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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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명의 수상 및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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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02





한국농구연맹 심판

KOREAN BASKETBALL LEAGUE
김도명
金道明

출생
1971년 11월 12일 (52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90cm, 82kg
직업
농구 선수 (스몰 포워드 / 은퇴)
심판
학력
광주수창초등학교 (졸업)
전주남중학교 (졸업)
전주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졸업)
실업 입단
1994년 기업은행 농구단
현역 시절 등번호
12[1], 10[2], 7[3]
병역
상무 농구단 (1995~1997)
소속
선수
기업은행 농구단 (1994~1995)
광주 나산 플라망스 (1997~1998)
안양 SBS 스타즈 (1998~2001)
대구 동양 오리온스 (2001~2002)
심판
KBL (2002~ )

1. 개요
2. 아마추어 및 선수 경력
3. 심판 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농구 선수 출신 심판.


2. 아마추어 및 선수 경력[편집]


전주고등학교 시절 동기 고상준과 함께 제19회 추계연맹전에서 창단한 지 58년 만에 첫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경희대학교에 진학한 후 이창수, 장창곤, 김현국, 최명도 등과 함께 활동했다.

대학교 졸업 후, 실업 구단 기업은행에 입단해 박카스배 1995 코리안리그 1차 대회에서 3경기 전승을 거두며 조 1위로 결승리그에 안착시키는 기여했다.

상무에서 2년간 복무하다가 고향팀 광주 나산 플라밍스와 연봉 5천4백만 원 계약을 체결해 44경기를 뛴 뒤 팀 메이트였던 김상식과 함께 안양 SBS 스타즈로 이적했지만 신인 김성철의 등장에 밀려 버리며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후 2001-2002 시즌 대구 동양 오리온스로 이적해 주장이었음에도 출장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우승 반지를 챙기고 선수 생활을 마쳤다.


3. 심판 경력[편집]


은퇴 후 동기생 봉하민, 허영 등과 함께 KBL 심판이 되어 현재까지 맡고 있다. 특히 주목된 건 2014년 3월 22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창원 LG 세이커스부산 kt 소닉붐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쿼터 종료 4분을 남기고 김종규가 던진 골밑슛이 들어가지 못하자 뒤따라오던 조성민이 공을 잡으려다가 루즈볼을 잡으려던 데이본 제퍼슨과 충돌해 코트에 쓰러져 파울 휘슬이 불리지 않아 거친 판정 항의에 달려들어온 전창진 감독이 2~3차례 몸으로 밀쳐 퇴장시킨 심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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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산 시절[2] SBS 시절[3] 동양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