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아이돌)

최근 편집일시 :


파일:shinhwa_18th_white.png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0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transparent 45%, #FFFFFF 45%, #FFFFFF 55%, transparent 55%); width: 95%"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px; display: inline-block; color: #FFFFFF; min-width: 50%"
[ 음반 목록 ]

파일:신화_해결사.jpg


파일:신화_T.O.P..jpg


파일:신화_Only One.jpg


파일:신화_First Mythology: 2001 1st Live Concert.jpg


정규 1집

해결사
(1998.05.09)

정규 2집

T.O.P.
(1999.04.15)

정규 3집

Only One
(2000.05.27)

라이브 앨범

First Mythology: 2001 1st Live Concert
(2001.04.01)

파일:신화_Hey, Come On!.jpg


파일:신화_My Choice.jpg


파일:신화_Perfect Man.jpg


파일:신화_너의 결혼식.jpg


정규 4집

Hey, Come On!
(2001.06.28)

베스트 앨범

My Choice
(2002.01.26)

정규 5집

Perfect Man
(2002.03.09)

정규 6집

너의 결혼식
(2002.12.27)

파일:신화_The Everlasting Mythology: Shinhwa 2nd Concert.jpg


파일:신화_Winter Story.jpg


파일:신화_Brand New.jpg


파일:신화_Winter Story 2004-05.jpg


라이브 앨범

The Everlasting Mythology: Shinhwa 2nd Concert
(2003.10.07)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3.12.30)

정규 7집

Brand New
(2004.08.27)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4-05
(2004.12.17)

파일:신화_Hey, Dude!.jpg


파일:신화_Summer Story 2005.jpg


파일:신화_Shinhwa 2005 Japan Tour Live.jpg


파일:신화_State Of The Art.jpg


디지털 싱글

Hey, Dude!
(2005.04.14)

비정규 앨범

Summer Story 2005
(2005.08.05)

라이브 앨범

Shinhwa 2005 Japan Tour Live
(2006.03.15)

정규 8집

State Of The Art
(2006.05.11)

파일:신화_僕らの心には太陽がある.jpg


파일:신화_Winter Story 2006-2007.jpg


파일:신화_Winter Story 2007.jpg


파일:신화_다시 한 번만.jpg


일본 싱글

僕らの心には太陽がある
(2006.09.07)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6-2007
(2007.01.25)

비정규 앨범

Winter Story 2007
(2007.12.05)

디지털 싱글

다시 한 번만
(2008.03.24)

파일:신화_10th Anniversary - RUN.jpg


파일:신화_The Return.jpg


파일:신화_The Classic.jpg


파일:신화_MEMORY.jpg


정규 9집

10th Anniversary - RUN
(2008.04.03)

정규 10집

The Return
(2012.03.23)

정규 11집

The Classic
(2013.05.16)

디지털 싱글

MEMORY
(2015.02.03)

파일:신화_WE.jpg


파일:신화_아는 사이.jpg


파일:신화_UNCHANGING PART 1 - ORANGE.jpg


파일:신화_UNCHANGING - TOUCH.jpg


정규 12집

WE
(2015.02.26)

디지털 싱글

아는 사이
(2016.10.22)

정규 13집

UNCHANGING PART 1 - ORANGE
(2016.11.29)

정규 13집

UNCHANGING - TOUCH
(2017.01.02)

파일:신화_SHINHWA TWENTY GIFT SINGLE 'All Your Dreams'.jpg


파일:신화_SHINHWA TWENTY SPECIAL ALBUM 'HEART'.jpg




디지털 싱글

SHINHWA TWENTY GIFT SINGLE 'All Your Dreams'
(2018.03.26)

스페셜 앨범

SHINHWA TWENTY SPECIAL ALBUM 'HEART'
(2018.08.28)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px; display: inline-block; color: #FFFFFF; min-width: 50%"
[ 관련 문서 ]





신화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SBS 로고.svg 가요대전 대상

이효리
10 Minutes
(2003년)

신화
Brand New
(2004년)


김종국
제자리 걸음
(2005년)

파일:seoulmusicawards2.png
서울가요대상 대상
이효리
<10 minutes>
(2003년)

신화
<Brand New>
(2004년)


동방신기
<"O"-正.反.合.>
(2006년)[1]

파일:2006_멜론 뮤직 어워드.jpg
올해의 아티스트상[2]
동방신기
(2005년)

신화
(2006년)


신혜성
(2007년)



SHINHWA TWENTY SPECIAL ALBUM
『'HEART'』


파일:shinhwa_20th_photo.jpg

왼쪽부터
에릭 신혜성 이민우 김동완 앤디 전진


신화
SHINHWA

그룹명
신화
神話 (한자)
SHINHWA (영어)
유닛
신화 WDJ[1]
장르
댄스, 발라드, R&B/Soul
리더
에릭
데뷔
1998년 3월 24일
(데뷔일로부터 9526일째, 26주년)
데뷔 음반
{{{-4

정규 1집
[1] 데뷔 24년 만의 첫 유닛 활동.
[[해결사(신화)|
해결사
]] >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1998년 ~ 2003년)
GOOD EMG (2003년 ~ 2009년)
신화컴퍼니 (2011년 ~ 현재)
유통사
뮤직앤뉴
팬덤
[[신화창조|

신화창조
]]
공식 색
주황색 (Orange)}}}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

1. 개요
2. 특징
3. 멤버
3.1. 장수
3.2. 우정
3.3. 데뷔 과정
9. 단독 콘서트
13. 상표권 분쟁
15. 여담
15.1. 최초 기록
15.2. 에피소드



1. 개요[편집]




혜성처럼 전진하는 우리는 신화입니다!

1998년 3월 24일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6인조 보이그룹이다. 그룹명은 신화(Mythology)에서 유래되었다.


2. 특징[편집]


1998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였고, 2003년 7월 굿엔터테인먼트[2]로 이적하였다가 2011년 본인들이 직접 신화컴퍼니를 설립하였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룹이 해체하거나 멤버의 탈퇴 및 교체가 없었던 대한민국 최장수 아이돌 그룹. 2017년 기준으로 13장의 정규앨범과 7장의 비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대한민국 댄스 그룹 최다 정규앨범 발매 기록을 수립하였다.[3] 음반판매량 정규 싱글 포함 3,453,466장이며(sm 시절7장으로 231만장 소속사 이적후 120만장 이상) 일본에서도 음반 두장이 10만장을 돌파하는등 총 6개에 음반으로 6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9년부터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전성기로 간주되는 기간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이다. 199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았던 H.O.T.와 젝스키스는 1세대 선발주자로,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았던 신화와 god는 1세대 후발주자 또는 1.5세대로 분류된다. H.O.T.의 영향으로 신비주의 미소년이 주류이던 1대 아이돌 붐 시장에서 신화는 유일하게 강한 남성미, 탈신비주의, 화려한 댄스 음악 등을 내세우며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데뷔 7년차에 처음으로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최전성기를 맞았으며, 지난 20년 동안 1집을 제외한 15개의 모든 활동곡이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두었다. 또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국내 가수이며,[4] 첫 단독 콘서트, 10주년 기념 콘서트,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모두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치렀다.

'따로 또 같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개인 활동의 보편화를 이끈 그룹이다.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자 개인활동으로 대박을 친 몇 안되는 아이돌 그룹. 아이돌 그룹 멤버의 개인 활동이 용인되지 않던 시절 일찍이 멤버 개개인이 솔로 음반, 예능,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연예 분야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방송만 틀면 신화 멤버가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왕성한 미디어 활동을 보였다.

트렌드에 절대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신화만의 음악적 색깔을 잃지 않는 것이 강점. 신화를 대표하는 장르는 화려한 사운드의 댄스 음악으로, 댄스를 유독 부각했던 1세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퍼포먼스로 가장 유명하다. 퍼포먼스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와 이색적인 시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댄스 음악을 하는 그룹도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이다.


3. 멤버[편집]


파일:신화(아이돌) 로고.png

파일:heart_concept_photo_eric.jpg


파일:heart_concept_photo_minwoo.jpg


파일:heart_concept_photo_dongwan.jpg

에릭
이민우
김동완

1979. 02. 16. (45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리더
메인래퍼




1979. 07. 28. (44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메인댄서
리드보컬

1979. 11. 21. (44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리드보컬

파일:heart_concept_photo_hyesung.jpg


파일:heart_concept_photo_junjin.jpg


파일:heart_concept_photo_andy.jpg

신혜성
전진
앤디

1979. 11. 27. (44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메인보컬

1980. 08. 19. (43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리드래퍼
리드댄서
서브보컬

1981. 01. 21. (43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리드댄서
서브래퍼
나이는 에릭(1979년 2월 16일), 이민우(1979년 7월 28일), 김동완(1979년 11월 21일), 신혜성(1979년 11월 27일), 전진(1980년 8월 19일), 앤디(1981년 1월 21일) 순이다. 에릭과 앤디는 둘 다 빠른 년생이지만, 에릭은 데뷔 전 신화 내 79년생들 한정으로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고,[5][6] 앤디는 데뷔 후 전진과 친구로 지낸다. 또한 2023년 기준 래퍼라인인 에릭, 전진, 앤디가 기혼자이다.

최연장자인 에릭이 팀 내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신화컴퍼니 내에서는 에릭과 이민우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모든 멤버들이 주주로서 똑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7] 결정을 내린 후 최종적으로 서류에 사인하는 일은 에릭이, 비지니스를 위한 미팅은 이민우가 맡아서 한다고 한다.[8]

랩 메이킹은 대부분 에릭이 담당하고 안무 메이킹에는 이민우가 참여해 최종적으로 컨펌한다. 프로듀싱과 디렉팅은 이민우가 주로 맡는다.[9]


3.1. 장수[편집]


2024년 기준으로 데뷔 26주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다. 게다가 데뷔 이후 한 번도 해체나 멤버의 탈퇴 및 교체 없이 끈끈한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 그 자체.

신화가 데뷔했을 당시 1990년대 후반은 아이돌의 평균 수명이 3~5년에 지나지 않았고 덕분에 5년 차 징크스라는 이야기까지 오갔다. 이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신화를 해체시킨 후 솔로로 계약할 생각이었으나, 신화는 함께 일하던 스텝들을 데리고 다 같이 소속사를 이적하며 그룹을 보존했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는 매너리즘과 불법 음원 범람, 그리고 소몰이창법 발라드 위주로의 가요계 개편으로 인해 1세대 아이돌들이 지독한 침체기를 겪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며 아이돌계의 징크스를 깨고 신화는 2004년 7집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6년 차에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10] 7년 차에 전성기를 맞기는 커녕 7년 차인 아이돌 그룹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는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 신화를 이후로 점점 7년 차는 물론 10년 차도 거뜬히 넘어서는 아이돌이 늘어나고 있다.

