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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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7년 2월 10일 데뷔해서 2017년 2월 10일에 해체한 JYP엔터테인먼트 최초의 걸그룹.안녕하세요, 원더걸스입니다!
Spread The Wonder![3]
2. 역사[편집]
초창기의 원더걸스는 선예를 중심으로 현아, 소희, 선미의 4인조로 준비되었다가 데뷔 직전 비공개 오디션[4] 을 통해 마지막 멤버 예은이 발탁되며 5인조로 시작했다. 그러나 데뷔 해인 2007년 7월, 현아가 건강상의 문제로 그룹을 탈퇴하여 유빈이 투입되었고, 이후 2010년 1월 23일, 미국활동 중 선미가 활동 중단을 발표하여 새 멤버 혜림이 투입되었다. 추후 2015년 7월에는 3년만의 컴백 전, 결혼한 선예와 연기자 전향으로 소속사가 달라진 소희가 탈퇴함과 동시에 활동 중단 상태였던 선미가 재합류해 4인조가 되었다.
2007년 9월에 발매된 정규 1집 《The Wonder Years》의 타이틀곡 〈Tell Me〉가 범국민적으로 크게 히트하면서 2세대 아이돌 산업 시작을 알렸으며 이후 「So Hot」, 「Nobody」의 3연속 히트곡 라인[5] 을 탄생시키며 발라드 위주의 가요계 흐름[6] 을 뒤엎고 국민 걸그룹으로서 압도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동시기 전성기를 구가하던 동방신기와 BIGBANG을 제치고 여성 그룹 최초로 단독 대상을 수상하며 그 정점을 찍었다.[7] 2009년 초 2세대 걸그룹 중 가장 먼저 해외 진출에 나섰는데[8] 「Nobody」가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9] 하여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지상파 TV 토크쇼 [10] 에 출연하고,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Hot 100 차트 진입에 성공하며 초창기 K-POP 열풍의 단연 선두에 섰다.
데뷔 10년차인 2016년, 걸그룹 세대교체의 흐름[11] 속에서도 멤버 4명 전원의 전곡 작사, 작곡, 악기 녹음으로 완성한 「Why So Lonely」로 3분기 디지털 음원 종합 1위를 차지하고, 2세대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각종 연말시상식의 여자그룹상 후보에 오르며 [12] 아이돌 걸그룹을 넘어 셀프 프로듀싱 밴드로서 화려한 부활을 했다. 〈2 Different Tears〉, 〈Be My Baby〉, 〈Like This〉 등의 모든 활동곡들이 흥행을 했다. 그러나 2017년 1월 전속 계약 만료로 예은과 선미가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고, 유빈과 혜림은 JYP와 재계약하며 데뷔 10주년인 2017년 2월 10일 굿바이 싱글 「그려줘」를 끝으로 공식 해체했다.[13]
3. 그룹명[편집]
특이점이 있다면 'Wonder Girls'의 스펠링을 다시 조합해보면 'World Singer' 라는 단어로도 재생성된다. 물론 이를 그룹명 작명 때 은연중에 노렸다고는 할 수 없고 그저 우연의 일치이다.'Wonder'의 단어 뜻 그대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그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범 세계적인 그룹과 전 연령층을 공략하는 방향성을 드러낸다.
흔히 줄여서 ‘원걸’이라고 주로 불리우며 팬들 사이에서는 완도군수[14] 같은 은어로도 사용한다. 공식 영문명은 Wonder Girls. 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The Wonder Girls라고도 불려지며 줄여서 WG라고도 많이 사용된다. 일본어로는 ワンダーガールズ로 불리며, 중국어로는 奇迹女孩(奇蹟女孩)로 불린다.
대표적으로 이름에서부터 Tell Me 뮤직비디오에서 소희가 원더우먼 콘셉트을 한 것을 보고 대중들은 당연히 원더우먼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15] 하지만 '원더걸스'라는 이름은 본래 정식 데뷔 전 MTV에서 방영한 멤버들의 일상생활과 데뷔 준비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제목[16] 일 뿐이었고 [17] , 당시의 진짜 팀 이름은 LC(Ladies City, 레이디스 시티)이다. 과거에는 LC(Ladies Club, 레이디스 클럽)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2016년 9월 11일, 연예가중계에 출연한 예은이 클럽이 아니라 시티였다고 밝혔다. 줄여서 LC라는 박진영이 만든
게다가 멤버들 이름도 본명이 아니라 예명으로 활동할 예정이었는데 각각 선예(써니), 예은(실버), 현아(민트), 선미(베리), 소희(IC)
4. 멤버[편집]
4.1. 전 멤버[편집]
4.2. 멤버 간 케미[편집]
- 언니 라인
- 유빈 & 예은 & 선예 : 언니 라인, 원성삼 라인 / 88년생 그리고 89년생 멤버들로 구성된 언니 라인으로 2008년에는 이 셋을 '원성삼' 라인으로 불렀다. 원더걸스 성인 3인방의 약어로 당시 예은과 선예가 성인이 되면서 원더걸스의 성인 멤버가 셋이었기 때문이다.
