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클레오파트라/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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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 재현 논란
5. 제작진의 발언
5.1. 아델 제임스
5.2. 티나 가라비
5.3. 제인 페어베인 루트
5.3.1. 넷플릭스다문화적인 고대 이집트를 다루길 원했다
5.3.2.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시대의 인종은 현재의 인종과 달랐다



1. 개요[편집]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한 문서.

2. 역사 왜곡[편집]


파일:클레오파트라_7세_동전.jpg
파일:클레오파트라 7세 이미지 1.jpg
클레오파트라 7세 생전 클레오파트라 7세를 묘사한 동전.
매우 뚜렷한 매부리코[1]를 가진 백인 여성의 모습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얼굴을 그린 1세기 초상화.[2]

There is no future without the past.

[
과거가 없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흑인 배우 아델 제임스가 한 말 출처[3]


As Greek, I am concerned that they omitted the fact that Julius Caesar was actually Chinese.

[
그리스인인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실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생략되어버린 게 신경쓰여.
]

다큐멘터리 예고편 베스트 댓글 출처[4]


2023년 4월 14일, 트레일러 영상이 나오면서 클레오파트라를 포함해 이집트인들과 그리스 마케도니아 출신 인물들 대부분이 흑인으로 캐스팅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클레오파트라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픽션이었다면 재현 오류 논란이 있을지라도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흑인 배우를 충분히 캐스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은 실제 역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데다 각종 마케팅 프레이즈로 흑인 여왕임을 강조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존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파라오이고 그에 대해서 시청자에게 설명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재현 오류를 넘어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것도 역사적 사실을 다뤄야 하는 장르의 특성에 기인한다.

다큐멘터리의 기획의도에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 여왕이라고 지칭한 점, 넷플릭스의 소개문구에서 아프리카를 특정한 점, 그리고 트레일러 영상에서 나오는 흑인 여성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부 흑인들이 "역사 교육에서 뭐라고 가르치든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었다"고 생각한 것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감독과 작가가 모두 북미 출신 흑인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북아메리카 흑인의 시각에서의 아프로센트리즘으로 보인다.[5]

특히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제작사 Westbrook Studios윌 스미스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가족기업인데[6], 방영 전 정보의 기획의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논란과 관련된 상당 부분은 책임 프로듀서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개인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7]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리스계 왕족이었으며 당시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부조와 복원도 등에선 절대 흑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게다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근친혼을 행했고[8] 클레오파트라 본인도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근친혼을 했다. 따라서 절대 흑인일 수가 없다. 또한 클레오파트라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는 카이사리온을, 안토니우스와도 아들과 딸을 낳았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이 흑인이거나 흑백혼혈이라는 기록 또한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클레오파트라 외의 이집트인 등장인물들이 죄다 흑인 배우들로 캐스팅되었는데, 고대 및 현대 이집트인의 주류 인종은 흑인이 아니다. 북아프리카는 흑인이 주류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는 사하라 사막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9] 이들의 외모는 꾸미는 스타일만 다를 뿐 남유럽인에 더 가깝다. 이를 무시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가진 미국 영화에서 이집트인을 흑인이나 흑인에 가깝게 묘사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10]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집트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집트 언론 Egyptian Streets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미국 고고학자이자 이집트학자인 벳시 브라이언(Betsy Bryan)이 뉴스위크에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가 이집트 멤피스사제 가문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한 것이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인종 논란이 생긴 원인이라고 했다.[11] 또한 만약 클레오파트라 7세의 어머니가 멤피스의 사제 가문 출신인 것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50%는 이집트인일 수 있으며[12], 그렇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어를 구사한 최초의 프톨레마이오스 통치자였고 그녀의 어머니와 가까운 관계였을 것이라며 논란의 배경을 추가로 설명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외모에 대한 논쟁은 통치자로서의 그녀의 유산을 무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종이 순전히 신체적 속성에 의해 형성되며 피상적일 뿐이라는 오류를 조장하고 현재 클레오파트라의 동전과 흉상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주장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상술한 것처럼 그리스계 혈통일뿐더러 본작을 제외하면 최소한 실사물에서는 백인 배우들이 맡았고 그나마 애니메이션에서는 간혹 어두운 피부색으로 묘사되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완벽한 흑인 외모보다는 그냥 고대 이집트 벽화에 나온 고대 이집트인의 피부색(누비아인마냥 검게 묘사되지는 않았음)을 따른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 7세는 대중적으로 흑인 이미지가 강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나마 있는 유색인종 이미지도 흑인 이미지보다는 중동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결국 흑인들의 권리신장이라는 명분으로 역사를 왜곡했다가 오히려 더한 반발을 부른 셈이다. 타국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디즈니인어공주 실사화, 채널 5에서 제작한 앤 불린 미니 시리즈보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인어공주는 말 그대로 현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순수 창작물에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설정이 많이 달라진 일종의 재창작물이고 어차피 허구가 섞인 창작물이기 때문에 캐스팅 쪽으로는 훨씬 자유로우며, 스토리를 상당히 각색해서 논란을 무마할 수라도 있다. 그 논란 많은 인어공주도 본 다큐멘터리보다 여론이 훨씬 나을 정도였다.

앤 불린 미니시리즈 역시 창작물이고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실제 역사와 명백한 백인이었던 실존 인물을 다뤘기에 역사 왜곡으로서는 퀸 클레오파트라와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그렇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왜곡 없이 역사적 사실만을 전해야 하는 다큐멘터리이기에 허구적 이야기인 인어공주와 앤 불린 사극과는 결이 다르다.[13]

여기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이번에도 미국 얼치기 영상 제작자가 자기네들 역사를 가지고 장난친다고 성토하는 반응이다.[14]

그리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흑인'이라는 언더도그마로 이 문제를 희석하여 "권리신장을 위해 피부색 좀 바꾸면 어떠냐"라고 하는 태도는 약자의 권리신장과는 거리가 멀고 흑인이 약자냐 아니냐와도 별개의 문제다. 이 다큐는 어디까지나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 권리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나 약자일 뿐 국제 사회에서는 이집트인이나 그리스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제력과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강자들이다. 이런 강자들이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을 매개로 '약자'인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에게 문화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게 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15]

더욱이 흑인과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누비아아마니토레아마니레나스 같은 흑인 여왕들을 다룰 수도 있었다.[16]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보다 덜 알려진 이들을 재조명하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를 흑인화한다는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각색을 넘어 동북공정마냥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역사 왜곡이 과거 제국주의 시기 유럽에서 자행한 역사 왜곡과 그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2.1. 반응[편집]



2.1.1. 미국[편집]



2.1.1.1. 넷플릭스 제작진[편집]

  • 2023년 4월 12일 넷플릭스 소속 흑인 권리 신장 단체 Strong Black Lead는 트위터에서 본 작품을 "아프리카 여왕들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 하나이며, 클레오파트라 7세는 "가장 유명하며 가장 많이 오해를 받는 여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흑인의 권리 신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역사 왜곡이라서 반응은 좋지 않다.#

  • 2023년 4월 13일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맡은 흑인 여배우 아델 제임스의 트위터 계정에서 이집트중동 국가 출신 유저들이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인종 논란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비판을 하자 자신의 배역 관련 비판 글을 차단하거나 무시로 일관했으며 "5월 10일 퀸 클레오파트라가 너무 기대됩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이집트 등 관련된 국가 출신 유저들과 전혀 소통을 하지 않았다.# 이후 5월 10일 흑인 유튜버 웨인 에어즈와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에서 논란이 생겼다. 자세한 내용은 제작진의 발언 참고. #

  • 2023년 4월 21일에는 아델 제임스를 캐스팅한 이란계 미국인 감독 티나 가라비가 미국 주간 잡지 버라이어티의 기사에서 아델 제임스를 옹호하면서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인종 논란에 대해 기고문에서 발언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작진의 발언 참고. # #

  • 2023년 5월 10일 다큐멘터리 책임 프로듀서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함께 퀸 클레오파트라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제인 페어베인 루트는 온라인 잡지 데드라인 기사에서 다큐멘터리와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배우 아델 제임스를 옹호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작진의 발언 참고. #

2.1.1.2. 옹호[편집]

  • 미국의 정치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의 흑인 코미디언이자 여배우 둘세 슬론(Dulcé Sloan)은 미이라(1999)를 들먹이면서 다큐멘터리를 지지했고 비판하는 이집트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영화 미이라는 픽션이고 퀸 클레오파트라는 재현이 중요한 다큐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다.
"Oh, OK. Egypt is concerned about ‘historical accuracy.’ I didn’t hear you complain when all them ‘Mummy’ movies came out,

What are you talking about? We got mummies coming back from the dead, chasing Brendan Fraser, and y’all don’t have a problem, And then a Black woman plays Cleopatra, and all of a sudden it’s like ‘Uh, uh, uh, uh, uh, that didn’t happen, that didn’t happen! No. ‘The Mummy,’ that was real. This, uh-uh.'

So, OK, you can have Cleopatra. But then we get Jesus, I mean, it’s only fair. We all know Jesus was Black because he was found guilty in court. And he did nothing wrong!"

"아 맞다. 이집트가 '재현 오류'를 걱정하는데, '미이라' 영화가 다 나왔을 때 불평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요? 우리는 죽음에서 돌아와 브랜든 프레이저를 쫓는 미이라를 상영했는데 (이집트인들) 모두 불만이 없었잖아요. 그런 다음 흑인 여성이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하니까 갑자기 '어, 어, 어, 어, 어, 그런 일이 없었어, 그런 일이 없었어! 아니. '미이라'는 진짜였지만 이건, 어-어.' 그러는 거에요?

