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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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4대 국무총리
황교안
黃敎安 | Hwang Kyo-ahn


파일:황교안.jpg

출생
1957년 4월 15일 (66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2가
본관
창원 황씨[1]
현직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 변호사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장
부정선거방지대 총괄대표
재임기간
제63대 법무부 장관
2013년 3월 11일 ~ 2015년 6월 13일
제44대 국무총리
2015년 6월 18일 ~ 2017년 5월 11일
대통령 권한대행
2016년 12월 9일 ~ 2017년 5월 10일
서명
파일:황교안 서명.svg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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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황대복[1], 어머니 전칠례
형제자매
형 황교욱, 황교돈
누나 황연숙
배우자
최지영
자녀
아들 황성진[2], 딸 황성희[3]
학력
서울봉래국민학교 (졸업)
광성중학교 (졸업 / 19회)
경기고등학교 (졸업 / 72회)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4]
수도침례신학교 (신학 / 석사)
병역
전시근로역 (담마진)[5]
종교
개신교 (침례회)
신체
170cm, A형
소속 정당

경력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제63대 법무부장관 (박근혜 정부)
제44대 국무총리 (박근혜 정부)
제6공화국 대통령 권한대행
제2대 자유한국당 대표
초대 미래통합당 대표
미래통합당 종로구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종로구 당협위원장
약칭



1. 개요
2. 약력
4. 선거 이력
5. 소속 정당
6. 저서
7. 여담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44대 국무총리이며,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2대 대표이자 미래통합당의 초대 대표였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된 이후 탄핵되고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로서 국가원수의 직무를 수행했다.


2. 약력[편집]


연도
내용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1982년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
1983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1986년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검사
1990년
대검찰청 연구관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4년
법무연수원 교관
1995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장
1997년
사법연수원 교수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5부 부장검사
2000년
대검찰청 공안3과장
2000년
대검찰청 공안1과장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컴퓨터수사부 부장검사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 부장검사
2003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2004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2005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2006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지청장
2007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2008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2009년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2009년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2011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2011년
법무법인 태평양 형사부문 고문 변호사
2011년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2013년
제63대 법무부장관
2015년
제44대 국무총리
2016년
제6공화국 대통령 권한대행
2019년
제2대 자유한국당 대표
2020년
초대 미래통합당 대표
2020년
미래통합당 우한 폐렴 대책 태스크포스 위원장
2020년
미래통합당 4·15총선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
2020년
미래통합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
2020년
국민의힘 종로구 당협위원장
2021년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2022년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 변호사


3.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황교안/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81년에 치러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3년 8월 청주지검 검사로 임명되면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제63대 법무부장관, 제44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서가 청와대에 송달된 2016년 12월 9일 오후 7시 3분부터 차기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10일 오전 8시 9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인지도를 얻으며 대권 주자로도 거론되었고, 2019년 1월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였고 2월 27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입당 43일 만에 자유한국당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2020년 신설된 미래통합당의 초대 당대표를 지내다 취임한 지 1년 3개월여 만에 4·15 총선 대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 사퇴, 10월 28일에는 국민의힘 종로 당협위원장을 사퇴하며 모든 당직에서 물러났다.

202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10월 8일 2차 컷오프에서 4위 안에 들지 못해 탈락했다.

2022년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비윤계로 분류되는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을 가짜 보수라며 저격했고, 대통령실이 김기현의 당 대표 당선을 위해 노골적으로 안철수 등을 저격할 때에도 김기현 후보의 땅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물러서지 않았고, 안철수 후보와 김기현에 맞서 연대하는 등 꽤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줘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네 후보 중 4등의 성적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37,594 (39.97%)
낙선 (2위)
[3]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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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
무소속
]]

2013 - 2019
정계 입문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9 - 2020
입당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4]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현재
당명 변경


6. 저서[편집]


종교 및 공안 관련 법률 해설들을 많이 저술하였다.

