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빌헬름 볼레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정치인, 대관구 지휘자, 친위대 대장이다.
2. 초기 행적[편집]
1903년 볼레는 영국 브래드포드에서 이민한 독일인 대학 교수 헤르만 볼레의 아들로 태어났다. 3년 후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으로 이주하였고,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1920년이 되자 고국인 독일로 가서 쾰른, 베를린 대학에서 정치학, 경영학을 1923년에 베를린 경제학 학교를 졸업하였다. 1924년부터 라인란트주와 함부르크에서 여러 기업체와 무역상사의 직원이나 지점장으로 취직했으며, 1927년에는 크라이슬러 직원으로 고용되었다.
3. 나치당 행적[편집]
1930년에는 크라이슬러를 나와 함부르크에서 이집트 영사관 통역관, 개인 자동차 회사를 차려 사업을 키우던 중 1931년에 나치당이 새로 설립한 외국조직부의 초대 부장인 한스 닐란트 박사와 외국조직부를 세운 그레고어 슈트라서의 조수로 근무하게 되었고, 1932년에 정식으로 나치당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친위대에도 입대하여 바로 소장[1] 계급을 받았다.
1933년 닐란트 박사가 사임하고, 볼레는 외국조직부의 부장에 올랐으며, 당 계급은 대관구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루돌프 헤스의 보좌관이 되었고, 제국의회에도 당선되었다. 외국 조직부는 독일 이외에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나치당 조직원들을 모으는 부서였다.[2]
1937년에는 외무부 국무비서에 올랐고, 1943년에 친위대 대장[3] 까지 승진하였다.
그리고 더욱이 외국 당원들을 모아 외국의 나치들을 만들었다. 이 나치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직접적으로 독일의 편에 붙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나치와의 교역과 협력을 추구하였다.[4]
4. 전후 재판과 행적[편집]
전쟁이 끝나고, 볼레는 뉘른베르크 하위 재판인 뉘른베르크 빌헬름 가 재판에서 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49년에 석방되었다. 그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을 지내다가 1960년에 뒤셀도르프에서 향년 57세로 사망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9 03:14:33에 나무위키 에른스트 빌헬름 볼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