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풍

최근 편집일시 :

전태풍의 수상 내역 및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11









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3번
강병현
(2008~2009)

전태풍
(2009~2012)


장민국
(2012~2014)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등번호 3번
김승현
(2008~2010)

전태풍
(2012~2013)


김도수
(2013~2014)
부산 kt 소닉붐 등번호 3번
김현중
(2012~2013)

전태풍
(2013~2015)


김경수
(2015~2016)
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3번
김일두
(2014~2015)

전태풍
(2015~2019)


이정현
(2019~2022)
서울 SK 나이츠 등번호 3번
최원혁
(2016~2019)

전태풍
(2019~2020)


최원혁
(2021~ )



전태풍
田颱風
[1] | Chon Taepoong[2]


본명
앤서니 주얼 애킨스[3]
Anthony Jewell Akins
출생
1980년 7월 3일 (43세)
미시간디트로이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1980~2009)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2009~ )
학력
버크머 고등학교
조지아 공과대학교 (중퇴)[4]
신체
179cm[5] | 체중 82kg | 윙스팬 186cm
직업
농구 선수 (포인트 가드 / 은퇴)
방송인
프로 입단
2009년 혼혈 드래프트 1번 (KCC)
현역 시절 등번호
3
소속
선수
Avtodor Saratov[6] (2002~2003)
Roanne[7] (2004)
Pınar Karşıyaka[8] (2004~2005)
Roanne (2005~2006)
Racing Parigi[9] (2006)
Stal Ostrów Wielkopolski[10] (2006~2007)
Spalato[11] (2007~2008)
PAOK Salonicco[12] (2008)
아카데미크 소피아[13] (2008~2009)
아폴론 리마솔[14] (2009)
전주 KCC 이지스 (2009~2012)
고양 오리온스 (2012~2013.12)
부산 kt 소닉붐 (2013.12~2015)
전주 KCC 이지스 (2015~2019)
서울 SK 나이츠 (2019~2020)
코치
전주 KCC 이지스 플레잉 코치 (2018.12~2019)
가족 관계[15]
배우자 미나 터너[16]
장남 전태용(2012년생)
장녀 전하늘(2014년생)
차남 전태양(2019년생)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기록
2.1. KBL 이전 기록
2.2. KBL 기록
3. KBL 이전
3.1. NCAA 이전
3.2. NCAA
3.3. 유럽
4. KBL 시절
4.1. 전주 KCC 이지스
4.2. 고양 오리온스
4.3. 부산 kt 소닉붐
4.4. 다시 KCC로
4.4.1. 2015-16 시즌
4.4.2. 2016-17 시즌
4.4.3. 2017-18 시즌
4.4.4. 2018-19 시즌
4.5. 서울 SK 나이츠
4.5.1. 2019-20 시즌
5. 은퇴 이후
6. 플레이 스타일
6.1. 장점
6.2. 단점
7. 수상
7.1. 대회 기록
7.2. 개인 수상
8. 사건 사고
8.1. 전주 KCC와의 갈등
9. 여담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프로농구에서 뛰었던 귀화 혼혈 선수. 미국명은 토니 애킨스(Tony Akins), 풀네임은 'Anthony Jewell Akins'.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었으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하여 현재 한국 단일 국적자다.[17]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18],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2. 기록[편집]



2.1. KBL 이전 기록[편집]


NCAA
시즌
컨퍼런스
소속팀
경기수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1998-99
ACC
Georgia Tech
31
57/198
(28.79%)
76/114
(66.67%)
349
114
148
46
1
1999-00
30
68/185
(36.76%)
55/71
(77.46%)
345
99
108
35
2
2000-01
30
78/186
(41.94%)
78/103
(75.73%)
346
104
128
35
0
2001-02
31
98/243
(40.33%)
90/108
(83.33%)
528
118
176
59
0
NCAA 통산
(4시즌)
122
301/812
(37.07%)
299/396
(75.51%)
1568
435
560
175
3

프로 리그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2-03
러시아
Avtodor Saratov
2
19.5
33.3%
9
4
10
5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3-04
프랑스
Roanne
18
32.7
37.3%
265
50
92
18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4-05
터키
Pinar Karsiyaka
19
33.6
38.9%
300
57
59
25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4-05
프랑스
Roanne
9
32.4
52.3%
125
29
56
14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5-06
프랑스
Roanne
17
27.8
38.2%
194
36
61
14
0
Boulogne-Levallois
11
31.7
33.7%
94
34
56
12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6-07
폴란드
MKS Znicz Jaroslaw
4
31.3
44.0%
78
15
24
6
0
Arged BMSlam
Stal Ostrów Wielkopolski
19
30.4
38.0%
268
70
99
34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7-08
크로아티아
Split
25
34.6
35.5%
315
70
150
48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8-09
그리스
PAOK logoPAOK
1
4.0
0.0%
2
0
1
0
0
시즌
리그
소속팀
경기수
평균 출전시간
3점슛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8-09
불가리아
Lukoil Academic
5
27.2
38.1%
54
12
22
6
1
프로 리그 통산
(7리그 7시즌)
125
32.7
-
1731
377
630
182
1



2.2. KBL 기록[편집]


역대 기록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9-10
KCC
50
165/310
(53.23%)
87/220
(39.55%)
129/163
(79.14%)
720
134
234
77
3
2010-11
38
105/221
(47.51%)
58/142
(40.85%)
80/93
(86.02%)
464
88
185
56
3
2011-12
50
184/332
(55.42%)
82/199
(41.21%)
136/167
(81.44%)
750
142
249
65
3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2-13
오리온스
52
161/304
(52.96%)
65/200
(32.50%)
122/161
(75.78%)
639
119
319
73
7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3-14
오리온스 / kt
52
128/263
(48.67%)
46/145
(31.72%)
87/117
(74.36%)
481
121
196
49
4
2014-15
kt
38
10/207
(48.31%)
52/140
(37.14%)
67/83
(80.72%)
423
106
150
37
1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5-16
KCC
53
117/258
(45.35%)
73/197
(37.06%)
128/145
(88.28%)
581
137
144
43
3
2016-17
5
9/24
(37.50%)
4/13
(30.77%)
4/5
(80.00%)
34
19
12
4
0
2017-18
35
60/118
(50.85%)
29/73
(39.73%)
64/72
(88.89%)
271
69
121
35
2
2018-19
22
19/47
(40.43%)
7/29
(24.14%)
19/23
(82.61%)
78
35
39
18
0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9-20
SK
30
31/67
(46.27%)
11/42
(26.19%)
18/22
(81.82%)
113
47
62
13
0
KBL 통산
(11시즌)
425
1079/2151
(50.16%)
514/1400
(36.71%)
854/1051
(81.26%)
4554
1017
1711
470
26



3. KBL 이전[편집]



3.1. NCAA 이전[편집]


1980년 7월 3일, 디트로이트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 농구 선수였고 어머니는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온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후 LA로 가서 13년간 살다가 Lilburn이라는 곳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Richards Middle School을 거쳐 Berkmar High School에 진학했다.

Berkmar High School에서 3학년때 평균 28.6점, 5.0리바운드, 6.5어시스트, 5.0스틸, 야투율 55%, 3점슛 42%, 자유투 85%로 그 학교의 에이스로 맹활약을 하면서 팀을 이끌며 25승 8패를 이뤄냈다. 이때 Mr.basketball에 선정되어 조지아주 최고의 선수로 뽑혔고, USA Basketball이 뽑은 Junior National Championship Team의 27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청소년 대표로 경기를 했던게 바로 이 시기이다.

