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외국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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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국제 대회 출전 선수
3.1. K리그 입성 이전 경력 선수
3.2. 현역 K리거 신분으로 출전한 선수
3.3. K리그 이후 경력 선수
4. 역대 선수




1. 개요[편집]


K리그외국인 선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놓은 문서.


2. 특징[편집]


  • K리그는 전 세계 프로축구 리그 중 유럽 주요 리그나 중동, 중국 리그를 제외하면 선수 연봉이 높은 축에 속하는 리그다. 일본 리그는 한국 리그보다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더 높은 연봉을 받지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으며, 중위권 이하부터는 오히려 한국 리그보다 더 낮은 연봉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남미 리그는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일부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리그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다. 루마니아 리그에서 2006 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활약한 김길식 안산 감독이 회고하길, 루마니아로 가니 한국에서 받던 연봉의 반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현지 팀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한국에서 받던 연봉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다들 경악했다. 루마니아 리그 최상급팀에서 받는 연봉보다 많다면서, 한국에 있지 절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왜 여기서 뛰냐며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김길식은 구단의 연봉 체불로 인해 돈을 받지 못하고 구단과 법적 다툼을 빚다가, 루마니아 리그 상위팀 이적설이 나왔음에도 이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길식이 뛰었던 오첼툴 갈라티는 재정적으로 엉망이었음에도 2010-11 리가 1에서 사상 첫 우승을 거두었고, 슈퍼컵을 우승했으며, 사상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재정 문제로 인해 3년도 안 가 2부 리그로 강등 당했고, 2016년 파산하여 구단이 해체되었다. 김길식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오첼툴 갈라티에서 같이 뛰던 동료는 돈을 못 받자 터키 쉬페르리그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연봉도 훨씬 많이 받자, 김길식에게 연락해 한국으로 돌아가던가 다른 유럽 상위 리그로 가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고 한다.[1]


