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농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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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수상 및 영예/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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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2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파일:전직 농구선수 김승현.jpg

김승현
金勝鉉

출생
1978년 11월 23일 (45세)
인천광역시 부평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인천산곡북국민학교 (졸업)
송도중학교 (졸업)
송도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 / 학사)
신체
175cm[1], 77kg
포지션
포인트 가드
프로 입단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순위, 대구 동양)
소속팀
대구 동양/오리온스 (2001~2010)
서울 삼성 썬더스 (2011~2014)
등번호
3번, 15번[2]
국가대표
아시안게임 2회(2002,2006)
FIBA 아시아선수권 3회(2003~2007)
방송해설위원
파일:MBC SPORTS+ 로고(2012~2018).svg 파일:MBC SPORTS+ 로고.svg (2017~2019) [3]
파일:SPOTV 로고.svg (2019)[4]
병역
병역 특례[5]
종교
불교
가족
부모님, 누나

1. 개요
2. 선수 경력
3. 시즌별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5. 은퇴 후
6. 방송해설위원
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이면계약서 파문
7.2. 이관희 통화 무단공개 사건
7.3. KCC 팬서비스 논란 옹호 발언
7.4.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사기죄 혐의 피소
8. 여담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매직핸드


파일:김승현 2001-2002 시즌.jpg
파일:썬더스김승현.jpg
최고의 포인트 가드였던 대구 오리온스 시절
현역 마지막인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1978년 11월 23일생. 전규삼 송도고 감독의 제자로 고교, 대학 시절부터 주목받던 특급 가드로 2001년 KBL 드래프트에서 농구계에서는 비주류였던 동국대 출신이었지만, 전체 3순위로 입단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대구 동양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편집]


파일:김승현 동양 시절 01-02 파이널.jpg
신인 시절 김승현

2001년 드래프트 당시, 김승현과 같은 단신가드가 KBL에서 통할 것이냐라는 혹평이 있었다. 당시 오리온스보다 지명권이 바로 위에 있었던 코리아텐더슈팅 가드 전형수를 지명했었는데, 결과적으로 김승현이라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를 거른 셈이라 결과적으로 대차게 까이고 말았다.[6] 전희철은 시즌 전 김승현의 플레이를 보고 어머니에게 "엄마, 우리 팀에 농구 끝내주게 잘하는 애 왔어." 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전희철의 어머니는 '쟤가 다른 선수 이야기 하면서 저렇게 신이 난 적이 없는데… (얼마나 잘 하길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998-99 시즌 전설적인 32연패를 기록하고, 수 년 동안 쭉 하위권에 처져 있었던 오리온스는 2001년 김승현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뒤바뀌었다. 김승현을 중심으로 한 런앤건 농구로 오리온스는 순식간에 KBL의 강호이자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올라섰다. 2001~02 시즌 김승현은 데뷔전에서 15득점 10어시스트, 두번째 경기에서는 19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탈 신인급의 활약을 했고, 결국 만년 꼴찌 동양을 36승 18패 정규시즌 1위팀으로 만들었다. 시즌 평균 기록은 12.2득점 8어시스트 3.2스틸.

파일:오리온스 창단 첫 우승.jpg

그 해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한 동료 마르커스 힉스와 함께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오리온스의 멤버는 판타스틱 5라고 불렸는데, 김승현(PG), 김병철(SG), 전희철(SF), 마르커스 힉스(PF), 라이언 페리맨(C)까지 포지션별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리하여 데뷔 시즌 KBL 역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7][8][9][10][11] 여기에 BEST 5, 어시스트상, 스틸상까지 수상하며, 전무후무한 데뷔 시즌 5관왕을 달성했다.[12]

이런 그의 활약 덕분에 모기업인 동양제과 측에서 자사의 제품인 썬칩 CF 모델로도 대놓고 기용했을 정도였다.


뒤이어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결승전에서 5년동안 이겨본 적이 없던 중국을 만나, 패색이 짙던 경기 종료 막판 결정적인 스틸에 이은 득점 등으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연장전 대역전극을 지휘하여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연히 MVP에 등극했으며, 병역 특례도 받았다.[13]

이 모든 게 프로 데뷔 후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며, 김승현은 이 짧은 기간에 농구 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루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이 당시 김승현을 능가하는 임팩트를 보여 준 선수는 찾아볼 수 없다.[14]

김승현의 합류 이후, KBL 최약체 구단이었던 오리온스는 순식간에 리그의 강호이자 인기 구단으로 변모하였다. 외국인 선수들과의 호흡도 좋아서 마르커스 힉스, 바비 레이저, 네이트 존슨, 아이라 클라크, 리 벤슨, 피트 마이클 등 전성기 오리온스 외국인 선수들의 성공을 받쳐주었다. 2002~03 시즌 또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당시 노장이었던 허재와 신인 김주성을 필두로 한 원주 TG 엑써스의 벽에 가로막혀 준우승했다.[15]

2003~04 시즌 무렵부터 NBA 팀들이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고 한다. 실제로 2팀에서 요청이 왔고, 2004~05 시즌 이후 여름에 당시 하승진이 뛰고 있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날아갔다. 서머리그[16]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틀랜드의 서머리그 캠프에서 하승진과 같이 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머리그 로스터에 들지 못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김승현 본인의 말로는 감독이 경질되면서 입단 테스트가 흐지부지 되었다고 밝혔다.[17][18]

2006~07 시즌까지 매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2002~03 시즌 이후 팀 성적은 계속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 결정전 우승은커녕 챔피언 결정전 진출도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김승현은 꾸준한 개인기록과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하지만 2007~08 시즌부터 허리 부상을 겪으며 크게 부진하기 시작했다.

김승현이 몰락하면서 오리온스도 같이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19]

2007~08 시즌에는 부상으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탈락 및 최하위를 경험했고, 개인과 팀 모두 내리막길을 겪게 된다. 2009~10 시즌까지 차례대로 10위, 9위, 10위라는 팀 성적을 기록했고, 김승현 또한 부상과 더불어 이면계약서[20] 논란이라는 파문으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결국 KBL로부터 임의 탈퇴라는 사실상 무기한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받게된다.


2.2. 서울 삼성 썬더스[편집]


2011~12 시즌을 앞두고 오리온스와 선수 복귀에 합의했으나 김동욱과 트레이드 되어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하는 것으로 결정났다. 이 과정에서 창원 LG 세이커스고양 오리온스가 김승현 이적 합의를 봤지만, 오리온스가 일방적으로 협상을 파토내고 썬더스로 방향을 급 변경했다는 것이 밝혀져, 또 한번 파문이 일었다. LG가 결국 KBL에 이번 트레이드에 대한 이의신청을 낸 상태. 오리온스 측은 김승현 측이 트레이드 희망팀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가 삼성행을 얘기하여 변경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김승현 측은 트레이드 초기부터 희망팀을 밝혔다고 주장하고 있다.[21]

2011년 12월 7일 잠실에서 열린 對 전자랜드전에서 641일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예상보다 빠른 복귀였는데 18분 정도 뛰어서 6어시스트 2리바운드를 기록. 시야와 패스 감각은 살아 있으나, 몸상태가 안올라와 퀵니스가 처참하게 떨어져 있는 상태. 상대 핵심 벤치멤버도 아닌 임효성에게조차 공수 양면에서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상 기량을 회복할려면 시간이 걸릴듯. 결국 팀도 패배, 11연패의 늪에 빠졌다.

