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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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2.1. 2005~2007 시즌
2.2. 2008 시즌
2.3. 2009 시즌
2.4. 2010 시즌
2.5. 2011~2016 시즌
2.6. 2017 시즌
2.7. 2018 시즌


1. 아마추어 시절[편집]


1학년 때 까지는 포수였으나, 2학년 때 투수로 전향해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등판했다. 그리고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번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1]

2004년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의 공동우승을 이끌었다. 인천동산고와의 결승전 첫 날 연장 12회 혈투 끝에 4-4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다음날에 재경기를 치뤘지만 1-1로 팽팽히 맞선 5회초 1사 1,3루 상황에서 비로 인해 중단되었고 주최측에서 두 학교의 공동우승을 결정하였다. 전날 연장 12회까지 완투한 용마고 조정훈은 175개, 동산고 금민철은 173개를 던지는 역투를 펼쳐 우수투수상을 공동 수상했다.


2.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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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5~2007 시즌[편집]


2009 시즌이 너무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조정훈의 모습까지 많이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조정훈은 신인 시절에는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비호감으로 낙인찍히다시피한 선수였다. 다승왕에 오른 2009 시즌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2007 시즌까지 조정훈의 모습은 전형적인 만년유망주 그 자체로 그다지 인상적이 못했기 때문이다. 인상적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신인 첫 해 영점이 전혀 잡히지 않아 WHIP가 2를 훌쩍 넘을 정도[2]로 암담한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정훈을 지명하느라 거른 오승환, 윤석민이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면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거기에다 그 당시 많은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원했던 부산고등학교 정의윤을 대신해 뽑히기도 해서 더더욱 미움을 받았다.

상태가 이러하니 젊은 선수를 중용하기로 유명했던 양상문 당시 롯데 자이언츠 감독도 조정훈을 거의 기용하지 않았다. 2010년대 이후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당시 양상문이 신인 시절의 조정훈을 별로 기용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당시 조정훈은 신인이라는 연차를 감안하더라도 그다지 큰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투수가 아니었고 양상문 감독의 판단이 틀린 것이라 보기 힘들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조정훈이 신인부터 포크볼을 던진 줄 알고 있었지만 조정훈은 2008 시즌까지 포크볼을 제대로 던질 줄 모르던 투수였다.

게다가 조정훈은 리니지에 빠져 2년차인 2006 시즌을 사실상 날려버리다시피 했다. 그나마 2007 시즌 때 정신을 차리고 야구를 다시 진중하게 대하기 시작하며 한 가닥의 기대를 남겨놓았지만 성적은 여전히 인상적이지 못했다.


2.2. 2008 시즌[편집]


드디어 실력이 만개한 2008 시즌에는 퓨처스 리그를 초토화시켰는데도 1군 콜업이 없다가 시즌 중반 LG 트윈스전에서는 대체 선발로 등판하여 완봉 승을 세우면서 가능성을 확인시켰다.[3]

이후 시즌 후반기부터는 선발 투수로 합류하여, 꾸준히 5선발로 활약하며, 80이닝, 5승 3패, ERA 3.15, 1홀드라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2.3. 2009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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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회말 2사 만루에서 삼진 잡아낸 후 포효하는 모습


2009 시즌 들어서는 14승으로 다승왕에 등극하며 단숨에 롯데 자이언츠 마운드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특히 2009 시즌 전반기 롯데 자이언츠의 모든 투수들이 정신 나간 것처럼 불을 지를 때 혼자서 정상적인 투구를 해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단점은 어느 한 이닝에 급격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말아먹은 게임 수만 해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2009시즌, 서울 히어로즈전에서는 무사 2, 3루 상황에서 140 후반대의 공을 뿌려서 연속으로 탈삼진을 잡아내면서 당시 중계를 하던 이효봉 Xports 해설위원의 사랑을 받았다.[4]

2008 시즌에는 맞춰잡기 위주의 투구 패턴을 보여줬지만, 2009 시즌에는 탈삼진 능력이 급격하게 향상되어서 탈삼진왕을 두고 경쟁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5]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젊은 투수 치고 손목 인대와 어깨에 무리를 주는 포크볼의 구사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6]이다. 실제로 포크볼 그립을 잡고 공을 던지기가 어려운데, 포크볼에 대한 대표적인 속설이 바로 '포크볼은 던지기 위해 어깨를 심하게 소모하는 악마의 구종이며, 투수 생명 단축과 연관이 있어 이것을 장착하고 제 기량을 오래 보여주는 선수가 없었다'는 것이다.[7]