자, (이집트인들은) 클레오파트라를 가질 수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얻습니다. 제 말은 공정해요. 우리 모두는 예수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흑인이었다는 것을 알잖아요. 그리고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미국의 흑인 코미디언, 여배우 둘세 슬론의 말 # #


2.1.1.3. 비판[편집]


  • 미국의 배우 브렛 쿠퍼가 다큐멘터리의 예고편을 시청하고 "넷플릭스가 역사를 다시 쓰려하며, 대중의 분노로 돈을 벌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1.2. 영국[편집]


  •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에서 인도계 영국인 작가 Kenan Malik은 "클레오파트라 생전 그녀는 피부색으로 분류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이번 논란을 평가했다. #


2.1.3. 이집트[편집]



2.1.3.1. 정부[편집]

  • 이집트 신문 "이집트 인디펜던트"는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을 지낸 자히 하와스(زاهي حواس / Zahi Hawass)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대해 "완전히 허구다"라고 말했다고 지난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하와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주장은 완전히 허구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흑인 여성이 아니라 금발 여성이었을 것입니다. 최근 미국 흑인과 남미 흑인들이 이집트 문명이 흑인들에게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런 주장들은 완전히 거짓입니다. 흑인의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쿠시 왕국 시대, 즉 고대 이집트 문명 말기인 제25왕조를 제외하면 흑인의 문명은 이집트를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신전들에 있는 이집트 왕들의 그림이 왕들이 적들을 무찌르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이 적들은 아프리카인, 누비아인, 리비아인, 혹은 아시아인이었으며, 그 적들은 이집트의 왕들과 국적에서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흑인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기 위해 혼란을 조장하려고 합니다. #

  • 이집트 관광 유물부는 페이스북에서 이집트 고고학 최고위원회 사무총장 무스타파 와지리(مصطفى وزيري / Mustafa Waziri)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대해 "역사 왜곡"이라고 말하면서 클레오파트라는 마케도니아 그리스계였다고 설명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피부색이 희고 그리스인의 특징을 [가졌다]고 확인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작품과 조각상은 그녀의 진정한 모습과 마케도니아 혈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특히 영화가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분류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작품에 (흑인 배우)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이집트 역사에 대한 왜곡이자 노골적인 역사적 오해입니다…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기 전에 목격된 거부의 상태는 고대 이집트 역사의 중요하고 진정한 부분인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의 역사를 옹호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물론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아프리카 대륙의 문명과 형제들에 대한 존중을 감안하면, 인종적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멉니다. # #

  • 2023년 5월 10일 이집트의 공영 방송사 United Media Services는 다큐멘터리 채널 Al Wathaeqya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했다. # 방송국은 이번 퀸 클레오파트라의 논란을 생각한 건지 인터뷰에서 "최고 수준"의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실제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2.1.3.2. 일반인[편집]

  • 이집트의 역사가 잘못 전해진다고 생각한 이집트인 Maha Shehata와 Aikk Yasser는 청원 플랫폼 Change.org에서 다음과 설명하는 청원을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청원 게시물이 삭제되었다. 이후 다른 사람이 동일한 내용의 청원 게시물을 다시 올렸으나 이것 또한 삭제되었다.
아프리카중심주의이집트의 역사를 실제 이집트인에게서 강탈하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의제를 밀어붙이는 유사과학입니다. 허위 기사와 아무 것도 없는 증거를 이용해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 혈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흑인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흑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이집트인그리스인의 역사와 진실성을 보존하기 위해 주의를 촉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아프리카중심주의 운동을 보완하고, 운동이 추진하는 것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번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집트는 흑인도 백인도 아니었습니다. 이집트는 그저 이집트일 뿐입니다. 위대한 아프리카/흑인 문명이 많이 있지만 이집트는 그중 하나가 아닙니다. 역사 왜곡을 멈추기 위한 청원에 서명해주세요! #

  • 이집트의 변호사 Mahmoud al-Semary가 이집트에서 넷플릭스 플랫폼을 금지하는 내용을 고소장을 검사에게 제출했다. al-Semary는 다음과 같이 고소장에서 말하면서 퀸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역사를 부정한다고 언급했다.
넷플릭스 플랫폼이 방영하는 대부분의 매체는 이슬람과 사회의 가치관과 원칙, 특히 이집트인의 가치관와 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이집트의 국가와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그런 작품을 만드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

  • 이집트의 코미디언 바셈 유세프(Bassem Youssef)가 흑인화를 지지하는 미국 흑인 작가 어니스트 오언스(Ernest Owens)와 퀸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논쟁을 했는데 Youssef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Well, first of all, this was before Hollywood was informed. This is where 1961 when Cleopatra by Elizabeth Taylor. We are not crazy about Elizabeth Taylor playing Cleopatra either. That was also inaccurate. I don't know where do you get the idea that we are happy that she played the role. As a matter of fact, 1961 Cleopatra movie was banned in Egypt and many Arab countries because of Elizabeth Taylor's stands towards the state of Israel because she supported them. So I don't know where he got this information. Second of all, this is same Hollywood that in 1956 they cast John Wayne as Genghis Khan. So this was time when Hollywood didn't know any better. Now the problem for me is not about color. It's not about white or black. This is a very reductive way to talk about things. This is the way that Americans talk about it. I'm very sorry. I come from Egypt.

Egypt has a very diverse color palette. People can look like me or they can have deeper skin tone like Anwar Sadat who comes from a Nubian origin. It's not about black or white. It's about the continuous cultural appropriation and falsification of history that has been done by what the so-called Afrocentrist movement. The Afrocentric movement started the last century as a way in a good intention to teach African American about their rich history of West Africa: the great empire of Benin of Ghana, or Sungali the great empire of Mali, but the thing is, that's why you find people like Kevin Hart who subscribes to these theories who claim that his ancestors played build the pyramids. I'm sorry. Your ancestors had their own wonderful civilization in West Africa. They are culturally appropriating my culture calling the people of Egypt of today despite their skin tone, that they call us as invaders, as intruders, and they are being erased from our own history. This is something that Hollywood has done over the years.

Yea, first of all, this is not a work of fiction. This is a documentary. This is a documentary. This is a huge difference. This is not the Little Mermaid which is a like a fictional character where you can, anybody can play anything. Cleopatra which came from a Macedonian origin, and the thing is it's not about the skin color. As I don't, we don't care if they are black or white. It's about how Hollywood is so culturally sensitive, they are so sensitive about all kind of minorities but when it comes to my people, we seem to be erased. A couple of years ago, they announced a Gal Gadot, an ex-Israeli soldier who condones her government actions, atrocities against Palestinian children, she was going to play Cleopatra. For me, this is even a bigger insult. And Gal Gadot is not a black. It's not about black or white. It's about this idea of Hollywood stealing the culture of my own people. I don't care if Charlton Heston tells you in the Ten Commandments or Steven Spielberg tells you in the Prince of Egypt, but I am sorry, Jewish slaves did not build the Great Pyramid. This has been debunked many times by historians. We are the only people not allowed to talk about our own history. Hollywood is doing for us.

It's a documentary. Hollywood has been erasing my people from a tale. We are not allowed to tell our own history. And I am sorry I have to disagree with this gentleman. It's not just Cleopatra. Everybody in that movie, her court, everybody who's supposed to be Egyptian. They looked like they came from West Africa, the south of Sub-Sahara. We as Egyptians are being called intruders and invaders in our own culture. This has been going on systematically. I don't want to wake up one day and find the Museum of African-American Culture and History claiming the stolen Egyptian artifacts in British Museum to be theirs. And now I am hearing that Zendaya, the very popular actor, who I would liker her to play any, but Zendaya is ethnically half-Nigerian and half-German. And now she's gonna play. Where are the Egyptian actors. Where are the Arab actors who are supposed to. And the thing is that even historically wise, you see in the trailer, 'I don't care what they tell you in school, Cleopatra was Black.' Who's that woman? Why is African American people are telling my own history? She is. There is all this pseudoscience and pseudohistory has been going on, and it has implications, no I am sorry. African people from West Africa could not build the pyramids. Cleopatra did not look like that. And also Jewish people did not build the pyramids. This time for Hollywood to listen to people who own that history.

One last thing, Egypt had 30 dynasties over 2,700 years. We had kings and queens from the kingdom of Kush. They are from Nubia, from Libya. This area had all bled into each other and expanded and shrunk into each other. I understand exactly what I mean when I say nationality or heritage or ethnicity."

글쎄요, 우선 이것은 할리우드에 알려지기 전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배역을 맡은 1961년 클레오파트라가 있던 시대였죠. 우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하는 것에 열광하지 않을 뿐더러 그건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닙니다. 그녀가 그 역할을 맡아서 우리가 좋아한다는 생각을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겠군요. 당시 1961년 클레오파트라 영화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이스라엘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집트와 많은 아랍 국가에서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정보를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둘째로 할리우드는 1956년에 존 웨인칭기즈 칸으로 캐스팅한 이래로 전혀 바뀐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할리우드가 이런 것을 더 잘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피부색이 문제가 아닙니다. 흰색이냐 검은색이냐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이건 무언가에 대해 매우 단편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말하기 방식입니다. 이게 바로 미국인들이 말하는 방식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이집트 출신입니다.

이집트에는 매우 다양한 피부색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처럼 보일 수도 있고 누비아 출신인[17] 안와르 사다트처럼 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흑백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소위 아프리카중심주의 운동에 의한 역사의 지속적인 문화적 전유역사 왜곡에 관한 것입니다. 아프리카중심주의 운동은 지난 세기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서아프리카의 역사, 즉 가나의 베냉 대제국이나 말리의 대제국 숭갈리에 대해 가르치려는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조상이 피라미드 건설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러한 이론을 동의하는 케빈 하트와 같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의 조상들은 서아프리카에서 자기만의 멋진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오늘날의 이집트 사람들을 침략자나 침입자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이집트 사람들, 저의 문화를 문화적으로 전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할리우드가 수년에 걸쳐 한 일입니다.

네, 우선 이것은 허구의 작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이게 다큐멘터리란 것이 엄청난 차이점이라고요. 이것은 어느 배역이든 할 수 있고, 누구나 어느 배역이든 할 수 있는 가상의 캐릭터인 인어공주같은 게 아닙니다. 마케도니아 출신인 클레오파트라의 피부색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신경쓰지 않은 것처럼, 우리 이집트인은 자기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할리우드는 문화적으로 민감하고 모든 종류의 소수자에 대해 매우 민감하지만 제 사람들에 관해서는요, 마치 우리가 지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몇 년 전, 할리우드는 이스라엘 정부 조치와 팔레스타인 어린이에 대한 잔학 행위를 묵인하는 전 이스라엘 군인 갤 가돗이 클레오파트라 7세를 연기 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저에게 이것은 더 큰 모욕입니다. 갤 가돗이 흑인이 아닌데도요. 흑백의 문제가 아니에요. 할리우드가 제 민족의 문화를 훔친다는 생각에 관한 것입니다. 찰턴 헤스턴십계에 대해 말하든 스티븐 스필버그이집트 왕자에 대해 말하든 신경쓰지 않지만 유감스럽게도 유대인 노예는 대피라미드를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여러 번 반박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할리우드가 우리를 위해 잘도 해주고 있군요.

