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카르 1세

덤프버전 :




파일:Po1_postava.jpg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체코어: Přemysl Otakar I
생몰기간 : 1155 ~ 1230년 12월 15일
재위기간 : 보헤미아 공작 1192 ~ 1193, 1197 ~ 1198 / 보헤미아 국왕 1198 ~ 1230

보헤미아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2. 생애[편집]


블라디슬라프 2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178년 베틴 가문마이센 변경백 오토 2세의 딸인 아델하이트(Adelheid von Meißen 1160~1211)와 결혼했다. 아델하이트와의 사이에서 나중에 덴마크 국왕 발데마르 2세와 결혼하는 마르케타를 얻었다.

1192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로부터 보헤미아의 통치자로 인정받았지만 이듬해 호엔슈타우펜 왕조를 실추시키려는 독일인 제후들의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추방당한다.

1197년 보헤미아의 공작으로 복위했고 호엔슈타우펜 왕조와 벨프 가문독일왕위 계승 분쟁을 중재했으며 이 때부터 보헤미아 국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199년에는 아델하이트와 이혼했고 헝가리 국왕 벨러 3세의 딸인 콘슈탄치어(Magyarországi Konstancia 1180~1240)와 결혼했다.

1200년 오토 4세가 우세를 점하면서 오타카르 1세는 호엔슈타우펜 가문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벨프 가문을 지지했으며, 이에 오토 4세와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오타카르 1세를 보헤미아의 국왕임을 인정했다. 1203년 프라하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정식으로 보헤미아 국왕이 되었다.

1212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오타카르에게 보헤미아에 관한 시칠리아의 금인칙서를 전달했으며 이것에 따라 오타카르 1세는 자신은 물론 그의 자손들에게 보헤미아의 국왕이라는 칭호를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왕위 세습권을 확보했다.

1230년 12월 15일에 사망했고 맏아들인 바츨라프가 왕위를 넘겨받았다.


3. 여담[편집]


그의 딸인 아네슈카 체스카는 체코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이자 성인이다.

과거 과 함께 체코 코루나 지폐에 도안으로 쓰였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12:16:49에 나무위키 오타카르 1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