고교시절 총 1,955점을 기록하여 귀넷(Gwinnett) 카운티 득점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되고, Berkmar 고등학교는 최우수 농구 고등학교로 선정됐다. 수십 개의 대학에서 오퍼가 왔으나 조지아 공대와 미시건 대학 두 가지 선택지에서 부모님은 미시건 대학 진학을 원했다. 전통적으로 포인트 가드가 강한 학교이며 집에서 다니고 싶다는 이유로 조지아 공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전태풍은 전미 리크루팅 랭킹 56순위로 조지아 공대에 입학한다.[19]


3.2. NCAA[편집]


조지아 공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으며, 심지어 개인교수까지 붙여서 그가 운동, 공부 모두 잘 할 수있게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전태풍은 처음 2년은 좀 헤맸는데 바로 점프슛이 부족했기 때문에 경기력이 불안정했다. 고교시절에는 준수한 운동능력과[20] 술로 상대를 압살했지만 대학무대의 수준은 달랐고, 마크 프라이스로부터 미들 점퍼를 배우기 시작했다.

조지아 공대 1학년때는 31경기 11.3점 3.7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2학년때는 11.5점 3.3리바운드 3.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필드골이 상당히 떨어졌고, 턴오버가 상당히 많은 턴오버 머신이었다. 적응기를 끝낸 3학년때는 14.5점 3.5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 이때 조지아 공대는 17승 13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4학년때는 17.0점 4.3리바운드 5.7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졸업했다. 이 때 조지아 공대는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지만 기량을 인정받았던 전태풍은 ALL ACC 컨퍼런스 세컨드팀에 뽑히게 된다.

1,2학년때는 필드골이 30% 초반대로 안 좋았지만 3,4학년때는 40%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고 TS%는 3학년때 59.4%, 4학년때는 57.7%를 기록했다. 4년동안 3점슛을 301개를 성공했고(성공률은 37.1%) 이는 조지아 공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사이즈가 애매하고 실력 역시 그 사이즈를 커버할 정도로 전국에서 압도적인 건 아니여서 결국 NBA 입성에 실패, 유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담으로 전태풍이 졸업한 후 곧바로 그 유명한 크리스 보시재럿 잭이 입학하기도 했고, 2003-04 시즌에는 크리스 보시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공대는 NCAA 파이널까지 진출한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코네티컷 대학교에게 82-73으로 패배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는 데 이 때 코네티컷의 원 투 펀치가 바로 에메카 오카포와 벤 고든이었다. 오카포는 이 때 24득점 15리바운드 2블록슛 필드골 10/17을 기록하며 조지아 공대를 압살했다. 오카포는 2004 NBA 드래프트 2순위로 샬럿에 입성했고, 벤 고든은 곧바로 3순위로 시카고에 입성했다.


3.3. 유럽[편집]


유럽에서 그가 거쳐간 국가는 러시아, 프랑스, 터키, 폴란드, 크로아티아, 그리스, 불가리아. 스탯은 보통 평균 10~15점에 어시스트도 5개 이상 기록하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 중 폴란드에서는 통합 23경기 15.0점 5.3어시스트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통합 39경기 12.1점 5.9어시스트로 팀을 챔프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 당시 전태풍은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트라이아웃에서 양동근을 상대로 1:1에서 승리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일약 1순위 후보로 지목되었다.[21]

가드가 부실했던 모든 팀들이 탐을 냈던 전태풍을 지명한 팀은 1순위 지명권을 가지게 된 전주 KCC 이지스. 허재 감독의 복코(…)가 또 한 번 빛을 내는 순간이었는데, 왜냐하면 허재 감독은 순서 상 가장 마지막인 10번째에 추첨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앞의 9개 팀이 모두 꽝을 뽑아서 1순위가 되었다는 뜻. 어쨌든 이상민의 이적으로 그 후계자 육성에 애를 먹던 KCC 입장에서는 단숨에 가드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행운이 따라주었다.

전태풍은 하승진 유튜브에서 이 당시 본인의 기량이 농구 인생에서 가장 뛰어났다 밝힌 바 있다.


4. KBL 시절[편집]



4.1. 전주 KCC 이지스[편집]


파일:/image/065/2010/01/10/_JEON_0.jpg

바로 한국에 귀화 신청을 해서 빠르게 귀화했고, 이름도 지금의 전태풍으로 지었다. KCC의 공격을 조율하고, 뛰어난 볼 핸들링과 슛팅으로 KCC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다만 기분을 좀 타는 편이라서 기분이 업될 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신들린 듯한 활약을 보이다가도 기분이 다운되면 영 시원찮은,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허재 감독과 KCC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선수. 가드로서의 볼 컨트롤과 드리블과 같은 스킬에 있어서는 여타 한국 선수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중평이다. 기본기가 좋고, 순간 스피드가 좋기 때문에 1:1로는 어지간해서 막기 힘들다.

한국어에 아주 능통하지는 않지만, 허재 감독의 지시로 통역이 따라붙지 않고 있다. 심지어 경기 끝나고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한국어가 늘면서 곧잘 인터뷰도 잘 한다. 다만, 이게 어휘 구사에서 골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팬들에게는 아주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속공 잘됐어요. 슛 잘했어요"(경기에서 이긴 후, 승리 이유에 답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전태풍씨입니다. 시청자 하라분(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니다"(2010년 새해 인사에서)

"4쿼터 됐어요. 다리 힘들어요"(4Q 막판 덩크에 실패한 이유를 묻자)

"안 돼요. 감독님 모가지 잘려요"(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 허재 감독을 놓고 덩크하는 것이 어떻냐는 질문에)

"감독 얘기하는 거 힘들어요. 미안해 감독님."(가장 어려운 한국말을 묻자.)

이쯤 되면 과장 살짝 보태 레알 귀요미 수준(…). 글만 써도 자동음성지원이 된다.

KBL에 대한 불만 사항으로 귀화 선수에게는 강제로 3년 마다 팀을 바꾸도록 하는 규정을 들고 있다. 사실 캐나다 국적인 김효범이 정상적인 FA를 취득하는 것에 비해 차별적인 것도 맞다. 이 때문에 농구 팬들은 KBL과 김효범을 까지만, 한편으로는 KCC에서 나와 다른 팀에 간 전태풍의 활약도 은근히 기대하는 편.

2012년 3월 11일, 소속팀인 전주 KCC 이지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스윕으로 패배를 당해, 4강 진출이 좌절됨에 따라 KCC에서의 생활은 마무리짓게 되었다. 현재 혼혈 선수를 영입한 이력이 없는 서울 SK 나이츠, 울산 모비스 피버스, 원주 동부 프로미, 고양 오리온스가 전태풍을 지명할 수 있는데, 김선형양동근, 김시래, 박지현을 보유한 SK, 모비스, 동부보단 상대적으로 가드가 약한 고양 오리온스에 지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리온스 역시 5억을 지를거라 공언하며 사실상 오리온스 단독 입찰 분위기.


4.2. 고양 오리온스[편집]


파일:/image/065/2013/12/18/ORI500_0_59_20131218112107.jpg
2012년 5월 3일 발표된 혼혈 선수 드래프트 결과에서 고양 오리온스의 지명을 받아 오리온스로 가게 되었다. 가드가 약한 오리온스가 포인트 가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중론. 이로서 오리온스는 김승현 부상 이후 계속되어온 포인트 가드 부재의 악순환을 끊게 되었다.

2012년 10월 13일 KT와의 시즌 개막전에 출장한 전태풍은 18점 7어시스트 5리바운드로 맹활약했고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2012-13 시즌 평균 12.2점 6.1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KBL에 와서 처음으로 어시스트 1위를 기록했지만 KCC에서 보여줬던 파괴력보다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전보다 공격력이 줄어들고 느려져서 이제 노쇠화가 진행됐다는 평가. 그럼에도 KBL을 대표하는 다른 3명의 가드(양동근, 김태술, 김선형)에 비등비등한 실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스피드가 느려진 현재 김선형에겐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22]

그런데 인터뷰에서 밝히길 노쇠화보다는 골반쪽에 문제가 있어서 발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더불어 별로 오고싶지 않았던 오리온스였기에 의사소통도 많이 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몸상태가 좋다고 했다.[23]

하지만 본인의 말대로 몸상태는 좋아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오리온스라는 팀에는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약간 겉도는 플레이가 작년보다 더 심해졌다. 그로 인해 오리온스는 4연패를 기록했고 더불어 전태풍 역시 저번 시즌보다 부진했다.

