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kt 소닉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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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창기
2. 과도기(금정체육관 시절)
2.1. 2003-04 시즌
2.2. 2004-05 시즌
2.3. 2005-06 시즌
3. 사직체육관의 시대
3.1. 2006-07 시즌
3.2. 2007-08 시즌
3.3. 2008-09 시즌
4. KTF에서 KT로, 매직윙스에서 소닉붐으로
4.1. 2009-10 시즌
4.2. 2010-11 시즌
4.3. 2011-12 시즌
4.4. 2012-13 시즌
4.5. 2013-14 시즌
4.6. 2014-15 시즌
4.7. 2015-16 시즌
5. 허훈 - 양홍석 원투펀치의 시대
6. 논란의 수원 연고지 이전



1. 초창기[편집]


1961년 기업은행 실업 농구단으로 창단했다.[1] 이후 1997년 의류/유통 재벌인 나산그룹에서 기업은행 농구단 자체를 인수하지 않고 선수단만을 인수,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하여 광주 나산 플라망스로 창단하였다.[2]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은 남자 농구팀을 포기했으며 그 대신 훗날 여자 배구팀을 창단하게 된다. 황유하 감독, 김남기 코치와 김상식, 이민형, 김용식, 김현국, 장창곤, 박상욱, 김영주, 채명석, 김승환, 이호재, 이병률, 황준삼 등의 국내 선수와[3] 용병으로 에릭 이버츠, 에릭 텔리가 있었다. 1997 시즌에는 정규 리그 5위로 6강에 진출하였으나[4] 이후 모기업의 부도로 인한 잦은 모기업 변경 및 잦은 연고지 이전으로 인해 KBL의 비인기 팀 중 하나로 추락하였다. 심지어 프로 원년에 홈 코트로 이용했던 광주 염주종합체육관이 비싼 대관료에 비해 평균 관중이 500여 명밖에 되지 않아 입장 수입 측면에서 적자를 보았고,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던 전라북도 군산시월명체육관에서 일부 홈 경기를 치른 후 더 반응이 좋아 이듬해 월명체육관으로 홈 코트를 사실상 이전하여 광주광역시 연고는 명목으로만 남았다. 또한 일부 경기는 월명체육관 대신 여수시의 흥국 체육관에서 진행되었고, 골드뱅크에 인수된 후 때마침 여수에서 진남체육관을 신축하면서 여수시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1998 시즌 이후 5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어도 이 5시즌 동안 한 번도 꼴찌를 기록한 적이 없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 골드뱅크로 넘어가기 전 시즌이었던 1998-1999 시즌 역시 팀 상황이 엄청나게 처참했지만, 하필이면 어느 연패기록 종결자 팀32연패라는 밑바닥을 깔아 준 덕분에 꼴찌를 면했다. 그 와중에 1999년 2월 28일 대구 원정 경기의 패배로 동양의 32연패를 끊어주기도 했다.[5] 고의 패배 의혹이 나오기도 했으나, 나산 측에서는 황유하 전 감독이 전날 경기로 인한 피로로 인해 모든 선수들을 골고루 기용한 것 등을 예로 들며 부정하였다. 어찌보면 꼴찌를 한 적이 없는 것에 있어서는 맨날 꼴찌에만 머물렀던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산의 화의신청 이후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인터넷쇼핑몰 업체였던 골드뱅크[6]에 인수됐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창단 감독이었던 황유하 감독은 시즌 후 전격 해임됐다. 1999-2000 시즌 후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여 KBL의 승인을 받아 전라남도 여수시로 연고지를 이전했고, 2001년 6월에 코리아텐더로 팀명을 변경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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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 시즌이 끝난 후 팀 사정이 악화되어 진효준 감독이 사임했고, KBL의 관리를 받으며 팀을 이어 가야 했다. 2002-03 시즌에는 코치 없이 이상윤 감독대행 단 1명만의 지휘 하에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전형수가 팔려 나가면서도 에릭 이버츠, 황진원, 정락영, 변청운, 최민규 등을 앞세워 정규리그 4위[8]를 차지하여 기적을 일으켰고,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장훈이 버티고 있는 서울 삼성 썬더스마저 꺾고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 1위 동양 오리온스김승현-마르커스 힉스 조합을 못 이겨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렇게 호성적을 거둔 후 시민구단으로 개편하는 방안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무산됐고, 2003년 9월 1일 여수시에서 당시 기아→모비스 팀명 변경과 함께 울산으로 떠나서 프로농구 팀이 없던 부산광역시연고지를 이전해서[9] 일단 팀의 매각을 모색하게 되었다. 부산 이전 초기에는 금정실내체육관에서 경기를 했다.


2. 과도기(금정체육관 시절)[편집]


파일:부산 KTF 매직윙스 엠블럼.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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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텐더 푸르미 농구단 연고지가 여수에서 부산으로 옮겨졌고 그 농구 팀이 새 이름인 '코리아 텐더 맥스텐(Max10)'으로 바뀌었다(2003년 후기). 부산 금정 체육관을 홈 코트로 활용하다가 모기업의 경영난 때문에 KTF(KT 계열)에 팔렸다.

2.1. 2003-04 시즌[편집]


코리아텐더의 4강 신화를 이루어낸 이상윤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팀을 떠나게 됐고, 상무 농구단의 감독을 맡고 있었던 추일승이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2001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대모비스로 모기업이 이관되는 과정에서 울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되어 당시 부산 연고는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었다. 이 전략은 성공해서 2003년 11월 KTF가 팀을 인수하여 부산 KTF 매직윙스[10]가 되었다. 2003년 11월 18일쯤에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전자랜드와 코리아텐더의 농구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 다음에 11월 22일쯤에 'KTF(KT 계열)'라는 이름으로 출전했다.

추일승 감독은 KTF 초대 감독으로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KTF 매직윙스의 창단식은 2004년 1월 18일 대구 오리온스를 상대로 열렸으나, 76-81로 패하면서 창단식을 열게 된 경기에서 8연패에 빠졌다.

결국 인수 후 첫 시즌에는 7위 서울 SK와 승패(19승 35패)가 같지만 상대전적에서 2승 4패로 밀리면서[11] 정규 리그 8위로 마감하였다.

2.2. 2004-05 시즌[편집]


2004-05 시즌 외인 듀오로는 애런 맥기게이브 미나케 듀오를 앞세웠다. 선두 TG삼보의 개막 7연승을 저지하고, 한때 1위까지 올라서기도 했으며 32승 22패의 호성적을 거두었지만, 6라운드에 3승 6패를 하는 부진으로 인해 결국 단테 존스SBS에게 밀리면서 4위로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에서 게이브 미나케 대신에 슈팅이 좋은 크니엘 딕킨스를 영입했으나 5게임차[12] 5위팀인 삼성을 상대로 2경기 모두 접전을 펼쳤으나 결국 2패로 물러나고 말았다.


2.3. 2005-06 시즌[편집]


2005-06 시즌에도 치열하게 중위권 싸움을 한 끝에 29승 25패, 4위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이젤 딕슨을 영입하면서 외국인 선수의 힘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딕슨이 2월 25일 오리온스전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위기에 빠졌고, 정규시즌은 대체 외국인선수 켄 존슨과 함께 어찌어찌 버티면서 4위를 했으나 상대전적이 앞섰던 5위 KCC에게 2패로 물러났다.[13] 코리아텐더 시절을 포함해서 플레이오프 7연패에 빠진 건 덤.


3. 사직체육관의 시대[편집]



3.1. 2006-07 시즌[편집]


2006-07 시즌을 앞두고 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당초 연습체육관이 경기 용인에 있었으나, 추일승 감독은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을 보조체육관까지 임대 형태로 연습체육관을 이전하게 된다. 선수단도 부산 사직동에 자취 및 출퇴근을 하면서 연고친화적인 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실제로 이 장면은 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나와있다.

시즌 개막 전, 조상현이 창원 LG로 이적하며 꼴찌 후보로 손꼽혔지만, 외국인 선수들인 애런 맥기와 현 새크라멘토 킹스 코치인 필립 리치의 활약, 그리고 우수한 선수단의 깊이[14]를 앞세워 창원 LG와 공동2위(상대전적 따지면 3위)를 해냈고 6위 안양 KT&G 카이츠를 간단하게 제압했으며, 2위 LG가 퍼비스 파스코의 심판 폭행 사건으로 자멸하면서 단숨에 창단 첫 KBL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4강 시리즈 3승 1패였고 모두를 놀라게 했다.

KBL 파이널 최종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중의 명승부[15]를 이루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KTF는 드라마틱한 준우승과 함께 신흥 강호로 알리게 된다.


3.2. 2007-08 시즌[편집]


2007-08 시즌을 앞두고 김도수와 조성민은 상무에 입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양희승을 영입하게 된다. 추가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리온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전자랜드로 지명권이 넘어간 이후 다시 트레이드한 신인 김영환을 영입하게 된다.

지난 시즌의 준우승으로 인해 기대감이 높아졌고 전문가들은 상위권 후보로 꼽았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의 상무 입대와 줄부상[16] 및 외국인 선수 계약이 쟈유계약제에서 드래프트 제도로 다시 변경된 것에 적응하지 못해 시즌 초반 5경기에서 1승 4패를 하면서 대구 오리온스가 추락하기 전까지 최하위에 처졌다. 게다가 이 때 뽑은 두명의 외국인 선수가 한꺼번에 닥버로우를 타면서 개막 7경기만에 두 선수가 모두 교체되고 마는 사태가 일어났다!