  • 검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만나. 1994.
  • 국가보안법 해설 - 집영출판사. 1998.
  •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 - 청림출판. 1998.
  • 교회에 관한 33가지 유쾌한 상상(유창주 등 32명과 공저) - 기독교연합신문사. 2005.
  • 집회·시위법 해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 박영사. 2009.
  • 국가보안법 - 박영사. 2011.
  • 교회와 법 이야기: 전문가가 말하는 교회분쟁과 화해 - 요단출판사. 2012.
  •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최기식과 공저) - 요단출판사. 2016.[5]
  • 황교안의 답: 황교안, 청년을 말하다 - 여운. 2018.
  •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유성호와 공저) - 인벤션. 2019.
  • 문재인 정권 2년, 안보가 안 보인다(나경원, 원유철, 백승주와 공저) - 한빛출판. 2019.
  • 초일류 정상국가: 다음 세대와 함께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치 - 밀알. 2021.


7. 여담[편집]


  • 목소리의 음색이 전반적으로 중후함과 침착함이 돋보인다.[6] 2016년 신년사 이런 목소리로, 국회에서 답변할 때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어지간해서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 학구파이고 공안검사인지라, 다수의 법서를 출간하였다. 상세는 아래 '저서' 항목 참조.

그 밖에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7년, '사법시험 최단 합격법'(원서)이라는 번역서를 출간한 바 있다.

  • 사위 조종민도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출신의 검사(사법연수원 40기)이다.#

  • 매우 독실한 침례교 신자이며, 사법연수원 재학 중에도 동시에 신학교[7]도 졸업해서 전도사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성경 공부(QT)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반듯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자기 전공을 살려 교회 내 법적 분쟁에 관한 팁을 다룬 단행본을 낸 적도 있다. 참고로 유튜브에서 보면 전도사로서 간증하는 장면도 자주 올라오는 편이다.

  • 취미가 테니스인지 법무부장관 재임 시절 대한민국 법무부가 상주해 있는 정부과천청사의 테니스장에서 가끔 나와서 직원들과 테니스도 친 적이 있다고 한다. 검사 시절 테니스 동호회를 조직할 정도로 테니스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테니스를 치게 된 계기는 40대 초반까지 업무 때문에 운동을 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8] 체중이 증가해 결국 무릎이 고장난 적이 있었는데, 재활치료를 통해 완치된 후 지속적인 운동을 고민하다가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테니스계에서 매우 유명한 프로선수인 이형택 선수와의 친선 경기에서 이겨서 매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9] 하단 사진은 테니스 잡지인 <테니스 피플>이 2012년 황교안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 변호사와 가진 인터뷰에 기재된 사진이다.
파일:황교안 테니스.jpg}}}||

  • 황교안 국무총리는 테니스 외에도 색소폰을 부는 것을 취미로 삼았는데, 법조인 모임에서도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JTBC 정치부 회의에 의하면 박영수 특별검사가 색소폰 연주를 권유했다고 한다. 검사 시절부터 수십 년간 색소폰을 취미 생활로 계속 익혀온 관계로 일반인 수준에서는 굉장히 잘 부는 편으로 법조계에서 유명하고, 색소폰 녹음 CD 앨범도 만든 바 있으며 법조인 단체 관련 모임, 종교 관련 모임 등 본인과 관계된 여러 행사에 초청받아 색소폰 공연을 했다고 알려진다. 술자리, 특히 여자가 있는 술자리를 싫어하는데 검사로 있으며 이를 회피하기 쉽지 않아 이를 회피할 핑계를 만들기 위해 색소폰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 노회찬 의원과 경기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반이었고, 같이 도시락을 먹은 적도 있다고. 하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노회찬 의원에게 "황교안 총리와 동창 아니십니까?"라고 묻자 노회찬 의원이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하고요"라고 답했을 정도다. 1980년대 노회찬 의원이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되었을 때, 황교안은 공안검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구속 상태에서 검찰청으로 불려와 조사를 받던 노회찬을 자기 방으로 불러서 수갑도 풀어주고, 커피도 줬다고 한다. 그렇게 잠시 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구치소에서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노회찬이 "새로 지은 구치소가 따뜻해서 괜찮다"고 말하자, "그래서 내가 구치소를 너무 좋게 지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라면서 농담했다고 한다.출처1-13분 출처2 법무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2007년에 황교안 당시 검사장이 노회찬 의원에게 후원금(10만원)을 낸 적이 있어 정치적 중립을 어겼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노회찬 의원이 생을 마감하자 조문을 했다.