물론 메이저 리그에서 뒤늦게 부활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린 노모 히데오현대 유니콘스정명원이 34세까지 전성기를 누리다 은퇴[8]하는 등 예외는 있고 특정한 구질이 부상을 유발한다는 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기에 훗날 조정훈 선수 본인조차 포크볼을 많이 던졌기때문에 자신이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였으나, 양측이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포크볼 의존도가 높을수록 직구 구속 저하의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공을 빼는 감각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직구를 던지는 능력이 퇴화되어 구속이 저하되고, 이어서 포크볼 효과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될 수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시즌 전반기에도 어깨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슬슬 걱정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보내는 풀타임 선발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손민한의 부상, 송승준장원준의 기복으로 인해 롯데 자이언츠의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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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KFC존

2009년 9월 29일,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143km/h의 패스트볼과 칼같은 포크볼을 앞세운 호투로 7⅔이닝 7탈삼진 2실점으로 두산 베어스의 타선을 틀어막으며 롯데 자이언츠의 3272일만의 준플레이오프 승리에 공헌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08 시즌에도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한테 3대0으로 떡이 되었기 때문에, 롯데가 마지막 준플레이오프 승리를 했던 기억을 되짚으려면 2000년 포스트 시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참고로, 2000년 포스트 시즌도 준플레이오프에서 2대1로 삼성 라이온즈에게 털렸기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승리는 드라마틱한 경기까지 올라가야 한다.[9] 참고로 저 7탈삼진은 모두 포크볼로 이뤄낸 것이다.

2009년 10월, 결국 재활에 들어갔다. 다행히 근육이나 팔꿈치에 큰 문제는 없어 수술 없이 재활 운동으로 해결한다지만 어깨는 한 번 망가지면 팔꿈치와는 달리 어떻게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당장 2010 시즌부터 걱정이 많다.[10]

2009 시즌은 14승[11] 9패, ERA 4.05, WHIP 1.33 으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고[12] 거기다가 롯데 자이언츠를 가을야구로 이끈 업적을 인정받아 2009 시즌 최고 투수상을 받았다.

스톡킹에서 푼 썰에 의하면 그날 잔여경기 한게임, 그러니까 15승 도전 선발 기회가 있었는데 제리 로이스터한테 선발해달라고 애원하고 싹싹 빌었는데도 칼같이 거절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당시 제리 로이스터의 그 한마디[13] 때문에 15승을 허무하게 날려먹은 바람에 왕 삐진적이 있었다고.


2.4. 2010 시즌[편집]


부상으로 휴식을 취하다가 4월 7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는 1군 첫 등판을 했다. 이때는 이닝을 충분히 먹었다고 판단했는지, 6이닝 동안 공을 71구만 던지고 내려왔다.



김광현과의 맞대결에서 8회 실점 후 이닝 종료 때 모습[14]

4월 24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김광현과 희대의 투수전을 펼쳤다. 이 경기에서 조정훈이 8이닝 2실점이라는 상당한 호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선이 김광현에게 9이닝 동안 단 1점밖에 뽑지 못하면서 결국 패전투수가 된다.[15]

5월에 로테이션을 잠시 쉬게 되었고 확실히 어느 정도는 부상을 안고 있는 듯하다.

5월 20일 등판하여, 괜찮은 투구를 했으나 7회에 집중타를 먹고 강판당했다. 올해도 얻어맞을 때는 얻어맞지만, 어쨌든 확실하게 이닝은 먹는 투구를 해주고 있다. 양상문의 투구폼 개조로 스트라이드가 좁아졌는데, 그 덕분에 포크볼 제구가 아주 약간 상승한 대신 포심 패스트 볼 구위가 떨어졌다.[16]

복귀 후 조브 클리닉 감바델라 박사에게 자기공명영상 필름을 보내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감바델라 박사는 오히려 과잉 보호가 투수의 컨디션을 낮출 수도 있다고 밝혔다.