11월 중순에 4연승을 달리면서 공동 4위까지 올라섰지만 이후 22경기째까지는 11승 11패 5할 승률에서 버티다가 2007년 연말에는 6연패를 하면서 8위로 떨어졌고, 반등의 실마리를 잃게 되었다. 결국 3월 14일 전자랜드가 모비스를 잡아서 PO 진출 실패가 확정되었고 최종적으로는 24승 30패, 7위 전자랜드와 5게임차의 8위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마지막 홈경기는 코리아텐더 시절 연고지였던 여수시에 있는 진남체육관에서 개최했다. 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65&aid=0000016562


3.3. 2008-09 시즌[편집]


2008-09 시즌에는 1라운드에서 2승 7패로 추락하고 12월 14일 SK에게 패하면서 8연패를 기록하는 등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결국 12승 42패를 기록하며 재정 문제로 어려웠던 나골코 시절에도 겪지 않았던 창단 첫 꼴찌라는 굴욕을 당했다. 팀의 영광을 함께했던 추일승 초대 감독은 2008-09 시즌을 마지막으로 6년간의 과도기-정상도전기-시련기를 뒤로하고 물러나게 된다. KTF의 이름으로는 2009년 3월 22일 LG전이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 KTF에서 KT로, 매직윙스에서 소닉붐으로[편집]



4.1. 2009-10 시즌[편집]


파일:부산 kt 소닉붐 엠블럼.svg
2009년 비시즌 중, 모기업인 KTF가 KT와 상호합병을 하면서 농구단도 KT에 인수되어 팀 명칭이 부산 kt 소닉붐으로 바뀌었다. KBL 홈페이지에도 KTF의 흔적은 없어지고, 2003~2004시즌 이후의 기록이 모두 kt로 인계되었다.

KBL 최고명장인 원주 TG 삼보 엑서스-원주 동부 프로미의 前 감독으로 알려진 전창진 kt 2대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참고로 당시에 kt가 운영하는 e스포츠팀인 kt 롤스터의 팀명이 'kt 핑거붐'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후에 저게 영어 속어로 영 좋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다른 이름으로 바꿨는데 그게 '알파붐'.(...) 이게 다 kt 소닉붐 때문이다. '-붐'자 돌림으로 통일하기 위함이었던 듯... 했지만 kt 알파붐은 지금의 kt 롤스터가 되고 kt 위즈 역시 붐자 돌림과 상관이 없어지면서 붐자 돌림의 유일한 팀은 졸지에 이 팀이 되어버렸다.

2009-10 시즌 원정 유니폼은 빨강과 검정을 혼합한 유니폼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홈 유니폼은 프로야구에서의 한화 이글스의 05~07 시범경기 이래 레드 컬러 위주의 유니폼이 되었다. 2010-11 시즌의 경우 빨강과 검정을 혼합한 색은 그대로이지만 대신 Olleh kt가 자리잡고 있다. 참고로 유니폼의 스폰서는 나이키(2009~2010) - 르까프! 2011년을 맞아서 유니폼을 교체했는데 가슴에 kt가 사라지고 Olleh만 자리잡고 있다.

2009-10 시즌 역시 전 시즌과 큰 차이가 없는 전력으로 상위권은 힘들 것으로 예상 되었으나 제스퍼 존슨의 무시무시한 득점력(득점 1위)과 신기성의 부활, 빵빵한 포워드라인, 새로 부임한 전창진 감독의 역량 등 여러가지 요인이 합쳐지면서 의외로 잘 나가고있으며 12월 1일 현재 무려 지난 시즌 전체 승수[17]를 넘어선 13승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약점이었던 골밑을 안양 KT&G 카이츠와의 트레이드(나이젤 딕슨 ↔ 도널드 리틀 + 2010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를 통해 보완하면서 약점이 없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뭐야 이거... 그러나 딕슨이 kt에서 영 아닌 모습을 보여주고 2010년 시즌을 앞둔 드래프트에서 인삼공사는 뜻밖의 선수인 이정현을 지명하는데

결국 정규리그에서 40승 14패로 울산모비스와 동률을 기록하였으나 상대전적에서 밀리며 최종적으로 2위가 되었다.

KBL이 KBO 한국시리즈와 마찬가지로[18]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 중립(서울) 경기를 포함시켜버렸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kt와 롯데 자이언츠의 동반 선전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은 3월 말에서 4월 사이에 치러지는데, 이 시기에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2008 시즌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롯데의 영향으로 인해 안그래도 야구가 강세인 부산에서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올해 봄의 여신은 지각쟁이

그러나 정작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전주 KCC 이지스에게 밀리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 시즌에 KCC에게 상대전적이 밀리기는 했다.

정작 이 시즌 챔결에서는 4차전을 마치고 이동일 없이 바로 다음날 서울에서 5차전을 치르는 병크가 작렬해서 KBL은 미친듯이 까였다.


4.2. 2010-11 시즌[편집]



(자막: 스타 플레이어 없는 팀) 함께 뛰고,

(자막: 평균신장 최하위팀) 한발 더 뛰고,

(자막: 2년 전 꼴찌팀) 뛰고 또 뛰었습니다.

kt 소닉붐 우승

함께 뛰어 이룬 팀웍의 승리!

do do do, Olleh!


2010-11 시즌에는 신기성이 전자랜드로 떠나서 특출난 스타 플레이어 없이 시작했고, 평균 신장 최하위 팀이 되었고,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부상군단이 되어버렸다.(제스퍼 존슨[19]김도수송영진없어!) 게다가 김도수는 시즌아웃(...) 이렇게 망해버린 시즌 같지만, 한발 더 뛰는 농구가 먹히고, 전창진 감독의 능력과 박상오의 포텐폭발 덕택에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2011년 3월 13일, KBS 1TV로 생중계되었던 동부와의 원정경기에서 87-67로 완승하면서 KTF 인수 9년만에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기 이른다. 그리고 그 시즌, 승률이 4분의 3을 넘어섰다![20]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플레이오프에서 제스퍼 존슨의 부상 공백을 이겨내지 못하고 5위 창원 LG를 꺾고 올라온 4위 원주 동부 프로미에 막혀 1승 3패로 탈락했다.[21] 2년 연속으로 4강 직행하고도 6강을 거친 팀에게 덜미를 잡힌 건 덤이었다. 결국 그 시즌의 챔피언은 KCC가 가져가게 된다.

전임 추일승 감독 시절부터 애지중지 모아놓은 포워드들의 포텐폭발, 그리고 이들의 포텐폭발을 이끌어낸 전창진 감독으로 인해 2009-10 시즌부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 평. 다만 압도적인 정규시즌에 비해 PO에선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 게 문제인데, 원래 스타와 높이의 부재를 조직력으로 극복하는 팀 컬러상 PO에서 높이의 팀을 만나면 상성상 열세일수밖에 없다.

같은 부산 연고라 그런지 롯데 자이언츠와 똑같은 노래를 쓰고 있다. 또한 응원단장[22]의 영향을 받아서 한화 이글스의 응원곡도 몇 개 쓰고 있다.[23] 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숙소를 부산에서 수원으로 변경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사실 KBL 대다수 팀들이 수도권에 연습장을 지으면서 큰 문제는 없어보이지만 하나의 사건이 나오게 된다. KTF-kt 통합과 함께 연습체육관을 지었는데 장소는 북수원이며 올레 빅토리움이다.


4.3. 2011-12 시즌[편집]


2011-12 시즌에도 작년의 전력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3위로 정규시즌을 마쳤고, 전자랜드와의 5차전 접전으로 4강을 찍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다. 허나 이 시기에 전창진 감독과 찰스 로드 간의 불화가 심해지면서 팀이 한 때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조성민이 3점 슈터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시즌부터다.

또한 비운의 신인 방덕원이 프로에 잠시 몸담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4.4. 2012-13 시즌[편집]


2012-13 시즌 전에는 박상오를 사인 앤 트레이드로 SK로 보내고 2012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를 얻었고 FA로 서장훈을 영입했고, 2012년 외국인 트라이아웃에서는 7순위로 대리언 타운스, 14순위로 브랜든 코스트너를 영입했다. 그러나 브랜든 코스트너가 부상을 당하면서 개막 한 달전 제스퍼 존슨으로 대체하였다. 2012년 10월 신인드래프트에서는 1순위로 중앙대 센터 장재석을 지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강 언저리의 중하위권에서 고전했으며 그나마 2012년 10월 드래프트에서 영입한 장재석은 부진으로 2번이나 2군에 다녀왔다.

그래도 돌아온 제스퍼 존슨, 조성민의 활약으로 6강 언저리는 유지했으나 2월 되면서 제스퍼 존슨, 조성민의 체력이 떨어지자 kt도 결국.. 결국 3월 10일 전자랜드전에서 패배함으로 인해 6위 삼성과 2게임차로 벌어지고 6강은 더욱 멀어져갔고 3월 15일 삼성이 KCC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최종적으로 6강 탈락이 확정되었다. 6강 탈락 이유는 첫 번째는 포인트가드의 부재, 특히 김현중, 김명진이 모두 부진하면서 제스퍼 존슨, 조성민이 포인트가드를 보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특히 김현중을 데려오기 위해 보낸 김영환은 LG에서 대활약하면서 전창진의 속을 더 쓰리게 했다. 두 번째는 제스퍼 존슨, 조성민에 너무 의존했다. 제스퍼 존슨, 조성민이 모두 터지면 상위팀도 잡았지만 안 터지면 패배였다. 결국 2월 되면서 제스퍼 존슨, 조성민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점점 패하는 경기가 많아졌다. 세 번째는 서브 용병의 부진이었다. 대리언 타운스를 삼성으로 트레이드 하면서 브라이언 데이비스를 받아왔으나 몇 경기만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그 후 브라이언 로버츠, 라이언 라이트를 데려왔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있긴 있다. 엄청난 식물이었다는 것. 이래놓고 경희대 빅3 중 한 명도 못 뽑으면..

