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농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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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창덕궁 농산정
昌德宮 籠山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1636년 (창건 추정)

농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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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소요정, 취한정, 취규정, 청의정, 태극정과 같이 소개한다.

1. 개요
2. 이름
3. 역사
4. 구조


1. 개요[편집]


창덕궁 후원 옥류천 권역에 있는 건물이다.

이름은 정자이지만 사방이 트인 일반 정자들과 달리 마루온돌방이 있어서 사람이 묵을 수 있었다. 또한 부엌도 있어서 음식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 쉬려고 만든 별당 혹은 옥류천 일대에서 가벼운 행사 등을 할 때 필요한 음식을 만드는 용도였던 듯 하다.


2. 이름[편집]


'농산(籠山)' 뜻은 '으로 싸여있다'이다. '농(籠)'은 직역하면 '대나무 바구니', '같은 상자'를 말하는데 의미를 확장해서 '둘러싸다'는 뜻으로도 쓴다. 산 속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을 건물의 이름으로 쓴 것이다.


3. 역사[편집]


창건 시기는 모른다. 다만, 1636년(인조 14년)에 지었다는 설이 있다.

공식 기록에 처음 나타난 때는 정조 때인 1792년(정조 16년) 3월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대보단에 참배하기 전에 여기서 여러 번 묵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1795년(정조 19년) 2월에는 현륭원 행차를 대비해 혜경궁 홍씨가마를 메는 예행 연습을 후원에서 한 뒤 수고한 신하들에게 여기서 음식을 대접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더 고생했을 듯 하다[1]

순조는 여기서 관리 및 유생들의 학문을 시험하기도 했다. 입직한 음관들에게 를 짓게 하고[2]##, 성균관 유생의 응강[3]을 행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왼쪽은 《동궐도》의 농산정(붉은 원 안), 오른쪽은 《조선고적도보》의 농산정


4. 구조[편집]


  • 1층[4] 목조 건물이다. 칸 수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총 5칸이다. 기단은 2단으로, 장대석으로 쌓았다. 기둥주춧돌은 사각이다.

  • 지붕은 맞배지붕, 처마는 홑처마로, 납도리집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기와로 쌓았으며, 용두, 잡상 등의 장식물은 올리지 않았다. 단청은 긋기단청[5]으로 칠했다.

  • 건물 앞면과 뒷면(동면과 서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했다. 쪽마루를 받치는 기둥나무이다.

  • 남쪽부터 2칸이 대청, 2칸이 온돌방, 1칸이 부엌이다. 출입은 대청의 동쪽 면으로 할 수 있다. 온돌방과 대청 서쪽 면 하단에는 머름을 두었다.

  • 부엌의 겉면은 동, 서면이 다르다. 동면은 중인방을 두고 그 위에 창문을, 아래에 벽과 붉은 나무을 설치한 형태이다. 서면은 동쪽 면과 거의 비슷하나, 그 아래에 벽돌암석으로 쌓은 방화벽을 설치한 것이 다르다.

  • 양측면(남면과 북면) 하단에는 방화벽을 설치했다. 상단은 양쪽 면이 다르다. 남면은 창문이지만, 북면은 이다.

  • 온돌방 내부는 칸 구분 없이 트여있다. 대청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 일제강점기에 만든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동면에 현판이 걸려있었다. 현재는 없다.

  • 동궐도》에는, 농산정 남쪽에 취병[6]을 두르고, 취병 가운데에 홍예 문을 설치한 모습이 나온다. 현재 취병과 문은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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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덕궁 후원에서 옥류천 일대를 가려면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한다.[2] 이를 응제(應製)라고 한다.[3] 應講. 강경과(講經科)에 응(應)하는 것. 강경과는 과거에서 외운 경서를 암송시킨 후 등락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다.[4]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5] 가칠단청 위에 선만 그어 마무리한 단청이다.[6] 翠屛.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뼈대 사이마다 키 작은 나무나 덩굴 식물을 심어 자라게 하는 형태의 담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