괜찮을 줄 알았지만 5월 2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1회에만 피홈런 1개 포함 피안타 4개로 4실점하며 2이닝 동안 7피안타 5실점하며 조기 강판당하는 모습을 보여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혈압 상승에 일조하였다. 4월의 성적과 5월의 성적을 비교하면 굉장한 차이가 있다. 4월의 평균자책점은 2.88이지만, 5월의 평균자책점은 8.36이다. 특히, 4월 30일 이후로는 계속 4실점 이상씩 하고 있어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하늘이 내린 내구성이었던 선동열도 꼼짝 없이 쉬게 만든 어깨 건초염인데, 기사대로 정말 아무 이상이 없을까 하는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우려가 많았다.[17]

2009 시즌 국내에서 건초염으로 5일 휴식을 진단받고 2군으로 내려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올라왔다. 2010 시즌에 실제로는 어깨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6월 2일, LG 트윈스전에서도 무기력한 투구를 펼치며 4⅔이닝만에 내려가 시즌 평균자책점은 4.75를 찍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면 갈수록 평균자책점과 피안타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6월 8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6이닝 동안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를 했다. 그리고 6월 1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이닝 동안 6피안타 (1피홈런)으로 5실점하며 강판당했다.

6월 15일, 어깨뿐만 아니라 팔꿈치까지 망가져서 2군에 내려갔다. 관련 기사

조정훈은 2010 시즌 어깨 부상 때문에 동계 훈련 기간 동안 공을 거의 던지지 못했다. 이런 경우 부상에 쾌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따듯한 온도 속에서 조금씩 어깨 컨디션을 올려야 했는데, 투수코치 양상문의 엉망진창 코칭으로, 무리한 상태로 던져야 했고, 조정훈은 어깨에 대한 부담으로 스트라이드를 넓히며 팔꿈치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팔꿈치까지 망가졌다. 조정훈의 정확한 병명은 내측 측부 인대 손상이다. 쉽게 말하면 팔을 많이 쓸 때 인대 조직이 약해지는 것으로, 대부분의 1군 레귤러 투수가 가지고 있는 병이기도 하다. 즉, 큰 부상이 아니고 통증에 민감한 유형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결국 15승 이상을 책임질 미래의 에이스는 어깨와 팔꿈치가 모두 고장났고, 재활한다 하더라도 작년의 150km/h에 육박할 공을 뿌리기란 어렵게 되었다.

2010 시즌 조정훈은 실질적인 에이스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발 투수들보다 열흘 정도 늦게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전반기 등판에 60~70구 이상은 던지지 않았으며, 팀이 연패에 빠진 5월에도 13일의 휴식을 받았다. 어깨 상태에 따라 더 지켜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검진 결과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통증이 호전된 조정훈은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시즌 5승을 거뒀다.

다음 등판에서 2이닝만에 강판당하고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조정훈의 진단명은 내측 측부 인대 손상이다. 이는 대부분의 투수에게서 나타나는 인대 마모 현상으로, 이진오 코치와 이효봉 해설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심각한 부상이라기보다 조정훈이 다른 투수들보다 예민해서 발생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관련 기사 2011년 기준, 기사에서는 '어깨 부상'이라는 말 대신 '어깨 통증'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깨 역시 팔꿈치와 유사한 원인의 통증으로 짐작된다. 조정훈 본인은 부상에 대해 "몸이 좋지 않을 때 관리해야 하는데 계속 하다보니 악화됐다. (경기당 40~50개씩 던지는 것도 아니고) 부상이 포크볼 때문은 아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내 욕심이 화를 부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잘 하려고 하다보니 서둘렀다"고 밝혔다.

2008~2009 시즌 설명에서도 나와 있듯이 적잖은 사례들을 참고할 때 포크볼과 팔꿈치 부상의 상관관계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조정훈의 경우는 본인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출전 의사로 인해 부상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피칭을 감행하여 부상을 입었다고 하는 편이 옳다. 또한 이 과정에서 SK 와이번스 팬들의 어이없는 반응이 대차게 까이기도 했다. 상대 팀이지만 선수가 부상당하든 말든 자기 팀 감독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에 더 집중하면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7월 15일, 기사에 의하면 조만간 다시 피칭을 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하게 될 듯하다. 관련 기사 그리고 수술을 하면 올 시즌은 물론 내년 시즌도 통째로 날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재활만 어설프게 하거나 무리하게 조기 복귀하게 될 경우 염종석처럼 커리어를 몽땅 날려 먹게 될 가능성이 높다.

KBO 올스타전 투표에서 선발되긴 했는데, 부상 상태가 워낙에 심각하기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다.