  • 노동운동가 단병호와도 인연이 있는데, 우선 단병호의 구속을 이끌어낸 검사이기도 했지만 훗날 단병호의 딸인 단정려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창원지검에 검사로 발령받을 때 맞이한 검사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언론에서 단 검사의 첫 출근을 예의주시했는데, 이날 인터뷰에 응한 황교안은 "공안검사와 피의자를 서로 적이나 원수처럼 생각해선 안 되며, 더구나 단 검사의 창원지검 발령이 무슨 원수의 아들을 맞이하는 것처럼 비쳐져서도 안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 2016년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통치력 상실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하여 페루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 국무총리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하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정상과의 회담은 격이 안 맞아 한 건도 성사되지 못했고, 주최국 페루의 경우에도 대통령도 아닌 부총리와의 면담이 유일한 회담이었다.[10]

  • 오바마, 푸틴, 시진핑, 아베 등의 외국 정상과의 기념촬영. 맨 하단 우측에서 두 번째에 있다.
파일:external/image.newsis.com/NISI20161121_0012416620_web.jpg

  • 재수한 77학번이다. 그 당시에는 대학을 전기 후기로 나눠서 한 번씩밖에 지원을 못하였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지원했다 낙방한 수험생들은 후기의 법대 중 가장 명문인 성대 법대에 진학했다.

  •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과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다. 그러나 이종걸은 당시 야당 원내대표 신분으로 황교안의 국무총리 지명에 강력 반대했다.

  • 유명한 관상학자 신기원이 2013년 인터뷰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의 관상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정계관료 중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이라 했다.

  • 왠지 지지층, 비 지지층을 가리지 않고 그의 이름을 황교'환'으로 오타를 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자주 보인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황교환'이라고 검색하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나온다. 심지어 언론사도 여러 곳 있다. 그의 이름을 발음할 때, [교]의 [ㅗ]와 [안]의 [ㅏ]와의 단모음 충돌 회피를 위해 그 사이에 [ㅗ]와 비슷한 [o̯→w]가 개재되어 발음이 [황교완]으로 될 수 있는데,[11] 이를 '황교환'에서 [ㅎ]가 약화된 발음으로 받아들이는 듯. 당연히 잘못된 표기이며, 표기도 발음도 황교안[황교안]이 맞는다.

  • 국내 첼시 FC 팬들이 윌리안의 별명으로 황교안을 밀어주기도 한다. 주전 누군가가 부실하다 싶을 때 대타로 들어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XXX 권한대행이라고 부르는 식. 탄핵론이 도마 위에 오르기 전에 주전의 폼이 돌아오는 게 일반적이고 윌리안도 기복이라든지 단조로운 패턴이라든지 여러모로 축통령 해먹기엔 한참 모자라서 축무총리 수준을 넘어서기는 힘들다.

  •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 지방의 개신교 예배당들을 순회하며 초청 예배를 다니며 근황을 알리고 있다.


  • 국무총리 퇴임 이후 교회 간증집회를 돌면서 자신을 성경에서 역경을 이겨내 이집트의 재상(총리)이 된 요셉에 빗대 '요셉 총리'라고 하기도 한다.

