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검(무기)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유럽의 장검에 대한 내용은 롱소드 문서
롱소드번 문단을
롱소드#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
2. 형태
3. 역사


1. 개요[편집]


이미 한국사에서는 옛날부터 장검(長劍)과 비슷한 무기들이 존재하였지만 고려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근대 장병도(長柄刀) 계열 무기이며, 장병기의 일종이다. 외형은 실전형 월도글레이브, 협도 등과 흡사하지만 보병용이며 운용 방식에서는 차이가 난다.

월도는 주로 기마용으로 쓰이고 육중한 무게를 이용하여 적 보병의 진형을 붕괴 시키는데 쓰였으며, 협도 또한 보병용으로 육중한 무게를 이용하여 적 보병의 진형을 붕괴 시키는데 사용 되었다.

반면, 정도전의 진법에 포함된 보병의 다섯 개 병종 중에 '검(劍)'이 바로 이 장검으로 무장한 병종이듯이 보병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협도에 비하여 코등이가 없고 칼등에 가지와 소꼬리 장식(毦)이 없으며, 길이가 좀 더 짧고 가볍다.

후나후포(後捕後獲)라고 적의 뒤에서 적을 생포할 때 쓰는 무기로도 쓰였으며, 체력을 단련하는 부가기능도 있었다.

2. 형태[편집]


장대에 긴 환도를 부착한것처럼 생겼으며, 세종실록 133권 오례에 따르면, 날은 길이가 2척 5촌이고, 자루는 나무를 사용하는데, 길이가 5척 9촌이다. 장대는 붉은 색으로 칠하거나, 혹은 검은 색으로 칠한다. 자루 아래에 덮어씌운 쇠[冒鐵]가 있는데, 둥글고 뾰족하다.

현대에서는 보기 힘드나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이나 기타 유적지 예식에서 볼 수 있다.
파일:ida_045051a04.jpg
파일:sumunjang.png
세종실록 오례 장검(長劍)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장검 재현

3. 역사[편집]


장대에 긴 철제무기를 붙여 사용한 역사는 길다. 원삼국시대부터 장대에 긴 철제형 검날형을 붙인 검신형(劍身) 투겁창이 사용되어 현재에도 발굴되고있으며[1], 3~5세기 가야시대에는 장대에 휘어진 칼날을 묶은 곡도 또한 발굴되었다. 이러한 장병기는 남북국시대를 거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일부 장검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attachment/월도/1.jpg
파일:external/file.agora.media.daum.net/pcp_download.php?fhandle=YVhYZkBmaWxlLmFnb3JhLm1lZGlhLmRhdW0ubmV0Oi9LMTYyLzExLzExMzAuanBn&filename=096.jpg
3~5세기 대성동 고분군 출토품
출토된 가야의 곡도와 장창 복원체

고려시대에는 대규모 외침이 있을 시에는 인구수의 1/10이 병력으로 운영되었을 정도로 전 국민이 전쟁과 맞닿은 삶을 지내고 있었다. 또한 지방호족들이 난립하던 시기였으며, 소규모 외침 또한 매우 잦았고, 중앙 군사력이 약하여 지방호족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지방호족들은 별초를 운영하여 사병집단을 정예화 하였고, 잦은 외침과 이러한 사병 정예화는 집단전에 기초된 전술에서 소규모 백병전의 필요성 또한 요구되었다. 이러한 집단전 위주의 장창병에서 백병전에서 보조 할 수 있는 장병기 수단으로 장검(長劍)이 발달 된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집권화를 이루고 세종 때 오례에 장검(長劍)이 편성되어 있으나, 엘리트 정예병인 갑사의 폐지와 화포의 발전으로 백병전의 필요성이 적어졌다. 점차 사용도가 사라졌고, 추후 이 자리는 중후한 무게로 적 보병진형을 깨뜨리는 협도가 차지하게 되었다.

날의 형태, 무게나 운용법도 그렇고 오히려 월도 쪽이 장검의 직계후손에 가깝다는 설이 있다. 월도 문서 참고.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12:32:06에 나무위키 장검(무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장검(長劍)과 흡사하게 생긴 월도(月刀) 또한 원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