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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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1.1. 화학상
1.2. 평화상
2. 공식 수상후보자
3. 수상 가능성
3.1. 과학상
3.1.1. 물리학상
3.1.2. 화학상
3.1.3. 생리학·의학상
3.2. 문학상
3.3. 평화상
3.4. 경제학상
4. 기타


1. 수상자[편집]


대한민국 출생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2023년[1]
이름
수상 연도·부문
수상 사유
비고
찰스 피더슨
1987년, 노벨화학상
크라운 에테르 발견
출생 지역만 한국 (당시 대한제국), 8살에 일본으로 이주하였으며 부(父)계에 따라 미국 국적자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미국 수상자
김대중
2000년, 노벨평화상
대한민국의 민주화 및 남북 평화에 기여.


2023년 기준, 한국인노벨상 수상 사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례가 유일하며, 노벨상 수상자 수 국가 순위로는 에티오피아, 케냐, 필리핀 등의 32개국들과 함께 공동 5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표에 기재된 것처럼 찰스 피더슨이라는 한국 출생의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 더 있기는 하지만, 후술할 사유로 인해 사실상 한국인 수상자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노벨상은 아직까진 1명이라고 보아도 전혀 무방하다.

대한민국은 선진국들 중에서는 드물게 노벨상 수상자를 과학 외 분야에서만 단 1명밖에 배출하지 못한 나라다.[2][3] 대한민국은 국력과 인구수를 감안했을 때 노벨상 수상자 수가 매우 적은 편에 속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1.1. 화학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찰스 피더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노벨 위원회 공식 웹사이트의 기록을 참고하여 보면, 수상자 중 출생지대한민국으로 기재된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존재하는데, 1904년에 대한제국 부산에서 태어난 찰스 피더슨이라는 미국인이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8살 때 일본 본토로 건너가서 국제학교를 다니다 1922년에 미국 데이턴 대학교에 학부유학을 간 이후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 후 MIT를 거친 다음 42년간 연구에 전념하다가, 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피더슨의 노벨상이 한국과 엮일 만한 부분은 그의 출생지가 한국이라서 노벨위원회의 정보에 한국 출생으로 기재되었다는 점 뿐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피더슨은 엄연히 미국 국적 사람이고,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인 혈통도 없으며,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적도 일절 없는데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도 전부 미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피더슨은 한국인 수상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연히 피더슨이 한국 출생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노벨상 수상자가 김대중 대통령 외에 한 명 더 있다고 주장하는 일은 한국에서조차 없다.

이 사람의 경우처럼 노벨상 수상자들 중 복잡한 출생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노벨위원회는 국적이 아닌 무조건 태어난 장소만 기재하는 것이다. 가령,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더 테레사는 1910년 북마케도니아알바니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북마케도니아는 훗날 튀르키예가 되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주 활동 지역은 인도였다. 출생지, 민족, 주 활동지역에 따라 각각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인도 3개 국가가 그녀를 자국의 위인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1.2. 평화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대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image.pressian.com/10110418183307(1).jpg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15대 대통령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4] 이것이 한국인이 받은 최초이자 2023년 현재까지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이다.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학살된 사건을 APEC 등의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으로 막을 것을 건의해 결국 학살을 막아낸 것도 수상의 이유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이 때문에 동티모르에서는 아직도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즉,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의 공 외에도 수상사유에는 김대중이 젊은 시절 펼친 민주주의 운동부터 재임 시절의 업적까지 총망라되어 있는 것.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외국에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운동가로 상당히 이름을 날렸다. 참고로 김대중은 이미 수상하기 이전에도 1987년부터 매년 14번이나 후보에 올랐었다고 한다.기사

그러나 수상 과정에서 여러 논란과 정치적 공작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위상에 먹칠을 했다. 이 노벨상 수상에 대해 로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올라브 욜스타드 노벨연구소 연구실장이 “대한민국으로부터 뇌물수수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뇌물수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illegitimate)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상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outrageous),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벨위원회 부위원장인 군나르 스톨셋은 2016년 인터뷰에서 노벨상 로비가 존재했음을(그러나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음을) 언급하였다.#

당시 한나라당 이신범 전 위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원외 위원장들이 오슬로에 가서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저지 시위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나라의 위신이 깎일 수 있는 당내 일부의 모난 행동이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사민당 동료의원 80여명과 함께 김대중을 추천한 뒤 줄곧 해외의 여러 유력인사로부터 총 15번이나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다.# 따라서 선거에서 이겨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이후 벌인 로비 하나로 수상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애초에 위의 군나르 스톨셋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쳐도 결국 그다지 결정적인 영향은 주지 않았다고 언급하였고 말이다.