- 예은 & 선예 : 89년생 동갑 라인, 메인보컬 라인, 투예 커플 / 팀 내에서 메인보컬을 맡고 있기 때문에 무대에서 케미를 자주 볼 수 있는 라인이다.
- 유빈 & 예은 : 언니 라인, 예빈 커플 / 원더걸스에서 최고 연장자와 두번째 연장자이다. 데뷔 초에는 서로 룸메이트이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f772ec9WWm0 서로 티격태격 하는 모습도 있으나 그만큼 친하게 지내기도 한다. 참고로 원더걸스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했던 라인이기도 하다. 예은은 활동 종료까지의 모든 활동을 소화한 유일한 원년 멤버, 유빈은 원더걸스 두 번째 음반인 The Wonder Years때부터 활동 종료 때까지 모든 활동을 소화했었기 때문에 사실상 원년 멤버 취급을 받기도 한다.
- 유빈 & 선예 : 단발 라인 / So Hot 활동 당시 둘 다 단발로 활동하였던 적이 있는데 단발을 함으로써 예뻐진 미모로 주목을 많이 받았던 멤버들이다.
- 막내 라인
- 선미 & 현아 & 소희 : 92년생 동갑 라인 #1 / 청담중학교를 같이 다녔기도 한 이 셋은 데뷔 전 그리고 데뷔 초의 막내 라인으로 리얼리티에서 다양한 케미를 보여주었던 라인이기도 하다.
- 선미 & 소희 : 92년생 동갑 라인 #2, 미소 커플 / 원더걸스 전성기인 <Tell Me - So Hot - Nobody> 시절의 막내 라인으로 재밌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원더걸스를 대표했던 막내 라인이다. 이들에 케미는 2020년에도 계속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Y2tjFLw_qA
- 소희 & 혜림 : 92년생 동갑 라인 #3 / 2 Different Tears때 혜림이 합류하면서 생긴 라인으로 초반에는 이 둘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하였으나 이후에 활동부터는 서로 친해진 듯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 선미 & 혜림 : 92년생 동갑 라인 #4 / 활동을 중단한 선미를 대신해 혜림이 합류하였던지라 선미의 복귀 전까지만 이들의 관계는 미스테리였으나 이후에 같이 활동을 하면서 비추어진 모습은 서로 굉장히 친한 것으로 밝혀졌다.[23]
- 선미 & 소희 & 혜림 : 92년생 동갑 라인 #5 / 단 한번도 다같이 무대를 섰던 적은 없는 라인이지만 2020년 혜림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모이면서 이들의 친목이 인증되었다.
- 선미 & 현아 : 92년생 동갑 라인 #6 / 이들의 케미는 특이하게도 원더걸스 때 보다는 2017년 이후부터 주목을 받은 라인이다. 선미의 '가시나' 활동과 현아의 'Following' 활동이 2017년 8월 다섯째주에 겹치게 되면서 이들의 만남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NTW28xLoew0
- 이외의 라인
- 선예 & 선미 : 투선 커플
- 유빈 & 혜림 : 맏언니 + 막내 라인, 래퍼 라인, rrr엔터테인먼트 라인 / 원더걸스 활동 기간 동안 유빈이 혜림을 많이 챙겨주면서 생긴 케미다. 원더걸스 단독 리얼리티에서 유독 유빈과 혜림이 붙어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며 현재에도 방송에서 자주 같이 출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둘 다 래퍼 포지션이 때문에 무대에서도 그들만의 케미를 자주 뽑내기도 한다. 2020년부터 혜림이 유빈의 소속사인 rrr엔터테인먼트와 첫 아티스트로 계약을 하면서 JYP 소속 시절 이후로 다시 같은 소속사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이후 유빈의 말로는 혜림이 원더걸스에 늦게 합류를 하였고 활동도 얼마 못했기 때문에 무대에서 본인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느껴져서 더욱 챙겨주었다고 한다.
- 유빈 & 선미 : 뉴마 커플, You & Me[24] 라인
- 예은 & 선미 : 은선 커플, 장신 라인
- 예은 & 현아 : 선미와 현아처럼 이들도 원년 멤버였던만큼 팀이 달라져도 만남은 계속되는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S3-Am84rWG4 2019년에는 같이 춤을 추는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8sbwhNdmMU
- 선예 & 소희 : 민안 커플. https://www.instagram.com/p/CZWFveOvJ9b/?utm_medium=copy_link, https://www.instagram.com/p/CZWL5U6vrrB/?utm_medium=copy_link
5. 특징[편집]
5.1. 인기 및 위상[편집]
국민 아이돌이자 2세대 걸그룹 시발점이라 할수있으며 데뷔 직후부터 2007년 9월에 발매된 정규 1집 《The Wonder Years》의 타이틀곡 <Tell Me>의 열풍 이후, '원더걸스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생겨났으며, Tell Me의 춤을 따라 추는 UCC영상이 학생, 할머니 할아버지, 경찰, 스님, 군인, 교사 직업과 나이를 불문하고 수 많은 양이 생산되었다. 이는 'UCC 열풍'까지 이끌어냈다. Tell Me는 곡 전체를 관중이 떼창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대표적인 예로 한양대첩[25] 과 농심콘 떼창[26] 을 들 수 있다.
