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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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전
神機箭 | Singijeon


파일:attachment/shingi.jpg

유형
고체 로켓
개발
1447년 (세종 29년)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병조 군기감 (軍器監)
개발자
파일:조선 전기 국왕 용보.svg 세종
파일:조선 전기 국왕 용보.svg 문종
장영실
이수지
최해산
운용
조선군조선 수군
길이
1,103mm (소신기전)
1,455mm (중신기전)
5.3m - 5.5m (대・산화신기전)
유효 사거리
150m (소신기전)[1]
200m (중신기전)
450m - 1,000m 내외 (대・산화신기전)[2]
실전 배치
15세기 - 18세기
관련 장비
화차

파일:external/16eff56d48380f19166e1e4bb3720789afcf8b47da5882a970781d1ee0d981d7.png
사극 징비록에서 묘사된 문종 화차에 장전된 신기전.

1. 개요
2. 상세
3. 개발자
4. 종류 및 운용
4.1. 소신기전
4.2. 중신기전
4.3. 대신기전
4.4. 산화신기전
5. 실전에서 신기전의 사용법과 개발이유
6. 단점과 도태
7. 대중매체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신기전()은 조선 세종 대 개발된 고체로켓이자 로켓 추진식 화살 병기(화전), 또는 그 단위와 체제를 말한다. 고려 시대의 화약로켓 주화를 개량한 무기로, 문종화차 보급으로 일종의 다연장로켓 야전포로서 발전하기도 했다.

종종 조선군의 주력 무기처럼 알려져 있지만, 고려 말기부터 이미 한반도에서도 주력화포로는 대형화포 천자총통과 개인화포 승자총통 같은 전장식 화포들이 실전적인 포격을 위해서 쓰였고, 당시에도 보병을 때려잡는 것은 로켓이 아닌 총포류가 맡는 역할이었다.[3] 중세시대의 군사 개념에서 신기전 같은 로켓은 현대 전쟁의 전술 미사일과 매우 유사한 목적으로 적군의 전쟁 수행 플랫폼(보급기지, 화약저장고, 전함)을 수백미터 밖에서 타격하기 위한 전술 로켓이었다.

하지만, 많은 미디어에서 임진왜란행주대첩에서 신기전 화차가 보병들을 폭격하는 통쾌한 이미지를 띄워주는 바람에, 신기전은 적의 전략 목표를 타격하는 로켓이 아니라, 보병을 살상하는 주력화포라고 착각하는 상식이 퍼져있는 경우가 많다. 신기전은 고려시대부터 이미 주화라는 명칭으로 다양한 형태가 자체적으로 개량되어 당대의 영토 확장과 해상 진출에서 적군의 전략 플랫폼을 파괴하는 공격적인 미사일 자산이었다. 이후 약 200여년 이후 임진왜란 시대 쯤에는 조선군이 중장거리 로켓을 사용할만큼의 육상 진출이 없었으므로 육상에서는 주로 신호용[4]으로 사용되었고, 해상에서 조선수군이 적의 전함의 화약저장고를 유폭시키는 중장거리 함상 로켓 정도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최무선 이후, 폭발형 로켓을 싣은 기계 구조의 화차 개발까지 불과 수십년 밖에 걸리지 않았던 조상들의 선구안과 역사적인 가치 등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2. 상세[편집]


고려 말기의 최무선이 최초로 화약을 보급하면서 연구된 다양한 화약무기 가운데 주화(走火)가 있었다. 주화는 수백년 전부터 몽골과 중국에서 즐겨 사용된 화전을 한반도에서 생산했던 버전이다. 참고로, 고려시대의 주화 중에서도 소, 중, 대라는 3가지 크기가 있었으므로, 사실상 고려말기부터 이미 존재했던 화약로켓이었다. 다만, 현대에 알려진 화차 방식의 근대적인 야전포 운용과 효율적인 개량은 조선시대의 로켓 규격인 신기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주화(走火)라는 고려왕조의 화약로켓이 수십년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고려말기와 조선초기에는 화약로켓이 의외로 많이 사용되었다. 중세시대의 짧은 교전거리를 감안하자면, 당시에도 보병을 잘 때려잡는 총포가 있었던 상황에서, 굳이 화약을 낭비하는 대형 신기전 로켓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목적은 중세시대의 일반적인 총포류보다 훨씬 더 멀리서 적의 전략 플랫폼을 폭파하는 전술 미사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현대에는 신기전과 외형적으로 유사한 다연장 로켓포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기전의 용도를 단편적으로 해석하여 보병을 때려잡는 야포로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5] 이 때문에, 조상들이 더 멀리서 적의 전략 플랫폼을 폭파할 수 있도록 중신기전, 대신기전, 산화신기전 같은 선진적인 종류의 미사일 개념을 지닌 화약 로켓들을 일찍부터 발전시켰다는 업적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저평가 받는 상황이 꽤 많다. 알고보면, 고려와 조선시대의 대형 신기전들은 첫 개발 당시에는 어지간한 근대시대의 화포들보다 개념적으로는 앞선 무기 시스템이었다고 볼수있다.[6]