신화가 데뷔했을 당시는 아이돌 평균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신화는 10년도 더 전부터 '장수 아이돌', '중견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아이돌계 최고참으로 활동한 기간이 아닌 기간보다 더 많은 셈. 한국 아이돌 최초 정규 6집 활동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너의 결혼식> 활동 시절, 신화는 당시 평균나이가 고작 24.5세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이 때문에 춤출 때 힘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정도로 이 당시 아이돌이란 20대 초반 이하의 어린 친구들이 몇 년 바짝 하고 빠지는 직업이었고 20대 중반도 거의 찾기 힘들었다. 서른이 넘은 현역 아이돌들[11]도 많은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 그렇기에 신화는 더더욱 연예계에서 변종으로 여겨졌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 4년을 제외하면 그룹 활동을 2년 이상 쉬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평균 앨범 발매 텀은 대략 1년 반 정도다. 한창 빡세게 활동하던 1~6집 시기에는 1년에 한장 꼴로 앨범을 발매했고,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온 이후 7집부터는 그룹활동과 개인활동을 병행하며 앨범 발매의 텀이 길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백기가 2년 이상을 넘어간 적이 단 한번도 없다.[12] 심지어 활동이 뜸하다고 원성이 자자했던 시기인 2005년~2008년 조차도 8집은 1년 9개월, 9집은 1년 10개월만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평소와 비교해 그다지 긴 텀도 아니었다.[13] 최근 아이돌 그룹들과 가요계의 동향을 보았을 때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로,[14] 데뷔 20년차 베테랑인 신화가 싱글도 미니앨범도 아닌 정규앨범을 1~2년마다 꼬박꼬박 발매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15] 하지만 2024년 기준, 2018년 20주년 기념 앨범 HEART를 마지막으로 6년 동안 공식적인 앨범 활동은 없는 상태이다.[16]

그만큼 멤버들 모두 무조건 개인 활동보다 그룹 활동을 무조건 우선시한다. 활동부터 음반 제작까지 멤버들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다보니 준비 기간이 길고, 이 때문에 정규 앨범 활동 최소 1년 전에 멤버들끼리 모여 플랜을 짜놓는다. 그룹 활동을 우선하여 플랜을 짠 후 남는 시간에 개인활동 플랜을 짠다고 한다. 배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에릭과 김동완의 경우 신화 활동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먼저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읽어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연애의 발견>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는 에릭이 멤버들에게 '~한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라고 말을 꺼내자 멤버들이 오히려 무조건 하라며 계속 등을 떠밀었고 신화 활동을 예정보다 뒤로 미뤘다고 한다.

신화가 얼마나 오랫동안 활동했는지 설명하자면 H.O.T., 젝스키스 다음으로 데뷔하여 god와 동시기에 활동하였고, 동방신기가 막 데뷔해 신인상을 휩쓸 때 가요대상을 받았고,[17] SHINee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하였고[18], EXO를 2013년 MAMA에서 투표로 이겼다. 2017년 <TOUCH> 로 활동했을 당시 TWICE, 아이오아이 등 신화 데뷔 당시 태어나지 않았던 멤버들이 있는 그룹과도 1위 경쟁을 벌였다.

신화 멤버들과 띠동갑뻘인 양요섭(하이라이트), 민호(샤이니), 백현(엑소), 슈가(방탄소년단) 등이 후배가 됐고 이들조차 이젠 데뷔 10년차가 넘어가며 신화가 데뷔하던 해인 1998년 태어난 다현(TWICE), (더보이즈), 승관(세븐틴) 등이 후배가 되었고 이때 태어난 사람들도 2017년 기준으로 성인이 되었다.[19] 신화의 최전성기 시절이었던 2001~2005년 사이 태어난 세대도 2022년 2001~2003년생은 성인, 2004~2005년은 고2~고3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태어난 전소미, 초원, 안유진, 장원영, 다현 등이 신화의 후배가 되었으며 많은 인기를 얻으며 활동하고 있으며 신화의 최전성기가 지난 이후에 태어난 전유진, 이서, 정동원, 혜인, 정서주, 임서원도 데뷔했다.

또한 신화가 활동한 시기에만 6개의 정권이 들어섰다[20]. 활동 중 2번째 정권을 맞이하기도 전에 해체하거나, 2번째 정권을 맞이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많이 있다는걸 생각하면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순서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1998~2003)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2003~2008)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명박 정부(2008~2013)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근혜 정부(2013~2017) → 문재인 정부(2017~2022)를 거쳐 윤석열 정부를 맞았다. 덤으로 북한에서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아이돌룸에서도 이것을 언급하며 이제는 남북통일을 바라본다는 말까지 나왔다.

더불어 활동 중 월드컵만 7번[21]한 개최되었고, 하계 아시안 게임만 6번, 동계 아시안 게임만 5번, 하계 올림픽만 6번, 동계 올림픽만 7번 개최되었다.


3.2. 우정[편집]


신화가 26년 동안 그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자, 신화가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끈끈한 우정이다. 여성층의 인기가 절대적인 남자 아이돌 그룹이지만 이러한 우정으로 이어진 소탈하고 꾸밈없으면서 끈끈한 모습들 덕분에 남성들, 특히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호감도가 높다. 흔히들 신화가 단순히 '꾸준히 수요가 있었고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장수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상 신화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해체 위기를 겪어본 아이돌 그룹이다. 소속사 문제, 상표권 문제, 금전적인 문제, 건강 악화, 주변의 유혹과 이간질부터 사소한 다툼까지, 아이돌 그룹이 겪을 수 있는 해체 위기라는 위기는 전부 다 겪어봤다. 이처럼 멤버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계속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서로였다고 한다. 멤버들 또한 서로를 만난 것은 운명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22]

2003년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소속사를 나왔을 때,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문제 없이 단체로 기획사를 나왔으나, 이는 절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멤버들의 결속력과 신뢰가 빛을 발한 케이스이다. 처음에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몇몇 멤버들에게만 은밀하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솔로 계약을 제안했으며,[23] 다른 기획사에서도 솔로로 혹은 특정 멤버를 빼고 계약하자며 파격적인 조건과 금액으로 끊임없이 유혹을 해왔다. 그러던 와중에 멤버들끼리 가진 술자리에서 한 멤버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진심을 토해내자, 멤버들 모두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깨닫고 똘똘 뭉쳐서 신화라는 팀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신화 멤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우정 대신 부와 성공을 택했다면 신화는 예견된 해체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흔히들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를 탈없이 보내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굉장히 구질구질했다. 당시 신화는 SM엔터테인먼트에 계속 남아있으면 팀의 존속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 하에 소속사를 이적하였고, SM엔터테인먼트도 처음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결국은 신화의 결정을 존중해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SM엔터테인먼트는 태도를 바꿔 신화의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였고, 신화 상표권을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 넘겼으며, 신화는 오픈월드의 갖은 횡포에 휘둘려야 했다. 이 당시 신화는 모든 멤버가 개인 활동으로도 충분히 대박을 터트린데다, 당시가 지금과 달리 아이돌의 전망이 어둡고 미래가 불완전한 시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화 멤버들이 팀의 존속을 택한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특히 에릭은 '역대 가장 헌신적인 아이돌 리더'라는 찬양을 받을 만큼 리더십을 발휘했는데, 신화 상표권을 되찾기 위해 직접 법공부를 하고 변호사를 만나러 다녔으며 신화 상표권을 찾아오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드라마 불새로 톱스타 자리에 올랐을 무렵에도 모 소속사에서 제안한 수십억원의 계약금을 거절하고 팀을 택했으며, 빠듯한 개인활동 스케줄과 군복무가 겹쳐져 멤버들 간의 소통이 전보다 부족해졌을 때에도 멤버 6명이 다같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자리를 주선하며 리더 노릇을 톡톡히 했다.[24]

가족도 돈 때문에 싸우고 찢어지는 마당에, 신화는 돈보다 의리를 골라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김동완에 따르면 멤버들 중 서로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멤버가 없다고 한다. 모두가 곗돈 붓듯이 서로 크게 크게 도와준 적이 있어 멤버들끼리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앤디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에도 멤버들이 돈을 모아 수술비를 전부 부담했다고 하며, 이민우가 가족의 부채 때문에 사채를 쓸까 고민할 정도로 큰 금전 부담에 시달렸을 때, 멤버들이 다같이 돈을 모아 거액을 생일선물이라며 건넸다고 한다.[25]

신화는 금전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전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모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모든 멤버들이 함께 전진의 생모에게 편지를 썼으며 전진과 동행해 그의 생모를 만나고 왔다. 또한 신혜성이 물의를 일으켜 자숙하던 시절에는, 전진과 에릭이 매일 같이 신혜성의 집을 찾아가 그를 보살펴줬다고 한다.

각종 위기를 함께 이겨내고 희노애락의 순간을 함께 겪어오며 이제는 서로에게 가족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전진은 어버이날에 멤버들 부모님께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고, 신혜성은 멤버들 부모님의 생신을 일일이 다 챙기고 있다고 한다. 신화 멤버들의 부모님들 역시 신화 멤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며, 멤버들의 개인 콘서트에도 먹을거리를 싸들고 찾아온다.