  • 프로 리그 창설 원년인 1983년부터 외국인 선수가 허용되었고, 1983년 포항제철 돌핀스가 모기업인 포항제철의 원료 공급사였던 브라질 Companhia Vale do Rio Doce (약자로 CVRD)로부터 세르지오, 호세 등을 임대 영입하면서 K리그에 외국인 선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84년부터 다른 팀들도 앞다투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했고, 이 외국인 선수들은 K리그의 수준 향상에 큰 기여를 해주었다. 특히 현대 호랑이의 네덜란드 선수 렌스베르겐은 1984년 K리그 도움왕에 올랐고, 피아퐁[2]은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후 1985년 K리그 득점왕과 도움왕을 모두 석권하며 K리그를 평정했다. 게다가 소속팀 럭키금성 황소의 우승까지 함께 이뤄내며 팀과 선수가 함께 웃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은 2020 시즌 기준 3+1+1명 보유, 3+1+1명 출전(아시아 쿼터, 동남아시아 쿼터 포함), 북한 출신 선수는 내국인 선수로 간주, 골키퍼 용병은 금지다.[3] 골키퍼 용병이 금지인 이유는 사리체프, 샤샤 등 초창기 외국인 골키퍼 용병들이 너무 뛰어난 활약을 보여, 골키퍼라는 특수한 포지션을 외국인 용병들이 점거해버리면 국내 골키퍼 육성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일종의 보호 정책으로 금지해 놓은 것이다. 단, 경기 중 골키퍼가 퇴장 당하거나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한 상태에서 골키퍼가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경우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를 골키퍼로 대신 세우는 것은 허용된다.[4] 그리고 3명 이외에 아시아 용병 선수를 한 명 넣을 수 있는 아시아 쿼터제가 도입되어 수원의 리웨이펑, 강원의 마사 등 일본, 중국 선수들이 K리그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선 더 나은 환경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고 돈도 제때 받을 수 있는 K리그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모양새였으나, CSL의 급성장으로 다들 몸값에 엄청난 거품이 끼면서 중국 선수들을 보기 힘들어졌다. 가장 최근의 아시아 쿼터제 성공 사례로는 경남 FC를 거쳐 전북 현대로 이적한 쿠니모토, 수원 삼성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타가트, FC 서울의 오랜만의 우즈벡 아시아 쿼터 선수인 알리바예프가 꼽힌다. 유럽조차 군소 리그에선 임금 체불이 흔하고, 빅 리그에도 경영 파탄으로 임금을 못 주는 팀들이 간혹 있다. K리그는 액수에 차이는 있어도 돈을 떼먹진 않는다. 현재는 톈진 톈하이에 소속된 과거 전북의 레오나르도 또한 원 소속팀인 AEK 아테네의 파산과 임금 체불로 헐값에 전북으로 넘어온 경우다. 다만 에이전트가 사기를 쳐서 용병의 돈을 먹고 나르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2020 시즌부터는 AFF 가맹국[5] 국적 선수들을 기존의 외국인 쿼터나 아시아 쿼터가 아닌 동남아시아 쿼터를 이용해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된다.[6]# 비록 2010년대 한국에 온 쯔엉이나 꽁푸엉 등 동남아 선수들의 결말이 좋지 못했으나, 동남아시아 쿼터의 도입은 베트남이나 태국 등 전통적 동남아 축구 강호들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축구에 관심이 지대하고 인구가 많은 국가들로부터 선수를 영입하고, 동남아 축구시장에 K리그가 진출하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쿼터의 첫 번째 주인공은 2021년 안산 그리너스에 입단한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아스나위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전북이 태국 국가대표 사살락을 영입하면서 두 번째 동남아시아 쿼터가 되었고 2023년 서울 이랜드 FC반또안을 영입하면서 세번째 동남아시아 쿼터가 되었고 같은 해 코길레스와란충북 청주 FC에 입단해 네번째 동남아시아 쿼터가 되었다. 이 중 아스나위는 안산에서 의미있는 활약을 하면서 2023 시즌 리그 내 더 큰 팀인 전남에 입단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호주가 AFC로 들어온 덕분에 2009 시즌을 앞두고 성남에서는 사샤, 인천에서는 호주 국가대표인 노스를 영입하여 아시아 쿼터제의 수혜를 입기도 했다. 다만 잘 적응해 성남 수비 라인의 한 축이 된 사샤와 달리, 큰 기대를 안고 인천에 입단한 노스는 팀 내 적응 실패 등의 문제로 한 시즌만에 유럽 군소 리그로 이적했다. 이후 많은 호주 선수들이 K리그에 도전했으나 실패가 많았고, 그나마 2015 시즌까지 활약한 전북의 윌킨슨과 중국으로 이적했다 다시 돌아온 제주의 알렉스 정도가 활약다운 활약을 펼쳤다. 그러다 2017 시즌 이후 수원 삼성의 매튜가 대활약을 펼쳤고, 이후 수원은 타가트안토니스 등 공격과 미드필드 포지션에도 호주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호주 선수들에 대한 수요는 중앙 수비수 포지션이 압도적으로 많다. 2021 시즌에도 델브리지그랜트라는 두 거한의 수비수들이 K리그에 데뷔한다. 이들은 모두 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특히 델브리지는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22년 말 호주 국가대표에 생애 최초로 발탁되어 A매치를 소화하는 등 커리어가 진일보했다. 이와는 반대로 이미 호주 국가대표를 지낸 스타급 선수들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서울에 시즌 초 입단했던 은 반 시즌만에 다시 호주로 돌아가야 했다.

