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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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임수경
林秀卿 | Lim Su-kyung


파일:임수경.jpg

출생
1967년 11월 6일 (56세)
서울특별시
학력
진명여자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불어과[1] / 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 / 학사)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2] (신문학 / 석사[3])
종교
천주교(세례명: 수산나)불교(법명: 공덕주)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
수상
북한 조국통일상 (1990년)

1. 개요
2. 활동
2.1. 정계입문 이전
2.2. 정계입문 이후
2.3. 19대 국회의원 활동
3. 근황
5. 여담
6. 저서
7. 참고 자료
8. 소속 정당
9. 선거 이력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

1989년 냉전 종식으로 북한 고립의 분위기를 타면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베를린 쇠네펠트 국제공항을 통해 방북,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여한 이른바 임수경 방북 사건으로 대한민국북한 모두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인물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중산층이었던 임 씨가 웬만한 북한 상류층보다 잘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터뷰까지 '록화실황' (사실상의 지연된 생중계)으로 중계되어 예기치 않게 우리나라의 체제경쟁 우위를 결정적으로 알린 공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임 씨의 아버지를 굳이 직장에서 쫓아낼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는 동정론 내지 비판이 일기도 하였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임기 초반에 일어난 막말 사건 때문에 임기 내내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 받으며 조용히 평범한 비례대표 정도로 활동하다가 정계를 떠났다.


2. 활동[편집]



2.1. 정계입문 이전[편집]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여하며 무단으로 방북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사람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지냈던 임종석. 그래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5개월간 복역 후 1992년 12월 24일에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

이후 교육부의 제적학생 복적조치에 따라 1993년 4월 8일 재입학 신청원을 제출해 입학허가를 받았고, 4월 30일 정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에 등록했다. 이에 1993년 1학기부터 복학하여 감옥 생활로 중단된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졸업 후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진학했고, 모교 강의 및 각종 강연을 다녔다. 1997년 7월에는 동 대학원에서 신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4] 1999년 삼일절 특사 때는 임종석 등과 같이 피선거권이 복권되었다.

1994년 5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리포터로 나왔으나 사측에 의해 중도 하차됐다가, 1998년 <라디오 저널>로 복귀했고, 2004년 해인사의 월간 <해인> 지 객원기자로 일하며[5] KTV <통일로! 미래로!>의 MC를 맡았다.

2001년 여름, 정부의 허가를 받아 재차 방북하여 북측 인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2003년 8월 15일 광복절 특집으로 문성근이 진행하는 KBS '인물현대사' 8회에서 임수경 방북사건을 다루었다.


2.2. 정계입문 이후[편집]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었던지라 2000년 16대 총선 이래로 선거 때마다 매번 정계 진출설이 흘러나왔는데, 결국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21순위로 출마하여 당시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의석이 딱 21석이 되었던 바람에 턱걸이로 당선에 성공하였다.

임수경이 공천을 받을 수 있던 것은 당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이었던 임종석의 추천으로 알려졌다. 임종석은 86세대의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하나로 민평련계에 속했는데 친노 직계였던 한명숙 대표가 민평련계였던 임종석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임종석은 당시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던 원래 지역구인 성동구 을에 출마를 시도했으나, 문제는 저축은행 비리 사건 연루로 기소된 상태라 당내 반발이 있었다는 것. 게다가 당시 민주통합당의 공천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친노 - 민평련 - 김한길계 - 박지원계 등은 줄줄이 살아남았는데 호남 중진 - 동교동계 등이 전부 갈려나간 양상이었던터라 임종석에 대한 여론도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당 내에서 압박이 계속되자 임종석은 총선을 1달 앞두고 19대 총선 공천 반납과 사무총장직 사퇴를 선언하고 만다.[6][7] 그러면서 돌았던 떡밥이 임수경의 성동구 을 공천이었고, 임종석이 자신의 측근이었던 임수경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했다는 설이었다. 결과적으로 지역구는 절친이던 홍익표 한양대학교 겸임교수가 물려받았고 임수경은 비례대표로 공천되었다.

그러나 한명숙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새누리당을 어떻게라도 이기기 위해 통합진보당 야권 연대로 서울 관악구 을[8]이나 성남시 중원구 같은 야권 전통강세 지역에서 통합진보당에게 후보 자리를 내 주었고, 당시 여론은 별로 안 좋았다. 당시 야권 단일 후보를 정하기 위해 여론조사 부정이 드러났는데 민주당 지도부에서 직접 부정을 저지른 통진당 후보의 잘못을 덮어버리려 하면서, 네티즌들은 경선은 요식이고 통진당 후보에게 조공바치려고 쇼한다는 추정까지 할 정도로 커다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하였던 유시민자신의 당인 통진당의 부정부패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기사 삭제됨 네티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후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에서 이들의 실체가 드러나며 결국 민주당은 이석기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만다.