그해 12월 17일, 팀이 14연패를 끊어낸 서울 SK 나이츠와의 원정경기에서는 8득점 4어시스트를 했으나 턴오버도 4개나 기록했다.

무한도전 결투특집 하하 VS 홍철에서 하하의 자유투 선생님으로 깜짝 출연했다.

12-13 프로농구 개막전에 목 디스크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며 사실상 시즌아웃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2/13시즌 1월 13일 동부전에서 복귀하였다. 그런데 복귀하자마자 은 하락세를 겪었다. 3월에 홈 4연승을 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김승현 본인도 6시즌만에 플레이오프에 출전했지만, 전자랜드에 3전 전패로 4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아쉬웠던 시즌을 마무리한다.

결국 지난 시즌과 나아진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더 떨어진 모습으로 경기당 평균 2.0득점 2.0어시스트 0.6스틸만을 기록하며 공,수에서도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며 연봉 4억에 걸맞지 않는 먹튀 테크를 타게 되었다. 또한 FA 계약기간 동안 재계약 협상에 진전이 되는 모습을 보이며 비난 여론을 크게 샀고, 결국 연봉 4억에서 대량 삭감한 1년 1억5000만원에 계약하게 되었다.

본인은 농구를 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하면서 연봉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더불어 데뷔하고 가장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실제 연습경기에서도 전보단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22] 그러나 13~14 시즌에도 1라운드 막판 부상으로 한달을 날렸다. 결국 삼성에서는 먹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채 서울 삼성 썬더스와 FA 협상이 사실상 결렬되었다.

삼성 시절 평가는 결국 먹튀. 오리온스 시절 보여주었던 뛰어난 포인트 가드로서의 역량을 보고 당시 주가가 올라가던 스몰 포워드 김동욱까지 넘겨주었지만, 정작 삼성 시절 3시즌동안은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고액연봉자였다.[23] 오랜 공백기를 극복하지 못하며 오리온스 시절보다 둔해진 움직임으로 공수양면에서 둔해진 모습을 보여 수비에서도 구멍이 되고 공격에서도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이는데다 턴오버만은 전성기 급으로 많았다. 패스능력이야 감각이 완전히 죽는 것은 아니기에 킬패스나 위 움짤처럼 오리온스 시절을 방불케하는 화려한 플레이도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 시기 삼성이 안준호 사임 이후 김상준의 부임으로 삼성 최대의 암흑기동안에 영입된 선수이기도 하고 김승현 영입후 성적이 10 - 6[24] - 8로 직접적인 원인까지는 아니지만 좋지않은 행보와 맞물려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

2013-2014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고, 2014년 5월 15일, 파란만장했던 농구 인생을 뒤로 한 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 말로는 타 구단에서 이적 제의가 있었다고는 했다.


3. 시즌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1-02
동양/오리온스
54
150/244
(61.48%)
72/190
(37.89%)
141/165
(85.45%)
657
218
430
175
4
2002-03
48
133/224
(59.38%)
75/210
(35.71%)
61/73
(83.56%)
552
183
286
107
3
2003-04
52
128/214
(59.81%)
103/264
(39.02%)
122/149
(81.88%)
687
165
422
117
4
2004-05
53
142/293
(48.46%)
104/275
(37.82%)
128/157
(81.53%)
724
208
555
120
7
2005-06
51
153/296
(51.69%)
94/257
(36.58%)
122/163
(74.85%)
710
218
478
126
2
2006-07
36
101/198
(51.01%)
63/170
(37.06%)
107/121
(88.43%)
498
131
251
79
2
2007-08
21
24/51
(47.06%)
17/65
(26.15%)
39/48
(81.25%)
138
47
127
33
0
2008-09
39
78/143
(54.55%)
51/143
(35.66%)
68/80
(85.00%)
377
79
249
52
3 ||
2009-10
25
61/135
(45.19%)
21/56
(37.50%)
36/46
(78.26%)
221
63
143
32
3 ||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1-12
삼성
32
49/99
(49.49%)
33/81
(40.74%)
32/39
(82.05%)
229
53
164
31
0
2012-13
23
3/22
(13.64%)
11/25
(44.00%)
8/13
(61.54%)
47
25
47
13
0
2013-14
36
16/37
(43.24%)
15/52
(28.85%)
16/21
(76.19%)
93
36
91
32
1
KBL 통산
(12시즌)
470
1038/1956
(53.07%)
659/1788
(36.86%)
880/1075
(81.86%)
4,933
1,426
3,243
917
29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득점보다 어시스트를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는 정통 포인트 가드이다. 엔트리 패스도 능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속공 시 기상천외한 패스로 동료들을 살려준다는 점. 순간순간 번뜩이는 창의성과 판단력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도 자주 보여줬다. 다만 그로 인해 턴오버 또한 많은 편이라 팬들에게 턴승현이라고 많이 까이기도 했다.[25][26]

만화 슬램덩크김수겸과 역할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송태섭과 같은 리그 최고 수준의 스피드와 NBA 레벨이라고 평가받던 창의적인 패스가 트레이드 마크이다. NBA의 화이트 초콜릿 제이슨 윌리엄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넓은 시야와 독보적인 패싱 스킬[27]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이러한 김승현의 똘끼 넘치는 플레이는 송도고 시절 기술자를 양성하는 전규삼 지도자의 방침으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28]

커리어 통산 3점슛 성공률이 37% 정도에 육박하는 준수한 성공률을 가지고 있다. 세트슛을 사용했고, 당시 보기 드물게 미들레인지 풀업점퍼도 즐겨 사용했다. 키는 작지만 힘이 좋아 포스트업도 높은 빈도로 활용하였다.

수비 부문에서는 스틸이 상당히 좋은 것은 물론이고, 수비 베스트5에 뽑힌 적이 있을 정도로 수비력이 준수했다. 상하체가 고루 발달한 근육질에 힘 역시도 강한 편으로 작은 키의 단점을 충분히 상쇄했다.

