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일(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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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정영일(야구선수)

1. 아마추어 시절
2. 마이너리그 시절
3. 귀국
5. 원더스 퇴단 이후
6.1. 2016 시즌
6.2. 2017시즌
6.3. 2018시즌
6.3.1. 포스트 시즌
6.4. 2019 시즌
6.5. 2020 시즌
6.6. 2021 시즌


1. 아마추어 시절[편집]


남들보다 훨씬 일찍 야구를 시작한 케이스로, 무려 초등학생이 되기 1년전인 7살부터 사실상의 예비 초등야구부원으로 시작했다. 집이 광주 화정초등학교 바로 앞이라 어릴때부터 매일같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자주 놀러 갔는데, 어느날부터 친구들과 놀다가 근처에서 야구부 형들이 연습하다 날려버린 공들을 던져주었고, 선배형들과 친해지자 그냥 같이 야구하자고 해서 사실상 진짜 야구부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감독이나 선배들이 볼때 어차피 집이 학교랑 붙어있다시피한 위치상 자기 후배가 될 테니 미리 키워놓자는 생각으로 받아들인 듯. 아예 학교는 안들어갔는데 야구부만 들어간 처음부터 훈련 전 달리기부터 다 하면서 그냥 정식부원이랑 완전히 똑같이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본인이 야구가 재미있다고 느꼈기에, 미취학아동일때라 빠져도 혼날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학시기가 올때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똑같이 달리고 던지면서 매우 성실하게 훈련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단체기합때 본인도 형들이랑 같이 머리를 박는 원산폭격을 했다고 한다. 그랬기에 예쁨도 많이 받아서 코치나 형들이 먹을 것도 많이 줬다[1]고 한다. 다음해에 진짜 그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도 아무런 낯선 감정도 거리낌도 없이 공식 야구부원이 되었고 코치나 선배들에게도 에이스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특유의 강속구를 앞세워 진흥고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안산공고김광현, 북일고장필준과 함께 고교 최대어로 부상, 국내뿐만 아니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스카우터들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받게 된다. 문제는 혹사를 당했다는 점인데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1회전에서 13⅔이닝동안 경기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서 242개의 공을 던지는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했다. 탈삼진 23개를 잡으며 고교 신기록을 세웠으나(12피안타, 11사사구, 6실점)[2] 팀은 성의준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졌다. 그리고 이런 식의 혹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익히 알려져 있다.[3] 정영일이 혹사당할 당시 진흥고 감독은 박철우 전 두산 2군 감독이며 NC 다이노스 포수 박세혁의 아버지다.[4]

파일:정영일 고교시절 혹사.png
이걸로 끝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다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도 5게임 동안 700개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이 때는 진흥고가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청룡기 결승에서 경남고등학교와 만나 16이닝 동안 222개의 공을 던졌다. 이렇게 하고 우승을 했으면 모를까, 결국 청룡기 결승에서는 이상화이재곤이 이어던진[5] 경남고에게 16회 연장 접전 끝에 패[6]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 경기 당시 에인절스 행이 확정이였는데 아무리 투수가 없다지만 무리하게 던지게 한 감독에 대한 질타가 컸었다. 거기다가 간만에 고교야구가 저녁 6시 경에 지상파 생중계를 했었는데 9회 이후에도 정영일이 무리해서 계속 던지자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정영일 어머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계속 잡혀 많은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연달아 개최된 대통령배, 청룡기, 무등기[7], 대붕기에서 이런 식으로 매 대회마다 매 경기 마운드를 책임지며 혹사당했다. 그리고 좌타자로서의 재능도 있어서 타석에도 종종 들어섰기 때문에 쉴 기회 자체가 없었다.