이건 다큐멘터리입니다. 할리우드는 이야기에서 제 사람들을 계속 지워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말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리고 당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죄송하네요. 클레오파트라만이 아닙니다. 그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 그녀의 궁정, 이집트인으로 추정되는 모든 사람들요. 그들은 사하라 이남의 남쪽인 서아프리카에서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집트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서 침입자 및 침략자로 불리고 있으며 이건 누군가 체계적으로 벌인 일입니다. 저는 언젠가 일어나서 대영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이집트 유물이 그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 및 역사 박물관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매우 인기있는 배우 젠데이아가 어느 작품이든 연기를 했으면 좋겠지만 젠데이아는 인종적으로 절반은 나이지리아계이고 절반은 독일계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이집트계를 연기하겠죠. 이집트 배우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도대체 연기를 해야하는 아랍 배우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봐도 예고편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한테 뭐라고 말하든 신경쓰지 않을거야.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야.'라고 어느 여성분이 말했는데, 저 여성분은 또 누구입니까? 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저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거죠? 저 여성분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에 유사과학과 유사역사가 포함되었다는 뜻이죠. 죄송합니다. 서아프리카에서 온 아프리카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전혀 아프리카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할리우드가 그 역사를 소유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집트는 2,700년 동안 30개의 왕조를 거쳤습니다. 우리에게는 쿠시 왕국의 왕과 여왕이 있었습니다.[18] 그들은 리비아 출신과 누비아 출신이었습니다. 이 영역은 그들이 모두 서로 피를 흘리며 서로 확장되고 축소되었습니다. 저는 국적, 유산 또는 민족을 말할 때 제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합니다."

이집트의 코미디언 바셈 유세프의 말 #


2.1.4. 그리스[편집]





2.1.5. 북마케도니아[편집]


  • 북마케도니아 또한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헬레니즘 제국을 자신들의 전신으로 여기다 보니[19][20] 퀸 클레오파트라의 무리한 흑인화에 대해 분노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자국의 국제적인 인지도가 이집트 및 그리스보다 떨어지는 탓에 자국민들의 그런 분노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2.1.6. 대한민국[편집]


  • 한국 커뮤니티 대부분은 성별과 성향을 가리지 않고 비판적인 편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 때문에 역사 문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으로 추정된다.

  • "애굽민수"로 유명한 이집트학 전공자 곽민수 소장이 해당 논란에 대한 칼럼을 올렸다.[27]
    • <클레오파트라는 과연 흑인인가?> 예고편[21]
    • 클레오파트라는 과연 흑인인가? (1) : 해당 칼럼에서 올라온 곽민수 소장의 결론은 "클레오파트라 7세가 일반적인 의미의 흑인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그가 흑인 혹은 흑인 혼혈이었을 가능성도 아주-아주-아주 조금은 있다"이다. 여기서는 그녀가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너무 많이 나간 주장이라고 보면서도 그녀가 그리스-마케도니아계라고 단정짓는 것 역시 "재현의 차원에서는 정확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으며 "역시나 반증 가능성이 큰 주장"이라고 보고 있다. 자세한 근거는 링크 참고.
    • 클레오파트라는 과연 흑인인가? (2) : "현재로서는 클레오파트라가 보통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구성원들과 현저하게 다른 외형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으며, "그런 만큼 클레오파트라를 일반적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구성원, 즉 그리스 계통의 인물이라 설정하는 것이 더 정설에 기반한 해석"이지만, "흑인설을 부정하기 위해서 클레오파트라의 조각상의 모습을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요지의 글을 적었다. 이런 조각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기보다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메시지이거나 혹은 단순히 이상적인 이미지에 부합하도록 변형하여 묘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22]
    • 클레오파트라는 과연 흑인인가? (3) :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의 고고학적 근거를 말하는 파트. 일단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에도 사실적 기반이 완전히 없는 것은 또 아니지만, 그 사실적 기반이라고 하는 것 대부분이 그다지 탄탄하지는 않은 근거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추론이라고 한다.
    •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학자라면 너무나도 명백한 물증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무엇이든 확정적으로 단정짓는 입장을 보이진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곽민수 소장의 표현은 사실상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 아니다."라고 말한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러한 학자로서의 입장 및 표현에 대해 친숙하지 않은 대중들이 곽민수 소장의 의도를 왜곡하자 결국 다시금 명백하게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 2023년 7월 3일 침착맨의 방송에 출연해 다시 한번 다큐멘터리에 대한 분석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매우 강하게 비판한 유명 이집트 학자 자히 하와스에 대한 설명[24],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대한 설명, 이집트가 누비아인, 페르시아인등 이집트인들이 아닌자들에게 지배받은 시대에 대해 설명했다.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단 한가지를 빼고는 별로 좋지 않게 봤다고 평했고[25][26],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정리했다.
      1.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일 가능성은 거의없다. 일상적인 언어로는 없다라고 말해도 괜찮다. 다만 먹물(학자)들은 항상 빠져나갈 구멍(즉 최소한의 여지와 가능성)을 만들어 놔야 한다.[23]
      2. 넷플릭스의 묘사는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이 작품은 아마도 아프로센트리즘에 경도된 상태로 만들어졌거나, 정치적 올바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을것이다.
      3. 그러나 클레오파트라가 흑인 혼혈일 가능성은 완전히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클레오파트라의 모계 쪽 조상들 가운데 한 명 정도는, 혹은 몇 명 정도는 아프리카 출신일 수도 있다.
      4.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고 확정적 물증은 아직까지 확보되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시신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2.1.7. 그 외 반응[편집]


이집트, 그리스, 북마케도니아 외에도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피어스 모건이 올린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집트 출신 코미디언 바셈 유세프의 의견에 동의했다.# 캐나다, 이란, 서아프리카, 뉴질랜드 마오리, 우크라이나, 인도,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이 유세프에 대한 지지 댓글을 올렸으며, 미국 중심의 역사수정주의와 할리우드의 편협한 사고방식에 거센 비판을 가했다.


3. 재현 논란[편집]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흑인화로 인한 역사 왜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해 클레오파트라로마아프리카 사이에 균형을 맞춘 천재 정치인이라느니, 뛰어난 학식을 지닌 과학자라느니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치켜세우는 데에만 집중하며 철저한 재현 하에 실존인물과 사건을 분석하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목적마저 잊어버렸다. 당시 로마 공화국이집트 왕국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주장이 허위이자 과장임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명색이 다큐멘터리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형편없는 정보 전달력, 누가 봐도 제작자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스스로를 이입시킨 게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캐딸스러운 클레오파트라의 묘사, 일반적인 프로파간다성 역사 왜곡을 넘어서 클레오파트라가 투기장에서 검을 들고 결투하는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올 정도의 연출과[28] 클레오파트라가 했던 모든 행동을 미화하는 등 다큐멘터리로서 매우 형편없는 수준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나온 재현 오류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크고 중요한 부분만 따지자면 아래에 열거한다.

  • 복장[29], 이집트인 여성들의 머리 모양[30], 건물, 전투신[31]부터가 재현을 하려고 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판타지 레벨 수준이다.

  • 고대 이집트인들이 전부 흑인으로 등장한다. 논란의 클레오파트라 역시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흑인으로 묘사하지만, 문제는 모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인물들을 흑인으로 묘사한 점이다. 누누히 말했다시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마케도니아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32]를 시조로 하여 대대로 근친혼을 하며 혈통을 유지해 온 그리스계 왕조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므로 고위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을 백인으로 묘사하고 일반 백성들 및 잡병들 중 일부만 흑인으로 묘사하는 게 옳다.[33]

  • 다큐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외모가 확실치 않으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상해도 된다. 난(흑인 자문) 클레오파트라가 나와 같은 피부색과 머리 스타일을 가졌을 거라고 상상한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수많은 역사 기록을 가지고 있는 실존 인물이며 이건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다큐멘터리다. 또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역사에서 지워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 로마 공화국이 당대의 떠오르는 강국이라고 말하지만 기원전 47년[34]에 로마는 떠오르는 강국 정도가 아니라 이미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꺾은 지중해의 최대 강국이였다.[35] 10여 년 전인 기원전 58년에는 갈리아 지방을 점령했을 정도로 막강했다. 자칭 역사전문 자문가들과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제작진들이 당시의 기본적인 세계사 지식도 모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 클레오파트라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관계를 맺었을 때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애시당초 이집트는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데다가 클레오파트라도 이미 남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 의해 축출된 상황에서 카이사르의 도움을 받기 위해 새벽에 목숨을 걸고 카이사르의 침소에 몰래 들어와서 동맹을 요청한 것이었고, 이후로도 로마 군사력의 도움을 통해 역으로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쫒아냈다. 이후로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이용해서 이집트의 지위를 강화하려 했고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이용해서 이집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했을 뿐 공식적으로는 절대로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36][37] 이 둘의 관계에서 갑은 모든 면에서 이집트보다 국력이 강했던 로마의 지배자 카이사르였다.[38][39]

  • 알렉산드리아 전쟁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클레오파트라가 홀로 이겼다고 주장하며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이 전쟁은 클레오파트라의 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이복누나이자 아내인 클레오파트라를 축출하기 위해 군사를 모아서 일으킨 전쟁이며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폐위되었을 것이다.[40][41] 이외에도 세부사항은 전부 건너뛰며 사실을 곡해해서 편향된 사실만 보도하는 게 자주 나온다.

  •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인들이 율리우스력을 만들고 그걸 본 카이사르가 달력을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율리우스력은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리아의 소시게네스가 만들고 편입한 거다.

  •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관계도 안토니우스가 일방적으로 클레오파트라에게 끌려다니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집트의 재정을 원한 안토니우스와 로마의 군사를 원한 클레오파트라가 서로 윈윈하는 조건으로 시작된 관계다.[42] 또한 클레오파트라를 더욱 돋보이기 위해 카이사르 밑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2인자로 군림할 만큼 유능한 장군이었던 안토니우스를 그저 감정적이며 징징거리기만 하는 찌질이로 묘사한다. 예시로 안토니우스의 파르티아 원정을 완전한 실패로만 묘사한다. 실제로 패배한 건 사실이지만 안토니우스는 뛰어난 지휘력으로 치명적인 병력 손실은 보지 않고 퇴각하는데 성공했으며 그 뒤에는 아르메니아를 공격해 승리한다.[43][44]

  • 클레오파트라의 몰락이 그녀 자신의 실책이 아닌 온전히 주위 사람들의 무능함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예시로 실제 역사에서 클레오파트라가 한창 옥타비아누스 측과 치열하게 대치 중인[45] 악티움 해전에서 자기 멋대로 도주한 건 명백한 안토니우스에 대한 배신이며 전술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선택이지만 여기서는 클레오파트라가 가족과 백성을 먼저 생각해 남은 병력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묘사한다. 황당하게도 작중 자문을 맡은 인원 중 하나는 클레오파트라의 도주가 최상의 선택이었으며 안토니우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클레오파트라의 도주이며[46] 이 패배는 클레오파트라의 몰락과 죽음에 쐐기를 박았다. 대부분의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클레오파트라가 전투의 긴장감과 격렬함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함선에 후퇴를 명령했다는 건 2세기부터 나온 분석이며 현재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연하지만 안토니우스나 주위 인물들이 바보라는 점이 클레오파트라의 평가를 좋게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이딴 인간들을 동맹이나 수하로 둔 클레오파트라의 안목에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그런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 제작진의 역량이 얼마나 처참한지 드러난다.