전성기 김승현의 100미터 달리기 기록은 11.7초로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가졌었고, 이 스피드는 김승현의 플레이에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였다. 다만 허리 부상 이후 스피드와 민첩성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이는 수비에서 약점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다만 이상하리만큼 송도고 선배인 신기성에겐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양동근을 상대로도 역시 약한 모습을 보여 줬다. 반면 신기성은 김승현이 잘 잡던 이상민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김승현, 신기성, 이상민 당대를 호령했던 이 3명의 가드는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김승현은 스피드가 무척 뛰어난 선수인 것은 맞으나 신기성에 비해서는 반발자국 느린 편이었고, 신기성은 스피드가 뛰어났지만 높이와 힘에서 이상민에 밀렸고, 이상민은 높이가 뛰어났지만 스피드와 힘을 고루 갖춘 김승현에게 밀리는 형국이었다. 반대로 신기성은 김승현에 비해 힘은 부족했지만 스피드가 더 뛰어나서 속도로 공, 수에서 김승현에 앞섰고, 이상민은 신기성에 비해 스피드는 느릴지언정 신장과 탄력면에서 앞섰다. 김승현 역시도 이상민에 비해 높이가 크게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스피드와 힘에서 모두 이상민에 비해 뛰어난 편이었다.

세 선수 모두 흠잡을데 없이 빠른 선수들인 것은 맞지만 그 안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났고, 힘에서도 차이가 났다.

김승현은 자신보다 최소 5cm이상 큰 이상민을 상대로도 골밑에서 포스트업을 즐겨할 정도로 하체 근력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반면에 신기성을 상대로는 특유의 스피디한 아이솔레이션이 거의 봉쇄되었고 속공 플레이시에도 신기성이 1차적으로 김승현의 진로를 타이트하게 방어함으로써 위력이 반감되었다.


5. 은퇴 후[편집]


골프 쪽에 관심을 두는 듯 하다. 김승현 근황.

2014년 11월 아프리카TV에서 해설자로 데뷔했다. 서민교 기자와 함께 KBL 경기를 중계하며 프로그램 제목은 김승현의 매직핸드.[29]

2014년 12월 25일 전자랜드 vs 오리온스 경기부터 14-15 시즌 말까지 skySports의 프로농구 중계에 해설위원으로 참여했다.

2015년 2월 MBC 진짜 사나이 시즌2의 멤버로 전격 출연하며 예능 나들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통키티비 분석위원으로 활동했었다. 농구가 비시즌이라 가끔 골프 승패 예측 분석방송을 하기도 했다.

한때 하하가 운영한 더 코트 농구 아카데미의 강사로도 활동했었다. 관련 사이트


6. 방송해설위원[편집]


2017-2018 시즌부터 2018-2019 시즌까지 MBC SPORTS+에서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30]

보통 해설위원은 심판은 물론이고 선수에 대한 날선 비판보다 격려와 독려의 해설을 하는 편인데 그 부분을 지키면서 팬들에게 무난한 평을 받았다. (단, 심판도 잘못한 건 반대.)

선수가 실책을 하거나 교체를 당하면 보통 감독의 편을 드는 해설위원이 있지만 반대로 선수의 편을 든다.

그리고, 리딩 가드 출신인데 포인트 가드 위주의 공격방법과 간단한 패턴의 해설을 한다.

그러나, 해설의 전문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목소리가 차분하지만 추일승처럼 잘 들리는 편이 아니다.

해설 스타일은 다음과 같다.

2018년 1월 1일 서울 삼성 VS 창원 LG 의 경기에서 4쿼터 김시래의 앤드원 판정을 심판진들이 다시 자유투 투샷으로 번복한 걸 두고서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팬들 역시 김승현의 말에 따라서 심판진들의 판정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후 KBL에서 직접 해명 기사를 내면서 납득이 가도록 친절하게 설명하였고 그러면서 팬들도 김승현 해설위원의 이러한 해설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2018년 3월 17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안양 KGC인삼공사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전성현이 3점슛을 성공시키며 팀 승리 수훈선수가 되자 제 2의 이충희라며 송도고 출신인 후배에게 칭찬?을 했다.[31]

2019년 들어 MBC SPORTS+가 KBL 중계를 포기해 중계를 그만둘 뻔했지만 김승현은 KBL 주관방송사가 된 SPOTV의 해설위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후술된 팬서비스 발언 논란으로 인해 개막 2개월 만인 12월 8일 경기를 끝으로 해설진에서 물러나버리고 만다.


7.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7.1. 이면계약서 파문[편집]


2007~2008 시즌 이후 부상으로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되어 연봉 삭감을 통보받게 되자, 2006년 FA로 5년계약을 체결할 때 작성한 이면계약서를 토대로 2009~2010 시즌 연봉 인상을 주장하였다. 팀에서는 전 시즌의 부진을 이유로 거부했고, 이면계약서를 공개해버렸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해지자 오리온스 심용섭[32] 단장과 함께 KBL 서머리그 출범 기자회견장에 등장, 이면계약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기자회견을 저지른다.

결국 KBL에서 징계를 내렸는데, 18경기 출장정지라는 가벼운 징계를 먹이고 끝났다.[33]

그리고 2009년 11월 초반 2승 6패의 부진에 허덕이던 오리온스 구단은 KBL측에 징계경감을 건의했고, KBL측은 이를 낼름 받아들여 11월 2일 이사회를 통해 18경기 출전정지를 9경기 출전정지로 50% 반액 세일을 감행하고 말았다.

다만 워낙 오리온스가 김승현에 대한 비중이 크다보니 상대팀 선수들의 거친 수비로 인해 부상이 잦은 편. 2008~2009 시즌은 허리 부상으로 54경기 중 39경기에만 출장하여 시즌을 펑크내다시피 했고, 2009~2010시즌에는 위의 징계를 끝내고 코트에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12월 16일에 있었던 전주 KCC 이지스와의 홈경기에서 1쿼터 7분 남은 상황에서 KCC 이지스의 강은식과 충돌하여 무릎 부상을 당해 결국 3주간 결장하게 되었다.

2010년 11월 9일 오리온스 구단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야말로 갈때까지 가버리는 상황. 이전까지 트레이드도 구단과의 험악한 관계를 모두가 알고 있기에 헐값밖에 못받는 상황이라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11시즌에 출장하지 못하는것도 미운 살이 박혀서 그런것이라는 설도 파다하고. 아예 프런트에서 완전히 쳐박아놓고 계약기간을 끝내겠다는 의중을 내비쳐서 사실상 재기가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프런트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김승현의 아버지는 단장이 모팀 감독에게 "데리고 있으면서 죽이겠다”라고 한 말을 모팀 감독에게 들었다고 증언했다. 단장은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다고 했지만.. 이와 관련된 자세한 전모는 링크 참조.

