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석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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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복헌[1] 사진출처 -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창덕궁 낙선재. |
1. 개요[편집]
창덕궁 낙선재 권역의 안채이다. 낙선재의 동쪽에 있다.
2. 역사[편집]
낙선재 본채보다는 1년 늦은 1848년(헌종 14년)에 지었으며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머물렀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1849년(헌종 15년)에 헌종이 죽자 후궁인 경빈 김씨는 궁에서 나왔고 석복헌은 비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1912년에 고종의 친형인 흥친왕이 죽자, 순종이 석복헌 동쪽 뜰에서 망곡[2]
望哭. 시신 있는 쪽을 향해 곡하는 것.
1966년 2월 3일 순정효황후가 이 곳에서 붕어했다.
3. 구조[편집]
-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장대석 기단 2단을 놓고 그 앞에 2단짜리 계단을 2개 놓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뜰은 ‘ㅁ’ 자 형 평면으로 되어있으며 본채와 행랑채가 서로 붙어있고 동, 서 행랑채의 지붕은 각각 높이의 차이를 두어 층이 나있다. 서쪽엔 온돌방, 동쪽에 대청을 두었고, 대청 쪽 온돌방 앞의 한 칸은 툇마루를 두고 다른 온돌방 앞은 툇마루를 막아놓았다.
[1] 사진출처 -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창덕궁 낙선재.[2] 望哭. 시신 있는 쪽을 향해 곡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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