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궁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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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대한민국 각궁
3. 만주활과 비교
3.1. 길이 차이
3.2. 형태 차이
4. 각궁 관련 명칭[1]
5. 재료 쓰임
6. 단점
7. 각궁 올리기(얹기)


1. 개요[편집]


각궁(角弓, horn bow)은 합성궁(컴퍼짓 보우, composite bow)의 한 종류로, 나무힘줄 외에 을 주 재료로 추가한 을 가리킨다.

이러한 활의 제작법은 몽골만주 등 북방의 유목민족으로부터 유래했는데, 위로 늘어지는 부분인 활의 바깥쪽에 탄력이 강한 힘줄(심)을 놓고, 안쪽에는 반발성이 강한 뿔을 이용하여 매우 강력하고 먼 사거리를 갖게 된다. 이러한 합성궁 기술은 일반적인 목궁에 비하여 첨단 무기로 여겨졌다. 각궁은 힘이 약한 사람이라도 일정한 위력을 확보할 수 있고, 장력이 적어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나 양손의 거리가 극단적으로 멀어[2] 정확히 조준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고, 기후에 따라 완전히 못 쓸 물건이 되기도 하는 등[3]의 단점이 있었다.

구조에 대해서 살펴보면, 각궁류는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탓에 드로 웨이트(Draw weight)도 작고, 길이에 비해 드로 렝스(Draw length)가 길다. 그래서 드로 웨이트를 보충해주기 위해 리커브 보우 형태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하면 초기 장력이 0인 롱보우에 비해 초기 장력이 어느 정도 붙은 상태에서 당길 수 있으므로 전체 에너지 면에서 유리하다. 또한 드로 렝스가 길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목궁용 화살에 비해 화살의 길이가 길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도구를 통해 짧게 줄여 시속을 극단적으로 높인 것이 애기살. 반면 영국이나 일본의 장궁은 큰 드로 웨이트를 확보하기 위해 활의 형상이나 재질을 바꾸기보단 크기를 늘리는 쪽을 택했고 무지막지한 장력과 크기의 활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재질 때문에 리커브가 아니라 직선형에 가까워 장력이 0에서부터 시작하고, 크기 때문에 시위의 각도가 과도하게 크기 때문에 힘을 전달하는 효율성은 떨어진다.[4]

한국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유적에서 이미 각궁의 활채가 출토된 바 있으며, 재료는 소의 갈비뼈를 사용했다. 반면 몽골 지역에서는 활에 산양이나 염소 뿔을 주로 사용했다. 고구려의 경우 건국 시조부터가 로 유명하기도 한 인물로, 222년(산상왕 26) 고구려 산상왕오나라 손권에게 황제 즉위에 대한 호의의 표시로 각궁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을 단순 제식무기일 뿐만 아니라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로 활용할 정도로 특별한 의미를 담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주로 사용했던 흑각궁은 핵심 재료라 할 수 있는 물소 뿔을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중국에서 안 좋은 소리 들어가며 수입하다가 때려치우고 일본이나 류큐에서 일부 수입. 심지어 물소를 기르려고도 시도했지만 기후 적응을 못 했기에 실패하고 그냥 일본에서 물소 뿔을 수입했다. 임진왜란 이후로는 조총에 밀려 조금씩 사라졌다.

2. 대한민국 각궁[편집]




조선시대의 일반 습사용 각궁은 물소뿔, 산뽕나무, 대나무, 참나무(대림), 벚나무껍질(화피단장), 소의 힘줄(고래 힘줄로 만든 각궁도 존재), 민어 부레 풀 총 7재로 제작하며, 전투에 사용되었던 전시용 각궁은 대나무를 뺀 6재를 쓰며 옻칠을 하고 매우 두껍게 만들어 내구성과 장력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전통 군사용 국궁의 제작기술은 모조리 실전되었고,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습사용 각궁이다.