  •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직후 화법을 살펴보면, "안타깝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인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자꾸 폄하해서 왜곡해서 말하는 것 정말 안타까운데. 사실 왜곡들이 많이 있어서 안타까워요.", 홍준표 전 대표의 전당대회 불출마에 대해서는 "다 함께하는 그런 전당대회가 되길 바랐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왜곡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하여튼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화법은 자유한국당 대표가 되면서 보다 직설적·공격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세먼지, 사람이 먼지인가 등의 패러디 표현을 쓰면서 문재인의 미세먼지 대책을 풍자한 게 예시로 꼽힌다. 또한 '한반도 운전자론'을 비판하며 "운전대를 잡으려면 정확한 길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고, "한국당 의원들과 사무처를 비롯한 구성원 모두가 '민생 119 구급대원'"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성창호 판사 기소에 대해서는 "좌파독재가 시작됐다. 누가 봐도 명백한 김경수 판결에 대한 보복이고, 사법부에 대한 겁박", 문재인식 외교에 대해서는 "중국을 향해선 한없이 굴종적 모습을 보이면서 동맹국인 미국을 향해서는 한번 붙어보잔 식의 거꾸로 된 외교를 펼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 간 갈등에 대해서는 "촛불청구서를 찢어버리라"라는 입장을 드러내었다. 기사

  • 이회창과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경기고등학교 졸업생인 점, 법조인 출신인 점, 국무총리직을 수행했다는 점, 60대 초반에 총리직을 마치고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는 점, 정치 신인 상태에서 당권을 잡았다는 점, TK 출신이 아닌데도 TK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 보수층에 어필할 수 있는 신중하고 원칙적이며 안정감 있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 황해도와 연관이 있다는 점[12] 등 공통점이 많다. 물론 차이도 많다. 이회창은 금수저 출신이나 황교안은 흙수저 출신(피난민 출신)이라는 점, 이회창은 군대를 갔다 왔으나 황교안은 두드러기로 인한 병역 면제인 점, 이회창은 KS 성골에다가 연수원 성적도 우수해 대법관을 지내고 대법원장 물망까지 올랐던 법조계 최고 엘리트지만, 황교안은 서울대 입시 실패로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했고 법조계에서 이회창 만큼이나 화려한 탄탄대로를 걷지는 못 했다.[13] 이회창이 정계에 입문했을 당시 신한국당은 집권여당이었으나 황교안이 정계에 입문한 지금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박근혜 탄핵으로 인해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높지 않다는 점, 민정계와 민주계 모두의 지지를 받았던 이회창과 달리 황교안은 뚜렷한 당내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차이점으로 꼽힌다.[14]

  • 부미방 사건 당시 공안검사로서 자신이 사형을 구형했던 김현장을 정치적 멘토로 삼고 있다.[15]

  • 2019년 발렌타인데이에 아내가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밝혔다. 아내는 1962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목회상담학)를 취득했다. 나사렛대학교 나사렛상담센터에서 2009년부터 전임강사, 2015년부터 부교수로 재직했다가 2019년 9월 3일 사직했다. CCM 가수이기도 한데, 2000년에 '위대한 유산'이라는 복음성가 앨범을 비롯하여 여러 앨범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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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우여 전 부총리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법조인 출신인 점, 창원 황씨인 점, 박근혜 정부 때 장관급 이상의 고위직을 역임한 친박으로 분류되는 점, 보수정당의 당대표를 지낸 점,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점 등이 있다.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 인터뷰 중 '우한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 코로스'라고 말했다가 정정하는 사진이 캡쳐되어 퍼졌다. 혀가 꼬여 말실수하는 일은 누구나 종종 하지만, 하필 '코로스'가 일본어로 '죽이다(殺す)'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우한을 죽이겠다고 일본어로 말한 것이라거나, 오타쿠 까는 드립인 '오마에... 코로스!' 등과 엮는 등 웃음거리가 되었다. "코로나"와 "메르"를 헷갈렸거나, 코로나바이러스를 급하게 말하려다 혀가 꼬인듯. 이 외에도 마스크를 위아래 뒤집어 착용하는 사진이 있는 등 코로나19 관련으로 웃긴 짤방을 생성하고 있다.