원더걸스는 소몰이창법이 대세였던 2003~2006년도 가요계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본격적으로 2세대 아이돌의 서막을 열열었으며, 동시에 후크송 시대를 열게 되었다.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이 활동했던 아이돌 1세대가 끝난 뒤로 동방신기가 2세대의 문을 열었다면 원더걸스는 걸그룹으로는 2세대이자[27] 아이돌로서는 3세대를 열게 된 셈.[28]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원더걸스는 2000년대 후반~말기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고, 발라드 열풍이였던 가요계 판도를 뒤바꿨던 가수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대중음악의 걸그룹 시대, 그리고 K-POP 시대와 관련돼서 반드시 언급돼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다.
평론가 임진모
이전 싱글 1집 아이러니 때만 해도 대중들은 걸그룹 자체에 별 관심이 없던 시기라 인기는 중박 정도에 그쳤으나, 첫 정규앨범이자 그들의 대표곡인 'Tell Me'의 공전의 대히트로 인하여 당시 '국민 여동생 걸그룹' 으로 불렸을 정도로 전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직까지도 "후크송" 하면 이 곡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끌었다. 요즘에야 후크송이나 후크송의 요소를 곡 곳곳에 갖추고 있는 곡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거의 전무하다고 볼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원더걸스가 최초로 후크송이라는 개념을 국내 가요시장에 소개했고, 이후 특히 아이돌 시장에서는 일종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그 인기는 지상파 방송사 메인 뉴스에서 제법 보도됐을 정도다. 'Tell Me'를 마구 따라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들 덕분에 UCC의 보급과 자리 매김에 일조하기도 했었다.[29] [30] [31] 이후 두 번째 싱글 <So Hot> 역시 발표와 동시에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석권, 대대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같은 해에 <Nobody>를 발표하며 다시 한 번 공전의 히트를 치고, 이 두 곡으로 2008년 역시 ”명실상부한 원더걸스의 해”라는 평가를 받는다. 'So Hot'과 'Nobody'는 걸그룹이라는 것, 팬사인회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상당히 준수한 판매량인 한터 기준 7~8만 장을 기록하며, 음반 판매량도 탄탄한 모습을 보인다. 음반 판매량은 팬덤의 크기에 비례하므로 팬덤 역시 탄탄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2009년 초 남자 아이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단독 콘서트를 국내외, 여성 그룹으로서는 핑클 이후 10년만에 열며 탄탄한 팬베이스를 입증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의 인기는 신드롬, 사회현상, 문화현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역대 모든 걸그룹들을 통틀어서도 이 시기의 원더걸스만큼 신드롬을 일으킨 걸그룹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32] 이후 네이버에서 진행한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 히트곡 조사에서 Tell Me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대흥행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임에도 '강남 스타일'을 제치고 1위를 기록한 것' 에서 Tell Me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압도적인 인기를 기록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여야를 합친 4개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원더걸스의 곡을 쓰겠다고 요청을 해온 것을 # 모두 거부 했다. 당시 유빈을 제외하고 모든 멤버들은 미성년자로 선거권이 없는데다가 전국민적인 열풍을 일으킨 노래를 한 대선 후보를 위해 쓴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기에 한쪽으로 몰릴 것을 위한 방지차원으로 거부했다. 비록 원더걸스에게 선택되진 못했지만 최초로 공익 선거운동 홍보대사 를 역임함으로써 공익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각 대선후보 캠프는 젊은층의 친밀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흥겨운 로고송을 정했다. 또한 시대정신을 담고있는 뛰어난 걸그룹이라는 평을 받았다.
유행이라기보다는 "현상"이다.
학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술집에서도, 심지어 군부대에서도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이들의 'Tell Me'가 흘러나왔고, 거기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눈길 닿는 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유행가에 관심 없던 백발 어르신들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대중성을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원더걸스는 박진영의 근거있는 자신감이다. 박진영과 이 다섯 명의 소녀가 만들었던 "전국민적 현상"이 그만큼 대단하긴 대단했다는 거다.
평론가 여인엽
원더걸스 파급력은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서울 한 서재지에서는 원더걸스의 공연을 보여주겠다고 속여 초등학생 3명을 납치해 부모들에게 150만원씩 모두 450만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필리핀에서는 'Nobody' 가사를 모른다고 살인 사건이 났다.[33] 필리핀, 중국,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과 동남아권에서의 'Nobody'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의 'Tell Me'의 인기과 비견될 정도라고 한다. 유투브에서 'Nobody'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2,700만을 넘어섰고, 라이브 동영상은 5,700만을 넘었다. 당시 한국 가수 중 압도적 1위였다.
2008년 가요 선호도 1위가 'Nobody', 3위가 'So Hot'이었다.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도 당시 함께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BIGBANG과 동방신기를 제치고 여성 그룹 최초로 단독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8 MKMF에서도 'Nobody'로 3대 대상 중 하나인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하였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박진영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이 가미된 그룹으로 원더걸스는 가요계 자체의 판도를 아이돌 판으로 바꿔놓으며 원더걸스는 오랫동안 끊겨 있던 대형 걸그룹의 계보를 이었다.