결국 포인트 가드 역할을 해줄수 있는 전태풍을 필요로 하는 부산 kt 소닉붐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로서 부산 kt 소닉붐조성민전태풍이라는 좋은 가드라인업을 운영할수 있게 되었다.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에서 대놓고 이런 말을 했다. 오리온스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수 있는 부분. 대놓고 추일승, 김동욱 디스 그런데 올스타전 이후 트레이드가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멘붕하기도 했다. 기자가 물어보자 "벤치에 앉아 있어야죠"라고 대답하기도. 하지만 극적으로 고양 오리온스부산 kt 소닉붐이 극적으로 합의 하면서 다행히 무사히 갈 수 있게 되었다. 댓글의 반응은 북한 탈출 후 납북되었다 재탈출에 성공했다는 식.


4.3. 부산 kt 소닉붐[편집]


파일:/image/065/2014/11/08/3-500_0_99_20141108074510.jpg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스타팅으로 뛰었다. 하지만 전반에는 특별한 활약 없이 야투를 단 한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자유투로만 2점에 그쳤다. LG의 지역방어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나 후반에는 슛이 좀 터지면서 풀렸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아쉬운 턴오버를 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조성민과의 시너지도 아주 좋은편은 아니였다는 평가가 많은편..[24] 그 후에도 KT가 3연패를 하면서 전태풍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상당히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전창진 감독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전자랜드전에서 첫 승을 했지만 전태풍의 모습은 그다지 별로였다. 하지만 그 다음 오리온스전에서 10점 9어시 야투율 5/6을 기록하면서 조성민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그 이후로 잘 한다 싶었지만 시즌 후반될수록 점점 부진하게 되고 경쟁포지션인 김우람의 폼이 올라오면서 결국 주전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심지어 KT에서도 조성민에게 MVP를 주기 위해 공격을 몰아주는 경향까지 보이면서 존재감이 없는 선수로 전락하였다. "무득점에 그친 전태풍, 존재감도 제로." 딱 현재 전태풍에 어울리는 말이다. 본인이 밝히는 이야기로는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자신감이 확 떨어지면서 무기력해 졌다고 한다. 더불어 많은 패턴에 익숙치 않은 전태풍이 KT에 와서 복잡한 패턴을 포인트 가드로서 수행해야 하니 더 못하게 된 걸수도 있다. 더불어 전창진 감독에게도 점점 신뢰를 잃어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파일:전창진_전태풍.jpg
이렇게 부진이 계속되자 전태풍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동시에 언론이나 해설자들에게도 지적을 받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전창진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전창진 감독이 왜 농구하면서 벤치의 눈치를 보냐고 하자 KT의 패턴에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감독은 전태풍에게 자유로운 플레이로 팀을 이끌길 원했지만 전태풍은 패턴에 지나치게 맞추려고 하다보니 자기의 플레이가 안나오게 된것.[25] 전자랜드전에선 예전 스타일로 돌아가면서 10점 7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용병싸움에서 밀려 패배하였다. 그 후로도 그냥 별로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못했다. 출전시간도 점점 줄어들어 평균 26분정도 뛰는데 그치고 말았다. 결국 평균득점은 3점정도 내려가고 평균 어시스트는 2.3개 정도 내려갔으며 필드골, 3점슛, 자유투 모두 최저를 기록하면서 흑역사를 썼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실망감만 주었다. 특히 조성민 역시 부상여파로 부진하면서 KT는 엘지에게 3대0 떡실신. 연봉이 깎이는건 불가피 해 보인다. 그런데 5억원으로 동결되었다. 그 후 인터뷰에서 13-14 시즌은 정말 몸과 마음이 전부다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하며 이승준의 연봉 삭감을 보고 위기 의식을 느꼈는데 한 시즌 더 부진하면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시즌 KT의 트레이너 말에 의하면 전태풍 본인이 스스로 맞춤 훈련 일정을 짜왔는데 본인이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정도로 좋은 프로그램이라 하고 전태풍 스스로도 둘째를 출산하면서 더 독하게 마음을 먹은것 같다고 하였다. 전창진 감독 역시 본인이 가장 기대하는 자원 중 하나라고 하니 14-15 시즌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조성민이 무릎 부상으로 적어도 2달은 나올 수 없게 되면서 더욱 전태풍의 활약이 KT로서는 필요하게 되었다. 조성민이 나간 이상 전태풍이 에이스가 되어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위에서 말한대로 주말 개막2연전에서 양날의 검의 모습을 보였는데, 원정경기인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 20득점으로 팀을 캐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날 홈 개막전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경기에서는 저조한 야투를 보이며 전역귀 모드로 팀이 패배하는것을 막지 못했다.[26]

그런데 그 후 2경기는 내리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2연승을 주도 하였다. 그 후 팀은 2연패를 다시 했지만 전태풍은 매치업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초반 KT는 거의 용병들이 무존재감인지라.. 전태풍 원맨팀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7] 11월 14일 전자랜드전 13득점 12어시스트 더블더블을 했어도 경기는 91대 69로 대패. 조성민의 부재가 너무 크다. 그나마 이재도가 득점력에서 부담을 덜고, 에반 브락의 합류로 마커스 루이스보다 나은 활약 속에 조금 부담이 줄었다. 현재의 평가는 KCC 시절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부활했고 KBL 최고 수준의 포인트 가드 정도(?). 그리고 조성민이 복귀하자 자기의 부담을 덜었다고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 조성민이 복귀하고 본인은 오히려 하락세이며 조성민과는 거의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팀의 주축으로 활약 했지만 너무 무리했는지 오른쪽 무릎부위 통증으로 아웃되었다. 그 사이 이재도, 조성민, 찰스 로드 등이 잘해주면서 팀은 5승1패라는 성적을 거뒀다. 12월 중순쯤 나갔는데 2~3주 정도 휴식을 취하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 나올 예정이다. 결국 올스타전 이후 나왔으나 8분도 안돼서 착지 과정에서 허리를 다쳐 나갔다. 전창진감독에 의하면 복귀시기가 언제인지 모르며 너무 들뜬 나머지 제대로 몸도 안푼 결과라 하며 아쉬워했다. 6강 싸움에서 힘든 위치에 있는 KT로서는 상당히 악재가 되었다. 부상 회복 후 복귀하긴 했지만 기복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KT의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전태풍으로서도 한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귀화선수 규정상 KT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였기 때문에 10개 구단이 자유롭게 입찰에 나서고 가장 높은 연봉을 쓴 팀과 계약해야 한다. KT에서 몇년 더 뛰다가 은퇴하고 싶었던 전태풍은 언제까지 본인을 혼혈로 묶을 것인가 장난은 그만쳤으면 좋겠다라며 분노하였다. 더군다나 포인트 가드 포지션 특성상 팀을 리드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팀과 감독에 적응하기 더욱 어려운것도 사실이고 그런 이야기 또한 인터뷰에서 하였다.관련기사 그리고 KT에 새로 부임한 조동현 감독은 전태풍이 한국형 조직농구에 안맞는 선수라 디스(?)를 하면서 사실상 결별의사를 밝혔고 김태술의 부진과 김민구의 부상으로 위기를 맞게된 친정팀 KCC와 김시래의 군입대로 포인트 가드가 필요한 LG 이 두팀이 영입경쟁에 뛰어들어 두 팀 중 한 팀을 선택하는 입장에 놓였다.