노벨평화상은 노벨상 부문 중에서도 알프레드 노벨이 상을 만들게 된 의지와 가장 가까운 중요한 상이었던데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2000년새천년 최초 수상자이면서 동시에 20세기의 마지막 수상자 및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던 노벨상 100회 수상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시대적 상징성이 있는 수상을 일부의 음해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100년 역사상 최초로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다. 당시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정치적 공작들은 그가 사망한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2017년 10월 8일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을 벌였으며, 사전 공작으로 라프토 상 수상을 취소시킬려던 정황 역시 포착되었다.# 국정원은 한 보수단체 간부를 통해 서신을 작성해 노벨위원회에 부치기까지 했다. 이 과정 중에 사용된 비용은 전부 세금으로 충당됐다. 그 전에도 보수 단체가 수상을 방해하는 로비를 행했다는 주장은 꾸준히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보수 단체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정보원이 계획적으로 행한 작업이었다. 당연히 김대중의 후계를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은 분기탱천하여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만 이후로도 대내외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이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존재해왔다.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을 때도 논란이 일었고, 2016년 군나르 스톨셋 전 노벨위원회 부위원장(2000년 당시의 직함)은 “당시 노벨상 캠페인이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확정짓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이 사건을 당시 알았더라면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지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0년에는 뉴욕타임즈에서 뽑은 “의문의 노벨평화상”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여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적지 않은 업적으로 뽑혔던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가 현재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남북은 여전히 전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김정일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은의 통치 아래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언급했다.# 하지만 위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라고 했던 만큼 이것만으로 노벨상 수상이 잘못되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즉,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에 크게 기여해왔던것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수상을 받은것이며, 애초에 남북정상회담이 동년 6월에 열렸기때문에 그것만으로 수상 자격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다.


2. 공식 수상후보자[편집]


노벨상의 수상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무조건 50년이 지난 후 공개여부적합성 심사를 거친 다음에 공개 가능하다. 2021년 현재 기준, 공개된 모든 수상 후보자 중에 대한민국으로 분류[5]된 공식 후보자로는 1명이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1938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 후보로 지명된 일본인 교수인 하자마 분이치(挾間 文一)[6]로, 나가사키의과대학(현, 나가사키대학 의학부)을 졸업하고 조교수로 지내다가, 추천 후보로 지명될 당시에는 경성(서울)의 경성의학전문학교[7]으로 전근하여 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한 내장의 운동에 의한 전기적 변동을 측정에 관한 연구를 주로 진행했다고 한다.


3. 수상 가능성[편집]



3.1. 과학상[편집]


과학상에서는 AUTSE 젊은과학자상을 받으면 가능성이 생긴다.

과학상 같은 경우는, 노벨상 바로 전 단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상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 래스커상, 울프상, 카블리상,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상 등이 노벨상 다음의 권위를 가진 상으로 평가받는다. 아직까지 상기한 상을 받은 한국인은 전무하며, 한국인의 노벨 과학상 수상을 위해서는 상기한 상을 우선 받는 성과가 선행되어야 하는 실정이다.[8]

노벨상이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권위와 가치가 있는 상이라고 인정받는만큼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이 되면 늘 우리나라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지에 관해 다루는 특집 기사가 나오곤 한다.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만 되면 언론에서는 한국인 유력 수상 후보들을 거론하다가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왜 우리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나' 등의 자조성 기사가 나온다. 특히 옆나라 일본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이러한 분위기가 더더욱 고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인구가 어느 정도 있고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들은 대부분 최소 1회 이상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기록이 있다. 그 덕분에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 여부는 그 나라의 국가적 역량과 선진국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써 인식되기도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면서 인구도 충분히 많음에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기록이 없다. 와닿기 쉽게 예를 들자면 IMF 기준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 가운데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나라는 그리스,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그리고 대한민국 밖에 없다. 그러나 앞의 세 나라들이 인구가 적은 나라들이기 때문에 불리한 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체급의 선진국이 과학 부문 노벨상이 없는 것으로서는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노벨상 뿐 만이 아닌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역시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 허준이 교수는 미국인이다. 이와 유사한 수학상인 울프상(수학부문), 가우스상, 아벨상, 네반리나상 역시 수상자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압축성장을 위해 극도의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했음을 대변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상은 단순히 오늘 내일 뛰어나다고 주는 상이 아니라, 최소 수십 년은 평가하고 주는 상이기 때문에, 수십 년 전에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지금 선진국이라고 성과가 바로 나오길 기대하는건 무리가 있다.

