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1세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 보헤미아와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국왕.
그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큰아버지다.
2. 생애[편집]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 레오폴트 1세의 사실상 장남이다. 1702년에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자, 일생에 있어 유일한 군복무를 수행했다. 그는 바덴의 변경백인 제국 장군 루트비히 빌헬름의 휘하에 들어가 란다우 공성전에서 활약했다. 1705년, 오스트리아 대공국,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과 트란실바니아 공국 및 크로아티아 왕국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지를 물려받았으며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되었다. 부황과 자신이 가장 신뢰한 장군인 사부아 공자 외젠이 이탈리아반도에서 활동하거나 말버러 공작 존 처칠과 함께 독일과 플랑드르에서 프랑스군을 무찌르며 활약하는 동안 요제프 1세는 합스부르크 제국을 이끌 좋은 기회를 잡았다. 빈 시은행을 국가 기구로 정비하고 혼란스러웠던 오스트리아의 재정을 다시 정비하기도 했다.
치세 동안 라코치 페렌츠 2세의 주도로 헝가리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니 헝가리 귀족[1] 들과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민병대의 주도로 반란은 진압되었고 라코치 페렌츠 2세는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다. 부황때 발발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계속 밀어붙여 동생 카를 대공을 스페인 국왕으로 지지하였다. 그런데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둘째 손자 앙주 공작 필리프를 스페인 국왕으로 승인하자 교황과 대립하였고 교황령을 공격했다. 그 결과 교황은 1709년 태도를 바꿔 다시 카를 대공을 지지했다.
천연두에 걸리는 바람에 1711년 3월 빈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일한 아들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사망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제국은 동생 카를 대공이 물려받았다.[2]
3. 요제프 1세와 예술[편집]
요제프 1세는 조상들처럼 음악과 예술에 상당한 식견을 지니고 있었으며, 심지어 곡을 직접 작곡할 정도였다. 대표곡으론 tutto in pianto가 있는데 현대에도 음반이 발매되어 팔리고 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4.2. 아내[편집]
황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빌헬미네 아말리아(1673년 4월 21일 ~ 1742년 4월 10일)
4.3. 자녀[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21:35:12에 나무위키 요제프 1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특히나 오스트리아의 왕령 헝가리 영토였던 서부에 기반한 헝가리인 귀족들은 정당한 혼인상속을 통해 헝가리 왕위를 세습한 합스부르크 왕가를 지지했고, 라코치 페렌츠 2세의 봉기를 반역으로 간주하여 경계했다.[2] 카를 대공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를 물려받는 대신에 스페인 왕위 계승을 포기했다.[3]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다.[4]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프란츠 크사버 왕자 등[5]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