  • 현재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보수 정치인 중에서 가장 실패한 인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좌측은 두말 할것도 없지만 우측에마저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해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릴 정도였고 심지어 본인도 2020년 4월 총선에서 대패하면서 정치생명이 거의 끝장났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의 선거 참패 이후 홍준표에게도 디스당했다. 다만, 장제원은 DJ가 몇 번의 선거에서 지고, 대선에도 졌으며, 영국까지 다녀왔으나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을 들어 그의 복귀를 기대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16] 그로부터 1년여 뒤인 2021년 7월, 대선출마 선언과 함께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4명으로 추리는 2차 컷오프에서 탈락하며 다시 한 번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 21대 총선 공보물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다. 올드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감성적인 부분들을 잘 챙겼다는 평. # 그러나 선거 결과는 망했다. 더블스코어로 패배할 거라는 예측조사까지 있었음에도 6:4로 맞춘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종로 출마 자체가 자충수였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자충수였을지는 몰라도 범우파적 시각으로 보았을 땐 친박의 구심점이었던 황교안이 종로에서 대패하고 모든 당직에서 물러남으로써 미래통합당 내에서 친박극우세력을 청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17][18]

  • 총선 기간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기존 보수정치인들의 채널과는 달리 꽤 젊은 감각과 편집 센스가 돋보인다. 북한 방송 느낌의 거부감들고 자극적인 스타일을 지양하고 대중적인 편집 기술을 도입하여 황교안 특유의 올드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 실제로 27살 자원봉사자가 유튜브 컨텐츠 기획과 영상 편집을 주도했는데 # 20대한테 총선 홍보팀 실무 권한을 줄만큼 나이와 연배를 따지지않고 일을 맡기는 참신함을 보여줬다.

  • 실향민 2세로, 부친이 6.25 전쟁 당시 월남했다.

  • 한때 '탈모가 있어서 가발을 착용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 탈모설: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삭발을 단행했는데, 어느 당 관계자가 '모발이식을 했다'며 기자에게 확인해준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모발이식을 했을 가능성은 없으므로, 탈모 등 모발이식이 필요한 어떤 사정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

  • 가발착용설: 다만 가발을 쓴 것은 진위여부가 확실치 않다. 법무부장관 시절 헤어스타일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던 점# 등을 미루어 봤을 때는 탈모를 가리기 위해 가발 등을 사용했을 것 같으나, 당사자인 황교안이 가발이 아니라고 해당 소문을 부인했다. #

  • 기타 관련 일화는 아래와 같다.

  •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어느 기자가 가발 착용 여부를 질문하자 "중요한 일이 많으니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면서 즉답을 회피한 적이 있었다. 암 치료 후유증인 탈모 때문에 가발을 착용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그 진위가 확인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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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12월에 대한민국 육군 제25보병사단 방문 중 철책 경계 태세를 시찰하면서 상황을 살펴보는데, 규정상 반드시 착용하게 되어 있는 방탄모를 쓰지 않아 문제가 되었고# 이에 간접적으로 가발 착용 루머가 힘을 얻게 되었다. 옆에 있는 한민구도 안 썼다. 그러나 사실 정치인들이 최전방 군부대 방문에서 방탄모를 쓰지 않는 건 사실상 관례화되어 있어서, 황교안만의 문제라 하기는 힘들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심상정 등, 이처럼 그간 정치인들의 GOP 등의 최전방 방문에 대해 검색해 보면 오히려 방탄모를 착용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게다가 위 사진에선 국방부장관인 한민구와 국가안보실장인 김관진(앞에서 5번째, 뒤를 돌아보고 있는 사람 김관진이 나온 다른 사진)을 비롯해, 뒤에 계속 있는 정부 측 수행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방탄모를 안 썼다. 참고로 미국 대통령도 쓰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는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들어왔다. 저격의 위험성이 있으니 원래대로라면 쓰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정치인들이 오는 시점에서 그 부대의 경계 태세는 미칠 듯이 상향되어서 평소보다 몇 배로 위험과 비상시를 대비하는데다가, 북한군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처럼 나무 한 그루 때문에 미군을 죽인 적이 있었지만 평시에 부대를 시찰하는 남측 정부 고위인사들을 쏴서 급작스런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바보들은 아니다. 더군다나 대통령급의 인사라면 방문 전까지 동선이 철저히 비밀이므로 해당 사단에 VIP가 온다는 것도 빨라야 당일에 관측으로 알게 될 것이고 설사 불순한 행동을 하려 준비할 때쯤이면 철수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위험은 더 줄어든다.