2012-2013 시즌 정규리그 상대전적은 상위권팀 전자랜드 3승 3패 동률, 모비스 2승 4패 열세, SK 1승 5패 절대 열세를 기록했으며, 중위권팀 KGC 4승 2패 우세, 삼성 2승 4패 열세, 오리온스 1승 5패 절대 열세를 기록했으며, 하위권팀 KCC 3승 3패 동률, LG, 동부에게는 2승 4패 열세를 기록했다. 전자랜드, KGC에게는 강했으나 나머지 팀에게는 약세였고 특히 중하위권팀들한테 약세를 보이면서 6강 탈락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팀의 큰 형님을 맡던 가드 조동현이 은퇴하게 되었고,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KCC의 가드 김우람과 LG의 포워드 이민재를 영입하였다.

이렇게 2012-13 시즌을 말아먹어 놓고서 2013년 9월 30일 신인 드래프트에선 경희대 빅3는커녕 4순위 지명권마저 삼성에 빼앗기는 대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타팀 팬들은 지난 시즌 6강 진입 의지가 전혀 없었던 kt의 무성의한 플레이들에 비추어 볼 때 뿌린 대로 거두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kt 팬들은 이재도로 정신승리 중..오히려 3라운드 시점까지는 이재도는 나름 해주고 있다.


4.5. 2013-14 시즌[편집]


그런데 막상 시즌 개막전에서는 용병 리차드슨과 조성민의 대활약으로 오리온스를 크게 꺾고 승리하였다. 용병을 정말 제대로 데려왔다는 반응이 대다수. 의외로 시즌 초반에는 조성민의 대활약에 힘입어 하위권이 확실하다던 좆문가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고 있다. 물론 시즌 끝나봐야 알겠지만 하위권들 경기 내용을 볼 때 kt가 꼴찌할 것 같지는 않다..

2013-14 KBL 최악의 용병이라던 트레본 브라이언트를 내치고, 영입한 불혹의 용병 아이라 클라크가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있고, 포인트가드의 부재속에서 피어난 김우람이 2군출신의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 전체적인 국내 선수들의 3점슛 확률이 나쁘지 않아 양궁농구로 어느 정도 득을 보고 있지만, 민성주나 장재석같은 선수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리차드슨의 골밑장악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리바운드를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리바운드가 평균 30개를 넘지 못하는 압도적인 밑바닥에 위치해있다. 그 덕분에 외곽슛이 터지지 않으면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어려운 모습을 노출한다. 그리고 12월 18일 전태풍이 포함된 4대 4 트레이드가 성사되었으나 김도수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받은 탓에 트레이드가 무산되고 말 뻔 했지만 무사히 넘어갔다. 오리온스가 출전정지를 감수하기로 했으며 kt로부터 보상으로 받을 것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김도수는 9경기 출장정지가 확정되었다.

한편 kt는 김도수 건으로 해서 까이고 있는데, 1차 도핑테스트가 11월 초에, 2차 도핑테스트가 12월 초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두번의 도핑테스트에서 김도수가 두번 다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경기력 향상이 아니더라도 김도수는 도의적으로 약쟁이로 낙인찍히게 되었으며 잘쓰던 선수를 도핑에 걸리니까 팔아버린다는 비난도 받게 되었다. 오리온스 측에서는 벼르고 있는지 신인지명권+이상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는듯. 덤으로 요즘 욕 많이 얻어먹고 있는 KBL도 같이 까였다.

여기서 더 보강하자면 오리온스가 원했던 주요 선수가 김도수 였는데 오랜 부상과 재활을 했던 탓에 kt 측에서 그려러니 하고 신고를 안했던 것이란 소리가 있다. 전창진 감독이 엄청 잡고 있었단 소리가 나오기도. 또한 오리온스가 뿔이 나서 일방적으로 트레이드 취소다란 소리를 한걸 서민교 기자가 받아적어서 송고한건데 서민교 기자가 기자회견에 간 30분여 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즉 오보를 의도치 않게 낸것이 되었다.

이렇게 리스크를 감수하며 전태풍을 데려와 호랑이에 날개를 단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았지만 조성민과 전태풍이 호흡문제를 보이며 2014년 1월 1일까지 5연패를 하다가 전자랜드를 간신히 이기고 연패를 끊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쑤면서 선두권이던 성적은 15승 14패로 5할 턱걸이에 전자랜드에게 쫓기게 되고 말았다. 게다가 랜스 골번의 부상으로 아이라 클라크가 거의 풀타임 가까이 뛰고 있다. 본격 노인학대. 서브 용병이 위더스인건 넘어가자. 그래도 밑의 6강권 경쟁 팀이 답보 상태를 유지하면서 계속 4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클라크노인학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랜스 골번을 내보내고 2월에 후안 파틸로를 영입했다. 그러나 주축 선수가 모두 30대 이상이라는 가장 큰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시즌 말로 접어들수록 나쁜 경기력을 보이다가 2월 27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경기에서 70:63의 역전패로 5위로 내려앉았고, 연이은 KCC와의 경기에서 연패를 이어가게 됨으로서 공동 5위까지 내려앉았다.

그래도 최종순위는 2014년 3월 5일 동부전을 80:74로 이기고 2014년 3월 6일 오리온스가 전자랜드한테 지면서 5위로 마감했고, 6강에서 4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2년 만에 재격돌, 이번에도 5경기 접전 끝에 3대 2로 이기고 4강에 진출,(전창진감독은 재임시절 유도훈감독에게는 후배에게 매운맛을 항상 보여줬다.. 3번의 포스트시즌에서 다 이겼다.) 1위 창원 LG 세이커스와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4강에서는 체력의 한계에 달하였고, LG에 3연패로 광탈하면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2013-2014 시즌의 정규리그 상대전적은 상위권팀 2위 모비스에 6패 압살, 3위 SK에 1승 5패 절대 열세, 1위 LG에 2승 4패 열세를 기록했으며, 중위권팀 4위 전자랜드, 6위 오리온스는 3승 3패 동률을 기록했으며, 하위권팀 10위 동부는 6승 압살, 8위 삼성은 5승 1패 절대 우세, 7위 KCC는 4승 2패 우세, 8위 KGC에게는 3승 3패 동률을 기록했다. 특이점은 2011-2012시즌처럼 상위권팀에게는 약하고 하위권팀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1위팀이지만 2승 4패로 선전한 LG, 9위팀이지만 3승 3패 동률을 기록한 KGC는 예외다.

시즌 이후 이광재를 2:1 사인앤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김종범을 내주고 김현중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포워드인 우승연마저 사인앤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4.6. 2014-15 시즌[편집]


2014-15 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신인지명권을 고양 오리온스에게 양도해줘야 했고, 1라운드에서 1차지명으로 이승현을 지명하는것을 그저 지켜봐야했다(그나마 다행인 것이 오리온이 kt 지명권으로는 가드 이호현선발). 결국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 14순위로 빅맨인 박철호만 지명한뒤 지명을 포기했다. 조성민이 국가대표로 뛰며 크게 활약했지만 발목부상 때문에 최소 2-3라운드는 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나마 외국인드래프트에서 뽑은 마커스 루이스와 테렌스 레더를 트레이드하고 데려온 찰스 로드, 저번 시즌 커리어의 못미치는 활약에 뿔이나 한국에서의 체력훈련을 지독하게 했다는 전태풍에게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2014년 11월 6일 기준 7연패를 찍고 있으며, 외국인 드래프트로 뽑은 마커스 루이스도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퇴출 수순을 밟고 있는 등 어려운 상황. 결국 전자랜드와 같이 8연패까지 찍었으나, 11월 12일 삼성과의 대결에서 12경기 평균득점 2.08인 이재도가 28점이나 넣으면서(...) 84-60으로 삼성을 대파하고 연패를 끊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 이재도 등의 국내 선수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6위까지 올라왔다. 전창진 감독이 이를 갈고 준비한 두 번의 오리온스전에서의 대승은 보너스 마커스 루이스를 교체한 이후로 삼성전을 기점으로 메인 용병으로 찰스 로드가 서브로 대체용병인 에반 브락 체제로 바뀌었는데 두 선수 모두 센터지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거북이 마냥 트렌지션에 둔했던 루이스 시절과는 달리 빠른 공격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이재도전태풍 같이 속공 상황에 능한 가드들이 펄펄 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재도의 포텐이 만개하며 앞선이 풍부해졌다는 평가. 신기성 이후에 내세웠던 카드들이 죄다 실패했던 때를 되돌려보면 신기할 따름.

3라운드에 접어들어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연패를 했던 전자랜드와 사이좋게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5, 6위를 사수하는 중이다. 고양 오리온스가 2라운드 kt와의 맞대결에서 이현민의 오른쪽 돌파 봉쇄가 약점이라는 것이 노출되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1라운드의 주역이었던 트로이 길렌워터가 분석당하는 여러 요소가 겹치며 급격하게 팀 조직력이 흔들리며 하향곡선을 그리며 4위권까지 노려볼만할 발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거기에 내년 초에야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조성민이 괴물같은 회복력을 보이며 D리그에서 플레이를 하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전창진 감독은 12월 중순쯤 조성민을 기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송영진이 척추 부상으로 최소 한 달간 결장하고 우승연 등 여러 선수가 부상을 당하며 실 가용 인원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12월 3일 삼성전에 조성민의 복귀를 결정한다.