2. 마이너리그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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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에인절스 입단식 때.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고 팀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게 된 정영일은 한기주의 10억, 김진우의 7억에 이은 KIA 타이거즈 신인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인 5억 원의 계약금을 제시받았다. 하지만 정영일 측은 한기주김진우 사이의 계약금을 요구했고 기아가 고민끝에 협의 금액인 7억원을 맞춰주면서 1차지명을 하였으나 거절 후 미국 진출 시도하였다. 그리고 정영일은 2006년 7월 LA 에인절스과 계약, 역대 31번째로 미국에 진출한 대한민국 유망주가 된다. 계약금액은 110만 달러로, 당시 환율로 따지면 약 11억원이었다.[8][9]

입단하자마자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에인절스 내 유망주 랭킹 4위에 오르는 등 그의 장래는 밝아 보였으나, 고교 시절의 혹사 후유증이 생각보다 깊었다. 미국 진출 후에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8년에는 오른쪽 팔꿈치 부상 때문에 토미 존 서저리를 받기에 이르는데, 장기간의 재활로 시간을 허비한데다 다른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성장하며 그의 입지는 줄어만 갔다.[10] 결국 2011년 2월, 정영일은 자진해서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고, 결국 같은 해 5월 27일에 방출되었다.

정영일이 5년간 마이너리그(루키리그, 싱글 A)에서 던진 이닝수는 고작 33이닝. 5년간 4게임 정도 완투한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당한 혹사가 이런 참담한 결과를 빚은 것이다. 정영일의 혹사 이후로 고교야구 선수들의 혹사를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이 고안되었고[11] 결국 도입된 게 주말야구제다.


3. 귀국[편집]


방출되어 귀국한 후 가진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대한민국에 돌아온 후 모교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KIA의 지명권이 해외 진출로 인해 소멸되어 신인 드래프트에 다시 참가해야 하는 데다가 2년의 유예 기간 및 군 문제도 걸려 있고 부상 경력이 있어 복귀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무와 경찰청 입대를 시도했으나 지원에 실패했다.

이에 대해 정영일 본인은 인터뷰에서 규정상 입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엄밀히 말해 해외파 선수들의 입대를 제한하는 규정은 명문상 없으나[12]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2013년 현 시점에서는 사실로 보인다.[13]


4. 고양 원더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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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말 국내 첫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다. 12월 27일 팀 훈련에 합류했다. KBO에서는 정영일이 고양 원더스에 몸담은 기간이 유예 기간에 들어가는지 제외되는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14] 그러다가 정영일, 남윤성[15]에게 퓨처스리그 출전 제한 조치가 내렸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몸 상태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정영일은 결국 선수 명단에서 제외됨으로써 고양 원더스와의 인연을 끊게 되었다.


5. 원더스 퇴단 이후[편집]


그 뒤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2012년 6월 7일부터 4일 동안 열린 3회 제주 국제생활체육야구대회에서 경기도 안산 연합팀 소속으로 출장해 12타수 10안타를 기록하며 타격상을 수상했음이 알려졌다.[16] 사회인 야구 규칙상 선수 출신이라 투수로 못뛰고 타자로 뛴 모양.

고교시절부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입문 때까지 한살 위인 한기주와 자주 비교가 되었다. KIA가 정영일을 놓쳤을 때, 한기주와 정영일 둘 다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기아 팬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근데 2010년대에 접어든 이후로는 둘 다 신통치 않다. 둘 모두 광주광역시 출신이고 고등학교때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한기주는 기아에 와서 혹사로 "한작가"로 전락하며 부상병동을 전전하고 있고, 정영일은 선수생활 자체가 기로에 섰으니...

2013년 3월 6일, 일본 독립리그 팀인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즈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본인 말로는 전반기에 기량을 끌어올려 대한민국 또는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언급한 것을 봐서는 알음알음 병역 면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한 정보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독립리그에서도 고작 3경기에 등판해 1 2/3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5.40, 1피안타, 4피사사구, 2탈삼진에 그쳤다.