KBL은 11월 11일 재정위원회를 개최하여, 작년 이사회 결정 의결사항의 불복을 사유로 김승현을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였다. 임의탈퇴 선수가 되면 선수자격은 사실상 정지되고, 타 구단의 영입도 불가능하며, 선수 정원이나 샐러리캡에서 제외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수와 구단의 합의뿐만 아니라 연맹차원의 임의탈퇴 조치가 있어야 하기에 KBL의 공식절차가 필요하다. 이제 진짜로 소송드립이 열렸다.

그리고 결국 2011년 7월 14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임금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하였다.

소송 전에 승소 이후의 KBL 복귀를 위해 오리온스 측과 만남을 가졌으나, 협상진행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오리온스 측은 복귀 조건으로 잔여연봉 포기를 요구하였고, 김승현 측은 이를 선수생활을 담보로 한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팽팽한 신경전만 반복되었다.

협상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끝에 11월 22일 오리온스와 선수복귀에 전격 합의 했다. 주요 합의내용은 김승현은 임금청구소송 승소로 얻게 되는 12억 원을 포기하고 오리온스는 12월 8일까지 타 팀으로 김승현을 트레이드시키는 것.


7.2. 이관희 통화 무단공개 사건[편집]


2015년부터 아프리카TV의 지원으로 "김승현의 매직핸드"라는 방송을 진행중이다. 아나운서 이승륜과 함께 공동진행중. 2016년 해당 방송에서 이관희와의 전화연결이 논란이 되었다.

김승현(이하 김): 형이 했던말 기억하고 있지 침착하게 생각해. 다른 팀으로 갈 생각해.

이관희(이하 이): 헤헤헤... 가야줘.

김: 돈 많이 벌어야지~~

이: 그냥 요즘에 공격도 좀 잘 안되고

김: 공격이 왜 잘 안돼?

이: 아 그냥... 뭐 여기 모든 선수들이 다 라틀리프 눈치만 보고 있어가지고 저보고도 어찌됐든 출장시간이 많아야 되니까 일단 뭐 너도 너하던데로 공격하려고 하지말고 라틀리프하고 태영이 형한테 맞추라고 그러고 있는데

김: 어~ 진짜?

이: 또 막상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왜 공격안하냐 슛 왜 안던지냐 이러는데 어떻게해야해야할지 갈팡질팡입니다

김: 괜찮아 좀만 참고 있다가 자유계약 시장 나가면돼

이: 나가야 될 거 같죠? 형님

김: 그럼 너 나갸야돼. 그래야지 너 돈많이 벌어

이: 별로 여기서 저를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거 같더라고요

김: 한 3억까지 올라갈거 같은데

이: 아이 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형님

김: 관희야 형 지금 아프리카 생방송 중인데 팬분들한테 인사 좀 해봐봐[34]

이: 아 팬분들한테요?

이승륜: (크게) 안녕하세용~

이: 아 아(당황) 방송중이에요 형님?

김: 어 인사좀 해.(평온) 이승륜 아나운서 님이 인사하잖아

이: 아.. 안녕하세요

이승륜: 어 이관희씨 안녕하세요

김: 큰소리로...

이: 아 안녕하세요

김: 어 신발 잘 받았다 야

이: 늦게 보내서 죄송합니다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형님?

김: 없어~ 괜찮아. 팬들한테 인사하라니까

이: 제가 말한 거 방송나가는거 아니죠?

김: 아니 나가는 거라니까

이승륜: 자 연결했습니다. 이관희 선수를 연결했는데요.

이: 형님 이거 진짜 방송 중이에요?


이관희와의 개인적인 통화를 이관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방송에 송출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삼성 소속으로 FA를 앞둔 이관희에게 팀의 내부사정을 묻거나 이적을 권유해 이관희의 동조를 얻어내는 등 외부로 알려지면 이관희의 입장이 지극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을 가감없이 내보냄으로써, 피해자인 이관희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시청자들마저 충격에 빠뜨렸다. 이관희는 "제가 말한거 방송나가는거 아니죠?"라며 크게 당황했지만 김승현은 심드렁하게 "아니 나가는거라니까"라고 대답.

이후 난리가 나자 김승현은 자신이 뭘 잘못했느냐, 오히려 이관희에게 잘해준 것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시청자 채팅 : 어제 통화내용때문에 여러 포털에서 까이고 있더라구요

근데 이관희 잘했잖아 오늘, 10점이나 넣고 삼성잘해줬잖아 오늘(이승륜, 이하 이)

그거 통화 좀 했다고 뭐 그렇게. 저는 이해를 못하겠어요(김승현, 이하 김)

그러니까 이관희 잘하잖아(이)

이관희 팬한테 메신저가와서 저를 혼내키더라고요(김)

아 죄송해요 다시는 관희 들먹이지 않을게요 앞으로 이관희 얘기는 없는걸로(김)

저는 삐지지 않구요, 일단 저한테 그런 싫은 소리를 하시는 분들한테는 그냥 뭐(김)

무시하면 되지 뭐(이)

제가 뭐 평생 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김)

이관희한테 나중에 어떤일이 있었는지 전화 한번 해보세요(이)

시청자 채팅 : 이관희 선수에게 사과해야하지 않나요?

이관희선수에게 우리가 친하기때문에 전화한거야(이)

질문하신분 나한테 메신저 보낸 사람 아니에요? 느낌이 딱 왔어요(김)

사과하라고? 그걸 왜 사과하지 나는 사과하라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이)

이관희하고 친해서 어제 인터뷰를 했는데 이관희하고 얘기를 한 것 가지고서 삼성에서 뭐라고 했으면 그건 삼성이 벤댕이죠(이)

벤댕이 소갈딱지죠(김)

사실이잖아요, 여러분 생각하기에 사실이잖아요 그게?(이)

제가 만약에 관희보다 나이가 어렸다면 형님 죄송해요 제가 뭐 괜히 뭐 그렇게 했네요, 관희가 뭐 틀린말을 한것도 아니고(김)

그러게요, 자기가 처한 입장, 입장을 얘기한거에요(이)

그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도저히 이해를 할수가 없는거죠(김)

이관희한테 전화해서 혹시 어떤 일이 있었냐, 혹시 뭐 그래가지고 좀 불편했었냐, (이)

좀 입장이 난처해졌다고 하더라고요(김)

입장이 난처해졌다고 하셨는데, 어 일단은 다른데로 가는것 저희가 추천했었고(이)

아니 어차피 삼성이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가 많으니까 관희정도 같은 경우엔 자기가 시장에 나가게 되면 충분히 다른팀에서 오라고 하는데가 많을거 아니에요, 이 친구가 자유계약시장에 나오게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게 되고, 저는 그런 얘기를 해준건데, 제가 뭐 잘못했나요 도대체? 그 친구가 돈 많이버는게 왜 잘못된건가요??(김)

근데 그게 만약에 잘못됐다하면 여러분들 잘못이에요, (그렇죠) 여러분이 퍼다날라가지고 그게 뭐 잘못됐다. 저희는 그거 좋은 취지로 한겁니다. 팀에서 보라고(이)