현대에는 화차에 다연장 로켓으로 거치해 놓고 일제히 쏘는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이 바로 조선 문종 이후 문종화차 덕분에 보급된 방법이다. 그 이전에는 중국의 다발화전이나 고려시대의 주화와 마찬가지로, 단발식 발사대에 놓고 쏘거나 유사시 화살통이나 허리춤 등에 끼우고 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발사했다. (세종실록 기사 참조. 실록에 주화로 나오는 것은 신기전이 주화로 이름이 바뀌기 1년 전이라서 그렇다.) 임란 이후 명나라 남방 병법이 들어오면서 당파에 화전을 거는 사격법을 쓰기도 했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신기전이라는 단어가 발사장치인 다발화전의 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신기전이 화약으로 추진되는 화살 자체만을 의미했다. 또다른 차이점이라면, 조선에서는 갑주를 입고 직접 쏘아야하는 위험한 다발화전보다는 화차에 얹어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따라서 추진체를 인간이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작은 로켓화살에 폭약을 달아놓는 개조가 조금 더 쉬워지면서 다연장 폭발 로켓까지 등장했다는 점이다.[7]


3. 개발자[편집]


고려말기의 최무선이 개발한 주화를 조선 세종시대에 그의 아들 최해산과 장영실이 개량한 물건이다. 수백년 이후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된 신기전의 일부는 변이중이 개량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 후기 기록 중에는 세종이 화차를 개발할 때 영락제의 화차를 참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개발한 당시(조선초기)의 기록이 아니라서 신빙성은 애매하고, 조선의 화차와 유사한 가화전차는 신기전+화차보다 후대에 등장했다. 자세한 것은 화차 문서 참조.

드라마 《대왕 세종》이나 동명의 영화와 달리 완전히 새롭게 만든 물건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는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개발된 고려시대의 주화를 다시금 개조한 물건이며,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개량이 이루어졌다. 최근 대신기전을 개발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밝혀졌다. 군기감에서 일하던 39세의 박강이라는 사람이라고. 물론 최무선 때도 원형으로 추정되는 대주화가 있었다.


4. 종류 및 운용[편집]


사거리에 따라 대, 중, 소신기전으로 나눈다. 또한, 별개로 '산화신기전'이 있었다.

4.1. 소신기전[편집]


소신기전은 중국과 몽골시대의 다발화전이랑 큰 차이가 없으며, 규격만을 새롭게 만들었다. 단, 화차를 이용하면서 근대적인 야전포로서의 여러가지 기술적인 운용법이 발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특기할만한 변화점이었다.

현대인들이 신기전의 용도를 보병 제압용이라고 착각하는 원인은 소신기전을 신기전의 모든 형태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명나라는 일와봉총이라 부르며 즐겨썼으나 조선에서는 효율성과 파괴력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신호용 도구로서 사용되었을 정도로 자주 쓰지는 않았다.

낮은 효율성과는 별도로, 신기전이라는 명칭과 결부할때는 효율적인 무기 관리와 미래 연구를 위해서 조선 버전의 로켓 단위를 정립했다는 의미 정도가 있다. 그리고, 아래의 중신기전부터 독자적인 발전을 시작한다.

4.2. 중신기전[편집]


중신기전은 발사체에 달린 화약 이외에도 2차 폭약을 탑재해서, 폭발에 의한 파편충격을 줄 수 있었다. 이 방식은 현대전에서 공중폭발 유탄과 비슷한 작은 사이즈의 폭탄로켓들을 다연장 로켓과 결합하여 대규모로 투사하는 개념이었다. 중신기전의 폭발 위력은 (기록을 믿는다면) 갑옷을 입은 병사에게도 상해를 입힐 정도였다고 한다.[8]

기본적으로, 소신기전처럼 화약의 에너지가 보존되는 유효 사거리 내에서 적중할 경우에는, 처음 맞는 한두명이 관통(!!)당할 정도로 많은 화약을 사용했다고 한다. 적진에 명중했다면, 로켓에 부착한 2차 폭탄이 추가적으로 폭발하면서, 목재 구조물과 화약 저장실에 화재까지 일으키는 화약로켓의 근본적인 기능은 더욱 뛰어난 무기였다.