결국 7월 1일자로 일본 독립리그를 떠나 2차 지명에 응하기로 했다. 이미 유예기간은 5월 말로 다 채웠기 때문에 신인 지명 대상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지만 오랜 기간 실전 등판이 거의 없었던데다가 병역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잘해야 하위 라운드에서 로또를 바라는 수밖에는 없는 실정. 물론 과감히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17]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일단 8월 7일 KBO에서 주최한 트라이아웃[18]에서는 최대 구속이 140 초반에 그쳤다[19]. 더운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당초 2차지명 참가를 밝히면서 언급했다는 148에는 못 미치는 수치.


6.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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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6일 SK 와이번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50km/h를 던졌던 포텐셜과 가능성, 절박함을 보고 민경삼 SK 와이번스 단장이 지명했다고 언급했다. 여러 번 실패를 맛본 만큼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형식은 "우리 형이라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며 기뻐했다. 한편으론 투타로 만났을 때는 반드시 안타를 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20]

문제는 조만간 나이가 차게 되는 관계로, 아직 미필인 그의 군 입대 시기가 언제인가였다. 민경삼 단장은 정영일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병역에 대해서 정영일 본인과 상의해서 조율할 것이라고 입단 때 언급했다. 일단 9월 4일 오수호와 함께 재활군에 합류했으며, 9월 30일에 계약금 없이 SK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다.[21] 병역은 둘째치고 팔꿈치 부상 이후 실전 감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실전 감각 회복과 몸 관리라는 2마리 토끼를 잡는 측면에서 우선 상무에 입대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2013년 10월 25일 발표한 2013년도 4/4분기 상무의 선수 선발 서류전형 합격자에 포함되었고, 결국 최종 합격에 성공해서 비로소 군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입대하기 전 으로 출국, 재활캠프에서 김경태 재활코치를 통해 밸런스를 잡은 후 귀국하여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2014년 상무에서는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39경기 42이닝 동안 3승 2패 1세이브 9홀드 ERA 3.86의 무난한 성적을 냈다. 구속 역시 145km/h 이상으로 올라왔다. 퓨처스 올스타전에도 선정되어 남부리그의 마무리로 대기하고 있었으나 경기가 2회에 우천으로 취소되면서 등판은 없는 일이 되었다.

2015년에는 2군 리그가 끝난 후 제대를 앞두고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했다. 시즌 후 2차 드래프트가 있기 때문에 구단의 방침에 따라 제대 후 문승원, 김태훈, 오수호 등과 함께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교육리그에 파견되어 빼어난 구위를 선보였으며, 최고 구속은 154km/h 를 기록했다. 이후에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특별 마무리캠프에도 참가했다.

2016년 정우람, 윤길현이 FA로 이적하는 등 기존 불펜들이 상당히 빠져나간지라 상당수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6.1. 2016 시즌[편집]


4월 7일 사직 롯데전에서 8회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손아섭에게 솔로홈런을 맞기는 했으나 1이닝 1피안타 1홈런 1실점으로 잘 막았다.

4월 14일 기아전에서 2점차 뒤진 상황, 2사 만루에서 8회초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김주찬을 삼진으로 처리하고 위기를 넘긴다. 9회초 또한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고, 9회말 정의윤의 동점타와 박정권의 끝내기 안타로 KBO 통산 첫 승리를 챙겼다. 통산 첫 승을 기록하고 팀에 피자 20판을 돌렸다고 한다.

5월 2일 더 많은 경기에 등판해 감을 쌓으라는 김용희 감독의 지시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가 6월 9일 1군에 다시 콜업되었다.

6월 15일 삼성전에서 3이닝을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홀드를 따냈다. 이 경기 중 투구하다가 모자가 자꾸 벗겨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본인은 힘이 잘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개의치 않고 있다.

첫 시즌은 1군과 2군을 오가며 21경기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4.74의 성적을 기록했다.


6.2. 2017시즌[편집]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9경기에 나와 8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10.13 12실점을 기록한채 시즌을 마감했다.