  •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진 이유가 무능한 로마 장군들이 여성의 명령을 듣기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안토니우스측의 로마 장군들이 클레오파트라보다 안토니우스의 명령을 더 우선시한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47] 이건 직접 전쟁을 지휘한 게 악티움 해전이 처음일 정도로 군사적 업적이 전무한 클레오파트라보다 오랫동안 카이사르 휘하에서 로마군인 자신들을 이끌어 오며 많은 승리를 일궈낸 유능한 장군이었던 안토니우스를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토니우스군의 병사들은 원래 로마인이었는데 당시 옥타비아누스와 원로원에 의해 로마의 적으로 선포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여겨질 만한 짓을 저지른[48][49] 안토니우스의 군에 소속된 것만으로 반역자라는 자신들의 처지에 큰 불안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나마 안토니우스라면 모를까 로마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집트의 여왕이자 외국인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충성을 바칠 이유 따윈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클레오파트라의 명령에 반감을 가지며 오히려 그녀 때문에 로마군의 사기가 꺾일 것을 걱정했다.

  • 클레오파트라가 여자이기 때문에 로마는 그녀를 두려워했다고 하지만 당연히 로마는 이집트도, 클레오파트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50][51][52]

  • 클레오파트라가 다른 사람도 아닌 로마인들과 함께 참석한 연회에서 대놓고 "이집트가 없으면 로마도 없다."라고 말하는 등[53] 이집트가 클레오파트라의 통치 하에 강력한 독립국인 것마냥 묘사하지만 서술했듯이 로마는 당대 최강대국 중 하나이고 이집트 왕조는 그런 로마의 종속국이었다.[54][55]

  • 유능한 내정을 펼치며 로마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간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를 마구 소리나 질러 대는 음흉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고[56] 로마를 사악한 정복자로 매도하며 이집트를 위해 한 게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57] 로마가 이집트에 빨대를 꽂고 착취하며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나오지만 로마에게 정복된 기간에 이집트는 지중해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 중 하나였으며[58] 수많은 수출과 무역을 통해 로마의 점령지 중 가장 많은 부를 생산해냈다.[59][60]

  • 안토니우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일부를 클레오파트라에게 기증했을 때 옥타비아누스가 뒤통수를 맞아 분노했다고 묘사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이미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알렉산드리아를 할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로마의 원로원들이 알렉산드리아 지역은 로마의 소유이니 클레오파트라에게 기증한 건 무효라고 주장했다. 옥타비아누스 입장에선 이 일을 이용해 안토니우스를 깎아내리고 정치적 입지도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좋아할 일이였다.[61]

  • 악티움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에게 그녀와 자식들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안토니우스를 죽이라는 제안을 하는데, 실제로 옥타비아누스가 그런 제안을 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62][63] 안토니우스는 자살하여 클레오파트라의 품에서 죽었다.

  • 악티움 해전의 패배 이후에도 클레오파트라가 아직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며, 그녀의 자살이 무슨 로마 전체를 경악시킨 대단한 사건이나 계획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정반대였는데 악티움 해전 이후의 클레오파트라는 주도권은 커녕, 옥타비아누스에게 완전히 패배하여 체면마저 내팽개치고 비굴하게 자비와 선처를 애원하던 상황이었다. 휘하의 군대는 순식간에 와해되어 군사들의 탈영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마지막 희망으로 옥타비아누스에게 이집트의 왕위에서 물러날 테니 자신과 자녀들의 목숨만을 살려달라는 회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64] 끝내 안토니우스마저 자살하면서 모든 걸 잃고 자포자기해서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65] 옥타비아누스는 철저한 감시를 붙였는데도 기어코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자 본래의 계획이 틀어져 실망하긴 했어도 경악은커녕 아무렇지 않게 안토니우스의 유언대로 두 사람을 함께 묻어주고 뒷정리를 마친 다음 로마에 돌아가 당당하게 개선식을 행하였고[66][67] 마침내 임페라토르의 자리에 오른다.

이쯤 되면 흑인화 논란 이전에 다큐멘터리 본연의 완성도도 최악이며 그냥 총체적 난국이다. 아예 유능하고 완벽한 여성 유색인종 주인공, 무능한 백인 남주, 사악하고 인종차별적인 백인 악당 등 PC를 남발하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묘사와 설정이 다 들어가 있다.


4. 이집트 역사와 관련 없는 전문가들의 참여[편집]


퀸 클레오파트라의 또 다른 논란 점은 작중 자문을 하는 총 6명의 "전문가"들이 전부 이집트 역사와 연관 없는 사람들이나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기존에 제작되었던 넷플릭스의 역사 다큐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던 문제인데 로마사를 다룬 로마 제국(넷플릭스)의 경우 당대 사가들이 악의적으로 과장 및 왜곡시켜 묘사한 루머와 망상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전부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고 자문가들 중 역사학자가 아닌 소설가들을 기용하는 등 엉망진창의 모습을 보여온 전적이 있다.[68]

I remember my grandmother saying to me, "I don't care what they tell you in school, Cleopatra was Black."

[
저희 할머니께서 저한테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한테 뭐라고 말하든 신경쓰지 않아.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어."[69][70]
]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출연한 셸리 헤일리가 한 말 교과서 믿지마 우리 할머니를 믿어 출처[71]

  • 셸리 헤일리(Shelley Haley). 예고편에서 등장하는 위 발언으로 큰 비판을 받은 사람이다. 흑인 연구 전공 교수이자, 비판적 인종이론을 연구하는 자칭 흑인 페미니스트이다.

  • 데보라 허드(Deborah Heard): 누비아 고고학이집트 역사학 전공. 문제는 이 사람은 박사 학위 후보라는 것이다. 즉, 아직 박사 학위도 없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데려온 것이다. 결정적으로 아프리카중심주의를 신봉하며 과거에 일반적인 과학적 추론 방식을 18세기 백인이 만들었다며 무시하는 발언과 아프리카 역사화이트워싱당했다고 주장하는 발언을 했다.[72] 문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과거 유럽에서 흑인 비하로 역사 왜곡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서 이집트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 샐리 앤 애슈턴(Sally-Ann Ashton): 흑인 연구 전공 교수다. 그 외엔 심리학그리스 조각상을 연구했다. 고대 아프리카 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출판한 적 있는데, 그 빗의 형태가 아프로 콤과 유사하다며 고대 이집트인들이 아프로를 가진 흑인이라 주장하는 내용이다.[73]

  • 콜린 다르넬(Colleen Darnell, 1980): 이집트 역사 전공이긴 하지만 학생 시절부터 10년 이상 담당 교수와 불륜[74]을 저질렀고 그 담당 교수는 다르넬이 석학회원이 될 수 있게 힘을 썼다는 걸 인정했다. 사적인 문제 이외에 'Vintage Egyptologist'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는데, 사진에 이집트 노동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다른 이집트학자들은 식민주의 미학이라고 비판했다.

  • 재클린 윌리엄슨(Jacquelyn Williamson): 이집트 역사 전공이지만 주 연구 분야는 성별과 종교다.

  • 이슬람 아이사(Islam Issa): 등장한 전문가 중 유일한 이집트계에 유일한 남성[75]이며 버밍엄 대학교 역사와 문학 교수지만, 국적은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영국인[76]이며 전공은 셰익스피어르네상스다. 셸리 헤일리와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를 세계적인 배움의 중심지로 만들고 이집트를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로 만든 위대한 정치가"라고 배웠다고 하며, 이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부터 클레오파트라를 치켜세우는 연구를 발표하고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적이 있다.

보다시피 자문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집트 역사학에 대해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거나 본인의 편향된 정치관을 학문에 적용하는 인간군상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데려왔으니 다큐멘터리의 정확도는 매우 떨어지게 되었다.[77]

5. 제작진의 발언[편집]


<퀸 클레오파트라> 제작진의 발언을 정리했다.


5.1. 아델 제임스[편집]



5.1.1. 캐스팅이 싫은가? 그러면 다큐멘터리를 보지 마라.[편집]


“Just FYI, this kind of behavior won’t be tolerated on my account. You will be blocked without hesitation!!! If you don’t like the casting don’t watch the show. Or do & engage in (expert) opinion different to yours. Either way, I’M GASSED and will continue to be! 🕺🏽🕺🏽🕺🏽"

"참고로 말하면, 이런 행동은 제 계정에서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주저없이 차단될 것입니다!!! 캐스팅을 싫어한다면 다큐멘터리를 보지마세요. 아니면 당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전문가와 대화하세요. 어느 쪽이든, 저는 아주 자랑스럽다고 말할 것이며, 계속 그럴 것입니다! 🕺🏽🕺🏽🕺🏽"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배우 아델 제임스의 말 # #

2023년 4월 13일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맡은 흑인 여배우 아델 제임스의 트위터 계정에서 이집트중동 국가 출신 유저들이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인종 논란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비판을 하자 아델 제임스가 위와 같이 답했다.

참고로 비슷한 발언을 한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배틀필드 V를 만든 제작진들과 EA의 전 CEO인 패트릭 소덜린드로, 특히 패트릭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인 게임에 뜬금없이 여성 부대와 병사들이 나오면서 역시나 역사 왜곡 문제가 대두되자 "그들은 못 배워 먹은 사람들이다. 우리의 게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사지 말라."는 희대의 망언을 시전하였고 당연히 가뜩이나 욕먹고 있던 배틀필드 V의 판매량은 박살나고 폭망했다.[78] 이렇게 보면 패트릭 소더린드가 한 말과 아델 제임스가 한 말은 매우 비슷하나 아델 제임스의 발언이 패트릭 소더린드보다 훨씬 심각한데 사서 놀든 보든 말든 게임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은 결국 창작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라 해당 내용이 진실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퀸 클레오파트라는 진실이라고 여긴 내용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특히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5.1.2. 이집트의 반응은 인종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편집]


“Yeah, I know I shouldn't laugh, but it's quite funny. I think it's quite funny. The level of threat that you must feel just on my skin tone to file a lawsuit against an entire streaming service. That to me is, it is really extreme, it's a really extreme reaction and it's 100% fundamentally rooted in racism, which is a very modern ideology. The ancient Egyptians, they don't think about race as we do, because race has been contextualized as we understand it since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 It just doesn't... That's just not how people thought back then right? So It's really bizarre, but to me, again, I find it very sad. I feel sad for them."