신화 멤버들의 이미지와 나이로 봐서는 정말 의외지만 서로 유난스러울 정도로 애정 표현이 많고 스킨십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26] 숙소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팬티를 같이 돌려입었을 정도로 신체 접촉에 관대하다. 일상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뽀뽀를 하고 심지어 목이나 이마, 입술에도 하며, 신화 멤버들과 신화창조 중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신화 멤버들이 뽀뽀하는 모습에 후배 아이돌들이 깜짝 놀라거나, 신화가 지나가는 말로 꺼낸 스킨쉽 일화에 MC나 패널들이 기겁하기도 한다.[* 2017년 주간 아이돌에 출연했을 당시 목에서 목으로 오렌지를 옮기는 릴레이 게임을 했을때, 첫 주자였던 전진과 전진 다음 주자였던 신혜성이 오렌지를 옮기는 모습이 심히(...) 오해를 살 만한 구도가 나왔는데도 다른 멤버들은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MC인 정형돈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싸울 때는 화끈하게 싸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화끈하게 싸우고 화끈하게 화해하는 것 또한 신화의 우정 비결로, 서운한 감정을 그때 그때 다 말하기 때문에 서로 쌓인 감정이 없다고 한다. 치기 어린 20대 초반에 남들 다 보는 방송국 내에서 자기들끼리 주먹다짐을 한 것은 신화팬들 뿐만 아니라 방송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에피소드.[27] 지금도 신화는 커텐을 치냐 마냐를 두고 싸우고 인형을 망가뜨렸다고 싸우고 또 언제 그랬냐는듯 화해하며 살고 있다. 다만 이제는 나이도 들고 싸울 소재도 고갈돼서 주먹질은 안 한다고.[28]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화 멤버들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신화의 이러한 행보가 이상적인 이유는 아이돌의 우정과 의리가 대중들에게 장점으로 어필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서로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우정을 다지는 모습을 보며 환상을 갖게 되고, 소속사는 대중의 환상을 이용해 아이돌의 우정을 상업화한다. 허나 대중은 멤버들이 팀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안위를 더 우선시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들의 환상이 깨지면 바로 배반한다.[29] 그렇기에 신화의 비현실적이고 동화같은 우정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또한 아래에 언급하지만 신화의 이런 행보는 예능에서 매우 강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단체 출연에선 출연자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중요한데, 신화는 여기에서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때문.

사실 신화 역시 불화설에 숱하게 시달린 그룹이다. 당시에는 아이돌이 따로 활동한다는 것이 불화의 징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최초로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한 신화에게는 해체설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불가피하게 개인 소속사가 갈라지고, 아이돌 최초로 군입대를 하고, 군복무로 인해 공백기를 겪으며 신화는 10집으로 컴백하기 이전까지 끊임없는 해체설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들 또한 신화의 불화설에 코웃음치는 수준에 이르렀고, '우정'과 '의리'는 신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30]

3.3. 데뷔 과정[편집]


1996년, SM엔터테인먼트H.O.T.로 대성공을 거둔 뒤 아이돌 시장의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이에 이수만은 본격적으로 아이돌 산업에 뛰어들기 앞서 차세대 걸그룹과 보이그룹 멤버들을 찾아 발 벗고 나서는데 이렇게 기획된 그룹이 각각 S.E.S.와 신화였다. 당시 다른 기획사들이 그랬다시피 SM 또한 오늘날처럼 연습생을 대규모로 영입해서 장시간 트레이닝 시킬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처음부터 인기 있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캐스팅 해오는게 중요했는데 그런 점에서 신화는 모범적인 캐스팅 사례였다.

1996년 연말에 앤디가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앤디는 미국 오렌지카운티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이민을 갔고, 중학생 시절 H.O.T.의 토니 안과 함께 댄스팀 멤버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다. 두 사람은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이수만과 연락이 닿았고 그와 공원에서 만나 오디션을 보았다. 이때 합격한 앤디는 토니안을 비롯한 H.O.T. 멤버들과 함께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고 최종 데뷔조까지 들었다. 그러나 앤디의 부모님이 앤디가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것을 반대했고, H.O.T. 멤버들이 앤디보다 토니안과 함께하길 원했기에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로부터 1 ~ 2년 뒤인 1996년 연말 고등학생이 된 앤디는 LA에서 이수만과 우연히 재회했고 이수만은 이때 앤디를 다시 신화의 멤버로 캐스팅했다.

1997년 연초 에릭과 신혜성이 합류했다. 교포인 에릭과 앤디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친한 사이였으며, 유학생인 신혜성도 그 둘과 접점이 있었다.[31] 에릭은 앤디와 같은 오렌지카운티 출신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민을 갔다. 에릭 또한 댄스팀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는데, 앤디와 토니안의 증언에 따르면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그야말로 그 일대에서 미친듯이 잘나가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토니안이 증언하길 에릭과 같이 공연을 하면 무조건 그가 센터였다고. 에릭은 한인 라디오 방송 관계자의 추천으로 이수만과 노래방에서 오디션을 보아 합격했고, 오디션 합격 전 UCLA를 비롯한 3개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수의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32]

이수만은 앤디를 캐스팅한 후 그를 LA 오디션장에 데리고 갔는데 이때 합격한 참가자가 신혜성이다. 신혜성은 동생과 단둘이 벨리 지역에서 홈스테이 생활을 하던 유학생이었는데, 주위 친구들이 죄다 연예인 지망생인 탓에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전미한인가요제에 나갔다가 클릭비의 우연석과 만나 친해졌고, 그의 부탁으로 SM 오디션에 함께 참가했으나 신혜성 혼자 합격했다.[33] 앤디가 증언하길 이수만이 신혜성의 노래를 듣고 "너무 좋지 않니?"라고 말하며 기뻐했다고. 본래 가수의 꿈이 없었던 신혜성은 이 오디션 합격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게 되었다.

1997년 상반기에 이민우가 합류했다. 이민우는 전북 남원시 출신으로 데뷔 전부터 전주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춤꾼이었다. 그 시절부터 쫓아다니는 팬이 있었으며 옷을 협찬받는다는 소문까지 있었을 정도.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탓에 고등학교 때부터 댄스팀 공연을 하며 직접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상금이 300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서울까지 올라와 전국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했다가 고향 친구와 함께 SM으로부터 캐스팅되었다. 연습생 때부터 안무를 하나씩 만들어 이수만에게 검사를 받았다고. 이수만이 유독 예뻐했는지 종종 다른 연습생들 몰래 용돈 하라며 수표를 쥐어줬다고 한다. 연습생 시절 이민우가 쓴 일기가 있다. 이민우가 쓴 일기

1997년 하반기에 전진이 합류했다. 전진은 서울 송파구 출신으로 송파 일대에서 유명한 춤꾼이었다. 배우 최필립과 함께 댄스팀으로 활동했으며, '오금고 쫄바지'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탔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춤만이 유일한 삶의 돌파구였으며, 가수가 된 이유는 생모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학교 선배인 강타의 추천으로 SM 오디션을 보아 합격하였고, 전진이 연습생에 합류하며 이민우의 친구는 연습생에서 퇴출되었다.[34]

1997년 11월 3일 마지막 멤버인 김동완의 합류로 신화가 결성되었다.[35] 학교 록밴드 보컬로 활동했는데, 저 신화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인사였다. 기획사들이 '김동완 전담반'을 만들고 캐스팅 매니저까지 따라붙었을 정도. # 휘문고 모세라는 별명이 유명한데, 김동완이 나타나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쭉 갈라진다 하여 생긴 별명이었다. 김동완은 월드뮤직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있다가 SM에 캐스팅되었다.[36] SM이 록커가 아닌 아이돌로 데뷔하기를 권하자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나머지 신화 멤버들 5명과의 첫 대면 후 멋있어 보여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데뷔 전 멤버들이 김동완에게 쓴 편지


4. 활동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활동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음반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영상집 및 포토북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음반 외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미디어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미디어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단독 콘서트[편집]


날짜
콘서트명
장소
비고
2001년
1월 13일 ~ 1월 14일
2001 First Mythology 1st Live Concert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첫 단독 콘서트
2003년
4월 18일 ~ 4월 20일
The Everlasting Mythlolgy
서울올림픽주경기장

12월 30일 ~ 12월 31일
Winter Story Tour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04년
1월 4일
Winter Story Tour
부산 KBS홀

1월 10일
대전무역전시관

1월 31일
부천실내체육관

2월 7일
대구전시관 컨벤션센터

2월 14일
광주 동강대체육관

2월 21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1일 2회
12월 19일
Winter Story 2004 '우리는 신화입니다'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

2005년
1월 21일
Live in Japan 2005
일본 오사카 그랜드 큐브

1월 23일
일본 도쿄 국제 포럼

6월 5일
TROPICAL SUMMER STORY FESTIVAL
서울올림픽주경기장

2006년
5월 13일 ~ 5월 14일
SHINHWA 2006 TOUR STATE OF THE ART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7월 8일
중국 상해 대무대

7월 15일
부산 BEXCO 제1전시장

8월 19일
타이 임팩트 아레나 무앙 통 타니

9월 19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

9월 24일
SHINHWA 2006 JAPAN TOUR 'Inspiration #1'
일본 도쿄 무도관

9월 26일
일본 오사카 성 홀

2007년
12월 6일
2007 JAPAN TOUR 'SHINHWA FOREVER'
일본 나고야 니혼 가이시 홀

12월 8일 ~ 12월 9일
일본 기옥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12월 15일
중국 상해 홍구 경기장

2008년
3월 29일 ~ 3월 30일
2008 SHINHWA MUST GO ON 10TH ANNIVERSARY LIVE IN SEOUL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2년
3월 24일 ~ 3월 25일
2012 SHINHWA GRAND TOUR 'The Return'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4월 30일
중국 상해 대무대

5월 12일
타이완 대북 남항 전람관

5월 29일
일본 횡빈 요코하마 아레나

6월 2일
일본 신호 고베 월드 기념홀

6월 16일
싱가포르 레조트 월드 센토사

6월 30일
중국 광주 광저우 체육관

7월 7일
중국 북경 완스다 중신

2013년
3월 16일 ~ 3월 17일
2013 SHINHWA 15TH ANNIVERSARY CONCERT 'THE LEGEND CONTINUES'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6월 8일
2013 SHINHWA GRAND TOUR 'The Classic'
홍콩 아시아 월드 아레나

6월 22일
중국 상해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7월 6일 ~ 7월 7일
주타이완 대북 NK 101

7월 13일 ~ 7월 15일
일본 동경 마쿠하리 멧세

7월 20일
중국 북경 마스터 카드 센터

8월 3일 ~ 8월 4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4년
3월 22일 ~ 3월 23일
2014 SHINHWA 16TH ANNIVERSARY CONCERT 'HERE'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37]
2015년
3월 21일 ~ 3월 22일
2015 SHINHWA 17th ANNIVERSARY CONCERT 'WE'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5월 9일
중국 상해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5월 16일
타이완 대북 남강전람관

6월 20일
중국 남경 올림픽 중심 체육관

6월 27일
중국 북경 마스터 카드 센터

7월 11일
중국 대련 중승 문화 중심 센터

8월 22일 ~ 8월 23일
2015 SHINHWA 17th ANNIVERSARY FINALE CONCERT 'WE SHINHWA'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6년
3월 26일 ~ 3월 27일
2016 SHINHWA 18th ANNIVERSARY CONCERT 'HERO'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12월 17일 ~ 12월 18일
2016-2017 SHINHWA LIVE TOUR 'UNCHANGING'
고양시 KINTEX 제1전시장 5홀