6.3. 2018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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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팀의 2차 스프링캠프지인 오키나와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서 등판하여 강력한 구위를 뽐내며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3월 6일 LG 트윈스와의 연습경기에서 8-7로 앞서던 7회말에 등판하여 한치의 틈도 주지않고 1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며 홀드를 기록하였다.

3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KBO 리그 개막전에 선발 투수 메릴 켈리를 이어서 두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본인의 2018시즌 첫번째 홀드를 기록하였다.

3월 27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컨디션 난조로 3실점하고 강판된 김주한을 이어서 7회초 등판했다. 1 ⅓이닝 5타자 상대하여 1피안타 1피홈런 1실점을 기록하며 마무리투수 박정배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3월 30일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 1차전에 선발 김태훈을 이어서 6회말 등판했다. 1이닝 1피안타 2K 1실점을 기록했다.

4월 3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 1차전에 선발 박종훈이 헤드샷으로 인한 자동퇴장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6회초 2사 만루상황에 등판했다. 갑작스런 등판에도 불구하고 1 ⅓이닝 무피안타 1삼진 무실점 투구를 보이며 좋은 활약을 했다.

5월 4일 박희수와 함께 말소됐다가[22] 6월 13일 김강민, 박정권, 백인식과 함께 콜업되었다.[23]

8월 7일 삼성전 9회초 한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하여 김성훈김상수를 각각 1루수 땅볼과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그 다음 타자 박해민에게 16구까지 가는 승부에서 2루타를 허용, 결국 1실점했다.

그러나 이후 8월 12일 KIA전부터 9월 13일 한화전까지 7경기에 나와 6.2이닝을 소화하며 안타는 딱 2개 허용했고 사사구 역시 몸에 맞는 공 하나에 불과하는 등 피출루는 단 3번인 반면, 삼진은 5개나 잡아내는 등 좋은 피칭으로 믿을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9월 5일 넥센전 9회초에 등판해 박병호의 몸을 맞춰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9월 30일 삼성전 8회 1사 만루 상황에 등판해 이원석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올시즌 최종성적은 51경기 등판 44이닝 소화 3승 13홀드 평균자책점 5.32. 스탯티즈 기준 올시즌 WAR은 -0.05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0.33에 이어 2시즌 연속 음수 WAR을 기록했다. 그래도 팀의 불펜이 열약하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 엔트리엔 승선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평범한 불펜자원이었으나....


6.3.1. 포스트 시즌[편집]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7회에 등판에 세 타자를 깔끔히 잡고 홀드를 챙겼다.

3차전에서도 비록 팀은 패했지만 1점차로 추격하고 있던 8회말에 등판해 세 타자를 역시 범타로 요리했다.

4차전에도 등판해 3연투[24]를 벌였고, 0:3으로 뒤지던 1사 2,3루에 김택형을 구원 등판했으나 김하성에게 안타를 맞고 1점을 더 주었다. 하지만 뒤 두 타자는 깔끔히 잡고이닝을 마무리 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사실상 마무리로 승격했다. 워낙 신재웅이 안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주고 있어서 접전에선 쓰지 못하니 남는 카드 중에 가장 믿을만한 선수가 정영일이기 때문. 실제로 1차전 7:3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세이브 상황은 아니지만 9회말 마무리로 등판해서 상대 3, 4, 5번을 맥도 못 추리게 해서 잡아버리고 게임을 마무리했다.

2차전에는 지고 있는 상황이라 등판하지 않았으나 추격조로 내려간 신재웅이 또 불을 지르는 바람에 마무리 역할은 계속 맡을 듯 하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상황에 따라 마무리를 투입한다고 공언한 상태.

3차전에는 김태훈이 8회부터 잘 던지고 있는지라 9회까지 마무리를 맡기려 했으나 9회 2사 후 2안타를 맞으며 불안해지자 플레이오프 5차전의 악몽 바로 정영일을 올렸고, 정영일은 정수빈을 우익수 뜬공으로 가볍게 잡아내고 게임을 잡아냈다. 경기는 5점 차였기 때문에 주자 2명에도 세이브를 달성하지 못했다.