흔히 우리나라는 응용과학만 발달했고 기초과학은 부족하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지만, 청색 led나 MALDI를 발명한 사람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듯이 노벨위원회는 응용과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업적도 적지 않게 상을 수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은 다소 어폐가 있다. 응용과학으로써 노벨상을 받으려면 기초기술(Fundamental Technology)을 개발했는가가 중요한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면 기초 기술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많이 미흡한 국가이다. 이는 후술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래로 기초기술을 다지기보다는 빠른 압축 성장을 위해 선택한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부합하는 검증된 기술을 개량시키는 학문 쪽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아무리 좋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냥 이미 있는 기술을 얼마나 더 개선시켰는지의 문제이지, 새로운 기술을 원천적으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 애당초 기초 기술 역시 기초 과학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이같이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취하는 기조가 타파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의 노벨 과학상의 전망은 어둡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우리나라는 일찍이 근대화나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늦었고 그 역사도 짧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학기술 역사는 1960~1970년부터, 기초과학은 빨라도 1990년부터 시작했다. 거기에 1997년에는 심각한 금융위기까지 맞았다. 당장 웬만한 북미/유럽/일본 등의 경/중공업 기업들 중 상당수가 긴 역사를 자랑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공업 기업들은 대부분이 1950~1970년대 설립되었다. 더군다나 기초 과학/기술은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긴 육성 기간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전쟁 후, 빈곤, 가난)은 필수적으로 기초과학과 기초기술보다는 검증된 기술을 이용한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해 그에 부합하는 공학기술의 발전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세계적인 공업기술을 갖추고 전자산업, 자동차, 조선, 건축, 경공업 등의 부문에서 후발 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 무대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공업력 면에선 여러 유럽 국가들을 뛰어넘어서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기술력, 경제력이 미약한 국가들인데도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기준 10년간 노벨상 수상자 77명(물리학상 26명·화학상 27명·생리의학상 2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평균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하고 69.1세에 수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연구 시작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2년이다. 심지어 해가 갈 수록 수상자 평균 연령이 상승하고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32년 전의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이었다. 노벨상 주요국 중에서 가장 기초 과학 육성이 늦은 일본을 살펴보면, 21세기 이전까지는 10년에 한 번 꼴로 수상하다가 21세기부터는 매년 한 명 꼴로 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기초과학력이 21세기 들어 갑자기 상승한 게 아니라, 이미 쌓아온 성과를 상으로서 인정받은 것 뿐이다.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은커녕 이공 계열로의 투자조차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한 수준으로 그 역사가 아주 짧다. 그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 내공이 부족하여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불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옹호적인 의견도 종종 제기된다. 좋은 예로 우리나라보다 1인당 GDP 순위가 바로 한 단계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인데,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기초과학에 대한 역사는 당연하게도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다. 이런 연구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적 투자 총액이 크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큰 결과물도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은 이유도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수상한 일본조차도 거의 60년 가까이 걸렸다. 1949년의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의 모교이자 교수로 있던 교토대학 이공학부 설립년도가 1897년이었고,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인 도쿄대학도 1877년에 설립했다.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진 중노년층이 아직은 사회 전반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니다 보니,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게 되고, 전반적인 교육 방향도 그런 가시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이는 빨리빨리 문화의 영향도 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가치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가 과학 분야에 투자를 안하고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한국은 대한민국/과학기술력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자연과학 논문 기여도는 세계 9위이며, GDP 대비 R&D 투자 비용 비율도 이스라엘에 이어 OECD 2위이다. 이렇게 높은 R&D 투자 비용 비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초 과학 경쟁력이 낮은 이유는,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안에 성과가 나는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이는 과거 고속 성장 진행 시기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R&D 투자 비율만 높지 정작 기초 과학에는 많은 금액을 투자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가 응용과학이나 산업에 대한 투자보다 기초과학 R&D에 대한 투자를 적게 하는 것이 경제학 관점으로 보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생물학 분야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일본보다 구미권 국가가 한발 더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지금 갑자기 우리나라가 세계 선도 수준의 생물학 및 바이오산업 강국이 되겠다고 기초 생물학을 집중 투자한다고 하면 현 실정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반대의 뜻을 내비칠 것이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는 기초 생물학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보다 CMO(의약품 위탁 생산)[9]와 같이 기초과학이 아닌 응용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이는 마치 과거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나라나 대만이 빠른 경제, 산업 발전을 위해 물리학, 소재 영역에서 세계 선도 수준을 목표로 투자하기보다는 메모리, 파운드리 분야에 집중 투자하여 산업적인 영역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는 데 방점을 두었던 것과 같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쭉 첫 번째 동적 개시자가 아닌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했으며, 따라서 경제 성장이나 관련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그 중요도와 시급성이 낮았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자연히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현재와 같은 전략을 택한다면, 어쩌다 한 두명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거나 21세기 내내 단 한 번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구미권 국가나 일본처럼 지속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단발성으로 그치는 게 아닌 지속적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을 위해서는 한국의 빠름 추종자 전략을 크게 수정하거나 혹은 최소한 첫 번째 동적 개시자 전략으로 변경하지는 않더라도, 과학기술 분야 전문인력의 양성 및 기초과학 연구에 대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 과학계를 견인하여 그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세계 선도 수준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만들어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벨상 수상자나 권위있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한 핵심 요소 두 가지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연구재단에서 2016년 국내 기초과학 분야 핵심 연구자 14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서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10년 안에 노벨상 과학 부문을 수상할 것이라는 답변이 27%로 가장 많았고, 78%가 20년 안에 수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한국인 후보로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겸 IBS 연구단장)를 뽑았고, 이밖에 화학 분야 유룡 KAIST 교수(IBS 연구단장)와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교수(물리), 임지순 포스텍 석학교수(물리), 현택환 서울대 교수(IBS 연구단장)(화학) 등이 앞으로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큰 한국인 후보로 예측됐다.# 특히 이 중에서 현택환 교수와 유룡 교수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선정하는 노벨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원천 기술은 수입해서 쓰기 어렵다. 그것은 그 기초과학과 과학자, 그리고 고숙련 기술자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당장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원천기술 개발과 그 기반인 기초과학 육성은 정부와 대학의 몫이다. 지구환경·에너지·식량 위기에 대처하는 인류의 선도 대열에 서기 위해서도 원천기술과 기초이론의 축적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큰 위기가 왔을 때 을의 입장이 되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또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지 않으면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 팔더라도 시장을 진정으로 주도한다고 볼 수 없으며, 항상 원천 기술이 막힐 때의 위험을 짊어지게 된다. 핵심기술과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오랜 정부 지원과 교육개혁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학계 입장에서 그나마 변론을 해보자면, 노벨상이라는 상이 20세기 말을 기점으로 상 자체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우리나라 학계에게는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되고 만 측면이 있기는 하다. 노벨상의 수상기준이 20세기 중반 즈음까지는 여타 일반적인 학술상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가, 20세기 말 즈음부터 상 자체의 성격이 공로상 비슷한 성격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까지는 그냥 나라의 전반적인 상태 자체가 영 말이 아니었고 불과 몇십년만의 급성장을 거쳐 국력이 신장된 뒤에도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인 공로상을 수상 받을 정도의 석학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니 여태껏 노벨상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