2017년
2월 4일
2016-2017 SHINHWA LIVE TOUR 'UNCHANGING'
타이완 대북 남강 전람관

2월 11일
부산 BEXCO 제1전시장

2월 25일
대구 EXCO 1층

5월 30일 ~ 5월 31일
일본 동경 마쿠하리 멧세 이벤트 홀
[38]
6월 17일 ~ 6월 18일
2017 SHINHWA SUMMER LIVE 'MOVE'
서울올림픽주경기장

2018년
10월 6일 ~ 10월 7일
2018 SHINHWA 20th ANNIVERSARY CONCERT TOUR 'HEART'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10월 13일
타이완 타이베이 아레나

11월 24일
홍콩 아시아월드-엑스포 스텁허브 홀

2019년
4월 20일 ~ 4월 21일
2019 SHINHWA 21st ANNIVERSARY CONCERT 'CHAPTER 4'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10. 팬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창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신화컴퍼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컴퍼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수상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수상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상표권 분쟁[편집]




로고 인트로[39]
신화는 제작사와 상표권 분쟁을 겪은 최초의 아이돌이자, 자신들의 상표권을 소유하고 있는 아이돌 중 하나이다. 신화는 현역 아이돌로 20여년간 활동하면서도 사실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온 2003년부터 신화 상표권을 양도받은 2015년까지 장장 12년간 '신화(SHINHWA)'라는 이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썰전에서는 신화의 상표권 분쟁을 상표권 분쟁계의 대하서사시,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길고 복잡한 싸움이었다. 또한 아이돌 그룹에게도 상표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져 제작사와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대표적인 선례로 남게 되었다.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 만료 당시, SM에서는 몇몇 멤버들에게만 은밀하게 솔로 계약 제의를 해오나, 신화 멤버들 전원이 SM과의 재계약을 거절한다. 마지막으로 SM은 멤버 전원에게 재계약을 제의하나, 신화는 SM에 남아있으면 그룹의 존속이 어려울 거라는 판단 하에 SM의 재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SM에서 함께 일하던 스텝들이 차린 신생기획사, 굿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는다. 이후 신화는 SM엔터테인먼트와 '신화'라는 이름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하나,[40] 결국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한다'라고 밝히며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41] 당시만 해도 이수만은 공식 석상에서 신화가 잘돼서 기쁘다는 의사를 수차레에 걸쳐 표했다.

신화가 7집 활동을 통해 대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하던 2005년 초, SM엔터테인먼트는 신화라는 이름을 특허청에 등록 완료하는데 성공했다.[42] 이후 SM엔터테인먼트는, '어떤 값을 치르든 상관 없으니 자신들이 신화 상표권을 구입하겠다'고 하는 신화 대신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에 신화 상표권을 대여해준다.[43]뒷통수 똭! 당시 신화의 소속사였던 굿엔터테인먼트는 오픈월드와 상표권 협약을 체결하고, 신화의 스케줄 조정과 같은 활동 결정권은 모두 오픈월드로 넘어가게 된다.[44] 당시 신화를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보았던 오픈월드의 횡포에 의해 신화는 플랜도 건강도 처참히 망가지게 된다.[45]

이러한 오픈월드의 횡포와 굿이엠지의 경영난 속에서 2008년 3월, 신화는 데뷔 10주년을 맞이하게 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규 9집 <RUN>을 발매하였지만 어떠한 방송 프로모션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해당년도가 오픈월드와의 상표권 계약 만료 및 갱신연도였음에 따라 당시 상표권을 3년 5개월간 사용하지 않으면 효력이 중지되는 당시 상표권법을 따르며 오픈월드의 횡포에 대항해야 했음은 물론 당시 멤버들이 순차적으로 병역을 해결해야 했던 상황이 맞물렸기 때문으로 이에 따라 신화는 10주년 콘서트와 9집 발표를 끝으로 장장 4년여간의 그룹 활동 휴지기를 갖게 된다[46].

이후 2009년 10월, 당시 신화의 소속사인 굿이엠지가 끝내 경영악화로 상장폐지되어 해체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당시 멤버들은 대부분 군복무 중이었고 상표권은 오픈월드에게 있었기에 향후 신화 활동 자체에 큰 제동은 없었다. 군복무로 인한 4년의 공백기 이후, 신화는 향후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신화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오픈월드와 상표권 협약 체결을 맺음으로서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화가 10집으로 컴백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2012년 5월, 오픈월드의 장석우 대표가 연습생 상습 성폭행이라는 불미스런 사건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구속되면서 오픈월드는 파산 위기를 맞게 되는데, 신화는 이를 계기로 신화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한다.

2013년 2월 신화컴퍼니는 상표권리자인 SM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상표권 등록을 취소해달라는 심판을 청구하지만, 같은 해 3월 상표권의 소유가 오픈월드의 후속인 준미디어로 넘어가게 된다. 상표권 소유를 두고 갈등할 상대가 준미디어가 된 것.[47] 이 사태의 여파로 신화는 법적 갈등 진행 중에 신화라는 이름이 상표권 사용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화 11집을 비롯한 신화 관련 디스코그라피에서 '신화'라는 이름을 삭제한 채 발매하였다.[48]

이후 신화컴퍼니는 2014년 7월 준미디어에 "상표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달라"라고 요청했지만 준미디어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화컴퍼니는 "2012년 콘서트 수익과 일본 팬클럽 운영수익 중 일부를 당초 약정에 따라 돌려달라"라며 법원에 소송을 냇고, 준미디어 측도 "상표권은 우리가 갖고 있으니 2013년 콘서트 수익 중 일부를 계약에 따라 돌려달라"라고 맞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양측 모두에게 "각각의 수익을 정산해 돌려줘라"라고 판결을 내렸고, "상표권은 준미디어 측에 있어 신화의 계약 해지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다.[49]

이에 신화 측은 해당 판결의 취소를 요구하는 항소를 신청하였고, 이러한 소송 과정에서 상표권 이용으로 인정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신화컴퍼니의 명칭마저 '신컴엔터테인먼트'로 변경한다. 신화를 위한 회사가 '신화'라는 이름을 아예 쓰지 못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 거기에 준미디어가 신화 상표권을 2025년까지 갱신한 것으로 알려져 '신화'라는 이름은 더욱 아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2015년 5월 20일 재판부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게 되고, 신컴엔터테인먼트와 준미디어는 2015년 5월 2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조정기일에 참석해, 상표권 양도 합의에 대한 재판부의 조정안을 끝내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서 신화라는 이름을 둘러싼 12년 간의 기나긴 싸움을 끝내고 마침내 신화가 '신화'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5년 5월 29일 신컴엔터테인먼트는 상표권 명의 이전 절차에 들어가게 되고, 2015년 6월 11일 상표권 명의 이전을 완료하며 다시 자신들의 회사명을 '신화컴퍼니'로 환원하였다.

팬들은 신화의 상표권을 양도받은 2015년 5월 29일을 '싢복절'(신화+광복절)이라 칭하고 있다. 같은 해 8월 22일 ~ 23일에 열렸던 앙코르 콘서트의 홍보 영상에서도 신화가 드디어 신화가 되었다라는 자막을 통해 비장미를 한껏 살렸다.

이로써 신화는 상표권을 본인들이 직접 소유하게 된 최초의 아이돌이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제작자와 가수 간의 상표권 소유를 두고 판가름하기가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많아 갈등을 빚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생각하면[50],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신화가 자신들의 상표권을 온전히 소유하게 된 사례는 아이돌사에 있어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14.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화(아이돌)/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여담[편집]


  • 2017년 멜론에 수록된 음원을 기준으로 정규 앨범, 비정규 앨범, 싱글을 모두 합쳐 총 347곡의 음원을 발매했으며 멤버들의 솔로 활동까지 합치면 1050곡의 음원을 발매했다. 음원부터 시작해 단체 활동과 개인 활동 정보량이 너무 방대한데다 10년, 20년 전 정보는 찾기도 어렵다. 이쯤되니 신화 멤버들도 자기 노래를 헷갈리고 자기들 에피소드를 헷갈리는 상태.[51] 너희 노래인데 왜 알지를 못하니?

  • '신화 화이팅'이라는 의미로 신화산이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신화는 이라고 간략하게 외칠 때가 많다. '왜 신화산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무했으나 현재 그 유래는 팬들은 물론 신화 본인들조차 알지 못한다. 가장 유명한 설로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신화 멤버들이 모노노케 히메의 여주인공 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 둘째는 김동완이 데뷔 전인 1997년 MBC 드라마 <산>에 아역배우로 출연했기 때문이라는 설, 셋째는 단순히 '신화(神話)' + '화산(火山)'이라는 설 등이 있다. 2012년에 발매된 신화의 콘서트 프로덕션북에는 '산'이 'Volcano'로 번역되어있다.

  •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우리는 ~ 신화입니다!"라고 외치는 캐치프라이즈를 가지고 있다. 풀 멘트는 "혜성처럼 전진하는 우리는 ~ 신화입니다!"이다. 아이돌 캐치프라이즈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 콘서트 밴드 세션 및 댄서 라인업이 무진장 화려하고[52] 돈을 꽤나 바르는 대신 티켓값은 다른 아이돌에 비해 다소 비싸다. 콘서트 세트리스트가 수록곡보다는 타이틀곡 위주로 구성되는데다 Brand New, 같은 단골곡들이 빠지지 않아 오랜 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좀 식상하다는 평. 대신 같은 곡이더라도 매 콘서트마다 밴드 편곡을 다르게 하고 있다.

  • 2003년 참여정부북한 평양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영상 원래는 <너의 결혼식>을 부르려다가 가사가 그렇고 그런 관계로 을 불렀다. 반응은 당연히 문화충격 그 자체. 에릭은 이날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춤을 췄다고 했는데, 에릭 아버지의 고향이 다름 아닌 평양이다. 이때 신화는 북한 공연 관계자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형동생할 만큼 친해졌는데 서로 헤어지면서 마음이 짠했다는 슬픈 일화가 있다. 조만간 재회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직은 아닌 듯 하다.

  • 4집 활동곡 의 경우 앤디가 불가피하게 활동에 불참했던 탓에[53] 앤디의 파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 이후 콘서트에서 를 부를 때에는 전진 파트의 일부를 앤디가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앤디의 재합류 이후 발표된 5집 역시 앤디의 파트가 적은데, 모두 마지막 후렴 사이에 앤디의 랩 파트를 뒤늦게 끼워놓은 티가 팍팍 난다. 차라리 처음과 마지막의 영어 나레이션 파트가 전부인 가 낫다.