그리고 12월 3일 삼성전에서 드디어 팀의 에이스가 복귀하였고 무려 17분 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19득점에 2어시스트라는 출전시간 대비 훌륭한 기록을 세운다, 이날 2차 연장 막판, 팀이 90-91 한점을 뒤진 상황에서 7초를 남기고 페이크 이후에 3점 파울을 유도하는 장면이 백미였다. 팀도 93-92로 승리하고, 조성민의 몸상태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송영진의 부상 결장 이후 밴치워머에서 김승원의 백업으로 간간히 출장하던 신인 박철호가 15득점 4리바운드의 깜짝 활약을 보이며 향후 빅맨 라인업을 더 유동적으로 돌릴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2라운드 삼성전에는 이재도가 3라운드 삼성전에는 박철호가 터지며, 유독 삼성전에 불세출의 영웅들이 등장하고 있다. 삼성이 못하는 거

12월 24일 동부전에는 2쿼터에 야투를 모두 실패하여 3득점에 그쳐 kt 역사상 역대 한 쿼터 최소 득점을 경신할 정도로 OME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고도 이 경기를 승리했다.(...)

그러나 이재도, 조성민 등이 분석되면서 kt는 부진의 늪에 빠져들어 2월 27일에 6강 PO 탈락을 확정지었으며, 사직체육관에도 관중수가 점점 줄어들어 이미 2015년 들어서 평일 경기에는 1500명도 안오고 있던 상황이었고 3월 3일 동부전에는 939명이 입장하면서 2014-15 시즌 유일한 1000명 미만의 관중수를 기록했다. 결국 2014-15 시즌 최종성적은 7위로 마감하였다.

또한 이번 시즌을 시작으로 수원시연고지 이전을 한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수원 연고 야구단 kt wiz의 홈구장인 수원 kt 위즈 파크kt스포츠 사무실이 자리 잡을 무렵 수원 호매실지구서수원칠보체육관이 개관하였으며 염태영 수원시장이 프로농구팀 유치 의사를 내비친 것. 남북통일이라도 되지 않는 한 신생 팀 창단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기존 팀 중 하나를 끌어들이는 방법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직실내체육관의 난방비로 인한 비싼 임대료 문제가 겹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만약 수원으로 연고지 이전을 한다면 프로농구는 10팀 중 6팀이 수도권에 몰려버린다.

파일:임종택 단장 페이스북.jpg
실제로 임종택 단장의 페이스북에 정말로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기냐는 질문이 올라왔었고, 이에 대해 임종택 단장은 "왜 근거없는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부산이라는 상징성과 스포츠 시장을 감안할 때 떠날 이유가 없다"고 답변을 했다. 그리고 김준교 kt스포츠 사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t 소닉붐의 수원 연고지 이전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한편 전창진 전 감독을 재계약하지 않은 것이 신의 한수로 작용했는데, 잘린지 얼마 안돼서 전 전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24]

2014-15 시즌 상대전적은 상위팀 2위 동부 3승 3패 동률, 1위 모비스 1승 5패 절대 열세, 3위 SK 6패 압살, 중위권팀 4위 LG, 5위 오리온스, 6위 전자랜드에게 2승 4패 열세, 하위권팀 9위 KCC, 10위 삼성에게 5승 1패 절대 우세, 8위 KGC 3승 3패 동률을 기록하였다. 특이점으로는 2위 동부에게 3승 3패 동률을 기록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모비스, SK[25]에게 너무 약했고 중위권팀들과의 대결에서 열세를 보이면서 6강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8위 KGC하고는 승패, 상대전적 모두 동률이었으나 공방률에서 앞서 7위를 차지하였다.

2014-15 시즌을 총평하자면 돌려막기 농구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계속되면서 신인 선수들을 돌려막기로 써야 했고 물론 이재도, 김승원 같이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도 있었으나 결론적으로는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가드진은 이재도, 조성민 말고는 보이지 않았고 몇 년간 발목을 잡던 스몰포워드진이 나아지지 않았고 해결사마저 없으면서 결국 6강 탈락으로 이어졌다. 조성민은 부상때문에 31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평균 11.1점 1.7스틸 스틸 2위로 제 역할을 해주었지만, 전태풍은 평균 11.1점 3.9어시스트에 그쳤으며, 예전같은 기량이 안 나왔고 부상으로 제 역할을 못 했다. 하지만 2년차 신인 이재도가 평균 8.5점 2.9어시스트 1.5스틸 스틸 5위를 기록하면서 작년에 비해 향상된 기록을 보였다. 첫 풀타임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후반기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엄청난 기량향상을 보여주면서 부상악령에 시달렸던 가드진에서 제 역할을 해준 선수였다. 그리고 김승원 역시 평균 6.3점 4.9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찰스 로드와 함께 kt의 골밑을 지켜주었다. 주전들이 부상, 부진에 시달릴 동안 신인 무덤이라 불리던 kt에 두 명의 신인급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쳐준 것이 kt의 위안이었다. 용병은 트레이드로 데려온 찰스 로드가 평균 16점 8.2리바운드 1.7블록슛 리바운드 7위 블록 1위, 트리플더블(득점, 리바운드, 블록) 1경기를 기록하면서 2011-12시즌급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서브 용병이 부진했고 마커스 고리, 에반 브락, 레지 오코사는 도움이 안 되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전창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한 가운데, 4월 7일 모비스 코치에 있었던 팀 선수 겸 주장 출신이었던 조동현은 kt 3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임종택 단장은 kt 출신으로 현역 시절 근성과 모범을 통해 중장기적인 팀을 목표로 조동현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시즌 후 열린 2014-15 KBL 시상식에서 이재도 선수는 기량발전상을 수상하였다.

4.7. 2015-16 시즌[편집]


조동현 감독이 이끄는 첫 번째 시즌이다.
  • 9월 12일 개막전에서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게 86 : 77로 패했다.
  • 9월 13일 홈 개막전인 삼성전에서는 74 : 76으로 패배했다.한편 이날 4695명의 구름관중이 찾음으로 올 시즌의 관중흥행을 다시 기대하게 하고 있다.
  • 9월 16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대결에서 54 : 72로 시즌 첫 승리를 기록하였다. 이 날 박상오가 27득점을 올리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였으며, 두 신인 감독과의 맞대결에서도 조동현 감독이 더 우세하였다.
  • 9월 20일 고양 오리온을 상대로 73 : 86으로 패했다.
  • 9월 24일 원주 동부 프로미 전은 꼴랑 526명(...)이 찾음으로써 무려 14년만의 최소 관중 기록. 86 : 72로 승리했지만 1만 석이 넘는 사직실내체육관에 600명도 들어차지 않은 모습은 씁쓸했다.

조동현 감독의 용병술은 15-16 시즌 현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kt의 성적도 구단 역사 최초로 시즌 내내 3연승이 단 한번도 없어서[26] 7위에서 올라갈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다만 밑에 있는 SK, 전자랜드, LG가 너무 노답이라 더 밑으로 떨어지진 않고 있다.

그러나 코트니 심스의 부상으로 외국인 선수 한 명이 빠지자 뜬금없이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잘 뛰고 있던 제스퍼 존슨을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이런식으로 지난 4:4 트레이드의 복수를 하는구나 그 후 오리온스가 조 잭슨과 애런 헤인즈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서 6라운드에서 단 4승에 그치며 4강 플레이오프 직행에 실패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6라운드에서 KCC는 전승, 모비스가 6승을 한 것을 생각하면...[27] 한편 kt는 동부가 삽질하는 틈을 타(kt는 6라운드 5승, 동부는 2승) 따라잡으려고 노력했으나 벌어진 경기를 줄이는데는 이미 늦었다.

2월 7일 홈경기에서 KCC가 턴오버를 20개나 기록하고도 kt는 94:101로 패배했다. 그리고 이어진 9일 홈경기에서 울산 모비스의 발목을 잡으면서 KCC의 16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에 도움을 주었다.

2015-16 시즌 상대전적은 상위팀 2위 모비스 3승 3패 동률(득실마진 -29), 1위 KCC와 3위 오리온스에 2승 4패 열세, 중위권팀 4위 KGC에 1승 5패 절대열세, 5위 삼성과 6위 동부에게 2승 4패 열세, 하위권팀 8위 LG, 9위 SK에게 4승 2패 우세, 10위 전자랜드 3승 3패 동률(득실마진 -19)을 기록하였다. 특이점으로는 2위 모비스에게 3승 3패 동률을 기록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이것은 모비스의 우승 실패에 큰 원인이 되었다. 다만 최다연승이 겨우 2연승이고 꼴찌였던 전자랜드에 3승 3패로 동률을 허용하고 KGC만 만나면 버로우를 타는 바람에...

시즌 최종순위는 7위, 정규리그 성적은 23승 31패를 기록하였다. 작년 포스트시즌에 못 간 4팀 중 유일하게 올해도 포스트시즌에 올라가지 못했다.