<Nobody> 활동 이후, 원더걸스는 잠시 미국활동에 집중하며 국내 활동에 공백기가 생기게 된다. 2009년 3월 28일 첫 단독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국내 활동을 마무리와 동시에 미국에 진출하였고 조나스 브라더스 콘서트 오프닝 게스트로 전미 투어를 했으며, 'Nobody' 앨범이 발매된 후 순수 한국인으로만 이루어진 그룹으로써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HOT 100에 오르는 역사적인 업적과 쾌거를 달성했다.
지금 K-POP 열풍의 시작을 알린 그룹이자, K-POP이 '빌보드 핫 100' 에서도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이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그들은 아시아에서 쌓아올린 자신의 명성을 잃을 각오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좋은 성적을 거뒀다.
'Nobody'는 지금의 K-POP을 만드는 데 필수요소다. Nobody 이후 10년동안 K-POP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뒀다.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10년 전만 해도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빌보드 핫 100' 진입은 이제 가수들의 목표가 됐고, K-POP 팬들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해있다. '빌보드 핫 100'에 또 다른 한국인 가수가 진입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美 <빌보드> [34]
국내 활동에 공백기가 생기면서 'Nobody' 이후 약 2년 만에 발표한 <2 Different Tears>는 2주간의 짧은 국내 활동을 통해 이전보다 팬덤이 훨씬 붕괴되었음에도, 음원과 음악방송에서 1위를 휩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2 Different Tears는 5월에 발매됐음에도 멜론 차트 '연간 7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룬다. 초 압도적인 대중성이 팬덤을 누르게 되지만, 그럼에도 압도적으로 탄탄한 그룹으로 자리잡게 되기도 한다. 대중성에 큰 기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건 춤이다. 원더걸스의 노래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춤이 연상된다는 점이다. <Tell Me>의 텔미(후렴)춤, <So Hot>의 V 라인 댄스, <Nobody>의 총알춤, <Like This>의 개다리춤 등 각종 유행을 선도했다는 것이다.
2011년 11월 발표한 두 번째 정규 <Be My Baby>는 11월 발매임에도( 한 해에서 마지막 한 달만의 성적으로 다른 곡을 전부 앞질렀다는 뜻이다.) 멜론 차트 연간 20위, 가온 2011년 음원 연간랭킹 탑3 안에 들었다. 2012년 발표한 <Like This> 는 당시 함께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BIGBANG과 같은날, 같은시간 동시컴백을 하여 서로의 앨범 수록곡까지 모두 차트를 장악하여 번갈아가며 음원 차트 1위를 올킬하였고, 최종적으론 방송에서나 연간차트에서 우위를 선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원더걸스의 코어멤이자 리더인 선예가 결혼을 발표함에 따라 그룹 활동이 멈춰지게 되고, 원더걸스에는 무려 3년의 공백기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3년이 지나 발표된 것은 기존 멤버인 '선미'[35] 의 재합류 기사였다. 반면, 이어서 '선예'와 함께 투탑 코어멤이었던 소희, 두 멤버의 탈퇴 소식도 발표가 된다. 이에 따라 원더걸스의 컴백 및 미래에 대한 희비 의견이 갈리게 되었지만..
2015년 7월, 3년이란 공백기 끝에 세 번째 정규 《Reboot》 의 발매가 발표되고, 원더걸스가 밴드 컨셉으로 탈바꿈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걸그룹이 10년 차에 와서 멤버들이 악기를 직접 배워, 밴드 컨셉으로 전향하는 것은 전무한 행보였다. [36] 3년만에 나타난 원더걸스는 전수록곡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채울뿐더러 전문가들이 뽑은 명반으로 손꼽힐 정도로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정규 3집으로 타이틀곡 'I Feel You'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음원 사이트 1위를 휩쓴 데다가 더불어 당시 멜론 24시간 진입 이용자수 83만명을 돌파하며, 당시 원더걸스의 화제성이 얼마나 걸그룹에서 압도적이었지를 보여준다. 이는 원더걸스가 데뷔 10년차인 연장 그룹임은 물론, 3년의 공백기와 코어 멤버들 탈퇴 및 변화를 겪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원더걸스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여전히 높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당 기록은 2022년인 지금까지도 걸그룹 이용자수 top 10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해인 2016년 발표한 첫 자작곡인 <Why So Lonely>는 발표와 함께 음원 사이트 '퍼펙트 올킬'을 달성, 멜론 24시간 진입 이용자수 89만명을 기록한다. 이는 당시 역대 걸그룹 최다 기록 돌파로, 무려 2022년 현재까지도 6위를 기록한다. Why So Lonely의 대인기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서 가온 3분기 전체 1위라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특히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타이틀을 포함해 모든 곡이 멤버들의 자작곡이며 이전까지 시도된 적 없는 레게팝 장르라는 점 등이 전문가들로 하여금 음악적으로도 높게 평가되었다. 이들은 10년차 걸그룹의 모범적 모습을 가요계에 제시하였고, 각종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였다. 그 이후 해체를 했지만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최우수 팝 노래' 대상을 수상을 하며 아름다운 끝을 보여줬다.