  • 2010년대부터 호주 선수들 못지 않게 우즈베키스탄 선수들도 K리그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 첫 사례는 우즈베키스탄의 전설적인 선수인 제파로프로, 2010년 FC 서울에 6개월 임대로 처음 K리그에 들어와 임팩트 있는 활약을 보여주며 완전이적에 성공했다. 제파로프의 성공 이후 2011년 우즈벡 국가대표 핵심 자원인 게인리히수원 삼성에, 카파제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우즈벡 K리거 1세대로 활약했다. 이 중 제파로프는 2년간의 사우디 생활 이후 2013년 다시 K리그로 컴백하여 2015년까지 뛰며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제파로프의 활약상은 우즈벡 언론에 매번 보도될 정도였고, 그 파급력이 대단하여 제파로프가 K리그를 떠난 뒤 우즈벡 선수들의 본격적인 K리그 러쉬가 시작되었다. 구단 입장에서는 우즈벡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연봉이 비싸지 않으며 피지컬이 양호하고 기술이 좋았기 때문에 우즈벡 선수들을 선호했으며, 우즈벡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축구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인 K리그 진출에 대한 욕망이 컸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 우즈벡 선수의 영입은 K리그의 빅클럽들보다는 중소클럽들이나 하부 리그의 클럽들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K리그1의 성남은 우즈벡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 이스칸데로프를 영입했으며, K리그2의 안산은 창단 첫 아시아쿼터 선수로 우즈벡 국가대표급 선수 나시모프를 영입했고, 대전은 2018년과 2019년 가도예프산자르 두 우즈벡 선수를 동시에 활용했으며, 전남은 우즈벡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 올렉을 영입했다. 우즈벡의 젊은 유망주들도 K리그에 많이 진출했는데, 알리바예프, 아슐마토프, 도스톤벡 등 이른바 우즈벡의 황금 세대 선수들이 2020 시즌 K리그1에서 맞부딪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2021 시즌에는 제주에 켄자바예프가 합류한다. 2023시즌 우즈베키스탄 K리거의 대표적 사례였던 알리바예프는 은사 최용수 감독이 있는 강원으로 입단하며 다시 K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 가끔 알파이 같은 먹튀의 경우도 있다. 실력은 유럽 리그와 월드컵을 통해 검증이 되었던 선수지만, 거친 것을 넘어 난폭한 플레이 스타일이 문제였다. K리그 데뷔 시즌에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였던 에드밀손의 아킬레스건을 끊어 사실상 선수 생명을 끊어버리는 등 사고를 많이 쳤다. 결국 그는 6경기 출전, 1회 퇴장 등 거친 태클 쇼를 선보이는데 그치고 일본으로 떠났다. 외잘란은 다른 선수들과 코치진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훈련에도 불성실했다고 한다. 이와 다른 유형의 먹튀 사례도 있다. 엘리치는 2004년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EPL 구단이던 풀럼 FC에서 이적 제의가 오자, 팀 합류 1년도 안 돼서 팀을 무단 이탈하여 임의 탈퇴로 6개월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결국 엘리치는 영국으로 야반도주하여 풀럼으로 이적하였다. 이후 그는 풀럼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노르웨이 리그와 호주 리그를 전전하다가, 2011년 마약 소지 혐의로 감옥까지 가는 등 막장 행보를 보이며 스스로 몰락했다.

  • 보통 아시아 리그라고 만만히 봤다가 분데스리가에 필적한다고 자부하는 압박에 고전하다가 떨어져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8년에는 FC 서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두루 활약한 무삼파를 전격적으로 영입했지만, 2개월 동안 5경기 출전의 초라한 성적만 남긴 채 퇴출됐다. 또한 2016년에는 페예노르트와 함부르크를 거친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 카스텔런이 수원 삼성에서 5경기 출전 기록만 남긴 채 1년만에 이적했다. 2019년에는 조던머치, 이, 2020년에는 마르코가 이 빅네임 잔혹사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에도 어김없이 오스트리아 국가대표로서 유로컵까지 나갔던 힌터제어가 K리그에서의 부진으로 반시즌만에 독일 2부 리그로 돌아가는 사례가 생기고 말았다.