7월 20일, 기사에 의하면 재활로는 무리가 있어 수술을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햤다. 관련 기사 참으로 이상한 공통점은, 어찌된 게 2009 시즌 다승왕 트리오인 윤성환, 아킬리노 로페즈, 조정훈 모두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8월 8일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결국 수술을 받고 현재 미국에서 1차 재활 중이다. 기사

9월 16일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올해에 군 입대를 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1 관련 기사2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5승 3패 ERA 4.94 WHIP 1.31를 기록했다.


2.5. 2011~2016 시즌[편집]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

조정훈의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메시지.


2010 시즌이 끝난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사회복무 기간 중에도 상동 야구장에서 재활 및 훈련을 겸한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2일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오래고 오랜 기다림 끝에 2년 간의 복무를 끝마치고 드디어 소집 해제되어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의 귀환을 알렸으나 오른쪽 팔꿈치와 몸 상태가 만족할 정도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즌과 동시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빠르면 5~6월에나 복귀한다고 밝혔다. 1월 말이 되었는데도 아직 조정훈의 컨디션이 70%에서 더이상 올라가지 않고 있다고 김시진 감독이 탄식했다. 조정훈의 복귀 시점은 7월로 늦춰 잡았다고 밝혔다. 2월 6일,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서는 '사이판에서 1차 전지훈련을 마치고 2차 스프링캠프를 위해 가고시마현으로 이동했지만, 조정훈은 특별 관리 대상으로 사이판에 남아 2주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사이판의 따뜻한 날씨가 재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2월 20일, 드디어 조정훈이 가고시마현 전지훈련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복귀 시점은 아무리 빨라도 7월 이후라고 밝혔다. 가고시마현 전지훈련때 다시 팔꿈치 통증이 찾아와 결국 전반기에 1군 복귀에 실패했다. 6월이 되어도 팔꿈치 통증으로 복귀 시점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 구단은 조정훈의 팔꿈치 통증이 계속되어 수술 대신 9일 조브 클리닉에 가서 감바델라 박사에게 검진을 받고 재활 과정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결국 2013년에는 복귀하지 못했으며, 2013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재검사한 결과, 인대 손상이 발견되어 다시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후 기사에 따르면 동년 12월부터 10개월 과정의 재활 프로그램에 돌입했다고 한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제발 돌아와서도 몸 건강하길 바라고 있다.

2014년 2월 26일, 10개 구단이 등록 선수 명단을 발표했는데, 롯데 자이언츠의 명단에서 조정훈은 빠져 있었다. 완전한 회복을 위해 신고선수로 전환되었고, 2014년에도 사실상 출전은 불가능하다.[18]

그리고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연일 140km/h 이상을 기록한다는 기사와 함께 장원준이 떠난 후 선발진을 지지해 줄 천군만마같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며 사실상 복귀가 초읽기로 다가오고 있다.

2015년 3월 8일, SK 와이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팀의 2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2이닝만 던지고 내려갔다. 하지만 2이닝 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날 직구 최고 구속은 145km/h까지 나왔으며 2010년 6월 13일 한화 이글스전 이후로 1,730일만의 복귀다.

하지만 시범경기 2번째 등판에서 갑자기 구위가 감소했고, 구속도 10km/h 정도 뚝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컨디션 저하에 롯데 자이언츠는 잔뜩 긴장했고, 개막 엔트리뿐만 아니라 선발진 진입까지 노리던 조정훈은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 내려간 이후 4월 2일 삼성 라이온즈과의 퓨쳐스리그 경기에서 3⅔이닝 3안타 2볼넷 5삼진 1실점을 기록한 뒤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팔꿈치 통증은 없지만, 팔꿈치에 붓기가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게다가 늘 던지고 나면 팔꿈치가 붓는 게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4월 30일 기준으로, 1개월 째 등판을 못 하고 재활군에 머물고 있으며 던진 후에 회복이 느리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6월 복귀 역시 쏙 들어간 상태다.

7월 15일 팔꿈치에 물이 차오른다는 기사가 났고 2015 시즌에도 기약 없는 재활이 계속됐다.

2016년 1월 12일, 세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는다는 기사가 났다. 이로써 2016년에도 조정훈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이대로라면 재활을 끝낸다고 하더라도 그닥 기대는 되지 않는 상황이였다.


2.6. 20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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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복귀전을 치른 날의 모습




그의 야구 인생은 마치 너무 빨리 떨어진 포크볼 같았다.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

25살 젊은 에이스는 32살이 되어 돌아왔다.