참고로 '2022년 기준 모든 걸그룹 중 멜론 월간 차트[37] 와 주간 차트[38] 역대 최다 1위 기록을 가장 많이 차지한 그룹'이다. 즉 '음원 성적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음반 점수나 방송 점수가 다른 걸그룹보다 떨어져도 항상 1위 후보에 오르던 이유는 오로지 그들의 높은 음원 성적 하나 때문이었다.[39]
분명히 한국의 2세대 아이돌 팝 시장의 형성의 선봉을 맡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미국 시장에서 전국투어를 하고, 빌보드 Hot 100에 오른 첫 한국 아이돌 걸그룹이었으며, 여러 번의 멤버 변동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마침내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에서 밴드 포맷에 이은 싱어송라이터로써 진정한 아티스트로 진화한 그들의 수고와 노력은 분명 가요 역사에 기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평론가 김성환
작별인사가 안아픈 팀은 거의 없지만 원더걸스는 유독 마음이 더 시려온다. 최전성기를 구사하다가 오랜 시간동안 공백기를 가지고, 다시 돌아와 최고의 순간을 찍고 바로 은막 뒤로 퇴장하는 아이돌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중심에는 시장논리가 있지만, 어쨌든 이해 당사자 모두 약간의 욕심을 버린 결과다. 이전의 적절한 '변신' 이후 이제 그것이 안정 궤도에 이르렀고, 정말 그룹의 정체성이 되어감을 확인하게 만들었던 바로 전작에서 싱어송라이팅에서도 재능을 보이며 롱런히트로 실력을 겸비한 대중성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그녀들이였다. 원더걸스라는 큰 그림의 확장을 더 기대했던 대중들, 팬들에겐 아쉬운 소식이지만 마지막까지 음악적으로 탄탄함을 보이려 애쓴 그들의 모습과 앞으로의 멤버들의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평론가 김용민
돌이켜보면 이제껏 원더걸스는 <Tell Me>, <So Hot>, <Nobody>까지 '3연타로 대히트'를 쳤고 그 후로도 나오는 대로 <2 Different Tears>, <Be My Baby>, <Like This>, <Why So Lonely>[40] 등 '활동한 모든 곡들은 전부 크게 흥행'을 했다. 이는 수많은 연예인 동료들이 그룹이 해체하고 나서도, 긴 공백기가 있을 때, 그리고 활동 기간 중에도 원더걸스를 따라 무대를 꾸며주거나 흉내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더걸스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5.2. 음악성[편집]
미국 활동 이후, 이제는 모든 멤버들이 앨범의 모든 것과 음악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여러 장르들을 도전할 수 있었고, 이제는 멤버들이 작사•작곡•편곡에 참여하여 그들만의 음악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미국실패라고 요약하는 원더걸스의 역사는,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독보적인 그룹인가를 반증하는 기록인 셈이다. (상세 내용은 해당 문단 참고.) 사실상 이전까지 음악적으로 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향상된 실력과 앨범 제작에 직접 관여하면서부터 이는 곧 아이돌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겼으며, 팀의 정체성을 완전히 재정의하는 데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컴백에서 댄스 그룹에서 밴드로 변신을 한 이후엔 걸그룹으로선 최초 모든 멤버들이 작사, 작곡 능력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이 되어 수록곡들은 멤버들 모두의 자작곡이었고, 이어진 싱글 4집에서 마침내 박진영의 도움 없이 오직 그들 스스로 만의 음악적 재능으로 작사 작곡한 <Why so lonely>를 타이틀곡으로 실었는데 그것이 또 크게 히트를 침으로써 프로듀싱 실력을 겸비한 대중성까지도 잡은 데다 댄스, 발라드를 넘어서 밴드, 랩/힙합, 레게, 록, EDM, POP, 일렉트로닉, 하우스, R&B, 소울등 이제는 수많은 장르를 소화 시킬 수 있는 만능 올라운더 그룹의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본인들은 한 인터뷰에서 "이제 자작곡을 들려주는 게 특별히 내세울 점은 아니다"며 "아이돌 음악이 철저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상업 음악으로 인식됐는데 이젠 그 아이돌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얘기를 해보고 싶은 단계에 온 것 같다. 자연스러운 흐름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42]
5.2.1. 음악 장르[편집]
'메인 콘셉트는 단연 레트로(복고) 장르 로써 한국의 걸그룹들이 매 앨범마다 다른 컨셉의 새로운 음악과 비쥬얼을 선보이는 것과 달리 원더걸스는 60~80년대의 미국 팝을 기반으로 하는 모습들만 보여주었다. 특히 원더걸스 사운드하면 레트로라고 알려질 정도로 레트로를 주로 하는 그룹인데 전성기를 함께한 Retro Trilogy(텔•쏘•노)를 비롯해 2DT까지 타이틀이 모두 레트로곡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데뷔 곡인 힙합리듬의 〈아이러니〉나 〈이 바보〉 [44] 를 보면 초기엔 복고 콘셉트를 지향하지 않았으나 '텔소노'의 메가히트로 인해 아예 팀 컬러를 복고로 잡아버린 듯한데, 상술했듯이 원더걸스란 이름이 박진영의 아이디어가 아닌 외부인의 아이디어였기에 초기 기획단계에서 '복고'는 의도치 않은 방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5.3. 인원 변천사[편집]
최정상급 아이돌이었던 걸그룹 중 멤버 교체가 상당히 많았던 팀으로 멤버 변화를 기수로 따져도 4기로 나뉜다. 맨 처음 데뷔 당시에는 유빈 자리에 현아가 위치해있었으나 건강상 이유로 탈퇴하였고, 선미의 활동중단 선언 이후 혜림이 합류하여 쭉 활동했다. 2015년엔 선미가 재합류하고, 선예와 소희가 공식적인 탈퇴를 거치면서 4기 시대를 열게 되었다.