그 외에 사슴 뿔을 쓴 녹각궁, 황소 뿔 3개를 이어 만든 향각궁[5], 백색 알비노 뿔을 사용한 백각궁[6] 등이 있으나, 현대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거의 물소 뿔을 사용한 흑각궁 뿐이다. 사실 녹각궁이나 향각궁은 조선 시대에 물소 뿔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대체품으로 삼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사례에 가깝다. 우선 녹각궁의 경우 사슴 뿔 역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어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웠다. 향각궁은 물소 뿔에 비해 황소 뿔이 짧아서 뿔 셋을 이어 붙여 써야 한다는 점,(물소 뿔은 양쪽에 하나씩 총 두 개면 끝.) 흑각궁처럼 여름이 되면 부레풀이 습기를 먹어 활채가 더 쉽게 부러지거나 떨어져 버린다는 점, 강도가 물소 뿔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 농사를 짓는 데 매우 중요한 소를 잡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쓰기가 어려웠다.

성능이나 제작 편의만 놓고 따지면 흑각궁이 제일임에도 향각궁이 꽤 널리 쓰였다는 해석도 있다. 녹각이나 흑각에 비하면 수급이 압도적으로 쉬웠고, 어차피 쇠심줄이나 아교 때문에 활을 만들기 위해선 소를 잡아야 했으며, 흑각만은 못할 망정 소뿔이라도 대서 만든 활과 그렇지 않은 활 사이에 성능 격차가 크게 존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파운드 수만 크다고 센 활이 아니라 활몸이 가진 탄성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화살의 운동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고, 짧은 활을 길게 당기는 재료의 곡률이 큰 조건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어야 좋은 활인데 당대에 구할 수 있던 재료 중 이런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건 그래도 소뿔이었다.

한반도에 물소가 없는 탓에 조선 초기부터 물소 뿔을 중국, 일본, 류큐 등지에서 수입했지만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았고 특히 후기에는 청나라가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전략 물자로 취급하여 반출을 제한하였다. 때문에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다. 향각궁이니, 녹각궁이니 하는 것도 수입물자를 대체하려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던 셈. 결국 세조 7년(1461년) 일본에서 물소 암수 한 쌍을 보내와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했는데 성종 때까지 무려 70여 마리까지 불어났다고 한다. 기후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전멸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오히려 번식은 순조롭게 이뤄져서 중종 성종 24년(1493년)부터 방목하던 물소를 아침저녁으로 농사 일에 쓸수 있게 훈련을 시키기 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물소를 민간에 보급시키고 농경에 투입시키려 들었다. 처음에는 물소를 이용한 밭갈이가 익숙치 않아 1497년에 연산군이 각도 감사에게 물소가 밭갈이에 익숙하지 못하다며 밭갈이 여부를 확인하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으나# 이후 1510년에는 물소로 밭을 갈았더니 보통 소보다 4배의 효과를 보았다는 기사로 보아# 물소를 기르는데 어느정도 유효한 성과를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어느정도 물소뿔을 자체 조달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도입된 조총의 위력에 관심이 쏠리면서 각궁에 예전보다 큰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조총은 화약과 총기 생산만 잘 갖추면 쉽게 방아쇠를 당겨 사격연습할 수 있는 반면에 활과 화살은 당시에도 귀중한 나무와 비싼 물소 및 화살의 깃을 만들기 위한 재료 등의 생산량이 후달리고 무엇보다 훈련도 힘들었다. 일단은 사람의 힘으로 쓰는 것보다 화약을 이용해 날려 버리는 것이 더 편하니 사실상 조총이 더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조총이 말처럼 다루기 쉬운 물건은 아니다. 퍼커션 캡 도입 이전의 화승총은 취급도 사격도 쉽지 않았고, 이는 폭발이나 화약 가격 등 위험하다+어렵다+비싸다(연습할 기회가 적다) 가 겹쳐지며 비숙련자가 다룰경우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패배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7]바꿔 말하면 이런 단점을 가진 화승총도 종래의 궁시에 비하면 쉬울 정도로, 궁시를 다루는게 아주 아주 아주 어렵다는 거다.

