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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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東辰
1900년 1월 16일 ~ 1970년 1월 15일 (향년 69세)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화가, 교육자, 정치인이다. 호는 소허(小虛).

2. 생애[편집]


1900년 1월 16일 경상북도 대구군(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1921년 6월 동맹휴학을 주도한 일로 인해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 졸업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수채화 화가로 활동했다. 1924년 6월 28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구소년회에서 주최하고 동아일보사 대구지국에서 후원하는 대구아동자유화전람회가 개최되자 심사원으로 참석했다. 1925년에는 영일군 송라면에 있던 광흥학교(廣興學校)에 이사로 참여했다. 1927년 6월 11일부터 6월 13일까지 동아일보사 대구지국 주최로 지난 해 전공 특선한 수채화의 개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람회 제2부 서양화 부문에 「驛の附近」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고, 그해 7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 동아일보사 대구지국 주최 하에 개인 전람회를 개최했다.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 제2부 서양화 부문에 「驛の構內」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다.

이후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를 창립해 사장에 취임했고, 1930년 9월 교남학교가 재개교하자 교사부임했다.[1] 1930년 10월에는 향토회(鄕土會)에서 제1회 서양화전람회를 개최하자 이에 작품을 출품했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 제2부 서양화 부문에 「午後の風景」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고,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 제2부 서양화 부문에 「裏通リ」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다. 1935년 9월 교남학교 교사로서 간친회 간사를 역임했고, 그해 11월에는 대구향토회 주최 제6회 미술전에 참여했다.

한편, 대구 계성고등학교 교사, 대륜고등학교 교사, 경상북도청년회 회장, 경상북도 원호회 회장, 경상북도 후생회 회장, 대구금융조합 감사, 영남일보사 취체역,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경상북도지부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경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국민당 경상북도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계보상으로는 신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신도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민의원 외무위원회(현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재건 민주당에 속하였다.

1970년 1월 15일 저녁 6시 40분 대구시 남구 대명동 182번지 청구주택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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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상열 제3대 경북대학교 총장, 이효상 국회의장, 권중휘 제7대 서울대학교 총장 등과 함께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