다만 2022년, 2023년 10월의 경우는 국내 언론에서 아예 노벨상을 예측하는 기사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워 그 이전까지의 국내 분위기로부터 꽤나 큰 변화가 있었는데, SNS 등이 발달함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은 어렵다.”라는 학계 내의 견해가 이제는 우리나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널리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또한 2020년대 들어서는 취업난 등으로 인해 대학원생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알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대학원생들 또한 원론적으로는 본인들의 실제 목표가 무엇인지와는 별개로 일단 대학원 재학 자체만으로도 학계에 몸을 담고 있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원에 존재하는 교수의 갑질 등에 관한 부조리도 2010년대 후반에 크게 알려진 경향이 크다. 군대, 직장에서 부조리와는 다르게 학계에서 부조리는 지상파에서 크게 다루지 않은 적도 많다.


3.1.1. 물리학상[편집]


물리학상의 경우는 최근 몇 년 수상 경향을 보면 대형 물리학 실험 관련[10]이나 신분야 개척자에 수상이 많은데 한국은 그런 연구를 주도해서 한 경험이 적다. 다만, 그런 대형 연구 프로젝트는 여러 나라의 정부, 단체들이 공동으로 지원하고,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협동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국내의 학자들도 국제적 공동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므로[11], 꼭 우리나라가 연구를 주도해야하는 것만은 아니다.