"그래요, 웃으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아주 웃기네요. 상당히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전체 스트리밍 서비스(넷플릭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고작 제 피부색 때문에 (이집트인들이) 느껴야 하는 위협 수준이라니. 제게 그것은 정말 극단적이고, 정말 극단적인 반응이며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에 100% 뿌리를 두고 있는 매우 현대적인 이데올로기이에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리처럼 인종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 이후로 인종은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맥락화(脈絡化)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냥... 그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당시에 생각했던 방식이 아니죠? 그래서 정말 기괴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매우 슬프며, (이집트인들이) 안타깝네요."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배우 아델 제임스의 말 #

2023년 5월 10일 흑인 유튜버 웨인 에어즈(Wayne Ayers)가 팟캐스트에서 아델 제임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에어즈가 "이집트 정부가 퀸 클레오파트라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자 제임스는 이집트가 넷플릭스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고작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위협을 느낀다며 극단적인 반응같다고 답했으며, 100%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에 뿌리에 두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오히려 아프리카중심주의에 기반을 두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제작진 및 감독과 그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주연을 맡고 그 논리를 옹호하는 배우 아델 제임스가 벌인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중심주의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제국주의적인 인종 차별이 아니라, 이집트인과 타 인종간 구분을 엄연히 하던 문화권이었다.

5.2. 티나 가라비[편집]


2023년 4월 21일에는 아델 제임스를 캐스팅한 이란계 미국인 감독 티나 가라비가 미국 주간 잡지 버라이어티의 기고문에서 아델 제임스를 옹호했다. 아래는 가라비의 발언을 정리한 것이다. # #


5.2.1. 할리우드백인 우월주의를 주입했다[편집]


"It is more likely that Cleopatra looked like Adele than Elizabeth Taylor ever did... I remember as a kid seeing Elizabeth Taylor play Cleopatra. I was captivated, but even then, I felt the image was not right... Was her skin really that white? With this new production, could I find the answers about Cleopatra's heritage and release her from the stranglehold that Hollywood had placed on her image?"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클레오파트라가 아델을 닮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어렸을 때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녀의 모습은) 제 마음을 사로 잡았지만, 그때도 이미지가 안맞는다고 느꼈어요... 클레오파트라의 피부가 원래 그렇게 하얗던가요? 이 새로운 작품을 통해 클레오파트라의 유산에 대한 답을 찾고 할리우드가 그녀의 이미지에 가한 억압에서 그녀를 풀어줄 수 있을까요?"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티나 가라비는 여러 대중매체를 예로 들면서 할리우드가 대중들에게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주입했다고 말했다. 가라비는 "할리우드가 관객이 클레오파트라를 백인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에 억압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가라비가 언급한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 관련 대중매체들이다.

  • 1917년 영화 Cleopatra: 백인 클레오파트라의 예로 시더 배러가 맡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언급했다.
  • 1963년 영화 클레오파트라: 백인 클레오파트라의 예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맡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언급했다.
  • 2002년 영화 아스테릭스 & 오벨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 백인 클레오파트라의 예로 모니카 벨루치가 맡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언급했다.
  • 2005년 HBO 사극 드라마 ROME: "가장 지적이고 세련되고 강력한 여성인 클레오파트라 7세를 '천박하고 방탕한 마약 중독자'로 묘사했는데, 이집트인들은 그 점은 신경쓰지 않고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흑인으로 묘사한 것에 더 신경쓰는 것이 이상하다. 이집트인들은 아프리카인으로 묘사된 것 때문에 나한테 화가 난 것 같은데, 나는 문제 없다."라고 말했다.
  • 2010년대 제작 취소된 영화 클레오파트라: 백인 클레오파트라의 예로 2010년대 제작 취소된 영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맡을 예정이었던 클레오파트라 7세를 언급했다.
  • 2020년대 개봉 예정인 영화 클레오파트라: 백인 클레오파트라의 예로 2020년대 개봉 예정인 영화에서 갤 가돗이 맡을 예정인 클레오파트라 7세를 언급했다.

기고문에서 가라비는 "일부 이집트인들은 클레오파트라가 백인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디션을 하면서 아델 제임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아델 제임스가 실제 클레오파트라 7세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까지 헐리우드에서 화이트워싱이 지나칠 정도로 백인우월주의가 만연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클레오파트라 7세흑인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이집트인들 중에 갈발, 벽안이 종종 등장하는 갓 오브 이집트가 재현에서 어긋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집트인을 비롯한 북아프리카인 배역을 흑인에게 할당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인종 문제는 그녀가 어느 인종인지 사실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색이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본작이 HBO 사극 ROME을 방패로 내세우는 것도 코미디이거니와 사극 속 클레오파트라가 마약을 빨든 말든 그것은 사극 속 캐릭터 개인의 묘사일 뿐이다.


5.2.2. 클레오파트라 7세백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편집]


“...Cleopatra's heritage has been attributed at one time or another to the Greeks, the Macedonians and the Persians. The known facts are that her Macedonian Greek family — the Ptolemaic lineage — intermarried with West Africa's Seleucid dynasty and had been in Egypt for 300 years. Cleopatra was eight generations away from these Ptolemaic ancestors, making the chance of her being white somewhat unlikely. After 300 years, surely, we can safely say Cleopatra was Egyptian. I am proud to stand with Queen Cleopatra — a re-imagined Cleopatra — and with the team that made this."

"...클레오파트라의 유산은 때때로 그리스인, 마케도니아인, 페르시아인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알려진 사실은 그녀의 마케도니아 그리스 가족(프톨레마이오스 혈통)이 서아프리카셀레우코스 왕조[79]

와 결혼하여 300년 동안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프톨레마이오스 조상들로부터 8세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백인일 가능성은 다소 희박했습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확실히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인이었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클레오파트라를 재창조한 퀸 클레오파트라 다큐멘터리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제작진과 함께 서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80]

가라비는 클레오파트라 관련 역사 자료를 보았을 때 "프톨레마이오스 조상들로부터 8세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백인일 가능성은 다소 희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인 = 흑인, 서아시아인 = 비백인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부의 누비아인을 제외하면 이집트인은 백인에 가깝고 서아시아인들도 백인에 가깝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라면 몰라도 현재 학술적으로 백인금발벽안, 갈발녹안, 밝은 피부 같은 인체의 색상 개념이 아닌 두개골, 인체의 형태와 유전적 유사성으로 분류된 개념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알비노가 학술적으로도 백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이다.[81]

애시당초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근친혼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8세대가 지났다고 해도 여전히 그리스계 혈통을 유지하는 중이었을 테니 이는 틀린 말이다. 게다가 피가 섞였다고 주장한 셀레우코스 왕조 또한 역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 장수가 시조이고 근친혼을 거듭한 것도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와 마찬가지여서 역시 그리스계 혈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5.2.3.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시대는 아랍의 이집트 침공 이전이다[편집]


"While shooting, I became the target of a huge online hate campaign. Egyptians accused me of ‘blackwashing‘ and ’stealing‘ their history. Some threatened to ruin my career — which I wanted to tell them was laughable. I was ruining it very well for myself, thank you very much! No amount of reasoning or reminders that Arab invasions had not yet happened in Cleopatra’s age seemed to stem the tide of ridiculous comments. Amir in his bedroom in Cairo wrote to me to earnestly appeal that 'Cleopatra was Greek!' Oh, Lawd! Why would that be a good thing to you, Amir? You’re Egyptian."

"촬영하는 동안 나는 거대한 온라인 증오 캠페인의 대상이되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내가 그들의 역사를 ‘블랙워싱’하고 ‘도둑질’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경력을 망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그 것은 웃기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내 경력을 아주 잘 망치고 있었으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 시대에 아랍의 침략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어떤 추론이나 상기도 우스꽝스러운 발언의 흐름을 막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카이로의 침실에 있던 (이집트인) 아미르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이었다!'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그게 왜 당신에게 좋은 일이겠습니까, 아미르? 당신은 이집트인입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가라비는 기고문에서 클레오파트라가 다스리던 이집트는 아랍침공 이전이라며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을 지지했다. 이집트인들에게 아프리카인이냐고 물어보면 화를 내더라며 항의하는 이집트인들을 조롱한 것은 덤이다.

문화적 현상인 아랍화의 도래로 인종까지 바뀌었을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이자, 중동인 = 비백인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집트의 아랍화는 문화적 현상일 뿐 혈통적 단절이 아니다.[82] 이 문서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듯이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며, 고대 이집트인은 외형적으로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유대인과 동일한 범주(지중해권)의 사람들이다.

이슬람의 이집트 침공은 그 과정에서 심각한 학살과 약탈, 파괴를 겪은 지역들도 분명히 존재했으나 기존 인구의 멸절과 문화의 소멸을 야기할 만큼 커다란 것은 아니었고 알렉산드리아를 위시한 주요 도시들도 보존되었다. 이집트의 이슬람화 역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서 12 ~ 13세기는 넘어가야 이집트 인구의 과반수가 이슬람을 신앙하는 수준이 된다. 따라서 7세기 아랍의 침공은 이집트의 운명과 사회·경제, 문화를 변화시킨 중대한 기점이긴 했으나 고대 이집트와 현대 이집트를 민족적, 인종적으로 분리시킨 사건이라 볼 수는 없다.

반면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고대 이집트인은 현대 이집트인의 조상이 아니며, 그리스계 왕가는 현대 이집트인과 무관한 고대 이집트인의 피가 섞여서 흑인화된 것이다"라는 논리로 이집트인 전체에게 문화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하필 '흑인으로' 바뀌어서 문제가 아니라, '바뀌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다큐를 표방하는 작품이 "너희는 위대한 고대 이집트인과 상관없는 아랍인이다"라고 하는 것과 사극이 일개 개인을 마약쟁이로 묘사하는 것 중 뭐가 더 문제인지는 분명하다. 이집트인들은 정당한 항의를 한 것이며, 감독이 이를 "너희는 위대한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아니라 아랍인임. 동의 안하면 덜떨어진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논리로 귀를 막는 것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리고 본 문단에 나온 티나 가라비의 주장은 진짜 이집트 흑인인 누비아계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도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백인인 토착 이집트인이든 흑인인 누비아계 이집트인이든 간에 인종과 별개로 언어·문화적으로 아랍화된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대 토착 이집트인들을 가리켜 언어·문화적으로 아랍인이니 고대 이집트인들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는 잣대대로라면, 누비아계 이집트인들을 가리켜 언어·문화적으로 아랍인이니 고대 누비아인들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티나 가라비의 해당 주장은 백인인 토착 이집트인들 뿐만 아니라 누비아계 이집트인들에게도 문화적 폭력이 될 수 있다.

티나 가라비는 흑인이 아니고 백인에 속하는 이란인임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에 대해 무리한 변호를 하는 원인은 단지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우파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좌파 진영도 서아시아인은 유색인종이라는 선입견이 있으며 서아시아인이 유럽인과 같은 백인종이라는 사실은 학술계에서만 거의 통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이 2020년대까지에도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중동 본토 백인들(아크담족, 누비아인, 바까라족, 투아레그족 등 흑백혼혈 민족들 제외)이 서양권 매체에서 자신들이 흑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되는 걸 불쾌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83]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5.2.4.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편집]


"We re-imagined a world over 2,000 years ago where once there was an exceptional woman who ruled. I would like to draw a direct line from her to the women in Egypt who rose up in the Arab uprisings, and to my Persian sisters who are today rebelling against a brutal regime. Never before has it been more important to have women leaders: white or Black."