중신기전은 2차적인 폭약을 장치해야했으므로, 화차 같은 발사대에서 한번에 사격할 수 있는 발사체는 소신기전 같은 단순한 화살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대단히 먼 사거리에서도 폭약을 다연장 투척할 수 있었으므로, 중세시대의 목재화약으로 무장한 적의 구조물 혹은 전함을 파괴하는 효과를 더욱 끌어올린 화공 무기였다.

다만, 몇몇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인명 살상용으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애초에 중세시대의 화약로켓은 고정된 기지, 함선을 사격할때가 아니면 명중력을 기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밀집대형이 기본이었던 시절이었으므로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살상력이 부족한 무기는 아니었다. 잘못 맞으면 관통상에 화상이 겹치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소지하고 있는 화약이 유폭되면 본인 뿐만 아니라, 진영의 규모로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4.3. 대신기전[편집]


대신기전은 양산품 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신기전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기가 매우 거대하여(길이가 3~4m) 다연장 발사대를 쓰는 신기전과 달리 전용 발사대를 세운 후 1발씩 발사해야했다. 즉, 명나라와 고려시대에 사용되었던 대형 로켓(대주화)을 조선시대에 새롭게 개량한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

사거리는 학자마다 이견이 많은 편이다. 채연석 교수는 압록강 너머의 적을 공격하는 무기였기에 1~2킬로미터로 가정했다가, 압록강의 실제 너비와 복원실험을 통해 대신기전의 사거리를 900미터급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육사 등의 다른 곳에서의 실험에서는 1킬로미터급의 사거리를 내는 것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대신기전에 달고 쏜 흑색화약은 최대 3kg 정도였다. 엄청난 화약량에 비해서, 위력은 현대의 수류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위력이 수류탄 정도여도 그 당시 방어장비 상태를 고려하면 살상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중세의 화약로켓은 현대전쟁의 미사일 시스템과 같다. 즉, 인간을 겨냥하는 로켓이 아니라 적의 기지와 전함에 대한 화공테러 목적으로 사용하는 중장거리 로켓이었다. 따라서, 다수를 발사하여 멀리서부터 적의 화약 저장실을 공격할 수 있다면, 화약무기 및 목재병기를 사용하는 중세시대의 싸움에서는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매우 공격적인 의미를 지닌 전술 탄도 미사일이었다.

동서양 대부분의 전투에서 화약 저장고 폭파는 전투를 즉시 패배할 정도로 심각한 전략적 손실이었으며, 유럽과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도 탄약고 폭발로 패배하였던 사례는 매우 많다. 심지어는, 수백년 후에도 19세기의 영국미국 역사에서도 대신기전과 유사한 규모의 대형 구식 로켓인 콩그리브 로켓으로 인한 화약 저장고 폭파 때문에 서구열강의 군대가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패배하고, 더 먼 훗날에는 M142 HIMARS를 지원받은 우크라이나군러시아군의 탄약고를 보이는 족족 폭파시키며 연전연승하는 사례가 존재할 정도였다. 즉, 대신기전은 애초부터 인명살상용 로켓도 아닐 뿐더러, 가성비의 문제를 떠나서,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전략 자체를 좌우하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나는 특수 무기, 즉 적군의 전략 플랫폼을 멀리서 폭격하여 보급 같은 기본 전략 자체를 타격하는 비대칭 전력에 가까운 무기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신기전 발사영상


4.4. 산화신기전[편집]


대신기전과 크기가 비슷한데, 1단 로켓을 통해 수백m를 비행한 뒤 2단 로켓인 지화(地火)에 점화되면 목표지점으로 날아가 발화통의 화약이 터지기 때문에, 학설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지만 2단 로켓 혹은 다탄두 로켓으로 파괴력이 약 중신기전의 2배다.

현재 재현에는 성공했다.

대신기전조차 화약을 많이 쓴다는 불평이 많았으므로, 산화신기전의 사용례는 더욱 알 수가 없다.

다만, 중세로켓은 적 기지의 화약 저장고에 불을 붙이고 화공하는 목적으로 제작되는 전술 로켓이었으므로, 엄청난 위력과 크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자원만 충분하다면 굉장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일부 기사에서는 세계최초의 2단 미사일 로켓무기라고 써놨는데 실제로 만들어진 목적을 보자면 그런 의도에 가깝다.


5. 실전에서 신기전의 사용법과 개발이유[편집]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4ed2e73d0f668be13fdf1234ad7c198d.jpg
신기전 화차총통기.

