 강제적인 행사 참석, 심지어 일부 조직에서는 일 할 사람 필요하니 군대 늦게 보내는 행위도 서슴없이 벌였다.[74] 이제는 어느 정도 외연이 확장되긴 했다.
9. 뉴라이트 용어의 모호성과 문제점[편집]
언론으로부터 '뉴라이트'로 지칭되고 뉴라이트 단체가 생겨난 것은 노무현 정부 무렵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로 이러한 운동과 단체는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뉴라이트라고 하는 것은 2000년대 뉴레프트 운동에 자극받아서 문자 그대로 New Right에서 출발한 것이다. 기존의 보수가 지나치게 수구화된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위해서 새로운 보수 정풍운동 차원에서 뉴라이트 운동은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념적 편향성과 권력과 유착된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 때문에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했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뉴라이트 운동은 죽었다라고 선언하고 뉴라이트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뉴라이트는 죽었다, 종언 선언해야, 보수지식인 김일영 교수 주장." '뉴라이트'를 넘어 '프로콘'으로 김일영 교수는 사상적 빈곤을 앓고 있는 보수, 낡은 보수의 틀을 깨고 현실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사상적, 학문적, 정책적으로 보수의 새로운 기치를 닦고자 했지만 자신이 보았던 뉴라이트는 이와 달리 권력과 상당히 유착하는 관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뉴라이트라고 하는 용어가 주홍글씨화되어서 이것이 마치 극보수 일각에서 '종북', '친북', '빨갱이'라고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것처럼, 좌파버전의 매카시즘 용어가 된 경향도 나타났다. 실제로 성향만 보수일 뿐 뉴라이트 단체에 참여하지 않거나 뉴라이트와는 관련 없는 인사도 뉴라이트로 공격, 매도, 조롱되는가 하면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했더라도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도 도매금으로 친일, 친일파로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오용, 남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뉴라이트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무엇보다 최근까지는 그 누구도 "뉴라이트"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발간되기 전까지는....
10. 기타[편집]
대한민국 뉴라이트 운동에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해왔던 뉴라이트 재단의 대표적인 인물인 이영훈, 안병직의 발언 또한 논란이 되었다.
4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식민지로 있던 35년 동안 우리 땅을 40% 넘게 빼앗겼고 엄청난 쌀을 약탈당했다"고 실렸는데 이영훈은 "일제가 공출, 강제 징수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양국 쌀 시장이 통합됨에 따라 경제적 '수출'의 결과였다"며 "객관적 수치로 보더라도 뺏긴 토지는 10%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75] . 잘못된 교과서로 배운 탓에 반일감정의 뿌리가 더 깊어졌다고 대한민국 국사교과서를 깠다. '일제 토지 수탈론은 잘못된 신화'.
안병직은 위안부는 강제동원이 아니고 위안부를 동원해서 영업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인이 위안부 영업자의 반을 넘는다, 조선인이 무슨 권력을 가지고 동원하냐고 덧붙였다. 이영훈 역시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정신대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 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 고 주장했다. 이영훈 교수, "정신대, 자발적 참여" 망언. 일각에서는 그럼 위안부가 '자발적 창녀' 란 말이냐며 반발했다.[76]
이러한 기존 교과서의 일제강점기에 대한 서술에 불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은 교과서포럼[77] 을 통해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다. 참고로 이건 '교과서'가 아니다. 현재 교과서가 이렇게 바뀌면 좋지 않을까?라는 의미의 '대안'교과서이다. 당연히 이걸 교과서로 채택한 고등학교도 없기에 이 책으로 역사를 배운 사람도 없다. 근데 종종 이 책 내용을 들고와서 '요즘 애들이 배우는 역사' 류의 낚시글이 인터넷에 자주 돌아다닌다. 이건 그냥 이름만 '교과서'일 뿐 교육과 전혀 무관한 서적이다.[78]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를 '시장경제 기반의 구축',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무역의 성장', '근대적 경제성장', '농업의 개발' 이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기초해서 보고 있다.
또한 뉴라이트 진영은 일제강점기는 근대화이고 수탈 등은 없었다며 조선총독부의 토지약탈은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교과서에 서술하기도 하고 위안부 강제동원을 제외하면서 악랄한 정도가 덜한 '여자 근로 정신대' 사례만 일부 삽입하기도 했다(뉴라이트 진영은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인용하며 일본 덕분에 토지가 늘어났다고 하는데 원래 있던 농지가 조선총독부의 자료에 등재된 것일 뿐이다).