  • 신화 본인들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독 노래 속에 몬더그린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간주 부분의 '박경림'이라던가(...),[54] <너의 결혼식> 때 당시에 있지도 않았던 코그모를 언급한다든가[55], 전진 랩 부분의 '시간은 많아 But 참치는 안 와'라던가(...),[56] 신혜성 하이라이트 부분의 '저 손에 애벌레 죽어'라던가(...),[57] 후반부 에릭의 영어랩에서 들려오는 '
    시스템에릭
    '이라던가 '끝말잇기'라던가... 어느샌가 이게 인터넷상에 퍼져서 선술한 내용을 비롯한 몬데그린을 정리해둔 동영상까지 존재한다. # 계속 듣다보면 정말 원래 가사로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수 있다(...).

  • 체육돌계 아이돌의 레전드. 멤버들 모두 수준급의 운동신경을 지닌데다 승부욕도 엄청나고 몸도 사리지 않아, 2000년대 예능에서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전진은 동시대 연예인들 중 운동신경 좋기로 손에 꼽히는 만큼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정도. 2002년 프로그램 촬영 도중 사고로 뇌혈종으로 퇴원한지 사흘만에 출발 드림팀 1기 왕중왕전에서 2위를 거머쥐었다[58]. 신혜성은 태권도 공인 4단 유단자에 공중제비를 돌며 번지점프를 하고 다녔고, 앤디는 연예인 천하장사 출신에 도약도 없이 오로지 주먹 힘만으로 기왓장 11장을 박살내고 다녔으며, 이민우는 강호동과 몸싸움을 해서 그를 뒤집어 던졌다. 런닝맨에 신화가 출연했을 때 유재석이 괜히 기겁한 게 아니다. 농구, 피구 등 구기 종목도 굉장히 잘한다. 다만 유일하게 못하는 운동이 족구인데, 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지금 신화가 20대였으면 아육대 출연금지를 당했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 그러나 운동신경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멤버들의 몸상태는 하나같이 매우 좋지 않다. 멤버들의 각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들 한 번 이상 큰 사고나 부상으로 뉴스를 탔다. 김동완은 드라마 촬영을 위해 이동을 하던 중 교통사고로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같이 타고 있던 코디네이터가 사망했고, 본인은 한동안 함묵증을 앓았다. 에릭은 2006년, 드라마 늑대 촬영 중 교통사고를 당해 드라마가 3화만에 종영되었다. 전진은 촬영 도중 부상으로 인한 뇌종혈로 의사로부터 오늘 밤이 고비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며, 무한도전에 합류했던 시기에 오픈월드의 횡포와 혹사에 가까운 스케줄로 부상 입은 꼬리뼈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군입대를 했다. 만약 더 방치해뒀으면 하반신이 마비되었을 수도 있다고... 신혜성은 양쪽 십자인대가 3번이나 파열되었으며 공연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이송된 적도 있고 한동안 목발을 짚고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신혜성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허리 디스크를 앓은 전적이 있다. 앤디는 복대를 차고 음악방송에 출연한 게 목격되기도... 이민우의 경우 어린 시절 사고 때문에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59] 춤을 전공으로 삼다 보니 상태가 악화되었다.

  • 그런 관계로 신혜성은 아예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고, 앤디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앤디는 검정고시까지 보며 무리해서 현역으로 입대했지만[60], 한동안 옷 속에 복대를 차고 활동해야 했을 정도로 허리디스크가 심하다.

  • 역대급으로 스킨십이 많은 보이그룹. 스킨십이 워낙 자연스럽고 가족처럼 보이다보니 RPS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숙소 생활 시절 다같이 샤워하면서 친해졌고 속옷도 내꺼 네꺼 구분 없이 돌려입었었을 정도로 서로 신체 접촉에 관대하다. 포옹, 백허그, 볼뽀뽀 같은 단순 애정표현은 기본이고 가끔 목이나 입에 키스하나 몸을 만지는 등 수위 높은 장난도 웃으면서 한다. 팬들이 만든 뽀뽀 영상이 기본 10분을 초과할 정도. 1, 2

  • 멤버 전원이 흡연자인 사실상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었으나, 2000년대 후반 경에 김동완은 금연에 성공했다. 에릭도 금연을 시도했지만 '신화 만 18세' 방송을 보아선 실패한 듯 하다. 특이하게도 다른 아이돌들과 달리 흡연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멤버들이 피는 담배 브랜드까지 팬들이 다 꿰고 있다. 그런데 이 애연 그룹은 2004년 금연송을 불렀으며, 한때 애연 가수였던 윤종신이 그 금연송의 작사작곡을 맡은 바 있다[61]. 다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 연예계에서 의리로 유명하며 같은 스텝들과 오래 가는 편이다. 전진은 백댄서에게 차를 뽑아주었고, 에릭은 매니저들에게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를 선물해줬으며, 이 외에도 전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엄청 잘 챙겨준다. 김동완은 같이 일했던 매니저가 생활고를 겪었을 때 3천만원을 지원해준 바 있다. #

  • 지금은 신화가 국내 수많은 아이돌들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지만, 신화도 한때는 롤모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일본SMAP이다. 신화가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올 때 에릭이 벤치마킹했다고 밝힌 그룹. 최근에는 예전만큼 교류가 없으나, 개인적으로도 신화와 친하다. 쿠사나기 츠요시가 엠넷에서 한국 데뷔 무대를 가졌을 때 신혜성이 츠요시에게 먼저 다가온 것을 계기로 친해졌다고. 신혜성의 일본 데뷔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츠요시가 나레이션을 맡았으며, SMAP이 리메이크한 사와다 켄지의 에 에릭이 피처링을 해주었다.

  • 하하에 따르면, VJ 시절 그를 챙겨준 유일한 아이돌이 바로 신화였다고 한다. # KBS 투명인간에 신화가 출연했을 때 하하가 이 이야기를 하며 울컥하자 강호동과 전진도 덩달아 눈물이 고였다. 하하는 이 시절이 정말 마음에 사무쳤는지 이전부터 신화에게 자주 고마움을 표하곤 했다.

  • 싸이에게 처음으로 곡을 받은 가수였다. 작곡가 지망생이었던 싸이는 신화 1집 데뷔곡으로 자신의 곡이 뽑혀 작곡가로서 데뷔할 기회를 갖게 되었으나, SM은 당시 IMF 상황에 맞는 [해결사]로 곡을 바꾸어버렸다. 참고로 싸이가 신화에게 줬던 곡은 [오! 사랑해]. '내가 유명 작곡가나 가수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 이때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싸이의 곡이 실제로 신화 앨범에 실리게 된 것은 신화가 SM을 나오고 나서이다. 2004년에 발매된 정규 7집 의 수록곡 중 하나로 [위하여 (Cheers!)]가 실리게 된다.

  • 이수만을 '이수만 아저씨', '이수만씨', '수만이'(...)라고 칭했던 역대 유일한 SM 소속 아이돌. 이수만이 탈세 혐의로 해외 도피를 했을 때는, 음악방송 1위 소감으로 "이수만 아저씨, 어디 계세요?"라는 드립을 쳤는데, 이때 신화는 아직 SM 소속이었다(...) 상표권을 두고 갈등하던 시절에는 서로 공개 디스도 서슴치 않았는데, 이수만은 신화가 있는 시상식에서 "우리 회사 나가서 잘된 사람 없다."라며 신화를 저격했고, 신화도 라디오에서 (신혜성이) "SM의 약자는 Small Mind다"라며 이수만을 저격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현재는 공식적으로 화해한 상태. 2012년 경에는 명절에 안부 인사도 주고받는다고 발언했다.

  • 인터뷰를 하면 꼭 받는 3대 질문이 '장수, 나이, 결혼'이다. 무려 20대 중반부터 빠지지 않고 들어온 질문인데, 이는 신화가 20대 중반부터 이미 국내 최장수 아이돌이었기 때문. 너무 자주 받는 데다 나이나 결혼은 인터뷰 질문으로써 썩 유쾌한 소재가 아니다보니, 신화창조는 물론이거니와 신화 또한 가장 꺼리는 질문이다.

  •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본래 SM은 H.O.T.가 아닌 신화를 메인 그룹으로 성장시키려고 했었다. 스타트업들이 상품 출시 이전에 MVP(Minimum Viable Product) 출시 후 반응에 따라 메인 상품을 내놓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실험적 테스트 격으로 H.O.T를 먼저 데뷔 시킨 후 반응을 보고 신화를 데뷔 시키려고 했는데 H.O.T의 인기가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반향을 일으키자 H.O.T를 더 밀게 된다. 이후에 어찌저찌 신화도 데뷔를 했는데 초반에 H.O.T에 약간 묻히는 감이 있었다.[62] 하지만 신화는 나름 신화만의 매력으로 두터운 팬덤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이후 콘서트, 예능 등등 방송 출연도 많이 하게 된다.

  • 신화의 미공개곡으로 [오! 사랑해], [21C], [Give it], [You Can't Stop My Way], [이별속의 아픔], [Coda], [할 수 있다면], [너를 안아], [빛 좋은 개살구]가 있다. 처음엔 미공개곡으로 인터넷에 풀렸으나 [Maybe]처럼 후에 정식으로 발표된 곡도 있다.