5차전에서는 9회 마무리로 등판해 1사후 안타와 볼넷을 내줬지만 정진호를 직선타 후 더블 플레이로 처리하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2.2이닝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한국시리즈 6이닝 7탈삼진 무실점, 총 포스트시즌 8.2이닝 4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을 기록. 흔들리는 SK 불펜을 앙헬 산체스, 김태훈과 함께 꽉 잡아주었다.

포스트시즌부터 한국시리즈까지 팀의 최대 약점인 불펜의 구멍을 메우는 에이스이자 버팀목으로 활약하며 생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상대편 코치로 있던 박철우가 진흥고 시절 정영일을 혹사시킨 주범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눈 앞에서 나름대로의 복수를 한 셈이 됐다. 이로 인해 형제가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갖는 진기록도 달성되었다.


6.4. 2019 시즌[편집]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며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차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작년의 경험으로 한층 더 성장한 좋은 구위를 선보이는 중이었으나 시범경기 기간 불펜에서 몸을 푸는 도중 햄스트링 미세손상 진단을 받으면서 개막 엔트리 승선은 어려워졌다. 2~3주 정도 소요될 예정.

4월 2일 KT와의 2군 경기에 등판해 공 7개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조만간 1군에 콜업될 듯.

4월 5일 박희수와 함께 콜업되었다. 말소된 선수는 김재현강지광.

5월 4일 옆구리 뭉침 증세로 1군에서 말소됐다.

5월 26일 1군에 복귀했다.

이후 필승조인 서진용, 김태훈, 하재훈이 피로가 쌓이거나 컨디션 좋지 않은 선수가 있을 때 필승조처럼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상 필승조에 편입되며 중요한 순간에 많이 올라온다. 콜업 이후 부터 6월 15일까지 9경기 올라와 한 개의 안타도 맞지 않고 무안타로 ERA을 2점대로 낮췄고, WHIP도 1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즌 초 불안한 모습이 사라지고 작년 플레이오프 모드로 회귀했다.

6월 19일 기아 전에도 올라와 1이닝 퍼펙트를 기록했다. 콜업 이후 10경기 10이닝 무피안타, 볼넷 두 개로 2번의 출루 허용한게 전부로 WHIP도 0대로 낮췄다.

6월 23일 두산전에 6회에 올라와 오랜만의 피안타와 볼넷을 내주고 위기를 맞았으나 무실점으로 게임을 끝냈다.

6월 26일 옆구리가 안 좋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4일 정도 휴식을 줄 예정이라고.#

결국 다음날 말소되었다. 왼쪽 옆구리가 파열돼 회복까지 4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회복에 전념했고 7월 29일 몸상태는 완벽하나 실전 감각이 떨어져 최고 구속이 143km/h에 머무른다고 한다. 팬들은 곧 1군에 복귀해 필승조 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8월 1일 1군에 복귀했다.

콜업 당일 KIA전 8회초 등판해 1이닝 동안 2볼넷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8월 22일 한화전 9회초 등판해 1이닝 동안 삼진 2개 포함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고 팀의 승리와 자신의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9월 28일 정규시즌 1위가 걸린 중요한 라팍 삼성전, 9회초 박정권의 극적인 동점포로 초접전 상황이 된 9회말 7:7 상황에서 등판, 안타를 허용하긴 했으나 3K로 아웃카운트를 채우며 막았다. 그러나 10회초 2사만루 찬스에서 박정권임현준에게 삼구삼진을 먹으며 역전에 실패했고, 10회말 다시 등판했으나 이학주에게 끝내기 투런포를 맞고 말았다. 결국 두산 베어스에게 1위를 내주며 SK 와이번스의 시즌 마지막 패전투수가 되었다. 두산의 9경기차 뒤집기 자료화면이 된 것은 덤(...)