기본적으로 중세시대의 화약로켓은 현대의 전술 미사일 시스템과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즉, 움직이지 않는 대형 목표물, 마을, 선박들을 목적으로 발사하여 적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플랫폼을 수백미터 밖에서 불태우는 영토확장, 해상전투를 위한 전술 로켓이었다. 하지만, 현대 시대의 대중 미디어에서는 임진왜란의 행주대첩에서 조선이 화약로켓을 사용했던 이미지 때문에, 신기전의 용도를 주로 보병을 살상하는데 사용하는 주력 야포 및 수비적인 화기라고 착각하는 이미지가 종종 퍼져있다. 하지만, 실제 사용법은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서,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입장에서 적의 고정된 군사시설과 선박을 파괴하여 활로를 뚫는 목적에서 빛을 발하는 중세의 중장거리 전술 타격 미사일이라는 것이 조선시대의 대형 신기전의 개발 목적이었다.[9]

현대에는 신기전을 보병을 잡는 화포라고 자꾸만 축소된 해석을 유행시키는 바람에, 실제로는 보병 살상 목적이 아니었던 신기전의 보병 살상력을 설명하기 위하여 대형 신기전의 개발 목적을 축소하고 쓸모없었다고 완전히 중세시대의 화약 전쟁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잘못된 이미지를 현실적인 해석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퍼트리는 경우가 많다. 신기전은 적의 보급기지, 화약 저장고, 전함[10] 같은 적군의 전쟁 수행을 위한 플랫폼을 당시의 일반적인 무기들의 살상거리를 훨씬 초월하는 수백 미터 밖에서 폭파하는 현대의 전술 미사일과 똑같은 개념의 무기였다. 일찍이 조선 형성 시절의 군사 개념에서 큰 영향을 끼친 제국은 몽골 제국이었고, 몽골인들은 화약 로켓으로 적의 마을과 보급기지를 불태우는 타격 무기로서 전 세계를 정복했던 전법을 이미 고려 왕국한테도 전수했던 상태였다. 즉, 조선의 기술력은 명나라의 영향만 받았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조선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오히려 군사력은 원나라의 영향력을 더욱 많이 받은 결과물이었고, 당대의 신기전 로켓에도 몽골처럼 공격적으로 육상영토 바깥으로 진출하기 위한 로켓의 대형화 개념이 섞여있었다.[11] 당연히 조선초기부터 최신예 기술을 흡수했던 조선의 신기전은 몽골제국의 도시 공격을 위한 전략 타격형 로켓처럼 대형화 된 형태를 고려시대부터 받아들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면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원시적인 수준이라지만 현대의 대인살상(보병제압) 대함(전함 저격용 로켓) 전술타격(적기지 화공 및 연기로 질식) 미사일 시스템들과 유사한 기능들을 몇몇 갖춘 다목적 전술 로켓으로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 조선시대의 여러가지 신기전 시리즈라는 것이다.

조선이 대형 로켓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던 초기의 국방 개념을 살펴보자면, 조선이 무력을 경시했다는 일본 제국 이래의 패배주의 역사적인 시각과는 정반대의 현실이 발견된다. 즉, 조선은 본인들의 국력만 허락한다면, 해상전투 및 국경확장을 위해서 공격적인 타격 로켓 자산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에 의외로 매우 열중했다. 한반도에서 화약로켓이 매우 빨리 발전한 여말선초의 상황을 보면, 한반도의 왕조들이 오히려 적진으로 쳐들어가서 적의 마을을 불태웠고, 이러한 국경선 확장 및 진출에 필요한 공격 로켓들을 엄청난 속도로 국산화하여 기계적인 발전을 보여주었다.[12]

또한, 약 200여 년 이상 잘 관리되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방어전과 명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이 사용한 로켓으로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류성룡이 자신의 문집인 《서애집》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조선중기 쯤에는 신기전이 야전에서는 신호용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조선의 국경선이 안정되자, 야전에서 적의 기지를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 줄어들었고, 따라서 대형 타겟을 폭파하기 위한 전술 로켓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큰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13] 현대시대에도 장거리 타격 미사일에 비해서는 일반적인 포탄이 같은 파괴력 대비 수백배 저렴하다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중세시대에도 화약을 먹는 괴물과도 같았던 중장거리 타격 로켓 자산은 영토 분쟁이 안정된 이후 점점 축소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었다.

