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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방겔스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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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라트비아 출신의 군인,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중장
2. 초기 행적[편집]
러시아 제국시절의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방겔스키스는 부모가 루터파 기독교의 라트비아인이었다. 1895년 10월부터 1899년 7월까지 리가의 하사관 후보생 지원병으로 러시아 제국군에서 복무한 방겔스키스는 1901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관학교를 졸업해 제93 보병연대에 편입되어 1904년엔 러일전쟁에 참전했다.
3. 제1차 세계 대전[편집]
1914년에 니콜라예프 참모본부 장교과정을 수료한 방겔스키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31군단 참모부의 장교, 제1 우스티 드비나 라튀시[1] 대대장으로 종군하며 1918년 3월까지 제17 시베리아 저격연대장을 지냈다.
4. 러시아 내전[편집]
러시아 내전당시 예카테리나에서 백군에 참여한 방겔스키스는 1919년에 소장으로 승진해 1919년 3월부터 제8 우핌군단장, 제6 우핌군단장, 우핌집단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적군에 밀려 퇴각한 그는 1920년 3월에 제3 시베리아군단 우핌저격사단장으로 있었지만 부대가 적군에게 격파당하자 몽골을 경유하여 중국의 하얼빈으로 달아났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조선을 경유하여 상하이에 머무른 방겔스키스는 1921년에 일본의 기선인 야마토마루호를 타고 라트비아로 귀국했다.
5. 라트비아군[편집]
방겔스키스는 독립한 라트비아군에 입대해 1924년 2월부터 제1 크루젬 사단장, 1924년 12월부터 1928년 1월까지 라트비아의 국방장관을 지냈으며 이후 1937년 퇴역하기 전까지 여러 사단을 전전했다.
6. 제2차 세계 대전[편집]
퇴역 후 타일제조회사에서 일한 방겔스키스는 소련군에 의해 라트비아가 점령당하자 나치 독일로 달아나 나치에 협력했다.
1943년 3월부터 친위대 소장으로 SS 라트비아인 의용군단 총감으로 취임한 방겔스키스는 라트비아의 유대인 학살에 관여하기도 했다. 1945년 2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그는 포츠담의 라트비아 국가위원회 총재를 지냈는데 이 위원회는 라트비아 망명정부라고 선포했지만 6월 21일에 방겔스키스는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
7. 전후 행적[편집]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감금되었던 방겔스키스는 1945년 11월 20일에 라트비아인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2월 25일에 석방되었다. 풀려난 방겔스키스는 소련에 인도되지 않아 그는 서독에 거주했는데 1958년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였다. 사후인 1995년 3월 16일에서야 방겔스키스의 유해는 조국인 라트비아의 리가에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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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트비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