6.5. 2020 시즌[편집]


가벼운 허리 통증으로 인해 미국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않고 강화 퓨처스파크에서 훈련을 했다. 때문에 개막전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하고 팀이 연패에 빠진 5월 20일에 콜업되었다. 원래 필승조에 포함된 선수라 중용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SK 불펜진이 갑자기 폐급 수준으로 안 좋아져서 활약이 중요해졌다.

5월 21일 첫 등판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올렸으나 23일 KIA 전에서 2실점하며 부진했다.

다음 날도 올라와 다소 고전했으나 잘 틀어막고 승리를 챙겼으며, 29일 한화전은 흔들리는 하재훈을 구원 나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고 세이브를 올렸다.

이후 급격히 안정감을 찾으며 김정빈-서진용-하재훈 필승조를 받쳐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다가 후배 선수들의 음주, 무면허 운전 때 얼차려를 지시했다는 이유로 인해 1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25]

8월 18일 확장 엔트리로 콜업되었다.


6.6. 2021 시즌[편집]


조모상을 당했다.

스프링캠프에 참여하면서 전 시즌에 과도한 훈련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밝혔다. 135~6km/h가 나온 게 처음이었다고.

전반기 등판은 퓨처스에서도 거의 없었으나, 7월 30일 서머캠프 및 퓨처스리그 키움전에서 1이닝을 소화했다. 143km/h도 찍었다.

김원형 감독은 후반기에 서진용과 정영일이 활약해주길 원한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8월 11일 LG전에서 이번 시즌 첫 등판을 가졌다. 선발 오원석이 LG 타자들에게 얻어맞아서 이미 게임은 돌이킬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로베르토 라모스의 대체 선수로 들어온 저스틴 보어에게 데뷔 첫 안타이자 홈런을 허용하며 선발 전원 안타를 달성하게 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음날인 12일에 말소되고, 빈 자리엔 신예 조요한이 등록되었다.

9월 19일 퓨처스 고양전에서 0.2이닝 동안 2피안타 4사사구로 4실점씩이나 하며 경기를 내줬다. 왠지 이 분이 생각나기도 하며, 드래프트 때 대거 투수들을 뽑은 바 있어 자리가 위태로워 보인다.

