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건무문

덤프버전 :

분류



[ 펼치기 · 접기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창덕궁 건무문
昌德宮 建武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창건연대 미상
1. 개요
2. 이름
3. 역사
4. 구조
5. 여담



1. 개요[편집]


창덕궁의 궁문이다. 북쪽 궁장에 있다.

창덕궁 후원과 바로 통하며 산등성이에 위치한 특성 상 평소에는 닫았다.


2. 이름[편집]


'건무(建武)' 뜻은 '무(武)를 세운다(建)'이다. 여기서 '무(武)'는 사신(四神) 중 하나인 현무(玄武)를 말한다. 현무는 북방을 나타내는 동물이다. 즉, 북쪽 문이란 뜻이다.


3. 역사[편집]


원래 창덕궁의 북문은 광지문이었다. 그러나 인조 이후 광지문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승정원일기》의 1784년(정조 8년) 6월 22일 자 기사부터 건무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광지문이 건무문으로 이름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광지문 대신 건무문을 새로 지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4. 구조[편집]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건무문 동궐도.png}}}||
《동궐도》 건무문
다른 궁문처럼 을 따로 세운 게 아니고, 담장의 일부인 형태로, 평대문이다. 다만 《동궐도》에는 문이 한 칸 짜리로 따로 있어서 나중에 모습이 바뀐 듯 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건무문 현판.jpg}}}||
건무문 현판
현판을 문 안쪽에 걸었다. 바탕에 칠을 하지 않았다. 글씨는 원래 검은색이었던 듯 하나 후에 변색된 듯 하다.


5. 여담[편집]


1884년(고종 20년) 갑신정변청나라의 개입으로 개화파가 수세에 몰리자, 창덕궁에 있던 고종이 북묘[1]로 피신할 때 이 문으로 빠져나갔다. 이 때 정변을 주도한 홍영식, 박영교 등이 고종을 호위하다 이 근처에서 살해당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10:12:35에 나무위키 창덕궁 건무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1883년에 지은 관우를 모신 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