  • 2000년대 브라질의 경제 위기 상황에 힘입어 한때 브라질 외국인 선수들이 대거 K리그에 진출한 적이 있다. 나드손, 마그노, 도도 같은 브라질 A매치 경력이 있는 특급 브라질 선수들이 2000년대 초중반 K리그를 주름잡았으며, 다들 리그를 말 그대로 폭격했다. 특히 나드손 같은 경우는 수원에서 3년간 맹활약하며 수원 최고 전성기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후 브라질 루트는 K리그 구단들의 주요 외국인 선수 수급 루트가 되었고, 외국인 선수들이 너무 브라질 출신들으로만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201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 출신이 아닌 외국인 선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즌이 계속되었다. 그후 차츰 다른 국가 출신의 외국인 선수들이 K리그에 다수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치안과 중국 CSL의 여러 리그 내외적 악재 속에, 차츰 중국 대신 한국을 선택하는 브라질 1부 리그 출신 선수들이 늘기 시작했다. 2020 시즌에는 대전 하나 시티즌코린치안스 출신 안드레와, 수원 FC에 같은 코린치안스 출신 말로니가 영입되었다. 안드레는 현지 리그에서도 수준급 유망주로 평가받는 자원이며, 말로니는 브라질 1부 리그에서 100경기 이상 출장한 자원이다. 또한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이탈리아 세리에 A 진출도 추진되었던 브라질 공격수 구스타보가 전북에 입단하고, 그레미우 1군 유망주 에르난데스가 전남에,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에서 뛰면서 1부 리그에서 가장 저평가 받는 선수라 이야기되던 미드필더 에디뉴가 대전에 입단하는 등 코로나 19 사태에 기인한 브라질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양질의 브라질 선수들이 K리그에 등장하고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010년대 초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공격수 한 자리를 차지했던 그라피테가 K리그에서 뛴 적이 있다. 그리고 9경기만에 방출 당했다. 2002년 원소속팀에서 방출 당했던 그라피테를 2003년 안양 LG의 스카우터가 발견했고, 테스트 끝에 입단시켜 K리그에서 짧게나마 활약했다. 하지만 결국 1골도 넣지 못한 채 방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심지어 당시 그라피테의 등록명은 그라피테가 아닌 바티스타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등록되었다. 당시 조광래 감독은 브라질 선수 치고는 너무나 부족했던 그의 개인기 때문에, 그에게 드리블과 공간 침투 등을 집중 훈련시키며 그라피테의 빠른 스피드를 살려보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7년 후 바티스타 아니 그라피테는 분데스리가의 마이스터샬레를 들어 올린 선수가 된다. 사람 일은 참 모를 일이다.

  • 2010년대 이후 남미의 경제사정이 이전에 비해 꽤 좋아지고, 특히 브라질이 신흥공업국으로 올라서면서 더 이상 값싸고 좋은 선수들을 수급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브라질로부터의 선수 영입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나, 구단들이 선수 수급 루트를 바꾸기 시작했고, 현재는 유럽 중소 리그, 미국 MLS, 타 아시아 리그 등으로 선수 수급 루트가 다변화되었다. 특히 유럽 리그에서 영입하는 비중이 많이 늘었는데, 그리스 리그에서 활약했던 레오나르도, 벨기에 리그 베테랑이었던 케빈, 오스트리아 1부 리그 출신 리차드 등 알짜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 유럽 리거들이 K리그에 유입됐다.

  •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곳은 단연 크로아티아인데, 항상 좋은 선수들이 이곳에서 꾸준히 들어왔다. 요니치오르시치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특히 오르시치는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자국 내 최고 명문팀으로 이적했으며,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에까지 선발된 이후 프리미어 리그사우스햄튼 FC로 이적하면서 K리그 외국인 중 손꼽히는 커리어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 최근에는 북유럽 리그도 새로운 수급 루트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선수이긴 하지만 문선민이 스웨덴 리그에서 프로에 데뷔해 경험을 쌓고 돌아온 후, 스웨덴, 덴마크 등의 북유럽 리그가 외국인 선수들의 주요 스카우트 루트로 자리매김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하마드가 스웨덴 하마르뷔에서 영입되었고, 치솜은 스웨덴 팔켄베리에서 영입되어 K리그2에서 걸출한 활약을 보이고는 중국으로 진출했다. 2020 시즌에도 쥴리안, 헬퀴스트가 K리그에 선을 보였었고 2021 시즌에는 전남의 사무엘이 스웨덴 리그에서 건너와 꽤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2부리그 중심의 이 트렌드는 2022년 들어 1부리그에도 확산되었고, 2022 시즌 제주의 , 강원의 디노케빈이 스웨덴 리그에서 건너왔거나 스웨덴 국적으로 K리그에 등장했다. 2023년에도 스웨덴은 안정적인 선수 수급처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리그의 강자 울산 현대는 아예 외국인 선수 쿼터 2자리를 스웨덴 국가대표 경험이 있는 다리얀 보야니치구스타브 루빅손으로 채웠다. 2부리그에서 승격을 노리는 전남 역시 아시아 리그 경험이 있는 스웨덴 공격수 시모비치를 영입해왔다. 하지만 꼭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닌데, 수원 삼성은 2022년 덴마크에서 그로닝을 야심차게 데려왔으나 선수가 최악의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실패작이 되고 말았고, 같은 해 핀란드에서 영입된 수원 FC의 니실라는 그로닝보다는 낫지만 계속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2023년 결국 팀을 떠났다.