4.4. 다시 KCC로[편집]



4.4.1. 2015-16 시즌[편집]


그리고 5월 24일, KCC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며, 총액은 5억 4천만원.[28] 다만 본인이 포인트 가드로서 뛰는 걸 강력하게 희망했지만 팀에는 김태술이 이미 있어서 이야기가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단순히 1번, 2번 이런식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투가드로 뛰면서 맞추겠다고 하였다. 더불어 더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 선수들의 체력은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좋으면 좋았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고, 비시즌에도 팀 훈련과 체력훈련을 엄청 시키는 게 그 이유. 어느 나라도 그런식으로 체력훈련을 열심히 하는 걸 못 봤고 주로 비시즌 때는 개인 기술 훈련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으로는 부족한 게 많아 한 명을 제낄 때 온 힘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심한 반면 본인은 힘을 다 쓰지 않아도 기술을 이용해 제끼는 게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최근 한국 선수들도 개인 스킬트레이닝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많은 팬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혼혈 선수와 비주류대학 출신 선수를 비하했던 김일두와 어색한 동거를 하게 됐다.

1라운드에서 꽤나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KCC는 6승 3패를 기록 했으나 제법 무리했는지 그리고 유리몸은 숨길 수 없는지 허리와 골반쪽에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김태술이 오면서 포지션이 겹치고 하다보니 이후에는 1라운드 때에 비하면 주춤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전태풍의 장기중 하나였던 페네트레이션 이후 킥아웃 해주는 플레이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고 슛감도 많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오리온스 2년차 MK-2인 상황. 심지어 KCC의 새로운 용병인 안드레 에밋은 개인 플레이 성향이 상당히 강한 선수이며 김태술 역시 볼을 가지고 하는 포인트 가드 인지라 더욱 그런면이 나타난다. 추승균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다가 결국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시작하자마자 카메라맨의 발을 밟고 발목 부상을 당하고 나갔다. 또 부상

전자랜드전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으나 다시 폼을 어느 정도 회복을 했고, 완전히 리그에 적응한 안드레 에밋을 보조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 전주 KCC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MVP까지 거론이 되고있긴 하지만 기록 자체는 14-15 시즌에 비해서도 많이 하락했고, 양동근이 13점이 넘는 평균 득점에 어시스트 1위까지 하면서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양동근에 1표차로 밀리면서 아쉽게도 MVP 획득에 실패했고, 베스트 5에도 들지 못했다. 그래도 MVP에 대하여 양동근은 아주 좋은 선수이며, 24시간 농구만 생각하는 훌륭한 선수라고 전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KGC와의 4강전에서 4경기 13.8점 4.3리바운드 4.0도움을 기록하면서 에밋과, 하승진을 잘 보조했다. 특히나 KCC가 패배한 3차전에서는 그야말로 KGC 포인트 가드진을 압도하며 팀을 연장까지 이끌기도 했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는 조 잭슨을 상대로 좋은 플레이+트래쉬 토크로 활약 하면서 팀의 역전승을 도왔다. 다만 경기 후 매우 힘들어질 거 같다면서 오리온의 전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결국 그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는데, 2차전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으나, 3쿼터 턴오버 이후 김태술과 교체되어 나오지 못했고 팀은 28점차로 대패하였다. 3차전에는 오랜시간 출전을 했으나, 에이스 에밋이나 센터 하승진이 그냥 막히면서 게임이 터졌고 본인도 10득점을 했으나 5점은 4쿼터 가비지 타임에 나온 득점이었다. 그리고 막판에는 체력 문제도 겹쳐 매치업 상대인 조 잭슨에게 속절없이 뚫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차전에서 1쿼터에 활약 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 뒤로는 체력 문제인지 조 잭슨에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5차전에서 홈경기에서는 20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에밋(38점 9리바운드 6어시스트)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마지막 6차전에서는 체력적인 문제를 빠르게 보이면서 6점 3도움에 그쳤고(야투 시도 자체가 많이 없었다) KCC는 120대 86이라는 큰 점수차이로 패배했다. 평균 기록은 12.2점 3.3리바운드 2.8도움에 야투 성공률 49.02%, 3점슛 성공률 52.63%.


4.4.2. 2016-17 시즌[편집]


2016-17 시즌을 앞두고 컨디션이 좋다고 하였으나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성재준과 부딪히면서 코뼈가 골절됐다. 그래서 3주간 아웃이 됐으며 몸 상태는 안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팔꿈치 부상까지 당하면서 나오는 경기 내내 부진했고, 결국 11월 5일 경기에서는 결장했다. 이로서 KCC는 전태풍, 에밋, 하승진 작년 준우승 주역 멤버들이 모두 부상으로 빠지는 상황이 되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팔꿈치 부상은 개막 이전 당했고, 인대가 찢어져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무리해서 뛴 상황이라고 한다. 수술을 한다면 시즌아웃까지도 되는 상황이라 한다. 결국 수술을 결심했고, 야구선수들, 특히나 투수들이 자주 한다는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시즌 아웃되었다.


4.4.3. 2017-18 시즌[편집]


원주 DB 프로미와의 개막전에서 복귀, 26분 동안 7득점 1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경기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에밋의 볼 호그로 인해 볼 잡을 시간 자체를 거의 잡지 못했다. 그 뒤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지만 워낙 볼 잡을 기회가 없어서 기록 자체는 크게 하락하였다.

그 후에 전주 KCC의 주전 가드로 활약을 했으나 중간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1달동안 결장을 했다. 복귀 후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또다시 삼성전에서 종아리 부상으로 4주 진단을 받고 시즌아웃 되었다....고 하지만 7일 전태풍은 최근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일단은 시즌아웃은 아니라는 소식이 나왔다. 그리고 3월 9일 부산 kt전에서 복귀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대단하다... 시즌아웃일 줄 알았는데 본인의 의지력이 강했는지 의외로 부상 회복 속도가 빨라져서 부상에서 복귀할 정도면... 실제로 전태풍은 이번 시즌에 우승하지 못하면 실패한 시즌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번 kcc의 6번째 챔프 우승에 대한 목마름이 누구보다도 크다.[29]

인천 전자랜드를 상대한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5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20분 가량 뛰며 5.6득점,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서울 SK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4경기에서 평균 18.58분을 뛰며 8.25득점, 2.5어시스트, 3.2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태풍도 이제 노쇠했다는 생각이 드는 기록일 수 있지만 4차전 막판에 맹활약을 펼치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4차전 1분을 남기고 송교창의 득점을 어시스트하고 신발이이 찢어지는 바람에 갈아신고 107-112로 뒤지고 있는 경기 종료 29초 전 재투입된 것을 시작으로, 돌파 후 레이업으로 2점 → 파울 작전 → 돌파로 자유투 획득 후 2개 모두 성공 → 파울 작전 → 김민수를 앞에 두고 3점을 성공시키며 9.1초를 남기고 114-116 턱밑까지 따라붙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SK 정재홍이 자유투 2개 중 1개를 성공시켰고, KCC의 마지막 공격에서 이정현의 3점슛이 빗나가며 17-18시즌을 그대로 마무리했다.여담으로 1차전에서 최부경의 골반에 머리를 부딪힌 것을 팔꿈치에 맞은 것으로 오해해 화를 내다 팀동료 하승진과 이정현의 만류, SK 김선형의 설명으로 오해를 푸는 해프닝도 있었다.

시즌이 끝난 뒤, KCC와 1년간 1억 8000만원의 계약을 체결해 잔류하게 되었다.


4.4.4. 2018-19 시즌[편집]


파일:2018-19시즌 KCC 전태풍.jpg
2018년 12월부터 플레잉코치로 뛰면서 정식 감독이 된 오그먼 감독을 보좌했는데, 주 임무는 통역이었다.