개량궁이 개발되자 입지를 다소 위협받고 있다. 황학정 국궁 교본에서는 개량궁 등장으로 인해 각궁과는 맞지 않게 활을 배운 궁사들이 각궁을 부숴먹는 일 때문에 대림이 낮아지고 각궁이 점차적으로 개량궁 모양과 비슷해져 전통적인 각궁의 규격이 틀어지고 있다며 개탄하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그 '전통 규격'이란 것도 애초에 조상들이 더 좋게 개량하고 바꿔가며 만든 것이니 너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고 좀 더 개방적으로 생각해도 된다. 정 우려스럽다면 기존의 옛 방식을 아카이브 처럼 대대손손 잘 보관해 두면 되고.[8] "전통 지키려고 개량 안 했어요!"라고 조상들에게 말했다가는 오히려 조상들에게 "미련한 놈!"이라며 활로 두들겨 맞을 것이다. 대신 활이 얼마나 많은 변형을 거쳐 온 건지 강의를 듣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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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각궁. 줌통의 실루엣을 결정하는 대림 부분이 요즘의 것 보다 많이 안으로 들어가 있고 고자 부분이 목소에 거의 직각으로 붙어 있어서 평소엔 하트 모양(...), 활시위를 걸면 3자 모양, 당기면 거의 완벽한 직사각형 형태를 띄는 게 특징이다. 요즘의 각궁이 (개량궁의 영향을 받아) 대림의 각이 줄어들어 평소엔 달걀꼴, 활시위를 걸면 평범한 리커브 보우 모양, 당겼을 때 3자 모양이 나오는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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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런 옛날 각궁 형태는 고구려 시대 예맥궁[9]과 굉장히 흡사하게 생겼는데,[10] 이는 한국의 각궁이 고구려 예맥궁의 직계 후손임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전국 각지의 장인들이 각궁을 생산하고 있으며, 대한궁도협회의 가격 제한을 따라 60만원을 넘기지 못한다. 따라서 30~45만원 내외의 보급형 각궁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딱히 남는 장사는 아니라고 한다. 라디오에 출연한 12대째 각궁을 만들어 온 장인의 말에 따르면 60~70만원인데 재료가 비싸서 별로 남는 게 없다는 모양. 소 힘줄, 소 뿔은 말할 필요가 없고 민어 부레도 생각보다 구하기 힘들다.

다만 2011년 충주무술축제에 전시된 송무궁의 각궁은 120만원이었고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비공인 궁방의 각궁으로 비공인 궁방은 궁도협회의 가격에 매이지 않는다. 대회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공인 궁방의 각궁은 여전히 55만원으로 동결되어 있다. 그러니 대회 따위 관심 없다면 비공인 궁방에서 본인에게 맞는 제작을 웃돈을 주고서라도 제작하는 것이고 대회에 관심이 있다면 공인 궁방으로 가서 맞춰야 할 것이다.


3. 만주활과 비교[편집]



3.1. 길이 차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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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개는 만주활, 아래 하나는 국궁이다. 보다시피 만주활이 국궁보다 훨씬 크다.


3.2. 형태 차이[편집]


활시위를 걸어매는 고자 부분으로 한해서 국궁이 특이한 편에 속하는데, 만주나 중국을 비롯한 상당수 나라들에서 쓰는 각궁의 고자는 고자를 걸기 편하도록 고자 부분만 몸체와 교차된 편평한 형태로 가공한 뒤 홈을 파 고정한 선고자인 반면, 국궁은 고자 부분을 두껍게 한 뒤 홈을 판 평고자 형태를 하고 있다.