뉴라이트의 교과서에 참여했던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과거 친일행위자들은 피해자 겸 희생자'라고 규정짓기도 하고 "친일 행위를 했다는 것과 어떤 사람은 친일반민족행위자다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친일행적을 밝히되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수진영 "과거 친일행위자들은 피해자 겸 희생자"
그 밖에 홈페이지에서 가수 김장훈의 도호쿠 대지진 당시 일본에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는 발언에 난데없는 비난을 하여 네티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배신 배반자들을 척결하기 위해서라면 극우처럼 몰고 가는 게 좌빨들의 기본 전략" 지식인이나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종북,좌빨몰이로 반발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사실 뉴라이트 운동 자체가 지난 20년간 하도 여러 사람이 참가하고 언론에 오르내려서 문서 내용이 길어졌지만 뉴라이트의 정체성은 사실상 이런저런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까에 불과하다. 그 본질은 그저 노예근성과 일방적인 자국혐오에 불과해 사실 "우익"이나 "운동"이라고 불러주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제국주의 근간이 되는 임나일본부설은 주장하지 않고 있다. 삼국시대-고려시대까지는 한국이 일본에 있어서 확연한 우위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듯.
더팩트의 보도에 따르면 안병직이 김일성이 이승만에게 70만 군대를 빌려주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11. 관련 인물 및 단체[편집]
링크 참조
- 권용목#: 1987년 현대엔진 노조를 결성하여 노동자 대투쟁의 도화선이 된 인물로서 노동운동계의 스타로 이름을 날렸고, 1995년에는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에 취임한 바 있었다. 그러나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참여를 둘러싸고 민주노총과 갈등을 겪다 노동운동계를 은퇴한 뒤 야인으로 지냈다.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녹색연대21, 새시대개혁연대, 국민통합21 등을 전전하다 2006년부터 뉴라이트로 전향해 '뉴라이트신노동연합'을 조직한 바 있으며, 2009년 2월 13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김진홍
-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내며 국가보훈위원회 위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2012~2018), 독립기념관 이사 등을 거쳐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까지 됐고, 2008년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하는 등 뉴라이트 활동도 했다.#
- 낙성대경제연구소[79]
- 뉴데일리
- 데일리안
- 미래한국
- 미디어펜
- 신지호
- 윤서인
- 안병직
- 윤기중[80]
- 이영훈
- 이주천
-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前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 최홍재
- 권희영
- 하태경[81]
- 허현준
- 홍금우[82]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광주은행 상임감사위원
- 이명희
-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
- 바른사회시민회의
- 시대정신
- 이클린연대
- 나라사랑기도회 - 2007년 5월에 창립된 뉴라이트 천주교 지부로 물론 비인준 단체다. 천주교 단체인데도 정작 광고를 내는 곳은 조중동 뿐이라서 천주교 언론 쪽에서는 고깝게 보고 있다. 게다가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인준단체)의 이름을 무단으로 가져다 쓴 적도 있어서 천주교 내에서의 인식도 상당히 안 좋다. 주된 활동은 대척점에 서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까기. 유사품으로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등이 있다.
- 기파랑 출판사#[83]
- 백년동안# - 박정희, 이승만을 숭배하는 책이나, 5.18항쟁과 4.3사건을 폄하하는 책을 많이 출판한다. 반일종족주의로 유명한 이영훈 작가도 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많이 낸다.
- 김용삼 - 극우성향의 책을 많이 냈다.
- 진명행 -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 저자. 이전부터 독립운동 폄하, 민주화운동 폄하로 인터넷상에서 유명한 극우 성향의 역사가로 평가된다.
11.1. 뉴라이트 사관의 영향을 받은 인물 및 단체[편집]
- 대한민국 엄마 부대
- 대한민국어버이연합
- 자유대학생연합: 연세대학교를 베이스로 삼는 학생운동 단체 겸 법인격 영리단체다. 법인은 "프리덤세이버"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 자유민주당(2021년)
- 박사모
- 전국학생수호연합, 한국성평화연대###
- 우파 유튜버
- 이병태
- 자유기업원
- 전희경
- 주동식###[84]
- 한국현대사학회
- 남정욱 교보문고 저자 소개 그의 저서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현대사를 보면 한국 현대사가 좌파들에 의해 왜곡되었고 그로 인해 이승만, 박정희의 업적이 폄하되었다고 주장한다.
- 윤석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논란이 있는 우파 유튜버를 비롯하여 뉴라이트 계열 인사를 행정부에 대거 채용하거나 가까이 하였다. 이러한 인사 정책은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대통령 취임 이후 삼일절 기념사와 광복절 기념사마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에 관한 언급은 없이 일본은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하며 식민사관을 표출하였으며, 광복 운동은 건국 운동이었다는 뉴라이트 계열이 주장하는 시각을 내비췄다(#). 그리고 야당,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이라고 매도하며(#)반국가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11.2. 기독교 우파적 인물 및 단체[편집]
12. 관련 사건[편집]
13. 관련 문서[편집]
14. 출처[편집]
- NL현대사: 강철서신에서 뉴라이트까지 - 박찬수 저. 인물과사상사. 2017. p31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