  • 신화 5집에 수록된 [Endless Love]에 관한 이야기. 신화가 5집을 냈을 땐 마지막 앨범 하나만 남겨둔터라 재계약문제로 매우 예민했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역대 가장 광기어린 집착과 다크함을 뿜어내는 [엔러]가 (비록 싢이 직접 만든 곡은 아니지만) 이수만을 향한 노래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 이유인즉 선배 그룹 H.O.T.가 해체 전 발표한 5집 앨범에 [Natural Born Killer]라는 곡이 토니가 이수만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평행이론급으로 '해체와 5집'이라는 공통점이 신빙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 신화의 노래들이 <이십세기 힛-트쏭>에 소개 되었다.
8회 속이 뻥! 청량음료 같은 힛-트쏭 10에서 2위 <으쌰! 으쌰!>
21회 상상초월! <DANGER> 반전 가사 힛-트쏭 10에서 4위 <너의 결혼식>
43회 알고 있었니? 숨겨진 데뷔쏭 10에서 5위 <해결사>
64회 나도 주인공! 원조 그룹 래퍼 힛-트쏭 10에서 2위 <해결사>
65회 중독성 강한 포인트 댄스 힛-트쏭 Part.II 10에서 2위 <Wild Eyes>
81회 유행가 속에 클래식 있다?! 샘플링 명곡 힛-트쏭 10에서 5위 <T.O.P.> 영상
103회 도토리 도둑, 조영수 작곡가 힛-트쏭 10에서 6위 <Brand New>
107회 허니제이가 PICK한 포인트 댄스 힛-트쏭 10에서 7위 <T.O.P.> 영상
108회 그룹 가수에서 배우로 변신한 가배우 힛-트쏭 10에서 2위 <너의 결혼식> 영상
111회 소오름~다른 시대 같은 느낌! 도플싱어 힛-트쏭 10에서 8위 <Wild Eyes>
112회 별별 기록을 남긴 우리 가요 힛-트쏭 10에서 6위 <해결사> 영상
117회 세기의 대결! 90년대를 강타한 그룹 라이벌 힛-트쏭 10에서 1위 <Wild Eyes> 영상
127회 가창력 킹정! 남자 그룹 메인 보컬 힛-트쏭 10에서 6위 <Perfect Man>이 선정되었다. 영상


15.1. 최초 기록[편집]


  • 해체나 멤버 변동 없이 활동한 국내 최장수 아이돌 (24 년차)

  • 아이돌 중 최다 정규앨범 발매 (13 집)

  • 아이돌 중 가장 기수 높은 팬클럽 소유 (13 기)

  • 아이돌 최초 멤버가 주주로서 자체 기획사 설립 및 운영

  • 아이돌 최초 그룹 상표권 소유

  • 아이돌 최초 그룹 활동, 개인 활동 병행

  • 1세대 아이돌 그룹 최초이자 유일한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음악 방송 1위 모두 경험

  • 아이돌 최초 정규 6집 활동[63]

  • 아이돌 최초 멤버 전원 같은 소속사로 이적

  • 아이돌 최초 해체하지 않은 채 군복무

  • 아이돌 최초 10주년, 20주년 콘서트 개최

  • 아이돌 최초 올 밴드 라이브로 콘서트 진행

  • 아이돌 최초 의자춤[64], 스탠딩 마이크[65], 보깅댄스[66] 시도

  • 아이돌 최초 연기 활동으로 신인상, 우수상, 최우수상 수상 성공

  • 아이돌 최초 연기대상 후보 노미네이트

  • 아이돌 최초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67], 후배 양성 및 그룹 제작

  • 아이돌 최초 그룹명을 건 단독 예능 방영[68]

  • 아이돌 최초 단독 예능 최장 기간 TV 방영[69]

  • 아이돌 최초 역대 최장 기간 교복 모델 (2000년 ~ 2005년)[70]

  • 아이돌 최초 양복 브랜드 모델[71]

  • 아이돌 최초 안무 연습 영상 공개 #

  • 아이돌 최초 세미 누드집 발매

  • 국내 팬클럽 최초로 쌀 화환

  • 국내 팬클럽 최초로 도시락 조공

  • 국내 팬클럽 최초로 아이돌 숲 조성

  • 예능돌&짐승돌&비글돌의 시작. 이는 결코 농담만이 아닌게, 신화는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서 기존의 신비주의 컨셉에서 탈피하고 극도의 털털함, 활달함을 대놓고 드러내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방향의 기반을 닦았다.


15.2. 에피소드[편집]


비글돌의 시발점이자 정점을 보여주는 신화의 유명한 에피소드 모음. 광견돌

  • 연습생 시절 어지간히도 말을 안 들어서 관리자가 기를 꺾을 셈으로, "너네 이 따위로 하면 데뷔고 뭐고 다 짤라버린다"라고 엄포를 놨는데 본인들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인 멤버들이 전원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진짜 집에 가려고 하길래, 소속사에서 두손 두발 들고 자신들이 졌다며 다시 붙잡았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 시간이 흘러서 신화가 자신들의 그룹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개고생을 했던 생각하면 웃픈 이야기다.

  • 이후 소속사에서 노래 연습겸 바람쐬러 운동을 하라며 새벽마다 약수터에 보냈는데, 약수터에서 못 잔 잠을 자고 만화책을 보며 노닥거리다가 온몸에 물을 묻힌 채(...) 숙소로 돌아왔다고 한다. 당시 뒤늦게 연습생으로 합류한 이민우는 애들이 약수터에서 바로 잘 자리를 찾길래 당황했으나 그냥 바로 옆에 누워서 같이 잤다고. 멤버들은 자신들도 처음에는 진짜로 운동도 하고 노래 연습도 했다며 항변했다. 나중에는 걸려서 거짓말이라 변명도 못하고 며칠내내 기합을 받았고 그 후로는 상황이 역전돼서 찍소리도 못냈다고.

  • 숙소 생활 시절 정말 미친 사람들처럼 장난을 치며 놀았는데, 특히나 케찹은 신화 숙소의 잇 아이템이었다. 샤워 중인 멤버를 욕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혹은 아예 멤버가 샤워하고 있는 도중에 욕실로 처들어가 다같이 온몸에 케찹을 뿌려주며 놀았다. 케찹 테러 가끔 밤 늦게까지 숙소 앞을 떠나지 않는 사생팬들에게도 빨리 집에 들어가라며 창문 밖으로 케찹을 뿌리곤 했다.

  • 숙소 생활 시절 샤워에 관해 여러 일화가 있다. 당시 신화는 다 같이 샤워하면서 친목을 다졌는데 신혜성은 유독 같이 샤워하는 걸 싫어해 문을 잠그고 샤워했다. 근데 멤버들이 문을 따고 들어와서(...) 포기했다고. 또 샤워를 하고 나오는 멤버에게 다같이 달려들어 케찹을 뿌리곤 했는데 전진이 말하길 짜증내면 멤버들이 더 즐거워하니까 일부러 기분 좋은 척 온몸에 케찹을 발랐다고 한다(...). 케찹을 조금 뿌려주면 서운했다고(...).

  • 숙소 생활 시절 팬티를 다 같이 돌려입었다고 한다(...). 당시 이민우는 전주에서 올라와 삼각팬티 밖에 모르던 시기였는데, 해외파인 에릭, 신혜성, 앤디의 사각팬티를 보고 컬쳐쇼크를 받았다고. 특히 에릭의 미제 속옷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하루는 이민우가 에릭에게 허락도 안 받고 그의 속옷을 입자 에릭이 따로 불러서 뭐라고 했고 이민우는 기분이 나빠져서 싸웠다고 한다. 근데 에릭이 얼마 뒤 새 팬티 2개를 이민우에게 선물해주면서 화해했다고. 팬티 때문에 싸운 아이돌

  • 숙소 생활 시절 김동완은 두 시간짜리 폭풍 잔소리로 사생들을 쫓아내곤 했는데, 덕분에 다른 멤버들도 숙소 앞에 사생들이 몰려있으면 '동완오빠 오니까 빨리 가라'며 겁을 주곤 했다. 여름이면 숙소 앞에서 죽치고 있는 사생들에게 더운데 어서 집에 가라며 호스로 찬물을 뿌렸다고. 그래도 안가는 사생들에게는 메로나도 사주고 숨바꼭질까지 해줘가며 기어이 그들을 집에 다 들여보냈다고 한다. 추운 날 밤에도 숙소 앞을 죽치고 있는 팬들에게 신화 멤버들이 이불을 던져주곤 했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케찹에 물에 이불까지 정말 별걸 다 던져줬다

  • 숙소 생활 시절 다같이 알몸으로 댄스 배틀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 중 한 멤버[72] 다 벗은 상태에서 헬멧만 쓰고 헤드 스핀을 했는데 신혜성은 아직도 그 광경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 숙소 생활 시절 신화에게는 '충동'이라는 룰이 있었다. 멤버 한 명이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겨, '충동!'을 외치면 모든 멤버들이 그게 뭐가 되었든 동조해주어야 했다고. 이런 쓰잘데 없는 룰을 만든 이유는 이걸 안 해주면 에릭이 거의 미쳐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에릭이 '남자와 키스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라고 해서 이민우는 울며 겨자먹기로 에릭과 약 3초간 진짜로 키스했다고.

  • 숙소 생활 시절 신혜성은 방을 자꾸 어지르는 에릭에게 출입금지 처분을 내렸는데, 이에 에릭은 신혜성의 반응이 궁금해(...) 신혜성이 늦게 들어온 날 일부러 신혜성의 침대에서 잤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 광경을 보고 빡친 신혜성은 에릭 얼굴에 돈다발을 던지며 "꺼져!"라고 외쳤다고. 참고로 그 돈다발은 그냥 지갑 속에 들어있던 천 원짜리.

  • 숙소 생활 시절 신혜성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 에릭은 또 신혜성을 놀리기 위해 신혜성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평소라면 성질을 내며 에릭을 쫓아냈을 신혜성이, 그날은 에릭이 깊이 잠든 줄 알고 "네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야. 그럴려고 그런건 아닌데 나도 너를 좋아해."라는 이상한 고해성사(?)를 30분 넘게 읊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에릭에게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는 자신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자는 척 하면서 다 듣고 있던 에릭이 다음 날 아침 신혜성에게 "나도 너 좋아해, 혜성아."라고 말해 그 뒤로 사이가 더 나빠졌다고 한다(...)