7년만에 돌아온 에이스는 사직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SPOTV 조정훈의 포크볼.


2017년 4월 22일, 퓨처스리그 경기에 등판하여, ⅔이닝 2실점으로 부진했다. 그 후 2군에서 주로 중간계투로 나서고 있으며 7월 7일 기준으로 퓨처스리그에서 18경기 30이닝 5홀드 ERA 3.30을 기록 중이었다. 그리고 2017년 7월 7일, 7년만에 드디어 1군에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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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닝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7월 9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8회초에 등판하여 무려 2583일만에 1군 등판을 1이닝 동안 4타자를 상대로 2탈삼진을 기록하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6대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올라왔지만 1군 복귀전에서 호투하여 팬들의 함성을 받았다. 특히 주무기인 포크볼의 위력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또한, 복귀전 결정구를 포크볼로 선택하며 그를 기다린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연호에 화답했다.

하루를 휴식하고 7월 1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8회말 등판했다. 선두 타자 하주석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이후 두 타자를 범타 처리하고 정근우를 고의사구로 거른 후 1, 3루에서 이용규문규현의 좋은 수비 도움을 받으며 위기를 탈출했다. 9회초에 앤디 번즈의 홈런으로 승리요건을 갖췄으나 손승락이 동점 홈런을 허용해 아쉽게 1군 복귀 첫 승은 다음 기회로 미뤄지게 되었다.[19]

7월 12일 경기에서는 휴식을 부여받았으며 7월 1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8회말 등판해 땅볼 유도 3개로 1이닝을 막아냈다. 2사 후 볼넷 두 개를 내주며 위기를 맞았지만 임익준에게 3루 땅볼을 유도 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윤길현, 장시환 등이 모두 부진하면서 2군으로 내려간 상태라서 필승조 롤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당연히 이 둘보단 잘한다. 하지만 아직 부상에서 복귀한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카드라고 볼 수는 없다.

닷새를 휴식하고 7월 18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공 10개를 던져 탈삼진 1개를 곁들인 깔끔한 삼자범퇴로 복귀 후 처음으로 홀드를 챙겼다. 이 날 조정훈의 백미는 1사 후 정병곤을 상대로 탈삼진을 잡는 모습인데, 여전히 위력적인 포크볼을 결정구로 사용하여 탈삼진을 이끌었다. 박해민에게도 포크볼로 땅볼을 유도해 이닝을 마무리를 지었다. 그 후 손승락이 깨끗하게 1이닝을 막아내고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홀드를 기록했다. 이로써 선발 투수가 7이닝을 먹으면 조정훈이 1이닝을 책임지고 손승락이 뒷문을 잠궈 세이브를 가져가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나왔다.

하루를 휴식하고 7월 20일 경기에서는 이승엽을 뜬공으로 처리한 후 이원석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조동찬을 탈삼진, 이지영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날은 145km/h까지 속구 구속을 끌어올렸고 커브와 포크볼을 적절하게 섞어 사용했다.

다시 하루를 휴식하고 7월 22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는 8회말에 등판하여 볼넷 2개를 내주었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9회초에 기록한 1점을 손승락이 9회말에 지켜내어 무려 7년 2개월, 2620일만에 승리 투수가 되었다. 큰 부상을 당한 투수가 무려 7년이 넘는 공백을 겪고 돌아와 다시 승리 투수가 된 것은 KBO 리그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 이후 이런 기사가 떴다. 다시 일어난 조정훈이 고맙다

나흘을 휴식하고 7월 27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대3 동점으로 맞선 9회초 등판 했으나 연속 안타를 허용하는 바람에 3실점을 하고 첫 패전의 멍에를 쓰고 말았다. 1사 후 이용규에게 볼넷을 내준 후 연속 안타를 허용한 점이 아쉬운 점 1, 3루에서 윌린 로사리오에게 적시타를 내줬고 김태균에게 안타를 내줄 때 우익수 손아섭의 송구 실책까지 겹쳐 2점을 더 내주고 강판되었다.[20]

그 후 이틀을 휴식하고 7월 30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2대1로 점수를 내준 8회말 2사 2루에 등판해 최정을 거른 뒤 정의윤과 승부를 펼쳤고 132km/h 구속의 포크볼로 결정구를 사용해 탈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후 팀 타선이 9회초 역전에 성공하고 손승락이 마무리 지으면서 시즌 2승을 챙겼다.