물리학 중에서도 업적이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삶이 크게 변하는 분야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다.[12] 특히 천체물리학 같은 경우에는 현대 기술로는 큰 발견이 이루어져도 사람들의 삶에 당장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이런 분야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위한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므로 넓게 보고 투자해야 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노하우를 갖고 있는 국가 쪽이 미래 우주 진출에 훨씬 유리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2023년 7월 하순, 퀀텀에너지연구소이석배, 김지훈, 고려대학교의 권영완이 개발한 LK-99가 상온·상압의 초전도체라는 주장이 제시됨에 따라, 노벨물리학상 수상 가능성이 거론되었던 적이 있었다. 초전도성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한때 대한민국 최초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될 것이라고 유력하게 예측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LK-99는 현재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전혀 재현이 되지 않고 있으며, 초전도성이 없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게 되어 이들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거론은 현재 거의 사그라들었다.

3.1.2. 화학상[편집]


화학상의 경우는 AUTSE 젊은과학자상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 노벨상은 30대에 연구를 시작해서 50대 이후(빠르면 50대, 늦으면 80대~90대)에 받는 케이스가 가장 많기 때문에 30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보더라도, 202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데이비드 맥밀런은 2명 모두 50대 나이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화학상 분야 후보로는 2014년부터 톰슨로이터에서 노벨상 후보자로 예측한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과 제올라이트 분야의 개척자인 유룡 당시 KAIST 교수가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으며, 이 분야는 아직 연구 중이고 해당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는 없어서 수상 가능성이 있다. 2017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구 톰슨로이터)에서 화학공학자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노벨 화학상 후보 중의 한 명으로 꼽기도 하였다.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를 태양전지에 적용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 2020년에는 나노결정 합성분야의 권위자인 현택환 서울대 교수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화학상의 경우, 기업 연구원 출신이자, 역사상 유일한 학사 출신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와 같은 수상 사례도 있고, 화학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제약,[13] 방산 등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과도 연관성이 높다.[14]

3.1.3. 생리학·의학상[편집]


생리학 의학상 분야는 CT, MRI, PET의 대가로 인정받는 세계적 전자공학조장희 고려대학교 석좌교수가 양전자 단층촬영기(PET)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업적으로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1975-76년 원형 (circular type) PET을 세계최초로 개발하였고 이듬해 BGO 양전자 검출기를 개발하였다. 이를 토대로 1980년 스칸디트로닉(Skanditronik)과 1985년 GE에서 최초로 상업적인 양산형 원형 PET을 개발하게 되었으며 현재 모든 PET는 그가 개발한 원형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CT와 MRI에서 이미 노벨상이 수여된 것으로 보아 PET 분야에 대한 노벨상 수여도 기대할 수 있으며 PET 노벨상은 PET의 최초 개발자이자 현재 PET의 표준을 만든 조장희 교수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microRNA 연구의 권위자인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 tRNA의 구조를 밝혀낸 UC 버클리 화학과의 김성호 교수, tRNA 합성효소 복합체를 최초로 발견한 서울대 김성훈 교수[15] 등이 이 분야의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찰스 리(이장철) 박사[16]도 강력한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 그는 2001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인간의 유전자 염기 서열이 해독되었을 때에만 해도 인간 유전자는 인종 불문 99.9%가 거의 같을 것이라는 게 통념을 뒤집고, 단지 서열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염기구조 덩어리가 없거나 중복되어 있어 사람마다 차이가 크며 이것이 암 발생 등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2004년 네이처 제네틱스 저널에 발표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이를 그는 '단위반복변이(Copy number variation)'라고 이름 붙였다. 그 후 톰슨 로이터가 노벨 생리의학상 분야 수상이 유력한 한 명으로 지목했고, 클래리베이트에서도 찰스 리를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선정했다. 찰스 리 박사는 2014년 인터뷰에서 "한국 국적을 얻고 싶다. 이중국적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만약 노벨상을 받는다면 한국 국적으로 받고 싶다"고 말했다.###

2021년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를 수상 유력 후보로 선정한 바 있다. 생리의학 부문에서는 한국인 최초. # 하지만 이호왕 교수는 2022년 7월 5일 세상을 떠났다.

KBS에 따르면, 김순권 한동대 국제개발협력대학원 석좌교수도 기생풀과 공생가능한 옥수수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에 5차례 거론됐었다고한다. KBS World Radio 슈퍼 옥수수를 개발한 것 외에도 옥수수 육종 분야의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소식으로 인해 2004~2005년 경에는 그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게 점쳐졌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연구의 실체는 논문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전세계에 나라망신만 거하게 안겨주고 끝났다.