선고자는 전투용, 평고자는 놀이용이란 주장이 있는데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각자 장단점이 있기 때문. 선고자는 무거운 화살을 날리기 좋지만 탄속이 느리고 사거리가 짧지만, 평고자는 탄속이 빠르고 사거리가 길지만 무거운 화살을 쏘지 못했다. 즉, 선고자는 근거리에서 무거운 화살을 날려야 하는 기마궁수용 활로 적합하고[11], 평고자는 보병이 매우 작고 가벼우며 탄속이 빠르고 사거리도 긴 애기살을 쏘는 데 적합했다. 한마디로 용도가 다를 뿐 실제론 둘 다 전투용으로 잘만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만주활이 선고자가 주류로 자리잡고 국궁이 평고자가 주류로 자리잡은 것은 궁기병이 주력이었던 만주족과 보병(궁수)이 주력이었던 한민족의 차이점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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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 고유의 양식인 평고자.[12]
만주를 비롯한 외국의 각궁의 양식인 선고자.

그런데 사실, 평고자 형식은 조선 중후기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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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자키 신궁에 보관된 고려활.
일본에 보관되어 있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시절의 고려군의 활[13]이 분명히 선고자이고, 여말선초의 이성계의 활 또한 선고자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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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성계의 활도 완전히 고전적인 선고자이진 않고 양낭고자(끝에 뾰족한 부분)은 오히려 평고자에 가까워서 이게 한국에서 옛날에 쓰이던 선고자와 현용 평고자의 미싱링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 각궁 관련 명칭[14][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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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얹은 활과 부린활: 활을 쏠 수 있도록 시위를 고자에 거는 것을 ‘활을 얹는다’고 하고, 이렇게 해놓은 활을 ‘얹은 활[張弓]’이라고 한다. 반대로 쏘던 활의 시위를 내려서 두는 것을 ‘활을 부린다’고 하고, 그렇게 해놓은 활을 ‘부린활(弛弓)이라고 한다.
  • 절피: 시위의 외늬를 먹이는 부분에 감은 실, 또는 실을 감아놓은 부분
  • 시위: 활에 화살을 끼워 당기는 줄
  • 도고자: 끝이라는 뜻을 가진 고자는 도고자부터 양냥고자까지를 말하는데,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인‘도’가 붙어 고자가 시작되는 부분을 말한다.
  • 심고: 시위 양 끝에 심으로 둥글게 만들어 양냥고자에 거는 고리. ‘고자’에 힘이 닿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고자잎: 도고지와 양냥고자 사이
  • 양냥고자: 고자의 맨 끝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
  • 정탈목: 도고지 밑의 굽은 부분
  • 창밑: 목소의 중간 부분부터 정탈목까지를 말함.
  • 후궁목소: 후궁은 짧은 뿔을 댄 각궁으로, 우리말로 정착하면서 휘궁으로 굳어졌다. 후궁목소는 휘궁의 뿔이 끝나는 부분부터 가늘어지는 부분을 말한다. 목소는 후궁의뿔에 댄 뽕나무를 가리키나, 지금은 삼삼이부터 도고지까지를 가리킨다.
  • 후궁뿔끝: 휘궁에서 뿔이 끝나는 부분을 가리킨다.
  • 삼삼이: 대나무와 뽕나무가 만나는 곳으로 먼오금 아래
  • 먼오금: 활의 한 가운데인 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으로 한오금과 삼삼이 사이
  • 한오금: 밭은 오금과 먼오금 사이 가장 많이 휘어지는 곳
  • 밭은 오금: 대림끝과 한오금 사이
  • 대림끝: 줌으로 붙인 참나무의 양쪽 끝 부분
  • 아귀: 줌피의 양쪽 끝부분
  • 출전피: 줌 바로 위에 화살 닿는 곳에 대는 가죽. 살이 나갈 때 활몸채를 긁고 나가기 때문에 닳아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붙인 가죽이다.
  • 줌(통): 활을 쏠 때 손으로 잡는 활 가운데 부분
  • 줌피: 줌을 싼 껍질로 손에 나는 땀을 흡수하도록 한 것
  • 화피단장: 화피는 활의 겉을 싸는 벚나무 껍질인데, 래 화(樺)는 자작나무를 뜻하지만, 활쏘기에서는 벚나무를 말한다.