아 그럼 나는 여기서 오리온을 까고 김동광감독을 막 그렇게 싫어하고, 그럼 그거 다 어떡하나? (김)

선배입장에서 사과 좀 할 수 있죠 하는데 사과 안합니다 우리가 뭐 잘못한건 아니에요(이)

저는 뭐 관희를 잘되게 하고싶은 마음에(김)



7.3. KCC 팬서비스 논란 옹호 발언[편집]


우지원과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우지원 김승현의 농구농구'에서 녹음된 내용이다. 2019년 11월 23일에 일어났던 전주 KCC 이지스팬 서비스 논란에 대한 발언이다. 본문을 보면 두 명의 잘잘못을 떠나 우지원은 비교적 조심스럽게 얘기하며 에둘러 표현하려고 애쓰는 반면, 김승현은 팬의 잘못이 존재한다고 정확히 지적하며 논란이 커졌다. 해당 발언을 통해 농구 커뮤니티와 기사를 통해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 ##

농구 팬들은 김승현에게 실망했다며 레전드인 김승현부터가 이런 마인드니까 선수들의 팬 서비스가 그렇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35] 특히 2019-20시즌 프로농구가 창원 LG의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출연, 허재예능 진출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리그 평균관중도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터진 사건이라 더더욱 팬들의 울분을 샀다. 김승현의 발언에 분노한 일부 팬들이 프로농구 팬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이 사례가 뉴스까지 퍼져나가면서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어쨌든 김승현 본인은 흥행에 불씨를 켠 KBL에 찬물 제대로 뿌린 셈이다.

김 : 나 NBA 많이 봐서 안다. 모든 NBA선수들이 다 하이파이브 해주는거 아니다

우 : 선수는 경기 끝나면 빨리 라커에 들어가서 감독과 미팅을 해야한다. 그런데 그 수많은 팬들을 다 해드릴순 없다. 선수의 마음이 이해가지만 팬에게 상처를 준거 같아 미안하다.

김 : 팬과 선수 모두의 잘못이다. 어린관객이 뭘 알겠냐. 그 어린 관객에게는 이기고 지고는 중요한게 아니다. 단지 선수들이 좋아서 하이파이브 하기 위해 기다린것. 그 경기처럼 30점 정도 차이나는 경기는 선수들의 의욕이 상실되고 화가난 상태다. 그정도 경기라면 그 아이의 부모가 하이파이브를 못하게 잡았어야 한다.

우 : 선수와 팬의 인식, 문화 차이다. KCC트레이드 이후에 분위기 안좋고 그날은 대패한 경기. 나였다면 고개도 못들고 땅바닥만 쳐다 봤을 것. 못봤을 수도 있다. 많은 팬들의 지적과 비난 서운할 것 같다. 그리고 팬들도 서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김 : 영상을 자세히 보시면 어린팬이 손만 내밀었을뿐 아무 말도 제스처가 없었다. 하이파이브 해주세요 했으면 안해줄 선수 없다. 졌기 때문에 땅바닥보면서 못보고 지나친 선수가 많았던것 같다.

김, 우 : 예전에는 졌는데 웃거나 떳떳하게 걷고 있으면 감독, 코치, 프런트에게 찍힘

우 : 선수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선수들이 일부러 외면하려 한게 아니고 그날 분위기상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을것. 농구팬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중략

김 : 진정한 팬이라면 코트에서 열심히 뛰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 사적인 모습까지 바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NBA선수들은 팬들과 소통을 잘함. 관객들과의 거리가 가까움. 팬들과 다투는 경우도 잦다. 론 아테스트는 팬하고 치고 받고 싸운 적도 있다. 미국문화는 선후배 예의가 없다. 다 친구임. 고로 언행폭력이 많다.

우 : 미국은 하이파이브나 악수 같은건 친구니까 잘해줌. 우리랑 다름 (존댓말, 유교사상). 요새는 감독이랑 하이파이브도 하는데 대학다닐 때만 해도 감독과 하이파이브해본 기억이 거의 없음.

김 : NBA 경기를 자세히 봐라. 전반 끝나고 락커갈때보면 어린팬들 하이파이브 해달라고 손 내밀고 있다. 대부분 안하고 그냥 들어간다. 특히 전반을 지고 있는경우는 더 그렇다.

우 : 선수들이 라커가서 감독 코치 지시 받고 빨리 나와야 하기때문에 수 많은 팬들과 다 하이파이브 해줄순 없다.

김 : 경기전, 경기후라면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우 : 팬, 선수 조금씩 바뀌어야한다. 상황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하프타임에 선수들이 라커가서 감독 코치 지시 받고 빨리 나와야 하기때문에..... 이런것들) 경기전, 경기후 미팅끝나고 난뒤에는 해줄수 있다. 서로 이해해 주면 더 좋아질수있다.

김 : 선수, 팬 둘다 잘못이다. 그런데 100% 선수들의 잘못으로 몰고 가고있다. 내가 선출이라 그런지 몰라도 대패당한 상황에서는 선수들이 팬을 못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라건아, 한정원은 키가 커서 팬을 볼수 있었음.

우 : 라건아는 미국출신이라 자연스럽게 한 것 같다.


논란이 된 부분을 볼드체 처리했으니 바쁘다면 저 부분만 읽어도 된다. 보면 알겠지만, 선수로서 팬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뻔히 보이는 정말 신박한 개소리다.

  • 30점차 이상 대패한 상황에서는 선수들이 의욕을 상실하고 화가 난 상태이니, 부모가 하이파이브 못하게 말렸어야 했다.(?)
    • 경기를 패했다고 하이파이브 정도의 간단한 팬서비스를 안하는 것은 프로선수의 자질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하이파이브는 선수가 팬에게 하는 팬서비스인 동시에 팬이 선수에게 전하는 응원이기도 하다. 패했다고 선수들이 팬을 외면하면 팬들도 선수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 어린 팬이 손만 내밀고 아무 말도 안해서 몰랐다.(?)
    • 락커룸으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손 내밀고 있으면 누가봐도 손 한 번 맞춰달라는 것이다. 그럼 하이파이브 해준 라건아와 한정원은 똑똑해서 알아보고 해준 것이고 다른 선수들은 무식(?)해서 하이파이브 해달라는 걸 몰랐다는 말밖에 안된다.

  • 졌는데 웃거나 떳떳하게 걷고 있으면 감독에게 찍힌다.(?)
    • 이건 농구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의 오랜 악습 중 하나인 지나친 승리주의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36] 하지만 요즘에는 이랬다간 감독이 구단장 및 구단주에게 헤임당할 일이 된다.