다시 이틀을 휴식하고 8월 2일, LG 트윈스전에서는 손바닥 통증을 호소한 손승락의 뒤를 이어 2사 2, 3루에서 탈삼진을 잡고 연장 10회말까지 올라오는 투혼을 보여주었으나 2사 1, 2루 1점차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정훈은 이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보이고 말았으며 그걸 지켜본 롯데 자이언츠 팬들도 함께 울었다.

하루를 휴식하고 8월 4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등판하여 이정후에게 1사 후 2루타를 맞았지만 아웃 카운트 2개를 잡고 손승락과 교체되었다.

다시 하루를 휴식하고 8월 6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탈삼진 2개를 곁들인 삼자범퇴로 시즌 3홀드를 챙겼다.

또 다시 하루를 휴식하고 8월 8일, kt wiz전에서는 아웃 카운트를 1개 잡는 동안 멜 로하스 주니어에게 홈런을 맞고 2실점을 기록해 박세웅의 10승을 날렸고 팀의 역전을 허용했지만 팀은 5대 4로 역전승을 거뒀다.[21]

이틀을 휴식하고 8월 11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9회말 등판하였다. 이 등판이 통산 NC 다이노스 상대 첫 등판이었는데 1사후 박민우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상대 중심타자인 나성범 그리고 전날 끝내기 패배를 안기게 만든 재비어 스크럭스를 모두 자신의 전매특허인 포크볼로 삼진을 잡아내며 연장승부로 이끌었다.

닷새를 휴식하고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7회말에 등판했는데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았지만 볼넷 2개를 내줘 고전했고 이명우로 교체되었다. 8월 18일에는 8대4로 앞선 연장 12회에 등판해 올 시즌 첫 연투였다. 이택근김하성에게 연속으로 2루타를 내줘 1실점을 하면서 출발은 불안했으나 이후 세 타자를 탈삼진 두 개를 곁들이며 막아내 경기를 매조지었고, 팀은 4위로 올라섰다. 특히 채태인을 상대로는 146km/h의 속구로 허를 찌르며 탈삼진을 잡았고 마지막 타자 김민성에게는 자신의 주무기 포크볼로 탈삼진을 솎아내는 장면이 이 날의 주요 부분이다.


파일:조정훈/2017.jpg


다시 닷새를 휴식하고 8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8회말 2사 2, 3루 위기에 등판했다. 7대5로 안타 하나면 동점인 상황에서 타율 1위 김선빈을 상대로 포크볼 3개로 탈삼진을 처리하며 큰 위기를 벗어나면서 시즌 4홀드를 기록했다.

이틀을 휴식하고 8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4:1로 앞선 7회초에 등판했다. 3일만에 등판에서 김웅빈, 고종욱, 이정후를 각각 좌익수 뜬공, 탈삼진, 유격수 땅볼로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돌려세우며 시즌 5홀드를 기록했다.

이틀을 휴식하고 8월 2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5:5로 맞선 7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했는데 아웃 카운트 1개는 잡았으나 어수선한 상황이 벌어지고 폭투가 나오며 역전 점수를 내주고 말았다. 이후 8회말에 박세혁에게 안타를 내주고 이명우와 교체되었는데 책임주자 득점을 내줘 1실점을 허용했다.

다음날 8월 30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시즌 두 번째 연투를 했는데 무사 2, 3루 위기를 맞았지만 이후 1실점만 내주고 침착하게 범타 처리를 하며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사흘을 휴식하고 9월 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5:2로 앞선 8회초에 등판해 공 단 9개로 깔끔하게 삼자범퇴 처리하고 시즌 6홀드째를 챙겼다. 이 날 투구의 하이라이트는 윌린 로사리오와의 승부인데 풀카운트에서 포크볼을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으로 집어넣어 탈삼진을 이끌어냈다.

나흘을 휴식하고 9월 8일, 삼성 라이온즈전에거는 7회초 1사 후 등판해 8회초 2사까지 탈삼진 1개 포함 4타자를 깔끔하게 범타 처리했다. 그 사이에 7회말 나경민이 폭투로 득점해 리드를 잡았고 이후 이 득점이 결승점이 되면서 시즌 3승을 기록했다.

하루를 휴식하고, 9월 10일, kt wiz전에서는 6회말 무사 1, 2루 위기에서 올라와 안타 2개[22]를 허용했고 장시환의 책임주자 실점을 허용했지만 이후 상황을 막아내며 리드를 지켰다.이후 7회말에도 다시 올라와 삼자범퇴를 처리하며 2이닝을 막아주면서 시즌 7홀드를 기록했다.