이렇게 일이 돌아가면서 친북 내지는 종북을 혐오하는 부동층이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투표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이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 임수경의 탈북자 폭언 사건 등이 터지면서 결국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임수경같은 통진당에 가까운 인물이 민주당 비례대표로[9] 나선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당연히 종합적인 판단을 할 때 임수경때문에 졌다는 직접적인 보도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어쨌건 선거를 치룬 것은 임수경을 공천한 한명숙 대표 체제였고, 야권 전체의 패배이기 때문이다. 당시 2012년 총선 이전부터 야권 커뮤니티에서 반대의견이 많았고, 패배 이후 비판도 많았지만 고작 언론에서 (임수경만) 직접적 지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임수경 공천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커뮤니티 또한 여론이고 신문기사도 여론을 넘어선 우월한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임수경 같은 비례대표 공천 덕에 민주당 표가 떨어졌다는 걸 거론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2.3. 19대 국회의원 활동[편집]


논란 및 사건사고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탈북 대학생과 동료 의원인 하태경을 변절자라고 비난하면서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버렸고, 임수경 개인은 물론 민주통합당에게 친북 이미지라는 일부여론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 사건이 터진 것은 19대 국회 개원 직후였고 대선까지 반 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상당했다. 그래서 국회의원 생활 4년 동안 딱히 두드러지는 활동 없이 조용히 평범한 비례대표 의원 1 정도로 활동했을 정도.

2015년에는 조선일보 창간 95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였다. 사실 그 행사는 정관계 인사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중 가장 규모가 큰 행사로 손꼽히는 행사이며 국무총리, 여야대표[10] 등이 필수적으로 오는 행사다.

2016년 2월 25일, 더불어민주당에서 하위 컷오프 대상에 포함되었다. 탈북자에 대한 막말 논란이 결정타로 작용한 모양이다. 사실 그녀가 19대 국회의원이 된 것도 예전에 북한에 갔다 오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점만 제외하면 별다른 정치 및 사회운동 경력이 없는데 임수경의 말론 통일 운동을 하였다고 공천을 받은 것이다. 야권에서도 왜 이런 인물을 공천했었냐며 불만이 많았고 결국 임수경은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 하게 되었다.

국회의원 임기가 다 끝나갈 무렵인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는 의외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 테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생존 범인 김현희를 명백한 테러리스트라고 지목하면서 그녀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은 안기부의 조치를 비판[11]했으며, 그 외에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생존 공비 이광수 등의 몇몇 간첩이 선처받은 것을 언급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씨 일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하지 않고 있으며, 언급된 인물은 일련의 법적 절차를 밟은 이후 전향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적행위자, 배신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만으로 북한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3. 근황[편집]


정계를 떠난 이후 전해지는 소식이 거의 없다. 아마 자신의 저택에서 조용히 살고있는 듯 하다.


4. 사건과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수경/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편집]


  • 자녀로는 1995년에 전 남편과 결혼해서 낳은 외동아들이 있었으나, 2005년에 필리핀 세부에서 영어연수 도중 한 리조트 수영장에서 익사했다.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가 복역한 교도소[12]의 교도관으로 특별출연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상 내용 때문에 여자교도소의 분위기나 에피소드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러 찾아갔던 게 김부선이었는데, 김부선이 대마초 사건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만났던 사람이 바로 임수경이었다. 그 인연으로 김부선이 임수경을 박찬욱에게 소개시켜주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친절한 금자씨의 카메오 출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녀의 과거 행적과 변절자 발언 때문에 때문에 네이버 영화 명대사란을 보면 죄다 북한 찬양 드립이 일색이다.