3.2. 문학상[편집]


노벨 문학상은 업적과 분야 구분이 명백한 과학상이나 경제학상과는 달리, 지역 안배를 위해 일정 주기로 대륙별로 돌아가며 수상자를 배출시킨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로 비교적 조건이 널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전무한 게 한국 문학계의 현실이다. # 단, 노벨문학상은 유럽 언어 외의 언어로 작품을 쓰는 문학인들에게 굉장히 짜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다. 실제로 문학상 수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유럽 작가를 편애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자주 나온다. 역대 노벨 문학상의 수상작 내역을 보면 이를 단순한 루머로 보기에는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작품에 사용한 언어는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이 대부분이며 한자문화권 언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소설가 정소성 단국대 명예교수는 노벨 문학상을 문학성 자체보다 영향력 있는 선진 강대국 간 지역, 언어, 국가, 대륙, 인종 등의 정치적 안배로 결정하는 상으로 규정하여 노벨 문학상 수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문학사는 노벨문학상과 무관하게 쓰이고 있다"면서 "노벨문학상이 없어도 세계문학사는 별다른 차이 없이 제대로 쓰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벨상의 변질이 심해 미국의 대중가수 밥 딜런이 수상했고, 문학자 아닌 철학자 베르그송이나 버트런드 러셀이 수상한 해도 있고, 처칠은 정치인이지만 문학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의 자질 문제도 거론했다. ### 한편 노벨문학상이 없는 이유로는 낮은 독서량을 드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나라들은 연령대가 높을 수록 독서량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연령대가 높을 수록 독서량이 낮은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젊은 층의 독서율은 평균 이상이다. 동아시아권 국가에서 젊은 층의 독서량은 우리나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있는 일본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다만 상술했듯이 한국의 중장년층의 독서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총 독서율이 하위권이 된 것이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들의 대부분이 중장년층임을 고려한다면 독서율이 낮아서 노벨문학상이 없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노벨문학상을 노려 군부 정권 독재에 대한 불만을 덮고 정권 찬양에 쓰고자 당시 한국소설들을 마구잡이로 번역하여 내놓던 적도 있었다. 한림원의 요청을 받아 몇 차례 작가들을 추천한 바 있는데, 특히 1982년 김동리의 <을화>가 실제로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동리 외에도 서정주가 1990년과 1994년, 최인훈이 1992년 추천되었으며, 그 밖에도 황순원, 박경리, 황석영, 김지하, 이문열, 신경숙 등의 작가가 언론 등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곤 했다. 북한에서는 이기영이 <두만강>으로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언론이 엄청 설레발을 떨었기에 김동리 작가는 살아 생전 자신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가 노벨문학상에 근접했다느니 뭐니라는 말을 지겹게 듣어서 늘그막에 이걸 비판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선 매년 문학상 후보로 언론에서 주도적으로 고은을 거론했는데, 그 이유로 드는 게 한국어권(수상자 없음)/한자 문화권 출신자인 점 그리고 그동안 시인 수상자가 많지 않았던 점, 노벨 위원회의 성격과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는 고은의 행적이 부합하며, 알베르 카뮈 이후 문학상이 일단 '환갑은 넘겨야 받는 상'이 되어버렸는데 동아시아권의 권위있는 원로는 많지 않으니 지역안배 차원에서 수상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이유였다. 객관적인 업적으로 평가하는 과학, 경제학상과 달리 달리 문학상과 평화상은 정치적인 이슈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안배를 해왔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과연 고은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위치가 되는 작가인가 하는 의문이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던 중 2010년대에 성추문 폭로로 이미지가 실추됨과 동시에 한국문학계의 흑역사가 되었고, 문학과 행실을 별개로 보려고 해도 도저히 노벨 문학상 후보에 들 만한 작가라곤 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소설가 한강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종의 세대교체로 볼 수 있지만, 역사도 매우 짧고 권위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의 특성상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현재 시점에선 아주 높다고는 볼 수 없다.

2020년대 들어선 지금은 수상 논의가 활기를 띄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국문학에서 주로 논의되는 주제가 현대 노벨문학상의 흐름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노벨문학상은 형식적 파괴(밥 딜런의 수상이나 페터 한트케 등)나 형식의 재해석(루이즈 글뤽), 역사에 대한 관점(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오르한 파묵, 가즈오 이사구로) 등을 조명하고 있는데,[17] 한국 주류문학에는 이러한 흐름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것.

문학상과 여성주의가 연관된 사례로는 2007년의 도리스 레싱의 수상건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도리스 레싱의 수상은 단순히 여성주의에서 그치지 않고 인종적인 문제 등 더 넓은 문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한 점을 근거로 한다. 급진적 여성주의로 변질된 우리나라 여성주의 기조와는 달리, 레싱은 급진적 여성주의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었던 점도 참고할 만 하다. # 여성주의와 관련해서도 계몽주의적 여성주의에 비판적인 논의는 사장되는 기조이다.