파일:프레디 풍큐리로 변신한 전태풍.jpg
2018-19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패러디한 프레디 풍큐리로 변신해 특별 공연을 연출하였다..


4.5. 서울 SK 나이츠[편집]



4.5.1. 2019-20 시즌[편집]


파일:SK나이츠_전태풍_200110.jpg

2019년 5월 20일, 1년 7천 5백만원에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했다. 최원혁, 이현석의 입대, 변기훈의 쇠락으로 가드진에 구멍이 뚫려버린 SK에게 베테랑 포인트가드 전태풍의 영입은 훌륭한 움직임이라는 평이다. 기사

SK 영입 전후로 전태풍은 방송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심하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토해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지난 시즌 도중 KCC가 전태풍에게 전세를 들어줬던 집에 부동산업자가 왔다는 것을 밝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30] 기사 아카이브

네이버스포츠 라디오 프로그램 '바스켓 카운트'에서는, "원클럽맨으로 남고 싶었는데 너무 많은 팀을 옮겨다닌것 같다"라고 얘기했다. '비록 혼혈선수 3년 제한 규정때문에 KCC를 떠났지만, 다시 KCC로 돌아왔을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KCC를 떠나게 돼서 마음이 안 좋지만, 팀이 리빌딩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밝혔다. 자신과 함께 팀을 떠난 소울메이트 하승진의 이야기도 꺼내면서, '자신도 KCC를 사랑했었지만, 하승진은 더 사랑했었다'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SK로 이적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밝혔다. 처음에는 FA제안을 한 팀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동료선수들의 추천을 받고, SK의 문경은 감독과 삼성의 이상민 감독에게 연락을 해서 일종의 본인 PR을 했다고 한다.[31] 문경은 감독은 '우리 구단이 돈을 많이 줄 수 없다'고 밝혔는데, 전태풍은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게 목표이기 때문에 액수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말했다고 한다. 그 후 며칠동안 연락이 없어서 포기하던 찰나, 문경은 감독이 전화를 통해 영입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본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팀을 얻게되었으니 매우 기뻐서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전태풍은 문경은 감독의 장점이 '선수들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SK에서 상무로 입단하게 된 최원혁의 번호를 받아 3번을 단다고 한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은퇴 시즌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여러 차례 언급했다. 본인의 성격과 자유로운 팀의 분위기가 궁합이 좋은 듯, 시즌 시작 전부터 SK나이츠 구단 유튜브에서 엄청난 활동량과 케미스트리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터리픽12 대회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11월 초부터 정규시즌 엔트리에 합류했다. 때에 따라 식스맨 ~ 백업 자원으로서 쏠쏠하게 뛰어주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도움을 줬다. 출전시간도 적고 나이도 있는 만큼 예전처럼 많은 득점을 하지는 못하지만, 때때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올스타전에 실제 자신의 바이크를 타고 입장 퍼포먼스를 했고, 3점슛 컨테스트에서는 SPOTV 중계에 객원 해설로 등장하기도 했다.

2020년 1월 25일 삼성전에서 천기범과 볼 경합하는 도중 팔꿈치로 천기범의 뒤통수를 가격한 아쉬운 사건도 있었다. KBL 재정위원회는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고 구단은 자체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경기 이후, 전태풍은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흥분해서 저지른 잘못이었다며 천기범과 농구 팬들을 향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상대 선수를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반칙에 대한 팬들의 비판 여론은 한동안 피하지 못했다.[32]

이후 SK나이츠가 정규리그 1위 경쟁을 하며, 팀과 함께 전태풍도 순항하고 있었지만 2020년 2월 29일 전자랜드전이 그의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전태풍은 하프타임 때, 코로나19 사태로 리그가 잠정 중단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4쿼터 막판 문경은 감독에게 뛰게 해달라 요청했다. 경기 종료와 함께 넣은 8m 버저비터가 그의 프로 마지막 득점이 됐다.[33]

시즌 종료 이후, SK 팬들 사이에서는 '전태풍이 1년 더 뛰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평균스텟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백업멤버로서 짧은시간동안 전태풍의 퍼포먼스는 훌륭했고, SK 선수단과의 케미스트리 또한 죽이 척척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태풍은 은퇴 직후 인터뷰에서 '만약 챔프전까지 가서 우승했다면 1년 더 했겠지만, 올 시즌 벤치멤버로서 많은 시간을 출전하지 못했다', '이제는 방송인으로 활동할 게획'이라며 은퇴 의사를 밝혔다. 기사 영상

파일:SK에서의 추억을 기념하며 전태풍을 위한 깜짝 이벤트.jpg
전태풍, SK 나이츠 (2019~2020)

2022년 1월 30일에 학생체육관에서 하승진과 함께 SK와 DB의 경기를 직관했는데, 이 소식을 미리 들은 SK구단이 전태풍에게 비밀로 기념액자 전달식을 준비하여 하프타임에 간소하게나마 은퇴식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전태풍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5. 은퇴 이후[편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유튜버이자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승준, 이동준과 함께 한솔레미콘 소속으로 3대3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초반 몇 주는 3대3에 적응하지 못했고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결승전에서 팀을 캐리하며 MVP를 받으며 팀을 우승시켰다. 이 때 아프리카 프릭스의 한준혁과 트래시 토크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전태풍은 인터뷰에서 트래시 토크를 걸어줘서 너무 좋았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았으며 트래시 토크 및 플레이를 열심히 해 준 한준혁을 리스펙트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6.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태풍의 포인트 가드로서의 플레이 스타일은 그야말로 공격형 포인트 가드. 처음 KCC에 입단했을때는 그야말로 KBL판 앨런 아이버슨을 연상시킬정도로 화려한 드리블과 득점력을 자랑했지만 반대로 패스나 리딩에서는 살짝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34]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패스의 빈도가 늘어났고 공격과 패스의 조화가 절정에 달했던게 2009-10시즌 플레이오프, 2010-11시즌 부상 당하기 전, 2011-12시즌이었다. 하지만 오리온스에 가면서 한국형 패스 위주의 포인트 가드로 거의 바뀌었으며 그 다음 시즌에는 포인트 가드보단 슈팅 가드로서 뛰는데 김동욱, 이현민과 함께 뛸 때면 그야말로 병풍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제 탈출

드리블 능력은 여전하지만 KBL식 가드로 점점 변하고 나이도 먹으면서 처음 보여줬던 폭발적인 플레이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명 정도는 혼자서 제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가대표에서 다른 KBL 가드들이 드리블도 제대로 못치는 상황이 오자 처음 폭발력있던 스타일이 다시 재평가 받는 중이며 문태종 이후의 국가대표로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지만...[35]

한 마디로 따지면 처음 전태풍과는 달리 2016년 기준의 전태풍은 상당히 애매하고 계륵같은 스타일의 포인트 가드가 되어버렸다. 본래의 유니크함도 KBL 처럼 플레이하길 바라는 풍토 때문에 사라진 지 오래고, 그렇다고 KBL에서 가장 바라는 퓨어 포인트 가드도 아닌 그냥 이도저도 아닌 포인트 가드가 되어버렸다. 유재학 감독과 함께 본인의 강점을 살려서 MVP를 여러번 휩쓴 양동근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다.

2018년 12월 8일 코치가 필요한 팀의 상황에 따라 플레잉코치에 선임되었다. 그렇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에 출장치 못해 아쉬움을 줬다.

위의 요약은 KBL 시절 기준이고, 더 젊은 시절 플레이스타일은 훨씬 역동적이었다. 링크는 조지아텍 시절 하이라이트이니 참고.