  • 이 밖에도 루마니아 리가 I 출신 선수들이 자주 K리그에 선보이곤 한다. 루마니아 리그 최고 명문이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도 갖고 있는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에 소속된 루마니아 국대급 선수를 고작 6억원 정도의 연봉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이 부쉬 선수의 성남 FC 이적에서 확인된 만큼, 실력에 비해 열악한 자금력을 지닌 루마니아 리그를 이른바 가성비를 중시하는 구단들이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I에서 헝가리 국대급 선수 마틴 아담이 울산에 입단해 최고의 활약을 보이면서 헝가리도 새로운 루트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


  • 기타 주목할 수급처는 미국 MLS로 최근 적잖은 선수들이 K리그로 넘어오고 있다. 2021 시즌이 특히 그래서 제주의 제르소, 울산의 바코가 MLS에서 준수한 기록을 쌓고 K리그에 새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 최근 들어 이러한 흐름은 K리그 외국인 선수의 주류를 브라질 선수에서 유럽 선수로 바꿔놓았다. 승강제가 도입되고 1부 리그 12팀 체제가 시작된 2014 시즌에 1부 리그를 경험한 외국인 선수 44명 중 브라질 국적 선수는 절반을 넘는 23명이었고, 유럽 소재 국적 선수는 12명이었다. 하지만 2020 시즌 1부 리그의 외국인 선수 43명 중 브라질 국적 선수는 12명으로, 2014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며 유럽 소재 국적 선수 12명과 같은 비율을 이루게 되었다. 2부 리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 크게 체감되는데, 2014 시즌 K리그 챌린지의 유럽 소재 국적 선수는 블라단치프리안 단 2명이었으나, 2020 시즌에는 10명으로 5배나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승강제가 시행되면서 복권이라 불리는 브라질 하부 리그 선수들을 데려오는 수가 크게 줄고, 대신 같은 가격이지만 더 검증 가능한 자료가 많고 평균적인 수준이 높은 유럽 선수들에 대한 선호가 크게 늘었음을 알 수 있다. 2021 시즌에는 이 흐름이 더 심화되어, 2021년 2월까지 영입이나 잔류가 확정된 외국인 선수 중 브라질 국적 선수는 단 5명에 불과하고, 반면 힌터제어 같은 현역 국가대표, 실라지 같은 유럽 1부 리그 득점왕, 니콜라오 같은 유럽 중소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저니맨 등 다양한 루트로 유럽 소재 국적 선수들이 K리그에 들어오고 있다.