물론, 조선 초기에는 신기전 화차를 전국에서 700대씩 사용하는 돈지랄을 했을 정도로, 경제성을 무시하고 엄청난 숫자의 신기전을 개발 및 배치했다. 당시에는 조선 초기까지 확장했던 국경선의 개념이 명확치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조선 초기는 경제적인 손실을 무시하고 엄청난 갯수의 전술 타격 로켓을 양산하여, 주변 민족들과의 분쟁이 있는 최전방 영토에서 일종의 화력 시위를 하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한민족의 국경선을 지켜냈던 셈이다. 즉, 신기전은 의외로 현대인들이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현대적인 미사일 개념으로 보더라도, 매우 타당하고 합리적인 안보 전략 때문에 연구되고 배치되었던 당대의 전략 자산이었다.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조선왕조가 신기전으로 확보하고 지켜낸 영토가 한국인의 터전으로서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 비쌌다는 신기전의 개발 및 운용비는 역사적으로 봤을때는 오히려 저렴하다고 볼 여지마저도 크다!

해상전투에서는 조선중기에도 조선해군이 적의 전함을 불태우는 목적으로 꾸준히 사용했다. 이순신이 활약했던 시대에도 신기전은 적의 선박을 불태우고 격침하는 목적으로 자주 쓰였다고 한다. 다만, 육상에서는 임진왜란 초창기까지 신기전과 같은 화약로켓을 육상전투에서 많이 활용한 군대는 돈이 많았던 명군이었다. 특히, 2차 평양성 전투(1593년 1월 5일~8일)에서 명군의 다발화전이 큰 역할을 했다. 다만, 현대 시대에는 조선군이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의 방어전 성공, 행주대첩에서 권율 장군이 신기전 화차를 방어전에서 사용하여 크게 성공한 승리가 워낙에 통쾌한 이미지로서 알려지는 바람에, 현대인들은 조선군의 신기전을 수비에만 사용되며 보병에 효과가 뛰어난 야전포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현실에선 보병 살상 목적에는 신기전 화차보다는, 대중 미디어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오르간 건을 장착하여 근접한 보병방진을 제압할 수 있는 총통 화차가 사용되었다.)

그밖에도, 실전에서는 적의 중요한 기지를 제압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인좌의 난 당시에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사용해 효과를 보기도 했으며, 조선 초기인 이시애의 난 당시에도 신기전으로 추정되는 로켓화기를 화차에 싣어서 전술적으로 유용하게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북청을 떠나서 이성(利城)으로 향하다가 적이 또 우리를 향해 와서 길에서 만났는데, 우리 군사는 작은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서쪽에 있고 적은 영(嶺)에 의거하여 동쪽에 있어 서로 마주 대하고 싸웠습니다. 해가 이미 서쪽에 기울었으나 승부가 나지 아니하다가, 우리 군사가 화차(火車)를 가지고 오니 적의 무리는 피해서 달아나고, 우리 군사가 쫓아서 베거나 사로잡은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성종실록 권95 9년 8월 10일 기해 기사


또 같은 성종 시절에서 화차로 검색해보면, 여진족 토벌 과정에서 화차가 매우 유용했다는 평가를 실전에서 경험하고 있었고, 괜히 비싼 돈 들여서 만든 무기가 아니니깐 잘 써먹어 라고 성종이 하교하는 부분도 나온다.

이후에는 현대인들도 잘 알고있듯이, 조선이 국경 확장에 비용을 지출할 이유가 줄어들면서, 신기전은 야전보다는 주로 수비에 사용되는 야전포 개념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면 신기전은 국경에 침입하는 야인들을 구축하는 효과가 탁월했다. 위처럼, 여진족을 토벌하고 영토를 안정화 하는 과정에서도 조선은 당대의 공격 전술 로켓이었던 신기전 화차를 적극적으로 앞세웠고, 전국적으로는 조선에서 무려 700여기의 신기전 화차를 운영했다고 한다.

이렇듯 신기전의 다연장 폭발탄을 경험했던 적들이 도망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중세시대의 화약로켓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적의 전략적 시설물을 멀리서도 불태우고 폭파할 수 있는 화공 효과, 그리고 적의 화약 저장고에 대한 유폭 효과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의 원시적인 화약 보관방식을 생각했을때, 조선의 폭약식 신기전에 폭격당하면 적군은 화약 저장고가 폭발해서 진영 단위로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사실상 화약 무기와 목제 병기를 사용하는 중세시대의 군대라면, 원거리에서 다연장 폭약을 발사하여 선제적으로 화약의 유폭 효과를 일으키는 대형 신기전이라는 무시무시한 로켓 시스템들을 보았다면 도망가지 않는 것이 멍청한 행동이었다!

즉, 임진왜란을 다룬 각종 전쟁매체 때문에 잘못 퍼진 이미지와는 달리, 신기전은 적의 각종 전략 플랫폼을 총포류의 살상력이 닿지 않는 장거리에서 타격하여 폭파하고, 적이 보유하고 있는 화약무기를 유폭시켜서 화약무기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 개발했던 중세의 전술 타격 미사일이었다. 특히, 고려와 조선은 시대상에 알맞게 도입하여, 종래의 화약로켓을 다연장 폭약과 기계식 조준 장치까지 접목하여 발전시킨 체계적인 로켓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기전을 이해하기가 쉽다.