"우리는 2,000년 전에 한 때 예외적인 여성이 지배했던 세상을 다시 상상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아랍 봉기에 참여한 이집트 여성들과 오늘날 잔인한 정권에 반항하고 있는 페르시아 자매들에게 직접적인 선을 긋고 싶습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 지도자를 갖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습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기고문 결론으로 한 말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0년전 여성이 지배한 세상을 보고,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재,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 지도자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흑인 여배우를 캐스팅해서 논란을 일으킨 진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이유라면 굳이 클레오파트라처럼 결국 패배한 여성 지도자가 아니라 쿠시 왕국아마니토레를 비롯해 승리한 여성 지도자를 가져와도 됐을 것이고, 클레오파트라를 굳이 하겠다면 '흑인이든 백인이든'이라면 이집트계의 여배우를 채용해도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사왜곡임에도 굳이 성 문제로 왜곡하는 것이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5.3. 제인 페어베인 루트[편집]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함께 퀸 클레오파트라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제인 페어베인 루트는 2023년 5월 10일 온라인 잡지 데드라인 기사에서 다큐멘터리와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배우 아델 제임스를 옹호했다.


5.3.1. 넷플릭스다문화적인 고대 이집트를 다루길 원했다[편집]


"Adele James reflects the multicultural nature of ancient Egypt... Netflix asked us to promote a conversation and that’s just what has happened."

"아델 제임스는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 특성을 반영합니다... 넷플릭스는 우리에게 (이에 대한) 대화를 하도록 요청했고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책임 프로듀서 제인 페어베인 루트의 말 #

루트는 넷플릭스가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인 면을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길 원했고, 아델 제임스와 같은 흑인 여배우가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는 것이 다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84]


5.3.2.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시대의 인종은 현재의 인종과 달랐다[편집]


"Academics have long debated Cleopatra’s exact parentage... there is a possibility that Cleopatra was part Egyptian. We decided to depict Cleopatra of mixed heritage to reflect these theories and the multicultural nature of ancient Egypt. Race in her times was a long way from what it is now. It’s not every day that academic discussion of ancient history makes the news."

"학자들은 오랫동안 클레오파트라 7세의 정확한 혈통에 대해 논쟁해 왔습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혈통의 일부는 이집트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론들과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서 혼혈인 클레오파트라 7세를 묘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시대의 인종은 지금의 인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고대의 역사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이 신문의 기사감이 되는 것은 매일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책임 프로듀서 제인 페어베인 루트의 말 #

루트는 학자들은 클레오파트라 7세의 혈통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했으며, 클레오파트라 7세의 혈통의 일부가 이집트계였다는 이론을 반영해서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으며, 이런 고대사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은 신문의 기사로 자주 다뤄지진 않았다고 말했다.[85]

