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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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鍾斗
1916년 12월 25일[1] ~ 1987년 8월 29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남평(南平)[2], 자는 성원(聲遠).

2. 생애[편집]


1916년 12월 25일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아버지 문탁곤(文卓坤, 1896 ~ 1972. 3. 7)[3]과 어머니 수원 백씨(1903 ~ 1957. 7. 21) 백운진(白芸鎭)의 딸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공립상업학교일본 주오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 경상북도청 이사관, 경상북도 교육위원, 김천시보 사장, 김천상공회의소 회장, 김천신문기자단 단장 등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여영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김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7월 30일 오전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나온 구황실재산특별회계에 대해 정낙훈(자유당), 서범석(민주당), 민관식(민주당) 국회의원과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의 윤우경 사무국장에게 순정효황후 윤씨창덕궁 낙선재로 되돌아가겠다고 요구하였는데 어떻게 하였는가라고 질문하여 생활비로 매월 46만 환을 지급한다고 답변받았으나 1년 뒤 윤우경이 돈을 착복하였음이 드러났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세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등록이 취소되었다.

1987년 8월 29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교의료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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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력 1917년 1월 18일.[2] 판도판서공파-지례파 31세 종(鍾) 항렬.[3] 초명 문만곤(文晩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