6. 단점과 도태[편집]


신기전의 단점에 대해서 말하기 이전에, 우선 현대인들에게 널리 퍼진 잘못된 해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까지의 군사 개념은 몽골인들과 원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었고, 일부 사람들이 폄하하는 대형 신기전의 목적은 적의 전쟁 수행을 위한 전략 플랫폼 그 자체를 수백미터 사거리 밖에서 폭파하기 위한 현대의 전술 타격 미사일에 해당하는 상당히 선진적인 개념의 공격 로켓이었다.

당장에 이순신 함대 뿐만 아니라 해상전투에서는 신기전과 같은 화약무기들을 생각보다 많이 사용했다는 점[14]만 보더라도, 조선시대의 신기전은 보병들을 때려잡는 주력화포보다는 적의 전쟁 기반 플랫폼을 중장거리에서 파괴하는 원제국 같은 대형 화약 로켓 운용 개념에 큰 영향을 받아서 대형화 노선이 병행되어 발전했던 로켓 시스템이었다고 볼수있다. 물론, 당대의 초보적인 기술 한계 때문에 단점이 많은 무기였다고는 하지만, 대형 신기전들이 화약 소모량에 비해서 보병 살상에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특징은 처음부터 신기전이 보병 살상을 위해서 만든 무기가 아니라는 특성을 약간은 이해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신기전은 조선초기와 임진왜란 이후에는 다시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소형화, 대보병용으로 일와봉총이라고도 불리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튼, 신기전은 원본이 되었던 주화와 다발화전의 사거리와 위력을 개선하긴 했지만, 명중률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고려시대 말부터 이미 총포의 효율성 때문에 주력무기로는 쓰이지 않았다. 조선이 수비적인 군대가 되면서 이러한 로켓 병기들은 더욱 쓰이지 않았고, 임진왜란 시절에는 주로 보병들을 열심히 때려잡아야 했던 육상 전투의 상황 때문에 해상전투를 제외하면 주로 신호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해상에서는 사용하기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다발 방식으로 사용하려면 자신의 선박에 불똥이 튀어서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은 화기였기 때문에, 주로 중신기전 이상의 대형 로켓 형태를 일반적인 총포보다 멀리 날아가는 함상 미사일정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단점은 화약 소모량이 너무 심각했다. 화약 대비 살상력이 떨어졌던 대신기전에 들어가는 화약량은 천자총통의 3배 이상이었다. 유황과 염초를 전량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던 조선군의 입장에서 신기전이 소모하는 화약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결국, 고려와 조선은 실제 전투에서는 화포(총통)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보병을 잡는 주력화기의 역할은 직사화기들이 맡았고, 신기전은 어디까지나 중장거리 목표를 제압하는 역할을 맡는 타격 로켓으로서 설계된 무기였다.

  • 장점
    • 공격적인 화공테러 무기로서, 국경을 침략하는 야인들의 공성 구조물이나 마을을 불태우는 용도로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애초에 대인 살상력은 보조적인 용도였고, 이런 화공테러 목적으로 연구했던 무기였다.
    • 적의 전함, 화약병기 사용자들을 발전된 형태의 폭발식 화약로켓이었던 신기전 방식으로 공격하면, 당시의 원시적인 화약 저장소 때문에 유폭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 덕분에, 해상전에서는 꾸준히 사용되었고, 이순신 함대도 적의 함선을 격침하는데 써먹었다.
  • 단점
    • 위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소모되는 화약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15]
    • 조선의 화약, 초석 생산량은 외국산을 들일만큼 적었다.
    • 당시 전 세계의 무기를 통틀어도, 제작에서 운용까지 높은 수준의 기교가 필요했다.
  • 해결 방식
    • 크기가 작은 소형인 소, 중 신기전은 화차와 묶어 10~100발씩 다연발로 발사, 화력과 명중율을 보강했다. 또한 특정한 지역에 집단으로 투사하여 제압효과를 노렸다.
    • 대신기전의 경우는 기선 제압용으로만 사용했다. (이전의 단발식 화전을 거대화한 형태.)
    • 조선중기 이후로는 정찰대의 신호용으로 사용되었다. 소도구만을 휴대할 수 있는 정찰대 병력에서는 나름대로 유용하게 쓰였다. 수군에서는 정찰선에서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위력은 강하지만 연비가 나쁜 무기의 예시. 물론 비싸서 못 써먹는다고 할 순 없다. 세종이 개량한 이후로 문종이 최초로 문종화차를 만들면서 그 사용방법을 정했는데, 이후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쓰기가 불편하거나 약하다는 주장은 없었다. "비싸니깐 살살 다뤄라" 정도. 나중에는 화약을 더럽게 많이 먹는다는 불평은 많았다.