  • 그리고 조국이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것에 항의하여 2019년 9월 16일 삭발식을 진행했는데, 여기서 가발을 벗거나 하는 것 없이 머리를 그대로 깎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발 논란을 종식시켰다. 같은 날 자유한국당의 관계자가 "황 대표가 그동안 가발을 이용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으로, 정확히는 모근을 새로 심어 머리가 자란 것으로 안다. 오늘 삭발로서 (논란이) 정확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탈모갤에서는 '가발인척 하더니 풍성충이었다'며 단체로 황교안을 규탄했고 문재인의 원형탈모와 엮어 '대까문(가리 다 져도 재인)을 자처하는 유머도 등장했다. # 정작 문재인의 원형탈모 의혹도 단순 흰머리로 밝혀졌다.

  • 2022년에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 변호사로 영입되었다. 해당 법무법인은 개신교를 믿는 변호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는데, 황교안이 개신교 신자이며, 정치인으로서의 실패[19]와는 별개로 경력만 놓고 보면 상당한 법조/관료계의 거물[20] 이었던 만큼 영입대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8. 비판 및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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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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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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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야권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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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야권 정치인'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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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종교인 / 국제 인물 / NGO 지도자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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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희공파(恭僖公派) 24세손 교(敎)○ 항렬.[2] 구 블로그[3] 하필이면 이때가 63세 생일이었다. 결과 발표 이후 미래통합당 대표직을 포함한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다.[4]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5] 바로 위 '교회와 법 이야기'(2012)의 개정증보판이다.[6] 당장 신년사 영상에 적힌 댓글들을 보면 성우 데뷔해도 되겠다는 반응이 꽤 있다.[7] 기사에서는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야간)출신으로 알려져 있다.[8] 흔히 검사라면 마음껏 골프를 치러 다니는 광경을 생각하지만, 검사 조직은 금강석보다 단단한 위계질서로 유명하다. 또한 검사라 하더라도 보수는 박봉에 가까운 공무원일 뿐이라서, 골프 비용을 누군가가 보탤 처지다. 평검사가 골프를 치다가 걸리면, 본인이 개망신을 당한다. 편안하게 골프장에 들어가는 사람은 대개 부장검사부터다.[9] 원래, 검사, 판사들이 테니스가 취미인 이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법원, 검찰청 청사치고 테니스 코트가 딸려 있지 않은 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를 두고 어느 변호사는 '민원인 많은 법원이라면, 테니스 코트 같은 것을 지을 공간이 있으면 차라리 민원인 주차장을 넓혀라'고 투덜대는 글을 '법률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10] 사실 선출직이 아니므로 저기에는 격이 안 맞는 것이 맞다. 아무리 약소국의 국가라도 선출직 국가 수반이라면 최강국의 국가 수반이 정상 대 정상으로 만나 15분이라도 논의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외교상의 문법이다만 한국의 국가 정상이 당시 탄핵 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각국 정상이 갖는 대표성에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는 정상 대리자를 외교상에서 만나주지 않는다.[11] 국어에서 꽤 빈번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나(놓아[노아→노와\]), 표준 발음은 아니다.