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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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계광순(桂珖淳/Gye Gwang Soon)
출생
1909년 2월 16일
사망
1990년 3월 19일(향년 81세)

1. 개요
2. 생애
3. 선거이력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본관은 수안(遂安)[1].


2. 생애[편집]


1909년 2월 16일 평안북도 선천군 심천면 고군영리[2]#(현 동림군 고군영리)에서 평안북도 관찰부주사(觀察府主事)를 지낸 아버지 계용즙(桂龍楫)과 어머니 연안 김씨 김만국(金萬國)의 딸 사이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가서 마쓰야마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직후 1931년 조선총독부 강원도 내무부 지방과 속(屬:하급 보조 문관)에 임명되면서 관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춘천군 속에 임명되었으며, 1932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후에는 강원도 회양군 속에 임명되었다. 이때 1934년 강원도 경찰부 경무과 경부(警部), 1935년 강원도 평강군수, 1936년 함경남도 경찰부 보안과 경시(警視: 경부 바로 위 계급)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이후 1939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산금과 사무관, 1940년 식산국 착암공양성소 사무관, 1941년 학무국 사회교육과 사무관, 1942년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 간사 및 위원, 조선간이생명보험심사회(朝鮮簡易生命保險審査會) 위원, 1943년 강원도 참여관, 강원도 산업부 도사무관 등으로 관료 생활을 하였다.#

8.15 광복 후 광업계에 투신, 기업체에서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6.25 전쟁조선인민군에 체포되어 납북되던 중 탈출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춘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홍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당 홍창섭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신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에 속하였다. 1965년 민중당 소속일 때 조재천 전국구 국회의원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강원도 춘천시-춘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우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여생을 보내다가, 1990년 3월 19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근교 아케이디아(Arcadia) 시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수록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3. 선거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도 춘천시)

[[무소속|
무소속
]]

8,520표 (41.9%)
낙선 (2위)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도 춘천시)


15,950표 (54.7%)
당선 (1위)
초선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도 춘천시)


15,748표 (51.9%)
당선 (1위)
재선[3]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파일:민주당(1963년) 흰색 로고타입.svg

1,252,827표 (13.5%)
승계 (8번)
3선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도 춘천시-춘성군)

[[신민당(1967년)|
파일:신민당 벽보글씨.svg
]]

8,613표 (13.0%)
낙선 (3위)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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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문파 21세 순(淳) 항렬.[2] 인근의 부황리와 함께 수안 계씨 집성촌이다.[3] 1961년 5월 16일: 자격정지(5.16 군사정변)