데뷔 당시 멤버는 89년생 고3이었던 예은, 선예, 92년생 중3이었던 선미, 현아, 소희로 중3 멤버가 3명으로 구성되었으며[50] , 모든 멤버가 미성년자에 데뷔하여 전무후무한 나이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 현아의 습관성 장염으로[51] 3월과 4월에 잠시 입원하는 등 활동 초기부터 차질을 빚었던 그녀는, 정규 1집 준비 중에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소속사 측의 탈퇴 결정을 받아들였다. 설상가상으로 Tell Me 이전, 멤버 소희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촬영 중 오토바이 사고로 무릎이 찢어져 한달간 입원신세를 지었다. 이로인해 잠시 활동중단을 했고 각종 행사무대에서 백댄서를 대동하여 약 한 달간 3인 체제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성별곡 OST 수록곡 〈일월지가〉를 선예 홀로 공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공연장에 있던 팬들이 간주 부분에서 ‘잊지 않고 기다릴게 원더걸스’라고 외치는 구호 소리에 대기실로 돌아와 많이 울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원더걸스는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이후 오소녀 출신의 88년생 유빈이 급하게 합류했다.[52]
이후 선미는 이전부터 과호흡 증후군 등 무리한 스케줄 탓에 활동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잠시 4인체제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미국진출 후 다른멤버들이 몰랐을 만큼 굉장히 정신적으로 힘들어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선천적으로 앓고있던 무지외반증으로 활동에 무리가 왔다. (상세 내용은 해당 문단 참고.)
선미가 활동중단 시절로 나오지 않았을 때는 이른바 6더걸스라고 해서 원더걸스 완전체로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중들 사이에서 현아처럼 탈퇴로 인식되어 있든 간에 선미는 여전히 원더걸스 멤버(탈퇴가 아닌 활동중단)이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완전히 0%였던 것은 아니기 때문. 혜림이 아리랑TV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팀의 멤버로 Sun, Yenny, Yu-bin, Mimi, Sohee, Lim라고 언급했기에 기대를 부풀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선미가 원더걸스 복귀가 확정되면서 드디어 6인걸스를 볼 수 있는 듯 했으나, 같은 날 선예와 소희의 탈퇴가 확정이 되어 결국 6더걸스는 꿈의 라인업으로 남게 되었다.
- 위 표는 정식 데뷔 이전부터의 합류순서에 따라 정렬되었습니다.
예은은 1기 체제에 가장 마지막으로, 팀 데뷔를 '한 달' 앞두고 합류했으나 탈퇴나 활동 중지 없이 모든 원더걸스에 활동에 참여한 유일한 멤버이다. 마지막 멤버가 원더걸스의 역사가 되어버린 케이스이며, 2010년 2월에 합류한 혜림은 2013년 2월 이후로 원더걸스로 활동한 기간이 선미의 활동 기간을 뛰어넘었다. 선미는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와 함께 활동을 시작해 2010년 2월 데뷔 3주년 직전에 활동을 중단, 2015년 재합류 이전까지는 원더걸스로 "2년 11개월 동안" 활동했다. 정규 3집 이전까지 응원법에서는 민선예 박예은 선미짱[53] 안소희 김유빈 우혜림 순서로 불렸다.[54] 정규 3집부터는 박예은 이선미 김유빈 우혜림으로 바뀌었다.
2020년 6월, 부러우면 지는거다 방송을 통해 소희, 선미, 유빈이 혜림의 결혼을 축하하는 브라이덜 샤워 현장에 함께하였다. 사정상 선예, 예은은 영상 통화로 함께했으나 결혼식 당일에는 현장서 축가를 불러주었다. 현아는 혜림과 같이 활동 한 적이 없기에 접점이 없어 나오지 않았다.[55]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까지 방송에 출연하며 여전히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는 모습에 팬덤을 넘어 대중들도 훈훈한 반응을 보였다. 과거 선예의 결혼식에는 현아를 포함한 "7더걸스"가 한 자리에 모이기도 했었다.