  • 진정한 팬이라면 코트에서 열심히 뛰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 사적인 모습까지 바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김승현의 발언 중 top 오브 개소리. 팬들은 경기력만 보고 팬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패배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선수뿐만 아니라 팬들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팀이 부진해도 응원하는 이유는 많다.[37] 당장 야구의 한화 이글스롯데 자이언츠는 성적이 바닥인 걸로 유명한 것과 반대로 인기는 최고인 구단으로 손 꼽히고, 반대로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두는 키움 히어로즈처럼 인기가 없는 팀인데도[38] 선수단은 물론이고, 치어리더까지 팬서비스가 상당히 우수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프로선수라면 적어도 이런 팬들을 무시해선 안되며,[39] 오히려 대패했어도 끝까지 응원하는 팬이야 말로 진정한 팬이며, 승패에 따라 팬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건 프로 선수답지 못한 행동이다. 또한 헤당 어린이 팬이 하이파이브를 요청한 곳은 경기장 안이다. 숙소나 락커룸도 아니다. 경기장 안은 선수의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경기장은 선수들이 팬들 앞에서 좋은 경기력과 팬서비스를 보여야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뒤에 NBA에서 선수가 팬과 싸운 적도 있다고 들먹이는데, NBA에서도 그런 짓을 벌였다간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론 아테스트는 결국 잔여시즌 출전 정지 및 플레이오프 13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물론 헤당 관중 역시 구치소 30일. 보호감찰 2년에 디트로이드 경기장 출입 영구 금지 처분을 받았다.

  • 미국 문화에는 선후배 예의가 없다. 다 친구이다. 고로 언행폭력이 많다.(?)
    • 미국 문화에도 선후배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의가 없다는 것은 더더욱 헛소리다.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를 뿐, 미국에서도 선후배의 관계와 예의가 있고, 그냥 'What's up?' 하면서 무조건 친구 먹는 것도 아니다. 언어적인 면은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영어에도 존칭이 있으며, 다 반말이 아니다.[40]

  • NBA 경기를 보면 전반 끝나고 어린팬들이 하이파이브 해달라고 손 내밀고 있지만 대부분 안하고 그냥 들어간다.(?)
    • NBA 선수라고 모든 선수들이 다 팬 서비스를 잘하는 건 아니다. 김승현이 든 예시처럼 못해주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못해주는 상황은 팬들도 이해한다. 다만, 이번 KCC의 경우는 전반이 끝난 것이 아니라 경기가 완전히 끝나고 락커룸으로 들어가는 상황이다. NBA 선수들은 이 경우에 다는 못해줘도 거의 다 해줄려고 노력한다.[41]

  • 라건아, 한정원은 키가 커서 팬을 볼 수 있었다.(?)
    • 라건아한정원은 다른 KCC 선수들에 비해 특출나게 키가 큰 선수가 아니다.[42] 애초에 선수들 입장, 퇴장하는 곳과 관중석의 간격이 큰 것도 아니다. 키와 상관없이 일반인도 고개를 들고 걸으면 다 보인다. 키가 커서 팬을 볼수 있었다면 당시 출전 선수 중 쳐주고간 둘과 키가 같은 김진용(=라건아)과 송교창(=한정원)이 못 본것도 말이 안 된다.

근본적으로 김승현이 착각하는 것, 혹은 왜곡하는 것이 NBA의 팬 서비스에 대한 것이다. NBA를 포함한 미국 프로스포츠계는 팬서비스가 정말 철저하다. 왜냐하면 리그 운영비용이 각 구단의 모기업에서 대부분 나오는 한국과는 달리 NBA를 포함한 미국의 스포츠 구단은 구단 스스로 운영비를 벌어야 하는데, 인기가 떨어지고 관중이 없는 구단은 그대로 망하기 때문이다.[43][44]

이에 따라 NBA에서 가장 안 좋게 보는 것이 바로 팬과 선수의 마찰이다. NBA 역사상 (약물로 인한 징계를 제외하고) 가장 긴 징계기간이 바로 론 아테스트의 팬과의 난투극이었고, 위에 언급한 대로 정규시즌+플레이오프 전 경기 무조건 출장정지[45] 이는 라트렐 스프리웰의 감독 목조르기 (처음엔 1년이었으나 68경기로 조정), 루디 탐자노비치를 문자 그대로 죽일 뻔한 커밋 워싱턴의 펀치 (26경기)보다도 더 엄한 벌이었다.

"매드 맥스" 버논 맥스웰은 관중석에 뛰어들어 팬에게 펀치를 먹였다가 10경기 출장정지와 2만불 벌금을 냈으며, 시카고 불스의 안토니오 데이비스는 아내가 한 팬과 시비가 걸린 것을 보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관중석에 뛰어들었을 뿐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단순히 관중석에 난입했다는 것만으로 NBA로부터 5경기 출장정지를 받고 해당 팬으로부터 고소까지 당했다. 팬들을 우선시하는 것은 프로리그로서 당연한 것이다. 팬은 프로스포츠 구단의 최고의 고객이자 프로리그가 유지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NBA선수들이 팬서비스를 적극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명확한 것은 프로리그에선 팬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기본이며, 안 해주는 선수들은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뚜렷히 있다는 것이다. 안 해주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팬이 경기장에서 팬 서비스를 요청하는 건 김승현이 말하는 것처럼 잘못이 절대로 아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나흘 만에 사과방송을 올렸고 스포티비 해설진에서도 개막후 2개월이 지난 12월 8일을 끝으로 물러나 버렸다.

설사 위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변명(문화차이, 키 차이 등)이 자신들만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못해줬으면 팬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하는 것이다.

여기에 논란의 팀 감독이었던 전창진 감독도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며,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에 김승현에 대한 까임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여기다가 김승현의 말에 맞장구 쳤던 우지원의 평가도 급락해버렸다.


7.4.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사기죄 혐의 피소[편집]


2020년 12월 15일, 사기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원인이 2018년 5월경에 2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로부터 1억 원을 빌린 뒤 이를 갚지 않았다고 한다.

골프장 인수사업과 관련해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친구한테 현금 1억 원을 빌렸다고 한다. 돈을 빌려준 친구는 김승현이 결혼식 축의금으로 1억 원을 갚겠다고 하자 김승현의 이 말을 믿고서 차용증 없이 돈을 빌려줬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김승현이 돈을 갚지 않자 결국 2019년 12월 31일 경찰에 김승현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고, 결국 수사 끝에 김승현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다만 김승현은 기소직전 이자 780만 원을 포함해 빌린 돈을 모두 변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12월 16일에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김승현에게 징역 1년 6개월형을 구형했다. 23일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김승현에게 벌금 1천만 원형을 선고했다.


8. 여담[편집]


  • 펄녀가 운영하는 펄하우스스토리 소속이다. 김승현의 이미지가 나빠진 데에는 이 점도 크게 한 몫 했다.