6.1. 장점[편집]








전태풍의 가장 돋보이는 장점이라 하면 역시 이름처럼 태풍같은 빠른 스피드에 드리블 능력. 어린 시절부터 연습을 해온터라 드리블 스킬이 국내선수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난 수준. 길거리 농구에서나 나올법한 기술들을 실제 경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36]

사실 드리블에 가려서 그렇지 전태풍의 또다른 장점은 바로 슈팅이다.[37] 조지아 공대 시절 기록을 봐도 눈에 띄는 점은 바로 3점슛 성공률과 그 개수였으며, 현대 농구에서 가드가 가장 갖춰야 할 점이 슈팅이란걸 감안하면 정말 큰 장점이 아닐수 없다.

패스 능력역시 수준급이며, 시야역시 뛰어난 편이다. 특히나 수비를 개인능력으로 찢은 뒤 패스를 빼주는 능력이 상당히 좋다. 더불어 키는 178cm로 가드로서도 작은키에 속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여 피지컬이 1번 포지션에서 탑 수준이고 스피드 역시 상당히 빠르다.[38]

즉 개인능력만 보면 KBL 포인트 가드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기분파답게 한번 분위기를 타면 1대1로는 막을 선수가 없다. 젊었던 시절


6.2. 단점[편집]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한 선수인데 가장 단점으로 지적되는 건 바로 수비이다. 오펜스에 비해 수비력은 상당히 떨어지는편. 1대1 대인방어는 좋은 편이지만 지역방어에서 약점을 드러내 3점슛을 얻어맞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게다가 이건 KBL기준이지 만약 해외농구 기준으로 본다면 전태풍은 1대1 대인 방어도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 수준이다. 키가 작고 윙스팬이 긴 것도 아닌데 하체 힘이 강한 편도 아니다. 하승진이 말하길 전태풍은 수비만 잘했어도 NBA는 갔다고 말했으니 말 다한 셈. 또 포인트 가드로서 감정 컨트롤이 서툰 편에다가 기분파인데 잘될 때는 기분이 좋은 반면 상대에게 좀 심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면 무리하는 감이 있고 그러다가 좀 말린다 싶으면 흥분하면서 게임을 던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에 벤치에서 컨트롤을 해줘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다. 강한 승부욕에다 분위기를 타는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전역귀이다.[39][40]

또 하나의 큰 약점은 바로 부상. 피지컬은 좋지만 부상을 자주 당하는 선수 중 하나이다. 부상이 선수의 생명을 갉아먹고, 전성기를 짧아지게 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다.[41] KBL에 오기 전에 이미 부상을 한 번 겪고 운동능력을 많이 상실했으며, 첫 시즌에서는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두 번째 시즌에서는 허벅지 근육파열,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세 번째 시즌에서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결정적인 순간에 거의 나오지 못하면서 팀의 패배를 바라봤다. 게다가 왼쪽 발뒷꿈치 하글런디시병까지 걸리면서 완전한 완치는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2014-15 시즌에도 무릎 부상으로 몇경기 이탈했다가 올스타전 이후 복귀하자마자 허리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부상병동

2015-16 시즌에는 레이업 후 착지하던 도중 카메라맨의 발을 밟고 발목 부상을 당했다. 2016년 프로 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1쿼터에 상무 성재준과 부딪히면서 코뼈가 또 골절되었다. 그리고 2016-17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시즌 아웃. 2017-18에는 부상이 없나 싶었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또 다시 한 달 결장. 그리고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아리 부상으로 아웃.


7. 수상[편집]



7.1. 대회 기록[편집]


  • KBL 플레이오프 우승 1회(2011)


7.2. 개인 수상[편집]


  • KBL 베스트 5 1회(2010)
  • KBL 어시스트상 1회(2013)
  • Georgia Mr.basketball 1회(1998)
  • All-ACC Honorable Mention(Media) 1회(2001)
  • All-ACC Second Team(Media) 1회(2002)
  • Poland-DBL Assists 1st 1회(2007)
  • Croatian League Assists 1st 1회(2008)


8. 사건 사고[편집]



8.1. 전주 KCC와의 갈등[편집]


파일:전태풍이 KCC를 상대로 카카오톡 메세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jpg
파일:아이 러브 KCC 카페에 올린 메시지.jpg

시즌이 끝난 뒤인 5월 14일, 재계약 할 필요 없이 은퇴하라고 권유를 한 최형길 단장의 거짓말로 본인을 분노하게 만들어 버리자 SNS를 통해 이와 같은 메세지 사진을 올리며 비판했는데, 그것도 1차 FA 협상 때 재계약 불발로 내쫓아 버린 하승진이 은퇴한 이후 곧바로 일어난 일이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선수를 은퇴한 뒤에 코치를 임용하거나 연봉 금액에 대해선 아예 없었던 데다가 구단에 잔류하면 코칭 스태프가 불편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다. 그리고 본인은 돈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 데 KCC 구단에서 "구단은 6000만원을 원했지만 전태풍이 1억 2000만원을 요구해서 불발되었다." 라는 식의 소문을 내서 분노를 더더욱 한다 언급하였다.

또한 서류를 빨리 보내면 다른 팀으로도 갈 수 있다며 KCC에서 "15일에 일괄적으로 보내겠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보니 빨리 서류를 보냈어야 한다면서 KCC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일으킨 선수를 받아줄 구단이 있을까?" 라는 말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퍼지자 대다수의 농구 팬들이 분노하였다.


9. 여담[편집]


  • 유럽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던 용병이었으나, KBL에 올땐 이미 30세의 나이였고[42] 개인기를 자제시키는(…) 한국농구에 적응하면서 전성기때의 기량은 잃어버린 상태. 물론 그럼에도 스타급 포인트 가드로 통했다는 점에서 그의 전성기 시절의 실력을 예상할 수 있다.

  • 2015-16시즌이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 스타일 농구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매일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 프리하게 놔뒀다고 알려져 있던 허재 감독마저 플로터를 쏘지 못하게 했고[43] 드리블 스킬 역시도 자제하고 패스를 돌리라고 주문을 했고 속공 상황에서 3점 슛을 쏘는 건 당연히 반대를 했다. 더불어 투 포 원 플레이 역시 근본없는 플레이라 까였다. 매일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고, 한국 스타일의 농구로 적응을 하면서 본래 스타일을 잃어버렸다고 전했다. 반대로 추승균 감독은 왜 그때 스타일로 하지 못하냐고 이야기했고, 이미 7년동안 한국 스타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면서 다시 그 리듬을 찾기 위해 미국에서 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퇴 후에는 KCC에서 코치를 하거나 스킬 트레이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에서도 스킬 트레이닝 열풍은 좋은 현상이라 이야기했지만 최대한 어렸을 때 해야 실력이 확 는다며 다시 한 번 어린 시절 기술을 익히는 걸 강조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 단순히 국내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서 부진하고 기술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꼭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개인기의 발전을 억제하는 악습 탓도 큼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전태풍마저도 저런 식으로 못하게 제약을 걸었으니 국내 선수들에겐 어땠을 지 뻔하다. 마지막으로 드리블에 대해 강조하며 드리블 연습 방법 영상을 촬영했다.

  • SK로 트레이드 된 후 많은 인터뷰를 하였는데 KBL에 온 후 4년차부터는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다 이야기를 하였다. 크블식 스타일로 강제로 뜯어 고쳤기 때문이라 했고 본인을 받아준 KBL과 한국에게는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KBL은 이대로는 안 된다며 쓴 소리를 하였고, 현재 KBL의 지도방식은 선수의 BQ를 살리기는 커녕 오히려 죽이는 상황이라 하였다. 또한 SK에서 딱 1년만 뛰고 은퇴를 할 것이라며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는 말도 하였다.