- 댄스의 경우 데뷔 초에는 현아가 메인 댄스담당이었지만, 탈퇴 이후에는 그 포지션이 애매해졌다. 대체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은 선예, 소희.[56] 선예는 오랜 연습 기간을 통한 베테랑 실력과 곡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있어 안무를 구사하는데 굉장히 힘이 되고 있으며, 소희는 신체상 팔, 다리가 길기도 하고, 춤선이 깔끔한 것으로 전체 아이돌 내에서도 워낙 유명하다. 또한 그룹 내 가장 습득력이 빠르다고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다른 멤버들 경우 그룹내 춤에 구멍은 없지만 예은의 경우 데뷔 전 댄스동아리 회장이었다고 하지만 겨우 고등학교 아마추어 동아리였다. [57] 선미와 혜림은 데뷔 때부터 못추는 것은 아니지만 춤 잘 추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혜림은 유연성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춤을 못 추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문제는 선미인데 몸의 비율이 좋아 위에서 설명한대로 춤선 자체는 예쁘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그렇게 잘 춘다 보기는 어렵다. [58] 아무래도 팬들은 멤버들이 춤을 못 춰서 댄스 담당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안무가 집중되는 경우가 줄어들다보니 댄스 담당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 또한 대체적으로 센터가 고정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대중의 인식에는 아무래도 그룹의 정체성인 소희와 선예 두 축이 주로 맡는 편이다. 소희의 경우 그룹 내 압도적인 인기로 무대나 타이틀 자켓에 많이 서는 편이고, 선예는 인터뷰나 평상시에 원더걸스 리더이자 최단신으로써 센터를 주로 맡았다. 4인조로 개편했을 땐 크게 개의치 않고 아무렇게나 섰던 편이다.
- 예능 담당 역시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숫기가 없는 편이고 일단은 나대는 것과 티 내는 것을 싫어하고 못하는 편이다. 멤버들이 전반적으로 워낙 예능에 대한 감이 없고, 프로그램에서 강하게 밀고나가는 다른 패널들과 아이돌들에게 밀려 제대로 된 멘트조차 날리질 못한다.[59] 이러한 예능감이 소녀시대와의 결정적인 차이를 불러왔다는 시각도 있다.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크게 고전할 때 소녀시대는 국내에서 Gee의 메가톤급 히트와 예능 전방위 출격을 통해 입지를 다졌다. 당연히 활동 반경도 넓어지게 되면서 팬덤 유입 역시 영향을 끼치며 음반 성적에도 영향이 끼칠 수 밖에 없는데 하필 음반성적이 가장 큰 단점인 원더걸스는 그런부분에서 한없이 약하다. 그나마 성격이 다부진 예은이 언변이 좋아서 말을 잘하긴 하는데, 결과적으로 재미가 없다. 리더인 선예도 말은 잘 하는데 웃기지는 못 한다. 소희는 방송에서도 낯을 가리니깐 재미를 찾을 수 없다. 선미가 특유의 4차원 캐릭터로 예능에 잘 어울릴 것이라는 평이 많지만, 선미의 4차원은 단순하게 엉뚱한 캐릭터가 아닌 진짜로 정신이 4차원으로 날아가버리는 캐릭터인 까닭에 장담할 수는 없다 [60][61] 유빈은 톤 자체부터 느리고 낮아서 기대를 할 수가 없다. 한편 REBOOT활동에서는 혜림 그나마 새로운 기대주로 떠올랐다. 선미와는 정반대로 조용히 원기옥을 모으고 있다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한방을 터트리는 스타일이다. 남아 있는 네 멤버가 그나마 전부 밝은 캐릭터들인지라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예능감이 늘었다. 여담으론 박경림이 승승장구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은 치고 들어가는 것이 대세인데 이 분들은 너무 순수해서 예능에서 멘트를 뺏기고 얼굴이 슬퍼 보인다고 안쓰러워 했다.
6.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원더걸스/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1. 음반 목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원더걸스/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2. 콘서트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원더걸스/콘서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3. 방송 출연[편집]
자세한 내용은 원더걸스/방송 출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4. 광고 및 홍보대사[편집]
- 당시 최고의 아이돌그룹 이었던 것 만큼 당연히 CF 활동 역시 대단했다. 최연소랑 최초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CF모델로 활동하였다. 휴대폰, 피자, 지역홍보모델, 게임, 교복, 비타500, 치킨, 공명선거, 커피, 화장품,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줬다. 2DT때까지는 자신의 그룹명을 건 화장품 모델을 하였다.
- JYP의 ”그룹 광고 아니면 안한다” 그룹 철칙이 있었다. 특히나 압도적 인기멤버 안소희에게 어마어마한 금액의 단독 CF 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왔지만 다 거절하였다. 그렇게 그룹 광고의 철칙이 지켜지다가 재계약 시점이 다가온 2012년부터는 단독 광고를 허락해줬다. 특히나 안소희가 뛰어난 사복 패션을 바탕으로 하는 Reebok, 에잇 세컨드, 슈에무라 등으로 소희를 기용함으로써 소희 효과를 보며 매출이 보장되어 잘 나갔다.
- 유일하게 개인활동이 허락된 건 "홍보대사"였다. 회사가 허락하는 일부 개인활동만 가능했었지만, 홍보대사만큼은 유일하게 모든 멤버들이 다 한번씩은 개인적으로 홍보대사를 맡을 수 있었다.