  • 유소년 선수 시절 세계수준의 유망주로 평가받았다가 커리어의 부침을 겪은 선수들이 커리어 회복을 위해 K리그에 들어오는 경우가 최근 잦아지고 있다. 2011년 U-20 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주역이었던 네게바, 코스타리카 국가대표 출신 아길라르, 분데스리가 진출 실패 후 한국으로 온 무고사, 실력과 재능만으로는 해당 연령대 최강 소리를 들었다가 사생활과 성격 문제로 자국 리그서 매장당했던 쿠니모토 등이 K리그로 온 이후 다시 부활한 경우다. 이후 더 높은 네임밸류의 선수들이 커리어 반전을 위해 K리그를 찾고 있으며, 예산이 빠듯한 구단들이 이를 잘 활용해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2019 시즌 K리그1 승격팀이자 시민구단인 광주 FC가 2014, 2018 월드컵에서 활약한 마르코를 데려오는 수완을 발휘했다. 2023 시즌에는 한때 토트넘 홋스퍼 FC의 유망주였으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콩고 DR 국가대표 폴조제 음포쿠가 인천에 입단했고 2부리그 전남은 SC 인테르나시오나우와 브라질 U-23 대표팀의 신성이었다가 장기 부상으로 신음했던 왕년의 유망주 발디비아를 데려왔다. 또한 이적시장 막판 2부리그의 천안이 인테르 밀란 출신 악셀 바카요코를 공격진의 히든카드로 영입해오는 등 다양한 국적의 유망주들이 K리그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 특히 이런 외국인 영입을 잘 하는 팀으로 수원 FC가 유명하다. K리그2 참가 초창기인 2015년 스페인 연령별 대표를 거치고 라리가에서 200경기 이상 소화한 시시 곤살레스를 영입해 축구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오죽했으면 영입 당시 시시가 수원 삼성과 수원 FC를 착각해서 온 것이 아니냐하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7] 시시는 클래스를 입증하며 수원 FC의 돌풍을 이끌었고, 그 해 수원 FC는 결국 승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격까지 이뤄내며 시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시시의 성공 이후 수원 FC는 과감한 외국인 영입 시도를 늘렸다. K리그1 승격 시즌에는 벨기에 국대 출신 마빈 오군지미, 프리미어 리그 출신 아드리안 레이어, 라리가에서 잔뼈가 굵은 하이메 가빌란을 영입하며 승격팀 주제에 가장 화려한 이름값의 외국인 선수단을 꾸릴 수 있었다. 비록 이 전략은 오군지미, 가빌란이 폭망하면서 실패로 끝나고 팀도 다시 2부 리그로 내려갔으나, 수원 FC의 외국인 영입 컬러는 지속되고 있다. 2부 리그로 돌아가서도 치솜이라는 골잡이를 발굴해냈고, K리그에서는 낮선 국적인 에스토니아의 헨리 아니에르를 영입하는 등 과감한 외국인 영입 시도는 계속되었다. 커리어 내내 브라질 1부 리그에서 주전 선수로 뛰었던 말로니를 영입해 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고, 2021년 K리그1으로 승격해서도 전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부침을 겪던 라스무릴로를 과감히 완전 영입하며 팀의 주포로 부활시키는 수완을 보여주었다.[8] 이러한 스카우트 능력과 선수의 가능성을 포착한 영리한 영입은 선수 영입이 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수준급의 외국인 선수에게 안정적인 생활 환경과 커리어에 유망한 축구 환경, 새로운 도전 욕구, 충분한 출전 기회 보장 등을 제시하며 좋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최근에는 광주 FC의 외국인 스카우트가 탁월한 결과를 내고 있다. 스몰 마켓의 승격팀이 할 만한 기존의 남미 로또 선수 긁기식 검증되지 않은 저가 선수 영입을 하지 않고 유럽까지 스카우팅 범위를 넓히며 준척급 자원을 잘 데려왔는데 그 중 알바니아 국적의 야시르 아사니는 광주에서의 폭발적인 활약으로 생애 첫 알바니아 국가대표팀 선발까지 되었고 이내 유로 예선에서 특급 활약을 선보이며 유럽 빅리그와의 링크가 뜨는 등 엄청난 성공사례를 만드는 중이다. 또한 네덜란드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티모 레츠셰흐트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는 수완도 보였고 기존 브라질 국적의 공격수가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어 퇴출되자 대체자로 영입한 조지아 국가대표 출신 베카 미켈타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사실 광주는 2부리그 시절 펠리페 실바윌리안을 발굴한 팀으로, 이 발굴이 괜히 이뤄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 수원 FC와 더불어 최근 외국인 선수 영입 적중률이 좋은 팀이다.

  • 최근의 외국인 선수 수급 트렌드는 FIFA 랭킹 중위권 국가의 국가대표 선수 영입이다. 과거에도 데얀, 사샤, 윌킨슨 등이 현역 국가대표로 활약했지만, 이들은 K리그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자국 국가대표팀으로 올라간 경우였다. 하지만 2020 시즌 외국인 선수로 새로 영입된 선수들 중에는 축구를 잘한다고 말할만한 국가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하는것도 아닌 국가의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 캐나다 현역 국가대표인 수원 삼성헨리, 남아공 전 국가대표인 수원 FC벨트비크, 노르웨이 전 국가대표인 울산 현대비욘존슨, 코스타리카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2회 연속 출전한 광주 FC마르코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아예 우즈베키스탄에선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적 러시가 일어나 성남 FC이스칸데로프, 부산 아이파크도스톤벡, FC 안양기요소프 등 최근 국가대표팀에 소집됐던 선수들 세 명이 K리그에 상륙했다. 또 레바논 현역 국가대표인 사드가 2020년 겨울 이적시장 마지막 날 안산 그리너스로 이적해왔고,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감비아 국가대표이자 EPL 출신인 바로우, 우즈벡 대표 주전 풀백인 올렉이 K리그에 입성했다. 현역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과거 독일 청소년 대표로 U-17 월드컵과 U-20 월드컵에 출전했던 수쿠타파수서울 이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먼저 한국에 상륙한 키프로스 현역 국가대표 발렌티노스, 몬테네그로 현역 국가대표 무고사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2021 시즌에는 FC 안양이 코스타리카 현역 국가대표 조나탄을, 울산 현대가 오스트리아 전 국가대표 힌터제어와 조지아 현역 국가대표 바코를 데려왔다. 또한 성남 FC도 국가대표 데뷔전은 치르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루마니아 국가대표로 소집되고 있는 부쉬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2023 시즌을 앞두고는 K리그 최초의 아제르바이잔 국가대표 선수인 안톤이 대전에 입단했다. 이런 기조는 꼭 자금력이 풍부한 중상위권 구단들에만 국한되지 않고, 2023 시즌 1부리그로 다시 승격한 광주가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 티모를 데려오는 등 리그 전반에 걸쳐서 지속되고 있다.