4.8. 2016-17 시즌[편집]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밀리는 바람에 조동현 감독과 송영진 코치 등 코칭스태프 전원이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성민[28] 우울한 얼굴로 혼자 쓸쓸히 우동을 먹는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려져 모든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결국 1라운드 6순위 신인으로 중앙대학교 출신 가드 박지훈을 뽑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전 시즌보다 전력이 짜임새가 있다는 평가가 있긴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심각했다. 크리스 다니엘스가 시즌 직전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타격이 커졌고, 결국 그 자리를 제스퍼 존슨의 컴백으로 메꿀려고는 하지만... 결국 골밑의 공백을 매우지 못하며 1승 5패로 시즌을 시작하더니, 그나마 믿을 구석이었던 다니엘스가 아킬레스건이 나아지더니 햄스트링 부상이 발견되면서 추가 3주 공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존슨마저 떠나보내고 나서 터진 사건이라 급하게 허버트 힐을 수소문해서 데려왔지만.... 그리고 2016년 11월 18일 전자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조성민이 4쿼터에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등 악재가 겹치고 있다. 이제 D리그도 굴리는 구단이 되었으니 한동안은 백업 선수들과 FA 영입 선수들을 팀컬러에 녹아들게 하는 선택이 나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11월 22일 부산 모비스전에서 박상오마저 부상당하면서 그렇잖아도 힘든 상황에서 기름을 부어버렸다. 55:95로 패배한 것은 덤. 다만 부상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건 감안하더라도 26일 KCC-27일 KGC-29일 SK로 이어지는 원정길에서도 3연속으로 20점차 내외로 완패하면서 6연패.

그리고 이어지는 고양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도 답이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또 패배(...). 3쿼터 초반 12점까지 앞서고 있다가 헤인즈를 막지 못하면서 지고 말았다. 오리온의 경기력도 좋지 못했지만 헤인즈, 문태종과 같은 확실한 해결사가 없는 kt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kt가 분발하길 기대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모습마저 짠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으리라.....

거기에 2라운드 전패로 9연패의 늪에 빠진 채 3라운드를 맞이하게 되었다. 3라운드 첫 경기마저 117:77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대패[29]팀 창단 첫 10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이제 연패기록 중 10연패 이상을 안 한 팀은 인삼공사밖에 없다

하지만 홈 6연전 마지막 경기인 12월 18일 인천 전자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29득점 19리바운드를 기록한 대체선수 리온 윌리엄스의 대활약에 힘입어 전자랜드를 꺾고 지긋지긋한 11연패 사슬을 드디어 끊었다!! 경기를 마치고 조동현 감독과 김현민은 울었다(...) 사실 농구팬도 광광우럭따고 한다 뒤이어 창원 LG와의 원정경기에서 83-81로 승리하여 올시즌 첫 연승에 성공했다. 하지만 24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를 꺾지 못하면서 3연승에 실패했다.

원주에서 동부를 상대로 턴오버 0개 경기를 펼쳤고, 서울 SK와의 홈경기에서 SK를 압도하면서 우위를 가져가 2번째 연승에 성공하면서 3라운드 4승 5패로 마쳤다. 다만 바로 다음날 전자랜드와의 원정경기에서 아스카를 막지 못하면서 21점차로 대패, 인삼공사과의 원정경기에서 7점차 패배를 하는 등 리온 윌리엄스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체력안배가 필요한듯.

그 와중에 애런 헤인즈가 복귀한 고양 오리온을 잡는가 하면,[30] 1월 17일 외국인 선수 2명 모두 빠진 SK와의 홈경기에선 박철호 김현민의 개삽질로 한때 18점차까지 뒤지고 있었지만 1차전 26점차를 극복하여 역전한 건 어디 가지 않았는지 막판 박상오, 김종범의 뒷심 발휘에 힘입어 87-83으로 4점차 역전승에 성공했다. 3번째 2연승+SK전 상대전적 우세는 덤. 대 SK 상대전적이 현재 3승 1패이기 때문에 SK 상대 잔여 경기를 다 지더라도 열세가 되지 않는다!! 통신사 라이벌의식 하나는 끝내주는 크트

2017년 1월 31일, 난데없이 조성민을 LG에 내주고 김영환과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하는 바람에 kt 팬들이 경악과 동시에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가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조성민을 내보낸 것에 대해 팬덤은 폭발. 내년 드래프트가 허훈, 안영준 외에는 즉전감의 선수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샐캡을 비우고근데 연봉은 김영환이 조성민보다 더 많이 받는다는게 함정 내년에 FA로 풀리는 이정현, 오세근 중 한 명이라도 잡지 못한다면 kt는 완전히 부산 팬들의 신뢰를 잃어버릴 듯 하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KGC처럼 1 2픽을 동시에 가져가고 이정현이나 오세근을 잡는 것이겠지만 kt 운에 그게 될까? ...였지만 그게 현실이 되어 KT는 1 2픽을 동시에 가져가 대박이 났고 LG는 막픽 2개를 얻어 망했다. 더구나 PO진출 실패 이후 kt 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를 떠나보냈다는걸 감안하면 당혹감을 넘어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트레이드로 온 김영환이 조성민의 자리를 물려받아 소년가장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긴 하나 조성민은 LG로 이적한 이후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아가는 모양새여서 kt 팬들은 그저 실소를 머금고 있다. 2월 02일 동부와의 홈경기에서 kt의 팬들은 조성민을 연호하며 항의했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결국 뒤에 다시 재평가 되는데 김영환이 kt에서 쏠쏠히 활약해주고 있는 와중에 조성민은 부상으로 스탯자체도 김영환에 비해 많이 밀리는 상황이다. 거기에 kt는 트레이드에서 1픽을 뽑고 LG가 2픽을 뽑아줌으로서 1,2픽을 동시에 얻는 대박이 터졌다. 반면 LG는 2라운드 9,10픽을 뽑게 되어 절망적인 상황. 조성민 김영환 맞트레이드만으로도 김영환을 가져간 kt에게 웃어주는데 거기에 LG가 준 1라운드 픽도 대박이 난것이다. 현재 트레이드의 승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kt...

그러던 2017년 2월 03일, 부산 kt 소닉붐의 수원행이 유력하다MBN의 보도가 나왔다! 기사 다만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기사는 나왔다. 기사 그러나 kt 팬들은 없는 살림에 프랜차이즈 스타를 팔아버리면서 이에 대한 반응은 그냥 꺼지라고 하는 식이다.

김현민의 막판 림 위에 있던 공을 쳐내는 결정적인 수비[31]로 원주에서 동부를 잡고 연장 접전 끝에 KCC 원정경기에 패배했지만 2017년 2월 16일 울산 모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리온 윌리엄스와 4쿼터 김현민의 활약으로 올시즌 모비스전 첫 승리를 거뒀고 오리온스마저 또다시 잡아 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뒤이은 서울 2팀에서는 체력적 문제를 보여주면서(목-토-일-화) 경기에서 지다가 24일 창원 원정에서 김영환이 종료 직전에 기적의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며 76:77로 승리를 이끌었다. 영상 게다가 고양, 부산 원정 백투백 연전으로 힘이 빠진 선두 KGC마저 잡아 2위로 떨어뜨리면서 이 승리로 인해 5라운드 5할이상 확정+전구단 상대 승리 성공+공동 9위 등극[32]에 성공하였는데, 이는 시즌 막판 탈꼴찌 싸움 + 상위팀 고춧가루 + 선두싸움 및 6강 플레이오프의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여 16-17시즌의 순위 향방을 가를 태풍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3.1절 홈경기에서 전자랜드마저 잡으면 올시즌 꿈에 그리던 첫 3연승에 성공한다! 이렇게 홈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나 싶더니만...

아니나다를까 4쿼터 중반까지 3점차로 앞서고 있었지만 김현민이 아주 나쁜 의미로 경기를 지배하고 말았다. 공격리바운드 경합 중 과도한 리액션으로 인해 테크니컬 파울을 줘 공격권을 넘겨주었고, 김종범의 공격 상황에서 파울을 얻어낸것 까진 좋았으나 자유투를 다 실패하여 3점을 까먹고, 종료 1분전엔 이재도의 스크린 3점이 성공했으나 스크린 상황에서 공격자파울을 범해 3점을 또 날려먹었으며, 마지막엔 수비리바운드 잘 따놓고 수비도 아무도 없는데 더블드리블을 시전하여 제대로 경기를 지배하고 말았다. 이렇게 김현민이 4쿼터 5분동안 날려먹은 점수가 무려 10점!!! 이렇게 홈팬들에게 꿈과 희망은 커녕 복창을 터지게 만든 김현민의 대활약으로 인해 kt는 시즌 3연승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내년에 감독님 웃게 해주려고 전랜을 올려줘 신인픽 확률 올리려는 큰그림이었다고 카더라

한편 6라운드부터는 김종범, 김영환의 쏠쏠한 활약과 이재도의 크레이지모드에 힘입어 2승 1패로 순항하고 있다. 전랜전은 백투백급 일정이라 지친 상태였기에 패배했지만, 탈꼴찌를 위해 분발한 결과 홈에서 KCC를, 고양에서 오리온을 또다시 잡으면서[33] 탈꼴찌와 함께 순위 싸움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아주 차고 넘치게 수행해주고 있다.

여기에다가 3월 11일 동부와의 홈 경기에서 3쿼터까지 라킴 잭슨이 삽질하던 경기를 4쿼터 이재도의 맹활약으로 9점차 승리를 거두면서 788일만에 3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KCC가 SK에게 패하면서 단독 9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모비스에게 양팀 모두 졸전을 벌이면서 55-52로 패했으나, 홈 26차전이자 부마더비 마지막 경기에서 창원LG에게 2쿼터까지 18점차로 앞서다가 3쿼터에 외국인 선수의 파울트러블로 인해 국내선수들만을 기용하는 사이에 야금야금 리드를 내줘 4쿼터 63-62로 역전까지 당했으나, 막판 박철호의 활약과 김종규가 자유투 2개를 놓치는 삽질을 벌이면서 71-65로 승리. 창원LG와의 상대전적도 동률로 마감하였다.

