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이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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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창덕궁 이문원
昌德宮 摛文院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1781년 (창건 추정)
2004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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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청사. 현판 글씨는 '규장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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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제작한 규장각 3D 영상
1. 개요
2. 역사
3. 구조
4. 여담




1. 개요[편집]


창덕궁 규장각 구역에 있는 건물이다. 조선왕실 도서관 및 학술연구기관 규장각의 사무청사이다.

규장각 기구에 대한 설명은 규장각 문서 참조.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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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의 이문원 일대. 붉은색 원 안이 이문원이다.
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7년(정조 1년)에 창덕궁 후원에다 주합루를 짓고 그곳에 규장각을 두었다. 그러나 규장각의 규모가 커져서 주합루에 많은 문서를 보관하기 힘들자, 1781년(정조 5년)에 옛 오위도총부 자리에 규장각을 새로 지어 이전시켰다. 이 때 사무청사로 지은 것이 이문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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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철거 및 개조 후 모습을 담은 엽서[1]
일제강점기일제가 헐었다가 문화재청에서 2000년 ~ 2004년에 복원했고 2005년부터 일반에 개방하여 오늘에 이른다.


3. 구조[편집]


  • 1층[2] 목조 건물로 남향(南向)이다.

  • 기둥 위에 건물을 올렸다. 정면 기둥 사이는 외부와 통해있으나, 나머지 돌기둥 사이에는, 장대석 한단을 깔고 그 위에 사고석과 벽돌로 고막이벽을 두었다. 뒷면 고막이벽에는 구멍을 뚫었다. 보관하던 과 문서가 좀슬지 않게 환기와 통풍을 시키기 위한 용도인 듯 하다. 뒷면 가운데 3칸의 구멍은 벽돌에 2개 씩 뚫었고, 양 옆 칸의 구멍은 사고석에 1개 씩 뚫었다.

  •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이다. 앞면 5칸은 툇간이고, 가운데에 대청 6칸, 대청 양 옆에 온돌방이 각각 2칸 씩 있다. 대청 칸은 전부 뚫려있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 공포는 이익공[3]이다. 공포 사이에 장화반을 설치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양성바름을 하고, 용두와 취두, 잡상을 올렸다. 지붕 측면의 합각은 나무판으로 마감했다.

  • 출입문은 정면 가운데 3칸에 있으며, 그 앞에 나무로 만든 계단을 놓았다. 나무 계단 양 옆에는 난간을 설치했다. 난간은 풍혈을 뚫은 궁판 위에 하엽동자 모양의 난간기둥을 두고 그 위에 돌란대를 설치한 형태이다.

  • 양측면과 뒷면의 외벽은, 하단부에 머름을 두고 그 위에 띠살창을 둔 모습이다.


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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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측우대
이문원 앞 마당에 있던 측우기 받침대는 현재 국보 제331호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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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2]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3] 창방과 직접 만나 보를 받치는, 쇠서(소 혀 모양의 자재)를 두 겹으로 낸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