파일:조정훈-마무리.jpg


나흘을 휴식하고 9월 15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3대2로 뒤지던 9회초 2사 1-2루에서 김선빈이 타석에 들어서자 투입되어 김선빈을 3루수 직선타 처리시키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투구수는 단 2개를 던졌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는 9회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4승을 달성했다.

다음날 9월 16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7회초 등판해 시즌 세 번째 연투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탈삼진 하나 곁들인 깔끔한 삼자범퇴로 이닝을 정리하고 내려갔다.

닷새를 휴식하고 9월 22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공 10개로 1이닝을 깔끔하게 지우며 시즌 8홀드를 기록했다.

사흘을 휴식하고 9월 26일, 한화 이글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해 아웃 카운트 4개를 무실점으로 처리했다.

전반적으로 내년이 더 기대되는 투구를 보여줬다. ERA는 3.91이지만 오히려 ERA보다 FIP가 낮아 수비에서 손해를 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원하는 선발 투수로 복귀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인데, 레일리-린드블럼-박세웅-김원중으로 이어지는 4선발 체재가 완성되었고 조정훈이 중간계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물론 송승준이 본격적으로 노쇠화되기 시작할 무렵이기 때문에 5선발 자리를 노려볼 수 있겠지만, 그러면 롯데 자이언츠는 조정훈의 대체자를 다시 찾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일단 내년에 송승준선발 투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와 구승민윤성빈 등 유망주들이 1군 콜업 시 어느 포지션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결정날 듯 하다.


2.6.1. 준플레이오프[편집]



파일:준플레이오프-조정훈.jpg


10월 8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박진형을 뒤를 이은 8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을 탈삼진 두개와 함께 깔끔하게 틀어막아 주었다.

10월 9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어제에 이어 연투를 하였지만 아웃 카운트 5개를 책임져 주었다. 그야말로 팀을 생각하는 진정한 투혼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3~4차전에서는 필승조들이 올라올 상황이 없어[23] 휴식을 취했고, 10월 15일 5차전에 선발 투수 박세웅의 뒤를 이어 무사 1, 3루라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등판했으나 그 전에 몸을 풀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지[24][25] 영점이 잡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⅔이닝 4실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팀은 결국 0대9로 탈락하며 조정훈의 8년 만에 돌아온 포스트시즌도 함께 막을 내렸다.


2.7. 2018 시즌[편집]



파일:조정훈-2018년.jpg


조원우 감독의 배려로 국내에서 천천히 몸을 만들었다.

이후 4월 29일 2군에 등록되었고,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140km까지 나왔다.

그리고 5월 29일 1군 등록 후, 다음날 5월 30일, LG전에서는 8회초 7: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는데, 첫 타자 정상호에게 사구를 주더니 정주현의 번트 타구를 포수 나원탁이 2루수에게 송구했는데 이게 빗나가면서 주자를 모두 살려줬다. 결국 김용의오지환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았고, 박용택에게 볼넷을 내주고 만루상황에서 이명우와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명우가 승계주자를 모두 내보내주며 최종적으로 0이닝 5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틀을 휴식하고 6월 1일, 한화전에서는 9회초 9:6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는데, 첫 번째 타자 제라드 호잉은 2루수 땅볼로 잘 잡았으나 하주석김민하의 타구를 2루수 앤디 번즈가 연속으로 수비 실책을 범하면서 2, 3루 찬스를 만들어 주게되었고, 결국 정은원, 최재훈, 정경운에게 3연속 적시타를 맞고 정태승과 교체되었다. 이후 정태승이 희비를 맞으며 최종 성적은 ⅓이닝 4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했다. 결국 다음 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가 후반기가 시작되고 7월 22일, SK전에서는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 등판해 깔끔한 투구를 선보이며 다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를 휴식하고 7월 24일, NC전에서는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여 ⅓이닝을 깔끔하게 막았다. 다음날인 7월 25일에도 역시 무난한 투구를 보여주었다. 깔끔한 투구를 계속 보인다면 다시 필승조에 합류할 수 있을 듯하다.

이후 경기에서 등판이 없다가 8월 2일 나종덕, 박세웅, 정훈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으나, 2군에서도 등판하지 못했다.

2018년 1군 최종 성적은 7경기를 등판하여 승, 패 및 세이브, 홀드 없이 ERA 16.62를 기록했다.