  • 키는 작지만 덩크슛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 동부전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올스타전에서도 실패했다. 본인 말로는 늙어서 점프력이 떨어졌다고... 그런데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덩크하는 영상을 올렸다.[44] https://www.instagram.com/p/66nJKNIntx/

  • 헐리웃 액션을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워낙 정면 승부를 좋아하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한 성격이 이유인듯 하다. 그런데 나이를 좀 더 먹고 액션이 과장되는게 보여지긴 한다. 한국 선수 현지화 완료

  • 현재 부인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45] 한국에 와서 만났다고 한다.[46] 결국 결혼에 골인하였고 아들 태용, 태양과 하늘을 낳았다.

  • 국가대표 멤버들과 유재학 감독이 회식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하자 바로 "애들이 저한테 형이라고 안 불러요"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재학 감독은 "전태풍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놈은 다 형이라고 부르고 존댓말 해"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 팬서비스가 상당히 좋은 선수로 유명하다. 사진도 잘 찍어주고 사인도 잘 해준다고 한다.[47] 유튜브 Q&A?에서 밝힌 바로는 자신이 거절을 당한적이 있다보니 거절 당하는 팬의 입장을 잘 알아서 잘 해준다고 한다.

  • 한국말을 곧잘 하고 하려는 노력도 하면서 농구도 잘해서 인기가 상당히 많은 선수 중 하나이다. 안티의 숫자도 거의 없는 편이다. 김선형 너 왜케 늦게 왔어.. 임마

  • 의외로 파이터 기질이 있는 선수로 과거 인종차별 때문에 주먹다짐도 많이 했다고 한다. 실제 코트에서도 꽤나 거친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도 한다.[48]

  • 어린 시절 인종차별백인흑인 양쪽 모두에게서 받은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본인에게 상처가 된 것은, 본인이 충분히 자란 후로도 한국 사람들에게도 차별을 당했을 때라고 한다.

  • 플레이나 파이터 기질이 있으면서도 상당히 여린 성격이란 게 밝혀졌다. 인터넷 댓글도 많이 보는 편이고 해설자들이나 언론이 자기를 비판하는 것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 MBC 프로그램인 '사람이 좋다'라는 다큐에 출연하였다. 여기서 본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혼혈이라서 받은 차별이라든지, 현 부인과의 만남 등의 여러가지를 이야기 하였다.

  • 트래쉬 토크를 상당히 즐겨하는 선수인데, 그 수위는 케빈 가넷이나 게리 페이튼같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정도는 아닌 약한 편. 주로 넌 나에게 안된다, 안 들어간다 등 이 정도이다. 다만 한국 농구판 자체가 선후배 관계가 심해서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 1차전 직후 김민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코트 위는 전쟁터"라는 발언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만[49] 그 대상이 같은 혼혈 선수인 문태종이였고[50], 음주운전으로 무한 안티를 양성했던 김민구였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

  • 한국말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 영어의 속어 표현을 직역하는 경우가 있다.[51] '김민구는 간이 크다, 배짱 있다'고 하고 싶었던 말을 "김민구는 불X이 크다"라고 이야기했다. "He's got some balls"라는 표현을 직역한 것. 다만 그 당시 분위기가 살벌해서 현장 사람들이 웃겨도 웃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 한국어의 욕과 비속어는 모두 하승진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하승진이 대충 '~한 상황에서 쓰는 말이야'라고만 알려준 탓에 공적인 자리나 연장자 앞에서 비속어를 쓴 적도 있다고 한다. 하승진과의 유튜브 영상에서도 찰진(?) 한국어 욕을 들을수도 있는데 최근 노는 브로에서도 무심결에 튀어나와서 묵음과 입가림 처리가 되기도 한다.[52]

  • SK 이적 후에도 지속적으로 KCC에게 섭섭함을 드러내는 발언을 많이 했다. KCC 구단이 연봉 문제 등에 대해 전태풍에게 무조건적인 의리를 요구했고 이를 묵묵히 선수생활 말년까지 받아들였는데 완전히 내치는 형태로 팀에서 나가라고 하여 충격이 컸던 듯.

  • 유튜브를 개설하고 구독자 1000명 공약으로 삭발을 하겠다는 공약을 세웠고 구독자가 1000명이 되자 정말로 삭발영상을 업로드했다. 해당 영상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은 전태풍의 아내이며 자녀들도 같이 나왔다(...). 이후 제대로 각을 잡고 하면서는 기술을 시연하는 영상을 업로드한다.



  • 볼링을 정말 잘친다. 유튜브 채널 14F의 코너 하태주의보[53]에서 볼링선수 배소희와 대결을 했는데, 무려 210점을 기록했다. 이는 배소희와 6점 밖에 차이나지 않은 기록이며, 자신은 원래 이렇게 잘 치는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

  • 과거 하승진과 같이 치어리더들과 술을 먹어봤다고 한다.#


  • JTBC 해방타운에 하승진과 함께 허재의 게스트로 유동적으로 출연했었다. 분명 게스트로 왔지만, 현실은 잡일 담당이다.

  • JTBC 딸도둑들 9화, 10화에서 장인어른 터너와 함께 출연하였다.


  • 2023년 8월 5일, SNL 코리아에 출연하였다. 이 날은 케빈 더 브라위너가 출연했는데, 전태풍이 네이마르 닮은 꼴로 분장한 뒤 뻔뻔하게 아는 척하면서 "안녕? 오랜만이네. 나 네이마르야." 라고 넉살좋게 인사하는 꽁트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케빈 데 브라위너도 네이마르를 닮은 전태풍을 바라보면서 빵터지는 것도 개그 포인트였다.





10. 관련 문서[편집]