5. 재료 쓰임[편집]




  • 대나무는 전체적 활채인 오금 부분의 형상을 만든다.

  • 산뽕나무로는 고자[15]를 깎아서 대나무 활채와 결합한다.

  • 참나무로는 대림을 만들어 줌통 부분을 강화하며,

  • 소심줄은 잘 정리하여 대나무 활채에 얹고

  • 민어 부레를 물에 끓여 풀을 만들어 접착을 한다. 민어 부레 풀은 일반 아교와는 달리 열을 받거나 수분을 받거나 하면 쉽게 풀릴 수 있기에 유연한 활의 특성에 적합하다고 한다.

  • 물소 뿔은 빛을 받는 부분(양각)만을 사용하며, 각 활마다 2개씩 사용된다. 잘 깎아서 불에 데우면 고무같이 말랑말랑한 상태가 되는데 이때 부레풀로 접착한다.

  • 벚나무/자작나무 껍질로는 화피를 싸는데, 미관상의 이유나 수분 침투 보호 등을 이유로 외부로 드러난 심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6. 단점[편집]


수분이 침투하거나 열을 받으면 민어 부레 풀의 특성상 즉시 풀려버리기 때문에 여름, 특히 장마철에 사용이 까다롭다. 이 문제는 당연히 당시 군대도 인지했고, 이성계위화도 회군을 할 때 이 점을 구실로 삼은 기록도 있다. 이성계는 2차 요동정벌을 반대하면서 그 이유로 사불가론을 주장했는데 그중 네번째가 '때가 장마철이니 활의 아교가 녹고 군대에 역병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시대에는 옻칠을 하면서 최대한 습기에 대한 대비를 하고, 아예 장마철을 대비해 습기에 강한 다른 종류의 활도 예비로 구비해뒀다는 기록이 있다.

때문에 전통 각궁을 사용한다면 사용한 뒤에는 반드시 국궁 활터 내에 비치된 궁방에 보관해야 한다. 보통 30도 내외의 아주 건조한 환경의 각궁 비치실이 활터마다 준비되어 있다. 현대처럼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계가 없던 과거에는 건조한 온돌방에서 활을 보관했다고 한다.

또 성능과는 별개로 한반도에는 물소가 자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흑각궁의 주재료인 물소뿔을 수입 했어야 했다. 때문에 흑각궁은 꽤 가격이 높고 공급이 많진 않았다는 단점도 있었다.

또 부려놓은 활을 쉽게 얹기가 힘들다. 부레풀의 특성을 이용해 활을 궁사의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자기에게 맞는 활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과정이 아니다. 어설프게 얹었다간 마음대로 튀어버려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다칠 위험도 존재한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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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2장의 활이 각궁인데, 끼워진 조그만 것이 보궁(삼지끈)이라는 물건이다. 얹어놓은 활은 모양이 어찌 변할지 몰라 힘이 약한 부분에 끼워 활의 모양이 변해 튀어나가지 않게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7. 각궁 올리기(얹기)[편집]


각궁은 다른 병장기 처럼 필요할 때 꺼내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매일 사용할 때마다 활을 점화장에서 꺼내어 화살을 쏠 수 있게 시위를 올려야 하는데 몇 가지 과정을 거쳐 활 모양을 만들어 시위를 걸어야 한다. 이를 활을 얹는다고 표현한다. 활을 얹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비가 필요한데, 열을 가할 화톳불, 도지개, 궁틀, 그리고 보궁 혹은 삼지라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각궁을 얹는 데는 아래와 같은 과정이 소요된다.

1. 활을 점화장에서 꺼내어 외부 온도와 비슷해질 때까지 일정 시간 식힌다.