시즌 마지막 홈경기인 3월 19일에서는 시즌 첫 홈경기 상대였던 삼성에게 65-73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과도한 출장시간으로 인해 주전들의 과부하가 심해져 이재도, 김영환이 출전시간 조절에 들어갔다. 그러나 체력적으로 많이 부친 모양인지 바닥을 기다못해 지각을 뚫어버릴 기세의 처참한 야투성공률을 보여주었다. 3쿼터에는 리온 윌리엄스의 스팀팩모드에 힘입어 접전으로 끌고 갔으나, 4쿼터에는 선수단의 체력 방전으로 인한 김영환, 김종범, 이재도 등 슈터들의 집단 버로우로 4쿼터 7득점(...)이라는 홈팬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하는 충격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백투백 일정이었던 삼성의 경기력도 메롱이었지만 리온 윌리엄스 빼고 홈팬들 앞에서 눈이 썩는 경기력을 보여준 kt 선수들에게 경기 채팅창에서는 느그가 프로가? ㅋㅋㅋ가 연신 쏟아졌다. 이 패배로 인해 시즌 20승 달성은 물건너갔다.

한편 22일 오리온이 홈에서 KCC에게 500만원짜리 패배(...)를 당하게 되면서, 26일 KCC의 경기 결과에 따라 최종 순위가 결정된다. 현재 1승을 앞서고 있긴 하지만 승패가 동률이 될 경우 상대전적에서 2승 4패로 밀리므로 10위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경기에서 KGC에게 패배했지만, KCC가 인천 전자랜드에게 패배하면서 9위를 달성하였다. 전자랜드 : 너희가 LG 2번 이겨줬으니 우린 탈꼴찌 도와줄게 kt : 어유 감사합니다

시즌 초반에는 10연패도 찍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17년 들어서는 고춧가루 역할을 해내며 플레이오프 진출엔 실패했지만 내년 시즌에 희망을 가질수있게 좋은 경기력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스쿼드가 나빴던 08~09 시즌 또는 그 이상으로 시즌이 망할뻔 했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되지 않은 건 다행.


5. 허훈 - 양홍석 원투펀치의 시대[편집]



5.1. 2017-18 시즌[편집]


작년 시즌 막판에 투지 넘치는 경기력으로 비시즌 기간동안 선수단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그래서 선수들은 "이번 시즌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훈련을 임했고 조동현 감독이 부임한 이래 가장 좋은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훈련을 소화했다. 팬들도 이번 시즌은 최근 몇 시즌과는 다를거라는 기대감에 차있었다. 그러나 결국 기대감을 배신하게 만들고 말았다.

게다가 그나마 활약 중인 가드진에 눈독을 들이는 팀이 많아지면서 kt 팬들의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고, 결국 프런트가 이재도를 전임 수석코치였던 김승기 감독이 있는 KGC인삼공사로 팔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고 결국, 2010년대 암흑기를 지탱하던 두 프랜차이즈 스타가 사라져버렸다.

kt 팬 대다수는 허훈과 양홍석을 얻은 기쁨보다 애초부터 공존불가인 이재도를 잃으면서 패닉상태에 빠졌고 이미 김영환과 박상오마저 공존이 어려운 상황으로 더 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실제로 조성민과 이재도는 프랜차이즈 스타 레벨인데 계속되는 성적부진 앞에 농구 자체를 보지 않을 정도였다.

팀이 이 모양이다보니, 만 명이 넘게 수용 가능한 사직실내체육관은 관중이 차지 않아 썰렁하다 못해 휑~할 지경이었고, 오히려 원정 팬들에게 사직실내체육관이 점령당하다시피 했다. 평일 경기에서 1000여명도 들어오지 않은게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2018년 2월 28일 오리온과의 홈 경기에서 패하며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2008-09 시즌 후 9년 만의 최하위가 되었고, 최종성적은 10승 44패로 KBL 역사상 단일 시즌 4번째로 낮은 승률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초대 추일승 시절 08-09 시즌 12승 42패를 뛰어넘은 역대 최저성적이다. 얼마나 못했으면 매스컴으로부터 많은 우려를 샀고 타팀 팬들에게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34]

굳이 비교하자면 탱킹을 선언했던 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부상자+무능한 감독+뒷심 부족+전체 선수단 연봉 평균에 못미치는 선수단이라는 4가지의 환상적인 조합이 시너지를 이루어 이 시즌의 파멸을 부른 것. 결국 시즌 종료 후 조동현 감독과 송영진 코치, 박상률 코치가 모두 사임하면서 그야말로 비극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신인상도 허훈/양홍석이 받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처참한 팀 성적으로 인해 당해 우승팀의 주역이었던 안영준에게 빼앗겼다.

결국 KTF-kt 사상 역대 최저 성적을 낸 조동현 감독은 kt 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으면서 힘겹게 10승을 겨우 달성하며 악몽같은 한해를 끝내게 된다. kt 팬들은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인해 허훈과 양홍석을 얻은 기쁨보다 조성민과 이재도를 잃은 허탈감에 이어 KBL 역대급 최저성적에 할 말이 없었는데, 조동현 강점기라는 정의를 내렸다. 조동현과 똑같이 종신감독 소리를 들으면서 욕을 먹던 추승균은 16-17 시즌 17승을 했고, 현주엽 또한 17-18 시즌 17승[35]을 했는데 그것보다도 더 못했다. 더욱이 추승균은 15-16 시즌 정규리그 1위라는 업적이 있으며 현주엽은 1년차 초보 감독이라는 변명거리라도 있지만, 조동현은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 이로서 조동현은 이견이 없는 구단 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남게 되며 본인의 커리어에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KT가 부산을 떠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 시즌은 부산의 스포츠팬들에게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5.2. 2018-19 시즌[편집]


서동철 감독, 부산 kt 사령탑으로 전격 부임

여자농구 청주 KB 스타즈의 양궁농구를 이끌면서 결승에 오른 뒤 모교 고려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던 고학년 학생들의 소풍사건[36] 으로 인해 물러난 서동철 감독이 kt 4대 감독으로 오게 되었다. 구단은 KBL 수석코치(삼성 & 오리온스) 출신이자 WKBL 감독 출신으로 다양한 경험이라는 보도를 했으나 팬들의 반응은 썩 좋지는 못한 편다. 그래도, 멘토였던 삼성 시절 안준호와 상무-오리온스 시절 추일승의 밑에서 배운 게 있으니 기다려보자는 의견도 나오는 중. 그리고 오프시즌 도중 김용국 통역이 새롭게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박철호김기윤이 음주운전 사고를 내면서 박철호는 36경기 출장정지[37] 징계를 받았다. 김기윤은 동승자여서 아직 징계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38]. 시즌 중에 부상인 것도 모자라 이젠 시즌 전에 이 사달이 났다.

2018-2019 시즌 슬로건은 Boom Up이다. 초대 추일승 시절과 2대 전창진 시절 이후 긴 암흑기에서 탈출하면서 사라진 부산 사직의 농구열기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를 담은 것이다.

시즌 첫 경기에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경기에서 30점 차에 가까운 대패를 기록했으나, 1라운드를 6승 3패, 리그 2위로 마무리지었다. 그 이후부터는 아예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 전자랜드와 공동 2위를 지켜내는 등 대이변을 보여주었다.[39]

2018년 11월 26일 2018 신인 드래프트가 끝난 후 1:2 트레이드로 박지훈안양 KGC인삼공사에 내주고 김윤태, 한희원을 받았다. 정작 kt의 팬들은 여지껏 활약을 잘했던 박지훈을 왜 내놓았냐는 입장이지만 구단측에서는 허훈,양홍석 그리고 이번에 1순위로 뽑은 박준영을 잘 활용해 젊은팀으로 리빌딩해 팀을 개편한다는 이유다. 박지훈도 심하게 젊은데?? 박지훈의 이적공백은 동부 프로미에서 최성모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메웠다.

하지만, 데이비드 로건이 3라운드에 접어들자마자 지속적인 햄스트링 부상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고, 시즌 중반에 국내/외국인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여러차례 어려움을 겪은 끝에 kt는 시즌 초반의 기세를 시즌 후반기까지 끌고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찌저찌 플레이오프권을 지켰고, 시즌 53번째 경기에서 1점차의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비밀번호를 끊어냄과 동시에 13-14 시즌 이후 5년만에 5할 승률을 달성하게 되었다.

최종순위는 6위로 팀 창단 첫 6위를 기록했고, 6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창원 LG와의 낙동강 더비로 결정이 났다. 플레이오프에서 2패를 먼저 떠안고 2승을 거뒀지만 5차전에서 패하면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부산의 농구팬들, 더 나아가 타 팀 팬들로부터 지금까지의 결과물에 많은 박수를 받으며 아쉬움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즌 마무리를 기록하게 되었다. 조동현 암흑기 시절 폭망했던 관중수도 50% 가까이 올랐고 초능력 양궁농구에 열광하면서 부산 사직은 오랜만에 농구열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특히 LG 시절부터 리더쉽이 훌륭했던 김영환을 보러가기 시작한 팬이 생기더니 리그 최고의 영건 스타듀오인 허훈과 양홍석으로 인해 젊은 여성팬들의 유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음주사고로 구단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김기윤과 박철호를 모두 임의탈퇴시켰다. 둘은 사실상 은퇴를 하게 된다.