[12] 이회창은 본인이 황해도 출신이고, 황교안은 부모님이 황해도 출신 실향민이다.[13] 물론 고검장까지 찍고 법무장관으로 픽업됐으니 대성한 것은 맞다. 이후 국무총리를 지낸 것은 동일.[14] 이 차이점 때문에 이회창은 15대 대선에서 낙선하고도 한나라당 총재를 지내고 16대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등 강력한 당 장악력과 리더십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황교안은 21대 총선에서의 참패로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물론 재기여부 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15] 참고로 김현장은 이후 보수로 전향하여 이회창·박근혜를 지지하고,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사실 80-90년대 운동권 인사들 중에서 이처럼 정치적 노선을 변경하는 경우는 많았다. 보수정당에 포진된 수많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대표적인 예시. 이 기사에 따르면 아이젠크의 이론에서 진보·보수 사이는 비교적 전향이 잘 돼도 강경·온건 성격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에 딱히 이상한 현상은 아니라고 분석한다.[16] 그러나 DJ는 여러 번 실패를 겪었음에도 지역 기반지지 세력들은 건재했지만, 서울 출신인 황교안은 지역 기반조차도 없으며 같은 고향인 서울에서조차도 이낙연과의 선거 경쟁에서 패배했다. 극우 성향이 강한 네이버 뉴스 코멘트란에서도 황교안에 대한 비난이 베스트 댓글의 대부분인데, 그들 기준에서 황교안은 화끈하게 친박이거나 강성 우파도 아니기에 술에 물 탄듯 성향이 모호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DJ의 경우 죽을 고비도 몇번 넘겼었고, 정치적 경험치도 매우 높은 베테랑 of 베테랑인데 반해 황교안의 경우 정치 경력이라고 해 봤자 갑작스럽게 맡게 된 대통령 권한대행과 당 대표직 등 단 둘 뿐이다. 게다가 DJ가 활동하던 시대와 지금 현재 한국의 정치환경은 매우 다르다. 따라서 아주 특수한 상황이 오지않는 한 황교안의 정치 재기는 현재로선 어려울 수 있다. 동료 정치인에게 으레 던질 수 있는 위로성 덕담 정도로 이해하는 게 가장 정확한 분석일 듯하다.[17] 이게 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냐면, 선거의 승패유무를 떠나서 분명이 미래통합당 내의 탄핵반대세력, 즉 친박세력을 청산하는 것은 당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친박세력을 이끌고 있는 황교안이 만일 강남, 서초 등의 미래통합당 지지세가 높은 지역구에 나와서 당선이 되었다면 친박세력은 친황으로 변모하여 이전보다 더욱 활개를 칠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미래통합당은 친박청산은 커녕 그들에 의해 더욱 극우화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황교안이 종로에 출마하여 패배함으로써 친박세력이 집결할 수 있는 구심점이 사라졌고, 김진태, 민경욱 등의 강성친박 또한 선거에서 낙선함으로써 미래통합당 내에서 친박극우세력은 사실상 몰락하게 되었다. 이는 김종인을 위시로 한 비대위가 순조롭게 구성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종인은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대승을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친박세력의 입장에서는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다. 실제로 이번에 전광훈을 위시로 한 2020.8.15 집회도 친박극우 지지자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는데, 미래통합당에서 재빨리 집회에 대해서 선을 그을 수 있었던 것도 당내의 강성 친박 극우세력들이 거의 사라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18] 하지만 미래통합당(이후 국민의힘)이 친박세력을 청산하고 쇄신이 가능해진 건 황교안 덕분이 아니라 황교안이 21대 총선을 대차게 말아먹었기 때문이라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19] 정치가로써 실패했음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제1야당 대표까지 지낸 시점에서 어마어마한 스팩임은 틀림없다.[20] 검사로서는 고검장까지 갔고, 검사 퇴직 후에는 법무부 장관 - 총리 -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넘사벽 수준의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검사장으로 10명이 승진을 하면 서울대 출신이 8명, 고려대 출신이 2명이 예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검찰계에서 성균관대 출신으로 고검장까지 오른 것은 인정할 만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