  • 자신을 종북이라고 비판한 새누리당 박상은 전 의원[13]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2019년 6월 13일 대법원은 "국회의원에게 '종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인신공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1심에서는 "의견 내지 논평을 표명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며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지만, 2심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로 2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비판적 표현이 상당히 악의적인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인격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 "정치인 등 공적 인물에 대해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허용돼야 한다"며 소송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판례 요지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본 재판에는 14명의 대법관박상옥, 안철상, 노정희, 김상환 4명이 참여하였고 이들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한 것이다. 4명 중 박상옥 제외 3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대법원
    이후 파기환송심에서도 같은 판단이 내려졌다.#

◇‘종북의 상징’이라는 표현행위가 의견표명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함으로써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소극)◇

표현행위자가 타인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한 때에 그 표현행위의 형식과 내용 등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혹은 타인의 신상에 관하여 다소간의 과장을 넘어서서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를 함으로써 그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의견표명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09. 4. 9. 선고 2005다65494 판결 등 참조).

한편, 정치인이나 공직자 등 공적인 인물의 공적 영역에서의 언행이나 관계와 같은 공적인 관심사안은 그 사회적 영향력 등으로 인하여 보다 광범위하게 공개․검증되고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었다고 볼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이를 쉽게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거나 법적인 책임을 져야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더욱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은 입법과 국정통제 등에 관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고 나아가 그 직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도록 면책특권을 보장받는 등으로 통상의 공직자 등과도 현격히 다른 발언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2다19734 판결 참조) 그의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 등에 대한 비판도 더욱 폭넓게 수인되어야 한다.

의견표명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해당 표현행위의 내용․형식뿐 아니라 표현행위가 행해진 정황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 피고가 2013. 7. 30. 당시 인천광역시장을 비판하면서 “천안함 46용사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백령도 청정해역에 종북의 상징인 임 모 국회의원”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성명을 발표하자 원고가 ‘종북의 상징’이라는 표현행위로 인해 인격권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에서, 이 사건 성명서에서 ‘종북의 상징’이라는 용어는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대표적 인물’이라는 취지로 사용되었다고 보이고 이는 모욕적 언사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표현행위가 지나치게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여 의견표명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이와 달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사례임

‘종북의 상징’이라는 표현행위로 인한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한 위자료 청구 사건 [대법원 2019. 6. 13. 선고 2014다220798]



6. 저서[편집]


  •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임수경후원사업회 편) - 돌베개, 1990.
  • 참 좋다! 통일세상(박재동 그림) - 황소걸음. 2003.
  • 임수경 스토리(지승호와 공저) - 휴먼앤북스. 2016.


7. 참고 자료[편집]


  • 글 고지운`그림 고경일.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서울:도서출판 앨피. 2005.


  • [why] 통일의 꽃 그 원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조선일보[14] 2016년 6월 4일자)


8.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2 - 2013
정계 입문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5
합당[15]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5 - 2016
당명 변경


9.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7,777,123 (36.45%)
당선 (21번)
초선


10.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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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 프랑스학과. 재학 당시에는 분교였다.[2] 논문 표절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3] 석사 학위 논문 : 국가보안법 사건의 언론 보도와 인격권 보호에 관한 연구(1997. 7).[4] 그러나 이후 석사 논문이 표절인 것이 드러났다.[5] 이 무렵에 불교로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6] 결과적으로 임종석은 결백한 것이 드러났다. 1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끝내 2014년이 되고 무죄로 결론이 났다.[7] 당시 문재인, 이해찬 등이 임종석 사퇴를 종용하던 양상이었는데 흥미롭게도 이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때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종석이 입각하게 된다.[8] 이 때 공천에서 밀린 사람이 관악구청장을 내리 재선한 한광옥 정통민주당 대표의 측근이자 구민주계 출신 김희철이었는데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한다.[9] 임수경의 출신 학교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인데, 문제는 이 대학이 경기동부연합의 본산이었다는 것. 게다가 임수경의 방북에서 볼 수 있듯이 성향은 PD보다는 NL에 가까운 인물이었다.[10] 의외의 사실이지만 임수경, 문재인은 조선일보와 관계가 좋은 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 조선일보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문재인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간의 사적 관계는 좋은 편이다.[11] 당시 야권에서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이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거세게 비난했고, 노태우 대통령이 확실한 증거물을 남기려고 했던 점도 사면의 한 요인이었다.[12] 여담으로 이 교도소에는 작중 배역이지만 치매걸린 남파간첩 노파 고선숙도 수감중이다. 이후 그녀는 자신을 간호해준 금자에게 법구경으로 위장된 권총 설계도를 건네준다.[13] 이후 2014년에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14]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임수경 前 의원은 조선일보와 관계가 매우 원만한 편이다! 전술했듯 95주년 창간행사에서도 얼굴을 드러냈다. 정청래 의원이 견원지간.[15]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