  • 숙소 생활 시절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바닥, 벽, 천장까지 온통 오바이트로 테러가 돼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범인을 못 찾았다고. 한편 볼일을 보고 유독 물을 안 내리는 멤버도 있었다고 한다(...) 이민우는 에릭이 멤버들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안 내린 거라고 확신했으나, 최근 전진이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물이 안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 숙소 생활 시절 신혜성은 아침마다 이불 속에서 꾸물대는 멤버들 때문에 '다이밥송'을 만들었다.[73][74] 가사는 '다들 이불 개고 밥 먹걸쓰 다들 이불 개고 치즈버걸쓰' 정도의 내용이다. # 이게 인터넷상에 유행하면서 신화는 이 노래를 배경음으로 롯데리아 라이스버거 CF까지 찍었다. 역시 될 놈은 뭘 해도 된다

  • 과거 신화 팬들과 라이벌이였던 god 팬들과 싸움이 일어나는데 신화 팬들은 몸으로 싸우려는 편이였고 god 팬들은 법을 따지면서 말로 싸우는 편이라 god 팬들이 이겼다. 팬들끼리 싸웠다는 소식을 들으면 god는 싸우지 말라고 했지만 신화는 졌는지 이겼는지부터 묻고 졌다고 하면 왜 졌냐면서 다음에 이기라고 팬들을 혼냈다(...) 팬들은 강하게 키우는 신화. 덕분에 신화창조는 신화에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 1998년 신화창조 1기 팬미팅 당시 김동완은 뜬금없이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1세대 아이돌의 팬덤 분위기를 상상하면 굉장히 파격적인(...) 발언. 그 순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쎄해졌다고. 당시만 해도 팬덤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기에 팬들로부터 커다란 비난을 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아이돌 팬덤 문화를 관통하는 명언(?)으로 꼽히고 있다. 2015년에 이르러서는 저 말 뒤에 "그렇지만 우리는 여러분을 무너지지 않게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여러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덧붙여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 음악 방송 대기실에서 벽을 타고 노는 신화에게 매니저가 해탈한 듯이 씁쓸한 목소리로 "가자... 이제 우리 밖에 안 남았어..."라고 말하는 모습과, 역시 음악 방송 대기실에서 한 멤버를 큰 가방에 통째로 넣고 들고 다니는 모습이 방송을 탄 적이 있다. 그 좁은 음악방송 대기실에 대형 브라운관 TV를 가지고 와 풀세팅을 하고 게임을 해서 엄청나게 놀랐다는 이승기의 증언도 있다. 대기실 통로에서 벽 타는 신화

  • 시상식 도중 김동완은 신혜성에게 "열어봐. 진이 선물이 저 안에 들어있을꺼야."라며 열쇠를 건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신혜성이 그 열쇠로 방송국 캐비넷을 열어보니 그 좁은 캐비넷 안에 에릭이 꾸깃 꾸깃 들어가 있었다고. 신혜성은 그걸 보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재빨리 다시 문을 잠근 후 끝까지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에릭은 캐비넷을 부수고 나왔고 돈은 어째서인지 죄 없는 김동완이 물어줬다. 이 사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강타는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증언했다. #

  • 에릭과 김동완은 20대 초반 KBS 공개방송 리허설 현장에서, 그것도 다른 가수들이 다 모여있는 현장에서 주먹다짐을 한 적이 있다. 이유도 굉장히 유치한데, 김동완이 트림을 하고서 에릭에게 뒤집어 씌우자 열받은 에릭이 선빵을 날렸고, 맞고만 있을 사람이 아닌 김동완 또한 죽빵을 날렸다. 신화 멤버들은 이 광경을 옆에서 가만히 구경했으며, 심지어 전진은 "액션영화 같았다", "우리 형들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아무도 안 말려서 결국에는 카메라 감독님이 말렸다고. 이후 매니저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너희 이럴거면 때려쳐! 내 앞에서도 싸워봐!"라고 으름장을 놓자, 에릭과 김동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네! 때려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다시 치고박고 싸웠다고 한다. 이쯤되니 멤버들마저 둘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작 김동완과 에릭은 같이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나란히 볼일을 보면서(...) 화해하고 나왔다고.[75]

  • 앤디의 유명한 흑역사 중 하나로 키위왕자 x끼 사건이 있다. 앤디는 2005년경 알로에바 CF를 찍은 적이 있는데[76], 이게 참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유치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끝났으면 몇번 놀려먹고 끝났겠지만 유명해진 이유가 있었으니... <배틀신화> 촬영 중 앤디가 신혜성에게 전화연결을 했는데, 신혜성이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어 키위 새x다! 키위! 키위왕자 xx다! 키위 왕자 xx 썰어 먹어"라고 쌍욕을 한 것이 그대로 방송을 탄 것. 결국 끊고 다시 전화했으나 출연자가 신화라 그런지 케이블이라 그런지 편집 그딴 거 없었다.#

  • 신화의 비글스러움을 보여주는 끝판왕 영상에는 미친 인터뷰가 있다. 당시 리포터는 김나영이었는데 심지어 신입 때 처음으로 맡은 첫 인터뷰였던지라 신화와의 인터뷰가 끝난 후 너무 힘들어서 울었다고.[77]

  • 라디오에서도 전설적인 순간을 여럿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미친 여고생이 가장 유명하다. ???:야아앍↗!!! 이유는 그냥 직접 들어보면 안다... 김동완이 텐텐클럽 라디오 DJ를 하던 시절 멤버들이 일반인인 척 전화연결을 하여 여자 목소리를 연기한 적도 있었다.

  • 한 네티즌이 밝히길 포장마차에서 에릭과 전진이 싸우는 걸 봤으며, 신화는 나이가 들어서도 엄청 싸운다고 제보했다. 감정이 격해져서 욕도 엄청 하고 멱살까지 잡으며 싸우더니 갑자기 전화를 걸어 김동완을 불러냈다고 한다. 김동완이 현장에 나타나 중재를 하자 에릭과 전진은 김동완에게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며 고자질을 하다가 술이 떡이 돼서 화해를 했다. 이후 에릭은 전진에게 형한테 개기는 버릇 좀 고치라고, 전진은 형이 돼서 유치하게 구는 것 좀 고치라고, 김동완은 그런 둘 사이에서 제발 싸우고 자기 불러내지 좀 말라고 하소연했다고. 이후 한 팬이 페이스북에서 이 일이 실화인지 물어보자 김동완은 "논현역이었지 아마..."라고 답글을 달아 확인사살.

  • 하루는 에릭과 김동완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에릭이 만취하자 김동완이 에릭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는데, 김동완이 씻고 있는 사이 에릭이 알몸으로 김동완네 아파트 복도를 질주했다고 한다(...) 이에 김동완은 놀라서 에릭을 쫓아 추격전을 펼쳤다고. 에릭은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다가 발을 다쳤고 김동완은 핏자국을 통해 에릭을 찾아냈다고 한다(...)

  • 에릭과 신혜성은 숙소에서 독립한 이후 줄곧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주로 신혜성이 이사갈 때마다 에릭이 따라가고 있다.[78] 이유는 웃기려고. 장난 스케일 ㄷㄷ 둘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 동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에릭이 계약까지 다 마친 상태에서 신혜성에게 "나 너희 집 윗집으로 이사가."라며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고 한다. 결국 지금은 기어이 위아랫집에 거주 중.

  • 13집 활동 직전 에릭은 문득 멤버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새벽 4시에 사유를 정확히 말하지 않고, 멤버 전원을 호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야간 스케줄이 있는 신혜성을 제외하고 멤버 전원이 진짜로 에릭 집까지 찾아왔다고. 신혜성도 뒤늦게나마 잠깐 쉬고 아침에 일어나 에릭 집에 올라가보니, 멤버들이 술에 취해 팬티만 입고 널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신혜성의 표현에 따르면 멍청이들처럼 눈이 다 풀려 있었다고.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신화와 동세대인 1세대, 2세대 아이돌들은 전형적인 신비주의를 고수했는데, 신화는 그런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털털해도 너무 털털한 아이돌 그룹으로서 아주 독보적이었다. 당시 방송 컨셉 및 몰래 카메라 및 영상 유출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술, 담배, 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남아 있는 건 기본이거니와 방송에서도 그런 일화들을 아무렇지 않게 풀었다. 모 클럽에서 댄스 경연 대회를 열었는데 전진, 에릭, 이민우가 나란히 1, 2, 3등을 거머쥐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있다. 전진은 1등상으로 고급 오디오 세트를 받아 아버지께 칭찬받았다고.

  • 20대 시절 신화의 비글스러움은 아직까지도 방송계에서 유명하며, 특히 SM 내에선 아직도 종종 신화의 전설 같은(?) 일화들이 회자된다고. 한다 SUPER JUNIOR 신동이 밝히길, 슈퍼주니어가 매니저의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굴자, 화가 난 매니저가 슈주에게 "니네들이 신화냐!" 라고 혼냈다고 한다. Red Velvet에 따르면 신화는 지금도 SM의 전설이라고 한다.