전체적으로 신기전은 적을 멀리서부터 압도하고 화공테러를 일으키는 제압용 병기의 성격이 강했다. 나아가 이전의 다발화전이나 주화에 비교해서 한층 더 발전한 운용 시스템 덕분에 분명히 발전된 모습이 많았다. 사실 현대의 MLRS 도 원래는 적들을 제압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중세 시절의 무기이지만 현대의 다연장 로켓 시스템이랑 비슷한 개념으로 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눈에는 별 것 아니지만 13~15세기를 기준으로는 신기전 화차의 사정거리와 제압능력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신기전은 고려말기부터 총통 같은 핸드캐논(Handcannon)들과 공존하면서 합동작전을 펼친 시스템이었고 이후로는 화포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총통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던 것이다. 즉, 신기전의 사용법이나 도태는 대단히 상식적인 범주의 진보 과정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7. 대중매체[편집]



7.1. 영화[편집]



7.1.1. 신기전(영화)[편집]




7.1.2. 명량[편집]


소신기전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활로 쏘는 등 고증오류가 상당하다.


7.2. 게임[편집]



7.2.1.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편집]


네벨베르퍼 다연장로켓과 비교하는 농담이 있다. 네벨베르퍼 로켓 포격은 스치기만 해도 제압이 뜨는 엄청난 제압력을 지니고 있지만 잘 맞지 않아서 데미지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신기전에 빗댄 것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선 완전히 화차와 판박이인 영국의 랜드 매트리스 다연장로켓이 등장하는데, 모습부터 화차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발수도 30발이나 돼서 별명이 아예 신기전이다.


7.2.2. 강철의 왈츠[편집]


특전차의 중형전차로 등장하는 가상전차인 셔먼m4a3로켓발사장치형 서리화가 쓰는 로켓탄 명칭으로 등장한다.[16]


7.2.3. 도미네이션즈[편집]


한국 고유 유닛 중 하나로 등장하며, 활로 쏘는 고증오류가 있다.


7.2.4. 검은사막[편집]


거점전 공성 무기 중 하나인 신기전을 사용할 수 있다.


7.2.5.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의 유닛[편집]


파일:external/images3.wikia.nocookie.net/Flaming_Arrow.jpg
주화(Flaming Arrow)

파일:external/images2.wikia.nocookie.net/Heavy_Flaming_Arrow.jpg
신기전(Heavy Flaming Arrow)

출처

RTS 게임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 한국의 특수공성병기(!)로 등장한다. 한국의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등장하는데, 이는 고증오류라기보다는 게임의 밸런스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17]

게임 내 동일한 시대에 등장하는 트레뷰셋의 대체품으로, 당연히 트레뷰셋보다 성능이 좋다. 게임 내에서의 성능을 의심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데미지가 한 테크 위 사석포보다 살짝 떨어지는 수준이니 절대 낮은 편이 아니다. 주화와 차이는 거대한 불화살이냐 그냥 거대 화살이냐 차이로 자세한 성능은 주화에서 확인하시길.

실제 역사와는 달리 로켓 무기가 아니라 발리스타로 나온다.


8. 관련 문서[편집]