3.3. 평화상[편집]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미 있으며, 지정학적 단점이 산재한 한반도의 특성과 북한과 인접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특성을 고려해보면, 노벨 평화상은 우리나라가 수상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부문 중 하나이다. 특히 북한과 평화통일을 맺을 인물이 있다면 그 업적은 필히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인접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

최초 수상자인 김대중의 상징성과 앞서 거론된 특성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권을 필두로 평화상 수상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예외적인 논의로는 반기문유엔 사무총장의 수상 여부에 대한 논의를 꼽을 수 있으며, 반 전 총장은 임기가 거의 끝나가던 2016년에 파리협정 타결을 지원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 유력 후보로 꼽혀 국제적인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었으나, 결국 수상이 불발되었다.

2010년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노리고 최초의 대한민국 주도 국제기구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를 창립하였으나 정작 최종 10인 후보에는 들지 못했다. 대신 최종 10인 후보에는 평생을 봉사에 몸바쳐온 원불교 박청수 교무가 선정되었으나 결국 수상이 불발되었고 그해 평화상은 류샤오보가 받았다.[18]

특히 2018년의 경우, 2018 남북정상회담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모두 성공리 개최한 덕분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점쳐지기도 했다. # # 영국 도박업체 '나이서오즈'(Nicer Odds)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동 수상 배당률을 최저 1.53에서 최고 2.20[19]으로 내걸기도 했으며, 또 다른 도박업체 '래드브록스'(Ladbrokes)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동 수상에 1.66의 배당률을 내걸어 가장 높게 전망하기도 했다. # 노벨 사이언스 역시 문재인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물론 문재인/김정은/트럼프의 수상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2018년 노벨평화상의 후보 추천은 2018년 2월에 마감했으므로 이후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의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당장 그 북미간 핵협상도 완료된 게 아니고 말이다. 결국 2019-20 북한 미사일 도발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의 남북관계가 수직낙하하는 여러 불상사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 관련 이야기는 쏙 들어간 상황이다.

위 사례들만 비추어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상 이후 모든 대통령들이 평화상 수상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의 행보 말고도 그 전까지의 민주주의 운동 등의 업적 등이 다 포함돼 노벨상 수상자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열 번이 넘게 수상 후보자로 오른 전적이 있었다.기사 즉, 과거 전적을 토대로 노벨평화상에 근접한 상태에서 결정적인 업적을 통해 수상을 하게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와는 달리, 그 이후에 발생한 논의들과 유독 화제가 됐던 2018년 당시의 수상 가능성 논의[20]는 대체로 업적 자체만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어폐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3.4. 경제학상[편집]


그나마 수상 후보라도 거론되는 과학계와는 달리, 경제학계에서는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는 학자들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사실 대상을 아시아 전체로 넓혀도 수상 가능성이 희박한 실정이다. 지금껏 아시아 출신 수상자로는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야 센유일하며, 센의 수상 이후로 신케인즈학파의 기요타키 노부히로만이 유일하다시피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이다.[21]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조차 경제학상 부문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경제학 연구의 중심이 미국에 있는데다 미국 연구자들 (혹은 영어권) 간의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애초에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인 이상 미국류의 경제학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아닌 자국의 경제에 집중하는 각국의 경제학자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에는 불리할 수 있다.# [22]

대한민국 태생의 인물 중에서는 cho-kreps intuitive criterion으로 대표되는 에모리 대학교 조인구 교수나# 프린스턴 대학교 신현송 교수#가 거론되지만 이들 역시 저명성이나 이론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임계점을 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23] AEA의 Fellow로 선정되는 한인들과 영미권 대학의 교수직을 역임하는 한국 경제학자들의 활약은 주목할 만 하지만, 아직 자체 모형을 현실적으로 적용시켜 국제적인 인정을 받거나 citation 상위권에 근접한 학자들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한 한국계 학자도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수상을 논의하기엔 이르다고 볼 수 있다.

노벨상 주간이라는 말과 무색하게 노벨평화상 수상 거명이 끝나면, 해당 연도의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국인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24]



4. 기타[편집]


  • 대한민국은 국내 대학들에서 학사·석사·박사 중 한 가지 이상의 학위를 취득/수료했거나 연구원 또는 교수직을 지낸 외국인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 했으며,[25] 한국계의 노벨상 수상 사례도 없다.