5.3. 2019-20 시즌[편집]


kt의 2019-2020 시즌에 대한 평가는 직전 시즌과는 완연히 다르다.

지난 전창진 쇠퇴기와 조동현 암흑기로 인해 서동철 감독은 팀의 체질개선을 시작하면서 트레이드를 많이 했는데 5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오프시즌에서 선수단의 체계 유지와 신뢰 형성을 위해 선수단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2019-2020 시즌 슬로건도 Booooom Up이다. 같은 붐업이지만 이제는 허훈이라는 슈퍼스타를 보유하면서 조금 더 높은 폭발음과 함께 5G게 더 붐업을 하기위한 의지다.

많은 전문가들이 신구조화가 되어있는 kt 소닉붐을 6강 후보로 꼽고 있고, 신장제한이 폐지된 이후 새로 영입된 바이런 뮬렌스와 알 쏜튼의 가세로 팀의 높이 또한 전 구단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게 되었다. 국가대표 경험을 쌓으면서 한층 더 성장한 팀의 중심 허훈과, 아쉽게 국가대표에서는 탈락했지만 무서운 성장세로 팀의 주득점원 역할을 맡아줄 양홍석이 든든히 버티고 있으며, 역대 최악의 1픽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체중 감량으로 3.5번 포지션을 위한 준비를 해온 박준영, 팀의 대표 슈터로 성장할 준비를 마친 한희원 등 국내 선수의 뎁스 또한 단단하다는 평가다.

뿐만 아니라, 10월 말에 열릴 신인드래프트에서도 12%의 1픽 확률을 보유하고 있어 로터리픽 진입을 노리고 있으며, 이번 신인드래프트에 나올 신인 선수들의 뎁스가 예년에 비해 훌륭하다는 평가까지 나오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KT는 몇 년 동안 앞선에 비해 국내 센터 및 파워포워드 포지션에 약점을 보여왔는데, 이번 신인드래프트에서는 박정현, 이윤수, 박찬호, 김경원 등 대학 4대 센터가 모두 참가하기 때문에 누구를 뽑더라도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얼리로 참가하는 고려대 김진영을 뽑아 2번 포지션까지 완성한다면 허훈-김진영-양홍석으로 이어지는 포텐이 폭발하는 1, 2, 3번 라인업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시즌 시작 전 많은 연습경기를 거친 이후 kt 최현준 단장과 kt 오경진 사무국장 밑 이외 농구 기자들에 이어 선수들 사이에서 외국인 두 명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일례로 kt는 단신 용병 허훈을 데려온 느낌이 더 강하다는 의견이 있을정도로. 또한 교체는 기정사실이고 교체 시기를 맞추는게 더 관심거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즌 전, FA에 관련해서 프런트진[40]이 매우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KTF-kt에서 잔뼈가 굵은 최현준 단장은 내부 고참 포워드인 김영환을 무려 4억 7천만원으로 계약하면서 당해 최대어 김종규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41] 리더쉽과 영건들이 많은 팀을 감안하면 재계약을 해야하지만 그것도 연봉폭탄(?)을 준 LG 출신을 보면 오버페이라는 비판이 있다. 지금까지 팀 역사를 보면 송영진 선수를 제외한 제대로 된 토종 빅맨이 없어서 고질병처럼 높이 문제를 달고 살았던 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승에 대한 의지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듯. 용병닷컴 정지욱 기자의 방송에 따르면 최근 몇년간 FA 협상을 제일 못하는 팀이라고.[42] 그런데 이후 장신 포워드 김상규가 4억 2천만원에 계약하면서 시즌 종료 후 훨씬 나은 스탯을 기록한 김영환 계약이 매우 혜자스러운 계약이었다고 재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결국 2020년 3월 24일 코로나 사태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었는데, kt로써는 이 시즌 만큼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시즌 초반 허훈의 맹활약으로 한 때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허훈의 부상 이후 성적이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고, 알 쏜튼을 앨런 더햄으로 교체한 후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5라운드 들어서 용병 2명이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팀에서 자진 퇴단하는 일이 벌어졌고, 졸지에 용병 둘을 잃은 채 경기에 임하게 되었다. 어쩌면 시즌이 조기 종료된 게 득이 됐을 지도 모른 시즌.


5.4. 2020-21 시즌[편집]


초반 FA 영입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대성을 못잡으면서 팬들로부터 우려를 샀고, 그 대신에 김수찬과 오용준을 영입했다.

1라운드 개막전부터 3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를 벌이며 승리했고, 그 뒤로 2승 2패로 시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KGC전에서 연장패를 당하면서 7연패를 당하며 하위권으로 처졌다가 농구판 족발게이트 사건이 반환점이 되고 브랜든 브라운의 영입으로 7연승으로 승패마진을 복구했다. 이후에는 5라운드까지 기복은 있었지만 24승 21패를 기록하면서 순항했지만, 6라운드에서 2승 7패를 당하며 자폭한 끝에 6위가 확정되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3위 KGC를 만나 3:0으로 스윕패를 당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1년 6월, 과거부터 지속해서 언급되었던 kt의 수원 연고지 이전설이 결국 공식화되었다. KBL은 2023-24 시즌부터 모든 선수와 사무국이 연고지에서 훈련과 업무를 하게 하는 이른바 '연고지 정착제'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에 따라 kt는 6월 4일 부산시와 최종적인 만남을 가지고 훈련장에 대한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 하고 협상[43]이 결렬되면서 kt는 KBL에 공식적으로 수원으로 연고지 이전을 요청했다. 그리고 6월 9일 개최된 KBL 이사회에서 연고지 이전이 승인되면서 kt는 18년간 정들었던 부산사직체육관을 떠나 서수원칠보체육관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부산광역시 당국은 박형준 시장의 성명으로 kt의 연고지 이전에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결정이고 "지난 17년간 kt 농구단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부산시민과 지역 농구팬을 외면하고, 오로지 구단의 편의와 기업의 경제 논리만을 앞세워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다"며 kt 구단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는 kt 농구단의 연고지 이전 문제에 대해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반드시 짚겠다고 강조했다.

팬들의 반응은 극도로 갈렸다. 부산시가 지원 제대로 잘 안 해줬는데 이왕 이런 김에 잘 갔다는 부류랑 결국 구단이 원하는대로 도망쳤다며 격앙된 반응을 낸 부류도 있었다. 둘 다 잘한 것 없다는 의견도 사실은 많았다.[44]

사실 이 연고이전은 과거 10년 전 매각을 목표로 했던 오리온스가 대구에서 고양으로 이전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오리온스는 4년간 A9AA라는 대구 암흑기였으나 kt의 경우 조동현 암흑기인 79A가 아닌 서동철 붐업기인 666이라는 점을 보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비판이 있다. 팬들은 연습체육관인 kt 빅토리움이 북수원전화국에 있는 점을 부산 사직(사실 인근인 창원에도 kt 팬이 있는걸로 제보) 팬들이 10여 년 전부터 지적을 했고 어떤 팬은 형제 야구인 kt wiz가 KBO 리그 막내 10구단으로 있는 점을 꼬집었다. 더 이해가 가지 않은 건 4년 전 KBL 올스타 게임과 1년 전 농구영신이 열렸던 한국농구의 성지와 다름없는 부산 사직이 버림받은 점. 유대관계가 좋았던 몇몇 LG 팬들도 만만치 않은 충격을 받았다.

부산시에서도 누가 보아도 스포츠마케팅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격앙된 반응이었다. 부산시의회와 시민단체에서도 kt 불매운동 시위를 했고 부산 출신 어린이-청소년 팬들도 추억이 많았음에 아쉬움을 고백했다. 추가로 과거 부산 사직 시절 프런티어즈와 응원단(치어리더 포함)도 충격을 받으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같은 부산 연고 여농구팀으로 부산-경남 전체가 연고인 BNK 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농과 남농은 경기일정과 수익부터 흥행구조에서 부산은 매우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부산과 창원에서 응원한 팬 중 일부는 승계를 했으나 대다수 연고지에 굳어있는지 KBL에서 은퇴한 농구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인수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떠밀리듯이 이적한 팬들이 간혹 있는 편이다.

참고로, 부산 사직체육관은 사석이 많지만 최소 8000여 명의 최대관중이 가능하고 6위 이내면 연간 평균 4000여 명의 농구 팬들이 찾는 장소다. 과거 2002 부산 아시안게임 4강전과 결승전이 열렸던 한국농구의 성지 중 하나다. 하지만, 서수원칠보체육관(이후 수원시와의 협력을 빠르게 진행하면서 네이밍라이트를 통해 25년간 수원 kt 소닉붐 아레나로 변경)은 최대수용 3500여 석에 공교롭게도 개발지대인 호매실에 수원역 또는 성균관대역 기준으로 버스로도 30여 분 이상 걸리고 교통체증이 심한 장소다. 아무리 보아도 혹독한 흥행의 길이 예상된다. 수원시 아마농구 관계자들도 갑작스럽게 대학 U 리그 포함 아마추어 대회가 취소된 점에서 충격을 받았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6. 논란의 수원 연고지 이전[편집]



6.1. 2021-22 시즌[편집]


파일:수원 kt 소닉붐 엠블럼.svg
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김수찬 이정제 오용준 조상열이 팀을 떠났지만 창원 LG로부터 정성우, 서울 삼성으로부터 김동욱을 영입해 백업뎁스를 더 강화했고 12월에는 최성모와 한희원이 상무에서 제대하며 외곽전력이 강해진다. 외국인 선수로 2시즌간 LG에서 뛰었던 캐디 라렌, 우크라이나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마이크 마이어스를 영입해 직전시즌보다 전력이 좋아졌다. 특히 팀 에이스 허훈이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한 다음 목표가 이번시즌 군입대 전 마지막 시즌에 우승이라고 밝혔다. 9월 28일 열릴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 지명권을 받아 빅맨을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상대적으로 김민욱 김현민으로 구성된 센터진이 약해 보강이 필요했는데 잘 된셈이고 마침내 삼일상고-고려대 출신 현 대표팀에 승선한 빅맨 유망주 중 하나인 하윤기 선수를 지명하며 팀의 최대 숙원을 풀었다.
2006-07 추일승 감독시절 애런 맥기 필립 리치라는 외국인 듀오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지만 직전 시즌 서울 삼성에 셧아웃으로 준우승했던 울산 모비스에게 3승 4패로 져서 분투했던 것을 만회해보겠다는 각오다.