  • 아이돌 매니저들이 뽑은 일하면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연예인 톱 3은 1위 신화, 2위 핑클, 3위 SUPER JUNIOR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신화는 '그냥 신화라서', 핑클은 '여자 신화'라서, 슈주는 '신화 같은 놈들'이라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6 06:40:56에 나무위키 신화(아이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2] SM엔터테인먼트에서 신화와 함께 일하던 스텝들이 차린 신생 연예 기획사.[3] 종전 기록은 혼성그룹 11집이었다.[4] 2001년, 2005년[5] 신화 밖에서는 78년생들과 친구이고 79년생들은 동갑내기지만 에릭 입장에서 동생이 된다. 신화 멤버들의 인맥이 많이 겹칠 수 밖에 없다보니 족보가 상당히 꼬여 있다.[6] 엄밀히는 입춘육십갑자의 기준이기에 에릭, 이민우, 김동완, 신혜성이 기미#육십갑자의 쉰여섯째년생 동갑이고, 전진, 앤디가 경신#육십갑자의 쉰일곱째년생 동갑이다.[7] 다만 법적으로 대표는 에릭 한 사람이다.[8] 김동완이 자신의 포토 에세이에서 언급했다.[9] 신화에는 댄서가 두 명이다.(이민우(메인댄서)와 전진(리드댄서)) 그리고 보컬라인과 래퍼라인도 있다.(보컬라인: 신혜성(메인보컬), 김동완(리드보컬), 이민우(리드보컬)/래퍼라인: 에릭(메인래퍼), 전진(리드래퍼, 서브보컬), 앤디(서브래퍼))[10] '최장수 아이돌' '장수돌' 이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11] 동방신기, SUPER JUNIOR, BIGBANG, 2PM, SHINee, EXO, 하이라이트 등.[12] 7집(1년 8개월) 8집(1년 9개월) 9집(1년 10개월) 10집(군입대 공백기 4년) 11집(1년 2개월) 12집(1년 9개월) 13집(1년 9개월) 20주년 스페셜 앨범(1년 7개월)[13] 다만 8집은 방송활동이 많이 미미했고 9집은 앨범만 내고 방송활동을 아예 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어 체감상 공백기를 많이 가졌던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14] 데뷔 10년차만 넘겨도 신화보다 텀이 길어진다.[15] 게다가 공백기 동안의 윈터스토리 앨범 및 콘서트까지 포함하면 군백기를 가진 2008년 이전까지의 신화 그룹 활동은 활발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꼬박꼬박 이어갔다고 할 수 있다.[16] 매년 진행했던 콘서트도 2019년이 마지막이었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 유행하기 시작한 영향도 있었는지 VLIVE+를 통해 2019년 콘서트의 실황을 공개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17] 신화가 <Brand New>로 대상을 받았던 2004년 동방신기가 데뷔했고 동방신기 역시 신인상을 휩쓸었다.[18] 심지어 2022년 기준으로 동방신기와 샤이니마저도 고참급 그룹이다.[19] <TOUCH>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20] 1개월만 더 일찍 데뷔했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1993~1998) 까지 거쳤을 아이돌이 됐을 것이다. 참고로 문민정부는 1998년 2월 24일까지 존속했다. 즉 신화가 데뷔하기 1달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정권이 교체된 것.[21] 데뷔 해인 1998년에는 프랑스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2006년 독일 월드컵/2010년 남아공 월드컵/2014년 브라질 월드컵/2018년 러시아 월드컵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개최되었다.[22] 2008년 10주년 콘서트에서 이민우가 했던 멘트.[23] 처음 재계약 제의를 받은 멤버는 신혜성과 이민우로 이민우에게 "한국의 어셔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24] 이 이유에 대해 에릭은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우리는 배우를 하러 혹은 솔로 가수를 하러 모인게 아니지 않느냐. 우리는 신화를 하러 뭉친 것이고 신화이기 때문에 팬들이 우리를 응원해준 것인데, 개인 활동이 더 벌이가 좋다고 해서 그룹을 놓는 것은 비굴하고 치사하게 느껴졌다."라고 답했다.[25] 이민우는 승승장구 신화 편에서 그때 그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자신은 정말 행운아라며 눈물을 보였다.[26] 데뷔 초부터 예능에서 멤버끼리 가래떡 먹기 게임이나 빼빼로 게임을 시키면 신화는 자기들끼리 닥돌을 해버려서 하트CG들이 붙곤 했다.[27] 유재석은 이 일화를 두고 '방송가의 전설'이라고 언급했고, 문희준은 '(자기들끼리) 주먹질하면 저희 말고 신화가...'라고 언급했다.[28] 그래도 싸움을 아예 안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래 '에피소드' 문단의 논현역 포장마차 싸움 에피소드를 보면...[29] 그렇다고 이러한 풍속이 나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기 인생에 있어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냐는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영속을 원하는 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일.[30] 2021년에는 에릭이 김동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자 언론에서 해체설이 나왔지만 술자리에서 오해를 풀어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31] 신혜성에 따르면 앤디와는 오디션 합격 전 클럽에서 이미 마주쳤고 에릭과는 한국에 오기 전 노래방에서 딱 한번 어울렸다고 한다. 반면 에릭은 오디션 합격 전인 vally k festival 노래 대회에서 이미 신혜성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32] 출처는 이수만 평전. 에릭은 빠른 년생이라 미국에서도 한 학년 일찍 입학했다. 때문에 같은 1979년생인 신혜성보다 학년상 선배였고 대학 진학을 앞둔 시기였다.[33] 다행히 우연석은 훗날 클릭비로 데뷔하게 된다.[34] 이 친구의 이름은 박상준으로 20년이 지난 2017년, 신화 13집 수록곡 <별>의 작곡과 편곡을 맡게 된다.[35] 결성 날짜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신화가 김동완이 합류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36] 월드뮤직은 SM엔터테인먼트의 음반 유통 대행을 맡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SM과 친분이 있었는데 S\#ARP, 이브, 업타운, 컨츄리꼬꼬 등 당대 인기 그룹을 다소 보유하고 있던 회사였지만 결국 회사가 해산되었다. 기존에 김동완이 회사 해산후에 신화에 합류했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월드뮤직의 해산은 2003년도이다. 훗날 와서 보면 김동완에게는 신의 한 수였던 셈.[37] 앤디가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으로 자숙을 가져 단독 콘서트 중 유일하게 5인으로 진행되었다. 2일차에는 게스트로 잠시 출현하기도 했다.[38] 현지 기획업체 문제로 공연이 취소되었었다. 이후 유튜브에 별도의 입장표명문을 통해 나중에 돌아오겠다고 멤버들이 메세지를 남겼다.[39] 인트로의 음악은 이민우의 작품이라고 한다.[40] 물론 당시에는 SM도 상표권에 대한 인식이 없었는지 상표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41] 아마 당시 대중의 여론이 압도적으로 신화의 편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42] 상표권 등록 자체는 그보다 1년 전에 신청했지만, 등록 자체는 2005년이 되어야 비로소 완료되었다. 어쨌거나 신화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이미 나온 상황에서 상표 등록을 했다는 점 때문에 SM에게 분노를 표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다. 신화가 만약 SM보다 먼저 상표권에 대한 개념을 인지하고 상표 등록을 하였다면 뒤에 후술할 내용보다 훨씬 복잡한 분쟁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교육과정도 대충 밟은 일개 아이돌들이 변호사도 두고 있는 대형 기획사보다도 먼저 법 개념을 잘 파악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SM엔터도 상표권에 대한 인식이 없던 상태였는데, 그 당시 이미 SM이 동네 구멍가게 같은 기획사가 아닌 국내에서도 손 꼽는 아이돌 기획사였다.[43] 사실 이게 말이 그렇지 신화 입장에서만 적정한 가격을 내걸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꽤나 돈을 벌었던 상황에서도 오픈월드에서 큰 금액을 내걸고 상표권을 판매하려고 하자, 신화 측에서 적정 금액이 아니라고 거절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부분은 훗날 신화와 같은 곤경을 겪게 된 하이라이트 (구 비스트)와는 달리 당시 기준 상표권법에 따라 음반, 음원, DVD 등의 음악 활동에 한해서만 발목이 잡혀 방송 활동, 관련 영상, 콘서트 굿즈에는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다.[44] 신화 8집 활동 기간이 한 달이 채 되지 못한 이유 역시 방송 활동보다 공연 수익이 더욱 득이 될 것이라는 오픈월드의 판단 하에 조정된 해외 투어 스케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신화는 음반이나 음원에서 수익을 얻기 쉬운 그룹이 아니기 때문에 음방을 도는 게 수익에 큰 도움이 될리 만무하다. 유독 신화는 팬 수 및 화력 대비 음반과 음원 성적이 좋은 그룹이 아니기 때문.[45] 그 체력으로 유명한 전진이 오픈월드에 의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게 되어 툭하면 쓰러지기 일쑤였고, 반드시 받아야 했던 허리 수술도 받지 못한 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46] 신화 10주년 콘서트 DVD가 발매된 2008년 11월부터 (예약판매 개시 기준, 2008년 10월) 2012년 3월 정규 10집 <THE RETURN>이 발매되기까지의 기간이 정확히 3년 5개월이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신화의 히스토리 DVD 'ALL ABOUT SHINHWA'와 SM에서 신화의 1~6집 앨범을 재발매하여 판매함에 따라 향후 소송에서 패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47] 사실 신화의 상표권은 SM엔터테인먼트가 대여를 시작한 이듬해인 2006년에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에 양도되어 있었으나, 오픈월드가 상표권 이전 시 서류 등록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신화의 소송을 계기로 뒤늦게 이전 등록에 대해 인지하고, 준미디어로 변경한 것.# 하지만 SM이 법적 분쟁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뒤늦게 오픈월드에게 상표권을 양도해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SM과 신화가 각각 생각한 상표권의 판매 금액이 달랐을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신화가 제시한 금액과 오픈월드가 제시한 금액의 차이로 인해 한 기업의 선택이 달라졌다고 추측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애초 신화 팬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죄다 그저 SM은 악덕 기업, 이수만은 악덕 사장이라는 가정을 깔고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잃을 이미지도 없을 뿐더러 SM이 고의적으로 오픈월드에게 상표권 양도했다는 주장 역시 무리가 있다. 그러나 신화가 데뷔하고 전성기를 맞이했던 시기에는 기획사란 무조건 나쁜 놈들 위치에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이 가정과 추측이 거의 정설처럼 먹히고 있다.[48] 2012년 신화컴퍼니 설립 이후부터 사용하고 있는 신화의 엠블렘만으로 신화관련 디스코그래피임을 어필했다.[49] 신화가 준미디어 측에 지급한 금액은 3억 2755만원.[50] 선배 그룹 H.O.T.도 최근 상표권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51] 한번은 김동완이 2014년 3월 개최된 16주년 콘서트에서 2집 수록곡 <소망>을 3집 수록곡이라 잘못 설명하기도 했다.[52] 팀장급, 단장급, 대학교수급의 경력자들이 즐비하다.[53] 어머니의 병세와 비자 문제로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54] 원래 가사는 'Rescue Me'. 참고로 신화는 박경림과 친분이 깊다.[55] 원 가사는 '보고 말았어'[56] 원래 가사는 '참지는 않아'이다.[57] 원래 가사는 'Just one never let you go'다. 저 몬데그린은 당연하게도 신화창조들 사이에서도 유명한데, 심지어 저 가사를 부를 때에도 원래 가사가 아닌 저 몬데그린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58] 머리 부상으로 의식불명 상태인 전진을 두고 의사가 '오늘 밤이 고비'라고 하는 바람에 신화 멤버들이 오열했다고 한다. 그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일주일도 안 돼서 보여준 성과.[59] 20대 초반 방송에서 의사로부터 이미 허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60] 허나 연예병사였다는 점과 이후 불법도박사건으로 인해 의미가 다소 퇴색된 감이 크다.[61] 윤종신도 현재는 금연.[62] H.O.T는 실패해도 신화가 남아 있기에 일단 H.O.T를 먼저 데뷔시켜보고 실패하더라도 신화 라는 카드가 남아 있으니 SM으로서는 큰 모험을 했고 결과론적으로 이것이 대성공을 거두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63] 동세대 아이돌 그룹들은 6집 발매 전 해체하거나 활동 중단[64] [65] [66] [67] 2005년 <배틀신화>[68] 신화방송[69] 신화방송[70] 아이비클럽[71] 로이젠[72] 팬미팅에서 본인이 맞다고 인정했다(...)[73] 을 개사했다.[74] 사실 개사버전의 원조는 코미디언 김상호가 8~90년대에 했던 개그다.[75] 이 일화는 토토가2 - 젝스키스에서 은지원이 "여기 신화 애들 싸워서 카메라 감독님이 말렸던 곳"라고 말해 확인사살. 다만 자막에서는 신화 팬과 젝스키스 팬이 싸운 곳이라 작성했다. 아마 편집자가 설마 멤버끼리 싸웠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한 모양이다. 유재석은 해피투게더에서 방송가의 전설 같은 일화라고 언급한 적 있다.[76] 정확히는 키위맛+알로에맛 아이스크림.[77] 참고로 김나영은 데뷔 초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78] 신혜성이 부모님과 살았던 기간은 제외. 다행히 거기까진 안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