  •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이 오더라도 성공을 보장하기 힘든 리그가 K리그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들도 여럿 있다. 독일 국가대표로 뛰며 EURO 2000 본선에도 출전했던 힝키는 네임밸류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1년만에 전북 현대에서 방출되었고, 일본 국가대표 출신이며 프리메라리가를 경험하여 많은 관심을 모았던 아키히로는 12경기 1골의 초라한 기록만 남긴 채 반시즌만에 다시 마요르카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카메룬 국가대표로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던 미첼은 월드컵이 끝나고 소속팀 성남 일화에 복귀를 거부하였고, 복귀 후에는 구단 사무실에서 공금을 훔쳤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등 막장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도 벨기에 국가대표 경력으로 유명했던 오군지미수원 FC에서 반년만에 임대로 방출되면서, "외국인 선수는 로또와 같다"라는 항설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 개중에는 K리그에서만 실패하고, 다른 리그에서는 성공하여 국가대표로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벨코스키인천 유나이티드에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1년만에 팀을 옮겼는데, 이후 보스니아 리그에서 맹활약하며 현재 고국 북마케도니아 대표팀 멤버가 되었다. 또 인천에서 활약했던 알바니아 선수 소콜는 K리그 이후 크로아티아와 터키를 거치며 알바니아 대표팀 멤버로 성장했고, 무려 EURO 2016 최종 명단에 들기도 했다. 폭망한 사례는 아니지만, 전남에서 한 시즌에 10골을 넣었던 페체신도 재계약 불발 이후 터키를 거쳐 헝가리의 자국 리그로 돌아가 맹활약하여 33살의 나이에 다시 헝가리 국가대표로 복귀하였다. 실력 이상으로 적응력이 정말 중요한 성공 요소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사례들이다.


3. 국제 대회 출전 선수[편집]


K리그 외국인 제도가 활성화된 이후 각국의 국가대표급 선수들도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이 중에는 정말 드물게 월드컵 본선이나 대륙대회 본선에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선수들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청소년 대표로써 FIFA U-20 월드컵이나 FIFA U-17 월드컵, 올림픽 축구 등 연령별 세계대회를 경험했던 선수들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3.1. K리그 입성 이전 경력 선수[편집]



3.2. 현역 K리거 신분으로 출전한 선수[편집]




3.3. K리그 이후 경력 선수[편집]




4. 역대 선수[편집]



4.1. 국가별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시즌별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리그/시즌별 외국인 선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1. 아시아 쿼터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 쿼터제/K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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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지금은 폐간된 주간지 스포츠 2.0의 김길식 인터뷰[2] K리그 최초의 태국 선수이자 동남아시아 선수로서, 당시엔 아시아 쿼터 제도나 동남아시아 쿼터 제도가 있었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활약은 더욱 특기해 볼 만 하다.[3] 북한 출신을 내국인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 헌법 상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북한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4] 데닐손이 동료 골키퍼가 후반전 경기 중 부상당하자 임시로 골키퍼를 본 적이 있다.[5]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 등[6] 외국인 3명 + AFC 가맹국 국적 선수 1명 + AFF 가맹국 국적 선수 1명[7] 하지만 시시가 친구 다비드 실바와 K리그 이적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아니, 수원 삼성과 연고지만 같은 작은 팀이야라고 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시시가 확실히 수원 FC임을 인지하고 이적했음이 드러났다.[8] 두 선수 모두 득점왕과 도움왕 경쟁을 벌일 정도로 어마무시한 활약을 보여줬고, 라스는 득점 2위를 기록하며 베11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