  • 불혹을 넘긴 나이의 외모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상당한 동안이다. 농구계에서 비슷한 케이스로는 강혁이 있다. 현재도 프로에 첫 발을 내딛던 시절과 외모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 복면가왕 50차 경연에서 '지구 한바퀴 땅부자'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40줄이 약간 넘은 나이에 배우 한정원(이유미)과 1년간의 연애 끝에 2018년 5월 26일에 결혼[46]했으나 2021년 11월 9일 기사에 의하면 둘은 협의 끝에 이혼했다. #

  • 영화 사바하에 카센터 정비공 역으로 특별출연했는데, 거의 단역 수준으로 스쳐지나가고 대사도 없어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9. 관련 문서[편집]



[1] 2002년 5월 인터뷰에서 자신의 실제 키를 언급했다.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서는 178cm로 적혀져 있다.[2] 2007-08 시즌에 전직 동료이자 친구였던 마르커스 힉스가 보고 싶어서 착용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보도했다.[3] 2019년부터 로고 변경.[4] 후술할 팬서비스 발언으로 중도하차했다.[5]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6] 물론 당시의 전형수는 신인 중에서는 손꼽히는 공격력을 가졌고, 지명 당시에는 김승현보다 더 뛰어난 공격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로터리 픽에서 뽑힐만한 선수였다. 그러나 코리아텐더는 전형수를 한 시즌밖에 쓰지 못했는데, 이는 구단의 재정난으로 인해 선수를 팔아서 운영비를 충당해야했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때문에 시즌 종료 후 코리아텐더는 오프시즌에 전형수를 모비스로 현금 트레이드를 시켜버렸다. 당시 전형수는 경희대학교에서 개인 훈련을 하던 도중에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주저앉아버렸다고.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얄궃게도 전형수의 저니맨 커리어의 시작점이 되어버렸다.[7] 대한민국 프로스포츠에서 신인왕-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은 김승현 이후로 KOVO V-리그 2005-06 시즌의 김연경과 프로야구 2006 시즌의 류현진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포스트시즌 최종 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한 선수는 김연경이 유일하다. 그래도 김승현은 2001-02 시즌 파이널에서 우승을 맛봤다. 아쉽게도 MVP는 마르커스 힉스에게 내주긴 했지만.[8] 당시 정규시즌 MVP 투표에서 김승현이 39표, SK의 서장훈이 37표를 받았다. 2015-16 시즌 MVP 투표 때 1표차로 양동근이 수상하기 전까지 역대 최소 득표차 수상이었다.[9] 사실 정상적으로라면 한 차례 더 있어야하는데 이상민이 신인시절에 MVP를 탔기 때문이다. 리그 전체에서 최고의 선수란 건 당연히 신인 중 최고이므로 둘다 석권했어야하지만 당시 이상민은 만장일치로 MVP에 뽑혔고(총37표. 역대 유일한 만장일치 MVP) 신인상에선 주희정 32표, 이상민 5표로 주희정이 신인상을 받았다. 이 상황에 대해 여러가지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정리하자면 이는 이상민이나 김승현에 대한 팬심을 떠나 근본없는 KBL 수상체계의 문제점이다. 일단 정리하자면 이상민이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빠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 주희정은 32표, 이상민은 5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애매한 것은 이상민은 대학교 1학년이던 시절 농구대잔치 신인왕을 받은 적은 있다. 이는 양쪽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으로 1. 대학신분으로 받은 신인왕을 프로리그의 신인왕과 동일하게 칠 수 있는가?라고 보면 신인자격이 있다. 또한 이상민은 현대입단 후 공식경기에 이름을 올린 적도 없고 바로 상무입대를 했기 때문에 제대후 프로 첫 경기가 현대 소속으로 뛴 첫 데뷔무대였고, 성인무대에서의 첫 데뷔 무대였다. 다만 사실상 프로나 다름없는 실업선수들이 참여하던 리그의 신인왕이니 사실상 프로 신인왕을 받은 것이 아닌가?(실제로 실업리그 선수들도 신인왕을 받기도 했다)라고 보면 자격이 없다. 즉, 이와 같은 애매한 상황 때문에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이상민이 비정상적으로 적은 표를 받은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KBL이 이상민의 후보자격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건, 당시 투표단이 후보 기준을 무시하고 투표를 한 것이던 문제가 되는 수상은 맞다. "리그 최고의 선수"가 신인 자격임에도 불구하고 신인왕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촌극이기 때문이다. KBL 수상체계의 문제점은 2010년대를 넘어서도 계속되어 왔는데, 2013년 당시 첫 시즌임에도 올스타에 선발된 포워드 장민국은, 분명 데뷔 시즌임에도 신인자격이 없었다. KBL은 전 제출된 선수명단 12인에 이름이 오르면 출전여부와 상관없이 출전선수로 보기 때문이다. 뛰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명단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신인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2/2013122200277.html.[10] 다만 당시 농구대잔치는 지금의 인식과는 달리, KBL의 전신 리그로 여겨지고 있었고, 이상민이 상무에서 뛴 첫시즌까지도 농구 대잔치는 한국의 메인 리그였다. 즉 이상민은 이미 농구대잔치를 5시즌이나 치른 베테랑 선수였기 때문에, 이상민이 신인왕 후보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시각이다. 근데 이 각주들의 포인트는 위에 언급된 대로 이상민이 신인상을 받았어야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KBL의 수상체계 자체가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위에서 계속하는 얘기는 이상민이 신인왕 후보에 있는 것이 타당하냐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타당하건 말건 이상민의 후보 자격 자체를 애매하게 해놓은 KBL의 수준 이하 행정절차가 문제라는 것이다.[11] 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농구대잔치는 대학부 신인왕과 실업부 신인왕을 따로 뽑았기 때문이다. 대학때 농구대잔치 신인왕을 받은 선수가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하여 다시 실업부 신인왕을 수상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농구대잔치 대학부 신인왕을 받았다고 KBL 신인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12] 어시스트상, 스틸상과 같은 기록별 수상은 2005~06 시즌 부터 사라졌다[13] 사실 이때 한국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건 홈콜의 이점을 누린 것도 컸고, 서장훈의 천적인 왕즈즈가 불참한 이유도 컸다.