[1] 참고로 매부리코는 백인 중에서도 근동과 남유럽 백인들에게서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서양에서의 스테레오 타입 유대인 외모가 매부리코인 것에서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2] 1세기 고대 로마의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전시된 초상화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머리카락이 갈색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00여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색상이 바래져 정확하지 않다.[3] 정작 아델 제임스 본인이 출연한 다큐멘터리는 온통 역사 왜곡 천지인 걸 생각하면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4] 당연히 비꼬는 의미로,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라면 똑같은 원리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중국인이라 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 현재는 넷플릭스 측이 댓글창을 아예 막아 버려서 확인할 수 없다.[5] 미국인들이 외국, 특히 역사에 대해서 심히 무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많은 미국인들은 아프리카흑인만 사는 줄 알고 북아프리카아랍계 백인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건 인종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상식 차원의 문제다.[6] 기업 지분의 90%를 윌 스미스와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소유하고 있다.[7]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 휘하 장군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어받아 세운 왕조이다. 때문에 지배층은 그리스계였다.[8] 물론 베레니케 2세 등 근친 외 혼인도 어느 정도 없진 않았다. 다만 셀레우코스 제국이나 키레나이카디아도코이 왕국을 위시한 헬레니즘 왕조들과의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따라서 그리스계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으면 높아졌지 흑인과의 혼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9] 다만 아주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라서 북아프리카 남부 지역 주민들은 북아프리카 북부 지역 주민들에 비해 피부색이 더 검으며, 이집트 역사에서도 누비아계 흑인 왕국인 쿠시 왕국이 이집트를 정복하여 제25왕조를 창건해 흑인 파라오가 실제로 지배하던 시기도 있었다.[10] 이것은 이집트 전 대통령이자 그나마 미국 기성세대에게 얼굴이 알려진 현대 이집트인인 안와르 사다트가 수단계 흑인 혼혈이어서 얼굴에 흑인의 특징이 강했던 것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11] 하지만 이는 이집트가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다고 이집트인을 흑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바탕으로 한 논란임을 보여준다. 애시당초 이집트인들은 누비아인을 제외하면 아랍계 백인에 가까우므로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으로서도 백인, 이집트인으로서도 백인이라고 할 수 있다.[12] 물론 앞에서도 설명했듯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인이든 이집트인이든 간에 흑인 여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집트인을 흑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편견이기 때문이다.[13] 헬리 베일리에 대한 논란은 물론 피부색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헬리 베일리의 외모 등이 인어공주에 어울리는가, 혹은 헬리 베일리의 연기력이 관객들을 흡족하게 하고 있는지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물론 평가는 부정적인 쪽이 훨씬 더 많다.) 또 앤 불린 미니시리즈도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창작물 특유의 IF라고 한다면 납득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14] 해당 반응은 넷플릭스가 댓글을 막아 놓기 전까지 트레일러 영상의 댓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역사에 대한 장난질을 넘어 넷플릭스라는 거대 기업을 등에 업고 자기네 역사를 빼앗으려고 하는 건가?' 하는 반응들도 많았다. 사실 미국 영화 제작자들이 클레오파트라 영화를 제작한답시고 재현에 별로 신경쓰지 않아 실소가 나오는 수준의 영화를 내놓은 전적이 많고(퀸 클레오파트라와의 차이점이라면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백인 배우들이 맡았다는 것), 이런 영화들로 인해 이집트의 이미지가 왜곡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집트를 무시하냐며 반발한 것이다.[15] 사실 후술할 내용처럼 북마케도니아인들 또한 그런 문화적 폭력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북마케도니아의 국제적 위상이 이집트 및 그리스보다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다만 북마케도니아인들은 원래 슬라브인이며 알렉산더 대왕과는 직접적인 혈연이 없어서 문화강국인 그리스 역사에 묻어가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북마케도니아의 국명에 대해 그리스가 질색을 하고 반대한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16] 고대 누비아, 즉 쿠시 왕국은 이집트 다음 가는 역사를 자랑하는 문명으로서 흑인들의 자랑으로 손색이 없다. 누비아는 일시적으로 이집트를 정복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운 적도 있으며, 이집트의 흑인 파라오들이 바로 이 누비아의 왕들이다. 참고로 아마니레나스는 클레오파트라와 동시대 인물인데,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랑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활용하여 카이사르 사후 로마 제국의 정국 주도권을 가져가려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밀린 패배자가 된 반면 아마니레나스는 로마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비록 로마군의 반격에 나라가 매우 큰 피해를 입었지만 파르티아와의 전쟁에 대비해야 했던 로마의 상황을 활용한 결과 끝내 로마와 평화협정을 맺고 공물도 면제되는 등 주권을 보존하였으며 협정 이후로는 로마와 무역하여 나라를 다시 번영시키는 등 역사의 승자로 남았다. 얄궂게도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백인 남성이 승리한 이야기이고, 아마니레나스는 백인 남성에게 승리한 이야기이므로 흑인 및 여성 권리 신장이 목적이라면 이쪽이 훨씬 적절함에도 불구하고(심지어 당시 아우구스투스의 두상을 노획하여 신전 현관 계단 밑에 묻어서 백성들이 그 위를 지나며 밟게 하기도 했다.) 막상 진정으로 승리를 쟁취한 흑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게는 무관심하면서 백인 남성이 승리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제작진의 행태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17] 정확히는 흑백혼혈. 어머니가 누비아 흑인이었고 아버지는 이집트계 백인이었다.[18] 쿠시 왕국은 한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제25왕조를 세워 통치했기 때문이다. 제25왕조의 파라오들은 흑인이었다.[19] 북마케도니아는 남슬라브 국가들 중에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이기도 하며, 마케도니아인들을 포함한 남슬라브족은 생물학적으로 그리스인을 포함한 발칸 반도 토착민의 혈통이 일부 섞여 있다.[20] 다만 현대 마케도니아인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의 고대 마케도니아인들과는 민족적, 혈통적으로 연관이 없다. 이는 북마케도니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리스로부터 국명을 비롯해 딴죽을 걸리는 일이 많았다.[21] 일단 이 예고편에 의하면 다큐멘터리의 듀얼 우라에우스, 쉽게 말해 쌍코브라 장식이 달린 왕관 자체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도 흔히 쓰인 왕관이라고 한다.[22] 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어떤 주장의 근거로 충분한 신뢰도가 없다"라는 정도지, 그 주장의 반박 근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23] 이 말의 의미는 현대의 학문이란 언제나 반증 가능성을 남겨둔다는 뜻이다. 즉, 우리가 클레오파트라를 있는 그대로 소생시키거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서 직접 피부색을 관찰할 수 없는 이상, (그나마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고학적 사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 사료는 언제든 (당장 내일이라도) 새로이 발견되어 기존 학설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100% 명백하지 않는 이상 가급적 어떠한 사실관계에 대해 단정지어 말하지 않는다. 비단 고고학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이 이렇다.[24] 곽민수 소장은 대체로는 그의 의견과는 동의하지만, 자히 하와스 박사의 발언은 정치적인 메세지도 포함되어있으니 그걸 감안하고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자히 하와스는 이집트 고고학자인 동시에 한국의 문화체육부에 해당하는 정부 부처의 장관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발언과 행보에 정치성, 쇼맨쉽이 없는게 불가능하다. 본인도 그런 점을 인지하고 있어서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중 하나인 '언노운 사라진 피라미드'에서 "누군가는 제가 정치적이고 쇼맨쉽을 중시한다고 평한다."고 스스로 자인할 정도였다.[25] 바로 예고편에도 나왔던 듀얼 우라에우스를 쓰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것도 의도적으로 재현을 했다기보단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듯 우연히 맞추거나, 25왕조 누비아인 왕조 만이 썼다는 오해가 퍼져 있기 때문에 다큐에서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26]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분석은 하지 않았지만, 한숨을 쉬며 그렇게 퀼리티가 있지는 않으며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27] 사실 2021년에도 곽민수 소장은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에 대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칼럼을 서울신문에서 연재한 바 있다. # 요약하면
0. 1926년에 에페수스에서 아르시노에 4세(프톨레마이오스 왕조 14대 파라오이자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여동생)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유골의 해부학적 특성이 흑인과 유사하다. 다만 DNA 검사를 해 본 것은 아니라서 확실하지 않다.
1. 클레오파트라의 모친이 불확실하며, 첩실에게서 태어난 서출일 가능성이 있다.
2.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들이 여러 첩을 두었고 차별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근친 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 따져봤을 때 흑인 혈통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8] 참고로 실제 역사의 클레오파트라는 정치력이나 암투라면 몰라도 악티움 해전에서 한창 전투 중인 와중에 멋대로 도주하는 바람에 아군의 전선과 사기가 무너지는데 일조했고 이로 인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물론 자신의 몰락에 쐐기를 박아버린 매우 무능한 사령관이었다.[29] 로마 병사들의 갑옷의 가슴 부분에 가죽을 덧대고, 팔에 가죽 보호구를 차고 있는데 당시 로마 병사들은 그런 갑옷을 입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한 로마 부대의 누구는 로마 제국식 갑옷인 로리카 세그멘타타를 입은 채로 나오고, 누구는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나오면서 아예 같은 부대의 군복조차 통일되지 않은 채로 나온다. 당시 로마 병사들의 표준 군복은 로리카 하마타라는 갑옷이었다. 또한 어떤 신에서는 병사들이 전부 로마 제국식 갑옷을 입고 나온다. 물론 고대국가의 특성상 로마군도 부대마다, 주둔 지역마다 장구류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지만 같은 부대원까지 장비가 천차만별인 것은 옳지 않다. 이 시기 로마군은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이후 모병제로 전환되었고 이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병사들의 봉급을 공제시켜 지급하던 대량 생산품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군단병이라면 모를까 같은 군단병들이 서로 천차만별인 갑옷을 입을 수가 없다. 이집트군 갑옷의 경우 이집트 토착 왕조 스타일 갑옷도 아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특유의 고대 그리스 스타일 갑옷도 아닌 상상에 의존한 디자인이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당시의 이집트군 갑옷은 고대 로마 스타일 갑옷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데 본작에 나오는 이집트군 인물들 중 그 누구도 그런 갑옷을 입지 않았다.[30] 클레오파트라 7세를 포함한 이집트인 여성들(전부는 아니지만)의 머리 모양이 아프로 머리로 묘사되는데, 애초에 고대 이집트는 아프로 머리가 생겨나기 한참 전이었으며 그 아프로 머리도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 흑인들의 문화에서 유래되어 다른 나라 흑인들에게 퍼진 것이다. 따라서 실제 고대 이집트인 여성들은 다수의 백인들과 소수의 흑인들(누비아인)을 막론하고 아프로 머리를 한 적이 없었다. 만약 고대 이집트에 아프로 머리가 있었다면 그것이 벽화 등을 통해 후대에 알려졌을 것이다.[31] 로마 병사들이 오와 열을 유지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전투를 한다. 또한 병사들이 검을 높이 휘둘러 대며 싸우는데 당시 로마 병사들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며 몸을 낮춘 뒤 상대를 찌르는 방식으로 싸웠다. 검을 높이 휘둘러 대며 싸우는 건 베기 공격에 특화된 곡도 형태의 도검류를 많이 썼던 중세 말 이후의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에서 선호되었던 전투방식이다.[32] 마케도니아 왕국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이자 먼 친척이기도 하며 대왕의 사후 제국을 분할통치한 디아도코이 중 하나였다. 즉, 이들은 그리스계 백인이다.[33] 이집트에는 누비아계 흑인들도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이전 왕조에는 누비아계 흑인 파라오도 존재했고. 물론 클레오파트라 시절에는 앞서 말한 대로 마케도니아에서 온 그리스계 왕조였다.[34]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와 처음 만났을 즈음이다.[35] 이미 로마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에게 지중해 해안으로부터 50마일까지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결정을 한 적이 있다. 즉, 로마의 힘은 지중해 전역에 미쳤다는 말로 당시 로마의 판도는 이탈리아 반도, 시칠리아, 스페인, 갈리아(현 프랑스), 브리타니아, 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그리스 등까지 속주나 동맹으로 삼고 있었을 정도.[36] 게다가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카이사리온도 자신의 살아생전이나 사후에도 절대 아들로 인지하지 않고 사생아로 두었으며, 유언장에서마저도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리온 부자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고 후계자도 자신의 외종손(누나 율리아의 외손자) 옥타비아누스로 정했다.[37] 반면 클레오파트라는 자신과 카이사르와의 관계에 대해 이집트에 마구마구 퍼뜨렸다. 당연히 카이사르의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카이사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클레오파트라가 하는 짓에 대해 묵인했다. 그게 카이사르 본인이나 로마에 있어서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가 안정되는 것을 바라서 그랬던 것.[38] 당시 이집트는 군대가 없었으므로(정확히는 군대 자체는 있었다. 다만 그 군대도 로마군의 보조병으로써 양성된 것이지 이집트 왕가의 군대라고는 할 수 없었다.) 로마는 군대를 보내 이집트를 지키고 이집트의 밀을 로마에 들이는 관계였다.[39] 다만 이 시점에서 로마군은 원래 폼페이우스가 주둔해놓았는데 오랫동안 이집트에 주둔하면서 이집트화가 된 상황이었다. 이들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사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살해하려 든 거나 나중에 악티움 해전에 클레오파트라 휘하로 나선 것도 이런 이유였다.[40] 라기보다는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그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축출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에 몰래 카이사르와 접촉해 도움을 요청했던 것.[41] 그렇게 이미 축출된 클레오파트라를 화해라는 명목으로 카이사르가 다시 데려왔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카이사르도 명분은 있었는데, 선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남긴 "남매끼리 우애있게 이집트를 다스리라"는 유언이었다.[42] 물론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끌려다녔다는 말 자체는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미색에 홀려서 그랬다는 말이지 무슨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갑을관계라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은 안토니우스가 가진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43] 안토니우스뿐만 아니라 작중에서 나오는 백인 남성의 성과는 아예 생략하거나 연관이 있는 인물을 등장시키지도 않는다. 