2. 궁틀에 활을 걸어 한쪽부터 반대로 활을 굽힌다. 굽힌 상태에서 활 모양대로 틀이 되는 도지개를 물리고 줄을 묶어 고정한다. 활의 한쪽에 도지개를 물리면 반대쪽에도 도지개를 물린다. 솜씨가 좋은 숙련된 사람은 궁틀 없이 발 끝과 두 손으로만 도지개를 물리기도 한다.

3. 도지개 2개가 활의 윗장과 아랫장에 묶인 상태에서 활의 한쪽 끝, 고자에 시위의 한 끝을 물리고, 시위의 다른 끝은 입으로 문 상태에서 활의 양 끝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은 뒤, 양반 다리로 앉은 상태에서 활의 한쪽 끝 고자를 한쪽 무릎 위에 눌러 잡고 활의 줌통을 반대편 다리 아래에 집어 넣어 무릎으로 누른다. 이렇게 하면 반대쪽 고자에 시위를 걸 수 있게 된다.

4. 그 상태에서 활의 양쪽 끝 고자와 시위를 두 손으로 견고히 잡은 상태에서 활이 어느 쪽으로 넘어가려 하는지 가늠한다. 위 아랫 장 중 강한 쪽은 펴지려 하고 약한 쪽은 더 굽어 지게 되는데 펴지려 하는 쪽을 화톳불이나 곤로에 가까이 가져다 대어 그 힘을 누그려 뜨려 균형을 잡는다. 활의 외측에 겹겹이 발려져 있는 소심줄을 잡고 있는 민어 부레풀이 열에 녹으며 장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5. 활을 이러 저리 살피며 소심줄과 부레풀이 뻣뻣한 부분을 화톳불에 가져다 대어 부드럽게 풀어주고 비틀어진 부분을 바로잡는다. 충분히 열을 가해 균형을 잡지 않으면 활이 뒤집어지거나 튀어오르게 되므로 극도로 집중해야 한다. 활이 뒤집어 지면 활이 부러지거나 쓸 수 없을 만큼 비틀어질 뿐 아니라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대개 새로 받은 활은 첫 해에는 항상 주의 해야 하나 몇 년간 활을 얹고 부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활은 길이 나서 뒤집어질 가능성이 적고 빨리 수월하게 얹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활은 오래된 활이 좋고 화살은 새 화살이 좋다고 한다.

6. 줌손을 비트는 습관이 있는 궁사는 양쪽 활끝 고자를 비트는 방향 반대로 정도껏 비틀어 조정한다. (우리 활은 사법 특성 상 줌통을 적절히 비틀어 쏘기 때문에 출전피 쪽으로 양쪽 고자가 살짝 휘어져 있다. 이는 개량궁도 마찬가지이나 각궁에 비해 정도가 덜하다. 이 때문에 활이 우궁/좌궁의 구분이 생긴다.) 활을 다릴 때 윗장 보다 아랫장이 많이 휘게 다리는 습관이 있는 궁사는 아랫장이 더 많이 펴지고 윗장이 더 굽어지게 조절한다. 각궁을 만든 후 몇 해 지나지 않고 활 주인이 줌을 많이 비틀거나 아랫장이 많이 휘게 당기는 습관이 있는 걸 감안해서 올린 각궁을 그 주인이 아닌 사람이 함부로 당겨 보거나 심지어 손만 대어도 활이 뒤집어 지고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활터에서 남의 활, 특히 각궁을 손대는 것은 철저히 삼가야 하는 금기사항이다.

7.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면 가볍게 활을 당겼다 천천히 풀면서 시위가 윗고자와 아랫고자에 닿는 모양을 확인한다. 요즘은 궁도장에서 시위가 윗고자에 먼저 닿고 좀 더 시위를 보내면 아랫고자에 닿게끔 위 아랫장 균형을 맞춘다. 이렇게 하면 같은 조준점에서 화살이 더 위로 떠서 가서 멀리가게 된다. 카본으로 만든 개량 활의 경우는 공장에서 이렇게 이미 위아랫장 힘을 조절해서 나오게 된다. 원하는 대로 활이 다듬어 졌으면 활 시위의 약한 쪽에 보궁 혹은 삼지라 부르는 고리를 걸어서 뒤집어지지 않게 한다. 활이 다 식으면 보궁이 없어도 뒤집어 지지 않는다.