결국 10월 24일, 박헌도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됐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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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04:29:57에 나무위키 조정훈(야구선수)/선수 경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롯데 자이언츠가 뽑을 수 있었던 후보군에는 고려대학교 정근우, 단국대학교 오승환, 부산고등학교 정의윤, 야탑고등학교 윤석민이나 당시 고교 최대어로 꼽혔던 신일고 서동환 등이 있었기에 조정훈을 1라운드에서 뽑은 건 상당히 이례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서동환이 1순위로 점찍어두고 접촉까지 했다고 알려졌으나 몸값을 너무 높게 불러 조정훈으로 선회했다. 한편 서동환은 롯데 바로 뒷 순번인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고 계약금 5억에 입단했는데, 결과론적으로 단 한시즌도 풀타임은 커녕 부상에 시달리며 가비지 소화도 제대로 못한점을 본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게 되었다.[2] 29이닝 41피안타 21사사구[3] 당시 그동안 조정훈을 무시하던 양상문이 보는 앞에서 이룬 쾌거라고 통쾌해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2007 시즌까지 조정훈이 1군에서 보인 성적을 보면 양상문의 조치는 당연한 것이었다. 양상문은 잘 알려져 있듯이 감독 커리어 내내 지나칠 정도로 젊은 선수들을 중용해서 욕을 먹었던 감독이었다.[4] 이후 이효봉은 해설하는 경기마다 조정훈은 칭찬을 많이 했다. 다만, 조정훈 본인은 이 경기를 기점으로 어깨가 들리지 않는등 이상이 생겼고 그때문에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팔꿈치를 혹사한 끝에 부상을 입은 것같다고 스톡킹에서 밝힌 바가 있다.[5] 그 이유도 역시 포크볼이였고, 양준혁도 칭찬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였다.[6] 어깨 부상 때문에 직구 구위가 하락한 것이 이를 부추겼다.[7] 40대까지 활약한 로저 클레멘스존 스몰츠, 커트 실링, 그리고 같은 팀의 포크볼러 송승준이 던지는건 스플리터로 포크볼과는 매커니즘이 다르다.[8] 2001년 35세에 은퇴했으며, 당시 투수 생명에 비해 상당히 길었던 편이었다.[9] 그 후 2012년 포스트시즌에 드디어 플레이오프 승리를 해냈다.[10] 당시 알려진 바로는 부상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밝혔다.[11] 아킬리노 로페즈, 윤성환과 함께 다승 공동 1위.[12] 탈삼진은 175개로 류현진에 이은 리그 2위다.[13] 준PO가 중요하지 너의 개인 성적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팀이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준비해라.[14] 이 이닝에서 희생플라이를 내주며 추가점을 허용했다.[15]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조정훈하면 떠오르는 경기 중 하나가 된다.[16] 프로야구 팬이라면 알다시피 아무리 변화구가 좋다한들 포심의 구위가 좋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17] 이들의 공통점은 부상 or 혹사 후에 반드시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구단의 욕심으로 인한 조기 복귀에 따른 부상 심화를 겪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정상적인 운용을 벗어난 혹사였다. 물론 성적에 급급해 선수를 굴려먹은 당사자인 감독과 코치의 문제도 크다.[18] 다만 연봉같은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밝혔다.[19] 여담으로 이 날 TV CHOSUN전원책 앵커는 종합뉴스 9 클로징에서 7월 9일 등판을 소재로 하여 조정훈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20] 이날 교체된 포수 김사훈이 포크볼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해 결정구의 부재가 아쉬운 경기였다.[21] 사실 이건 멜 로하스 주니어가 낮게 떨어지는 걸 워낙 잘 친거라 어쩔 수가 없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22] 실점이 되는 안타는 문규현의 느린 풋워크가 만들어낸 실책성 안타에 가까웠다.[23] 3차전은 대패, 4차전은 대승을 하였다.[24] 이미 3회부터 박세웅이 제구가 계속 높게 형성되고 구속이 하락하는 등 위험 신호가 잡혔으나, 중간계투들은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5회 위기가 닥치자 그때서야 조정훈 혼자 부랴부랴 몸을 풀기 시작하였다.[25] 당시 해설위원도 언급하였듯이 조정훈은 오랜 부상과 재활의 반복으로 가뜩이나 타 투수에 비해 몸을 풀 시간이 많이 필요한 선수였다.[26] 몸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