[1]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3752[2] https://www.yna.co.kr/view/AKR20091015219700063[3] 애초에, 현대전쟁에서도 비싼 미사일을 대인전투에서 잘 쓰지 않듯이 중세시대에도 화약로켓은 인명 살상용으로는 가격대비 효율성이 낮았다. 실제로는 오연자포, 변이중 화차 같은 연발식 총포류들이 맡아야할 조선군의 보병 살상력의 묘사를 지금까지의 대중적인 역사물에서는 소신기전만으로 묘사했고 있었기 때문에, 신기전의 본래 목적을 착각하게 되는 중이다.[4] 중국과 조선에서 다발화전, 일와봉총으로 불리던 소신기전 정도의 위력은 이때쯤에는 살상용으로는 너무 낮아서 잘 쓰이지는 않았다. 조선에서 그나마 활용했던 신기전은 조선의 자체적인 발명품이기도 했던 중신기전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중신기전 이상의 미사일은 너무 비싸고 소신기전은 너무 약하다보니 둘다 가성비가 엉망이라서 전쟁이 격렬해진 이후에야 다시 쓰였다.[5] 조선군이 보병 제압을 위해서 사용했던 오연자포, 변이중 화차 같은 오르간 건 형식의 원시적인 기관총 역할의 화차들이 연구가 덜 되고 유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유독 한국 역사극과 영화에서는 신기전을 본래의 목적인 전술적 폭파 로켓이라는 용도를 보여주지 않고, 조선군의 연발 총포류가 사용되어야 할 보병 제압 살상 묘사에만 활용되고 있다.[6] 다만, 대형 신기전처럼 중장거리 타격 개념의 공격적인 로켓은 몽골군이 원조라고 볼 수 있다. 고려와 조선은 원나라와 명나라의 싸움터였던 만주를 보면서 군사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기에, 로켓 기술의 빠른 수입은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한족들이 중원을 제패하면서 명나라는 화약로켓을 다시금 수비적인 목적에서 보병을 격퇴하는데 쓰는 일와봉총으로 바꾸었고, 조선에서도 명과 마찬가지로 대형 로켓이 필요없어지자 명왕조와비슷한 전술의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 때문에, 대형 주화 및 대형 신기전 개발 당시까진 몽골 군대의 도시 타격을 위한 중장거리 대형로켓이 처음 나오면서 당시의 개념이 존속되었을때 개발이 이루어진 로켓 대형화의 그 선진적인 개념이 더욱 헷갈리기가 쉽다.[7] 간단히 비교하자면, 휴대용 혹은 다발형식의 무반동로켓(다발화전과 각종 대형화전)이랑 확산탄을 쓰는 소형 로켓(중신기전 이상의 대형 신기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8] 이는 영화 신기전에서 소신기전을 막은 방패를 터뜨리는 장면으로 재현했다.[9] 물론, 이는 현대에도 국가의 수비를 위해서는 공격 미사일이 중요한 무기로서 개발되는 것과 완전히 같은 이유이다. 전쟁에서 무기의 화력이 발전할수록, 영토 수비를 위해서는 오히려 더욱 사정거리가 길고 확실한 공격적인 장거리 타격 미사일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10] 심지어는, 이순신 함대도 해상전투에서는 신기전을 써서 적의 전함을 불태워서 격침했다. 이순신의 예시만 보더라도, 조선이 개발했던 신기전 시리즈의 초기 개발 목적은 일본과의 해양경쟁 혹은 여진족 보급기지에 대한 타격을 입히면서 조선의 육지영토 외부로의 활로를 뚫기 위한 미사일 자산의 개념이었던 공격 로켓이었다.[11] 현재 2020년대 대한민국의 전략 미사일 기술력이 세계 최상위권에 도달하여 중국군조차 쉽사리 접근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러한 한국의 군사 관련 미사일은 미국의 동맹임에도 뒤쪽으로는 러시아의 미사일 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상황과 유사하다. 조선초기에도, 한쪽 진영 뿐만 아니라 양대 제국 사이에서 각종 효율적인 전략무기 기술력을 모두 가져와서 신기전 같은 발전된 최신형 무기를 개발하려고 국운을 걸고 노력했다는 것이다.[12] 게다가 사실 일본제국의 역사관부터 2000년대 인터넷 세대까지 대중 미디어에서 퍼진 조선에 대한 혐오적인 인식과는 달리, 조선은 오히려 고려시대에 비해서 무에 대한 대접이 훨씬 좋아진 국가였다. 조선시대의 내부 투쟁을 보더라도, 문무 사이의 차별보다는 당쟁에 따라서 문인 무인이 동시에 같은 당파를 따라다니며 서로를 동지로 생각하며 죽을때까지 함께할 정도였다. 당파 차이는 있었지만, 문무차별에 대해서는 고려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의식이 개선된 국가가 되었다는 것.[13] 조선초기에는 화약의 원료를 주변 국가에서 수입해야했다. 따라서, 현대처럼 강력한 전략 미사일 한두발이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력적이지 않았던 중세시대를 기준으로는 신기전같은 장거리 로켓보다는 총과 대포에 들어가는 화약과 경제력을 우선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14] 현대전에서도 경제력만 있다면, 함포보다는 중장거리 미사일이 적함 파괴에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신기전이 현역이었던 당대에도 보병을 때려잡는 역할의 총포류는 주로 근접전에서 쓰는 무기였고, 원거리 타격을 위해서는 사거리가 훨씬 뛰어난 신기전을 편성했다는 개념으로 보면 현대전쟁의 상식으로 봐도 왜 대형 신기전들이 개발됐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15] 문종실록을 보면 냉병기보단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80보 거리, 그러니까 약 100미터에서 갑옷과 방패를 든 허수아비를 전부 관통할 정도의 위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16] 단 등장하고나서 처음으로 쓰이는 로켓탄 말고.[17] 길고 긴 조선 왕조가 게임 내 시기로는 단 한 시대에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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