[1] [2] 본인 유튜브 이름에 기재한 영문 표기.[3] 토니 애킨스(Tony Akins)로 알려졌다. 현재는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므로 법적으로는 사라진 이름이다.[4] 4과목 남기고 프로 입단을 준비하느라 졸업하지 않았다 한다. 지금에 와서는 후회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5] 본인 유튜브 댓글에서 "신발 신으면 183!" 이라고 말한 바 있고 하승진 유튜브에서 nba 2k21 전태풍 키우기 캐릭터를 만들때 직접 잰 양말신은 맨발키가 179cm로 측정됐다. 게임 캐릭터 신체 사이즈를 설정할 때 근사치인 키 5피트 11인치(약 180.3cm), 몸무게 180파운드(약 81.6kg)로 세팅하였다. 실제 KBL에 처음 들어왔을 때 측정한 신장은 178.4cm이다.[6] 러시아 리그[7] 프랑스 리그[8] 터키 리그[9] 프랑스 리그[10] 폴란드 리그[11] 크로아티아 리그[12] 그리스 리그[13] 불가리아 리그[14] 키프로스 리그[15] 전태풍의 세 자녀는 모두 한국미국복수국적이다. 선천적인 복수국적자는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남성은 병역의무를 이행하면 복수국적을 허용받을 수 있다.[16] 2010년 결혼. 아내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혼혈이다.[17] 전태풍이 귀화할 당시의 한국 법은 외국인 선수의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았다.[18] 본인과 하승진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적이 있다. 외모는 덴젤 워싱턴, 목소리는 모건 프리먼 닮은 꼴이라는 반응이 많다.[19] 이 당시 랭킹 1위는 알 해링턴, 2위가 라샤드 루이스[20] 이 당시 전태풍의 점프력은 36.5인치로 약 92.7cm를 뛰었다.[21] 양동근은 이 때 이미 한국 최고의 가드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정작 전태풍은 나중에 은퇴후 밝히길 솔직히 양동근이 누군지 몰랐다고...[22] 그런데 의외로 전태풍을 가장 괴롭힌 선수는 SK의 변현수 선수로 실제로 멀쩡하고 빨랐던 2009-10 시즌에 호되게 당한적이 있다. 실제로 변현수를 상대로 평균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23] 사실 그건 거짓일 확률이 높은 게, 오리온스로 이적했을 당시 전태풍은 한국나이로 33세로, 좀 이르지만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24] 그러나 조성민과 합작 34점을 해줬고 상대 김시래, 양우섭 조합은 7점을 넣었다.[25] 전창진 감독이 밝힌 바로는 기술자가 있다면 지나친 패턴공격은 별로라고 밝혔으며 패턴들은 3라운드만 되어도 다른팀들이 다 알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26] 사실 전태풍의 부진 자체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의 쫒긴 볼들이 전태풍에게 폭탄돌리기 식으로 갔고 전태풍 본인도 차바위의 거친 수비에 파울이 불리지 않아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7] 퍼스트 용병인 마커스 루이스는 한지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KCC전에선 0득점을 하였다. 찰스 로드는 나쁘지 않지만 역시 타팀 용병들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28] 당시 전태풍이 다시 KCC로 올 수 있었던 것은, 하승진이 스스로 몸값을 5억으로 낮추며 전태풍을 꼭 잡아달라고 윗선에 부탁했던 것. 이로써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29] 그럴 만도 하다. 용병 에밋, 로드의 득점력은 말할 것도 없고, 부상을 달고 다녔던 하승진은 건승진 모드로 이번 시즌 처음으로 전경기 풀타임 출전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특히 자유투가 엄청나게 좋아졌다 덕분에 상대에게 핵 어 승진 작전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송교창의 플레이는 이미 성장했으며, 특히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외곽슛을 성공시킬 정도로 지난 시즌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팀의 스코어러 역할을 해주는 이정현을 9억이나 주고 영입하는 등 팀 우승을 위한 전력보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한 kcc이기에 더더욱 간절하다. 그럼에도 만약 우승에 실패하면 전태풍은 무능한 이 분을 원망해야 할 것이다.[30] 선수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구단에서 계약을 해지해버린 것. 부동산업자가 오지 않았다면 전태풍은 아무 것도 모르고 가족들과 함께 거리에 나앉을 뻔 했다. KCC는 전태풍의 항의에 선수는 전세를 줄 수 있지만 코치는 전세를 줄 수 없다는 황당한 변명을 했다. 아마 이때 즈음 전태풍과 은퇴 후 코치가 아닌 이상은 더 이상 함께가지 않겠다고 확정지은 듯.[31] 김민수가 전태풍이 FA가 되었을 때 "형은 SK로 와야한다"라고 말했고, 전태풍이 KCC에게 버림받자 문경은 감독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고 한다.[32] 이후 21-22시즌에 천기범이 음주운전으로 중징계를 받고 은퇴를 하게 되자 이 사건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이전에도 애런 헤인즈가 김민구를 가격하고 사과를 한 이후, 김민구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자 다시 사건이 회자되는 일이 있었다.[33] 이날 경기 종료 후 SK 모 코치가 '태풍아! 매너 없이 마지막 슛을 왜 쏜거야?'라고 묻자 전태풍은 ‘이게 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의 예감대로 약 한 달 간의 중단 이후 KBL은 시즌 조기종료를 결정했다. 리그 중단이 결정된 이후, 코치도 전태풍에게 연락해서 사과했다고 한다.[34] 속공시 공격숫자가 더 많은데도 3점슛을 던지는 플레이를 하고 욕을 먹은적도 있다. 사실 전태풍 입단 당시는 이게 욕을 먹고 리딩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으나 속공시 3점은 결코 나쁜 방법만은 아니다. 슛이 좋은 선수들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는 득점이며 공격 리바운드 성공률 또한 높기 때문이다.[35] 일단 전태풍도 상당히 노장에 속한다. 80년생이며 15년 시즌이 되면 한국 나이로 36살이다. 지금 노인소리 듣는 양동근보다는 오히려 1살 형이며 2018년 4월 은퇴한 김주성보다는 1살 동생이다.[36] 실전에서 그런 스킬들을 써먹으려면 기본기가 거의 완벽해야 한다.[37] 2011-12시즌에는 평균득점 15점에 야투율 50%가 넘었다.[38] 나이가 들어서 많이 죽긴 했지만 강약 조절을 잘 하는 편.[39] 이 부분에서 추일승허재의 차이가 나오는데 추일승은 조용히 불러들인 다음 계속해서 쓰질 않는 반면 허재는 레이저를 쏘고 다시 코트로 복귀시킨다. 그리고 이런 점이 결정적으로 KBL에서 전태풍이 저평가 받는 큰 이유이며 전태풍보다 양동근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다. 물론 KBL 한정이지만 전태풍이 현재 뛰는 리그는 KBL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40] 이 부분에 대해 전태풍이 밝히길 사실 상대도 상대방인데 자꾸 본인이 잘하는 플레이를 계속 하지말라 하고 갈수록 하지말라는 플레이가 많아졌던게 본인의 기분 및 플레이에 더 영향을 줬다 밝혔다.[41] 엄청난 운동능력을 지녔던 데릭 로즈가 대표적이며, 다재다능 했던 크리스 웨버 역시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NBA까지 갈 필요도 없이 KBL에서는 오세근이 연이은 부상으로 신인 시절이 커리어 하이가 되어버렸다. 다만 오세근은 그 이후로 재기에 성공해서 잘 뛰는 중.[42] 사실 30세면 전성기에서 크게 멀어질 나이는 아니지만, 이전에 이미 부상을 당한 터라 운동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KBL에 왔다. 실제 전태풍은 전성기 시절 90cm가 넘는 수준급 점프력을 지녀 덩크까지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으나 KBL에서는 덩크를 어쩌다 한 번 연습에서나 할 수 있는 정도였다.[43] 손대범 편집장도 파울아웃에서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한국 농구 원로들은 플로터 같은 기술을 싫어한다고 이야기 했다. 반대로 본토에서는 플로터는 기본기이며 꼭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44] 전태풍은 과거 36.5인치, 약 92cm 정도의 점프력을 보유했다고 한다.[45] 부인도 아프리카계 아버지-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님들끼리 친구사이였다고 한다.[46] 정확하게는 전태풍이 한국에서 뛰기로 결정했을 때 어머니로부터 미나가 한국에 있다는 데 연락 한 번 해봐라는 얘길 들었고 페이스북에서 부인의 프로필을 확인, 메신저로 연락을 해서 만났다고 한다.[47] "형 화이팅~!" 이라고 하자 "응 고마워" 라고 대답. 근데 반말인데 기분 안 나쁘고 뭔가 친근[48] 한국말을 어눌하게 해서 아주 순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 영어를 쓸 때 보면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파이터 기질이 있다고 본인이 밝히기도 하였고 코트 위에서도 상대 선수와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49] 지금은 은퇴하고 연예 활동을 하는 서장훈이 많이 했던 발언이다.[50] 전태풍은 혼혈 차별에 대해 상당히 반대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51] 한국어는 영어권 사람들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이다. 높임말이 있고 체계 자체가 영어와는 다르기 때문. 체계적으로 공부만 해도 수 년은 걸려야 잘 할 수 있는 게 한국어인데 운동선수라면 더욱 시간이 걸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52] 하승진과 5살 차이 나지만 절친한 사이다. 평상시엔 당연히 하승진이 형대접을 하고 존대말을 하지만 캡틴큐를 잔 가득 따랐을 때 하승진이 '개XX'라고 하거나 치킨 서로 먹여줄 때 "나는 이 XX야!"라고 욕을 할 정도로 편한 사이로 보인다. KBL선수들이 혼혈선수들을 다르게 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승진은 그냥 선배 선수처럼 대하다보니 오랜 동료였던 전태풍과는 친한 형동생 사이가 된 듯.[53] 하승진과 진행을 하는 스포츠 예능 코너이다.[54] 하승진의 유튜브 단골 손님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04:27:24에 나무위키 전태풍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