결국 10월 31일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12월 29일 스포츠춘추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구단의 영입제안이 없어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인천 남동구의 야구 아카데미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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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09:48:21에 나무위키 정영일(야구선수)/선수 경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부모가 야구부원이 되는걸 반대할때 일주일 정도 단식투쟁을 했는데, 사실은 낮에 학교 야구부 가서 코치와 선배형들이 주는 음식을 다 먹으면서 한거라고 한다. 그건 단식투쟁이 아닌데?[2] 이후 2013년 4월 7일 포항 야구장에서 열린 고교야구 주말리그에서 상원고 이수민이 대구고를 상대로 10이닝 동안 26개의 탈삼진(9이닝 24개)을 잡으며 기록을 갱신한다.[3] 어느 정도 심각했냐면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인 노회찬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겠다고 할 정도로 꽤나 시끌시끌한 사건이기도 했다.###[4] 이러한 사실이 발굴되며 일부 팬들은 당시 감독이었던 박철우 코치를 까대고 있고,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정영일이 박철우가 코치로 재직 중인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호투하고 SK 와이번스가 최종적으로 업셋 우승을 달성하자 혹사시킨 것에 대한 복수라며 통쾌하다고 하는 팬들도 있었다.[5] 선발 이상화는 13 1/3이닝, 구원 이재곤은 2 2/3이닝을 투구했다. 경남중 시절부터 혹사당한 여파로 이상화도 프로에서 큰 두각을 못 나타내고 있다. 이재곤은 2017년 시즌을 끝으로 롯데에서 방출당했다. 여담으로 당시 경남고 감독은 이종운.[6] 신본기의 끝내기안타로 경남고가 2대1로 승리했다.[7] 동료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많은 이닝을 책임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구미전자공고와의 결승전에서 3회에 구원등판해 7이닝동안 12탈삼진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8] 이 계약 뉴스가 2006년 야구계 10대 뉴스에 선정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9] 정영일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KIA는 소중한 1차 지명권 한 장을 허공에 날려 버린 셈이 되었고, 그 책임으로 김경훈 KIA 타이거즈 스카우트 팀장은 사임하였다. 이 때문에 KIA 팬덤에서는 정영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10] 정영일처럼 메이저리그로 먼저 진출한 다른 선수들의 문서를 찾아보면 알 수 있듯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여러 개의 마이너리그 구단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타국에서 수준급의 유망주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지라 KBO 리그처럼 끝까지 도와주기보다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경쟁시킨 후 대부분의 선수는 갖다버리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유망주들만 데리고 간다. 마이너리그는 육성 경쟁이라기보다 도태 경쟁에 더 가깝다. 도태 과정의 반복 중 예외적 생존자가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것.[11]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투구 이닝 제한과 투구 수 제한으로 2018년부터 고교야구는 한 경기 투구수 제한을 도입했다. 고교야구에선 하루 한 투수의 최다 투구수가 105개로 제한되며, 31구에서 45구까지는 1일, 46구에서 60구까지는 2일, 61구에서 75구까지는 3일 등 의무 휴식일 제도를 시행한다.[12] 2007년 상무에서는 국내로 복귀한 투수 송승준을 위해 엔트리 하나를 비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송승준이 1년 후에 있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참가를 위해 입대를 연기하면서, 그 슬롯에는 지명받은 팀에 입단하자마자 군 복무를 결정한 다른 선수가 가져갔다. 송승준이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여 당사자 둘 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13] 상무와 경찰청이 KBO 소속 팀은 아니지만 퓨처스 리그 참여로 사실상 KBO의 관할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볼티모어와의 계약으로 물의를 빚고 자격정지를 당한 상원고 투수 김성민이 2012년 말 상무에 지원해 서류전형 합격자에 들었으나 이 부분이 뒤늦게 문제가 되어 최종 선발 과정에서 탈락했다.[14] 고양 원더스가 KBO 산하에 속한 팀이 아니기 때문에 소속된 기간이 유예 기간에 들어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어찌 된 일인지 구체적인 사항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15] 개명 전 남윤희[16] 대회가 끝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 6월 22일 컵스 산하 루키리그 소속 AZL 컵스 소속으로 등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소속 마이너리거인 정수민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17] 2015 드래프트에서 안태경이 텍사스에서 방출된 뒤 현역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롯데 자이언츠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18] 해외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대상으로 치른 일종의 테스트로 정영일을 비롯해 최형록(전 미네소타), 황목치승, 오두철, 안형권(이상 고양 원더스) 등 7명이 참가했다. 그 중 고양 원더스 선수들은 2014 드래프트에서 모두 지명을 받지 못했으며, 오두철황목치승만 이 트라이아웃이 끝난 후 각각 KIA 타이거즈LG 트윈스신고선수로 입단했다. 그 중 황목치승은 2014년부터 LG 1군 내야진에서 활동 중이다. 안형권은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신고선수로 입단했다.[19] 정영일이 스톡킹에서 말하길, 처참했다고. 참가 당시 닭발 걸린 상태였으니까 초구부터 원바운드 남발하니 트라이아웃이고 나발이고 아예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20] 하지만 이 다짐은 정형식이 이듬해 음주운전으로 자멸하며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21] 이것도 유예 기간같은 페널티다.[22] 이때 대신 콜업된 선수는 이원준, 백인식.[23] 이때 말소된 선수는 정진기, 정의윤, 윤희상, 김광현.[24] 날짜로는 2차전 후 이동일이 있어서 하루 쉬긴 했다.[25] 얼차려를 옹호할순 없지만 자기 동생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하면 이해 간다는 여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