6.5. 단독 예능[편집]
- MTV 원더걸스 시즌 1 ~ 시즌 4 [63]
- 원더걸스의 Wonder Bakery
- Welcome To Wonder Land
- Made In Wonder Girls
- REAL WG[64]
7. 여담[편집]
- 원래는 2PM를 데뷔시키려고 결정하는 비공개 쇼케이스장에 오프닝 축하 공연을 꾸몄던 원더걸스의 데뷔가 결정되었다. 선예, 현아, 소희, 선미가 여자 연습생들 대표해서 축하 무대를 꾸몄다. 그 무대를 보고 박진영이 제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남은 오디션 내용들은 기억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에도 너무 어린 나이라서[65] 고민과 걱정을 했지만 결국 2PM 대신 먼저 데뷔하였다.[66] 나중에 택연이 원더걸스 5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올리며 그들 덕분에 우리도 있을 수 있었다며 서로의 윈 - 윈 전략은 아주 탁월했다. 원더걸스는 여전히 아이돌 그룹 중 평균 17.2세 (만 15.2세)로 가장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룹 1위로 꼽히고 있다. (19, 19, 16, 16, 16) 모두 미성년자에 데뷔했다. [67]
- 모두 엄친딸로서 공부를 잘 했다. JYP는 인성 뿐만 아니라 연예 활동에 있어 학업 성적도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성적표도 제출해야 했다. 특히 예은 같은 경우 Tell Me 활동 당시 고3 수능생이였지만 반 1등, 전교 10등 안엔 있었다. 차에서 공부하다가 멀미를 하고도 책을 놓치지 않았고 # 결국 수능성적으로 60:1 경쟁률을 뚫고 경희대를 정시 합격을 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만일 가수가 안 되었으면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란다. 실제로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수시 1차도 붙었는데,
대학교 특성상 연예계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아 면접에서 면접관이 탈퇴를 요구하였고면접에서 탈락을 맛봤다.[68] 혜림 역시 알려진 바 4개 국어가 능통하며, 한국외대 EICC(영어 통번역학과)를 합격하여 막학기를 4.3점로 졸업하였다. 다니면서 직접 통번역한 책도 출판되고, 조교로도 활동하며 실제로 외대생들이 맨날 혜림을 학교에서 본다고 너무 열심히 한다는 목격담이 많이 있다. 이 외에도 전교회장 출신 선미는 학력고사반 1등, 중학생 때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발명 대회 전국 10위 등 성적이 우수해 선생님들이 교사를 추천했지만,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가수를 선택해 집안 가장으로서 집안을 살려냈다. 증언, 유빈 역시 모친의 예고 진학의 반대를 이기기 위해 단기간에 미국 고등학교 G.P.A 4.0만점에 4.0를 받았고, 소희 역시 아버지 인터뷰를 통해 공부 욕심이 많아 상위권을 유지하며 매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게 밝혀졌다. 선예 또한 전교 14등에, 선예를 제외한 모두가 외고 출신에 중국어경시대회에서 2등이였다.
- 멤버들 전체적으로 낯을 가린다. 여느 그룹들 같은 경우 돋보이기 위해서 막 나서 뭐라도 막 하는 편인데, 원더걸스는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래서 예능에서도 그냥 웃는 리액션만 줄곧 볼 수 있다. 일례로 언론에서 노잼 그룹 만년 1위로 뽑힐 정도다. [69] 이러한 성격은 음악 방송에서도 바로 알 수 있는데, 특이하게도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단체 샷에서 항상 구석에 있다.
앞에 서야 할 때면 세로 일자로 서서 그들 머리 뒤로 숨어 버린다.#, # 이것 역시 신인 시절부터 현재까지 쭉 유지되고 있는데 팬들은 이 때문에 원걸이 단체샷에서 중앙에 서있으려면 하는 말들이 있다. 1위 후보로 만들어 강제로라도 중앙에 서게 해야 한다 라고... 심지어 타 연예인 왈, 이들은 워낙 숫기 없어 그룹 이름 말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한다고 한다.
- 앞서 말한 것처럼 그룹 성향이 내성적이다 보니 멤버들 제외하고는 연예인 친구가 많이 없다. 하지만 정이 많은 그룹으로도 유명하다. 그나마 그래도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는 친구를 부르는 코너에 박경림이 나왔다. 사실 새벽 촬영이라 안 나오려고 했는데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왔다고 전했다. '인사동 찻집'에 비유하면서 너무 소박하다고 사석에서 우연히 만나 밥을 사줬는데도 불구하고 그 다음부터 만날 때는 마치 ‘친엄마’를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고 전했다. 이후 소희와 유빈을 동네에서 마주쳐 아이스크림을 사줬는데 더 각별한 눈빛으로 봤다고... 이때 소희가 했던 말은 ‘저 700원 짜리 먹어도 돼요?’ 그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어서 출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그래도 현재는 연차가 쌓여서인지 개인 활동하면서 각자 연예계 인맥들이 쌓이고, 여러 연예인 친구들을 많이 만든 것으로 본다. 물론 개인차는 있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