8. 궁대를 이용해 시위가 얹어진 각궁을 다시한번 감아 묶어서 혹시나 비틀어지거나 뒤집어 지지 않게 고정한다. 이 상태에서 화톳불에 의해 받은 열기가 다 빠질 때까지 일정 시간 놓아 둔다.

9. 활이 다 식어서 의도한 모양대로 유지하면 궁대를 풀고 사대에 올라 활을 낸다.

날씨가 덥고 습한 여름에는 활을 올린 뒤에도 조심해야 하는데, 활이 높은 온도와 습도에 늘어지면서 화살을 잘 보내지 못하게 되고 뒤집어 지기도 쉬워 진다. 비가 내리는 여름은 각궁을 올려 습사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한번 해보면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면서 비가 와서 각궁을 못쓴다고 했던 말이 왜 맞는 말인지 확실하게 실감하게 된다. 단, 너무 건조한 상태에서 활을 쏘는 것도 좋지 않다. 때론 이슬을 머금은 풀밭에 활을 굴려 습을 먹이기도 한다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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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2] 활에 따라서는 당기는 손 어깨너머까지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3] 이는 유럽의 쇠뇌도 마찬가지였는데, 합성궁채(이쪽은 아교로 철갑상어 입천장을 썼다.)를 주로 쓰던 중세 유럽의 쇠뇌들은 비만 오면 파손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유럽의 쇠뇌는 각궁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으며, 재료와 종류에 따라 비가 와도 쓸 수 있었지만(중세 중기로 가면 합성궁채는 거의 도태되고 강철을 쓰는 강철궁채가 주로 남았다.), 각궁처럼 백이면 백 습기에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것은 재료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크다.[4] 평행사변형법으로 합력을 측정하는 것을 떠올려보자.[5] 고구려 하면 생각나는 수렵도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렵을 하는 무사가 당기는 활을 잘 살펴보면 활의 줌통과 고자 사이에 묶음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당시의 맥궁이 향각궁의 형태였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6] 당연히도 백각은 매우 귀했기에 주로 고위층이 쓰던 것이다.[7] 조선군도 이걸 알아서 실사격은 탄환과 화약을 아끼느라 자주 못할지언정 장전연습 만큼은 열심히 시키려고 애썼다. 당시 훈련 교재에는 장전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병사들이 실전에서 저지른 온갖 뻘짓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화약을 넣고 탄환을 넣어야 하는 것을 탄환을 넣고 화약을 넣어서 발포조차 못하거나, 탄환을 입에 물고 화약을 재다가 포성에 놀라 탄환을 삼켜버리거나, 화약과 탄환을 단단히 다지지 않아서 조준하자마자 죄다 흘러나오는 등. [8] 예를 들면 일렉기타를 만들 때 필요한 경우 옛 몇 년도식 제작 방법을 다시 꺼내어 만들기도 하듯이.[9] 당시 중국에서는 고구려을 '맥궁(貊弓)'이라고 불렀다.[10] 예맥궁도 활시위를 걸었을 땐 3자 모양, 당겼을 땐 직사각형 모양이 나온다.[11] 의외로 기마궁술은 기마창술과 가까웠다. 기마궁수 문서 참고. 즉 궁기병의 화살은 창기병의 창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당연히 창 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무거워야 했다.[12] 정확히는 더 복잡하게 생겼다. 파일:활고자1.png 파일:활고자2.png 파일:활고자4.png 파일:활1.jpg 파일:활2.jpg 파일:활3.jpg[13] 이 동영상의 5분 34초부터 참고.[14] 출처[15] 이거 말고 활시위를 매는 부분을 뜻한다.[16] 물론 이건 제대로 방법을 익히고 조심하면 그만인 부분이니 단점이라기보단 주의점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