  • 고려대학교, 포항공과대학교, 계명대학교, 민족사관고등학교, 연수고등학교, 경남과학고등학교,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등 대한민국의 몇몇 학교들에서는 미래에 나올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좌대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자기 학교 출신이 아니라도 한국인 중에서 과학 분야[26]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만 하면 그 사람의 기념 흉상을 놓기 위해 미리 좌대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그 정도로 한국인들의 노벨상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 여부는 꽤나 오랜 떡밥이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굳이 한국인이 노벨상을 꼭 받아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벨상 자체가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이며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행사와는 달리 국가간의 경쟁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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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9 17:35:14에 나무위키 노벨상/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노벨위원회의 수상자의 출신지 기재 기준에 따름.[2] 전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과학 외 분야에서만 1명 이하로 배출한 선진국은 대한민국 외에 현재 아이슬란드 (문학 1), 싱가포르 (0) 뿐이다. 그마저도 이 나라들은 인구수가 한국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이다.[3] '1명 이하'라는 조건을 빼더라도 해당되는 선진국은 그리스 (문학 2) 뿐이다. 참고로 그리스의 인구는 약 천만이다.[4] 수상자 발표는 2000년 10월 13일(서울 시각 기준)이었으며, 시상식은 2000년 12월 10일에 있었다.[5] 후보자의 정보로는 당시 소속기관과 체류 국가 및 도시가 기록된다. 국적이나 인종 등의 정보는 일체 기록되지 않는다.[6] 요미가나: ハザマ ブンイチ, 영어: Bun-ichi Hasama[7] 경성의학전문학교는 해방 이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합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8] 노벨 경제학상의 경우에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이 그 예시에 들어간다. 해당 상 역시 한국인 수상자가 없다.[9] 2021년 현재 세계적으로 바이오 산업은 반도체 산업 등 다른 중공업 분야에 비해 아직은 미성숙한 분야이다.[10] LHC, LIGO, 카미오칸데, KAGRA 등이 대표적.[11] 가령 2017년에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된 중력파 관측실험에도 우리나라의 여러 물리학자/천문학자들이 참여했다.[12] 물론 수상의 경우에는 분야별 배분이 주기적이라고까지는 못해도 어느정도는 이루어진다.[13] 이쪽은 생리의학상과도 연관성이 있다.[14]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는 화학과의 연관성이 아주 높다.[15] ##[16] 예일대 의대 교수 겸 서울대 석좌초빙교수 겸 잭슨랩 유전체 연구소장, 전 하버드 의대 교수[17] 반(反)식민주의에 관한 소설은 아프리카 소설이 영향력이 크므로 여기에선 언급하지 않는다.[18] 이 일화는 이명박 대통령 퇴임 후 한참이 지난 2018년에서야 기사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GGGI 자체는 후임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잘 운영되고 있다.[19] 가령 100유로를 건다면 최대 220유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배당률이 낮을수록 수상 가능성이 높다.[20] 이례적으로 2018년엔 노벨평화상을 발표하는 (한국시간)10월 6일을 전후해서 '노벨 평화상', '노벨 평화상 후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렸다.[21] 신케인즈학파의 노벨경제학상 수상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시상 분야가 거시금융으로 한정될 경우 기요타키와 무어가 유력자들이기 때문이다.[22] 다만 노벨 경제학상이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도 없고, 금융 파생 상품 거래의 새로운 수법 개발에 기여하고 파탄한 투자 펀드의 운영과 관련된 수상자까지 있는 등 과거부터 숱한 논란을 일으키며 계속 폐지론이 나오는 부문이기는 해도, 수상했을 때의 파급력(경제활성화 등)을 생각하면 여전히 수상하기를 원할 수밖에 없다.##[23] cho-kreps의 크렙스도 노벨상 후보로 종종 거론되지만 그의 핵심적인 업적은 직관적 기준이 아니며, 신현송과 비슷한 시기에 세계금융위기를 예견해 대응을 촉구한 공로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꼽혔던 라구람 라잔도 노벨상 수상에 근접하지 못했다.#[24] 물론 경제학상은 절대 다수로 미국인과 일부의 서유럽 학자들이 매년 수상하기 때문에 한국에만 해당하는 상황은 아니다.[25] 다만 국내 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이나 방문 교수로서 강의를 한 외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몇 명 존재한다.[26] 해당 학교들의 성향이 성향인만큼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만을 취급할 가능성이 높으며, 노벨평화상 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도 흉상을 올려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먼저 나온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