[14] 굳이 비견하자면 2011-2012 인삼공사의 오세근 정도겠으나, 리그/플레이오프/국제무대에서 모두 폭발력있던 임팩트로 우승을 이끌었던 김승현에 비하면 많이 약한 수준이다.[15] 여기에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샷클락만 움직이고 경기시간이 멈춰진 사태가 발생한 일명 잃어버린 15초 사건이 발생했다.[16] 당시 도시바 베이거스 서머리그[17] 당시 포틀랜드는 3월경 모리스 칙스가 경질되고 7월경 맥밀란이 감독으로 부임했다.[18] 스포티비에서 한 2016년 NBA 파이널 2차전 해설에서 밝힌 내용[19] 오리온스는 고양시연고지 이전추일승 감독이 리빌딩을 하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20] 자세한 내용은 후술[21] 여러 구단에서 김승현을 끌어오기 위해 제안이 오고 갔었고 복귀 말미에 삼성 중심으로 기사가 여러번 나왔었다. 임의탈퇴를 풀기 위해 삼성의 도움이 있었고 서장훈 선수의 조언에 삼성의 재활시스템이 좋다고 들었다는 것을 김승현 선수 본인이 언급했다. 김승현의 언급에 따르면 오리온스에서 재활을 제대로 못해서, 국내 최고 재활 트레이닝 센터가 있는 STC에 매력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22] 하지만 다르게 보면 김승현이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안 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정도 연습으로 최고소리를 들었으니 그만큼 천재성이 대단했다는 걸 인증한다.[23] 김동욱도 비슷하게 내려가고 있었으나 김동욱은 오리온스에서 정상급 포워드로 거듭났다. 본격적으로 까이기 시작한 건 12~13시즌 이후.[24] 22승 32패로 KBL 플레이오프 진출팀 중 최하 성적[25] 특히 김승현과 라이벌 관계였던 이상민의 팬들이 이 별명으로 많이 깠다. 이 별명은 나중에 은퇴 후 해설위원이 된 뒤 김승현 본인이 직접 예고 영상을 통해 "제가 별명이 턴승현이라서......" 라고 자학 개그를 할 때 써먹기도 했다.[26] 사실 PG를 평할 때 단순히 턴오버 개수가 많은 것만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할 때도 있다. 매직 존슨의 경우 통산 턴오버가 NBA 주전 포인트가드 기준으로 굉장히 많은 3.9개에 달하며 커리어 하이는 무려 4.6개, MVP를 수상한 88-89시즌에도 4.1개를 찍었다. 패스가 많고 볼핸들링이 많으면 턴오버가 확률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으므로 턴오버 뿐 아니라 그 팀의 페이스가 어느 정도 되는지 (레이커스처럼 공격권을 많이 쓰는 팀이라면 당연히 산술적으로 실책이 많아진다), 그 선수가 종합적으로 얼마나 위력적인지, 턴오버로 인해 공격의 흐름을 자주 끊어먹는지, 공을 오래 갖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실책인지 아니면 바보같은 실수로 볼을 흘리는 건지, 등등을 살펴봐야한다. 전성기의 김승현은 턴오버 자체는 많아도 어리석은 실수가 아니라 볼을 오래 간수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데서 오는 자연적인 실책이 많았으며, 많은 턴오버에도 불구하고 (매직과 마찬가지로) 자기 리그 내에선 위력적인 선수였으므로 단순히 턴오버가 많다고 까는 건 부당하다.[27] 이것 때문에 그가 부진할 땐 턴승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턴오버+김승현[28] 원래 김승현은 연세대에서 오퍼를 받았었는데, 강압적인 훈련분위기를 싫어하던 성격이라 동국대로 갔다. 게다가 전규삼 선생의 제자들 중에 연세대로 간 제자는 정덕화 말고는 거의 없다. 김동광, 이충희, 서동철과 신기성은 고려대, 강동희, 홍사붕, 안병익은 중앙대, 최호(현 송도고 감독)는 한양대 등등... 그 정덕화도 전규삼 선생의 권유를 거절하고 연세대로 갔기 때문에 전규삼 선생은 그 후로 정덕화를 절대로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연세대로 갔다면 지금의 김승현이 없었을 것이다.[29] 예전 이중계약 관련하여 대립한 적이 있었던 옛 소속팀 오리온스나 코트 위에서 충돌을 일으켰던 김동욱과는 여전히 사이가 껄끄러운지 해설 도중에 불편한 감정을 종종 내비쳤다.[30] 2019-20 시즌부터 농구 중계권을 반납하며 SPOTV에서 중계를 하게 된다.[31] 그도 그럴 것이 송도고는 포인트 가드선수들의 집합소라 할만큼 뛰어난 가드가 많았다. 이충희 前 감독 이후 3점슈터는 전성현이니 32년이다.[32] 이 때 붙여진 별명이 바로 심문어. 모델 심소영의 아버지이기도 한다.[33] NBA는 조 스미스와 이면계약이 적발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5년동안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박탈하였다.[34] 이 시점 이전까지 김승현은 이관희에게 자신과의 통화가 방송중이라는 것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35] KBO 리그에서도 레전드인 이승엽의 팬 서비스 부실 논란으로 리그 전체가 까임을 당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36] 사실, 대한민국의 스포츠 구단들은 종목에 상관없이 사실상 구단의 모기업이 운영비 및 연봉을 모두 지급하다보니 구단 운영의 핵심이 되는 팬들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승부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심했다.[37] 팀의 연고지가 자신의 고향이라서, 팀의 특정 선수의 팬이어서, 어릴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구장에 가본 추억이 있어서 등.[38] 물론, 이 팀도 재창단 후 몇 년 간은 성적도 부진했다.[39] 이 때문에 팬 서비스에 인색한 선수도 어린이 팬 만큼은 꼭 해주는 선수도 있다. 또한 팬 서비스를 잘 해주는 선수도 이유를 보면 어릴 적 사인 요청을 거절당한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잘 해주었다는 말은 넘쳐날 정도.[40] 영어에 이런 오해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you를 무조건 '너'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에서 you는 '당신', '댁' 등 모든 2인칭을 대변할 수 있는 단어다. 재밌게도 한국어를 배운 영어권 사람들도 오해하고 있는 사항중의 하나다.[41] 같은 KBL 소속팀인 고양 오리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가 끝나면 팬들이 코트 밑으로 내려와 퇴장하는 선수, 치어리더들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논란이 터지고 오리온과의 경기에서 KCC가 패하면서 농구팬들은 오리온이 정의구현을 했다고 평가했다.[42] KBL 측정 기준으로 라건아는 199cm, 한정원은 2m이다. 오히려 센터라는 포지션을 생각해보면 작은 키에 속한다.[43] 뉴욕 닉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닉스 같은 경우, 선수가 아닌 경기장을 찾는 유명인사들에게도 사진과 영상 촬영에 적극 임하게 하며, 안 그러면 클럽하우스 출입을 금지할 정도이다.[44] 한국야구리그인 KBO 리그키움 히어로즈만 봐도 구단 스스로 운영비를 버는 유일한 팀이다. 재창단 하기 전의 팀이였던 현대 유니콘스도 팬 서비스가 매우 좋았다.[45] 결과적으로 86경기 징계이자 연봉 중 거의 7백만 달러를 못 받았다.[46] 골프를 치며 친해진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2세를 가지면 운동선수로 키울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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