예시로 옥타비아누스의 곁에서 안토니우스를 무너뜨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아그리파가 등장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44] 다만 아그리파는 당대 로마의 중요 인물들 중 한 명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아그리파는 옥타비아누스의 아바타같은 존재라 옥타비아누스가 (주로 군사적인 쪽으로)하라고 하면 군말없이 가서 하는 게 그의 일이었으므로 결국 악티움 해전에서나 그럭저럭 비중이 있을 뿐이지 클레오파트라와 관련해서는 생략해도 크게 무리가 있는 건 아니긴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클레오파트라와 관련해서만 그렇다는 말이지 아그리파가 당대 로마의 최중요 인물 중 한 명인 것은 사실이다.[45] 후대 역사가들은 클레오파트라가 도주할 당시의 전투 양상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중 어느 쪽도 크게 유리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고 분석한다. 때문에 클레오파트라가 도주하지 않거나 도주하더라도 안토니우스가 철수하지 않고 승부를 확실하게 내기 위해 좀 더 싸웠다면 악티움에서 승리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46] 정작 안토니우스의 후퇴는 무능하고 비겁하게 도망친 것으로 묘사하며 똑같은 전투에서 똑같이 후퇴를 했음에도 클레오파트라는 치켜세우고 안토니우스는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선보인다. 하지만 애시당초 안토니우스가 후퇴한 것은 클레오파트라가 도주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클레오파트라가 도주하자 안토니우스는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해서 같이 도주하게 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47] 반면 이집트군들은 로마 장군인 안토니우스보다 자신들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의 명령을 더 우선시했다. 이런 지휘체계의 혼선과 명령불복종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또 다른 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48] 일개 로마의 정치인에 지나지 않는 안토니우스가 로마 군인들의 힘으로 이룩한 영토 대부분을 임의로 타국인 이집트와 클레오파트라의 자녀들에게 할양한다고 선언하지를 않나 심지어 유언장에는 자신이 죽으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오파트라 옆에 묻어 달라고 작성한 게 결정타가 되어, 로마에서 안토니우스의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그의 명분 및 정당성 자체도 크게 훼손되었으며 옥타비아누스는 이 사실을 토대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려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선동하면서 로마인들의 지지를 받아내며 안토니우스를 로마의 적으로 선포할 수 있었다. 결국 이는 안토니우스가 악티움에서 대패하자 그의 군사들이 주저없이 옥타비아누스 측으로 전향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49] 다만 당시 안토니우스는 명실상부한 로마 제일의 실력자로 저 정도 발언을 할 정도의 권력과 군사력이 있었다. 단지 그럴 힘이 있다고 저런 짓을 한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라 문제였을 뿐이다. 분명 안토니우스는 로마 제일의 실력자이긴 했으나 로마에는 그에 필적하는 권력을 가진 옥타비아누스가 있었는데도 이를 신경쓰지 않고 저런 짓을 하는 바람에 몰락하게 된 것. 특히 옥타비아누스는 세력 면에서 안토니우스보다 못했지만 정치적인 능력에서는 안토니우스를 훨씬 넘어설 정도의 능력자였기 때문에 안토니우스가 저런 바보 짓을 저지르자 바로 안토니우스의 약점을 공략해 로마 시민들의 여론을 한순간에 기울게 만들었다.[50] 물론 클레오파트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51] 알렉산드리아 전쟁처럼 매우 열세인 상황에서도 로마군은 이집트군을 상대로 승리했을 정도인데 군사적인 측면에서 안토니우스라면 모를까 클레오파트라나 이집트를 두려워했을 리가 없다.[52] 당시 카이사르는 휘하의 몇백 명 정도의 병력만 데리고 있었는데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카이사르를 치기 위해 수천명의 군세를 동원해 카이사르를 기습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전쟁 경험이 많고 수라장에도 익숙했던 카이사르 휘하 병사들은 순식간에 바리케이트를 쳐서 입구를 막고 농성하는 한편 이집트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마군 본대에 급히 연락을 넣어 이들을 이집트로 불러들여 파라오군의 뒤를 쳐 물리쳤을 정도다.[53] 물론 이집트는 로마가 점령한 지역 중 가장 풍요로운 곳인 건 사실이지만 서술했듯 이 시절의 로마는 그런 이집트조차 상대가 안 될 만큼 당대를 재패한 초강대국이었다.[54] 사실 이집트는 몰락 직전이긴 했으나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와 손을 잡고 자신의 정적들을 죄다 숙청했기 때문에 당시 이집트가 안정된 건 사실이었다.[55] 문제는 카이사르의 관계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에 고무되어 클레오파트라의 야망은 점점 커졌고 카이사르 사후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카이사르보다(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손을 잡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이집트 왕권만이었고, 그 이상의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더 자신에게 간도 쓸개도 빼줄 만한 안토니우스와 손을 잡았던 것.[56] 옥타비아누스를 인종차별자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성차별주의자로 나온다. 클레오파트라가 초청된 로마인들의 연회에서 키케로는 이집트가 이제 딸 수 있는 잘 익은 열매 같다고 말하는데 이때 말투와 행동거지가 마치 성희롱을 하는 것 같다. 이에 클레오파트라는 "로마는 여자를 이렇게 대하나?"라고 말하며 키케로에게 성적 콤플렉스라도 있냐고 조롱한다. 제작진들이 강한 여성의 사이다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식의 연출을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오히려 뜬금없는데 다 오글거리는 건 물론이고 역사적으로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사실 키케로는 정치가로서는 미묘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사생활만 놓고 보면 가족을 아끼고 바람을 피운 적 없이 아내만을 사랑하였으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모범적인 인물이었다.적어도 콩가루 집안이었던 클레오파트라가 뭐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57] 로마는 이집트에 도로, 제도, 의술 등 여러가지 유용한 기술을 많이 전파했다. 무엇보다 변변찮은 군사력도 제대로 없는 데다가 자기들끼리 내전으로 투닥거리던 이집트 왕가에 개입해서 클레오파트라의 왕권을 보호해 준 게 로마의 카이사르였다.[58] 나일강 하구는 당대 최고의 농경지였고 사람들은 이곳을 '검은 땅'이라고 불렀다. 물론 흑인들이 살거나 다스리고 있어서 검은 땅인 건 아니고 나일강은 매년 범람해서 상류의 비옥한 흙을 하류로 휩쓸어 가져왔는데 이 흙의 색이 검은 흙이라 검은 땅이라고 불렸던 것.[59] 이런 이집트의 막대한 부를 이용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도 악티움 해전의 패배를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60]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악티움 해전의 패배는 곧 안토니우스의 패망을 의미했으며 이를 몰랐던 것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둘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서 안토니우스의 군대는 창을 거꾸로 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주변의 우호적인 국가나 도시들도 언제든 안토니우스에게 등을 돌릴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로마와 이집트 사이에 낀 그리스계 국가와 도시들은 예전에 카이사르의 내전에서 섣불리 폼페이우스의 편을 들었다가 크게 피를 본 적이 있다보니 이번에는 돌아가는 형편을 보다가 유리한 편에 서겠다는 방침을 보였는데 그 판단의 기준이 바로 악티움 해전이었던 것.[61] 당시 광대한 로마는 협정을 통해 서쪽을 옥타비아누스가, 동방을 안토니우스가 장악해서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를 클레오파트라에게 기증한 것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있어서 자기 지배 영역과는 상관이 없으면서도 상대인 안토니우스의 명분을 크게 깎아먹는 행위였으므로 적어도 속으로는 기뻐했을 가능성이 높았다.[62] 이미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자식들은 몰라도(이들은 나중에 안토니우스의 전처이자 옥타비아누스의 누나인 소 옥타비아가 길렀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카이사리온은 반드시 죽여야 했다. 애시당초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리온을 내세워 옥타비아누스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려 들었고 옥타비아누스 역시 정통성 문제 때문에 카이사르의 유일한 아들은 자신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63] 당연하지만 클레오파트라 역시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며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옥타비아누스에게 빌다시피 했고 안토니우스도 살려주면 앞으로는 은퇴해서 죽은 듯 살겠다고 했다. 물론 옥타비아누스가 이들의 말을 들어줄 이유따위 없었고 특히 카이사리온은 살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했다.[64] 안토니우스 역시 옥타비아누스에게 장남 안틸루스를 보내 은퇴하여 아테네에서 소시민으로 살겠다며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65] 안토니우스의 죽음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사실상 마지막 남은 로마와의 연결고리이자 동맹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완전히 재기의 여지도 없는 사망 통보나 다름없었다. 클레오파트라를 두고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로마를 내전에 빠트린 이집트 여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강경하게 맞서 싸운 옥타비아누스의 다음 목표물은 자신과 카이사리온이 될 게 뻔했기 때문. 게다가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리온은 죽이더라도 개선식 때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자녀들을 전리품 삼아 로마로 조리돌림시키며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이집트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체면과 자존심마저 박살내는 최악의 치욕이었다. 결국 패배의 대가로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내세운 아들은 죽고 남은 자녀들과 함께 전리품 신세가 되어, 온갖 치욕을 당할 것이 확정되고 이를 막을 힘도 없던 클레오파트라가 자포자기로 자살했다는 게 정설이다.[66] 이 과정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아들 카이사리온도 죽여 버리고 안토니우스와의 자식들인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까지 체포하여 로마로 압송시킨다. 특히 맏이이자 쌍둥이 남매인 헬리오스와 셀레네는 어머니 클레오파트라가 독사를 붙잡고 자살하는 모습이 새겨진 조각상 뒤로 끌려가 옥타비아누스의 개선식에 강제 참석하는 수치를 당했다.[67] 다만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자식들은 딱히 옥타비아누스에게 살해당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상술되었다시피 안토니우스의 전처이자 옥타비아누스의 누이 옥타비아가 이들을 나름 소중히 길렀다. 사실 옥타비아누스의 목표는 오직 자신의 정통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는 카이사리온밖에 없었다.[68] 그 외에도 전국시대 말기를 다룬 사무라이의 시대에서는 센고쿠 다이묘들은 무슨 닌자야쿠자 집단마냥 묘사를 하고 임진왜란 파트에서 묘사된 조선인들의 복식 재현이나 곽재우가 여성의 생리혈을 물들인 옷을 입었다는 등의 헛소리를 사실마냥 묘사해 흑인 우월주의아시아인 차별, 와패니즈 등이 일상인 소위 전형적인 PC충들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기까지 했다.[69] 한국에서 개그맨 이경규가 남긴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즉, 사실도 아니고 정확한 말도 아닌 어디서 들은 말과 책 한 권 읽은 걸로 그것을 진실인 양 믿고 신념까지 가져 버리면 그 어떤 사람이 와서 진실을 말해도 절대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70] 당연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학도라면 아니 그 이전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머니가 노망이 드신 게 아닌지 먼저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 할머니가 아니라 역대 역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우선시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71] 싫어요가 무려 46만이다.[72] 아프리카 역사가 화이트워싱당했다는 주장이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다. 예로 19세기 유럽에서는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이나 누비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을 두고 흑인들이 이런 걸 만들 리가 없고 페니키아 상인들이 진출해 만들었다고 역사 왜곡을 했다. (그리고는 페니키아 상인의 비밀 금고를 찾는답시고 해당 유적의 대부분을 박살냈다.) 고대 이집트만 해도 토착 이집트인들이 이런 유적을 만들었을 리가 없고 유럽인의 조상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외계인이 피라미드 등의 유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이런 편견의 연장선이다.)[73] 옛날 이집트 유물 중 고대 이집트인에게 아프로가 있는 걸 묘사한 작품은 없으며, 그 빗도 당대 이누이트, 바이킹, 동양에서 발견된 다른 빗들과 똑같은 모양이다. 심지어 흑인인 누비아계 이집트인이나 수단 본토의 누비아인을 묘사한 기록화에도 아프로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없다. 애초에 아프로 머리는 미국 흑인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 본토에서 찾으려는 것부터가 오류다. 미국 흑인을 비롯한 미국인들이 외국 역사에 대해 심히 무지해서 미국의 역사문화를 외국 역사에 적용하려는 오류가 많다.[74] 현재는 부부이다. 본처가 이혼소송을 제기해서 이혼한 후 콜린과 재혼했다.[75] 위의 다섯 사람 중 앞의 두 사람은 흑인이고 뒤의 세 사람은 백인이며 다섯 사람 모두 여성 미국인이다.[76] 부모가 이집트계 이민자다.[77] 애초에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해당 작품에 제대로 된 전문가가 합류할 리도 없다. 설사 합류한다고 해도 이미 작품의 방향을 결정한 제작진이 이런 전문가의 견해를 받아들일 리도 없다. 결국 제작진은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만 해 주는 인간들만 자문가로 채용했을 거고, 제작진과 이런 "전문가"들의 편견과 왜곡이 합쳐지면서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기도 뭣한 희대의 괴작이 탄생한 거다.[78] 토탈 워: 로마2도 DLC로 여성 장군들이 대거 투입되었을 때 비슷한 비판이 있었는데 "여성 유닛이 당신을 화나게 했다면 다른 모드를 하던가 안 하면 된다" 는 식의 답변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배필과 달리 이 DLC로 인해 게임이 폭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현실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마 시대에 여성 장군이 있었던 문화권만 여성 장군이 확률적으로 등장하며 로마 등(로마는 가장이 마음대로 가족 구성원을 벌주거나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을 만큼 가부장적이었다.) 구조적으로 여성이 장군이 될 수 없는 문화권이라면 등장 확률이 0%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이머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79]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마찬가지로 마케도니아 출신의 그리스계 왕조인 데다 서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를 지배한 왕조다.[80] 처음 기고문이 공개되었을 때 "서아프리카의 셀레우코스 왕조"라고 말했는데 이후 지적을 받은 건지 "서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로 수정되었다.[81] 이외에도 학술적으로 논란이 있는 분류이긴 하지만 오스트랄로이드흑인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뿔 지역 주민과 드라비다인은 피부가 검은데도 불구하고 대다수를 코카소이드로 분류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프리카의 뿔 지역 주민은 동아프리카 흑인과 북아프리카계·서아시아계 백인의 혼혈이고 드라비다인은 오스트랄로이드와 인도아리아계 백인의 혼혈이다.[82] 얄궂게도 이 논리는 많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과거 흑인 문명들은 흑인들이 세운 것이 아니라 백인들이 세운 것이고, 흑인들이 나중에 이주해서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다"는 억지 논리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흑인 왕국에 대한 유튜브의 댓글을 보면 해당 문명은 과거 백인 문명인데, 왜 나중에 이주한 흑인들로 블랙워싱하냐는 종자가 간간히 있다. 이렇게 자신들이 당한 역사 왜곡을 그대로 이집트인들에게 자행하는 꼴이다.[83] 당장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이집트인들부터가 그런 사례다.[84] 사실 당시 이집트 왕가는 다문화와는 가장 거리가 멀었는데, 이들은 이집트 혈통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근친혼으로 혈통을 유지한 왕가였다.[85] 상식의 영역이지만 이런 아프리카중심주의적 주장이 신문의 기사로 다뤄지지 않은 건, 그 반대 주장에 비해 근거가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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