시즌 내내 좋은 폼을 보여주며 서동철 시대에서 정규시즌 최고 성적인 2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확실한 전력 보강을 통해 우승 전력이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다만, 이어진 4강 플레이오프에서 작년에 이어 또 만나게 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1:3 역스윕을 당해 다시 한번 빈손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6.2. 2022-23 시즌[편집]


군입대한 허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1] 그러나 현재 kt 측은 기업은행 시절의 기록을 승계하지 않는다. DB 역시 나래의 전신이었던 산업은행 시절의 성적을 승계하지 않고 있다.[2] 이 때 나래와 경쟁한 구단이 바로 SK 텔레콤인데 SK는 DB의 전신인 산업은행을 인수하려고 했지만 나래에게 뺏긴다. 다음 해 9월 SK는 진로 맥카스 농구단을 인수하면서 3수 끝에 농구단 유치에 성공한다.[3] 원년 당시에는 군 복무중이던 장창곤, 김도명, 최명도가 빠졌다.[4] 동양 오리온스에 1승 4패로 4강은 실패.[5] 그로부터 21년 뒤인, 2020년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한화 이글스의 14연패를 끊어줄 뻔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스윕승을 따내면서 징크스를 벗어났다. 한화의 연패행진은 18연패까지 이어져 삼미 슈퍼스타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는데, 이 한화의 19연패 기록 경신을 좌절(?)시킨 팀이 바로 디펜딩 챔피언이던 두산 베어스였다.[6] 코스닥 1호 벤처기업으로도 유명하지만 끝은 영 좋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기사를 참조.[7] 이듬해 골드뱅크도 코리아텐더로 완전히 사명을 변경했다. 코리아텐더는 골드뱅크에서 2000년 12월부터 시작한 비공개 입찰 경매식 홈쇼핑 사업부였다.[8] 2003년 3월 9일 서울 삼성과의 마지막 일전에서 85-90으로 승리하면서 4위를 확정지었다.[9] 이후 2008년 3월 23일, 옛 연고지였던 여수시에서 안양 KT&G 카이츠를 상대로 특별 경기를 갖기도 했다. 당시 여수 팬들이 열악한 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 성원을 보내 주었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는 의미였다고 한다.[10] 2003년 12월 말부터 '매직윙스'라는 팀명을 사용했고 홈 코트에는 2004년 1월 4일 홈 경기 때부터 엠블럼과 팀명이 새겨졌다.[11] 개막 7연패를 달리던 SK의 시즌 첫 승을 만들기도 했다.[12] 1위 TG삼보(36승 18패)보다 5위와의 게임차가 더 컸던 상황이다![13] 특히 전주에서 열린 6강 2차전에서는 종료 2초를 앞두고 추승균에게 동점 3점포에 추가 자유투로 78-77로 역전패를 당한게 컸다.[14] 이 당시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의 가세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여기에다 2005-06 시즌에 현주엽의 보상선수인 송영진의 포텐이 터진 것이 컸다.[15] 모비스에 3승 1패로 뒤지다가 3승 3패로 동률을 만들었지만, 끝내 7차전에서 졌다. 참고로 그 시즌 챔프 7차전은 5월 1일에 열렸다![16] 신기성과 양희승이 내리막길을 걸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17] 12승. 패배는 42패이다. 승률이 4분의 1도 안됐다. 거기서 2년만에 승률이 4분의 3을 넘어섰다.[18] 참고로 KBO의 잠실 야구장 중립경기 규정은 2015년을 끝으로 폐지되었다.[19] 정규시즌 막판에 부상을 당해버리는 바람에 플레이오프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탈락하였다.[20] 0.759. 그 시즌 kt는 사상 처음으로 41승을 찍었다. 승률 최고기록은 원년시즌이었던 1997 시즌 기아의 0.762이다. 2011-12 시즌 동부와 2012-13 시즌 SK가 나란히 44승을 기록하면서 이 기록들이 갈아치워진다.[21] 그리고 다음 시즌, 동부는 kt가 갖고있던 최다승 기록마저 44승 10패로 경신하게 된다.[22] 지금은 안양 KGC인삼공사로 갔다.[23] 이는 홍창화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KGC 역시 마찬가지다.[24] 비슷한 경우로는 2012년 롯데 자이언츠가 있다. 이 쪽도 양승호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얼마 못 가서 입시비리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근데, 2016년 9월 전창진 감독은 다시 검찰에 조사받고 최종적으로 수사에 협조를 하면서 최종결과는 전혀 승부조작이 없었다고... 그리고 강동희 이 사람 때문에 오히려 피해본 케이스[25] SK만 잡았으면 전 구단 상대 승리를 할 수 있었다.[26] 심지어 12승 42패로 꼴찌하던 2008-2009시즌에서조차 3연승을 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직후에 8연패를 기록하면서 최하위에 그대로 박혀버리고 말았다.[27] 단순히 제스퍼 존슨만 뺏어간 것이 아니고, 조 잭슨과 외곽 슛터진의 막장화, 에밋, 양동근의 동시 각성이 너무 컸다. 그러나 오리온스는 헤인즈와 잭슨의 호흡이 맞기 시작하면서 동부와 모비스를 가볍게 스윕하고 KCC마저 6경기 중 가비지 승리 3경기로 압도하며 결국 14년만에 우승하고 말았다.[28] 코칭스태프 못지 않게 틈만 나면 최준용, 최준용 노래를 불렀다. 최준용은 2순위로 뽑힌 서울 SK 나이츠로 지명이 되었다.[29] 게다가 KGC는 토/일 수도권에서 백투백 이후 부산으로 내려와서 화요일 경기를 한 상태였다! 아무리 2경기 모두 손쉽게 끝냈다 해도 체력적인 소모는 컸을 것이다.[30] 헤인즈는 돌아왔지만 이승현 김동욱이 부상으로 빠졌다.[31] 영상2014년에 골텐딩 규정을 개정했다. FIBA는 슛이 림에 맞은 이후에는 실린더룰을 적용하지 않는다. 공이 림을 맞은 뒤에는 수비수가 건드릴 수 있다. 물론 공격자가 시도한 슛이 림이나 백보드를 맞기 전에 수비수가 내려가는 공을 칠 경우 여전히 골텐딩이다. 즉 김현민은 이를 제대로 활용했다.[32] 그러나 KCC와 상대전적 1승 4패 열세 확정으로 인해 최종승률이 같으면 10위다.[33] 이로 인해 SK 나이츠와 함께 상대전적 3승 3패로 동률을 이루는 팀이 더 늘게 되었다.[34] 54경기 체제에서는 3번째로 낮은 승률이다. 1위는 05-06 전자랜드의 8승 46패, 2위는 21-22 서울 삼성의 9승 45패이다.[35] LG 구단 역대 54게임 체제에서 최저승 동률로 04-05 시즌 이후 13년만에 역대 최저 성적.[36] 운동부가 숙소를 이탈하여 훈련을 도망간다는 은어.[37] 구단 자체 징계로 27경기 출장 정지를 부과했으나 KBL에서 이보다 더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38] 그의 부상 정도는 현재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지만 18-19 시즌은 시즌아웃이 유력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김민구의 사례보다 더 심각한 부상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39] 이 와중 대체 영입한 데이빗 로건은 농구도사로서의 모습을 보이며 양궁농구의 선봉장이 되어 주었다.[40] 단장과 사무국장이 대표적.[41] LG에서 FA로 풀린 국가대표 센터 김종규의 12억을 맞춰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구단 중 하나라는 설이 있지만 실패했다. 한 곳은 김주성의 은퇴 이후 비어진 DB고 또 한 곳은 하승진의 은퇴와 팀의 전임 감독이었던 전창진 감독을 영입한 KCC다.[42] 이번 김영환을 포함해 김종범, 천대현 등이 예시.[43] 부산시는 작년 9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kt의 수 차례 면담 요청을 모두 묵살하고 이후 연고지 이전을 하겠다는 얘기가 나오자 그제서야 보조경기장을 활용하거나 새 경기장을 조성하는 등의 방안을 제안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44] 부산시가 대한민국 제2의 도시, 구도(球都)라는 말이 무색하게 스포츠 인프라는 가히 최악일 정도이다. 6개 광역시들 중 유일하게 축구전용구장이 없고(사실 대우 로얄즈 시절 수영만 인근에 축구전용구장 건축 계획이 있었지만 1997년 IMF로 인해 무산되었다.) 야구장과 체육관도 모두 80년대에 지어진 경기장인데다가 새로운 경기장 건설 등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심지어 kt가 수원으로 가고도 사직 야구장에 비가 와서 물이 새는데도 부산시는 '싫으면 니들이 떠나든지'라는 식으로 대응을 해서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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